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득
우드득은 나의 모든 것이다. 우드득은 나의 원인이자 결과이며, 부모이자 연인이자 자식이다. 삶과 죽음이며, 낮과 밤이다.
나는 우드득이다.
나는 우드득을 원한다.
하지만 지난 25년간, 나는 어떠한 우드득도 맛볼 수 없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던 오렌지색 점프슈트의 인간들은 점차 뜸해지더니, 어느 순간 우드득을 할 가치도 없는 납작한 기계 원반들로 대체되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나는 우드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에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티모시 영 보안 담당관은 재단에서 일한 지 어느새 7년 차였다. 그리고 그 중 마지막 5년 동안, 티모시는 단 한 개의 변칙 개체, SCP-173를 관리하는 직무만을 맡았다.
티모시가 하는 일은 지난 5년 동안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173이 격리를 파기하지 않도록 하고, 재화를 더 적게 쓰면서 격리를 가능케 하고, 가끔씩 연구원들이 행차하면 안전한 실험 환경을 마련하는 일. 그게 다였다.
어째서 티모시가 하는 일이 전혀 바뀌지 않았는지는 불명이었다. 인사 담당관이 티모시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그저 잊힌 것이 아닐까 티모시는 짐작할 뿐이었다. 혹은, 그저 상부에서 한 인원이 한 업무를 계속 맡게 하여 숙달되게 하는 편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티모시는 주변인과의 왕래가 거의 없었기에, 자신만 이런 건지, 혹은 남들도 똑같은지 알 수 없었다. 어찌 됐든, 티모시는 오늘 또한 격리실-173으로 일을 하러 떠났다.
하루치 보고서의 반을 써내려간 후, 티모시는 아침에 싸온 도시락을 먹으며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티모시의 사무실 옆에는 SCP-173의 격리실과 연결된 창문이 있어서, 원할 때마다 조각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 티모시는 지난 5년 동안, 점심시간마다 꼬박꼬박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많이 바라보아서, 이젠 눈을 감고도 스케치를 그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조각상의 SCP 보고서를 눈을 감고 베끼는 것은 졸면서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실제로도 성공했었다.
5년 동안 함께 지내며, 티모시와 SCP-173은 기묘한 인연을 형성했다 - 최소한 티모시는 그리 생각했다. 조각상 또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티모시는 저 조각상이 지금까지 적어도 세 자리 수의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티모시가 관리한 5년 동안, 그리고 티모시가 오기 전 20년간에도 조각상은 제자리에 서서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 배설물의 청소는 어느새 완전히 자동화가 되었고, 혹시나 정전 때문에 격리 상태가 풀리더라도 수십 개의 안전장치가 조각상을 가둬놓을 것이었다. 재단의 관료주의적 체계 때문에 등급은 여전히 유클리드로 남아있지만, 대상은 안전으로 취급해도 좋을 정도였다. 어쩌면 등급이 유클리드라서 티모시가 상당히 여유로운 일정을 누리고 있었는데도 다른 변칙 개체를 배정받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티모시는 지난 5년 동안 SCP-173과 많은 정을 쌓아왔었다. 어쩌면 이 또한, 티모시 혼자서 그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73은 어느새 티모시의 가장 오랜 동반자가 되었고, 티모시가 가장 많이 얼굴을 마주 보는 상대였다. 조각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티모시를 바라볼 뿐이었지만, 그것은 티모시의 고민 상담원이자, 말동무이자, 겸상하는 상대이자, 동지였다. 티모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173은 티모시의 정신세계 중 가장 큰 구성 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173은 티모시에게 한 가지 욕망을 불어넣었다.
"저 조각상을 먹고 싶다."
불명의 밈 인자의 영향이었는지, 조각상에 있던 미지의 변칙성이었는지, 어떤 예술가의 농간이었는지, 업무를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조각상의 생김새가 주는 비변칙적인 최면 효과였는지는 몰라도, 티모시의 뇌리에 한 가지 생각이 깊게 박힌 것은 분명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저 땅콩같이 생긴 조각상을 먹고 싶다."
