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699-KO
SCP-1699-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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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1699-KO 3/1699-KO 등급
등급: 케테르(Keter) 보안인가 필요

어둠 너머로 사라진 것을 좇아 팔을 뻗어도 닿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잔잔한 바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그녀를 스치며 사라져갔다.
그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 마음이 무엇인지 그녀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녀 앞에 놓인 건 그저 자신이 호올로 남았다는 사실 뿐.
첫 고독은 달았지만, 두 번째 고독은 쓰디쓴 법.

버리고 버려진 자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신은 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Hooded_man_on_bench_%28Unsplash%29.jpg

기동특무부대 무호-81이 SCP-1699-KO를 원격으로 촬영한 사진.

특수 격리 절차: 현재 SCP-1699-KO는 활동 지역을 명확히 알 수 없다는 특성 때문에 직접 격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격리 절차는 해당 개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과 SCP-1699-KO-A를 발견, 격리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변칙예술학부는 SCP-1699-KO의 목격담을 수집, 판별해 해당 개체의 현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SCP-1699-KO와 직접 교류할 방법을 찾는 연구 또한 가능한 한 진행한다.

기동특무부대 무호-81(“무단 복제 금지”)은 시중에 유통되는 변칙 예술가들의 작품을 칸트 계수기로 검사해 SCP-1699-KO-A인지 여부를 확인한다. 만약 대상에게 별개의 변칙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제12K기지 내 저위험 변칙 물체 보관함에 격리하며, 변칙성이 발견되었다면 그 특성에 따라 격리한다. 또한 가능성은 적지만, 초상 사회에서 활동하지 않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알려진 SCP-1699-KO-A가 발견된다면 즉시 변칙예술부 및 변칙예술학부에 이를 알려야 한다.

설명: SCP-1699-KO는 나이를 알 수 없는 인간형 개체다. 키는 140대 후반 내지는 150대 초반으로 보이며 목소리 및 정황 증거상 여성으로 추정된다. 항상 두꺼운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어 얼굴은 드러나지 않는데, 후드의 색 등 특징이 달라진 것이 목격되면서 이 후드가 신체의 일부인 것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와는 별개로 35°C가 넘는 환경에서도 이 인상착의에 변화가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아 해당 개체는 그로 인한 더위를 느끼지 않거나 최소 모종의 방법으로 경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증언에 따르면 SCP-1699-KO는 스스로를 ‘소독제’라고 지칭하는데, 이것이 예명인 것은 확실하나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불명이다.

SCP-1699-KO는 손이나 다리에 여러 크고 작은 흉터가 있는데, 그중 일부는 수술 자국으로 밝혀졌다. 이는 그 모양상 인체 개조의 영향으로 추정되며 이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SCP-1699-KO는 신체 능력이 비슷한 신장의 성인 여성에 비해 매우 뛰어나다. 다른 부위에도 이런 흉터가 있는지는 불명이나 머리나 팔뚝 등을 병적으로 숨기려는 모습을 보았을 때 손이나 다리의 것에 비해 큰 자국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SCP-1699-KO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예술품을 재현할 수 있다.(이하 모방된 것을 SCP-1699-KO-A라 한다.) SCP-1699-KO-A는 원본을 제작할 때 만든 것과 같은 소재를 필요로 하며1 제작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속도를 보았을 때 비교적 빠른 시간 내에 모방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비변칙적인 예술품은 실제 작품과 거의 동일하게 재현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나 변칙 예술품의 경우 해당 예술품의 변칙성이 비교적 적게 재현되거나, 혹은 아예 다른 방향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또한 SCP-1699-KO-A는 흄 준위가 비교적 높은데(약 2.00~2.41), 이는 제작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은 현재까지 명료하게 밝혀진 유일하게 SCP-1699-KO-A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나,2 해당 개체에게는 지성이나 별개의 현실 조작은 없으므로 관측기 없이는 구분이 어렵다. SCP-1699-KO는 이 능력을 활용해 초상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변칙예술가의 작품만을 바탕으로 SCP-1699-KO-A를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스스로를 '변칙 예술가'라고 주장하나, 독창성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Are We Cool Yet에서는 대상을 변칙 예술가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형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만지작거렸다. 예전에 떡갈나무 극단(대충 그 비스무리한 이름이었다)에서 그의 손을 잡고 본 나무 인형이었는데, 가물가물한 기억이지만 제법 비슷하게 만들어졌다. 이제 이것은 지폐가 되어 그녀가 목숨을 이어가는 것에 보태지리라.

인형은 고개를 떨구고 한숨 소리를 냈다. 무언가가 마모되어 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펑펑 울 수 있었다면 아마 그렇게 했으리라. 이렇게 계속 살아간다면 분명 돈은 크게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그녀 자신은 어떻게 되는가. 인형은 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외로운 듯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고고한 듯한 그 형상. 그에게 따지고 싶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안녕하세요. 그거, 혹시 더 가까이서 봐도 괜찮은가요?”

그런 고독함은, 누군가가 말을 걸면서 깨져나갔다. 휘영청 뜬 보름달 같은 금발과 목소리가 예쁜 소녀였다. 환상 세계와는 거리가 먼, 하지만 현실적이지는 않은, 그런 빛 조각 같은 사람. 인형은 순간 불안감이 들었다. 그녀도 그들과 연관된 것 아닐까? 어쩌면 일종의 ‘동생’이나 직원일 지도 몰라. 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런 의심을 중단하기로 했다. 그녀에게는 그 남자와 비슷한 기류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그게 뭔지는 인형도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믿어서 손해 보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람 보는 눈은 있으니까. 그 망할 놈에게 받은 재능 중(분명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가장 마음에 든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지금까지 사기 한 번 당하지 않았던 것이니.

툭, 하고 나무 인형이 소녀의 손에 떨어졌다.


발견 기록: SCP-1699-KO는 기록상 최소 2020년부터 활동한 것으로 보이나, 대인 활동이 흔치 않다는 점, 상기한 유일한 구분법이 관련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재단이 해당 개체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2023년, 기동특무부대 을호-2(“잊힐 의무”) 소속 요원들이 심령 발생이 잦은 지역을 순찰하던 도중 전시되어 있던 예술품(이후 SCP-1699-KO-A로 밝혀짐)을 발견하고 이를 기동특무부대 람다-7(“청소부”)에 신고하면서였다. 당시 요원들의 신속한 대처로 사상자는 없었으며 변칙성에 영향을 받은 인원 역시 최소한의 수준으로 그쳤다. 이후, 원본에 대한 정보가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모방작을 바탕으로 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하 당시 상황에 대한 면담 기록이다.

면담자: 제21K기지 변칙예술학부 이윤하 연구원

면담 대상: 기동특무부대 을호-2 소속 최신해 요원3

개요: 당시 사건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기 위한 면담이 진행되었다. 또한 일부 관계없는 내용이 생략되었는데, 원본을 확인하고 싶을 경우 RAISA에 문의할 것.


(SCP-1699-KO-A와는 무관한 초반 내용 생략.)

이윤하 연구원: 뭐, 그건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이제 본격적인 면담으로 들어가죠. 그… 사건의 전후 관계라던가, 혹시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최신해 요원: 뭐,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길거리에 웬 예술품이 있길래 분명 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심령 탐지기가 반응하지 않아서, 저희 담당의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보고를 드린 것이고요. 회수 과정에서 몇 분께서 영향을 받은 것은 유감입니다만…

이윤하 연구원: 기록에 나온 그대로였네요. 그래도 모르고 봤을 때는 눈치채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죠. 거기가 변칙 예술가들이 잘 활동하는 곳도 아닌데요. 그렇게 빠르게 대응한 것이 놀라워요. 덕분에 피해도 크지 않았고… 역시 특무부대 요원은 다르네요.

최신해 요원: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미 그 지역을 최근에도 몇 차례 순찰했고,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까지만 해도 그것이 없었으니까요. 그 지역은 인근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심령 발생률을 기록했으니까요. 어쩌면 심야클럽이나 조요의 인도자 같은 단체가 활동하는 장소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그 때문에 수시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이상한 것을 눈치챌 수 있었죠. 그리고…

최신해 요원: 그 작품과 똑 닮은 것이 만들어질 당시 마침 형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분명 어떤 회랑에 있을 것이라고 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디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4 적어도 그곳에 있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윤하 연구원: …그렇지요. SCP-811-KO는 이미 몇 년 전부터 격리가 되어 있었으니, 당사자가 그걸 그사이에 옮겼을 수는 없었겠네요. 제삼자가 그 위치를 옮길 이유도 없을 테고요. 그래서 뭔가 함정일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고요.

최신해 요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네. 그래서 이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윤하 연구원: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그것의 변칙성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을까요? 아, 이건 어디까지나 확인 과정이에요.

최신해 요원: …가까이 접근한 사람에게 환청과 편두통을 유발했습니다. 그래서 회수가 예상보다 길어진 것이고요. 다행히 상태를 보니 일시적인 것 같습니다만…

최신해 요원: 다만 인간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건 확실했습니다. 당시 주변에 있던 유기견은 아무렇지도 않아 했었으니까요. 신체검사 결과도 그쪽 관련해서는 특이 사항이 발견되지 않았고요.

이윤하 연구원: 그렇군요. 역시. 비슷하면서도 꽤 다르단 말이죠.5 …아, 잠깐만요. 혹시 특이사항 없나요? 외형이라던가…

최신해 요원: …글쎄요. (고민하다)아.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긴 했습니다. 한참 회수하던 중에, 귀퉁이에 뭔가 서명 같은 것이 있더라고요. 두통이니 환청이니 때문에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는 않아서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대충 ANTI 어쩌고6였던 것 같습니다.

이윤하 연구원: 그렇군요… 아마 이 모방꾼의 서명일 것 같네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협조 감사합니다.


결론: 당시에는 단순 개체 수준으로 간주되었으나, 이후 다른 SCP-1699-KO-A가 발견되면서 정식 번호가 배정되었다. 다만 그 외 SCP-1699-KO-A에서는 서명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어째서 해당 작품에서만 이런 예외가 발생했는지는 불명이다. 현재 SCP-1699-KO-A의 제작자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후 최초 발견되었을 당시의 서명을 바탕으로 SCP-1699-KO의 존재와 그 특성이 확인되었다. 다만 해당 개체가 예술가들과 교류가 잘 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현재 SCP-1699-KO의 위치를 발견하는 것에는 애로사항이 있으리라고 예측된다.


소녀는 그렇게 한동안 인형의 작품(그것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면)을 감상하는 것에 몰두해 있었다. 마치 고명하신 예술가가 만드신 업적을 웅장한 미술관에서 감상하는 것마냥, 그녀는 으음, 혹은 와아, 하는 감탄사 외에는 일절 침묵을 지킨 채 눈을 돌리고 있었다.

“별 건 없어. 다 기존에 있던 것을 모방한 거야. …아, 그건 위험하니 조심하고.”

설마 이 사람, 이것들이 다 순수히 자기 실력인 줄 아는 걸까. 지금까지 무뎌져만 가던 죄책감의 무게를 체감하던 그녀가 고백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담담하게, 한편으로는 걱정을 담아서. 그런 것이, 소녀가 마지막으로 가까이 다가가던 조각품은 까딱 잘못하면 인형 정도면 모를까 약한 사람 하나쯤은 때려눕힐 수 있었으니.

“그런가요… 다 위작인 걸까요.”

“…….”

“하지만 그래도 꽤 잘 만든 것 같은데요. 이 정도면 위작이 아니라 당신만의 작품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단 말이죠.”

소녀를 따라 걷던 인형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변칙 예술계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 남자와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말은 오랜만인걸.”

인형은 씁쓸하게 답했다. 여러 감정이 오랜만에 삐죽삐죽 솟아나고 있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그런 느낌에 잠시 잠겨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의외네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는데요.”

가볍게 던진 말이지만 가식은 없었다, 적어도 인형은 생각했다.

“이름을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젠가 다시, 라. 뭔가 희망에 찬 분위기에 그녀는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이 있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이 사람은 분명 누군가에게 있어 소중한 존재였으리라. 그녀는 분명 돌아갈 곳이 있으리라. 한참 생각하던 인형은 축 처진 목소리로 답했다.

“소독제. 그렇게 불러줘.”

