SCP-1757-KO

일련번호: SCP-1757-KO

등급: 유클리드

특수 격리 절차:
SCP-1757-KO는 인간형 표준 규격의 콘크리트 격리실에 격리한다. 개체의 변칙적 특성을 고려하여 일정 수준 이상의 균열이 감지될 시 보수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이때, SCP-1757-KO 및 SCP-1757-KO-1과는 비접촉을 원칙으로 하며, 만약 접촉하여 SCP-1757-KO-1에 노출되었다면 소각 후 상처 부위를 치료한다.

설명:
SCP-1757-KO는 일종의 변칙 질환을 앓고 있는 16세의 한국인 여성이다. SCP-1757-KO의 오른쪽 안와 및 팔, 어깨 등의 부위에선 변칙적 성질을 띈 금잔화(Calendula arvensis, 이하 SCP-1757-KO-1)가 발생한다. 이는 간헐적이나, 한 번 피어난 꽃은 잘 시들지 않으며 이에 따라 현재는 우반신 상단을 거의 덮고 있다. 이른바 공생 혹은 기생과는 기작이 꽤 차이가 나며, 되레 신체의 일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SCP-1757-KO-1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사물, 혹은 생명체가 SCP-1757-KO-1에 접촉하면 그 즉시 SCP-1757-KO-1은 대상에 뿌리를 내린다. 이후 뿌리박힌 물체 위에서 증식하며 점점 대상을 잠식해가며, 이 과정은 느리지만 착실히 진행된다. 해당 과정은 주 뿌리가 목표를 가볍게 뚫고, 그 주위로 잔뿌리가 목표를 감싸듯 퍼지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SCP-1757-KO-1에 생명체가 노출되면 그 즉시 극심한 고통을 느낀다.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 살점이 헤집어지고 융합되므로, SCP-1757-KO-1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상처 부위를 외과적 수술을 통해 완전히 제거하거나 소각하는 방법밖에 없다. 때문에 SCP-1757-KO와의 면담 및 검진 등은 모두 비대면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칙적 특성 때문에 SCP-1757-KO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에 지장을 가진다. 오직 왼손만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격리실 내부는 이미 SCP-1757-KO-1로 거의 채워진 상태이다. 정기 검진 및 보수 때마다 일정량을 소각하고 있으나 개별로 증식하는 속도가 더욱 빠르기에 큰 의미는 없다. SCP-1757-KO 스스로는 SCP-1757-KO-1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으며, 치료받거나 제거해야 할 것으로 인식한다.

SCP-1757-KO는 2023년 자택에서 발견되었다. 안와 및 오른팔에 SCP-1757-KO-1이 돋아난 것을 발견하곤 즉시 신고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재단에 확보되었다. 양친에겐 집중 치료 센터로 이송되었다는 역정보를 살포한 뒤 국소 기억소거제를 통해 일부 기억을 삭제 및 조작하였다.

SCP-1757-KO는 이후 제202K기지로 이송되었으나, 변칙의 위험성 및 격리의 까다로움을 사유로 제09K기지로 배정되었다.

부록-1:

실험 개요서 #02

SCP-1757-KO 변칙성 연구


전담 연구원 : 한 유 랑
강 혜 교
김 진 곤


개괄:

SCP-1757-KO의 정확한 변칙 기작과 그 분류를 알아내고 그에 맞춘 적절 격리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함.

상세:

SCP-1757-KO의 혈액 및 피부 샘플을 추출하여 그 변칙의 특이성을 검진한다. 이때, 칸트 계수기 및 아밀라-오로하트 검진기를 이용한다. 칸트 계수기는 변칙 능력의 구체적인 수치를 파악하게 하며, 아밀라-오로하트 검진기는 그 변칙의 양상과 기작, 유형을 대략적으로 산출해낸다. 이 과정은 주로 혈액 샘플의 색상 변화를 통해 나타나며, 색이 푸른빛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높은 유동성, 가변성, 예측 불가능성과 변칙의 성장 가능성을 암시한다. 또한, 피부 샘플에 사용할 시 일종의 얼룩무늬가 나타남으로써 그 기작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결과:

칸트 계수기:
'말라카이트' 색상을 도출함으로써 그 기작이 상당한 등급의 현실 조작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 입증됨. 현실 조정의 위험성 및 까다로움을 고려하여 격리를 강화할 필요가 보임.

