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095-KO
특수 격리 절차: SCP-1095-KO는 표준 안전 등급 보관함에 보관한다. 사건기록 1095-KO 이후 대상을 활용한 실험은 허가되지 않는다.
설명: SCP-1095-KO는 펠리칸 사에서 출시한 'M815' 모델과 외형적으로 동일한 형태를 가진 만년필이다. 제조사 식별 정보가 없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만년필과 다르지 않다.
SCP-1095-KO의 변칙성은 대상을 사용하여 작성된 서신이 '우체통'에 투입될 경우 활성화된다. 이때 '우체통'은 일반적인 공공 우체통뿐만 아니라, 우편함, 개인용 편지함 등 유사한 수납 구조물 또한 포함한다.
투입된 서신은 확인되지 않은 방식으로 즉시 다중 우주의 작성자 본인에게 전달된다. 전달 대상이 되는 다중우주의 범위나 성격은 현재까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으나, 해당 우주의 수신자는 본 서신이 다른 우주의 동일 개체로부터 발송되었음을 인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부 사례에서는 수신자가 이에 대한 답신을 작성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송신한 정황이 확인되었다. 이 일련의 교환 과정은 통상적인 지연 없이 거의 즉각적으로 이루어진다.
SCP-1095-KO는 20██년 6월 회수한 뒤 변칙 물체로 지정되고 관리하였으나, 일련의 사건을 통해 안전 등급으로 상향되었다. 자세한 경위는 사건기록 1095-KO를 참조할 것.
부록 1095KO.01: 내부 기록
#01
<타자 치는 소리>
클라라 박사: 드디어… 다 끝났다! (기지개를 쭉 펴며) 으으, 드디어 쉴 수 있겠네.
이고양 연구원: 수고하셨어요, 박사님.
배일호 박사: 아, 끝났어? 수고했다.
클라라 박사: 예, 뭐. 하암… 하루 꼬박 새서 겨우 끝났네.
손기정 연구원: 고양 씨, 서류 정리하는 건 어떻게 돼가요?
이고양 연구원: 아, 지금 하려던 참이었어요. 잠깐만요.
<종이 스치는 소리>
<물건 떨어지는 소리>
이고양 연구원: 어라, 만년필1? 이런 게 왜 여기 섞였지?
이고양 연구원이 만년필을 분다.
이고양 연구원: 디자인 예쁘다. 이거 압수품인가요?
배일호 박사: 아, 그거. 예전에 숨겨둔 비품인데, 이리 줘.
손기정 연구원: 쇼핑창은 왜 내려요. 누가 뭐라 한다고.
배일호 박사: 보여?
손기정 연구원: 네. 스위치2 보고 계셨잖아요.
이고양 연구원: 저기…
배일호 박사: 야, 와봐 그럼.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 가격이 말이 돼? 60만원 대가 맞냐고.
<잠시 멈춤>
클라라 박사: 아, 고양 씨. 그거 미분류 변칙 물체예요.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 만졌다간 보고서 쓸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걸요.
이고양 연구원: (작은 목소리로) 아… 네.
손기정 연구원: 그게 뭔데요? 변칙성이 뭐길래.
클라라 박사: 그게… 다른 우주의 자신에게 편지 쓸 수 있다던가…
배일호 박사: 내가 뽀렸지. 혹시 내가 로또 1등이 된 우주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손기정 연구원: 네? 이건 평행우주가 아니라, 다중우주잖아요. 누누이 얘기하시던 멀티버스.
배일호 박사: 그래서 저기 짱박아뒀잖아. 누구 놀리냐?
이고양 연구원: 저…
클라라 박사: 고양 씨, 서류 정리 좀 부탁드려요. 그거 내려놓으시고요. 나중에 반납할 거니까.
이고양 연구원: …네.
<두 시간 장면 생략>
#02
부서실 내에는 이고양 연구원 혼자 남아있다. 이고양 연구원이 SCP-1095-KO를 만지작거린다.
이고양 연구원: 하아… 다들 관심도 없고… 너무해.
