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마음이 모두 닳아 없어질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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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칙 개체 번호: K-81QH1
우선도: 2등급
담당 기지: 제202K기지
설명: 침샘에서 에탄올이 분비되는 15세 여성. 본래 제202K에서 관리하던 청소년으로, 여러 변칙개체의 실험에 참여한 전적이 있다. 현재 변칙성으로 인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부하가 가해진 상태이며, 오래 가지 않아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할 것으로 보인다.
면담 기록 일람
대상: K-81QH1(임시 번호)
면담자: 구혜주 유아청소년부 연구원
——
[1차 면담]
— 거부함.
[2차 면담]
— 거부함.
[3차 면담]
— 거부함.
[4차 면담]
— 열람 중…
면담자: 구혜주 연구원
면담 대상: K-81QH1(임시 번호)
[면담 시작]
구혜주 연구원: 안녕, Kー 아니, 이월아.
K-81QH1: …
구혜주 연구원: 많이 힘든 거 알아. 그래도, 선생님이랑 면담은 해줬으면 좋겠어. 그냥 대화하는 거라 생각하고.
K-81QH1: …
구혜주 연구원: 면담 요청 계속 거부한 거, 선생님은 이해해. 어린 나이에, 갑자기 그러니까. 힘든 거.
K-81QH1: (기침한다.)
구혜주 연구원: 그래도 뭐라고 말 좀 해줬으면 좋겠어. 응?
K-81QH1: …
K-81QH1: …왜 저한테만 이래요.
구혜주 연구원: 응?
K-81QH1: 다른 애들 다 멀쩡한데, 왜 저만 이러냐고요.
구혜주 연구원: …그건ー
K-81QH1: 밥도 못 먹겠어요. 물도 못 마시겠고.
구혜주 연구원: 그렇다고 굶으면 안 돼. 응? 그런 거부터 챙겨야 병도 나을 텐데.
K-81QH1: (기침한다.) 못 고치는 거 알아요.
구혜주 연구원: 이월아.
K-81QH1: 선생님도 알잖아요.
구혜주 연구원: …
K-81QH1: 그냥…
K-81QH1: …아니에요.
구혜주 연구원: 음, 혹시, 꼭 해보고 싶었던 거. 있어?
K-81QH1: 네?
구혜주 연구원: 버킷 리스트라던가.
(잠시 정적.)
K-81QH1: …학교. 학교 다녀보고 싶었어요.
구혜주 연구원: 그렇구나. 알겠어. 시간 내줘서 고마워.
K-81QH1: …네.
[면담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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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1756-KO
등급: 유클리드
특수 격리 절차:
SCP-1756-KO는 인간형 표준 격리실에 격리한다. 격리실 내부에 호출 벨을 설치하여 언제든지 의무팀이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SCP-1756-KO는 주에 한번 정기 신체검사 및 건강 검진을 받으며, 하루 1회 정해진 약물을 복용해야 한다. 약물의 자세한 내용은 설명을 참조하라. 또한, 정기 상담 및 하루 3회 식사를 준수해야만 한다.
설명:
SCP-1756-KO는 변칙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17세 한국인 여성이다. SCP-1756-KO의 침샘에 존재하는 특수한 효소1는 타액에 기적학적 작용을 일으키는데, 작용이 일어난 타액이 공기와 접촉할 시 농도 75~85%가량의 에탄올로 서서히 변환된다. 변환은 길게는 3시간까지도 걸리며, 대체로 2시간 이내에 완료된다.
합성된 에탄올은 인체에 무해하나, SCP-1756-KO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SCP-1756-KO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상시 0.03%를 유지하고 있으며, 타액이 에탄올로 변환된다는 변칙에 따라 식사나 음수에 지장이 따르기도 한다. SCP-1756-KO가 청소년 개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여겨질 수 있으나, 일종의 하위 변칙성으로 인해 건강 상태는 현재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체내의 에탄올이 아세트알데하이드로 대사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으로 추정되는데, 자세한 사항은 연구 중에 있다.
부록:| 의료부 진로기록부 | |||
|---|---|---|---|
| 진료일 | 2018.12.29 | 시설 | 제202K기지 |
| 환자 성명 | 이월 | 생년월일 | 2005.02.28 |
| 신장 | 158 | 체중 | 49 |
| 가족 병력 | 본인 병력 | ||
| X | O | ||
| 질환 및 증세 | |||
| 외분비샘 이상. 침샘에 존재하는 효소의 작용으로 인해 타액에 에탄올이 일정량 혼합되어 분비됨. 이중 일부는 체내로 흡수되어 현재 SCP-1756-KO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3%를 상시 유지 중임. 이 이상 악화되지 않는 이유는 불명이나 부가 변칙의 영향이 의심됨. 현재 알코올 의존증과 유사한 증상을 앓고 있으며, 간과 일부 장기에 부하가 상당한 상태임. 상술한 부가 변칙의 영향으로 치명적인 정도까지 도달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나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가해짐. 정신적 질환: 알코올 의존증 및 갑작스런 변칙성 발현으로 인한 트라우마, 불안증. 지속적인 상담 요함. |
|||
| 의사 소견서 | |||
| 자동 양조 증후군과 비슷하나 침샘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특징적임. 완전히 전례 없는 것은 아니나 난치성을 띠어 완치는 어려울 것으로 보임. 다만 환자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괴로워하고 있으니 심적으로 북돋아 주며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함. | |||
| 처방 | 알코텔정, 헤파툼연질캡슐 | ||
청록학교 편입 요청서(1)
요청 대상: SCP-1756-KO
요청자: 구혜주 유아청소년부 연구원
사유: SCP-1756-KO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변칙성 발현으로 인해 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또래와의 교류와 야외 활동은 이런 심리적 불안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보며, 규칙적인 학교 커리큘럼 또한 건강에 도움이 될 거라 예상합니다. 또한, 현재 청록학교는 이미 다수의 만성 변칙 질환 환자를 수용 중이며, 이들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여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 또한 수월히 해내는 양상을 보입니다. SCP-1756-KO를 청록학교로 편입시킨다면 기존의 격리를 더욱 효율적으로 해냄과 동시에 건강 및 정신 상태 또한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SCP-1756-KO 또한 청록학교에 편입될 이유가 충분하다 생각됩니다.
청록학교 편입 반려 사유서
대상: SCP-1756-KO
간략한 설명: 외분비계 특이 형질로 인한 알코올성 타액 및 이에 따른 건강 문제.