아밀라-오로하트 검진기:
혈액 샘플 5개 중 3개의 색상이 검푸른 빛을 띔. 이는 대략 중상위 수준의 변칙 가변성 및 성장 가능성을 암시하며, 이에 따른 추후 위험도 상승을 예시함. 또한, 피부 샘플 4종의 경우 AH-8형 얼룩무늬를 보이는데, 이는 변칙의 근간이 일종의 기적학적 유전 형질 및 그로 인한 현실 조정 인자의 흄 수치 불안정에 위치한다는 것을 시인함.

이후 SCP-1757-KO의 격리가 일부 강화되었다.





교차 실험 기록



===== [편집됨] =====



결과:
기각: 위 사항은 윤리위원회 지침 사항에 부합하지 않아 기각되었음을 알립니다.





실험 개요서 #05

SCP-1757-KO 변칙성 연구


전담 연구원 : 한 유 랑
강 혜 교
김 진 곤


개괄:

SCP-1757-KO의 변칙성 근원을 파악함과 동시에 그 구현 체계를 탐구하기 위함.

상세:

SCP-1757-KO-1이 발생하는 주 위치인 오른팔 및 오른쪽 안와를 해체함으로써 그 내부에 존재하는 변칙 기관이나 기적학 인자, 세포 등을 확인한다.


결과:

기각: 변칙 자산의 손실이 우려됨.





부록-2:

SCP-1757-KO 대우 개선 건의안


SCP-1757-KO는 현재 인간형 표준 격리 조약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변칙 침식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콘크리트로 대충 만든 격리실은 둘째치고, 그 나이대에 맞는 정서적 감각을 기르기 극히 힘든 환경입니다. 사람을 마주할 일도 없으며, 격리실엔 완구나 책 따위의 것들이 반입되지도 않습니다. 이에 이하 사항을 건의합니다.

  1. 매주 완구 및 서적을 지급함
  2. 대면 면담 시행
  3. 창문 설치

기각

  1. 완구 및 서적은 SCP-1757-KO에 접촉하는 즉시 침식될 것이 자명하며, 이에 따라 금세 기능을 잃을 것임. 이런 소모품적인 것에 더 투자할 이유는 없다고 사유됨.
  2. 대면 면담은 초기 격리 방침 중 일어난 일련의 사고를 통해 부적합하다는 것이 증명됨. 해당 사고 피해자는 현재 접촉 부위를 적출한 상태임.
  3. 현재 격리실이 시설 한가운데 위치해 창문을 설치할 수도 없으며, 창문 설치를 위해 새 격리실을 건조하고 파손 위험이 큰 유리창을 뚫는 것은 비합리적이라 판결됨.





SCP-1757-KO 요청안

면담(#12)에서 발췌


요청안:

  1. 읽을거리
  2. 바다가 보고 싶음

  1. 소설 및 비문학 출력물 일부 지급.
  2. 기각: 변칙 개체의 외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음.





부록-3:

면담 기록 #13


면담자: 한유랑 연구원
면담 대상: SCP-1757-KO(금예은)

비고: 비대면으로 진행되었다.


[기록 시작]

한유랑 연구원: 안녕하세요, SCP-1757-KO.

SCP-1757-KO: …이름으로 불러 주면 안 될까요.

한유랑 연구원: 죄송합니다. 이게 저희 방침이라. 충분히 익숙해졌으리라 생각했는데요.

SCP-1757-KO: …아쉽게도 아니네요.

