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557-KO



모두가 알았으면 해서요.

그냥 그렇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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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다시 울적한 악몽을 깨며 하루를 시작한다. 비 오는 날의 역겨운 승합차 냄새처럼, 하얀 종이에 베인 내 손가락처럼, 웅덩이 위 일렁이는 무지갯빛 기름처럼, 방송이 끝난 텔레비전의 잿빛 잡음처럼, 비틀리는 속을 잡아 때며 화장실로 향한다.

언제나 눈을 감을 수 없다. 눈을 감을 때마다 보이니까.

나는 감기는 눈을 끌어올리며 옷무매를 다듬는다.

단추를 매던 중, 하나가 톡 하고는 떨어진다. 굳이 주워 담지는 않았다. 검정 넥타이로 목을 쥐어 매었다.

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한다. 아침은 먹지 않는다. 그런지도 몇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내 오랜 기억과는 지나치게 상이한 복도를 걷는다.

새벽 5시 20분의 복도는 퍽 조용하다. 누구는 자고, 누구는 씻고, 누구는 밥을 먹을 시간이건만, 나는 홀로 빈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본다. 이 또한 몇 년 된 나의 오랜 습관이다.

아침 7시 40분. 같은 사무실을 쓰는 동료들이 몇몇 들어온다. 고개만 까딱이곤 인사를 끝냈다.

동료들은 어젯밤 별을 보다 들어왔다고 한다. 심리치료부서와 천문학부가 함께하는 행사였다나. 서로서로 자신이 얼마나 밝고 얼마나 큰 별을 봤는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사무실은 점점 북적이기 시작한다. 옆 부서에서 누가 프로젝트를 하나 날려먹었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심리치료 활동을 하던 중 펑펑 울어서 창피를 당했다고도 한다. 누구는 애틋한 사랑을 나눈단다. 북적이는 사무실. 나는 묵묵히 듣고만 있는다. 저런 이야기에 낄 바엔 그저 업무를 하는 것이 나에겐 더욱 유익하다. 말을 하는 것은 그다지 취미가 아니니.

소식이 너무 많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소식들에 머리가 아뜩해져, 잠시 복도로 다시 나온다.

복도는, 말하자면 떠돌이 신세인 나에게, 가장 걸맞은 곳이라 할 수 있을 성싶다. 복도엔 여러가지 것들이 많다. 벽에 걸린 팸플릿들, "소식지" 보드판에 덕지덕지 붙여진 포스트잇들. 저기 너머로 고양이 귀를 단 소녀가 뛰어다닌다. 직원들은 소녀를 보며 웃고, 놀라기도 한다.

복도엔 이것저것 볼 것들이 많다. 전과는 달리. 이런 것들을 구경하는 것도 나의 유희 중 하나이다.

나는 문득 일에 대해 생각한다. 방금 쓰던 보고서를 다 작성하면, 연구팀 정기 간행물에 쓰일 기사를 작성해야겠지. 그러고선 점심을 대강 먹고, 오후 업무를 해야겠다 등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요동친다. 일, 나는 일을 꽤 즐기는 편이다. 사실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동료들에게 이끌려 이것저것 귀찮은 행사에 참여해야 하기에 하지 않는 것이다만.

상담동을 지날 때쯤, 벽에 큼지막하니 걸린 포스터가 보인다.



임상 실험 지원자 모집

장소 : 심리치료부서 제4상담실

일시 : 2월 29일까지

제약부와 수면변칙부에서 제공된 알약을 실험합니다. 알약은 꿈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보게 하므로, 신체적 피로감이나 정신적 우울감이 동반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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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 실험 모집. 복도를 거닐던 나의 눈에 그것이 들어왔다. 본디 시간 아깝다며 심리치료 같은 건 거들떠도 보지 않았으나, 어쩐지 이번만큼은 누구보다 주의 깊게 공고문을 읽고 있던 나였다.

나의 오랜 병. 그 병을 이거라면 치료할 수만 있을 것 같다. 홀로 짊어져야만 하는 병을, 그 오랜 옛적의 꿈결을 떨쳐낼 수만 있다면.

이거라면 이겨낼 수 있다.

나는 홀린 듯 모집 공고지 아래에 걸린 전화번호를 핸드폰에 적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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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1557-KO

등급: 안전

특수 격리 절차: SCP-1557-KO-1과 SCP-1557-KO-2는 안전형 표준 금고에 보관한다. 허가받지 않은 사용은 금한다.

설명: SCP-1557-KO는 수면변칙부와 제약부가 협업하며 제작한 흰색의 캡슐형 알약(이하 SCP-1557-KO-1)과 캠코더 하나(이하 SCP-1557-KO-2)이다. 이는 심리치료부서에서 심리치료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제작을 요청했으며, 현재 실험 중에 있다.