지난 2년 동안 이 충동은 티모시를 줄곧 괴롭혀 왔다. 처음엔 약한 허기가 생기게 할 뿐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심화하며 극단적인 수준으로 치달았다. 이제 티모시는 저 조각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군침이 줄줄 흐르고, 배에선 꼬르륵대는 소리가 시도때도없이 울려대고, 머릿속에선 환청이 들려오는 수준이 되었다. 식욕을 억제하려 사무실을 파란 색조로 칠하고, 가능한 한 자주 양치질을 하고, 무설탕 껌까지 씹어댔지만, 효험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또한, 저 조각상은 티모시를 미쳐대게 하고 있었다.
티모시는 점심을 다 먹은 후, 후식으로 땅콩을 먹으려 몸을 돌렸다. 며칠 전, 친한 친구한테 티모시가 고민을 털어놓았다가 진짜 땅콩을 먹어 조각상에서 관심을 돌리는 게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은 후, 티모시는 땅콩을 자주 먹고 있었다. 티모시가 느끼기에 별 효과는 없었다. '착하긴 한데 실용적인 조언은 잘 못 준다는 말이야 그 친구.' 티모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땅콩 맛이 꽤 좋았기에 다시 한 번 손을 뻗었다.
티모시는 땅콩을 양손의 엄지와 집게로 쥐고는, 힘을 쥐어 반으로 부수며 겉껍질을 열었다. 티모시는 그러며 173의 몸을 반으로 쪼개는 상상을 했다. 크릴론 스프레이 페인트와 팔이 있는 상반신은 한쪽으로, 다리가 있는 쪽은 반대편으로.
티모시는 이어서 남은 겉껍질을 마저 쪼갰고, 그러며 173의 뼈대를 산산조각내는 상상을 했다. 황갈색의 오돌토돌한 홈이 난 껍질이 하나씩 떨어졌고, 그러며 속껍질을 드러냈다.
티모시가 손가락을 위아래로 비벼대자 속껍질 또한 바스락거리며 떨어져 나갔고, 결국 속살, 아니 알맹이가 완전히 노출되었다. 티모시는 자리에서 일어서 173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쪽으로 걸어가, 조각상을 직시하며 땅콩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우드득"
방이 워낙 조용해서였는지, 땅콩이 아주 딱딱했던 건지, 이빨로 땅콩 알맹이를 으스러뜨리는 소리가 크게 퍼져나갔다. 티모시는 다시금 땅콩 통에 손을 뻗어 아까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우드득, 우드득 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티모시의 침샘에서는 아밀라아제가 더 많이 분비되었고, 조각상을 바라보는 티모시의 시선은 더욱 또렷해졌으며, 티모시의 몸은 조각상에 더 가까워졌다. 마침내 티모시가 자기 얼굴을 유리창에 거의 문대다시피 하며 침을 묻히고 있을 때, 뒤에서 갑작스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네 갑니다 가요, 으악!"
티모시는 예상치 못한 방문 때문에 당황해, 소매로 침 자국을 지우려 하며 허둥대며 뛰어가다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티모시, 거기 있나? 뭔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는데 괜찮나?"
티모시는 아픈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답했다. "네 괜찮습니다. 살짝 넘어지긴 했는데 그리 아프진 않아요. 근데 왜 방문하셨죠…?"
"곤란하면 굳이 안 나와도 되네. 찾아온 이유는 어제 보낸 메일을 자네가 아직 읽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야. 내일 몇몇 연구원들이 찾아올 예정인데, 준비가 좀 필요하다네. 실험 내용은 이메일에 자세히 적혀있으니, 내일 점심까지 준비해두게."
"네 알겠습니다. 알려줘서 고마워요."