본명은 아니지만. 이라고 덧붙인 말에 소녀는 그저 으음, 하고 답했다. 특이하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드문 반응은 아니었다. 아무리 예명이 특이한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그중에서도 소독제는 특이한 이름이었다. 그것이 인형에게 어떠한 중요한 의미인지를 모른다면 분명 의아하게 여길 것이다.

“제 이름은 휘영이에요.”

하지만 그다음 반응은, 그녀에게 있어 충분히 드문 일이었다.


녹음 기록 1699/KO:

개요: 상기 녹음 기록은 재단을 은퇴한 뒤 감사직을 맡고 있는 이지윤 박사와, 현재 변칙예술학부 부서장인 풍소경 박사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 일부 발췌한 것이다. 본 대화는 변칙예술학부의 현황을 보고하던 중 나온 것으로, SCP-1699-KO와 무관계한 부분은 생략되었다. 원본을 확인하고 싶을 경우 RAISA에 문의할 것.


(무관한 내용 생략)

이지윤 박사: 그건 그렇고, 혹시 지금까지 일에 무슨 문제라도 있니? 다른 사람의 시선이라던가…

풍소경 박사: 어… 그래 보이나요?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만…

이지윤 박사: 물론이지. 마치 처음 봤을 때 같은 표정인걸. 뭔가 풀리지 않는 고민에 힘겨워하는 느낌이야.

풍소경 박사: (살짝 더듬으며)어… 일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변예부는 전례 없이 순항하고 있어요. 산하 학과 계획도 추진 중이고… 전에 얘기했던 전시회도 2회 요청이 많습니다. 그때와 같은 문제는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봅니다.

이지윤 박사: (조용히 경청한다.)으음. 그건 다행이네.

풍소경 박사: 네. 그리고 외부에서도 나름대로 입지가 생긴 것 같습니다. 여전히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적어도 대부분은 저희를 배척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호적인 예술가들 수도 조금씩이나 늘고 있고요.

이지윤 박사: 그렇구나. 역시, 믿고 맡긴 대로야. 앞으로도 그렇게 변칙예술학부를 이끌어줘.

이지윤 박사: 그건 그렇고… 뒤쪽에 있는 친구7는 저번 그 아이와는 다른 것 같은데, 혹시 걔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니?

풍소경 박사: (한동안 침묵하다 한숨을 쉰 뒤)역시, 박사님은 못 이긴다니까요.

풍소경 박사: 박사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재단에 들어올 당시 그 아이는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아무래도 당시 분위기상 그 아이를 재단이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그렇다고 AWCY에게 넘기자니, 그들에게 당시 저에 대한 감정이 영 좋지 않았고요. 쪽박만 치던 예술가가 재단에 넘어가 자신들을 팔려고 하니, 보복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지요.

이지윤 박사: 그랬지…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 분위기가 그랬으니까. 너 하나만으로도 시선이 좋지 않았으니…

SCP-811-KO: 지금 저희들이 이렇게 있는 것도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친 결과니까요. 선배님이나 박사님 같이요. 여전히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풍소경 박사: (한숨)분명히 그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은 예술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아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었으니까요. 같이 친하게 지냈기도 했으니…

풍소경 박사: 근데 얼마 전에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온 겁니다. 그 아이가 사라졌다고요. 당연히 충격을 받았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찾아다녔습니다만… 끝까지 발견되지 않았어요.

이지윤 박사: (침묵)

SCP-811-KO: (중얼거리는 투로)아, 그래서 그때…

풍소경 박사: (목소리가 낮아지며)그런데 그 아이가 최근 다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여러 위작을 만들어내는 SCP 개체로서요. 일련번호도 제정되었고 현재 수색 중인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풍소경 박사: (울먹거리는 목소리로)그 아이를, 저는, 이전처럼 대해야 하나요? 아니면 비슷한 유형의 다른 제작자와 같은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나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결론: 풍소경 박사가 SCP-1699-KO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밝혀졌으며, SCP-811-KO 역시 그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당시 어느 쪽도 본 기록 및 그 관련 내용을 기동특무부대 무호-81에 제출하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오랫동안 그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현재 불명이다.


휘영은 조용히 떠올렸다. 며칠 전에 그녀가 본 한 작은 전시회를.

확실히 그 작품들은 모방작이라고 했다. 그 원본의 이름을, 휘영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애시당초 접할 기회가 없었으니. 하지만 그 소독제라는, 흔한 단어이기에 역으로 인상적인 이름을 쓰는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 더군다나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뭔가 망설이는 듯, 자책하는 듯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일반적인 경우와는 달리, 위작임을 알고 난 이후에도 그 감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원작을 모르니까 이게 사실상 원작 같은 느낌을 준 걸까. 그녀는 잠깐 그렇게 생각하다 이내 반박했다. 아예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온전히 답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흉내쟁이에게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휘영 본인이 그때 말한 대로. 누군가가 길을 다시 찾아준다면… 아마 그것이 답이 아닐까, 휘영은 그렇게 생각을 정리했다. 그게 정답이 아닐지라도.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능구렁이의 손 대원으로서 개입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들은 싸워야 할 것, 책임져야 할 것이 너무 많았고, 그녀는 그 상황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무엇보다 설령 어떻게든 언니 오빠들 손을 빌린다 해도 그 소독제란 사람은 뭔가 사람을 꺼리는 것 같았다. 자신은 넘어가 줬지만, 예를 들어 보통 사람들도 두려워하기 쉬운 호야 언니를 만난다면 아마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작가님이면… 모르겠다. 그녀는 작가님이 너무 좋았고 그라면 그리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 정도는 확신했다. 그는 너무나도 친절했으니까. 그리고 설령 두려워한다 해도 자신이 얘기해 볼 거고. 하지만 그는 요즘 들어 뭔가 바쁜 일이 몇몇 생긴 모양이었다. 그 문제 자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 같았지만, 적어도 한 사람 예술가 만드는 계획에 그까지 끌어들이는 건 너무 미안한 것 같았다.

결국 휘영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 보기로 결정했다. 능구렁이의 손이 아닌 휘영 자신으로서. 그녀는 지금까지 나루를 도와 여러 일을 해왔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가 넘긴 달빛을 다루는 마법을 키웠다. 물론 단독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녀가 아는 작가님은 적어도 걱정할지언정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도 적당히 이해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녀 역시 한때 누군가의 모조품이었으니까.


개요: 본 기록은 풍소경 박사와 외부인(이하 PoI-4939)의 통화 기록을 녹음한 것이다. 이 외부인이 풍소경 박사가 말한 ‘친구’로 추정되며 그 신원은 조사 중이다. 본 기록에서는 사건과 무관한 잡담 등은 생략하였다.


풍소경 박사: KEY?8 어, 나야. 소경이. 오랜만이다?

PoI-4939: 이 시간에 웬일이래. 근무 중 아냐? 언제는 만나기도 바쁘다더니.

풍소경 박사: 그때 그때 다르지 뭐. 예전에 비하면 요령이 붙어서 조금 편해졌지만. 넌 어떻게 지내고?

PoI-4939: 그거 잘됐네. 그때 이후 연이 끊긴 건 아닌가 걱정했거든. 형제랑 조카를 둘 다 잃는 느낌이었다고.

PoI-4939: 나야 뭐, 연구하느라 바쁘지. 아, 지금은 괜찮아. 전 직장에서 했던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된다니까. 그건 그렇고 왜 전화 한 거야?

풍소경 박사: 뭐, 별 건 아니고… 그 사건에 대해 좀 더 얘기하고 싶어서 말이야. 걔가 어떻게 된 건지, 뭐 그런 거.

PoI-4939: 걔? 걔는 도망쳤다고 말했잖아. 편지 한 통 없이, 짐만 꾸려서. 물론 그것 때문에 괴로운 건 알지만… 나도 그 이후로 어디 갔는지는 모른다고.

풍소경 박사: 그러지 말고. 그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 좀 해줄 수 있어? 왜 뛰쳐나갔는지 아무래도 얘기 좀 듣고 싶거든.

PoI-4939: 정말 별거 없었어. 그저 네가 한 대로 했는데 그냥 나가버린 거야. 그래서 난 니 찾으러 갔겠거니 하고 그냥 있었는데 네가 행방을 묻고 그러니까 오히려 당황한 거고.

풍소경 박사: 정말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맞지? 믿는다. 걔가 워낙 겁이 많고 그랬으니까…

PoI-4939: 그래. 그건 정말 미안해. 그때 너 진짜 크게 슬퍼했었잖아. 친자식처럼 키웠으니…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이후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었어.

풍소경 박사: …그렇지. 아직도 걔 생각하면 우울해지니까. 아, 그 말 하니까 우울해진다. 같이 술이라도 마시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PoI-4939: 지금 넌 한국이지? 어, 미안. 나 미국 그쪽이라서 지금은 못 마신다야. 아깝네, 이거.

풍소경 박사: 응? 그때 이후로 또 직장을 옮긴 거야? 글로벌하네.

PoI-4939: 어, 그렇게 됐다. 내 인생도 참. 출신은 일본인데 한국에 이어 이제는 미국이라니… 뭐, 외팔이에게 좋은 환경까지 고려하니 어쩔 수 없었지만.

PoI-4939: 그래도 뭐, 조만간 한국에 갈 예정이긴 해. 찾을 것이 생겼걸랑. 그때 만나서 얘기라도 나누자고.

풍소경 박사: 인생이란 다 그런 법이지… 어우, 또 그때 생각 나서 슬퍼진다. 알았어. 고마워.

(이후 불필요한 내용 생략)


“저 왔어요, 소독제 언니.”

그 작은 회랑은, 다행히 며칠 사이에 없어지거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모조품은 여전히 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인형 역시 얼굴이 보이지 않게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손(온통 꽁꽁 싸맸건만 손은 장갑도 안 쓰고 드러나 있었다)에 흑연이 제법 묻어 있는 것을 보니 한참 뭔가 만들고 있다가 급히 달려 나온 것 같았다.

“언젠가가 그리 빠를 줄은 몰랐는데. 뭐, 특별히 추가된 건 없지만…”
“그러면 언니가 만드시는 걸 구경하고 있으면 되죠, 뭐. 뭔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또 느낌이 다르니까요.”
“그러냐… 너도 참 한가하구만.”
라고는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내심 안도의 말투가 담겨 있었다. 표정 표현이 없으니 어떤 감정인지 알긴 영 어렵겠지만. 인형은 그 말을 끝으로 잠깐 고민하다가 다시금 말을 꺼냈다.

“기왕 온 거 여기 의자에 한 번 앉아봐.”
“으음… 왜요?”
“마침 그림을 그리고 있었거든. 나만이 그릴 수 있는 새로운 작품. 이렇게 된 거 널 모델이라도 삼으면 좋을 것 같단 말이지.”
마침 그렇게 말한 것도 있고. 그리 덧붙이면서 인형은 캔버스와 연필을 꺼냈다. 언니 오빠들이 흔히 쓰는 그런 연필이 아닌, 심도 몸통도 길쭉한 4B 연필. 휘영은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고는 (그녀가 생각하기에 멋진)포즈를 잡았다. 의자가 영 삐걱거려 쉽지는 않았지만, 인형이 스케치를 하는 걸 보니 그럭저럭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어, 어. 그렇게. 좋아. 구도 괜찮고. 됐다. 일단 널 스케치해 봤어.”
“됐어요? 와, 멋진데요. 당장 전시해도 될 것 같아요! 가져가서 보여줘도 되나요?”
“아직 물감도 안 닿은 에스키스 단계인데. 나야 상관없지만 정말 이대로 괜찮겠어?”
다 됐다는 말에 쪼르르, 휘영이 다가갔다. 드디어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을 이유가 끝났다는 것에 안도한 건지 기지개를 쭈욱 키면서. 그러고는, 스케치에 감탄했다. 확실히 스케치는 휘영을 생각나게 했지만, 검은 연필로 그려져서인지, 금빛으로 반짝이는 그녀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주기도 했다. 인형은 의아한 듯이 말했지만, 휘영이 보기에는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였다.
“네. 이대로도 충분히 예쁜걸요.”
“괜찮겠어? 딱히 너랑 닮진 않았는데.”
“꼭 닮을 필요가 뭐 있나요. 저랑은 또 달라서 그건 그것대로 가치 있는 건데.”
“…”
“언니?”