반려 사유: 대상의 변칙적 성질은 지속적인 치료와 약품 처방을 요구하는 성격을 띰. 비록 청록학교 내에 병동이 존재하나 상시 인력 부족 상태이며 만성 변칙 질환을 앓고 있는 개체를 더 수용할 방도가 없음. 또한, 대상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며 청록학교 내에 수용한다 해서 이 이상의 격리 안정성과 정신 안정을 취할 수 있을거란 보장 또한 적음. 이에 따라 위 개체의 청록학교 편입을 거부함.
[녹화 시작]
(배경은 격리실 내 화장실이다. SCP-1756-KO가 급히 세면대로 달려간다.)
SCP-1756-KO: 웁… 우윽…
(SCP-1756-KO가 입 안에 있는 것을 게워낸다. 칫솔을 부여잡고 혀를 마구 문지른다.)
SCP-1756-KO: 후… 흐윽… 흡…
(SCP-1756-KO가 칫솔로 입안을 마구 쑤신다. 그러나 이는 외분비계를 자극하여 변칙의 작용을 가속할 뿐이다.)
(SCP-1756-KO가 휘청인다. 거울에 두 손을 대고 기댄다.)
SCP-1756-KO: 헉…. 허억…
(SCP-1756-KO가 흐느낀다.)
[녹화 종료]
청록학교 편입 요청서(5)
저번 반려 사유서 잘 봤습니다. 제 의견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SCP-1756-KO는 또래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런 칙칙한 건물이 아닌 산속에서 요양을 취해야 합니다. 스스로도 그를 원하고 있고, 저를 비롯한 다른 연구원들도 그리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구혜주 연구원.
의견은 잘 압니다. 저희도 SCP-1756-KO에 대해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청록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당신이 그 아이에 대해 누구보다 각별하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고1 때 입학이면 몰라도 중3 때 편입은 주변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할 게 뻔한 뿐더러, 환자지 않습니까.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것은 청록의 입학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그와 동시에 강력한 반대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이해 바랍니다.
그리고, 변칙 개체에 대한 지나친 이입은 징계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자중하십시오.
[기록 시작]
김윤수 선임연구원: 아, 혜주 씨. 들어오세요.
구혜주 연구원: 보내주신 반려 사유서 잘 봤습니다. 당부 말씀도요.
김윤수 선임연구원: …안 들을 거죠?
구혜주 연구원: 잘 아시네요.
(정적. 한숨 소리.)
김윤수 선임연구원: 혜주 씨. 너무 과몰입하셨어요. 월이 건은 저뿐만 아니라 모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15… 16살짜리 애가 그런 방향의 변칙에 걸린 거, 몇 번 없었으니까요. 그치만ー
구혜주 연구원: 중3 편입은 어렵다 하셨죠.
김윤수 선임연구원: 네? 네, 근데 제 말은ー
구혜주 연구원: 고1은 괜찮다는 거죠?
김윤수 선임연구원: ……혜주 씨.
구혜주 연구원: 전 의견 안 굽힐 겁니다. 이월이랑 약속한 게 있어요.
김윤수 선임연구원: …당신, 그러다 징계 받아.
구혜주 연구원: 그러면 받으면 되죠. 전 그 애 청록만 보내면 돼요. 앞으로 제명당하든 D계급 되든.
김윤수 선임연구원: ……
김윤수 선임연구원: 하…… 윗분들한테 얼추 말해놓을게요. 네, 뭐, 안될 건 없죠.
구혜주 연구원: 그 말은…
김윤수 선임연구원: 한번 해봐요. 건투를 빌죠.
[기록 종료]
면담자: 구혜주 연구원
면담 대상: SCP-1756-KO
[면담 시작]
구혜주 연구원: 월아 안녕.
SCP-1756-KO: …(기침한다.) 이번엔 또 뭐에요.
구혜주 연구원: 선생님이랑 약속한 거… 기억해?
SCP-1756-KO: …아뇨.
구혜주 연구원: 학교 보내주겠다 했잖아.
SCP-1756-KO: 못 하는 거 알아요.
(SCP-1756-KO가 손을 입에 대곤 구역질한다. 손에 담긴 액체가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구혜주 연구원: 아니, 난 너 꼭 학교로 보낼 거야.
SCP-1756-KO: …
구혜주 연구원: 조금만 기다려. 내년까지만…
SCP-1756-KO: 어차피 평생 격리실에 갇혀야 하잖아요.
구혜주 연구원: …왜 그렇게 생각해?
SCP-1756-KO: 저는 변칙 개체니까, 그래서 그런 거니까…
구혜주 연구원: 너, 학교 가고 싶다며.
SCP-1756-KO: 가고 싶은 거랑, 갈 수 있는 거는 달라요.
구혜주 연구원: 만약에, 네가 학교를 가게 되고, 또 그래서 졸업하고는 재단에서… 재단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어떨 거 같아?
SCP-1756-KO: …
(잠시 정적. 기침 소리.)
SCP-1756-KO: 저는… 저는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어떻게 살지도.
SCP-1756-KO: 그냥, 그냥… 지금보다만 나았으면, 좋겠어요.
[면담 종료]
청록학교 공문
수용 학생 확대 정책 안내
안녕하십니까, 청록학교장 장문유입니다. 2020년 새해를 맞이한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신년을 맞아 모두 들뜬 마음일지, 혹은 어떤 불안이 있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이번 1년을 안정하고, 안전하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청록학교 또한 그렇습니다. 청록학교는 지난 5년간 시범 시행을 하면서, 사령부에 필수적인 요소임을 몸소 증명해냈습니다. 우린 이제 어린아이들에게 충분한 자유와 윤리를 제공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격리 파기 위험이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린 이제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고자 합니다. 아직도 수많은 청소년 변칙 개체들이 열악한 환경과 옛 재단의 비윤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의 탓이며, 그렇기에 우리가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청록학교는 수용 학생 확대 정책을 시행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그동안 반려되었던 개체들이나 청록학교에 편입될 예정이 없던 개체들도 이곳에 수용하거나, 적어도 편입 검토를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그저 작은 변화 같지만, 더 나은 재단을 만들어가는, 변화하는 재단을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도약입니다.
이상 공문을 마칩니다. 청록학교장 장문유였습니다.
발신자: 구혜주 연구원
수신자: 김윤수 선임연구원
SCP-1756-KO 편입 재검토 바랍니다. 이번에도 안되면 전 배 째렵니다.
[기록 시작]
(배경은 격리실 내 침대이다. SCP-1756-KO가 그 위에 웅크려 누워있다.)
SCP-1756-KO: …
(SCP-1756-KO가 혀를 내민다. 에탄올이 섞인 타액이 흐른다.)
SCP-1756-KO: 하하…
(SCP-1756-KO가 침을 삼킨다.)