<잠시 멈춤>
이고양 연구원이 SCP-1095-KO를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노트를 찢어 글자를 적는다.
이고양 연구원: 이러고 편지함에 넣으면… 괜찮으려나. 아무도 모르겠지?
이고양 연구원이 두리번거린다.
이고양 연구원: (슬며시 웃으며) 에라, 모르겠다! 별 일 있겠어?
<걷는 소리>
<문 닫히는 소리>
이후 이고양 연구원은 업무실 내 비치된 기지 우편함에 SCP-1095-KO를 사용해 적은 쪽지를 투입했다. 쪽지가 소실되었기에, 내용은 연구원 본인의 진술을 토대로 부분적으로 재구성하였다. 다음은 이고양 연구원의 기억 진술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본이다.
다른 세계의 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다른 우주의 저예요. 열심히 일하다 지쳐서 이렇게 써봐요.
그쪽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궁금해서 보내요. 업무 문제로 힘드시진 않나요? 어쩌면 다른 곳에서 일하시나요? 궁금해요.
읽어보신다면 부디 답신 부탁드립니다.'◡'
- 제21K기지 1등급 연구원 이고양이
3일 뒤, 차원학부 부서실 내에 발신지를 알 수 없는 다수의 편지가 나타났다. 수신인은 모두 이고양 연구원이었다.
#03
배일호 박사: 그러니까. 몰래 그런 짓을 했다는 거냐?
이고양 연구원: …네.
배일호 박사: 허.
클라라 박사: 고양 씨, 누누이 얘기하지만, 변칙물체를 함부로 쓰는 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에요.
이고양 연구원: 죄송해요… 저도 그때 제 감정을 모르겠어요…
손기정 연구원: 그래서, 이 편지들이 다 다른 우주의 이고양 씨인 겁니까? 엄청 많은데요.
배일호 박사: 발신인 이고양.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손기정 연구원: 네. 알았다고요.
클라라 박사: 편지만 온 거죠? 그러면 뭐… 저희끼리 쉬쉬하는 게… 아, 카메라.
이고양 연구원: 카, 카메라가 있었어요?
배일호 박사: 무시해. 누가 우리 보는 건 아니니까.
이고양 연구원: 죄, 죄송해요. (눈물을 글썽이며)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배일호 박사: 운다고 다 해결되냐? 울지 마. 어차피 이런 건 시말서 몇 장 쓰고 징계 좀 받으면 끝나는 일이야. 세상사 다 그렇게 흐지부지 넘어가는 법이지.
클라라 박사: 그딴식으로 일을 처리하지 말라고요. 세상 사람이 전부 부장님 같으신 줄 아세요?
배일호 박사: 그건 그거고, 편지부터 볼 사람?
클라라 박사: 안 돼요. 뭐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세균 같은 게 묻어 있으면 어떡해요? 인식재해 같은 건요.
배일호 박사: 걱정이 많네.
이고양 연구원: 저, 저는 그런 거 편지에 안 써요!
클라라 박사: 그건 고양 씨 얘기죠. 다른 우주의 자신도 그러지 않겠지라고 단정하면 안 돼요.
이고양 연구원: 힝… 네.
손기정 연구원: 예, 만약 그렇다면 좀 문제긴 하죠.
배일호 박사: 스캔본 뜨자.
손기정 연구원: 오.
클라라 박사: 오는 무슨, 안 된다고요!
답신한 편지의 내용들은 다음과 같다.
비고: 본 편지는 황금빛 양피지에 화려한 필체로 적혀짐.
내 미천한 그림자여. 편지는 잘 보았다. 너의 나약한 비명이 여기까지 들려오는구나. 윗선에 돈이나 받으며 사는 인생이라니. 다른 세상의 나는 미천하다 못해 미미하구나. 마땅히 짐의 발아래 귀의하여 너의 세계를 조공할지어다.
P.S. 짐은 최근 아기 크툴루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 은하제국 이고양 여제
비고: 일부가 불에 그슬린 상태였으며, GOC 공식 문서 양식으로 작성됨
지금 좀 바빠. 난 잘 살아. 놈을 죽여야 해. 짧게 답해서 미안.