SCP-1557-KO-1을 인간이 복용하게 되면 약 5분 후 렘수면 상태에 빠지며 특정한 꿈을 꾸게 된다. 복용자(이하 SCP-1557-KO-a)가 깨어나게 되면 SCP-1557-KO-2에 SCP-1557-KO-a가 꾼 꿈의 내용이 녹화된다. 보통 10~15분 분량으로, 여러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이는 꿈의 자체적인 특성 때문인 것으로 유추된다.

SCP-1557-KO-a는 꿈속에서 자신의 과거, 혹은 현재와 관련된 여러 심상들을 경험한다. SCP-1557-KO-1이 어떻게 이러한 작용을 이끌어내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꿈들은 일부, 혹은 대부분이 자각몽의 형식을 띄지만, 복용자에 따라 자각몽의 비율은 천차만별이다.

이하 내용은 심리치료부서에서 진행된 임상 실험 내용이다.

부록-1:

<실험기록-1557-KO>

대상: 제 57K 기지 정설 연구원
비고: 자원하였다.


(상담실 안에 정설 연구원이 앉아있다. 옆에는 침대와 SCP-1557-KO-1, SCP-1557-KO-2가 놓여있다.)

정설 연구원: (알약을 집어든다.)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정설 연구원이 알약을 복용한다.)

정설 연구원: 맛은… 씁니다. 머리가 좀 아프군요.

(정설 연구원이 침대에 눕는다. 5분 후, 정설 연구원이 잠에 빠진다.)


(캠코더에 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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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한 번 뒤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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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을 때마다 그대가 보여요

그대는 웃고 있었죠.

아니, 아닌가?

잘 안 보여요.



1

먼 옛날.

"안녕하십니까. 새로 들어온 신입, 정설입니다."

양복을 입은 청년이 말했다.

"애가 왤케 맥이 없어. 오다가 이사관한테 맞았냐?"

"미친놈. 초면에 뭐라는거야. 됐다. 그래, 영수한이다. 니 사수."

까까머리를 한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옷엔 피인지 기름인지 모를 얼룩이 묻어있었다.

"윤현경이라고 해. 팀장님 빼곤 우리 팀에선 제일 고참. 잘 부탁해."

꽁지머리를 한 여자가 말했다. 회색 뿔테안경이 코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있었다.

"박수철. 그리고 저쪽은 태주영. 잘해보자."

초췌한 얼굴의 남자가 말했다. 주영이라 불린 여자는 건너편 테이블에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래, 대충 자기소개는 다 한거 같네. 설이? 반갑다. 내가 팀장이야. 가람. 김가람이라고 해. 재단 처음이라고 했지?"

팀장.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눈만은 초롱초롱했다.

"네. 이번에 재단 처음 입사했습니다."

"그래, 아마 처음엔 조금 힘들텐데, 곧 익숙해질거다."

팀장이 설의 어깨를 툭툭 쳤다.

"열심히 해보자. 알겠지?"

"넵. 알겠습니다."

"좋네. 맘에 들어. 믿는다."

팀장이 설을 보며 빙긋 웃었다.


2

설은 연구 보조직이었다. 말이 연구 보조지, 사실은 시다바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직책이었지만. 3주 된 예비 연구원인 설에겐 감지덕지한 직책이었다.

커피를 타고, 서류를 나르고, 이것저것 쌓인 이메일을수 대충 처리하다 보면 어느새 점심시간, 저녁시간을 지나 하루가 훌쩍 지나있었다. 연구 보조라는 직책에 걸맞는 수준의 업무량에 터무니없이 낮은 봉급이었지만, 설은 나름대로 잘 지냈다

57K의 지하는 서늘했다. 전기세를 아끼겠다는 명목으로 복도에는 파란 형광등 하나만이 2미터 간격으로 놓여있을 뿐이다. 복도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업무에 열중하고 있었으니, 그리고 복도엔 여전히 아무도 없고 찬 기운과 흐느적한 공기와 사람 하나만 하늘하늘 거니며 이곳저곳을 빌붙으니, 당연지사였다. 설은 간간이 시간이 날 땐 홀로 텅 빈 복도를 걸었다. 지하 깊숙이 박힌 연구동에서 그것은 설의 유일한 유희거리였다.

누구는 할 일 없이 쏘다니는 설을 보며 욕했다. 신참 주제에 일은 안하고 놀고 먹기만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설도 인정했다. 다만 팀장은 달랐다. 팀장은 왜 그렇게 말하냐. 너는 신입일 때 생각 안 나냐며 오히려 자기가 더 화를 내주었다. 설은 부담스러웠다. 자신도 알았다. 다들 일에 열중할 때 자기는 할 일이 없다고 나태하게 군 것은 사실이다. 남들 다 할 일 찾아 스스로 할 때 사수가 내려주는 일만 대충 해치우고 싸돌아다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저 팀장이라는 인간은 왜 저를 그토록이나 보호해주나. 조금 버거운 것은 맞았다. 다만 한편으론 감사했다. 이런 자신이라도 감싸주고 대신 화내주는 팀장에게 고마웠다.