[기록 종료]
청록학교 공문
최종 편입 확정자 목록
강태연A-1837 (중등부 1학년)
김민영A-0291 (중등부 2학년)
김이소A-2718 (중등부 1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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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원C-1001 (중등부 1학년)
이다명C-0028 (고등부 1학년)
이병준C-1817 (고등부 2학년)
이소월C-2173 (고등부 1학년)
이 월C-1756 (고등부 1학년)
면담자: 구혜주 연구원
면담 대상: SCP-1756-KO
[면담 시작]
(구혜주 연구원이 탁자 위로 교복 한 벌과 가방 하나를 올려놓는다.)
구혜주 연구원: 자, 선물.
SCP-1756-KO: …이게 뭐예요?
구혜주 연구원: 학교 가고 싶다며. 선생님이 힘들게 얻어낸 거야.
SCP-1756-KO: (기침한다.) 그치만 전 격리됐는데…
구혜주 연구원: 너같은 애들 다니는 학교가 있어. 청록학교…라고.
SCP-1756-KO: …
구혜주 연구원: 왜? 다니고 싶다 했잖아.
SCP-1756-KO: 제가… 제가 잘 다닐 수 있을까요? 전… 전 이런데…
구혜주 연구원: 거긴 너보다 더 심한 애들도 다니는 곳이야. 너, 분명 잘 적응할 수 있을 거야. 적어도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해.
SCP-1756-KO: …선생님.
구혜주 연구원: 응?
SCP-1756-KO: …감사해요. (SCP-1756-KO가 울먹인다.)
SCP-1756-KO: 정말… 정말로요. 진짜 감사해요.
구혜주 연구원: 나야말로 그렇게 말해주니까 더 고맙네.
[면담 종료]
현재 졸업생 자료에 접근 중입니다.
이하 내용은 현재 사용되지 않으며 모두 보존 중임을 밝힙니다.
| 학생 명부 | |||
|---|---|---|---|
| 성명 | 이월 | 학번 | 30121 |
| 생물학적 성별 | 여성 | 식별 번호 | C-1756 |
| 기숙사 | 상록동 | 지도교사 | 경선영 |
| 상기 | |||
| 본래 제202K기지 소관이던 것을 2020년 이송함. 변칙 질병을 앓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과격하거나 지속적인 신체 활동이 불가함. 이외에 식사 등의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으므로 주의를 요함. 또한 하루 3회의 정해진 식사를 준수하도록 지도해야 하며, 이상을 호소할 경우 즉시 병동으로 옮겨 관리해야 함. 학교 활동엔 조금 소극적이나 맡은 바를 열심히 임함. 학생 임원을 맡은 적이 있으며, 학생부 활동 외에도 보건부 활동에 열정적으로 임함. 스스로의 진로를 재단 의료부 연구원으로 잡으며, 재단 채용에 대한 지속적 관심 및 열의를 보임. 성적 또한 우수한데, C-1756의 혈중알코올농도가 상시 0.03을 유지 중이라는 것을 고려했을 때 이는 주목할만함. 교우 관계는 적지만 일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 학년부를 가리지 않고 같은 보건부 소속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함 (A-0021, A-2918, B-0001, C-2704 등). 현재 학교 활동에 만족해하고 있으며 청록학교에 편입된 이후 자신의 신체 및 정신 건강이 완화된 것을 드러냄. 이는 이후 만성 변칙 질환을 앓고 있는 청소년 변칙 개체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모집해야 함을 시사한다 볼 수 있음. 현재 채용 후보군에 올라와 있으며, 높은 성적과 인성 함양을 고려해 확정될 것으로 보임. 채용이 확정될 시 1년간의 직원 교육을 받은 뒤 배치될 것이며, 변칙적 특성을 고려해 알맞은 부서에 배정받을 것임. |
|||
언젠가.
반엔 온통 처음 보는 얼굴들뿐이었다. 첫날이란 그랬다. 강당에 옹기종기 모여 교장과 이사장의 훈화를 듣고, 반을 알게 되고, 앞으로 자신을 맡을 담임과 여러 과목의 선생님들과 함께 지낼 아이들을 알게 되는, 그런 나름의 학습을 하나둘 기억해야 하는 시간. 이월에게, 학교는 처음이었으며, 새로운 것이었고 또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이는 다름 아닌 혜주가 힘을 써주었기 때문에, 그들의 염원이 어딘가 한계를 맞이하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이리도 올 수 있던 것이 아닐까, 하고 그는 뇌까린다. 입안이 쓰다. 몸살 여름병의 쓴맛처럼 혀를 감싸며 녹아내리는 휘발성 에탄올의 화한 감촉이 구강을 맴돌았다.
월 또한 한 아름 그런 감상을 껴안고서 자리에 멀뚱히 앉아 있던 걸까. 아마 대다수는 여기서 몇 년간을 동고동락한 사이일 테고, 그렇기에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곤 서로서로 안면이 트인 상태일 터였다. 그리고 그 몇몇 아이들엔 이월이 포함되었다. 어쩌면 학교에 가겠단 결정이 조금은 엇나간 결정이 아니었을까. 하던 중에.
"이름이 뭐야?"
옆자리의 아이가 월에게 말을 건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그 애는 근심 걱정 없는 표정으로 월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것이다.
"…응?"
"이름 말야."
옆자리 소녀는 마치 너 말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다는 양 그에게 지속적으로 말을 건넨다. 아마 월과도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였을까. 그렇다면 격리실에서의 삶 또한 더욱 힘겨웠지 않았을까.
"아… 월이야. 이월."
"이월? 이름 예쁘다. 난 강여름이야."
여름이란 소녀는 또다시 환하게 웃어 보이며 월을 향해 손짓한다. 그는 어쩌면 이 여름이란 아이가 자신과 잘 맞을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 그런 것 따위 예측하는 것은 그닥 부질없는 일이었다. 길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안개로 첩첩이 쌓인 그런 베일들 아닌가.
이월은 또다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또래와 연을 맺었던 게 언제던가? 아마 격리당하기 전, 혹은 이번이 처음이었나. 이젠 까마득한,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먼 고대를 되뇌인다. 떨림, 이다. 마침내 새로이 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경탄이다. 월은 입안에 가득 고인 수류를 삼켜버렸다. 목구멍과 내장 하나하나가 모두 밝혀지는 듯한 느낌이었으나, 그럼에도 다시 말을 꺼낸다.
"안녕, 잘 부탁해."
감격스러움에 그만 힐끔 웃어버린다. 모든 근심도 결국 기우였던 것이다. 결국 길은 아무도 모른다. 길은. 그럼에도 예측할 수 있냐 물으면.