"천만에"
때마침 점심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려왔다. 티모시는 의자에 앉아 컴퓨터의 전원을 켠 후, 메일의 내용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작업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지만, 대신 피곤한 반복작업이 많이 필요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오늘은 야근이 확정이었다. 그리고 티모시는 자신의 정신 상태를 봤을 때, 자신이 24시간 동안 맨정신으로 작업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후우"
티모시가 한숨을 쉬며 의자에 등을 기대자마자 조각상의 생각이 머릿속에 물밀 듯이 들어왔다. 티모시는 허공에 손을 마구 내젓고는, 주변의 모든 땅콩을 연관시키는 물건을 시야에서 가리려 다시 일어섰다. 그는 창문에 커튼을 쳤고, 땅콩 부스러기를 전부 쓰레기통에 밀어 넣고는 눈앞에 보이던 173의 사진 자료 모두를 사물함 안에 처넣었다. 하지만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티모시는 딜레마를 맞이했다. 작업하려면 173의 데이터가 필요하다. 하지만 173의 데이터를 보고 있으면 식욕이 차올라 제대로 된 작업이 불가능하다. 어느 쪽이 됐든, 티모시는 일을 끝마칠 수 없다. 173에 배정된 인원은 티모시 한 명뿐이라, 동료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티모시는 의자 위에 웅크려 앉고는, 머리를 쥐어 잡고 생각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무언가가 티모시의 정상적인 사고를 방해했다.
"내가 오늘 밤 저 조각상을 먹어치우면, 내일 실험을 할 이유가 없으니 만사가 해결되는 것 아닐까?"
"어차피 저 조각상은 하는 짓이 사람 목 꺾는 게 다인데, 없어진다 해도 그리워할 사람 하나 있을까?"
"해도 되는 거 아닐까?"
티모시는 당일 자정, 173을 먹어치우기로 결심했다.
오후 11시 35분, 지난 25년 간 연구 인원 외 그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던 격리실에, 한 인간형 형체가 입장했다. SCP-173의 관리자 겸 보안 책임자 겸 안전장치 수리관이 모두 자신이었기에, 티모시는 매우 손쉽게 침입할 수 있었다.
보안 시스템을 그대로 놓아두었더라면 173을 누군가가 먹기는 커녕 접근하기 전에 셔터가 내려가고 특수 접착제가 발포되어 173과 침입자를 그대로 굳혔을 것이 분명했기에, 티모시는 보안 장치들을 해제한 후 누군가가 방해할 수 없도록 격리실 문을 안에서 잠갔다. 그 대신,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티모시는 미리 SCP-131 개체 하나를 자신의 사무실로 유인한 뒤, SCP-173의 격리실을 향하도록 청테이프로 고정해 놓았다.
티모시는 격리실에 진입해 173한테 다가가서는, 공구함을 내려놓고 그대로 대상과 마주 보았다. 여전히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비록 조각상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지만, 티모시에게는 마치 조각상이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이리 와"
"더욱 가까이"
"내게 다가와서"
"나를 먹어줘"
티모시는 미소를 지었다. "물론 먹어주고말고."
티모시는 조각상의 겉껍질을 부수기 위한 도구를 꺼내려 허리를 굽혔다. 슬레지해머를 쓰는 게 확실하겠지만, 안타깝게도 티모시는 근력이 약해 잘 휘두르지 못할 것 같았다. 대신 그는 개량된 전동 드릴을 챙겨왔다. 철근만 피해서 잘 쓰면 잘 구멍을 낼 수 있으리라. 티모시는 173 앞에 살짝 엉거주춤하게 앉아, 드릴을 조각상의 배에 대고는, 전원을 켰다.
이크, 소리가 너무 컸다. 아무리 개량되었다고는 해도 역시 드릴은 드릴인 모양이었다. 티모시는 잠시 방으로 돌아가 귀마개 한 쌍을 챙겨오고는 작업을 재개했다.
대략 7cm 정도 구멍을 팠을 때, 갑자기 반동이 약해지더니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티모시는 드릴이 속껍질에 닿았음을 직감하고는, 드릴을 구멍에서 빼냈다. 그는 드릴을 살짝 오른쪽 아래로 옮긴 후, 다시 한 번 똑같이 구멍을 뚫었다. 그러곤 또다시 반복했다. 그리고 또다시. 또다시. 구멍들을 전부 이었을 때 정이십각형 모양이 되도록 구멍을 뚫고 있었다.
"깡!"