설은 조금은 달라지기로 했다.

2주가 지나고, 설은 더 오래 일을 했다. 직접 할 일을 찾았다. 물론 그런다고 월급이 바뀌지 않는다. 인사 평가도 그대로다. 다만 설은 묵묵히 했다. 팀장이 그러지 않았나. 믿는다고. 믿음을 보답하기 위해, 혹은 자신을 감싸주던 것에 대한 나름의 감사 표현으로, 설은 더욱 열심히 일을 했다.

1달이 지났다. 설은 이제는 나름 자부할 만한 업무량을 지녔다. 다른 연구원들과 비슷하거나, 혹은 더 많은 정도의 일을 했다. 다들 왜 설이 승진이 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설은 뭘 그정도까지냐고, 승진은 바라지도 않는다고 답하곤 했다. 복도를 걸은지도 몇 주가 됐다.

2달이 지나고, 설은 문득 자신의 일에 회의감을 느꼈다. 자기는 무슨 생산적이고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길래 이 밑에 처박혀 있나. 인류를 괴물들로부터 수호하는 일이라길래 박사를 따자마자 맨발로 달려 나왔다. 자기는 나름 대학의 이름난 최연소 박사학위라고 기세등등하여 왔더니만, 자기보다 더 멋진 삶을 살아온 사람들 천지고, 승진은 되지도 않으며,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며 대학원 때와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설은 지긋지긋했다. 전부 그만두고 싶었다. 이것은 자신의 고질병이다. 권태—설은 본질적으로 나태하며 성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에, 설에게 이런 삶이란 한번이면 족했던, 그런 것이었다. 권태가 목을 타고 기어올랐다.

4달이 지나곤, 설은 마침내 연구 보조직이라는 직책에서 벗어났다. 고대하던 승진. 설은 이제 어엿한 연구원이다. 살짝 오른 봉급과, 턱없이 늘어난 책임감. 드디어 정규직이 되었다는 기쁨보다도, 목에 맨 넥타이 때문인지, 설은 무언가 목이 매이는 기분이었다. 전의 권태와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그래도 그런 것 쯤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3

설은 언젠가 프로젝트를 하나 하게 되었다. 물론 그저 일개 연구원이니만큼 주도를 한다던가의 일은 없었다만. 아무튼 마침내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프로젝트의 결과는 썩 처참했다.

팀장이 잠을 자지 않던 것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냥 핑계였다. 요즘 커피를 많이 마셔서 그런가 잠이 잘 안 오더라. 아까 수철이가 비명질러서 잠이 다 깼다.

설은 이미 한참 전에 눈치를 챘었다. 우리 팀은 지금 위태롭다. 마치 툭 하고 치면 부러져버릴 나뭇가지처럼, 혹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아니, 대충 아무 비유나 갖다 붙여도 될 정도로. 말단 부서의 말단 중 제일 말단인 그런 팀.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팀. 그동안은 팀장의 수완과 퍽 괜찮게 나오던 실적으로 어찌저찌 연명하고 있었더라만, 이제는 실적조차도 가뭄에 콩 나듯이 나오는 그런 상황이다. 그러니만큼 팀장이 가장 부담스러워하고 있단 걸 설은 가장 잘 알았다. 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믿는다고. 누구보다 자신을 존중해줬고, 또 설 자신이 누구보다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다.

설은 무언가 해야했다.


4

"팀장님."

설은 나즈막히 팀장을 불렀다. 팀장은 커피를 마시던 입을 잠시 오물오물 하고는 대답했다.

"그래 뭔 일이냐. 설아."

"요즘 괜찮으십니까.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서요."

"난 또 뭐라고. 신경 꺼라 인마. 나 괜찮다."

"아뇨, 안 괜찮아 보입니다."

설이 팀장 옆으로 의자를 끌고 가며 말했다. 의자 다리가 낡은 바닥 타일에 끼이익 끌렸다.

"팀장님. 그 뭐냐, 요즘 실적도 잘 안나오고, 많이 위태위태 하잖아요. 음.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드셔도, 저는 팀장님 믿고, 또 항상 그렇게 누구보다 먼저 일 해내가는 거, 멋지다고 생각해요. 음… 팀장님 그—"

"푸흡."

팀장이 입을 가리며 끅끅 웃었다. 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팀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에고, 너도 참 고생이 많다. 나같은 사람 위로도 다 해주고."

팀장이 웃음을 겨우 참고는 말했다.

"아니 그, 위로라기보다는 뭐랄까…"

"무뚝뚝한 새낀줄 알았더니 의외로 사려깊네. 고맙다."