"…왜? 나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냥… 여기 와서도 적응 잘 못할까봐… 그랬어서."
월은 그 반증이라는 듯 기침을 연신 내뱉었다. 여름은 그제서야 상대의 병약한 면모를 재확인한다. 떨리는 살결이며 산발인 머리칼, 그리고 애틋한 눈.
"나도였는데."
"응?"
"나도 이번에 처음 들어왔거든. 떨리기도 하고… 그래도 아마 괜찮겠지 했는데, 불안한 건 마찬가지라."
"안 그래 보였는데."
"그치?"
여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빙긋 웃는다. 월은 그런 옆자리 소녀의 능글맞은 감상을 재밌다는 듯 마주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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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언젠가.
"…보건부."
이월의 눈에 띈 것은 게시판에 붙여진 한 공문이었다. 동아리 모집 포스터로, 잡다한 안내 사항들과 여러 혜택 등이 적혀있었으나,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보건부라는 세 글자 하나뿐이었다. 보건부. 참 간결한 단어 아닌가.
월이 그에 대한 끌림을 느낀 것은 단순한 우연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애시당초 그런 꿈을 가져본 적도, 미래에 대한 비전이니 목표니 따위 없이 그저 지금보다 나은 내일을 바랐을 뿐이었던 것이다. 다만, 월의 심상 깊숙한 곳에 박힌 어느 무언가가 그 동기를 움직였을 수도 있었다. 이는 혜주에 대한 심상이었을 수도 있었고, 자신을 지지한 누구인가에 대한 그것이었을 수도 있었고, 도움받은 자신에 대한 심상이었을 수도 있었다.
단지 그런 것들로, 누군가를 돕고프다는, 혹은 그런 일을 하고프다는 마음이 불러일으켜졌을 그런 날일 뿐이다.
그때 혜주 선생님이 말했었지. 학교를 가고, 졸업을 해서는, 재단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 어떨 것 같냐고. 그때는 스스로의 고통에 너무나 허덕이던 때인지라 그런 것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을 일구어낼 마음이 부족했다. 너무나 치우쳐 한쪽으로 쏠린 마음은 관성을, 타성을 가지곤 그리로 돌진할 법만을 알고 있던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재단, 이라 함은, 자신을 잡아넣고, 혹은 그러한 이곳의 모든 아이들을 잡아넣은 단체. 세상을 위한다지만, 적어도 그 세상에 월을 포함한 모두가 없었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다시금 떠오르는 202K의 기억들. 입안의 쓴맛. 쓴쑥 빛의 하롱거리는 간질거림. 내장을 밝히는 알코올의 흐름.
그러나, 재단엔 혜주 같은 사람들이 있고, 이곳의 졸업생들이 있고, 적어도 그를 이곳에 보내준 것처럼 변화를 촉망하는 사람들이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혜주 선생님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일한다면, 어쩌면 생각한 만큼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
재단에 간다. 의료부, 라거나. 혹은 그러한 일을 한다면, 적어도 스스로의 일을 사랑하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길을 걷는다면.
월은 무심코 포스터의 써진 글귀들을 읽어 내려간다. 재단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목표를 가지고 길을 걷는 편이 나을 터였다.
보건부. 꽤 멋진 이름이 아닌가.
이월은 홀린 듯 비틀거리는 걸음을 이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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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언젠가.
월은 다른 둘과 함께 바깥을 구경하는 중이었다. 어느새 시간은 지나 2학년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고, 그것은 새 학년에도 함께 따라온 여름과, 보건부 활동을 하며 차근히 친해진 유온에게도ー다만 한 학년 후배인 그에겐 1학년의 끝일 터다ー마찬가지였다. 셋은 나름 꽤 친하다 할 수 있었다. 소극적인 이월에겐 이마저도 감지덕지였다.
"선배는, 졸업하면 뭐 할 거예요?"
유온이 물었다. 아마 3학년이란 단어가 주는 그런 감상은 졸업, 재단, 혹은 겨울을 연상케하는 그런 이미지였던 것이다. 나름대로 우수생이라 할 수 있는 월에겐 정해진 길이 있었다. 여름은, 잘 모르겠다. 유온도. 물론 그는 이제야 2학년이 되지 않는가.
"나는 모르겠다. 재격리당하지 않을까?"
여름이 장난스럽게 대꾸한다. 그런 말 자체가 그리 유쾌한 발언은 아니었음에도, 이미 학생들 사이에선 신세한탄식의 농담거리로 흔히 소비되고 있던 것이다.
"너무 그러지 마요."
유온이 대꾸한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여름은 별생각 없다는 듯 말했다. 길은 그런 식이다. 보여지는 것은 그 길대로 갈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선배는요?"
월은 곰곰이 생각한다. 졸업을 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면 진중히 고민해 본 적 없는 경우의 문제였다. 물론 그는 충분히 열심히 생활을 하고 있었다. 학생회며 보건부며 내신이며 학생이 몸소 챙겨야 하는 것들은 충분히 따라가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생활이 마치 영원토록 이어질 것만 같아서, 언제까지고 이런 청록 속에서 살아갈 것만 같다는 환상이어서.
"나는…"
월이 흐드러지듯 말한다.
"재단에 들어가고 싶어."
스스로 정해놓은 종착은 그런 방향이었다.
"너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성적도 좋으니까…"
여름이 말한다. 상대가 재단에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었으나 서로 간 그것이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란 걸 알았다. 누군가 재단에 가면 누군가는 다시 침침한 격리실로 들어간다. 간택 받지 못한 아이들은 제 꿈을 끌어안고는 오므려 죽여버려야 했다. 그것은 재단의 한계요 혜주나 이월이나의 그런 발버둥으론 바꿀 수 없는 큰 흐름이기도 했다.
"그래도…"
월이 입을 연다.
"그래도 다 같이 갈 수 있다면, 좋겠어."
어쩌면 이루어질 수 없는 미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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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장 마지막 언젠가.
졸업은 예상치 못한 바람으로 찾아왔다. 한 해는 쏜살같았고, 입사 시험이니 적격 테스트니, 이런저런 적성 활동이니 하는 것들로 몰아치는 그런 월일들을 몸으로 한 겹 한 겹 견뎌내고는 맞이하는 마지막.
월은 멋들어진 졸업 가운을 걸치곤 1월의 바람을 맞으며, 유온이 건넨 꽃다발을 든 채 서있었다.
"여름인?"
월이 묻는다.
"곧 올 거예요. 먼저 선배랑 기다리고 있으라던데요."