인형은 순간 침묵했다. 분명 새로운 작품을 만들려고 한 건데, 왜 난 또다시 무언가를 모방하고 있는 걸까. 모조품은 이제 됐는데,
“닮게 그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어. 옛날부터 다들 현실을 있는 대로 담으려고 했던걸.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저마다가 바라는 가치를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이지.”
인형은 남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처음 그림을 그렸을 당시, 고민하던 자신에게 했던 남자의 말. 그녀가 그때 위조품을 만든 건, 그 남자에게 화를 내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나 몰라라 한 그에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풍문에 따르면 남자는 그때 이후 변한 것이 없었다. 여전히 고집 세고, 여전히 무시당하지만 여전히 끈기 있는. 그 때문인지, 휘영을 만난 이후, 과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맞나 고민이 많이 들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는 잠깐 치우고 자신에게 집중하려고 했고. 그렇다면 자신은 왜 또다시, 돌아가는 걸까.

“여기 있는 장난감들은 마음껏 복사해도 좋아. 그것이 네 목적이니까.”

인형은 휘영 몰래 자신의 팔을 슬쩍 봤다. 화상 자국은 건드려도 아프지 않다. 지워지지 않는 건 몸의 상처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풀이 죽은 채 인형은 스케치북을 챙겼다. 주변을 돌아보자. 저 보름달 같은 아이에게 이야기도 좀 듣고.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면담자: 제21K기지 변칙예술학부 부서장 풍소경 박사

피면담자: SCP-1099-KO9

개요: SCP-1099-KO와의 주기적인 면담 도중, 해당 개체가 SCP-1699-KO를 암시하는 언급을 한 것이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해당 개체들과는 무관한 내용은 생략한다. 원문을 확인하고 싶을 경우 RAISA에 문의하거나 SCP-1099-KO의 면담 기록을 확인할 것.


(전략)

풍소경 박사: 뭐… 오늘은 이 정도면 됐고. 신곡 연습도 잘 되어간다고 했으니… 아, 또 얘기하고 싶은 것 있어?

SCP-1099-KO: 얘기… 아,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긴 합니다.

풍소경 박사: 뭔데? 편하게 말해봐.

SCP-1099-KO: 별 건 아니고, 요즘 들어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요. 혹시 고민거리라도 있나요? 전에 저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잖아요.

풍소경 박사: 뭐, 있긴 있지. 하지만 개인적인 것이라 얘기해도 도움이 되지는 않을걸.

SCP-1099-KO: 글쎄요. 적어도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낫죠. (어깨를 으쓱거리며)그리고, 풍소경 씨도 아마 아시겠지만 전 이런 일 정도는 여러 번 해봤거든요. 그걸로 상담도 몇 번 해봤고요. 뭐, 그냥 점 정도로 넘기면 될 것 같지만요.

풍소경 박사: 응? 아.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어. (침묵)잠깐만.

풍소경 박사: (무속학부 측에 연락한다)SCP-1099-KO가 실험을 요청합니다만… 네. 저를 상대로요. 아무래도 그쪽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SCP-1099-KO: 어떻게 되었나요? 역시 어려우려나요?

풍소경 박사: 일단 된대. 그걸로 재단 정보를 얻을 수는 없다고는 했지만, 이 문제와는 무관하니까.

SCP-1099-KO: 아하하,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거기까지는 어렵지만요. (풍소경 박사를 샤프펜슬로 비춰보며)어디 보자…

풍소경 박사: (샤프펜슬의 반사광에 눈을 찌푸린다.)뭐가 보여?

SCP-1099-KO: 조금요. 일단, 음악을 하다보면 불협화음이 툭하면 발생해요. 그거 고치는 것도 일이죠. 튜닝에만 한 달 가까이 소모하는 사람도 있는걸요. 하지만 때로는 기준음을 잘못 잡아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풍소경 박사: 그런 일 많지. 특히 초보자들이 스마트폰 앱을 보고 조율하다 낭패를 보니까. 하지만 여기서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고민의 근본이 잘못되었다?

SCP-1099-KO: 뭐… 말했잖아요. 믿거나 말거나니 점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라고요. 그리고 한 가지만 더.

SCP-1099-KO: 때로는 먼저 다가가는 것이 더 좋아요. 특히 소중한 사람하고 관계가 틀어졌다면, 그게 꼭 누구 잘못인 것만은 아니니까요.

풍소경 박사: (침묵. 난처함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책상만 손가락으로 친다.)

SCP-1099-KO: (상당히 작은 목소리로)당신, 아이를 구한 적 있지요? 그 아이는 당신이 떠난 이후 꽤 외로워하고 있어요. 순 겁쟁이니까요. 그래서 당신 보라고 일부러 자신을 드러낸 것이지요. 직접 가서 따지거나 모습을 드러내지는 못한 채… 도망치는 것이 능사가 아니에요. 당신이 저에게 말했듯이요.

풍소경 박사: (놀란 듯한 목소리로)이건… 점 수준이 아니잖아…

SCP-1099-KO: 뭐,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네요. 이게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요.


결론: 해당 면담 이후 SCP-1099-KO는 해당 개체들에 대한 이야기를 삼갔으며, 풍소경 박사가 SCP-1699-KO 관련 조사를 적극적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또한 SCP-1099-KO가 해당 면담에서 보여주었던 정보 획득 능력을 통해 중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는데, 무속학부 측에서 영상을 분석한 결과 그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넌… 진짜 툭하면 온단 말이지.”

휘영은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인형의 예상 밖이었다. 와서 하는 일이라곤 만드는 걸 구경하면서 그간 있었던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종종 달빛으로 몸을 데워주는 정도였지만 인형에게는 그것만으로도 큰 선물이었다. 가끔은 먹을 것도 들고 왔다. 자질구레한 군것질거리. 처음 몇 번은 돌려보냈지만, 굳이 그 정도로 선의를 거절할 필요는 또 없어 보여서 지금은 조금씩 받았다. 그러고 보니 후드 속 머리는, 그놈들을 제외하면 남자에게만 드러냈던 것 같다. 알게 되면 떠날지도 몰라. 그녀는 후드를 더 푹 눌러썼다.

“거의 능구렁인지 뭔지 하는 거 활동이랑 ‘작가님’ 돕는 일, 그런 거 빼면 계속 나에게 오는 것 같은데.”
“그야 외로워 보였으니까요. 뭔가 만들어지는 게 멋지기도 하고요.”

그러냐, 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인형은, 사실 역시 자신이 만든 작품이 대견스러웠다. 장갑. 박수 치면 물감이 터져 나오는 것.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면서 물감을 흩뿌리면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 그 폴록 선생님을 오마주하긴 했지만 온전히 자신의 아이디어로, 자신이 알고 있는 기술만을 사용해서 나온 거다. 하지만 휘영이 의지가 흔들릴 때마다 와서 북돋아 주지 않았다면, 이 작품 또한 세상에 나올 수 없었겠지. 인형은 쓸쓸히 웃으면서 고맙다, 라고 답했다.

“그건 그렇고 강 작가님 얘기 좀 더 해줄 수 있어?”
“의외네요. 능구렁이 손 얘기했을 때는 폭력적이라니 모순덩어리라니 금세 흥미를 잃더니만.”
“그건 그런데 작가란 사람은 뭔가 다르거든. 적어도 모순적이지는 않고…”
“않고?”
“에효, 이걸 뭐라고 설명해 줘야 하나. 그냥, 하는 얘기 듣다 보니 나 아는 사람이 떠올라서 말이야.”
“아. 그 사람 말이죠? 예술가라서 그런가요? 강 작가님도 작가시고.”
“그거 말고. 그 사람이 니 보호자고 니 지키려고 능손에 가입했다며.”
“아.”

휘영은 인형 옆에 가까이 앉아 종알거리기 시작했다. 한 남자가 있었고, 그가 지키고 싶었던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자신의 축복받은 저주에 괴로워했고, 그녀를 도구 삼은 자들 때문에 그 고통은 배가 되었다. 남자는 소녀를 구해주려고 했지만 한 번 실패했다. 소녀는 그들에게 돌아가 그 축복에 삼켜졌지만 남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희생 끝에 마지막 순간에 소녀를 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달빛 마법은 강 작가님이 저에게 물려준 거예요. ”
“오, 근사하네.”
인형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하면서도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리고 휘영의 손을 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밤하늘에 다시 보니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어쩌면 무언가 문제가 생긴 것일지도 몰라. 그 남자가 자신을 떠난 것이 아닐지도 몰라…

“틀림없어. 이 아이는 분명 성공적일 거야. 우리는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라고.”
“…어?”

한참 과거를 떠올리던 도중 문득 휘영은, 달빛이 그림자를 비추는 것을 보았다. 사람은 둘인데 인영은 셋. 무언가를 찾듯이 두리번거리는 그림자에 그녀는 잠깐만요, 일이 급해져서,라는 말만 남기고 그림자의 주인을 쫓았다.

어느새 인형 혼자 오도카니 남아 있었다. 하긴, 바쁘신 몸이라고 했으니. 언제까지고 이럴 수는 없겠지. 그녀는 휘영이 했던 말을 상기했다. 감동적인 이야기였지. 부러워라. 그렇게 생각하고 일어서던 찰나 그녀는 보았다. 바쁜 와중에 까먹은 모양인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두고 간 건지, 웬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것 같은 돌멩이 하나. 그 아이의 보물인가? 손 대면 문제 생기는 거 아냐? 그녀는 손에 작은 돌조각을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그 아이처럼. 어쩌면 그 아이가 자신에게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보여준 마법처럼. 그녀는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이 돌에 어울리는 끈을 사려고.


개요: SCP-1699-KO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풍소경 박사가 PoI-4939와 조우를 요청했다. 재단 측은 PoI-4939에 대한 정보를 알기 위해 바디캠을 착용하는 조건으로 이를 허가했다. 이하 당시 녹화된 기록의 일부다.


풍소경 박사: 여, KEY! 오랜만이다? 외국 회사 다니니까 사람이 변했어?

PoI-4939: 그래 보이냐? 넌 바뀐 것 없어 보이는데. 불로초라도 먹었냐?

풍소경 박사: 음… 직장에서 준 음식에 그게 섞였나?

PoI-4939: 오, 진짜? 이거 꽤 흥미로운데.

풍소경 박사: 뻥이고. 그럴 리가 없잖아. 것보다 의수를 맞췄네? 근사한데? 어디서 한 거야?

PoI-4939: (잠시 정적)회사에서 지원해 줬어. 모양도 그럴싸하지만 기능도 있으니까. 잘 봐.

(PoI-4939의 의수에서 쉭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이 나온다.)

풍소경 박사: 오올. 근사한데?

(버튼을 누르자 손이 깜짝 상자처럼 풍소경 박사 쪽으로 날아간다. 박사는 약간 움츠러들다가 그것에 맞고는 이내 키득거린다. PoI-4939는 이걸 줍는다.)

PoI-4939: 이런 저런 기능이 있지. 로켓 펀치에 바람 기능에, 괴짜가 따로 없지만. 뭐, 연구도 해야 하고 할 일도 많으니 그 정도 지원은 당연하지만.

풍소경 박사: 뻔뻔한 놈. 넌 항상 그랬지. 나랑 같이 예술가들 작업하는 거 보면서도 그랬잖아. 기억나? AWCY 친구랑 랩 배틀해서 제일 잘 나가 배틀도 하고… 그립네.

PoI-4939: 그립지. 그때는 정말 즐거웠으니까. 너와 나와 걔 셋이서 서로 친하게 지냈잖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풍소경 박사: 그러게. 그건 그렇고 여긴 왜 온 거였더라…?

PoI-4939: (어깨를 으쓱이며)말 안 했나? 직장에서 뭐 찾으라고 출장 보낸 거잖아. 대규모 프로젝트에 필요한 물건인데 누가 들고 가서 회수하러 가는 길이지.

풍소경 박사: 아, 맞다. 그랬지? 좀 도와줄까?

PoI-4939: (단호하게)안 돼, 안 돼. 아, 나도 그러고는 싶은데 외부인에게 노출되긴 곤란한 사정이니 말이야.

PoI-4939: 어쩔 수 없지? 전 직장에서 사고가 나서 선배들이 다 죽은 이후로 이런 것이 두렵거든. (침묵)

풍소경 박사: 응? 왜 그래?

PoI-4939: (침묵하다가)그 소독제 말이야, 그냥 포기하고 초상경찰에게 맡기면 안 돼? 걔는 이미 선을 넘었어. 범죄자라고.

