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412-KO

2023년 1월 1일
내 아버지는 올해로 연세가 아흔 일곱이 되셨다.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이시다. 집 한 구석에는 아버지의 무공훈장이 빛을 바랜 채 전시되어 있다. 아버지는 아주 예전부터 철도원으로 근무하시다가 광복을 맞고 그 후에 6.25 전쟁까지 겪으셨다. 아버지는 원래 후방지역에서 물자 운송이나 보급 따위를 맡는 역할을 하셨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최전방 작전에 자원하셨다고 한다. 이유를 묻고 싶지만 이제 와서는 이유를 물어볼 수도 없다.

이제 아버지는 말도 잘 못 하신다. 우리가 말하는 것도 엄청 크게 소리쳐야 알아듣고. 원래는 그래도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이따금씩 새벽에 들리는 발소리에 깨어 일어나면 아버지가 벽에 기대어 서 있다. 뭐 하냐고 물어봤더니 "엄폐"라고 그랬다.

나는 지금까지 아버지가 말을 할 수 있었을 수준이었을 때 나에게 말해줬던 그 기록들을 끄집어내 모으고 있다.

아버지와는 기차를 탈 수가 없다.

2023년 3월 1일
이 좋은 날에 대체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역이 지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아니, 한국전쟁 때 파괴된 노선을 복구한다나 뭐라나. 아파트 근처에 철도가 지어진다는 건 고사하고 아버지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가끔씩 그렇다. 기차 선로 특유의 철컥거리고 끼익거리는 소리가 나면 방금 전까지 나를 웃으며 대하던 아버지가 갑자기 군인으로 변한다. 아버지는 발작적으로 아무거나 긴 물건을 마치 총기처럼 쥔 다음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가 저번에 나한테 말을 걸어 왔다. 얘기를 들어 보니 철도 건설 반대 시위를 하려고 다들 사람을 모으는 중이라고 한다. 나는 그걸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어봤다. 시끄러우니까. 맨날 아파트 앞에 기차가 수십 번씩 지나가는데 안 시끄러울 리가 있겠냐고. 나한테 그랬다.

나는 시위에 참가하기로 했다. 단순히 소음 때문은 아니다.

2023년 3월 13일
우리 시위가 뉴스에 나왔다.

그리 긍정적인 기사는 아닌 것 같다. 뉴스 댓글은 개판이 났다. "그 지역"이니 뭐니.

…뉴스 댓글은 보는 게 아니다.


일련번호: 철원역

등급: 경원선1 금강산선2 없음

특수 격리 절차: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금강산로 4

설명: 나는 지금 북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그곳으로 가고 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실히 다시 알기 위해서.

그러나 그때의 모습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승강장이 싹 날아가버렸다. 아무 것도 없다. 급수탑은 붕괴했다. 선로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역명판은 있나? 있긴 하구나.

다 없어졌다. 다 터지고 부서지고 해 버렸다.


송신: DB 기술지원팀 송경욱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SCP-1412-KO-T의 이상증세가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문제를 조사 중에 있습니다.

차후 조사가 진행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수신: SCP-1412-KO 격리 담당 인원 전체


2023년 5월 7일
공사는 시위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다.

아마 이사를 가야 할 것 같다. 이사갈 돈은 있긴 했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약간은 어렴풋이 떠오른다. 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가.


내부 문건 ████-██

…당시 급조된 미군 작전조의 목표는 평강군에 고립된 잔여 병력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당시 평강군은 북한군과 중공군의 공세 거점 중 하나로, 당시 주요 공세 거점으로 사용되던 지역 중 하나였다. 이는 한반도 중부전선을 돌파하는 데에 있어 최고 관문이었으며, 엄청난 피해를 예상하여야 했다.

[중략]

…당시 작전에 지원한 이는 기관사 이정길(李正拮)로, 이후 부기관사 내각(佴刻)과 기관사 양민길(梁慜佶)이 추가로 자원하며 작전조를 수송할 계획이 완성되었다. 작전조는 용산역에서부터 기차로 출발하여 철원군을 뚫고 평강군으로 가는 것이다.