"그렇구나…"
월은 잔기침을 내뱉으며 품에 안은 꽃다발을 살폈다. 안에 하나둘 보이는 그런 잔향들에 지금껏 보내온 3년이 스치듯 지나간다.
"선배, 재단 들어가시죠?"
유온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것은 어쩌면 단순한 질문일 수 있었지만, 그런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사뭇 진지해 보여, 숨을 죽여 바람 소리만을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월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그는 월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선배는 거기서도 잘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음… 비록 저나 여름 선배나 재단에 들어가진 못하겠지만."
그런 그의 얼굴은 어딘가 울적해 보였다.
"…너 괜찮아?"
"당연하죠. 졸업식이잖아요. 기쁜 날인 걸."
꿈을 죽인다는 건 참 애석한 짓이 아닌가. 그것은 월이 재단의 입사 조건을 알았을 때부터 생각한 것들이다. 그런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더 나아졌다고는 말한다. 정해진 길을 걷는 채, 그나마 주어진 모종삽으로 조금씩 새 길을 파는 그런 이들을 보며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건 어딘가 잘못된 것만 같아서.
그러나 그게 완전히 나쁘단 것만은 아니다. 당장 그 스스로도 이곳에 들어오곤 더욱 나아졌지 않았나. 실제로도 건강은 눈에 띄게 호전됐고ー비록 지금까지도 잔병치레는 잦으나ー새로운 친구들도, 새 목표도, 새 길도 주어졌지 않는가. 더 나아졌다는 말은 분명 맞았다. 다만 그것이 완전히 맞았냐 물으면.
"선배."
"응?"
"그렇다고 격리실 돌아가는 애들, 너무 안쓰럽게 보지는 말아요."
유온이 말했다.
"사람마다 걷고 싶은 길도 다르고, 원하는 목표도 다르잖아요. 재단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평생 청록에 남고 싶은 사람도, 아님 이런 곳에 실망하고 원래의 격리실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을 거잖아요."
역시 그런 것일까. 그러나 그들은 평생토록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그럼, 그럼 너는 재격리를 꿈꿔?"
어쩌면 조금 무례한 질문.
"아뇨."
그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저도 선배랑 같이 재단 들어가고 싶어요."
"넌 아직 2학년이잖아. 시간도 많아."
월이 말했다.
"됐어요. 나중에 격리실 가면 거기나 가끔 찾아와요. 거긴 청록이랑 비슷하대요. 원래 우리가 있던 데랑은 다르게."
월은 차마 말을 더 붙일 수 없었다. 뭐라 말하던 죄책감이 들었고, 이런 것조차 바꿀 수 없는 자신에게 실망스러웠고, 자신의 길에 안주한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그러나 길은 이미 났다. 종착은 그렇게 다가와버린 것이다.
"…졸업 축하해요. 그냥 이 말 해주고 싶었어요."
유온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월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면담자: 구혜주 연구원
면담 대상: 이월 임시 연구원
[기록 시작]
구혜주 연구원: 오랜만이네. 이렇게 같이 면담하는 것도.
이월 임시 연구원: 그러게요… 이제 저도 성인이니까요.
구혜주 연구원: 그래, 졸업 축하해, 월아.
이월 임시 연구원: 감사해요. (웃어보인다.)
구혜주 연구원: 학교생활 열심히 했던데? 생기부 빵빵하더라.
이월 임시 연구원: 아, 그거 읽으셨어요? 부끄러운데…
구혜주 연구원: 내 담당 개체 자료인데, 당연히 읽어봐야지.
이월 임시 연구원: 그런가…
구혜주 연구원: 아무튼, 이제 너도 재단 사람이네?
이월 임시 연구원: 아직은 임시지만요. 1년 정도 교육받고… 어떻게든 되겠죠.
구혜주 연구원: 어디로 가려나…
이월 임시 연구원: 145K나… 그래도 202K로 가면 좋을 거 같아요.
구혜주 연구원: 왜?
이월 임시 연구원: 음… 그냥, 어릴 때부터 있던 곳이니까요.
구혜주 연구원: 의외네.
이월 임시 연구원: 네?
구혜주 연구원: 난 너가 202K 싫어할 줄 알았거든. 어렸을 때 그것 때문에… 아무래도 좋은 기억은 아니잖아.
이월 임시 연구원: 이젠 아니잖아요. 싫은 것도… 아픈 것도… 아, 그래도 아직 몸은 약해요. 헤헤…
구혜주 연구원: 푸흐, 그래. 잘 됐네. 다 괜찮아져서.
(구혜주 연구원이 이월 임시 연구원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구혜주 연구원: 월아.
이월 임시 연구원: 네?
구혜주 연구원: 만족해?
이월 임시 연구원: …만족하냐뇨?
구혜주 연구원: 재단에 들어왔다는 건, 네 삶의 종착이 결국 여기로 귀결될 거란 뜻이야. 이젠 앞으로 좋던 싫던, 넌 여기에 묶여 살아야 해. 아직은 아니겠지만, 앞으로는 껄끄러운 일도 많이 생길 거고, 생각보다 훨씬 많이 힘들 거야.
이월 임시 연구원: …
구혜주 연구원: 그래도 정말 괜찮겠어?
이월 임시 연구원: 저는,
이월 임시 연구원: 저는 만족해요. 전부 다. 청록도, 기억 아래에 희미하게 있는 격리실도, 앞으로 배정될 기지도. 전부 전 좋아요.
(구혜주 연구원이 잠시 이월 임시 연구원을 바라본다. 착잡한 듯한 눈이다.)
구혜주 연구원: 그래. 네가 좋다면야.
이월 임시 연구원: 아, 그런데.
구혜주 연구원: 응?
이월 임시 연구원: 전부… 재단으로 갈 수는 없는 거겠죠? 다시 격리실로 가지 않고요.
구혜주 연구원: …역시 그게 걸렸구나.
이월 임시 연구원: ……네.
구혜주 연구원: 그건, 그건 우리도 바꿀 수 없는 거야. 재단의 한계고, 그런 근간까지 뒤집을 수 없는 우리 한계야. 그래도ー
구혜주 연구원: 그래도 언젠가는 바뀌겠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월 임시 연구원: 천천히…
이월 임시 연구원: 언젠가는 우리가 바꿀 수 있겠죠?
구혜주 연구원: 어쩌면. 아니, 할 수 있을거야.
[기록 종료]
발신자: 이월 인턴 연구원
수신자: 구혜주 연구원
저 145K로 가요!
발신자: 구혜주 연구원
수신자: 이월 인턴 연구원
축하해~ 어느 부서로 가니?
발신자: 이월 인턴 연구원
수신자: 구혜주 연구원
법의학과요. 아마… 변칙 때문에 거기로 배정받은 거겠죠?