한유랑 연구원: 어쩔 수 없죠. SCP-1757-KO, 일상에 불편함은 없나요?

SCP-1757-KO: …네.

한유랑 연구원: 저번에 준 서적은 어땠나요? 취향에 맞던가요?

SCP-1757-KO: 그럭저럭…

한유랑 연구원: 별로였나 보네요. 좋아하는 장르 있을까요? 참고해 볼게요.

SCP-1757-KO: …영상물은 안되려나요. 다큐멘터리… 그런 것도 좋은데.

한유랑 연구원: 재생할 기기를 설치할 수가 없네요. 감안해 주세요.

SCP-1757-KO: …네. 책은 그냥 주던 대로 주세요.

한유랑 연구원: 알겠습니다. 내일 정기 검진 있는 거 아시죠? 그거 참고해주시고요. 변칙성… SCP-1757-KO-1은 불편한 점 없나요? 아프다던가.

SCP-1757-KO: …똑같아요.

한유랑 연구원: 알겠습니다. 그럼… 네, 오늘은 여기서 끝낼게요. 오늘은 점검 문항 수가 적어서.

SCP-1757-KO: ……바다는,

SCP-1757-KO: 안 되는 거죠?

한유랑 연구원: …네. 저희도 정말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지만, 재단 방침상 불가능합니다. 다만 원한다면 바다 사진을 보여드릴 수는 있습니다.

SCP-1757-KO: 아녜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한유랑 연구원: 네, 그럼 이만.

[기록 종료]





부록-4:

청록학교 공문

수용 학생 검토 확대 안내


안녕하십니까, 청록학교장 장문유입니다. 청록학교는 명일 오전 12시 정각을 기점으로 수용 변칙 개체의 기준을 일부 완화하고, 그 검토 대상을 확대할 것을 알립니다. 이를 통해, 기존에 기각당했던 개체나 검토 대상이 아니었던 개체들 또한 청록학교로의 이송을 고려 받을 수 있습니다. 자세한 완화 기준과 검토 대상 확대 안내표는 이하 첨부 문서를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상으로 화합하고 교육하고 변화하는 청록학교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록학교_검토_대상_확대_안내.hwp
청록학교_수용_기준_완화_안내.hwp










SCP-1757-KO 청록학교 수용 결의안


SCP-1757-KO의 청록학교 수용은 기각되었음을 알립니다. 이하는 기각 사유입니다.

SCP-1757-KO의 변칙은 개체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으며, 그 작동 과정에서 주변 물체에 손상을 입힌다는 점에서 현행 격리 체계를 유지하는 편이 합당하다 결의되었습니다. 다만 현행 격리 체계가 인간형 개체 격리 규약에 미흡하다는 점을 감안해 약간의 수정을 취할 것을 권장합니다. 본 개체를 청록학교에 수용할 수 없다는 점에 심심한 사과 말씀 드립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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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네 바람을 모두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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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5:
2025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SCP-1757-KO 격리실 내부에서 쪽지가 하나씩 발견되었다. SCP-1757-KO는 자신 또한 이 쪽지의 출처를 모른다 시인했으며, 검사 결과 변칙의 일환 또한 아니라 판명되었다. 이하는 쪽지 내용이다.

금예은. 16세. 눈에 꽃.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지, 그리고 더 멀리로.

얼마 남지 않았어.




















* * * * *

격리실 안을 걸을 때면 언제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바람도, 울림 따위의 미동도 존재하지 않는 그 찬 방을 가득 채운 금빛 꽃들은 제 뿌리를 꿈틀거리며 공백을 채워갔다. 다 읽고도 수십 번을 다시 읽어 이제는 외우다시피 해버린 얇은 책들 위를 덮는다, 또한 그의 팔을, 어깨를, 가슴팍 언저리의 살갗을 헤집고 들어가 자그마한 봉오리를 머리를 내밀듯 불쑥 틔워 가볍게 벌렸다.