팀장이 빙긋 웃어 보인다.

"아니 팀장님 위로 아니라니까요!"

"뭐래, 암튼 나 안 힘들다. 그리고, 우리 팀 안 사라져. 요번에 기가막히는 프로젝트를 하나 받아왔거든. 이거만 성공적으로 해내면 우린 이제 말단 탈출이다."

"예, 뭐, 좋네요…"

설이 머쓱하게 머리를 글적인다. 팀장은 다시 커피를 홀짝 들이킨다.

"아, 그리고."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너 위로 엄청 못하더라. 좀 연습해야겠어."


5

그러곤 딱히 할 말이 없다.


6

그리고,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우리의 삶을 통째로 삼켜버린 그날.

설이 들어온 지 1년이 채 안 되던 그날

유난히 업무가 더 고되었던 그날.

그리운 2017년의 어느 날.

세상은 그날 무너졌다. 깊은 무저갱 아래로 한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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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곳에 내려왔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그리웠던 그날을 기억합니다.

기억, 합니다.



팀장님, 안 힘듭니까?

설은 한층 더 수척해진 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 힘들다고 드러누우면 뭐 돈 들어오냐? 힘들어도 닥치고 해야지.

팀장이 헛웃음을 지으며 대꾸한다.

그래도 요즘 더 그래보여서요.

니 걱정이나 더 해라. 거울은 안보냐?

설의 얼굴에도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긴 마찬가지다.

선배, 설이 말도 맞아요. 최근 많이 무리하셨잖아요.

한 연구원이 말했다. 그 또한 꾀죄죄한 몰골이다.

뭐 언제는 야근 안 했다고… 내가 알아서 한다. 일이나 해.

팀장은 몸을 다시 컴퓨터 앞으로 돌린다.

커피 한 잔 타 드릴까요?

나야 고맙지 뭐.

정설씨, 저도 한 잔 부탁해요.

네, 금방 갔다 오겠슴다.

신입이 저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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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하나 아래엔 벌레 한 마리가 묻혀있습니다.

돌 둘 아래엔 벌레 두 마리가 묻혀있습니다.

나는 그네들을 다 셀 수가 없습니다.



폭발. 암전. 점멸하는 붉은 빛 보조등.

낮게 울리는 경보. 직원들의 아우성.

정신을 차렸을 땐, 나는 이미 바닥 어딘가에 고꾸라져있었다. 누군가 나를 흔들었고, 어딘가로 잡아끌었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온몸 어디든 성한 곳이 없었다. 연구실은 난장판이 된 채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아"

누군가 소리를 치는 게 들린다.

"…아!"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목소리…

"설아!"

팀장의 목소리. 팀장이 나를 다급하게 부른다.

"설아, 정신차려!"

"팀장님…?"

목소리가 갈라진다. 먼지를 너무 많이 마셨나.

"설아 잘 들어라."

팀장이 나를 잡아 끈다.

"여기서 복도 끝까지 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연구실이다. 세 번째 연구실. 거기 들어가면 공간도약기 있어. 그거 타고 밖으로 나가라. 빨리!"

"네…? 아니, 쿨럭. 잠깐… 윽, 무슨 일…입니까?"

"기지가 뒤집어졌어. 대규모 격리 파기다. 이럴 시간도 없어. 빨리 내가 말한 연구실로 가서 탈출해!"

"네? 아니, 쿨럭, 무슨, 저만요? 팀장, 쿨럭, 님은요? "

팀장이 대답을 끈다. 분명 시간 없다 했으면서.

"…나는 여기 남는다."

"예? 무슨 개소리에요. 쿨럭, 미치셨어요?"

"연구 자료 복구해야 해. 이거 없으면 죽도 밥도 못된다."

팀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팀장이 잔해를 뒤져 무언가를 긁어낸다. 크고 작은 잔해들이 팀장의 발 밑으로 흐른다.

"팀장님. 팀장님도 나가셔야죠. 다 같이 살아야 할 거 아닙니까!"

내가 소리쳤다. 팀장은 잠깐 멈춰서는 듯 했으나, 못 들은 척 다시 잔해를 뒤진다.

"팀장님—"

"다 같이? 다 같이? 싹 다 죽었어. 다 같이는 무슨 빌어먹을 다 같이야!!"

정적.

"다 죽었다고. 현경이가 죽었고, 수한이도 죽었고, 주영이도, 수철이도 다 죽었다고! 잔해에 깔려서. 순식간에 이 밑으로 파묻혔다고."

"…선배들이요?"

"나는, 나는, 나는 그 새끼들 팔 한 짝이라도 찾기 전엔 안 간다. 넌 가라. 젊잖아. 너마저 죽으면 안 되는 거야… 내가 여기서 뒈지더라도 너는 나가라. 나가서 살아. 제발 살라고. 네 청춘을 이딴 데서 헛되이 버리지 말라고…"

떨리는 목소리. 그의 몸도 같이 따라 흔들린다. 낮게 가라앉은 공기를 길게, 끄는 소리. 팀장이 흐느낀다. 언제라도 힘든 기색 없던 팀장이.