18번째 구멍을 뚫던 도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드릴 날이 나가버렸다. 구멍 안에 손전등을 비춰보니, 중간에 철근에 부딪힌 모양이었다. 티모시는 할 수 없이 예비 드릴을 꺼내고는, 살짝 궤도를 틀어서 나머지 구멍들을 뚫었다. 작업을 시작한지 30분 쯤 경과했을 때, 살짝 오목한 22각형이 완성되었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작은 구멍이 잔뜩 생기긴 했지만, 그 구멍들을 연결해야 큰 틈이 생기고 내용물을 먹을 수 있으리라. 티모시는 대못을 하나 꺼내 구멍에 박고는, 무작정 옆으로 밀어서 구멍을 연결할려고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공작 시간엔 이러면 잘 됐었는데.' 티모시는 이렇게 생각하곤, 구멍이나 더 촘촘히 뚫도록 했다. 티모시는 맨 처음 뚫었던 구멍으로 돌아가, 아주 조금만 드릴을 움직여 바로 옆에 맞닿아 있는 구멍을 하나 더 뚫었다. 그 후, 구멍을 또 하나 뚫었더니 두 번째로 뚫었던 구멍과도 연결됐다. 구멍 몇십 개를 더 뚫고 나니, 드디어 지름 30cm가량의 납작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조각상의 몸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조각이 원래 있던 자리에는, 짙은 빛깔의 속껍질이 대신 보였다. 티모시는 커터칼을 꺼내 얇은 막을 사정없이 찢고는, 조각상의 속살을 드디어 마주했다.
"꼴깍"
티모시는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키고는, 눈을 비비고, 잠시 조각상의 자태를 감상하기로 했다. 스프레이 페인트가 마구잡이로 뿌려졌고, 아무도 씻겨줄 생각을 하지 않아 추잡한 몰골을 한 바깥과는 달리, 그 내부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최소한 티모시의 눈에 보이기에는 그랬다. 콩깍지, 아니 땅콩깍지가 쓰인 티모시의 눈에 조각상의 속살이 비친 모습은 마치 미인의 뽀얀 살결이었으며, 갓 쌓여 소복한 함박눈이었고,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연한 벽지였다. 티모시는 그 광경에 넋을 잃고는, 조각상을 먹는다는 본연의 목적마저 잠시 망각한 채, 조각상의 속살을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 사정을 모르는 외부자가 봤을 때 광인이라 판단하기 합당한 행동이었으나, 이 장소에는 티모시, 조각상, 먼발치의 131밖에 없었기에 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런 변칙을 설계한 예술가가 있다면 천재인 것이 분명해.' 티모시는 생각했다.
몇 분간 정적이 계속되다가, 티모시는 드디어 만족했다. 이제는 식사 시간이었다. 조각상의 크기를 생각했을 때 맨손으로 먹는 것은 분명 무리일 테고, 때문에 티모시는 살을 파내기 위한 식기를 가져왔다. 허나, 티모시는 조급히 숟가락을 꺼내 들어 게걸스럽게 조각상을 먹어치우는 대신, 더 차분하게 정해진 수순을 밟기로 했다. 그는 우선 조각상 코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는 조각상의 양 옆구리를 잡고, 얼굴을 조각상의 훤히 드러난 내부에 갔다 대었다. 그 후, 티모시는 속살을 크게 핥아 조각상의 맛을 느꼈다. 사무실의 강화 유리 너머에서만 원격에서 입맛을 다시며 상상만 하다가, 직접 혀로 조각상과 접촉하니 엄청난 쾌감이 티모시의 뇌 속에 밀려들어 왔다. 그 구성요소는 콘크리트, 철근, 미량의 극히 일반적인 땅콩, 접착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나, 이미 제정신이 아닌 티모시에게 그런 설득이 통할 리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티모시가 느끼는 감각은 평범한 땅콩의 몇십, 몇백 배의 감미로움이었으며, 지금까지 그가 맛봐온 모든 음식을 웃돌았고, 그 무슨 산해진미를 차려 놓아도 눈길 하나 주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새 도화지를 크레파스로 더럽히는 것처럼, 순수한 살갗을 자신의 침으로 더럽히고 있다는 점에서 오는 쾌감 또한 빠뜨릴 수 없었다.