- GOC 오컬트 타격조 대장 이고양이
비고: 꼬깃꼬깃한 영수증에 휘갈겨 씀.
여긴 백룸이야. 여기 온 지 2년 정도 지났어. 네가 나보단 잘 살고 있는 듯해. 잘 살아.
- 생존자 이고양이
비고: 정갈한 필체로, 원문은 일본어로 작성됨.
저런… 힘들어 보인다. 다른 우주의 난 직장 생활 하는구나.
난 어제 내 소꿉친구랑 결혼식을 올렸어! 남편 몰래 새벽에 이렇게 편지 써봐. 어라, 이 상황. 좀 부끄럽네. ⸝⸝> ̫ <⸝⸝
너도 행복해질 수 있어! 난 날 의심치 않아. 힘내! 응원할게! ⸜( ◜࿁◝ )⸝
- 미야모토 네코(宮本寧子)가!
비고: 종이에 흙이 묻어있다.
<고양이 발자국.>
비고: 노트를 찢어 만든 쪽지.
너 때문에 나도 시말서 쓴다! 이런 걸 왜 보내서는! 너희 부서장은 왜 변칙물품을 마음대로 두는 거야!
- SCP 재단 요괴과 이고양이
#04
이고양 연구원: 뭐랄까. 다른 우주의 저는 참… 다양하네요.
배일호 박사: 좋겠다 시벌럼. 난 써도 답장 하나 없던데.
손기정 연구원: 다른 우주엔 부장님이 없으시나 보내요.
배일호 박사: 헐.
클라라 박사: 뭐, 재밌는 게 몇개 있긴 하네요. 다른 곳의 고양 씨는 결혼도 했고.
이고양 연구원: 그, 그런 거 말하지 마요!
손기정 연구원: 흥미롭긴 하네요. 저도 한번 보내보면 뭔가 색다른 답장이 오려나.
클라라 박사: 기정 씨, 다시 말하지만 이건…
배일호 박사: 좋아. 기정이가 그러면 해야지. 제1회 차원학부 펜팔 클럽을 개최한다.
클라라 박사: 네? 부장님? 네?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은 안 나왔다면서요?
배일호 박사: 내 성격상 받고 무시한 걸 수도 있어. 계속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배일호 박사가 SCP-1095-KO를 클라라 박사에게 넘긴다.
배일호 박사: 써.
클라라 박사: …하아. 분명 일이 터질 것 같다고요.
<펜 휘갈기는 소리>
#05
배일호 박사: 자. 한 3일 정도 지났어. 텍스트 상에선 안 느껴지겠지만. …표정이 왜들 그래?
손기정 연구원: …전 다른 우주의 행복한 손기정에게 보냈거든요.
배일호 박사: 왜?
손기정 연구원: 그냥요. 궁금해서. 근데요. 기숙사에 반송된 게 다시 왔어요.
클라라 박사: 반송됐다고요? 사유가 뭔데요?
손기정 연구원: 주소지가 하아― (헛웃음을 터뜨리며) 주소지가 없대요.
배일호 박사: 그게 그런 것도 돼?
손기정 연구원: 낸들 알겠냐고요. 온 거라곤 죄다 암울한 편지뿐인데. 좀비 아포칼립스, 지구 멸망, 우주 멸망, 저승… 심지어 그나마 나은 게 파시스트 우주에서 온 편지라고요!
배일호 박사: 네가 행복한 차원은 다 죽었나 보다.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
클라라 박사: 저는 그냥저냥 평범했어요.
이고양 연구원: 흐흐.
클라라 박사: 왜 그렇게 웃죠?
이고양 연구원: 몰래 몇 장 봤거든요. 알루미늄맨 씨와 그 사진—
클라라 박사가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탁자에 내리꽂는다.
배일호 박사: 깜짝아.
클라라 박사: 크, 크흠… 아무튼, 그건 다른 우주의 저일 뿐이니까요.
이고양 연구원: 네, 네.