"지랄 마세요… 같이 가면 되잖아요…"

내가 절뚝이며 팀장에게로 다가간다. 왼쪽 옆구리가 아프다. 갈비뼈가 부러졌나. 아니, 어쩌면 거기만이 아닐 수도 있다. 어깨도 나간 것 같다.

"내가 살아서 나가도 무슨 의미가 있겠니…내 인생이… 내 모든 친구들이 전부 한순간에 씻겨나갔어. 설아. 제발 내 말 들으렴. 복도 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연구실이다. 제, 제발 가서, 살아라. 살아다오."

동료들이 죽었다. 아마 내가 떠나면 곧 팀장도 죽을거다. 하지만 내가 떠나지 않는다면? 팀장과 함께 산다는 보장이 있나? 내가 정말로 떠나야만 하나? 아니, 그래도…

"팀장님… 같이 가자구요…"

내가 애원했다. 팀장은 그저 가만히 서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같이 살 수 있잖아요. 왜 안 그러는 거예요. 같이 나가서, 현경 선배랑, 수한 선배랑, 주영 선배랑, 수철 선배 장례식도 치러주고, 서로를 토닥여주고, 위로해 주며 살아갈 수 있잖아요. 왜 나만 떠나가야 하냐구요.

왜 항상 모든 걸 덜어내야만, 씻어내야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냐는 말이에요.

"일인용이야. 이미 누가 썼을 수도 있지. 빨리 가."

일인용. 그 한 단어를 팀장이 힘겹게 내뱉는다. 어쩌면 새빨간 거짓말일 수도 있는 말을, 힘겹게 긁어내며 꺼낸다. 아깐 몰랐지만, 이제 보니 팀장에겐 왼팔이 없다. 덜렁거리는 오른팔로 잔해를 긁어내며 옛 친우들의 찌꺼기를 주워담고 있었다.

참, 참 비루하지 않는가. 왜 나만 사지 멀쩡히 붙어있는지. 왜 다른 선배들은 흔적도 없이 저 밑에 박혀있는지, 왜 팀장의 왼팔은 주인을 버리고 가버렸는지.

복잡하다. 세상이 그렇듯.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팀장을 포기하지 못했다. 팀장. 팀장이 그랬잖아요. 언젠간 이 거지 같은 곳을 떠나 더 멋진 직책에, 더 많은 돈을 벌며 살겠다고요. 근데 왜 다 끝내버리는 거예요. 제발.

"하지만 팀장님, 하지만…"

"씨발 가라고!"

새된 목소리가 잔해 속에서 울린다. 팀장이 벌떡 일어선다. 팀장의 한 짝뿐인 손이 벌벌 떨린다.

"…가라고. 가서 살아남으라고."

나는 이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 거기 함께 남았어야 했을까. 아님 그때 팀장을 업고 뛰었어야 했나. 이제는 알 수도 없다.

그리고 이 빌어쳐먹을 새끼는 발을 돌려 달렸다. 죽도록 달렸다. 사이렌과 경고등과 잔해들을 해치며 달렸다.

결국엔 살아남았다. 모두를 뒤로 한 채.




Ash

너는 내가 죽어도 나를 잊고 잊어 땅 깊숙이 묻어 떠나버리거라.

그래서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금 살아가거라.



복도 끝까지 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연구실.

복도 끝까지 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연구실.

복도 끝까지 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어서 세 번째 연구실.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나는 살고싶었으니까. 아직은 죽기 싫었으니까.

그랬던 거다. 나는 나 같은 놈 하나라도 살리겠다던 팀장과 저 아래 파묻힌 선배들과 번호도 모르는 변칙개체한테 먹혀버리고 갈려버린 이름 모를 직원들을 버리고 달렸던 거다. 내 한 몸 살리겠다고 그 모두를 뒤로 한 채 달리고 또 달렸던 거다.

나는, 나는 죄인이요, 참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자다. 씻어낼 수 없는 죄악이다. 사라져 마땅할 오물이다.

그렇게 꼴에 미안하다 외치며 눈물을 흘리며 달렸다.

그리고 결국엔 도착했다.

복도 끝까지 쭉 달리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세 번째 연구실. 문을 열자 보랏빛을 내며 진동하는 기계가 우뚝 서 있었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작은 포트. 일인용이라더니, 진짜였네요. 근처 단말기에 대충 인사 카드를 찍는다. 본래 이럴 때 쓰라 만든 게 맞는지 바로 접근 승인이 떴다. 포트가 서서히 열렸다. 나는 그곳에 잽싸게 손을 집어넣는다. 차가웠다. 이내 팔을, 어깨를, 가슴을, 머리를 집어넣었다. 마치 물속에 들어간 양, 한밤 겨울바다의 서러움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포트가 닫히며 짙은 액체가 차오른다.