풍소경 박사: …그럴 수는 없는 것 알잖아. 난 걔에게 책임이 있어.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자식을 그렇게 넘기는 부모가 어디 있냐?

PoI-4939: 그러냐… (한숨)참 너답네. 알았어. 걔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락할게.

(이하 불필요한 내용 생략)


달의 파편은 자신의 기적술이 뒤처진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동안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제법 신체 능력도 키웠다고 생각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원래부터 강한 몸이기도 했었고. 하지만 상대는 도통 따라잡혀 주지를 않았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코트 소매 한 쪽을 나부끼는 그것의 목표가 휘영인지 인형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의 행동이 위협적이라는 건 변하지 않았다. 그 시점에서 목적을 이루었는지, 그자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마치 춤추는 인형 같았다.

휘영은 달빛으로 변해 그 남자와 거리를 좁히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자는 강한 충격파만을 남기고 한참 먼 곳에서 그녀를 비웃을 뿐이었다. 마치 생각을 읽힌 것마냥. 그럴 때마다 마치 여우에게 홀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여우에게 홀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있는데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피하려고만 하지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일까. 저기에 정통으로 맞는다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뼈가 부러질 것이다. 휘영은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긴 어폐가 있었지만 그래도 썩 좋은 꼴을 보지는 않을 것임은 명백했다. 휘영은 달빛을 끈처럼 꼬아 그에게 휘둘렀다. 그녀의 동료가 쓰는 것처럼. 그 사람은 그걸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철썩, 그것은 허공을 가를 뿐이었다. 설마, 휘영의 눈이 떨렸다. 그녀는 호흡을 몰아쉬고 힘을 온몸에 주었다. 맑은 빛과 따뜻함이 여기저기에 퍼졌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추격해 봐도 그것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속은 걸까. 그녀는 능구렁이 손의 주석을 떠올렸다. 아니, 조금 다르다. 일단 호야 언니나 다른 요호였다면 자신의 저항으로는 택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저 구덩이 역시 여간 수상하지 않았다. 분명 충격파는 하나, 둘… 다섯 번 있었는데 구덩이는 여섯 번이었다. 허깨비가 아니다. 분신도 아니다. 분명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도망친 것이 틀림없었다. 미련 하나 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있어 제일 골치가 아픈 부류였다.

휘영은 아쉬워하면서도 터덜터덜 돌아갔다. 언니들이었다면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휘영은 아직 너무 어렸고, 실력도 아직 충분하지는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그녀에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능구렁이 손 부주석의 비서는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그러잖아도 작가님은 부탁할 것이 있다고 했다. 시간 계산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추격전 때문에 시간을 너무 끌었다. 그나마 성과가 있다면 그걸 가지고 얘기라도 해보는데 이건 이도 저도 아니었다.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면 분명 차질도 차질이지만 그가 걱정할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그녀는 달에 기도를 했다. 혹시 몰라서 남긴 선물이 무사히 전해질 수 있기를 바라며. 만약 그 사람이 인형을 노렸다면 월광이 그녀를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며.


개요: 본 기록은 풍소경 박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SCP-1699-KO에 대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녹화한 것으로, 기동특무부대 무호-81에서 진행한 조사와는 무관하다.


풍소경 박사: 마이크 테스트 중. 아아, 하나 둘 셋. 좋아. 카메라도 잘 작동하는 것 같고.

이윤하 연구원: 부서장님, 이걸 기록하는 이유가 정말 있을까요? 까딱 잘못하면 부서장님까지 위험한 변칙 개체를 보호한다는 것 때문에 피해를 볼 텐데요.

풍소경 박사: 변칙 개체 보호… 우리 부서의 목표가 뭔지는 기억하고 있지?

이윤하 연구원: 모를 리 없죠. 저 역시 그 생각에 동조해서 여기 온 건데요. 덕분에 예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요.

이윤하 연구원: (한숨)하지만 그걸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 문제죠. 특히 높은 쪽에서 더더욱요. 그런 상황에서 부서장님이 변칙 개체를 의도적으로 숨기고 들어왔던 것이 밝혀지면…

풍소경 박사: …걱정해 줘서 고마워. 일단 최악의 경우라도 너희들까지 싹 피해 보지는 않도록 해두었어. 그때처럼 여기의 목적이 무의미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할 테니까.

풍소경 박사: (벽 쪽으로 시선을 향한 뒤)뭐, 그리고 이것 역시 변칙 예술가를 보호하는 거니까. 내가 진작에 했어야 했다가 회피했던 거.

이윤하 연구원: (잠시 간 침묵)알겠어요. 그러면 SCP-1699-KO… 소독제에 대한 얘기를 해주세요.

풍소경 박사: 그 아이는 내가 막 첫 작품을 만들었을 때 처음 만났어. 지금처럼 몸 전체를 꽁꽁 싸맨 채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지. 옷은 실험체마냥 엄청 꼬질꼬질하고 낡았지만. 뭣보다 애가 너무 지쳐서, 일단 급하게 집에 데려가서 먹을 것과 옷을 주었지.

이윤하 연구원: 그랬군요. 결국 걔의 목숨을 살린 거나 다름 없었네요. 만약 범죄를 위한 미끼나 그런 거였다면 큰일 날 뻔했지만…

풍소경 박사: 그때는 구하지 않았다면 목숨이 위험할 그런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어. 지금 그때 일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아마 그랬을 것 같아.

풍소경 박사: 어쨌든… 처음 며칠 간은 고생했지. 마음을 열긴커녕 대화도 나누지 않았으니. 그러다 며칠 동안 그렇게 돌봐주다 보니 겨우 얘기를 들을 수 있었어. 애 돌보랴 신원 찾느랴 작품 활동도 못 하고 고생했지만, 후회하지 않는 나날이었어.

이윤하 연구원: 그렇군요… 그래서 그 아이는 그 후로도 어쩌다 데리고 있었던 거예요?

풍소경 박사: 그 아이는 갈 곳이 없다고 했어. (약간의 침묵 이후)이름이라고 부를 만한 것도. 그나마 있던 것도 극도로 꺼려했으니까. 내가 찾은 결과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계속 데리고 있었던 거야.

풍소경 박사: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이 역시 다가와 주었어. (다 불타고 남은, 작은 종이 조각 하나를 보여주며)그런 그에게 난 정말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지. 나와는 달리 그 아이는 재능이 있었으니까. 기술을 습득하는 재능, 사람을 믿는 재능… 하지만… 별로 좋은 건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할 따름이야.

이윤하 연구원: 산해 씨가 그녀를 알고 있었던 것도 그때였겠군요. 그러다가 재단에 들어오면서 그 아이를 KEY라는 사람에게 맡겼고, 어째서인지 그녀가 탈출하면서 SCP-1699-KO가 된 거였고요.

풍소경 박사: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재단에 들어온 걸 후회하지는 않아. 하지만 겨우 마음을 열어준 그 아이를 끝까지 책임져야 했는데, 친구에게 맡긴다며 문제를 회피해버렸으니…

이윤하 연구원: 심정은 이해해요. 얼마나 그동안 힘들었을지도요. 하지만요… 그와는 별개로 궁금한 것이 있어요.

이윤하 연구원: 아, 소독제 얘기는 아니에요. 그 부서장님께서 얘기하셨던 KEY라는 친구분 쪽에 대한 건데요… 두 분께서 무슨 관계에요?

풍소경 박사: 걔? 걔 얘기는 생각도 못 했는데. 친구야. 소독제를 걔에게 맡겼고. 왜?

이윤하 연구원: 아니… 그게요. 대화 내용 들어보면 왠지 그 사람이 부서장님과 그리 좋은 관계는 아닌 것 같아서요. 정확히는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꺼리는 느낌이요. 소독제 얘기도 귀찮아하는 것 같고…

이윤하 연구원: 그래서 궁금했던 거예요. 처음 만났을 당시라던가 그런 거요. 그렇다면 소독제가 왜 도망쳤는지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풍소경 박사: 아, 걔가 원래 좀 그래. 말은 그렇게 해도 사실 좋은 사람인 걸. 처음 만났을 때라… 정말 화려했지. 무슨 일이 있었냐 하면…(침묵)

풍소경 박사: (한참 동안 침묵.)

풍소경 박사: …어?


“어…….”

휘영은 자신이 본 것을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부서진 전시품, 어질러진 회랑. 시간이 나자마자 그쪽으로 간 것이었지만 자신이 늦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그때 바로 돌아갔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조금 혼은 났겠지만 적어도 지금 같은 일은 면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후회한들 어쩌리. 휘영에게는 과거를 바꿀 능력은 없었다.

분명 그때 그 사람이 노린 건 소독제 언니였을 거야. 나를 보고 잠깐 물러났다가 기회가 보이니까 다시 들어온 것이겠지. 분명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을 것이고. 휘영은 그간 보았던 것을 바탕으로 추리를 이어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작업실에 살던 자는 현장에 없었거나 도망친 것. 그뿐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망가진 잔해 앞에 오도카니 서서, 망연자실한 듯이 부서진 것들을 들었다 놨다 할 뿐이었으니. 사실 그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면 다행인지 뭔지도 모르겠다.

“…말도 안 돼. 그놈들이 여기까지 왔다고?”
한참 동안 충격 속에 말도 못 하던 인형은 이제 겨우 이성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나마도 뭔가 상황 파악을 할 정도 이상의 것은 아직 어려운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거예요, 소독제 언니…”
“그놈들이 쳐들어왔어. 아직 판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건지 뭔지… 방심했어.”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두려움과 서글픔이 담긴 침묵. 휘영은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었다. 물론 위로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건 그녀 자신 아니었나. 하지만, 적어도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무도 곁에 없는 것보다는 등이라도 두들겨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달은 선하니까 그녀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겠지. 그리고…

“가까이 오지 마. 도망쳐.”
그런 휘영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인형은 평소보다 배는 쌀쌀맞게 답했다.
“네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 아마 네 위치를 따라온 것 같아. 어쩌면 너까지도 상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러면 언니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피신처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모든 걸 책임지는 건 힘들잖아요.”
“…이미 난 익숙해. 그들에게 모든 걸 잃고 그런 상품 취급 또 당할 바에는 그게 나아.”
“위험할 것 같으면 저희 언니 오빠에게 부탁해 볼 수 있어요. 맹원이 되지 않더라도 얘기해 보면 보호받을 수…”
“내 말 안 들려? 어서 도망치라고!”
“제 얘기 좀 들어 보세요!”

인형이 떠나가려던 찰나 휘영은 그녀의 팔을 꽉 잡았다. 이대로 놓치면 영영 그녀를 잃을 것 같이. 하지만 그것이 역으로 그러잖아도 불안하던 인형을 자극한 것 같았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녀는 도망쳤다. 덩그러니 남겨진 폐허와 소녀를 남기고 쓸쓸하게. 그 감정이 공포가 아닌 분노로 잠긴 것을 제외하면, 인형의 존재를 가리듯 가라앉은 흙먼지는 마치 소녀가 ‘언니’라고 부르는 자 중 하나를 연상케 했다.

찰나의 순간, 헐렁한 소매 너머로 팔의 상처가 얼핏 보였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수술 자국도 묻힐 정도로 쭈글쭈글해진 화상 흉터. 그리고 휘영은 똑똑히 보았다. 짙어지는 흉터까지도 비웃듯이 선명하게 적힌 문신을.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그녀는 인형이 무엇을 두려워했고, 왜 자신을 꽁꽁 숨기고 다녔는지 희미하게 알 수 있었다.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리틀 미스터 ® 복사 양과 붙여넣기 양’


면담자: 제21K기지 변칙예술학부 학부장 풍소경 박사

피면담자: SCP-430-KO-A10

개요: 본 면담은 풍소경 박사가 개인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조사 과정과는 무관했다. 또한, SCP-430-KO-A의 위험성 및 격리 파기 가능성 때문에 본 면담은 영상을 통해 원거리로 진행되었다.


SCP-430-KO-A: 오올, 웬일이래? 천하의 박사께서 갑작스럽게 연락도 다 하고 말이야. 그때 이후 코빼기도 안 비춰서 삐친 건가 싶었는데.

풍소경 박사: 농담할 시간 없으니 빨랑 대답이나 해. 이번에는 묵비권은 안 통하니 알아두고. 첫 번째 질문. 혹시 소독제를 알고 있어?