그래도 만족하기로 했어요. 선생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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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K기지.
사무실 안은 10월이라는 시기에 맞지 않게 따듯했다. 그것이 단순히 난방을 오래 켜두었기 때문인지, 혹은 그저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적어도 둘 다였기를 모두가 바랬다. 혜주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랜 염원을 이룬 것에 대해 자축하는 중이었고, 윤수 또한 그런 혜주를 바라보며 독종이라는 듯 웃어보였다.
"너도 참 미친놈이야."
"칭찬이죠?"
"그래."
혜주는 그간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월을 처음 담당하기로 했던 때부터, 그 오륙 년간의 오랜 고난과 기억을. 사실, 어째서 그렇게 애썼는지는 그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단순한 안타까움, 혹은 모성과 유사한 어느 감정의 작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혜주는 달렸고, 결국 닿았다. 딸을 키운다는 것과 비슷한 감정일까.
"145K로 간대요. 법의학과로…"
"법의학과?"
"네. 아마 변칙 그거 때문일 거 같네요."
"그놈들도 한결같아."
윤수는 그런 혜주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월의 편입을 거부하고 반려 사유서를 작성한 것은 다름 아닌 그다. 수많은 어린 변칙 개체들의 편입 요청을 거절했다. 동시에 수없이 많은 요청을 승인했다. 아이가 어느 환경에서 지낼지는 순순히 그의 손ー물론 같은 일을 하는 직원이 네 명쯤 더 있었다만ー에 달려있는 것이다. 월 또한 그런 스쳐가는 아이 중 하나였다. 단지 혜주의 노력이 월을 돋보이게 했을 뿐. 아니, 인상 깊다 하는 게 맞으려나.
"뿌듯하시겠습니다."
"그렇죠. 내가 어떻게 보낸 건데… 누구 때문에 거절도 많이 당하고요?"
"뒤끝 있어."
"어쩔 수 없었단 건 알아요. 그래도… 하하, 지금 생각하면 그때 어떻게 밀어붙일 수 있었는지 몰라."
월. 혜주는 그 작은 아이를 생각했다. 이젠 아이가 아니게 되어버린 월은 어느새 재단의 일부가 되어버려 새로이 삶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지 않는가. 서로 얼마나 힘들어했나. 아마 당사자에겐 더했을 그런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짚는다.
"…혼자만 재단으로 간 거. 마음에 많이 걸렸나 봐요."
"…"
윤수는 답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그가 잘 알았다.
"친구들은 전부 재격리 당했겠죠. 그쵸…"
"어린애들한테… 어쩔 수 없단 건 알지만."
"그런 말로 회피하는 것도, 언젠가는 끝나겠죠?"
모두가 새로 시작할 수는 없다. 때로는 다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야만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이런 칙칙한 격리실은 아니잖아. 졸업생들끼리 교류도 하고…"
"그래도 마음 어딘가 불편한 건 사실이니까요."
"…그런 생각은 그만합시다. 우리 축하하려 모였잖아. 응? 그런 머리 아픈 것들은 나중에 해도 충분해."
그게 윤수가 내린 최적의 답변이다. 불편하고 머리 아픈 일들은 잠시 미뤄두는 것. 어쩔 수 없다는 말로 회피하기보단, 차라리 꺼내지 않는 것이 나았다. 차차 바뀔 거란 막연한 희망을 갖는 게 맞았다.
"역시 그러려나요…"
혜주는 허탈히 웃는다. 애환의 웃음이다. 손을 떠나버린 수많은 것들의 웃음이다. 결국 닿아버린 종착의 웃음이다.
적어도 월은 잘 적응할 것이다. 청록학교에서 그랬듯, 자신이 맡은 바를 잘 헤어나갈 것이다. 그거면 됐다. 적어도 혜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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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K기지.
법의학과 사무실 안은 빈말로라도 삭막하지 않다 할 수 없었다. 소독약 향기 풍기는 방 안은 온통 회색빛으로 브루탈리즘의 그것이니 콘크리트 정글이니를 연상시켰다. 사람 또한 적었는데, 이는 다수가 현재 출장을 갔기 때문이요, 애초에 사람 자체가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부서실 안에 존재하는 남녀 한 쌍은 각각 저마다의 이유로 바빴는데, 하나는 인턴 환영회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예산 문제로 한참 씨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턴 환영회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백연서다. 쓸지 안 쓸지도 모르는 플랜카드를 만들며 신입 위로 뿌려줄 종잇조각을 준비하는 그는 아무래도 오랜만에 신참이 들어온다는 생각에 퍽 들뜬 듯했다.
반면 예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장은혁으로, 과장 다음으로 고참이기도 한 그는 한 번 더 예산이 축소된다는 소식에 한창 열을 쏟던 중이었다.
"선배, 신입 온다는데 선배는 기대도 안돼요?"
연서가 물었다. 그 입장에선 오랜만에 오는 신입을 보고 흥분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이었고, 은혁 또한 그런 비정상의 범주에 속했다. 사실, 이런 분류로써는 법의학과의 모두가 비정상일 터였다.
"기대고 나발이고 부서가 시발 삭제되게 생겼다."
은혁이 신경질적으로 답하며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렸다. 아마 과장이 소식을 이미 들었는지 아닐지는 몰라도, 그 또한 까무러칠 것이란 건 당연지사였고, 과장이 출장나간 지금 그것을 바로잡아야 하는 것은 은혁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신입인데요. 안 그래요? 오자마자 너무 삭막하면 조금 그렇잖아요."
"법의학과 오는 놈들은 다 그런 거 예상하고 와."
"청록학교 출신이랬는데…"
"청록 뭐?"
은혁이 되물었다. 청록학교에 대해선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청록학교 몰라요? 변칙 학생들 다니는 데. 202K에 있는 거."
"몰라. 나 여기 업무 말곤 아는 거 없어."
"좀 주변에 관심 좀 가져요."
"우리 부서 챙기기도 바빠 뒈지겄다."
둘이 한참을 티격대는 중에, 부서실의 문 뒤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망설이는 듯한 세기로 두어 번 똑똑거린 그것은 나름의 예의라는지 그 뒤로 미동도 없이 멈춰 있었다.
"들어오세요!"
먼저 일어선 것은 연서였다. 혹시 신입일까 하는 마음에 플랜카드를 들곤 문 앞으로 나선다. 문은 힘없이 스르륵 열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작은 체구의 여성이다. 병약해 보이는 외모와 어딘가 비틀거리는 듯한 몸짓은 적어도 평범한 사람은 아닐 것이란 걸 한층 더 부각했고, 손에 들린 책이니 안내서니 하는 잡다한 물건들은 언제라도 손을 떠나 흘러버릴 것만 같았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인턴으로 들어온 이월이라고 합니다."