가슴이 답답하다.

그리고 너무나도 차가웠다.

버틸 수 없을 만큼.




Rain

긴 긴 숨을 끝내고 마침내 고개를 들었을 때,

하늘은 덧없이도 맑더라.




이제 다시 앞을 볼 때다.



꿈이 깨어지고, 나는 한 거울 앞에 서 있다.

거울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옛날의 내가, 지금의 내가, 먼 훗날의 내가. 그리고 어디에도 없을 내가. 그 안에 있다.

그리고 그 앞엔 한없이 비루한 내가 서있다.

"아파."

마음도 몸도 아프다. 어느게 먼저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마음이 먼저 찢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혹은 몸이 먼저 닳아버렸을 수도 있다. 둘 중 하나가 아프면, 나머지 하나는 괜스레 미안해져 자신도 아파지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럼 둘 다 아프다. 이젠 누구도 미안하지 않다. 누구도 안 아프지 않다.

"이제는 안 아플거라 생각했어. 아니, 아침에도 다른 때와 다름없이 아팠지만, 그래도 전보단 나을 거라 생각했어. 근데, 아니야. 전보다 낫지 않더라. 전보다 아파. 점점 곪아서, 더 아파."

상처는, 놔두면 썩는다.

"나는… 나는 언제쯤… 이 거지같은 꿈에서 깰 수 있는거야… 뭐라 말 좀 해봐."

—네가 혼자 깰 수 있는 게 아냐.

거울 반대편의 내가 말한다.

—가끔은, 혼자선 일어설 기운도 없을 땐, 누군가 일으켜줄 때도 있는거야.

"…나는 아직 깰 준비가 안됐어. 아직도 눈을 감으면, 고장난 테이프처럼… 그때의 풍경이 색색이 떠올라. 점점 더 선명해지는 그때의 기억이 밤마다 나를 찌르고, 아침이면 토할 것 같은 기분에서 잠을 깨. 나는, 나는 아직 멀었나봐. 아직 한참…"

나는 아직 모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볼 수 있다. 모두의 얼굴을 한 손으로 그려볼 수 있다. 모두의 말버릇을, 모두의 습관을, 하나하나 따라할 수 있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그 기억을, 러닝타임이 무한한 영화같은 그런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을 수 있다.

아, 나는 아직 멀었구나. 아직 한참 남았구나.

—너는 그리울거야.

거울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모두가 그립겠지. 그때의 찬란했던 기억에 아직 눈이 부시겠지.

"그립다고…?"

—그래서 결국엔, 이 긴 기억 속에, 긴 긴 꿈 속에 갇혀버린거야.

"나는… 나는…"

정말로 그리운 걸까. 그저 너무 끔찍한 여운에 몸부림치는 것은 아닐까.

"잘… 모르겠어."

어렵다.

—만약 아니더라도, 혹시나 그저 고통의 여진일지라도, 그립다고 생각하는 편이, 덜 아프지 않을까.

덜 아프다. 덜 아프다는 게 무슨 뜻일까. 아픈 건 그저 아픈 건데.

—다리가 너무 아프면, 기대도 돼.

"아직 서있을 수 있어…"

—그래도 의자에 앉는 편이 좋잖아.

"알 수 없는… 말들만 하네."

거울이 하는 모든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저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다. 나는 아직 아파야 한다. 그동안 나 대신 모두가 아파주었지 않는가. 아파도 된다. 아직은 아파도 된다.

—아직도 모르겠니. 왜 네가 이 약을 먹었는지, 왜 네가 오늘 복도를 걷고 싶은 기분이 들었는지, 왜 네가 오늘도 끔찍한 기분으로 잠을 깼는지.

—너는, 이제 그만 아프고 싶은 거야

—그래서 이 약을 먹었지. 그래서 너의 지난 기억들을 봤지. 그래서 나를 만났지. 거울 속의 너를 말이야.

"개소리 하지 마… 그렇게… 그렇게 쉽게 끝나도 되는 일이 아니야. 그렇게 네 멋대로 끝맺음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무심코 내 입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마른 입이 거칠게 진동했다.

"선배들은… 팀장은… 그 지옥같던 곳에서 죽어갔어. 내가 도망쳐서. 나도 그때 죽었어야 해! 그때 팀장과 같이 그 아래에 남았어야 했다고! 네가 뭘 알아. 네가 그 기분을 어떻게 아냐고. 너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나를 그냥… 그냥 계속 아픈 채로 내버려 둬…"

또다시 그날의 기억.