하늘을 보지 않은 지 얼마나 됐지. 아니, 어쩌면 이 콘크리트 내음에 너무 익숙해져 모든 것을 잊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쪽지가 없었다. 밤을 보내고 힘겹게 눈을 뜨면, 익숙한 천장과 함께 낯선 쪽지가 머리맡에 놓여져 있었다. 일종의 반항심과 나만이 알고 있다는 우월감 비스므리 한 것에 어찌 숨겨 봤지만, 재단은 금세 알아차리곤 잘 모은 네 개의 쪽지를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 오늘은 머리맡에 금빛 꽃뿐이 남은 까닭이다.

예은은 눈을 감았다. 왼눈은 신경 쓰지 않고 오른눈만 감아도 세상은 어느새 새카맣게 물든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머리가 아뜩해지고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은 금색으로 가득 찬다. 사실, 그는 파랑을 더 좋아했다. 하늘의 높다란 색이나, 혹은 바다의 낮고 깊은, 그런 축축한 색.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집이 너무 그리웠고, 또한 학교가, 친구가, 가족이 그리웠다. 엄마도 아빠도 누구도 그에게 말해주지 않은 것은, 자신이 어떤 초능력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걸 평생토록 제어할 수 없고 저주나 장애와도 비슷한 것으로 달고 살 것이라는 거였다.

엄마는, 혹은 아빠는 그에게 편지나 전화를 한 통 보내지 않았다. 원망스러웠고, 또한 미안하고, 아니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예은의 계산이 맞다면 2년이 지났고, 계산이 틀리다면, 그보다 더 오랜, 혹은 더 짧은 시간이 지나가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어쩌면 모두가 알았을 거야. 모두가 알고 나한테만 알려주지 않았을 거야. 그럼 또 나만 바보 같이.

어느 날은 예은이, 꽃이 언젠가 몸을 다 덮고, 내장과 혈관 사이 사이로도 스며들고, 뇌까지 파고들어 일종의 식물-좀비가 되는 상상을 해보았던 적도 있었다. 어른들이 말하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했지만, 다만 어른들의 거짓말들을 생각하면 그 말에 신빙성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보통 저주는 다 그렇게 끝나니깐.

예은은 빼앗긴 쪽지를 생각했다. 쪽지엔 이름과 나이가 적혀있었고, '저주'와 바다를 보고프다 했던 소망까지도 정갈한 글씨체로 그대로 쓰여 있었다. 어쩌면 몰래 카메라라던가, 혹은 누군가의 짓궂은 장난일지도 몰랐지만, 어째선지 예은은 그것이 누군가의 선물이라 생각했다. 적어도 그리 생각해야 마음이 편했다. 선물.

그러다 천장의 전등이 꺼진다. 밤이 왔다는 뜻이었다. 격리실엔 창문이 없었고, 바깥의 풍경이 희미해질 때쯤, 전등에 맞춰 하루를 가늠하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불이 꺼지면 꼼짝없이 자는 수밖에 없었다. 암순응이 진행되어도 보이는 것은 색을 빼앗긴 꽃무리들뿐.

예은은 침대—라기엔 마찬가지로 꽃으로 뒤덮여 다른 것과 구분할 수 없는—에 누웠다. 금잔화 매트리스 위 금잔화 베개를 베고, 금잔화 이불을 덮으며 금잔화 우반신을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로 금잔화 인간이 되어버려서 위장과 허파 사이사이로 꽃잎이 들어차는 그런 꿈마저도 꾸게 된다. 아마 내일도 비슷하겠지. 그 내일도, 어쩌면 내년 오늘의 내일마저도. 다만 바다를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리고, 바람이 느껴진다.