SCP-430-KO-A: 소독제? (한참 고민하다가 농담 투로)알코올을 원해, 아니면 요오드나 과산화수소수…

풍소경 박사: (말을 끊으며)누가 그걸 물었대? 일반 명사가 아니라 고유 명사로서 말이야.

SCP-430-KO-A: (정색한 표정으로)대체 뭔 꿍꿍이야?

풍소경 박사: 역시. 여기까지는 내가 예상한 그대로란 말이지. 조금은 다를 줄 알았는데 말이야.

SCP-430-KO-A: (혀를 쯧하는 소리)아, 그래. 얘기 못 하겠으면 어쩔 건데?

풍소경 박사: 묵비권은 안 통한다고… 됐다. 이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말싸움으로 시간 낭비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풍소경 박사: 그러면 다음 질문. KEY라는 사람을 알고 있지? 아까 질문을 보았을 때 이것도 무슨 소리 하는지 알 거야. 그러니 아까처럼 또 헛소리할 생각은 하지 마.

SCP-430-KO-A: KEY?(생각하다가 갑자기 박장대소한다)설마 그 자식 말이야?

풍소경 박사: (침묵. 카메라에 정색한 표정이 촬영됨)

SCP-430-KO-A: (소리 치며)알다마다다, 멍청아! 하, 이러니 차라리 후련하네. 오히려 표정 보니까 니 쪽이 걔를 모르는 것 같은데?

풍소경 박사: 일본인 출신으로, 인간에 대해 이런 저런 연구를 했지. 그 과정에서 변칙예술을 응용했고. 니가 말하는 그가 이쪽이 맞다면야.

SCP-430-KO-A: 하하… (소리를 줄이며)잘 생각해 봐. 그 아이를 만나기 전 걔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말해 봐. 어떻게 처음 그를 알았냐고.

풍소경 박사: (한숨, 혼잣말)역시나… 그렇게 된 거군.

SCP-430-KO-A: 마음 같아서는 걔 정체가 뭔지 확 털어놓고 싶긴 한데, 넌 항상 니 고집대로 하니까… 한 번 직접 찾아봐. 혹시 몰라? 니가 모르는 사이에 걔가 재단 데이터베이스에 기록되어 있을지도?

SCP-430-KO-A: (한참 풍소경 박사를 보다가)아, 기분이다. 아까 날 한 방 제대로 먹인 기념으로 본명은 알려줄게. 마음이 바뀌었거든.

SCP-430-KO-A: (종이에 글자를 적어 보여준다. 영상에서는 각도 문제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으나 현장에 있던 인원은 이를 정상적으로 인지했다.)옛다. 한자까지는 못 얘기해 주고. 대충 잘 알아들었지?

풍소경 박사: 그래. 알았어. 퍽이나 고맙네.(큰 한숨.)


결론: 면담 결과 SCP-1699-KO에 관한 조사 방향을 조정할 수 있었다. 다만 SCP-430-KO-A로부터 그 이상의 정보를 얻으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와는 별개로 SCP-430-KO-A가 어떻게 SCP-1699-KO 및 PoI-4939를 알고 있었는지, 무슨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명이다.


소독제가 사라진 지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휘영은 방법을 찾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본 그녀는 상당히 불안해 보였다. 그때 그 사람은 분명 그녀에게 있어 그리 좋지 않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있어 그 박사가, 오빠였던 자가 그랬듯이. 서둘러 구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위험할 것이다. 그나마 달이 말하길 일단 위치는 확인 가능하며 그녀는 아직 안전하다는 것이 위안일까.

『근데 왜 이런 걸 찾는 거예요?』
“으응. 사정이 있어서요..”
『주석께서는 분명 이 미스터즈 계획을 굉장히 싫어할 거예요.』
“그러게요. 분명 자본주의의 돼지라며 길길이 날뛸 것 같아요. 그 사람들 자체에 대해서는 또 모르지만요.”

브라단 파서, 능구렁이 손의 인공지능 동료가 물었다. 연어가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난데없이 원더테인먼트 박사니, 미스터즈니, 변칙예술이니, 그간 임무와는 무관한 내용을 같이 찾아달라고 부탁했으니 이상할 수밖에.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소독제 씨의 과거사를 찾고 있었다. 그 남자와 연결된 약간의 기록을. 혼자 원더 어쩌고까지 찾으려 했다간 한세월이 걸릴 테니 적어도 타인의 도움은 필요했다. 지금 이것도 며칠 동안 혼자 끙끙거린 끝에 올린 SOS지 않은가.

『아. 찾았어요. 새로운 미스터즈 팜플렛인데…』
한참의 침묵과 잡담 끝에 먼저 뭔가 발굴한 건 브라단 파서였다. 휘영은 조금 멋쩍어졌다. 그는 이런 것을 매우 잘했다. 굴착기 앞에서 삽질한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하지만 그런 감정을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둘은 그 내용을 더듬어보았다.

‘2. 복사 양과 붙여넣기 양’

그 익숙한 이름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때 그 사람은 원더테인먼트의 부하일 것이다. 아마 이걸로 언니나 작가님께 어떻게든 얘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인간형 개체가 문제가 생겼으니 능구렁이 손의 힘을 빌려… 아니. 휘영은 마음을 바꿨다. 이건 자신의 일이었다. 언제까지나 그들에게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금 더 여유로운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주가 되어서 처리하고 싶었다. 그녀는 그들을 그리 반기지 않았고, 그녀의 친구는 자신이었으니까. 고마워요, 라고 말하며 그녀는 다시 책을 꺼냈다. 그것이 일명 ‘신형 미스터즈’라면, 분명 팜플렛이 나오고 나서야 그녀가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탈주한 것을 있는 것마냥 말하는 멍청이는 없을 테니까. 그렇다면 찾아야 할 책들의 수도 줄 것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 그녀는 다시금 책을 뒤졌다. 아니다 싶어서 다시 꽂아 둔 기록이 또다시 수십, 슬슬 브라단이 이것도 도와줘도 되냐고 물을 참에 그 결실은 드디어 열매를 맺었다. 거창한 건 아니었고 2010년대에 있었던 한 AWCY 전시회에 대한 것 정도였지만. 다 낡아 너덜너덜한 그건 신인들의 작품을 알리고 있었다. 지금은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상태를 봤을 때 이 전시회 자체는 발굴되기 전까지 모두에게 잊혔을 것이다. 그 많은 작품 중 그녀는 딱 하나, 웬 스프레이 캔을 포함한 잡동사니들의 더미에 꽂혔다. 그 잡동사니 주위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낯선 젊은 남자. 아마 이걸 ‘만든’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아주 익숙한 사람이 남자 옆에 있었다. 표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틀림없이 행복해 보였다. 그녀는 그 작품의 설명을 손가락을 좇았다.

‘소독제 - 풍소경’

소독제라면 저 사람 이름 아닌가? 의아해진 휘영은 좀 더 설명을 읽어보았다. 아쉽게도 작품 자체는 많은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뭔가 더 긴 얘기를 한 것 같은데, 책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해서 훼손이 컸다.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건 대부분 작품 설명이었다. 풍소경은 현재 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료가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재단이 그랬든 AWCY에서 그랬든. 브라단의 얘기에 이것도 포기하려던 찰나, 마지막, 딱 마지막에서 그녀는 멈추었다.

‘사람은 언젠가는 크게 상처 받는다. 하지만 그 상처가 항상 곪아버리는 건 아니다. 더러운 환경에서 벗어나 꼼꼼히 소독해준다면 그 상처는 흉터 없이 나을 수 있겠지. 그렇기에 나는 이 작품을, 나아가 나의 새 조수의 이름을 이렇게 다시 부른다. 이 아이가 부디 새로운 환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Are We Cool Yet?’

휘영은 이림에게 연락을 했다. 새로운 호랑이 굴에 들어갈 차례였다.
‘의뢰 물품: 휘영/목적지: 물품이 알려줄 것임/비고: 렌트카 사용 바람.’


개요: 본 자료는 SCP-1699-KO 조사 과정에 대해 논의하던 도중을 기록한 것의 일부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내용이 일부 있었으며, 본 기록에서는 이를 생략했다. 또한 원문은 당시 이를 주로 진행하던 연구원의 신원상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본문은 이를 문맥에 맞춰 번역한 것이다. 원문을 확인하고 싶다면 RAISA에 문의할 것. 또한, 본 기록은 상기한 SCP-430-KO-A와의 면담 직후라는 것 또한 인지할 것.


(초반 내용 생략)

크리스 연구원: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지금 SCP-1699-KO의 행동에 변화가 생겼다, 는 말인가요?

기동특무부대 무호-81 대원 1: 네. 최근 초상 시장에 팔리는 예술품이란 예술품에 다 칸트 계수기를 사용했지만 유의미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제작자가 명백한 것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크리스 연구원: 그런가요… 이거 참 곤란해졌네요. 변수가 너무 많아요. 연합에게 청산당했을 가능성도 있고…

기동특무부대 무호-81 대원 2: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SCP-1699-KO-A를 생성하지 않은 이후로도 한동안 활동을 보이긴 했습니다. 문제는…

기동특무부대 무호-81 대원 1: (한숨)아무래도 SCP-1699-KO가 능구렁이 손과 연결점이 생긴 것 같습니다.

크리스 연구원: 능구렁이 손? 이거 골치가 아픈데…

기동특무부대 무호-81 대원 1: 네. 정확히는 한 명뿐입니다만, 자주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이를 통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실제로 둘이 같이 만든 작품을 공개했다는 기록도 발견되었고요. 물론 얘기했다시피 SCP-1699-KO-A가 아닌, 직접 만든 것입니다.

기동특무부대 무호-81 대원 2: 물론 외부 증언을 바탕으로 한 추정일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오해일 가능성 또한 있고요. 하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일 경우, 그쪽에게 넘어가기 전에 처리를 해야 합니다. 최악의 경우 이미 손의 일원으로 자리 잡아서 큰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 또한 있습니다.

(갑자기 풍소경 박사가 방으로 급히 들이닥친다.)

풍소경 박사: 크리스! 크리스 어디 있어?

크리스 연구원: 박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풍소경 박사: 회의 중이었어? 미안한데, 변수가 생겼어. 서두르지 않으면… (기동특무부대 무호-81 대원들을 보더니)SCP-1699-KO를 영영 놓칠지도 몰라.

크리스 연구원: 네. 아닌 게 아니라 능구렁이 손이 SCP-1699-KO에게 관심을 보인 것을 확인했습니다.

풍소경 박사: 어, 그 얘기는 아니고. 혹시 사람 하나 찾아줄 수 있어? SCP-1699-KO와 연관이 있어서 그래.

크리스 연구원: 그쪽은 또 누군가요? 일단 박사님이 그렇게 다급한 건 처음 보니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풍소경 박사: '키세 나오키'. PoI-4939의 본명이야. 한자는 모르겠어.

크리스 연구원: PoI-4939는 박사님의… (침묵)일단 저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은데요. 잠깐만요…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 해당 데이터를 확인하는 과정 생략)

풍소경 박사: 아, 찾았다. SCP-925-KO-2의 전 부하였다가 배신하고 현재는 도주 중… 남을 시기하고 뒤통수 치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크리스 연구원: 어? 잠깐만 이거 봐봐요.

풍소경 박사: 무슨 일인데? …아.

풍소경 박사: 쟤 왜 원더테인먼트 쪽에서 일하고 있냐? 뭔 연구직으로 들어갔는데? 사진은… 하. 맞네 맞아.

크리스 연구원: 맞군요… 아니길 바랐는데요. 근데 조사는 했는데, SCP-1699-KO가 원더테인먼트랑 무슨 관계가 있긴 한가?

풍소경 박사: (침묵)

크리스 연구원: …박사님?

풍소경 박사: 아, 미안. 생각하고 있었어. (고민하다가)얘기가 긴데, 일단 간단히 요약하자면 걔가 리틀 미스터즈 출신이거든. 아마 걔를 도로 데려가려고 그런 것 같아. 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크리스 연구원: 대체 그건… (풍소경 박사의 표정을 확인한다. 카메라에서는 크리스 연구원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다.)아. 그건 나중에 들을게요. 상당히 얘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크리스 연구원: 그리고 그 사람은 아마 연구할 자금을 위해 취직한 거겠죠, 뭐. 근데 이다음은 어쩌죠? SCP-1699-KO만으로도 숨어 다니니 막막한데, 다른 요주의 인물까지 나와버렸으니…

풍소경 박사: 모르겠어. SCP-1699-KO의 위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이름도 잘 드러내지 않고 말이야. 최근에야 겨우 밝혔으니… 하지만 다른 쪽은 딱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풍소경 박사: 걔가 나와 조만간 만나기로 했거든. 그걸 이용해서 꾀어내는 것밖에 답이 없을 것 같아. 걔가 한국에 온다고 했으니, 이런 상황에서는 SCP-1699-KO와 관련이 있어서라고 생각이 돼.