팀장의 눈을 기억한다. 무너지던 지하동에서의 그 눈을. 애처로이 떨리던 그 눈을 똑똑히 기억한다. 아마 팀장은 내가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겠지. 내가 끝까지 곁에 남아있기를 바랐겠지.

팀장의 손을 기억한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끝까지 돌무더기를 파내려가던 그 손을 기억한다. 손톱이 닳아 깨지고 손가락이 분질러질 때까지 잔해를 뒤졌겠지. 그러곤 몇 남지 않은 살덩이를 끌어안고는 울었을테지.

팀장의 마지막 모습을, 나한테 살아가라고 소리치던 팀장의 마지막 모습을, 아직도 생생이 기억한다.

기억을… 한다.

"아직 남았어…"

남았다. 꺾인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내가 남았다.

—왜 자신이 아프길 바라는거야. 이미 충분히 아팠잖아. 다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차마 이해하지 못할 만큼 아팠잖아.

—이제 그만 아파줘.

"…부탁하는거냐…"

—응. 부탁이야. 들어주는 건 네 맘이지.

"그럼 내가 그만 아프고 싶다고 해서… 그만 아플 수 있다는 법은 없잖아."

—사람은, 누구나 섬이 아니지. 아니, 어쩌면 섬일지도 몰라. 분명히 섬일거야. 우린 서로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없어.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기분이 어떤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 그치만 우리한테는 배가 있잖아. 섬 사이를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너는 정말로… 정말로 내가… 괜찮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

목소리가 떨린다. 마치 그날의 모두처럼. 떨리는 목소리에 슬픔을 묻는다. 많은 것들을 묻는다.

"아파… 그래, 오랫동안 아파왔어. 너무… 오랫동안…"

—가끔은 남한테 기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야.

"그래… 이젠, 이제는 좀, 쉴 때가 온 것 같아…"

얼마나 오래 걸어왔을까. 이 긴 기억을. 기억도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로부터 전해 오는 모두의 그리움을, 이제는 그만 내려두고, 잠시 쉴 때가 오지 않았나.

감정이 흘러 넘친다. 내가 손수 쌓은 높다란 댐으로부터. 새어나온다. 금이, 쩌적 하고는 퍼진다.

깊은 물결이 댐을 부수어 나온다.

나의 눈에선 알게 모르게 눈물이 몇 방울 떨어진다.

"쉬다 보면, 언젠가는 아프지 않을 날이 오겠지. 모두가 기억나지 않을, 그런 날이…"

언제나 그렇듯, 모든 것을 씻어내야만, 한 발자국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또 다시 앞을 본다



설은 마침내 꿈에서 깨어났다. 적당히 몸을 추스리고, 면담 몇 번 하고, 그러고 나왔다. 머리는 아직 몽롱했다만 마음만은 한결 가벼웠다.

아직은 간간이 악몽을 꾼다. 그때의 기억이 온 뼈마디 사이사이로 흘러들어가는 느낌. 그러나 전처럼 역겹지는 않다.

아직은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다. 어쩌면 저 사람들도 나를 떠나버리지 않을까. 다시 홀로 남지 않을까 하는 공포감이 몸을 덮칠 때도 있다. 그래도 전처럼 고되지는 않다.

아직은, 아프다. 눈을 감으면 희미한 그때의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덜 아프다. 버틸 수 있을 만큼 아프다.

설은 일주일에 한 번 상담 치료를 받는다. 그곳에서 설은 자신의 긴 과거를 돌아본다. 그 길고 지루한 테이프를 돌려본다. 그래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곁에서 함께 봐주는 사람이 있다.

상담을 받을 때마다 설은 눈물을 흘긴다. 대성통곡을 하던 첫 날보단 덜 흘린다. 언젠가는 흘리지 않을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오후 5시 27분. 3분 뒤면 상담이 시작된다. 설은 오늘 또다시 한 걸음 나아갈 것이다.

설은 상담실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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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기록-XXXX-KO>

대상: 제 57K 기지 정설 연구원
담당 상담가: 김명준 심리상담가
비고: N/A


(문이 열리고 정설 연구원이 들어온다.)

김명준 심리상담가: 반가워요, 정설 씨. 오늘 기분은 좀 어떤가요?

정설 연구원: 아, 기분… 좋은 것 같아요. 마침 날씨도 좋고, 오늘 아침엔 꿈도 그리 사납진 않았어서요.

김명준 심리상담가: 다행이네요. 점점 나아지고 있으신가봐요. 아참, 저번에 말씀하셨던 천체 관측회는 어떠셨어요?

정설 연구원: 별이 참 많더라고요. 그날 하루종일 흐렸어서 별이 안보이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도 밤에는 참 맑았어서, 별 어려움 없이 봤던 것 같아요. 아, 목성을 봤어요. 지도 연구원 분이 망원경에 눈 대보라 하시는데, 엄청 밝은 별이 있더라고요. 그게 목성이더래요. 참 예뻤습니다… 음, 너무 tmi였을까요?