바람. 온통 사방이 막힌 격리실 안에 바람이 분다. 잔잔한 미풍에서, 산들바람이, 꽃들을 거두며 꽃잎을 흩날리는, 세찬 바람이 되어 소용돌이쳤다. 수많은 종이쪽지와 새파란, 푸른빛의 불똥들과 함께 휘몰아친다. 예은은 세찬 바람을 맞으며 몸을 가눴다. 눈을 뜨기조차 힘들고 온몸의 꽃무리들이 뽑혀나갈 것만 같은 세기에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공중엔 어느 빛무리가, 새파란 빛으로 뭉쳐 방을 밝혔다. 이내 유화와도 같은, 녹아내리는 물감의 형상이 공중에 새겨지며, 발을, 다리를, 몸통을, 이내 팔과 여느 머리를 엮어냈다. 사람. 어느 남성의 모습을 한 그는 공중에 가뿐히 뜬 채로, 손짓하며 푸른 빛덩이의 밝기를 조금 낮췄다.

예은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예은보다 살짝 나이가 많아보이는, 흑발 남자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

"…누구세요?"

예은이 물었다. 남자는 아직까지도 선선히 이는 바람에 공중을 맴도는 쪽지 몇 가닥을 쥐며 예은에게 답한다.

"쪽지 보낸 사람."

남자는 짧게 말하며 예은을 일으켜 세웠다. 방 안은 환했고, 바람은 거의 잦아들었지만, 오래간만에 사람을 보았다는 기쁨과 사람이 허공에서 생겨났다는 당혹함, 충격 등이 가시지 않은 탓에 예은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여기에…"

"방법이 다 있어. 금예은, 맞지?"

"네, 근데… 왜 여기 온 거예요?"

"글쎄."

그는 예은의 이름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는 듯 말하곤, 그를 격리실 문 앞으로 잡아끌었다. 문만은 꽃으로 덮이지 않았고, 그렇기에 둘은 그 회색 색조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바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바깥…이라뇨?"

"말 그대로, 이 방 바깥."

예은은 격리실 밖을 생각했다. 격리실에서, 이 기지 건물에서 나간 지는 몇 년이 다 되어갔다. 그 기억 속 바깥은 점점 희미해져만 갔고,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집과 동네 거리의 풍경을 더듬을 뿐이었다.

"…가고 싶어요."

"이 문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 너는 직접 세상에 부딪혀야 해. 직접 공기를 들이마시고 풀을 짓밟아야만 해. 그래도, 괜찮겠어?"

그런 각오는 진작에 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왜 저를 도와줘요? 아니면, 이게 꿈인 건가요? 재단 쪽 사람이에요? 당신을 따라나가면 안 되는 시험인 거예요?"

남자는 그런 예은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그 말대로 바깥에 나가고 싶은 것은 맞다. 그러나 처음 본 사람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비록 자신보다 살짝 나이가 많은 것으로 보였지만,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고, 또한 말해주는 것엔 천장이 있었다. 믿을 수 없었고, 믿으면 안 됐고, 믿었다가 상처받았다. 이 사람이 똑같지 않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금예은."

그는 예은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말했다.

"바다가 보고싶댔지. 여기서 나가고 싶다 늘 생각했고, 집이 그리웠고."

마치 모두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이.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에 이유가 있으면 안 되는 거야."

예은은, 모든 어른에게 배신 받은 예은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믿을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름이라도 알려줘요."

"도시."

그가 말했다.

"모든… 아이들을, 해방할 의무가 있는 사람."

그는 예은의 오른팔, 꽃무리로 가득한 손목을 세게 움켜잡고는, 다시금 바람을 일으켰다. 푸른빛이 일렁였고, 눈앞이 유화와도 같이 녹아내린다. 별 헤는 밤의 푸른빛 밤하늘처럼 소용돌이치며 이지러지는 시선은 이내 격리실 밖 복도에 닿았다.

"어떻게…"

"빨리 뛰어야 해."