크리스 연구원: 일단 마지막으로 소독제가 발견된 위치를 생각하면 충분히 유인해 봄 직한데. 그가 과연 넘어가 줄까요?

풍소경 박사: 어쩔 수 없지. 지금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니까. 썩었는지 어쨌는지 모르니까 일단 있는 동앗줄을 잡아보는 거지.

풍소경 박사: (한숨)…사실은 마음이 아직도 복잡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여기서 얘기할 상황은 아니긴 하지만. 지금 상황은 재단에게도 그에게도 좋지 않으니까…

크리스 연구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무슨 심정인지는 이해가 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풍소경 박사: SCP-1699-KO가 능구렁이 손과 접점이 생긴 것 같다? 알아. 방금 니들이 하는 말 들었어.

크리스 연구원: (고민하다 작은 소리로)어떤 심정이신가요…?

풍소경 박사: (한동안 침묵)글쎄. 그곳에서 그가 행복할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단 말이지… 마지막 있을 곳은 그에게 맡기고 싶어.

풍소경 박사: 아, 재단 인원으로서는 실격이지? 우리의 목적은 그를 격리하는 것인데 말이야. 하지만… 난 이미 한 번 그를 버리는 잘못을 저질렀어. 그러니 두 번 실수를 하고 싶지는 않아.

크리스 연구원: (침묵. 어깨를 으쓱한 뒤 카메라에 손을 댄다.)

녹화 종료


결론: SCP-1699-KO의 현 위치는 불명이나, PoI-4939의 신원은 확인할 수 있었으며 현재까지 유인이나 추적이 일정 수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PoI-4939가 SCP-1699-KO를 추적하고 있다는 증거 또한 일부 발견되었다. 단, SCP-1699-KO가 현재 SCP-1699-KO-A를 생성하지 않고 있으며 능구렁이 손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이 확보 과정에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할 것.


한 인형이 있었다. 도자기 돌처럼 아기자기하지도, 바비 인형처럼 우아하지도 않은 인형. 그 모습은 오히려 성격 나쁜 꼬마가 장난을 벌인 끝에 지루해져서 버린 그런 느낌이었다. 머리가 있을 자리에는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고성능 깜짝 카메라®가 달려 있었고 몸은 이런저런 기능을 넣느라 온통 수술 자국.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배터리를 넣는 자리를 통해 주는 음식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울 수는 없는, 표정 없는 인형. 그것이 그녀였다.

‘아버지’는 인형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들을 만나기 전 기억이 없어서 그가 진짜 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물고 흔들고 던져도 견딜 수 있는 튼튼하고 강한 몸. 이름이 적힌 문신. 마찬가지로 문신이 붙은 형제자매들. 하지만 가장 특별하게도, 인형은 자신이 본 것을 복사할 수 있었다. 물론 원본과 유사한 재료가 필요했고, 그것이 알고 있는 것만을 따라 할 수 있었지만. 뭔가를 따라 할 때마다 다들 기뻐했다. 넌 가치 있는 아이야. 분명 모두가 너를 원하겠지. 인형의 이름도 그것에서 따왔다. 마치 두 명인 것 같은 이름의 인형. 이상해요, 왜 그런가요? 전 혼자고 이렇게 외로운데. 하지만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소독제는 새로운 은신처 속에서 몸을 웅크렸다. 원래 있던 곳보다 어둡고 쓸쓸했다. 물론 그들이 원래 살던 집에 쳐들어갔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소독제는 후드를 조이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보름달이 비쳤다. 휘영청 밝은 달이 그 소녀를 연상케 했다. 그녀는 무사히 도망쳤을까. 마지막 순간에 내가 너무 매몰차게 군 것은 아닐까. 나 때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그녀는 팔을 슬쩍 보았다. 도려내고 지져도 낙인만은 또렷히 남아 있었다. 우울해할수록 목걸이가 무거웠다. 그녀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인형은 다른 인형들과 같은 실험실에 있었다. 뭔가를 근사하게 만들어내면 먹을 것을 주었고, 실패하면 전기 충격만 주었다. 같이 아무 음식 없이 어두운 곳에 갇힌 적도 있었고 혼자만 남겨질 때도 있었다. 일종의 안전성 테스트였다. 고장은 안 났는지. 이런저런 일을 겪어도 멀쩡할 정도로 충분히 튼튼한지. 모두가 그걸 겪었고, 모두가 그걸 견딘 것은 아니었다. 몇은 죽고 몇은 도망쳤다. 또 몇은 어디론가로 갔다. ‘아버지’는 그들을 ‘팔렸다’라고 했다. 팔리면 어디로 가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자리는 다른 형제들로 새로이 채워졌다. 그녀는 물었다. 이게 정말 맞는 거냐고 끝없이 물었다. 하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았고 그녀는 외로웠다. 두 명분의 이름, 한 명분의 외로움.

똑 똑 똑.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겨우겨우 도망쳐 온 곳인데. 초상예술과는 거리가 먼 이곳에 나를 찾아올 사람은 어디에도 없는데. 휘영? 그러고 보니 딱히 믿음직하지는 않지만 능구렁이 손이라는 자들이 자신을 구해줄 수 있다고 했지.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는 했지만 그녀는 상냥했으니 이상하지는 않았다. 아니면, 어쩌면… 아냐. 그녀는 도리질을 했다. 그는 오지 않을 것이다.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한때 속았다며 격분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안 하던 위조를 마구마구 했었다. 제발 날 좀 보라고. 이게 네가 말했던 거냐고. 제일 화가 났을 때는 복사도 잘 안되어서 자기 이름까지 눌러 적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머리가 식으니 이제 알 것 같았다. 달빛 아래에서 바람 가는 길을 보니 이제야 무언가가 들렸다.

어느 날, 실험실 문이 열렸다. 자신에게 이상한 약을 주사하고 수술을 했던 연구원들이 자신을 이끌었다. 그들은 착하게 있으라고, 잘 따라오라고 했다. 손에 쥐어진 종이와 원더테인먼트 로고가 박힌 입을 옷과 함께. 종이에는 자신과 다른 축복받은 형제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이름에는 체크도 되어 있었다. 저는 팔리는 건가요? 그래, 그러니 착하게 있으렴. 나쁜 아이는 다들 좋아하지 않으니. 그러면 저는 어떻게 되나요? 그들은 답하지 않았다.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그들은 그것도 답하지 않았다. 화가 난 인형은 손을 뿌리쳤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다. 무응답을 참다 참다 못 해 터져 나온 투정이었을까. 꽥,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복사 양과 붙여넣기 양이 도망친다, 빨리 잡아. 인형은 영문을 몰랐다. 이렇게 화낼 줄은 몰랐다. 화가 난 선생님들을 피해 그녀는 달려 나갔다. 나가면서 그녀는 그제서야 과거 고통을 다시 한번 반추할 수 있었다. 굶주림, 아픔, 공포. 그리고 외로움. 착한 아이라면 아무렇지 않아야만 했던 슬픔. 왜 갑자기 손을 뿌리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 번 상품 가치가 떨어지고 나니 막혔던 감정이 터질 듯이 나왔다. 그녀는 쥐고 있던 옷을 우악스럽게 비틀었다. 아, 울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전 처음 본 바깥의 풍경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놀이동산이었다. 보통 아이들이었다면 그 환상적인 분위기에 마음을 뺏겨버렸겠지만, 인형은 달랐다. 이곳에서 달아나야 해. 여기는 아직 덫이야. 인형은 막 복사해 낸 후드를 입고 다시금 달려 나갔다. 그들이 예전에 찍어내라고 했던 그 옷. 그것이 자신을 지켜낼 줄이야. 출구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잔뜩 기대한 사람들 반대로 가면 된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 표정은 자기가 복사할 때 직원들 반응과 똑 닮았으니. 뒤에서 직원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잡힌 동생들은 실험실 복도로 돌아갔고, 이내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몇은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나머지는 한결 산뜻한 척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잡히면 안 돼.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이 튼튼한 것에 감사했다. 누구에게 감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참을 달리니 문이 있었다. 렌즈를 통해 비춰진 문 위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다. 웰컴, 원더 월드. 엿이나 먹어, 원더 월드.

문은 어디로 향하나.
이 문밖에는 무엇이 있나.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쾅, 소리가 났다. 누군가가 문을 차고 있었다. 속아 넘어가지 않아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아니면 문을 억지로 열려고 했거나. 쾅. 하, 누군지 너무 뻔해서 할 말이 안 나왔다. KEY.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던 그 남자는 그렇게 그를 불렀다. 귀찮은 듯이 반응하던 외팔이 일본인 남자. 말은 그렇게 해도 착한 사람이야. 예술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쪽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소독제는 그를 믿지 않았다. 감이었다. 오만하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 그것이 첫인상이었고, 소중했던 남자가 자신의 손을 KEY에게 맡길 때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그녀가 옳았고.

한동안 KEY는, 남자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잘해주었다. 뭐 아픈 곳은 없냐, 먹고 싶은 거나 보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해라, 그는 사정이 있어서 여기 못 온다, 자신이 그만큼 잘 가르치고 잘 해줄 것이다… 하지만 소독제는, 인형은 그를 믿지 못했다. 그는 툭하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누구지.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고민 끝에 그녀는 슬쩍 엿들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인형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로 그녀는 짐을 싸고 달아났다. 자신을 팔아넘겼다는 사실이 분해 울고 싶었다. 내리는 보슬비를 눈물 삼아…

콰앙. 그러잖아도 낡아 있던 문짝이 동강 났다. 그리고 그 문 너머로 비춰진 것은 예상대로의 남자. 빛나는 의수를 착용한 걸 빼면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를 붙잡고 화를 내고 있었던 것은…
“아니길 바랐는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대체 누굴 상대로 그러는 건데?”
“선생님?”
그녀를 처음으로 사랑해 주었던 남자가 있었다. 그녀의 감은, 결국 항상 옳았던 그 감은, 그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달빛을 받은 목걸이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소독제? 설마 너야?”
풍소경은 당황했다. 자신은 분명 KEY, 한때 친구라고 여겼던 사람을 찾아온 것이었다. 전화했을 때까지만 했어도 아무 일 없다고 했는데. 위치를 추적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그…에게 속았던 것이길 진심으로 바랐는데. 문틈 너머로 소중한 사람이 보이자 풍소경은 망연자실해졌다. 후드를 눌러써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습관은 오히려 심증을 굳힐 뿐이었다. 목소리도, 체형도. 더군다나 자신을 ‘소경 씨’나 ‘박사님’, 하다못해 ‘선배’라면 모를까 ‘선생님’으로 부를 사람은, 그가 알기로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야, 너 분명 일하느라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그래서 전화로 대신 얘기한 거고. 여긴 왜 온 건데?”
“내가 묻고 싶은 게 그거야! 대체 소독제한테 뭘 하려는 거야? 분명히 너도 걔를 좋아하지 않았어?”
“소독제를 부탁한다며. 어디로 데려갈지는 내 맘이지. 아, 범죄나 그런 거에 연루된 건 아니니까…”
“왜 그런 거야? 처음부터 이러려고 나에게 다가간 거야? 그렇게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글쎄올시다. 나라면 그냥 아무 일도 없는 척 넘어갔을 텐데.그게 장기적으로도 편했을 테니까.”
“미쳤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따지던 소경과는 반대로, 키세는 담담했다. 어쩌면 비웃는 것일지도 몰라, 소경은 착잡해졌다. 그는 분명 소독제를 노리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소중한 사람을 맡긴 건 자기 자신 아니었나.