배일호 박사: 하하, 좋은 소식. 나한테도 왔어.
손기정 연구원: 왔다고요?
배일호 박사: 그래 이거 보라고.
클라라 박사: 꼴랑 두 통 왔는데요.
배일호 박사: 그래, 한 300통 보낸 것 치곤 적다는 거 나도 알아. 수지가 안 맞지. 근데 왔다고! 아직 안 열어봤어! 빨랑 뜯자!
<편지 뜯는 소리>
손기정 연구원: 뭐예요? 얼른 읽어봐요.
배일호 박사: 이건… 카드 연체 고지서네. 나 카드 정지 됐어.
이고양 연구원: 풉.
이고양 연구원: 아, 죄, 죄송해요. 그냥…
<잠시 멈춤>
클라라 박사: 다른 하나도 열어봐요.
배일호 박사: 씨발 열기 싫어졌는데… 그래도 뜯어봐야지.
<편지 뜯는 소리>
배일호 박사: 오. 이번엔 진짜야! 내가 발신인이라고!
손기정 연구원: 축하해요, 부장님. 어서 읽어봐요.
스팸 문자 씨발아
그만 좀 보내
ㅗ
#06
<정적>
배일호 박사: 와 재밌다.
클라라 박사: 부장님.
배일호 박사: 재밌잖아. 웃어.
이고양 연구원: 하하…
배일호 박사: 펜좀 줘봐.
클라라 박사: 뭘 쓰시려는 건지 예상 가거든요. 안 돼요.
배일호 박사: 큰 일이잖아! 네 윗 선임이 모욕 당했다고! 보복해야지!
클라라 박사: 별거 아니잖아요! 늘 당하시는데!
배일호 박사: 그게 뭔 말이야. 자세히 말해.
클라라 박사: 좀 참으시라고요. 그러게 누가 300통씩이나 보내래요? 나 참… (물 마시는 소리)
배일호 박사: 입 다물어! 이 변칙개체랑 사귀는 주제에!
클라라 박사: 푸흡!
클라라 박사: 뭐, 뭐예요! 그 소리는!
배일호 박사: 어 몰랐지? 기지 내에 소문 다 났어 그냥. 지도 사적으로 만나면서 왜 나한테 뭐라고 해? 내로남불이야 아주.
클라라 박사: 그런 적 없거든요! 누, 누가 그리 말했는데요?! 이름 말해봐요!
배일호 박사: 그걸 말하겠냐? 익명의 누군가가 제보했다 새꺄.
손기정 연구원: 자자, 다들 좀 진정하시고…
배일호 박사: 마우스 지퍼.
손기정 연구원: 읍.
배일호 박사: 왜, 이번에도 도와줘요~ 해보시든가.
클라라 박사: 그니까 그런 거 아니라고요!
이고양 연구원: 하, 하하. …그러게 누굴까요.
<어색한 웃음>
비고: 이 기록 이후 클라라 박사는 SCP-1095-KO를 반납했다.
사건기록 1095-KO: 같은 날 오후, 차원학부 부서실 내에서 차원 간 간섭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해 원형의 황금색 차원관문이 출현했으며, 다른 우주의 PoI-1095-KO가 건너왔다.
다음은 당시 상황을 실내 감시 장비를 통해 기록한 것이다.
<타자 치는 소리>
배일호 박사: 아, 진짜 스위치2 사고 싶다. 퇴근하면 바로 지를까.
손기정 연구원: 근무 중에 그거 보는 거 맞아요?
배일호 박사: 사고 싶은데 어떡하냐.
이 순간, 부서실 전체가 크게 흔들린다.
클라라 박사: 뭐, 뭐죠?
배일호 박사: 별거 아냐. 그냥 땅울림이지. 이 기지에서 하루이틀도 아니고.
이고양 연구원: 꺄악! 저거 봐요!
부서실 중앙에 황금색 차원 관문이 나타난다.
손기정 연구원: 별거잖아요!
배일호 박사: 씨발 별거네? 탁자 아래로 숨어!
손기정 연구원: 지금 숨어서 의미가 있냐고요!