도시는 그렇게 말하곤 예은을 잡아끌며 달렸다. 복도엔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고, 그의 발이 닿을 때마다 꽃이 한 가닥씩 피어났다. 텅 빈 직선 길을 따라 발을 내디딜 때마다 메아리처럼 탁, 탁, 하는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이 왜 아무도 없죠?"

"아무도 밤엔 일어나고 싶어 하지 않거든."

도시는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그대로 벽을 향해 달렸다. 다시금 눈앞이 이지러졌고, 푸른 유화 붓질과 함께 녹아내렸다. 연구실을 통과하고, 다시 복도, 또다시 이름 모를 격리실, 복도.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에 몸을 가누기 힘들 때쯤에, 도시는 한 벽을 앞두고 갑작스레 멈춰 섰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는 예은을 보며 말했다.

"벽, 부술 수 있어?"

"제가요?"

"마지막 벽이야. 세상에 직접 부딪혀야만 해. 그렇게 네 사상을 지구에 새길 수 있어야만, 그렇게 성장해야만 하는 거야. 잘 들어, 팔을 가져다 대고, 눈을 감아. 그리고,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상상해."

벽을 부순다는 것은 예은에겐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저 일개 청소년일 뿐이고, 방금까지 도시가 보여줬던 마법 같은 능력 또한 없었다. 그저, 오랜 질병밖에는.

"손을 대."

도시는 그의 팔을 잡고 벽에 가져다 대었다. 벽에 꽃이, 금색 꽃봉오리가 틔워져 나오기 시작했다. 도시의 손에서도 또한, 팔을 휘감으며, 벽을 기어오르며 금빛 들꽃이 퍼져나갔다. 눈을 감는다. 마침내 세상이 새카맣게 물들고 환시와 암순응의 일렁임뿐이 남는다. 팔에서 기어오르는 덩굴과 꽃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을,

바다가 보고 싶어. 그 파란색을.

온몸의 꽃망울이 이지러드는 것을 느낀다. 벽 사이사이로 꽃의 뿌리가 파고들었고, 이내 벽을 감싸 퍼졌다. 도시의 팔뚝 또한 그 꽃에 먹혀버린 지 오래다. 마치 수 시간 달리기를 한 양 폐가 식고 심장이 뛴다. 몸뚱어리가 식으며 오로지 팔뚝과 눈과 그 아래의 꽃들에 감각아 집중된다. 일렁임, 이지러짐, 어지러움, 가려움. 머리가 식는다. 팔이, 눈이, 세상에 부딪히며 산산이 깨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고는.

바람이 느껴졌다.

* * * * *




















변칙 개체 탈취 경고


현재 SCP-1757-KO 개체가 분실되었음을 알립니다. CCTV는 모두 조작되어 있으며 기지 외벽 일부가 파손되었을 뿐 이 이상의 손실은 없습니다. 전 인원은 지금 즉시 현장으로 돌아가 업무를 재개하길 바라며, 기동특무부대원들은…




















* * * * *

바닷바람. 모래사장 위에 우뚝 솟은 새카만 바위 위에 어느 남녀가 있었다. 몸 반쪽이 금색 꽃으로 덮인 여자는 바위 위에 쭈그려 앉은 채 파도의 오르내림을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었고, 검은 머리 남자는 그런 여자 옆에 서서 수평선 너머를 멀찍이 쳐다봤다.

예은은 자신의 새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칼을 생각했다. 눈을 떴을 땐 도시가 자신을 옮기던 중이었고, 등 뒤로 멀찍이 보이는 기지는 고요했고, 구멍 뚫린 벽과 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불빛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 동시에 그는 자신의 머리가 새하얗게 새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전의 까만색과는 거리가 먼 흰빛이었고, 그때는 달빛에, 지금은 바다의 수없는 윤슬과 같은 박자로 햇빛에 조밀히 반짝였다.