“조언 하나 할게. 여기서 당장 떠나. 그게 너에게 나을 거야.”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이 뭔 대단한 조언을 하는 것처럼. 풍소경은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그 아이를 두고? 여기서? 웃기지 마라. 그는 대신 소독제의 손을 잡았다. 같이 도망치자. 상처를 자극할 수 있을 만한 행동이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그 뜻을 이해해 주었다. 이건 분명 그가 예상했던 행동은 아니었다. 도망칠 곳은 있지만, 요원에게 갔다가는 그녀는 꼼짝 없이 격리될 것이었다. 그가 어떻게든 손을 쓰겠지만…

“선생님!”
갑자기, 격한 통증이 머리에 느껴졌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다시 일어서서 달려 나가려고 했지만 또 뭔가에 막힐 뿐이었다. 마치 나무에 전력으로 부딪힌 것만 같았다. 아니, 정말로 그럴지도 모른다. 여긴 산지고, 그가 아까 봤던 것을 생각하면 나무가 많을 테니까. 다만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인지 재해? 머리가 아파졌다.

“선생님. 이쪽이에요. 빨리…”
다행히 소독제는 이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어떻게든 자신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 이곳에서 벗어나면 나아질 거라는 듯이.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조금 더 빨랐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근접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까 그 말은 무의미했던 것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게 마지막 경고였던 것일까.

격한 통증이 가슴팍에 느껴졌다. 윽, 하는 소리와 함께 풍소경이 나뒹굴었다. 쉭, 키세의 의수 구멍에서 김이 나왔다. 그는 다시 일어서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충격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모양이었다. 땅을 뒹굴면서 팔에도 금이 간 것 같았다. 뒤통수가 아팠다. 머리에도 충격이 가해진 모양이었다. 그는 휘청거리더니 도로 주저앉았다. 소독제는 선생님이라는 말도 못 하고 난처해하고 있었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고통이 너무 심했다. 그가 소독제를 끌고 가는 것이 보였다.

“넌 그간 많은 것을 잃어왔잖아. 그래서 고독했고. 우리를 그렇게 망가뜨려도 되는 거야?”
정신을 겨우 붙잡으며 물었다. 마지막 의문과 희망을 담아. 하지만 그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걸 비웃듯이 반박했다.
“전 직장도 내 손으로 무너뜨렸는데 뭘.”

믿을 수 없었다. 물론 그때 그 문서를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오해였기를 바랐다. 그렇게 단호하게 말할 줄은 몰랐다. 그는 그렇게 자신 외를 버려 왔던 거란 말인가. 상관을, 동료를, 그 아이를. 그는 어떻게든 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라면 모를까 그 아이는… 하지만 다친 머리로 이어지는 생각에는 한계가 있었다. 눈이 캄캄해졌다.

“아니, 휘영아. 목적지라고 한 곳이 여기야? 암만 봐도 지금 상황 영 안 좋아 보이는데?”
희미해지는 그의 의식 속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갑작스러운 낯선 쏘나타 차량의 브레이크 소리였다.
틀림없이 그건 재단 것은 아니었다.


사건 기록 1699/02:

개요: 본 영상 기록은 PoI-4939를 확보하던 과정에서 촬영된 것의 일부로, 당시 현장에 있던 풍소경 박사에게 부착된 바디캠을 통해 촬영되었다. 당시 풍소경 박사는 부상이 심했으며 PoI-4939를 유인하기 위해 작전에 참여한 다른 인원은 인근에서 대기 중이었기 때문에 대응이 늦었다는 것에 유의. 또한 본 영상은 인지 재해 방지 필터 적용 및 불필요한 장면 생략 등 편집이 일부 가해졌음이 유의할 것.


(쏘나타 차량 1대가 현장으로 돌진한다. 도착 순간 감속하나 미처 피하지 못한 PoI-4939과 충돌한다. 쓰러진 PoI-4939를 뒤로 하고 여성 한 명이 쏘나타 차량에서 내린다.)

휘영: 아,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소독제 언니! 여기예요! 구하러 왔어요!

SCP-1699-KO: 어윽… 휘영아? 너 맞아? 위험하니 도망치라고 했을 텐데…

휘영: 말했잖아요. 저희들이 구해주겠다고요. 위험하다고 나와서 걱정 많이 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SCP-1699-KO: …고마워. 문제 생기기 전에 빨리 가자.(풍소경 박사를 부축한다.)

[신원 불명]: 잠깐, 대화 중에 미안한데 우리 방금 사람 친 것…

휘영: 괜찮아요. 그래도 되는 사람이에요.

[신원 불명]: (중얼거리는 투로)그런 의미가 아닌데.

SCP-1699-KO: 서둘러. 충격이 크지 않았으니 금세…

(PoI-4939가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충격이 크지 않은 것인지, 이내 전투태세를 갖춘다.)

PoI-4939: 이건 또 뭐야… 줄줄이 나오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냥 좀 냅두면 안 되나.

SCP-1699-KO: 썅. 저 새끼 정신 차렸다. 일단 거리를 두면서 후퇴하자.

(일행이 쏘나타가 정차된 위치로 이동하려 하나 SCP-1699-KO를 제외하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

PoI-4939: (일본어로)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곱게는 못 보내…

휘영: 잠깐만요. 역시… 그쪽이군요. 인지 왜곡 능력.

SCP-1699-KO: 어. 오늘따라 약한 줄 알았는데… 선생님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아무래도 다른 이유가 있단 말이지…

휘영: 어? …아. 그러면 아무래도 이것도 통할 거예요! 이 정도면 간단하게…

(인지 재해가 더 심해진다. 능구렁이 손 일원이 코피를 터뜨린다. 휘영이 자세를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PoI-4939: 간단 뭐?

(PoI-4939가 휘영을 향해 의수를 사출한다. 대상은 휘영의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가나 맞기 직전 SCP-1699-KO가 달려들어 쳐낸다.)

(SCP-1699-KO의 후드가 벗겨져 카메라로 구성된 머리가 드러난다. 해당 개체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PoI-4939가 한숨을 쉬더니 의수를 다시 오른팔 위치에 장착한다.)

SCP-1699-KO: 어휴, 큰일 날 뻔했네. 하여간, 저놈의 자격지심…

휘영: 확실히 아까에 비해 강해졌어요. 호야 언니에 비하면 택도 없지만 이 정도도 충분히 위험해요. 이 정도면 지금이 보름달이니 우리 셋까지는 겨우 보호할 수 있겠지만… 공격까지는 어려운 것 같아요.

[신원 불명]: 아니, 난 이 사람이랑 같이 있을게. 너 자신에게 집중해 줘. 어차피 난 여기서 짐짝이고.

휘영: 어… 정말 괜찮겠어요?

[신원 불명]: 뇌에 힘주고 가만히 있으면 조금 시간은 벌 수 있을 거야. 그간 일하면서 당한 것이 많으니… 그러니 빨리 끝내 줘.

휘영: (고개를 끄덕이며)네. 부디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휘영이 일순간 점멸하고, 밝은 빛이 터지며 PoI-4939가 있는 곳에 다시 나타난다. 휘영의 손에서 빛으로 구성된 굴레가 나와 PoI-4939를 구속한다. )

(PoI-4939가 으르렁거리더니 땅에다 압축 공기를 사출한다. 그 반동으로 PoI-4939가 도약하면서 구속을 해제한다.)

(PoI-4939가 의수를 겨냥하나 SCP-1699-KO와 휘영이 동시에 이를 쳐낸다. 사출한 압축 공기가 근처의 나무줄기에 구멍을 낸다. 가지가 떨어지는 소리.)

(셋이서 육탄전을 펼친다. 하지만 PoI-4939와는 달리 나머지 둘은 시간이 지나면서 지친 기색을 보이기 시작한다.)

[신원 불명]: (입에서 피를 토하기 시작한다.)

휘영: 오빠!

[신원 불명]: (괜찮다는 듯이 손을 흔든다. 다시 한번 기침 소리.)

SCP-1699-KO: (한참 침묵한 뒤)안 되겠다. 저놈 우리 둘로는 안 쓰러질 것 같은데 저러다 그 오빠…? 아무튼 걔가 죽겠다야.

휘영: 그렇긴 한데… 어떻게 후퇴할 방법이 없을까요?

SCP-1699-KO: (PoI-4939의 팔을 쳐내며)방법이 하나 있어. 혹시 네가 시간 좀 벌어줄 수 있어? 항복하는 건 아니니 안심하고.

휘영: …설마… 괜찮겠어요? 제 생각이 맞다면 그건 그 사람 말에 동조하는…

SCP-1699-KO: (목걸이를 쥔 채 어디론가로 달려간다.)해 볼 수 있는 건 해봐야지. 나만이 할 수 있는걸.

(PoI-4939가 SCP-1699-KO 쪽으로 달려가려 하지만 휘영이 다시금 점멸해 이를 가로막는다. 이후 빛을 금줄 형태로 압축해 PoI-4939에게 휘두른다. PoI-4939는 팔과 압축 공기로 계속해서 이를 쳐낸다.)

(SCP-1699-KO가 한 손으로 목걸이를 벗어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돌멩이를 주워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새긴다.)

PoI-4939: 아까부터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은데, 후퇴하는 것이 좋아. 넌 그 녀석이랑 무관했잖아? 너희들이 놓는다면 더 이상 공격할 생각은 없어.

휘영: (PoI-4939의 주먹을 막아내며)아뇨. 무관하지 않아요. 그 언니는 여러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고, 뭣보다 소중한 친구니까요.

PoI-4939: (침묵하더니)그렇게… 나온다라…

(PoI-4939가 휘영에게 압축 공기를 영거리 사격한다. 일순간의 빛. 휘영은 휘청거리며 주저앉는다.)

PoI-4939: 하, 또 한 놈 쓰러트렸고. 참 끈질기단 말이지. 결국 끝까지 보호하려고 하는구만, 너나 쟤나.

(PoI-4939가 멈춰 선 뒤 SCP-1699-KO를 향해 의수를 겨냥한다. SCP-1699-KO는 이를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복사 과정에서 행동에 지장이 생긴 것인지 이를 피하지 않는다. 영상에서 PoI-4939의 상이 조금씩 커진다.)

PoI-4939: 그래… 이제 이것도 끝낼 때가 된 거지. 그때처럼. 내 손으로, 또다시…

(PoI-4939가 다시금 의수를 발사하려는 순간 풍소경 박사가 PoI-4939의 발목을 잡는다. PoI-4939의 자세가 흐트러지면서 의수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간다. 의수가 가지에 맞아 이파리가 우수수 떨어진다.)

풍소경 박사: (힘겨운 듯이 더듬거리며)해볼 수 있는 건… 해본다라…

PoI-4939: …뭐야? 어떻게 된 거지…?

풍소경 박사: 글쎄다… 난 원래 이런 놈이거든.

(SCP-1699-KO가 그 틈을 타 막 생성한 SCP-1699-KO-A를 던진다.)

(SCP-1699-KO-A에서 섬광이 발생한다. PoI-4939가 쓰러진다.)

SCP-1699-KO: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거야. 내 손으로 끝내는 거. (풍소경 박사를 향해)다행이에요, 선생님… 그동안 미안했어요.

풍소경 박사: 뭘. 내가 더 미안하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건 그렇고 방금 그건…

SCP-1699-KO: 달빛으로 정신 공격을 막을 수 있다면, 반대로 덮어쓰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구조를 잘 모르니 깊지는 않지만 시간은 벌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SCP-1699-KO: (휘영을 보며)사실 얘가 없었다면 복사는커녕 버티는 것도 어려웠겠지만… 괜찮아, 휘영아? 큰일 난 것 같았는데.

휘영: 겨우 막아내서 괜찮아요! 다 막은 건 아니라서 아직도 아프긴 하지만요. (바디캠 밖으로 시선을 향하며)오빠, 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졌어요?

[신원 불명]: 어, 일단 정신이 맑아졌긴 했어. 저놈이 쓰러져서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왜?

휘영: 차 시동을 걸어 주세요! 다시 깨어나기 전에 빨리 도망쳐야 해요!

[신원 불명]: 알았어! 아직 머리가 딱딱 아프긴 한데 잠깐만…

(휘영이 차에 탑승한다. 차 시동이 걸리는 소리.)

SCP-1699-KO: (능구렁이 손을 따라가다 뒤를 돌아)잠깐만!

SCP-1699-KO: (풍소경 박사에게 다가가며)선생님… 그러면 선생님은? 이대로 두고 가도 괜찮은 거야?

( 바디캠을 통해 SCP-1699-KO가 가까이 비춰진다. 풍소경 박사가 SCP-1699-KO에게 무언가 손짓을 하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기동특무부대 무호-81이 풍소경 박사의 신호를 확인하고 해당 위치로 향한다.)