신원 미상의 인물: 시끄럽군.
차원 관문 앞으로 화려한 복장의 인물 하나가 나타난다. 대상은 이고양 연구원과 동일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
PoI-1095-KO: (부서실 내부를 훑다가) 하. 이 누추한 곳이 네 부서실이냐? 이거 원, 짐의 애완동물 우리보다 못한 곳이구나.
배일호 박사: 이고양 여제다! 군인들까지 함께 왔군!
클라라 박사: 누가 몰라요?
배일호 박사: 이렇게 설명해야 읽기 편할 거 아냐!
배일호 박사가 황급히 PoI-1095-KO를 향해 다가간다.
PoI-1095-KO: …뭐냐.
배일호 박사: (재빨리 명함을 건네며) 여제 폐하! 본인은 이 기지의 핵심 인재 배일호 박사라고 합니다!
PoI-1095-KO: 그래서.
배일호 박사: 뭘 그래서야. 돈 좀 달라고. 돈 많을 거 아냐. 여기 투자 좀 해줘.
PoI-1095-KO: 묶어.
PoI-1095-KO의 뒤에서 거대한 촉수가 나타나 배일호 박사를 포박한다.
배일호 박사: 깩! 뭐야?!
PoI-1095-KO: 짐의 애완동물이다.
배일호 박사: 씨발 뭔 놈의 우주적 존재는 다 촉수가 달렸냐? (온몸이 꽉 조인다) 으어억―
PoI-1095-KO가 이고양 연구원을 향해 다가간다.
PoI-1095-KO: 그만 그 탁자에서 나오거라. 나의 그림자여.
이고양 연구원: …네.
PoI-1095-KO: 정말이지. 네 무능함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치밀어오르군. 짐의 제국에 속한 모든 이고양은 각자만의 장기가 있지만… 넌 정말이지… 쪽팔릴 정도네.
배일호 박사: 뭐래, 그딴 말투로 말하는 게 더 쪽팔릴 것 같은데.
<방망이질 소리>
배일호 박사: …지송.
PoI-1095-KO: 입 다물게 해라.
배일호 박사: 읍! 읍읍!
PoI-1095-KO: 하여간, 그림자여. 내 친히 널 데리러 왔노라.
이고양 연구원: 저요?
PoI-1095-KO: 네겐 애완동물의 지위를 내리지. 이 부서실 따위보다 더 큰방을 내어주겠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먹이를 줄 것이다. 놀잇감도 많겠지.
배일호 박사: 야옹.
<잠시 정적>
배일호 박사: 왜, 뭐. 구미가 당길 순 있잖아. (비명) 악!
PoI-1095-KO: (경멸스러운 표정으로) 그리고 겸사겸사 이 얄팍한 문명도 정복하고.
PoI-1095-KO가 손을 들어올리자, 함께 나타난 군인이 연구원들을 향해 플라즈마 창을 겨눈다.
손기정 연구원: 크아악! 이거나 먹어라!
손기정 연구원이 스테이플러를 던진다. 스테이플러는 무사히 표적을 빗맞추고 벽에 부딪힌다.
손기정 연구원: (황급히 손을 들어올리며) 취소, 취소.
배일호 박사: 이고양 여제 폐하! 대빵인 나랑 얘기 좀 하자고! 계약, 계약은 어때? 돈 많이 벌게― 그악!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은 좀 조용히 좀 하세요! 아 진짜,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클라라 박사: 뭘 이럴 줄 알았어요인가요! 동조했으면서!
손기정 연구원: 누가 보면 저만 그런 줄 알겠어요? 박사님도 하셨잖아요!
배일호 박사: 아니, 이고양 잘못이야! 쟤가 시발점이라고! 야 이 시발아!
PoI-1095-KO: 한심한 촌극이군. 그쯤 해라. 이 자들부터 죽여라.
이고양 연구원: 그, 그러지 마요! 어, 어떡해요, 부장님?
배일호 박사: 어떡하긴! 네 탓이잖아!