김명준 심리상담가: 아뇨, 아녜요. 이렇게 맘을 털어놓으시는 것이 저한테는 정말로 고마운걸요.

(김명준 심리상담가가 노트에 무언가를 적는다. 볼펜의 사각이는 소리가 상담실에 울린다.)

김명준 심리상담가: 그래요. 요즘에 하시는 일들은 어떤가요?

정설 연구원: 음, 일이라… 아, 잠시만요.

(정설 연구원이 탁자 위에 놓인 페트병을 열어 물을 한 모금 마신다.)

정설 연구원: 죄송합니다. 목이 좀 타서요.

김명준 심리상담가: 아녜요. 괜찮아요.

정설 연구원: 아무튼, 음, 일… 전보다는 확실히 일하는 양이 적어진 것 같아요. 아마 이런 저런 활동들을 많이 하게 돼서 그럴까요. 뭐, 가끔 일을 안 할 때마다 좀 불안하다거나 그러긴 한데, 그래도 훨씬 전보다는 낫네요. 일이 사람을 망치는 게 맞긴 한가봐요. (웃음.)

김명준 심리상담가: 일 줄이셨다니, 다행이네요. 전에는 무슨 기계처럼 일했잖아요.

정설 연구원: 그러게요… 안하면 좀 불안해지다보니… 뭐랄까, 워커홀릭? 그런거죠.

김명준 심리상담가: (웃음.) 그럴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참 좋은 거예요. 일 줄이고 체험활동 늘리시니까 컨디션 좋아지신게 눈에 확 보이네요.

정설 연구원: 하하, 그런가요.

(정설 연구원이 머리를 글적인다.)

김명준 심리상담가: 네, 물론이죠. 훨씬 좋아보여요. 진심으로요.

정설 연구원: 하하, 감사합니다.

김명준 심리상담가: 그러면… 그건 좀 어떤가요? 옛날 얘기 말예요.

정설 연구원: 아, 그건…

(정설 연구원의 표정이 굳어지는 듯 하다.)

정설 연구원: 글쎄, 아직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상처가 낫는 데엔 시간이 좀 걸리기 마련이니까요.

정설 연구원: 그래도, 전보단 훨씬 나아졌다는 게 느껴져요. 꿈도 훨씬 나아졌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이제는 전처럼 어렵지는 않아요. 아마 다 상담가님 덕분이겠죠.

김명준 심리상담가: 아니에요. 전부 정설 씨가 용기 있게 나서 준 덕분인걸요.

정설 연구원: 하하, 그럴까요. 아무튼 덕분에 더이상 혼자 짊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전에는 혼자서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에 급급했는데, 지금은 상담가님 덕분에 제 아픔도 슬픔도 예전보단 덜 한 것 같네요. 첫날에는 참 많이 울었었죠. 이제는 별로 아무렇지도 않네요. 다 상담가님 덕분입니다.

김명준 심리상담가: 전부 다 정설 씨가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이겨내겠노라고 다짐한 것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결국엔 혼자서 해내셨네요.

정설 연구원: 그래도 상담가님 도움이 없었다면 못 했을텐데요.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시니 고맙네요. 그나저나, 다음 상담은 언제쯤으로 잡을까요?

김명준 심리상담가: 우리가 상담을 시작한지도 벌써 3개월이 다 되어가죠.

정설 연구원: 시간 참 빠르네요…

김명준 심리상담가: 제 생각엔, 정설 씨는 더이상 상담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정도로 충분히 회복하셨습니다. 다음 상담 날짜는 좀 더 미뤄두는 걸로 하는게 어떨까요?

정설 연구원: 그건… 제가 앞으로, 더 안 와도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김명준 심리상담가: 오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언제나 힘들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다시 이곳으로 오셔도 돼요. 언제든지 환영할게요.

정설 연구원: 그럼…

김명준 심리상담가: 네, 오늘의 상담은, 우리의 상담은 여기까지입니다. 수고하셨어요. 정설 씨.

정설 연구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설 연구원이 연신 고개를 숙인다. 그의 눈에는 눈물 방울이 맺혀있다.)

김명준 심리상담가: 한 켠 더 성장하셨네요. 그럼 이만, 조심히 들어가세요.

(정설 연구원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김명준 심리상담가가 짐을 정리하던 중, 정설 연구원이 그에게 손을 내민다.)

(김명준 심리상담가는 정설 연구원과 악수를 한다.)

(정설 연구원이 크게 웃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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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2:
SCP-1557-KO는 임상 실험 과정에서 적격 판정을 받아 2025년 8월 내로 실용화를 목표로 두고 있다. SCP-1557-KO가 실용화된다면 심리상담 분야에서 높은 효율성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고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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