그저 혀에 미량의 조각상 입자가 닿았을 뿐이었지만, 애피타이저는 이미 끝이었다. 티모시는 더는 기다릴 수가 없었다. 티모시는 미리 준비해온 숟가락을 꺼내고는, 이게 마치 생사를 가르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조각상의 드러난 부분에 냅다 내리꽂았다. 놀랍게도 숟가락은 부러지지 않았고, 대신 손가락 반 마디 정도 깊이로 조각상 내부에 파고들었다. 티모시는 그대로 숟가락에 힘을 가해 땅콩 조각을 파내려 했으나, 그러기엔 조각상은 너무 단단했다. 티모시는 굴하지 않고 두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는, 있는 힘껏 아래로 짓눌렀다. 그러자,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 자그마한 - 그래도 평범한 땅콩 한 알맹이 크기는 되는 - 조각이 뜯겨 나왔다. 조각은 손톱깎이로 잘라낸 손톱처럼 맹렬한 기세로 바닥을 향해 돌진해, 티모시의 발 옆에 떨어졌다. 티모시는 이를 곧바로 눈치채지 못하고 잠시 헤매다가, 이내 땅콩 조각을 발견하고 입안에 던져 넣었다. 실로 아름다운 맛이었다. 티모시는 잠시 동안 자그마한 조각의 맛을 음미하다가, 그대로 삼키고는 다음 조각을 위해 조각상에 달려들었다. 그는 전보다도 더 사정없이 숟가락을 박아넣고는 숟가락을 위아래로 비틀며 틈을 만들다가, 괴력을 발휘해 전보다 몇 배는 더 큰 조각을 분리해냈다. 잠시 일을 내려놓고 숨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티모시는 조각상에서 막 뜯겨나온 덩어리를 곧바로 입안에 넣었다.
처음 입안에 털어 넣은 조각과는 달리, 이번 덩어리는 확연히 비현실적인 촉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평범한 땅콩과 크기가 다르지 않던 처음 조각에 비해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3배가 더 길었으며, 총합 27배의 부피는 죠브레이커사탕을 방불케 하는 정도였다. 마침 재질 또한 딱딱하기에 더욱 알맞은 비유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정도 크기의 땅콩을 보려면 운이 엄청나게 좋거나, 재단 GMO 학과에서 일해야 할 것이다.
티모시는 자신의 입안을 가득 메운 거대 땅콩 조각을 혀로 조금씩 굴러가며 구석구석 맛보았다. 자신의 혀가 지나가지 않은 곳을 수색하며, 츄파춥스를 입에 넣은 것처럼 쪽쪽 빨았다. 역시나 전처럼, 혀로 훑고 지나가는 것만으로 땅콩 조각은 티모시에게 극상의 쾌감을 선물하였다. 티모시는 가능하다면 최대한 오랫동안 만족감을 느끼려 조각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이 짓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그게 불가능하단 것은 알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상사와 연구팀이 격리실을 방문할 테고, 무엇보다 땅콩을 핥아 없앤다는 것은 일반적인 행동 범위 내에서 불가능했다. 때문에 티모시는 적당히 질려갈 즈음까지 핥는 행동을 계속하다가, 조각을 강하게 깨물었다.
당연하게도, 엄청난 치통이 작렬했다. 아까는 조각이 작았던 데다가 거의 그대로 삼켰기에 별 지장이 없었지만, 거봉 크기의 물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티모시의 두 가운데 위 앞니 중 하나는 비틀어졌고 하나는 아예 뽑혀 나갔다. 일반인이라면 피를 보자마자 어쩔 줄을 몰랐겠지만, 티모시는 달랐다. 그는 당장의 통증보다 조각상을 먹지 못하게 됐다는 사실에 더 분했다. 그는 입가를 타고 흐르는 피나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는 그의 영구치에는 일말의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굴러간 땅콩 조각을 주워서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지 골몰했다. 잠시 후, 그는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 렌치로 고정한 땅콩 조각을 마구 두들겼다. 한 번 두들겼지만 별 차이는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네 번째 시도에서는 자그마한 조각과 함께 약간의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왔다. 그는 서둘러 망치를 잡고 있지 않은 손으로 조각을 줍고, 바닥을 쓱 훑어 부스러기를 묻힌 후 손가락을 쪽 빨았다. 몇 번을 먹어도 - 그다지 많이 먹은 건 아니었지만 - 질리지 않는 맛이었다.