2023년 5월 19일
웬 기자가 질문을 걸어왔다.

난 그 여자한테 아무 대답도 안 했다.

그냥 가 줘요.


내부 문건 ████-██

이 작전의 가장 큰 문제는 철의 삼각지대3 중 두 주요 위치를 이루는 철원군과 평강군을 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공산군의 맹공격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평강군에 고립된 병사들을 최대한 많이 구출하고 작전조 미군들을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서는 기관사들의 수행 실력이 가장 중요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기차의 주요 운전은 이정길 기관사가 맡기로 하였다. 양민길 기관사와 내각 부기관사는 이정길 기관사를 보조하며, 이정길 기관사가 모종의 이유로 임무 수행 불능 상태가 되었을 시 양민길 기관사와 내각 부기관사 순으로 운전대를 이어 잡기로 계획하였다.


2023년 7월 14일
아버지가 사라졌다.


일련번호: 월정리역

등급: 경원선4 없음 경원선5

특수 격리 절차: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두루미로 1882

설명: 앞보단 낫다. 역사는 반쯤 불에 탔던 걸 겨우 고친 것 같은데. 안에 부서진 객차가 쓸쓸히 남아 있다.

…갑자기 한숨이 났다. 내가 뭘 안다고 이러고 있는 걸까?


송신: DB 기술지원팀 시현우

갑자기 든 생각인데, 이거 설마 SCP-1412-KO-T의 기억이 돌아온 것 아닙니까?

담당 요원에게 조사를 요청하고 싶습니다.


수신: DB 기술지원팀 송경욱


2023년 7월 19일

아버지 생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어디 갔는지 모른다.

실종 신고는 이미 했다. 며칠간 미친 사람처럼 회사도 안 나가고 아버지를 찾아다녔다.

지친다.


내부 문건 ████-██

작전조는 철원군-평강군 사이에서 북한군에 의해 일부 부상을 입었지만, 다행히도 평강군에 대부분의 작전조 병력이 무사히 하차하여 평강군에 고립된 병력을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진짜 공격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작전조의 존재를 파악한 공산군이 완전섬멸을 위해 고립된 병력과 함께 작전조까지 전부 사살하기 위해 병력을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 문건 1412-KO

요주의 관찰 대상 중 하나인 SCP-1412-KO-T가 갑작스럽게 폐선된 선로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월경하였다. 북한과 남한 정부 모두 아직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23년 8월 19일
실종 신고가 반려되었다. 이게 무슨 개소리인지 나도 이해가 안 간다.

기자가 또 찾아왔다. 이번엔 집에.

나는 그 작자를 문전박대했다.

그 여자가 문을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그럴 수도 없다.


내부 문건 1412-KO

해당 요주의 인물의 최근 활동을 감안해 판단한 결과, SCP-1412-KO-T와 관련된 정보가 누설될 위험이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그에 따라 해당 제안을 승인한다.

1412-KO

SCP-1412-KO-T 사건 관련 인물에 대한 구류 제안


제안자: SCP-1412-KO 격리 담당 인원 ███


최근 SCP-1412-KO-T의 월북 사건 및 SCP-1412-KO의 출현 상태의 변동에 관해서 현재 관련 연구팀이 집중적으로 조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SCP-1412-KO 격리 담당 인원은 최근 SCP-1412-KO-T의 아들(이하 PoI-1412로 명명)이 해당 요주의 인물의 행적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이는 SCP-1412-KO의 격리 상태 유지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행여나 SCP-1412-KO-T가 월북하였다는 정보가 밝혀질 경우 이는 단순히 SCP-1412-KO의 격리 파기뿐만 아니라 남북한 정부의 각종 법률과도 얽혀 상황이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PoI-1412의 구류를 제안합니다.