월이 나지막이 말했다. 떨리는 듯한 마음을 꼭 부여잡곤 그간의 다짐을 새로이 새긴다. 청록에서부터 생각해왔던 그 다짐들을, 염원들을. 그리고 구혜주, 어머니와 같이 대했던 그를 생각한다. 마침내 정착할 수 있도록 해준 그 얼굴을 떠올린다.
"안녕하세요! 이월 씨! 백연서에요. 편하게 연서 씨나… 선배라 불러도 돼요!"
"아, 넵. 선배님."
"으흐… 네! 지금 저희 부서 사람들이 거의 출장을 가서 사람이 거의 없긴 한데… 저기 저분은 은혁 씨에요! 둘이 인사 나눠요!"
월은 노트북을 보며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있는 은혁을 바라봤다. 괴팍하다는 인상에 조금 꺼려졌으나, 그럼에도 먹었던 마음을 다잡으며 말을 건넨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인턴으로 들어온 이월이라 해요."
"어, 어서와. 장은혁이다. 지금 좀 바빠서…"
은혁은 짧게 대답하곤 다시 예산 문제와 씨름하기 시작했다. 월은 그저 무뚝뚝한 사람인가 보다 하곤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다시 대화는 연서에게로 돌아온다. 연서는 월에게 앉으란 손짓을 하곤 무언가 내어줄 것이 있나 부서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월 씨, 청록학교 출신이라 셨죠?"
"아, 넵."
"거긴 어때요? 청록 출신 사람을 처음 만나보는 거라…"
"아… 음…"
청록학교, 말하자면 월에겐 각별한 장소였다. 그곳의 추억은 하나씩 세어볼 수도 없을뿐더러 그곳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엔 모두 그때부터, 자신의 모든 것이 그때로부터 나온다. 근간, 이었다. 혹은 전환점. 아니면 하나의 종점. 출발점.
그러나 막상 소개하자니 애매한 것이다. 청록학교는 격리실에 있던 때보다 훨씬 나은 삶을 그에게 선사했고, 새 꿈을 주었고, 새 삶을 주었으나, 그런 것들을 말로 표현하기엔 참 힘든 것이 아닌가. 혹은, 벌써 그 옛날을 잊었나. 아니면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몸에 배어버렸나.
"좋은… 곳이에요. 거기서 저도 훨씬 나아졌고요."
월은 특유의 몽롱한 어투로ー물론 이건 변칙의 영향임이 당연했다. 긴 세월 동안 익숙해졌으나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ー말했다. 입안엔 화한 휘발성 액체가 느껴진다. 공기에 닿을 때마다 타액이 하나둘 변질되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입을 다무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 침을 삼켜 버릇 하지 않는 것 또한. 약 때가 되면 손이 떨리는 것도. 어느새 그 삶에 깊숙이 녹아버려 떼어낼 수도 없이 되어버렸나.
"한번 시간이 나면 들러 보세요. 분명 좋아하실 거예요."
월이 말했다. 자신의 긴 머리를 베베 꼬으며 연서를 향해 천천히 말을 건넸다. 연서는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 공세를 이었고, 월은 그에 맞춰 찬찬히 답을 한다. 입안에 침이 고일 때마다, 울대를 꽉 조이며 삼켜야 함을 몸소 느낀다. 알코올의 소스라치듯 뜨거운 느낌에 내장의 위치가 하나둘 드러난다. 머리가 붕 뜨는 듯한 느낌에, 약 때가 온 것인가, 하는 마음에. 다만 상대와 대화하는 것이 즐겁다는 감상 하나만으로 버틴다. 그렇게 살아왔지 않았나.
"여하튼… 환영해요. 법의학과에 온 거."
연서가 크게 웃어 보인다. 월 또한, 마주 웃는다. 이것이 그의 종착이다.
현재 최신본을 열람 중입니다.
이하 내용은 모두 최신 버전(#14-2025/10/23)이며 수정에는 상위 권한이 필요합니다.
일련번호: SCP-1756-KO
등급: 유클리드
특수 격리 절차:
현재 SCP-1756-KO가 제145K기지 법의학과 1등급 연구원이므로, 현행 격리 절차를 적용할 필요는 없다.
숙소는 직원 기숙사를 이용하며, 하루 3회 식사와 정기 건강 검진 및 상담을 준수해야 한다. 복용 약물은 알코텔정, 헤파툼연질캡슐이다.
설명:
SCP-1756-KO는 변칙 희귀 질환을 앓고 있는 22세 한국인 여성이다. SCP-1756-KO의 침샘에 존재하는 특수한 효소는 타액에 기적학적 작용을 일으키는데, 작용이 일어난 타액이 공기와 접촉할 시 농도 75~85%가량의 에탄올로 서서히 변환된다. 변환은 길게는 3시간까지도 걸리며, 대체로 2시간 이내에 완료된다.
합성된 에탄올은 인체에 무해하나, SCP-1756-KO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SCP-1756-KO의 혈중알코올농도는 상시 0.03%를 유지하고 있으며, 타액이 에탄올로 변환된다는 변칙에 따라 식사나 음수에 지장이 따르기도 한다. 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여겨질 수 있으나, 일종의 하위 변칙성으로 인해 건강 상태는 현재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장기간의 변칙 적응 및 청록학교에서의 요양 커리큘럼으로 인해 개체 스스로 변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적응 및 대안이 마련된 상태이다.
현재 제145K기지 법의학과 1등급 연구원으로 복무 중이다. 특유의 변칙성을 이용해 물자 제조 및 관리와 보건 지식을 활용한 검시 및 연구에 힘쓰고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인사 파일 : 이월을 참조할 것.
발신자: 김준영 연구원
수신자: 이월 인턴 연구원
이월 씨 강연 잡혔습니다. 청록학교 졸업생 겸 재단 채용자 자격으로 청록에서 강연 할겁니다. 3주 뒤고요, 거창한거 아니니 적당히 이월 씨 청록에서 경험이랑 어떻게 재단 왔는지, 마음가짐같은거 적힌 연설문 하나 준비하면 됩니다. 물론 아직 확정 아니니까 거절하셔도 되고요.
발신자: 이월 인턴 연구원
수신자: 김준영 연구원
해보겠습니다.
제5회 진로 적성의 날
졸업자 강연 : 이월 법의학과 인턴 연구원
2025/11/30
[녹화 시작]
(이월 연구원이 강당으로 들어온다. 걸음이 불안정하나 넘어지진 않는다. 긴장되었다는 듯 숨을 내쉬고, 강당을 둘러본다.)