(SCP-1699-KO는 계속 주저하다가 요원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서야 능구렁이 손이 몰던 차에 탑승한다.)

(PoI-4939가 이를 막으려고 일어선다. 일순간 인지 재해가 발생하면서 요원들과 능구렁이 손 일원이 멈추나, 풍소경 박사는 PoI-4939를 붙잡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PoI-4939: (풍소경 박사를 향해 시선을 향하며)이런 미친…! (한숨. 작은 소리로)하여튼 너란 놈은…

(갑자기 인지 재해가 해소되면서 정상으로 돌아온다.)

(PoI-4939가 웃더니 요원들을 향해 항복 자세를 취한다.)

(차가 떠난다.)


결론: 능구렁이 손과 SCP-1699-KO는 기동특무부대 무호-81이 진입한 시점에서 도주했다. PoI-4939는 해당 부대에게 제압되어 현재 격리 중이다. 풍소경 박사는 중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이한 점으로 SCP-1699-KO가 도주 직전 이를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인데, 이것이 재단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현재로서는 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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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1699-KO 3/1699-KO 등급
등급: 유클리드(Euclid) 보안인가 필요

특수 격리 절차: 능구렁이 손과 변칙예술학부가 맺은 협약에 따라 SCP-1699-KO에 대한 확보 작전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변칙예술학부는 우호적 변칙예술가용 정책에 따라 SCP-1699-KO와 주기적으로 면담을 진행한다. 이때 우호 관계 유지를 위해 신체적 특징이나 풍소경 박사와 만나기 이전에 대한 정보를 묻는 것은 금지되었다. 또한 능구렁이 손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는 것 역시 현실적인 어려움 및 반발 가능성을 감안해 보류되었다.

만약 SCP-1699-KO-A가 지속적으로 초상 시장에 유통되거나 능구렁이 손이 SCP-1699-KO를 폭력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등 협약을 어긴 것이 밝혀졌을 경우, SCP-1699-KO는 즉시 재단이 회수해 제21K기지에 격리한다. 이때 해당 개체는 변칙예술학부 소속 일원으로 고용될 것이며 이를 이용한 실험은 변칙예술학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한 금지된다.

SCP-1699-KO-A는 현재 재단이 면담 중 실험 목적으로 요청한 것 외에는 생성되지 않았으며 이들은 현재 모두 기록되었다. 기존에 있던 것 역시 SCP-1699-KO가 스스로 회수하고 있으나, 원활한 수거를 위해 기동특무부대 무호-81(“무단 복제 금지”) 역시 중단 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한 기존의 SCP-1699-KO-A 확보 작업을 계속한다. 만약 대상에게 별개의 변칙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제12K기지 내 저위험 변칙 물체 보관함에 격리하며, 변칙성이 발견되었다면 그 특성에 따라 격리한다. 또한 가능성은 적지만, 초상 사회에서 활동하지 않는 예술가의 작품으로 알려진 SCP-1699-KO-A가 발견된다면 즉시 변칙예술부 및 변칙예술학부에 이를 알려야 한다.

설명: SCP-1699-KO는 ‘소독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신장이 1.5m 언저리인 인간이다. 몸에는 여러 흉터가 있으며 이 때문에 SCP-1699-KO는 이를 가급적 드러내지 않는 의상을 선호한다. 또한 SCP-1699-KO의 머리가 있을 자리에는 대신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비디오카메라가 있는데, 언제부터 이러한 특징이 있었는지는 불명이다.

해당 개체의 변칙성에 대한 설명은 구 문서를 참고할 것.

SCP-1699-KO는 정황 증거를 보았을 때 원더테인먼트 측에서 생성한 인간형 개체들 ‘리틀 미스터즈’ 중 하나였으며, 모종의 사정으로 탈출하면서 이 단체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SCP-1699-KO는 풍소경 박사가 재단에 입사하기 전 보호했으나11 박사가 재단에 입사했을 당시 같이 들어오는 대신 PoI-4939에게 맡겨진 것으로 밝혀졌다. 풍소경 박사는 이를 시인했으나 PoI-4839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PoI-4939가 풍 박사를 이용한 목적은 불명이나, 이후 SCP-1699-KO는 해당 인물로부터 탈출해 SCP-1699-KO-A를 만들며 은신했다. PoI-4939는 그 상태에서 SCP-1699-KO를 다시금 회수하려 했으나 재단이 능구렁이 손과 우연히 협력하면서 이를 막을 수 있었다. 이 당시에 대한 자세한 것은 사건 기록 1699/KO/2를 참고할 것.

사건 이후 SCP-1699-KO는 능구렁이 손에 의해 임시 보호되었고, 해당 개체의 요청에 따라 현재 SCP-1699-KO-A를 허가 외에 생성하지 않는 조건 하에 재단과 능구렁이 손 양측에 우호적인 변칙 예술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다만 SCP-1699-KO가 그간 위조품을 만들어왔다는 것, PoI-4939의 그간 행적이 순전히 개인적인 의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 재단과 능구렁이 손이 그간 적대 관계에 가까웠다는 것 등 때문에 현 상황이 영구적이긴 어렵다는 주장 또한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때문에, SCP-1699-KO를 아르콘 등급 내지는 비격리 처리하자는 제안은 기각되었다.

개요: 본 기록은 SCP-1699-KO의 격리에 관한 협약을 맺기 전, 풍소경 박사가 복직한 이후 녹화된 것이다. 당시 풍소경 박사가 근무하던 사무실에 능구렁이 손 일원 둘이 나타났으며, 이들은 박사와 SCP-1699-KO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풍소경 박사가 한참 새로 발견된 변칙 예술품에 대한 서류를 확인하고 있음.)

(갑자기 불이 부자연스럽게 깜빡이기 시작. 미약한 진동.)

풍소경 박사: 이건 대체 뭔…

(사람 둘이 사무실 문을 열고 진입한다.12)

풍소경 박사: 거기 누구세… (휘영을 향해)아, 얘는 저번에 걘가? 소독제랑 같이 싸웠던.

휘영: (인사하며)안녕하세요? 풍소경 선생님 맞죠? 소독제 언니에게서 얘기 들었어요.

[신원 불명]: (인사하며)안녕하십니까, 풍소경 박사님. 죄송합니다만 혹시 시간 잠시 내주실 수 있나요? 조금이면 됩니다.

풍소경 박사: (침묵. 남성 측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

강나루: 아, 저는 능구렁이 손의 맹원인 강나루입니다. 이 아이의 보호자고요. 그저 소독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왔습니다.

풍소경 박사: 아, 괜찮습니다. 제 일이 일이기도 해서… 편히 얘기해도 됩니다. 그 사건 일은 지금은 처리되기도 했고요. …잠깐.

풍소경 박사: SCP-1699-KO는 제가 알기로 당신들이 구출해서 그대로 능구렁이 손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떨리는 목소리로)뭔가 문제가 생긴 건가요?

휘영: 문제… 거기까지는 아니에요. 그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일원들하고 대화도 잘하고… 그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후드로 머리를 가리지도 않아요. 아직 특별한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어요.

휘영: 단지… 단지 소독제 언니는 맹원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정도에요. 뜻이 안 맞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당신을 걱정하는 것도 있거든요.

풍소경 박사: 저를 걱정한다…라. 저는 그 아이가 행복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휘영: 언니에게서 얘기를 들었어요. 당신이 그때 그녀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지를요. 처음에는 속았다며 화를 냈었지만, 그날 이후부터는 당신에게 미안해하고 있었고요.

강나루: 그리고 사실, 그때 이후 그녀가 그렇게 말한 당신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당신이 재단에 들어간 이후 예술가를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 조사하고, 그녀를 위해 당신이 사건을 책임지고 수습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휘영: 소독제 언니는 걱정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결국 그녀를 지금도 진심으로 위하고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자신이 능구렁이 손에 들어갔을 때 당신이 어떤 피해를 받을 지 많이 걱정했어요.

풍소경 박사: 그건 그렇습니다만… 저는 그날 모든 것을 각오했습니다. 사상이 안 맞는 것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저 때문이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하나만으로 끝나도록, 더 큰 피해가 없도록 손도 써두었고…

강나루: (침묵. 표정이 어두워진다.)

풍소경 박사: 뱀의 손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 그 아이가 자유롭고 안전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느 쪽이든 상관 없습니다. 전 재단에 들어가면서 그 아이에게 너무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강나루: 그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텐데 말이죠. 당신이라면 그녀를 큰 위협 없이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풍소경 박사: (한숨)사실 저도 처음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그 아이를 놓아주는 것은 재단에 반하는 것이니까요. 더군다나 재단 인원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는 변칙 개체를요. 저 자신의 개인적인 미련도 있고요.

풍소경 박사: 하지만 저와 같이 있는다 해도 재단에 격리되는 것이 SCP-1699-KO… 소독제에게 행복한 일인 것 같지는 않아 보이더라고요. 더군다나 (휘영을 바라보며)이 친구와 그때 보여준 모습을 보니 더더욱 말이죠.

강나루: (한숨)그럴 수 있지요. (휘영을 보며)소중한 사람이 원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 하지만 그 사람이 자신의 희생으로 슬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런 세상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휘영: (고민하다가)근데 박사님, 질문이 있는데요.

풍소경 박사: 무슨 일…입니까.

휘영: 변칙 예술가들은 괜찮은가요? 떡갈나무라던가, 뭐 재단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풍소경 박사: 네. 그 정도는 어느 정도 제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희 부서가 하는 일이 그쪽이기도 하고… 물론 장막 정책을 위협하거나, 너무 위험한 작품을 만들 경우에는 저희 측에서도 제재합니다만. 그런데 그건 왜…

휘영: 그러면 소독제 언니를 본격적인 변칙 예술가로 두면 어떨까요? 중립 지대처럼요! 그러면 박사님도 쫓겨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언니도 작품을 만들면서 행복해 할 거고요. 이러면 다들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풍소경 박사: (휘영을 쳐다보며 침묵.)

강나루: (휘영을 쳐다보다가 눈을 크게 뜨며)어, 저희는 그 정도로도 충분합니다만, 재단 측에서 이런 것도 가능합니까?

풍소경 박사: 가능…은 합니다. 이론상으로요. 일단 위에서 이걸 허가해 줄지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래도 여러 문제가 있지요. 예를 들어 SCP-1699-KO-A가 시중에 유통될 가능성도 그렇고요.

휘영: 그건 괜찮을 거예요. 소독제 언니는 어디까지나 박사님에게 알리는 거랑 먹고 살 문제 때문에 그랬으니까요. 하면서도 옛날 생각 나서 많이 슬펐대요. 첫 번째 문제는 해결되었고, 두 번째 문제도 언니라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풍소경 박사: …일단 얘기해 보겠습니다. 쉽지는 않겠습니다만, 만약 이대로 진행된다면 확실히 저에게 있어서도 이상적인 결과일 테니까요. 물론 진행하더라도 그간 행적에 대한 입지 문제가 있지만, 그건 저희가 해결해 볼 수 있을 테고…

강나루: 네. 그러면 저는 주석과 다른 맹원들을 설득해 보겠습니다. 재단만큼은 아니지만 이쪽 문제도 있을 테니까요.

풍소경 박사: 네. 그건 잘 부탁합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휘영 씨.

휘영: (강나루를 따라가다 뒤를 돌아보며)네?

풍소경 박사: 제가 했어야 했던 일들을… 그녀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결론: 이후 풍소경 박사는 현재와 같은 격리 절차를 제기했으며, 이는 능구렁이 손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후 재단은 능구렁이 손과 정식으로 협정을 맺었고, 이것이 유지되는 한 SCP-1699-KO를 격리하지 아니하기로 결정되었다. 현재 SCP-1699-KO는 재단 및 변칙예술학부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협정이 파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간주된다.


한때 길을 찾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우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처받고 상처 입히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길을 만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실패가 굴러간 것은 그것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제 더 이상 고독에 지치지 않는다. 내 뒤를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햇빛이 따사로운 것이 자신이 악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건 잘 알지 않은가.
해온 죄를 닦으며 나는 나아간다.
속죄를 하고 해결을 하며 나는 나아간다.

어둠 너머에는 별이 있고, 머지않아 떠오를 빛이 있다.
별은 방향을 알리고, 빛은 길을 알린다.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갈 것이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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