파도가 모래톱을 조금씩 갉아먹었다. 밀려오는 물결에 모래들은 잔뜩 뒤로 물러가곤, 어느새 짙게 젖어 다시금 자기 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바다는 검푸른 빛을 띄었고, 그토록 바라던 상상 속 새파란 바다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예은은 그 짠 기 나는 공기를 느끼며 마음을 푸를 수 있었다.

"…파도는 왜 계속 쳐요?"

예은이 물었다. 별 의도가 담긴 질문은 아니었다. 그저 정적이 너무 길었고, 파도 소리와 미처 따듯한 남쪽으로 향하지 못한 바닷새들의 소리만이 하늘을 맴돌았기에.

"모래가 아픈 걸 덮어주려고."

도시가 짧게 대답했다. 그가 하는 말들은 언제나 이런 식으로, 알 수 없는 은유며 비유—사실 예은은 반쯤 아무렇게나 말하는 말이라 생각했다—로 점철되어 있었고,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엔 항상 습관처럼 사뭇 새하얀 눈가를 만지며

"모래는 흉터가 많거든."

라며 또다시 알아듣지 못할 말을 덧붙이곤 했다.

"집, 가볼 거야?"

그가 물었다. 집. 집이란 것에 가본 지 2년이 훌쩍 넘었나. 이젠 예은에게 집이란 먼 과거의 표상이요 그리움의 일면이었으나, 24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을 찾지 않은 두 어른의 공간이기도 했다. 집에 간들 달라질 것이 있을까. 아직도 눈가와 팔과 어깻죽지엔 수만 꽃들이 피어나는데.

"글쎄요. 가도 의미 없을 것 같고."

"응, 이사하셨더라."

"네?"

"이젠 빈집이야. 마음이 비었으니까, 집도 비우신 거지."

말마따나, 부모님이 이사를 갔다면, 또한 주소도 모르는 곳으로 멀리 떠나버렸다면. 그럼 더 이상 몸담을 곳이 없는데.

"왜… 왜…"

"그래도,"

한층 울적한 표정을 짓는 예은에게 도시가 말했다.

"어느 날 길을 가다 마주치게 될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요?"

예은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닷바람이 얼굴에 스칠 때마다 눈가가 시려웠다.

"연이라는 게 그래."

도시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어쩌면 도시라는 사람에게 세상이란 그토록 무심하고 뜻 없이 돌아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

예은의 콧가 위로 새하얀 결정이 내려앉았다. 눈이다. 하얀 눈은 어느새 예은의 체온을 견디지 못하고 작은 물방울로 녹아버린다. 그리곤, 수십 눈송이가, 하늘에서 내리며.

"…눈이네요."

눈이 모래톱으로, 바위 위로, 둘의 머리맡으로, 바다 위로 내렸다. 파도가 모래를 휩쓸 때마다 위에 쌓인 눈은 덧없이 녹아내렸다. 겨울바다도 눈송이에겐 뜨거운 것이었고,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바다를 덮겠다며 수만 송이 눈을 흩뿌렸다. 빈 공터에 날리는 재처럼, 혹은 첫 사람이 느꼈을 겨울비처럼.

"우리 쪽으로 와. 지낼 곳이 있거든."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예은은 자신의 머리 위에 가볍게 쌓인 눈을 털어냈다. 꽃송이 위로 새하얀 얼음 결정이 쌓였다. 곧 녹을 눈들을 뭉쳐 작은 구를 만든다. 그리곤, 바다로.

"이번만이에요."

눈덩이는 바다 위를 표류하다, 어느새 녹아 바다가 된다. 그리고 흘러 모래알에 닿는다. 먼 곳에서부터 흘러와 깨지고 닳고 사그라들었을 그런 모래에게, 먼 옛날엔 바위였을 모래에게. 어쩌면 세상 모두는 그런 모래일지도 모른다. 아주 먼, 아주 먼 원시에는 큰 바위였을, 그런 사람들.

예은은 자신의 꽃이 움츠러듦을 느낀다.

월동.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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