이월 연구원: …후…
이월 연구원: 안녕하세요. 오늘 제5회 진로 적성의 날 졸업자 강연을 맡은 이월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청중 박수.)
이월 연구원: 여러분 진로 적성의 날 잘 즐기시고 있나요? 저도… 청록학교 다닐 때 이런 행사했었던 게 기억에 남네요. 이런 것들 전부 좋은 추억이 되는 거 같아요. 그쵸?
이월 연구원: …저는 지금 제145K기지에서 인턴직을 맡고 있어요. 법의학과인데, 법의학 아는 친구들 있으려나요? 시체가 왜 죽었는지… 그런 거 파악하는 학문인데, 조금 어렵나요? 하하…
(이월 연구원의 목소리가 떨린다. 긴장한 듯하다.)
이월 연구원: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저도 청록학교 재학생이었어요. 지금은 졸업해서 재단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요. 여러분 중에도 저처럼 재단으로 올 친구들이 있겠죠? 음… 오늘 제가 할 얘기는 전부 그런 것들이에요. 어쩌면 제 인생 얘기일지도 모르겠네요.
이월 연구원: 아니, 제 인생 얘기가 맞을 거예요.
(이월 연구원이 심호흡한다.)
이월 연구원: 저는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변칙이 있어요. 변칙 질환을 앓고 있죠. 침샘에서 침이랑 같이 에탄올이 나옵니다. 그것 때문에 몸도 약하고, 처음엔 많이 힘들었어요.
이월 연구원: 아시다시피… 다들 격리실 출신이잖아요. 아닌 친구들도 있겠지만. 격리실에 가만히 누워있으면, 입안에 뭐가 고여요. 그럼 화해지는데, 쓰고… 삼키면 속 화끈거리고. 괴롭죠. 네. 힘들었어요. 그때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기침한다.)
이월 연구원: 그래도… 그래도 저는 힘써주셨던 분이 계셨어요. 원래 전 청록에 들어올 수 없었거든요. 그분 덕분에 다행히 여기 들어올 수 있었네요. 항상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요. 여러분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지지해 준다는 건 참 좋은 일이에요. 지지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이월 연구원: 그 덕분에 전 청록학교에서 지낼 수 있었어요. 그때 청록은 지금보다얀 살짝 더 빡빡했는데, 음, 그래도 막 숨 막히는 그런 건 아니니까요. 그쵸? 저는… 학생회랑 보건부 활동을 주로 했어요. 여러분도 동아리 다 있죠? 저는 그거 두 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열심히 했네요. 사실, 여기서 할 거 동아리 활동 말곤 그닥 없으니까요. 지금도 그런가요? 아, 그렇구나…
(이월 연구원이 잠깐 심호흡한다. 기침 소리.)
이월 연구원: 여기 다니면서 전 목표를 찾았어요. 아마 보건부 활동이 영향을 많이 끼친 거 같은데, 그때부터 의료부를 꿈꿨나 봐요. 그냥… 사람을 돕는다는 게 좋았던 걸까요. 지금 업무랑은 딴판이죠? 하하…
이월 연구원: 목표를 찾는 건 중요해요.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살지, 어떤 길을 갈지 모두 그 목표가 정하는 거니까요. 그치만 목표는 하루아침에 찾아지는 게 아니기도 해요. 긴 시간 동안, 오래 고민하고서야 나오는 게 목표죠. 너무 성급한 건 안 좋으니까… 아무래도 그러니까요…
(중략)
이월 연구원: …그래서 이렇게 됐네요. 여기에서 지냈던 순간들이 만족스러웠냐고 누가 물으면, 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어요. 적어도 여긴 그런 곳이에요. 저한테는.
이월 연구원: 여러분은…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에게 청록은 뭐죠? 어쩌면 집일 수도… 아니면 그저 머물러 가는 곳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모두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그런 곳일 거라 믿어요.
(기침한다.)
이월 연구원: …재미없는 강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준비한 건 여기까지네요.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이월 연구원: 없나요. 저 때도 그랬어요. 하하… 아무튼, 오늘 제 강연이 마음에 와닿을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 여러분이 이곳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월 연구원: 인생은… 인생은 그런 거잖아요. 알 수 없는. 그래서 더더욱 믿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이 필요한.
이월 연구원: 네, 이만 마치도록 할게요. 들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녹화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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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학교.
"강연 어땠어요?"
연서가 월에게 묻는다. 둘은 강연이 끝난 강당 뒤편의 산책로를 걷는 중이었다. 월의 비틀거리는 걸음도, 연서의 쾌활한 웃음도 어느새 그러한 풍경에 녹아들고 있었다.
"…좀 떨렸어요. 어쩌면 망친 것 같기도 하네요."
"에이, 엄청 잘했는데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연서는 그렇게 말하는 월을 툭툭 치며 잘했다는 칭찬을 내뱉는다. 월은 그런 연서에게 익숙해졌다는 듯이 웃을 뿐이었다. 하늘이 맑았다. 오랜만의 고향에 돌아온 것마냥, 월은 주변의 모든 것을 눈에 담는다. 오랜만에 머릿속도 맑지 않는가.
입안엔 어느새 에탄올이 고인다. 울대를 부여잡아 넘어가지 않도록 한다. 그러나 결국엔 삼켜야 함을 안다. 그렇기에 더욱 참는다.
"…제가 잘 선택한 게 맞을까요."
월이 나지막이 말했다.
"어떤… 선택이요?"
"그냥, 전부 다요."
연서는 말없이 월을 바라봤다. 월의 얼굴은 어딘가 울적해 보이는, 혹은 병약하게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어, 안쓰러움과 자그마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지금의 월 또한 그렇다. 그의 눈가에 한층 침울한 막이 씐다.
"저는 이월 씨가 뭘 선택했던 간에 그게 옳은 거였다고 믿어요."
연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월 씨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서 고른 거잖아요. 스스로도 만족하고."
"…역시 그렇겠죠?"
월이 희미하게 웃었다. 하늘이 맑지 않은가. 적어도 앞으로의 길이 그러길 빌었다. 지금의 종착이 더욱 긴 길을 비추기를 바랬다. 그리고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가. 월은, 혹은 혜주는, 어쩌면 윤수와 연서와 그가 지금까지 거쳐온 수많은 사람들과 선택들이 그렇게 믿을 것이다.
"그럴 거예요. 분명히."
둘은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종착은 없다. 앞으로의 더 많은 길들이 있을 뿐. 하늘이 맑다. 머리도, 맑다. 모두 그렇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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