이고양 연구원의 호흡이 빨라진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이고양 연구원: (눈물을 글썽이며) 죄, 죄송합니다, 부장님! 흐아앙! 제가 다 잘못했어요!
PoI-1095-KO: 뭐냐, 지금 그 꼴은…
이고양 연구원: (엉엉 울며) 제가 죄송해요! 열심히 하고 싶은데 잘 안 돼요! 맨날 딴짓하고, 커피도 맛없게 타고, 부장님 개그에도 웃지도 못하고… 전 그냥… 전 그냥 쓸모없는 이고양이에요!
PoI-1095-KO: 우는 거야? 해결법을 생각하지도 않고?
이고양 연구원이 서럽게 운다.
PoI-1095-KO: 내, 내 얼굴로 그렇게 찌질하게 울지 마!
배일호 박사: 와, 나빴다. 왜 얘를 그렇게 울리고 그래.
PoI-1095-KO: 내가 안 울렸어! 그건 모두 네놈들이―
PoI-1095-KO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PoI-1095-KO: 이딴 짓을 하려고 여러 우주를 돌아다닌 게 아니단 말이다! 내가 본 나 중에 네가 가장 한심해! 너도 한심하고, 너도 한심하고, 그리고 너도!
클라라 박사: 나요?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은 그렇다치고, 저까지요?
이고양 연구원: 흐아앙! 저도 알아요!
PoI-1095-KO: 됐어! 이게 뭐하잔 건지…
배일호 박사: 현타 왔나봐.
PoI-1095-KO: 돌아간다! 내가 본 우주 중에 가장 끔찍해! 다시는 안 돌아올 거야!
PoI-1095-KO을 포함한 다수의 군인이 관문으로 진입한다. 동시에 차원 관문은 급격한 수축과 함께 완전히 소멸한다. 미처 돌아오지 못한 촉수가 절단된다.
<정적, 훌쩍이는 소리>
손기정 연구원: (펜으로 잘린 촉수를 쿡쿡 건드리며) 이걸로 보고서 써야 하는 건 이쪽 고양 씨일까요, 저쪽 고양 씨일까요?
클라라 박사: 죽다 살아났는데 농담할 때인가요.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
배일호 박사: 왜.
손기정 연구원: 말씀 정정해야겠는데요?
배일호 박사: 뭔 소리야, 그건.
손기정 연구원: 우는 걸로 해결 안 된다잖아요. 우니까 다 해결 됐는데요.
배일호 박사: …그러게. 우리 정기적으로 우는 시간 가질까? 쉼표 특집으로.
클라라 박사: 더 어색해질 거 같으니 그러지 말자고요.
이고양 연구원: 끄, 끝났어요?
클라라 박사: 고양 씨.
이고양 연구원: …네?
클라라 박사: 저희가 모질게 굴었던 것… 음, 사과할게요. 그럴 마음이 아니었어요.
이고양 연구원: (웃으면서) …네.
배일호 박사: (이고양 연구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괜찮아. 말했잖아. 시말서 몇 장만 더 쓰면 된다고.
배일호 박사: (손기정 연구원에게 속닥이며) …좀 서운한 게 이 정도 일이면 화났을 땐 기지 하나 폭발시키겠네.
손기정 연구원: 네. 제가 잘 지켜볼게요.
배일호 박사: 그럼 이 일은 좀 나중에 제대로 보고하고. 뭐,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 아니겠니. 기분이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쏘지.
손기정 연구원: 부장님 카드 막히셨잖아요.
배일호 박사: 더치페이로.
이고양 연구원: …전 짜장면 먹고 싶어요.
클라라 박사: …하아.
<기록 종료>
비고: 이 사건 이후로 SCP-1095-KO는 잠재적 위험성을 고려하여 안전 등급으로 상향되었다. 현재 SCP-1095-KO의 실험은 허가되지 않으며, 차원학부는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으로 문책을 받았다.
PoI-1095-KO가 속한 다중우주(PU-1052-RE)는 요주의 차원으로 분류되었으며,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 유사 사태가 반복될 경우, 재단 내부 긴급 대응팀이 소집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