그는 작업을 재개해 망치로 덩어리를 빻고, 튀어나온 부스러기를 집은 후, 입에 털어 넣는 행위를 반복하였다. 조각과 부스러기가 떨어져 나갈수록 모체의 크기는 점점 더 작아졌고, 일반적인 땅콩 두 개 정도의 크기가 되자 티모시는 그것을 그대로 주워 입안에 놓았다. 잇몸에서 흘러나온 피와 섞여 땅콩은 오묘한 맛이 되었다. 티모시는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 생각하며 씹는 대신 그대로 삼켰다. 겨우 28cm3의 땅콩을 먹느라 에너지를 너무 소모한 티모시는 그대로 털썩 주저 앉고는,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
그의 웃음이 소망을 성취했다는 환희에서 비롯된 것인지, 뒤늦게 현실을 자각함에서 나온 실소인지는 몰라도, 티모시는 웃었다. 마음껏 웃었더니 기분이 홀가분해진 그는 팔과 다리를 쭉 뻗고는, 잠시 조각상을 바라보며 휴식했다. 문득, 자신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먹어치우던 조각상이, 그 조각상 전체가,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모는 평소에 미술에 큰 관심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미술관에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한테 끌려서 간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미술품을 감상한 것은 고1 때 미술 과제로써였다. 티모시는 자신도 모르게 그 조각상의 형상에 감탄하며, 천천히 그것을 향해 다가갔다.
망치를 마구 휘두르며 기진맥진해진 티모시는 바닥에 배를 댄 채로 다리로 자신을 밀어내며 조각상에 접근했다. 가는 길에 팔로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상자와 공구를 치웠고, 떨어져 있는 자신의 앞니도 지나쳤다.
마침내 조각상에 도착한 티모시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조각상을 바라보기 위해 상체를 들어 올렸다. 조각상의 양다리를 붙잡고는, 그대로 조각상을 버팀목으로 써서 일어섰다. 허벅지를 땅에서 떼어낸 후부터는 수월했다. 티모시는 조금씩 굽힌 관절을 펼치고, 손을 조각상의 굴곡을 따라 올리며, 천천히 몸을 꼿꼿이 했다. 일어서며 티모시는 조각상의 똥범벅 둔부를 어루만졌고, 자신이 낸 지름 30cm 구멍을 스쳤으며, 어느 이름 모를 D계급의 피를 훑고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조각상의 얼굴을 직접 마주했다. 조각상의 곧은 두 팔은 티모시의 어깨 위에, 티모시의 떨리는 두 팔은 조각상의 어깨 위에. 두 이는 마치 연인처럼 서로의 어깨를 맞잡고는, 입을 맞추었다.
‘미술품에다 대고 상스러운 행위를 하다니, 이것 참 진귀한 경험이군.’ 티모시는 이렇게 생각하며, 조각상의 몸체를 더욱 더 탐하며 그것을 끌어안았다.
바로 그때, 티모시의 사무실 쪽에서 달그락거리는 큰 소음이 들려왔다. 티모시는 고개를 돌려, 창문 너머 자신의 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았다. 티모시가 꼭곡 잠가두었던 방문이 열렸고, 한 연구원이 황급히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다행이야 131! 여기 있었구나! 네가 없어져서 다들 걱정했어. 이런 데서 밧줄에 묶인 채 뭘 하던 거야?” 그 연구원은 131에게 달려오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티모시에게 들릴 리는 없었지만 말이다. 연구원은 131의 밧줄을 풀고, 대상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131의 시야를 완전히 가렸다.
티모시는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입 밖으로도 나왔을지는 알 수 없다. “어 잠깐, 그렇게 하면 난-”
그것이 그의 마지막이었다.
“우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