제안
PoI-1412의 구류

상태
승인됨


주석:
일이 확대되기 전에 수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2023년 8월 21일
시발, 집에 웬 군대가 들이닥쳤다. 어제 본 그 기자였다.

무슨 특무대니 어쩌니 하면서 말을 했는데 별로 알아들은 건 없다.

솔직히 들은 얘기들이 별로 믿기는 얘기는 아니지만,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가장 가능성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 아버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해 줬다. 아버지는 참전유공자이시고, 철도원이셨으며, 기관사로 전쟁에 참전했다고. 그리고 거기서… 그랬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적어도 주의 깊게 들은 것 같다. 솔직히 내가 아버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많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만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저 나는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그들은 갑자기 나를 데리고 가려 했다.

나는 거절했다. 안 된다고. 그랬더니 그들은 강제로 했다. 아직도 턱이 얼얼하다. 빌어먹을…

솔직히 뭔 소린지는 별로 못 알아먹었다. 나를 여기다 가둬놓고 안 내보낼 작정인 건 알겠다. 그래도 감옥보단 대우가 나은 것 같군.

2023년 9월 30일
날 내보내 줘 개새끼들아


일련번호: 가곡역

등급: 경원선6 없음

특수 격리 절차: 강원도 평강군 남면 가곡리 ████ ██7

설명: 심각하다. 잔해밖에 없다. 역사는 어디로 간 거지? 내가 잔해를 밟고 서 있나 보다. 완파되었군. 저 끄트머리에 그나마 창고가 하나 보인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단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더욱 포기하지 않을 거다. 뒤는 없다.


송신: DB 기술지원팀 송경욱

그거 말 되네.

근데 그래서 그 작자 어디서 찾을 건데?

북에서? 꿈 깨라. 침투는 고사하고 작전 허가부터 안 날 거다.


수신: DB 기술지원팀 시현우


내부 문건 ████-██
작전조가 평강군에서 고립된 병력을 구출하여 돌아올 무렵, 평강역-철원역 사이에서 열차에 대한 총공격이 벌어졌다.

수많은 총탄 세례 속에서 이정길 기관사는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으며 기차를 운행하였다. 결국 가곡역을 조금 넘어간 부근에서 이정길 기관사는 몸통에 총탄 6발을 맞고 의식을 잃었다. 이후 양민길 기관사가 운전대를 잡고 월정리역과 철원역을 돌파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양민길 기관사는 손 한 개를 잃는 부상을 당했다. 이후 북한 점령지역을 벗어나서는 내각 부기관사가 기차를 운행하여 종착역인 용산역에 다시 복귀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정길 기관사는 이후 사망하였으며, 양민길 기관사는 중증 PTSD8를 앓은 것으로 보고되었다. 내각 기관사는 종전 이후 1962년 수면 중 급작스러운 심장발작으로 사망하였다.


2023년 10월 18일
그래서 아버지는 언제 찾아주는 건데?

2023년 11월 26일
미칠 것 같다.

벌써 두 달에서 세 달 정도가 지나 버렸다. 아직도 아버지는 찾지도 못했다. 뭐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만히 여기서 기다리기만 하고 있으라니. 미친 척도 해 봤는데, 얘네는 아무리 미쳐도 정신병원에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이러다가는 미친 척 하다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다.

놈들의 대화에서 알 만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아버지가 전쟁 PTSD로 인해 방랑하시다가 월북하셨다고 하던데. 난 아직 믿지는 않는다.


내부 문건 ████-██

현재로서는 이 중 생존해 있는 인물은 양민길 기관사 뿐이다.


2023년 12월 10일
탈출했다.

될 대로 되라지.

대충 이야기는 들었다. 아버지가 북에 있다고.

나도 선로를 따라 달려가고 있다.


일련번호: 평강역

등급: 경원선9 강원선

특수 격리 절차: 강원도 평강군 평강읍 ███ ███ ██

설명: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10


2023년 12월 12일
여기 계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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