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1032-KO-1, 개화 후
일련번호: SCP-1032-KO
등급: 유클리드
특수 격리 절차: SCP-1032-KO-1는 인천광역시 서구 백석동 ██공원 화단에 심어진 현 상태를 유지한다. SCP-1032-KO-1은 공원 관리자로 위장한 재단 파견 직원이 비변칙적 조경수 관리 방법에 준하여 관리한다. 재단은 SCP-1032-KO-1이 특별한 주목을 끌지 않도록 다른 종의 식물 사이에 위치시키며, 동백나무의 특성상 키가 작은 다른 식물 사이에 완전히 감춰지지 않으므로 <고목 동백나무입니다. 화단에 들어가거나 훼손하지 마세요.>라고 기입한 별도의 표지판을 전면부에 설치한다.
SCP-1032-KO-2는 상시 SCP-1032-KO-1의 아래에 묻혀있을 수 있도록 한다. 연구 목적을 포함하여 개체의 위치 변경 및 지상으로의 노출은 허용되지 않으며, 재단에서 시행하는 모든 연구는 SCP-1032-KO-2를 직접적으로 외부에 노출하거나 위치를 이동시키지 않는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SCP-1032-KO-1이 위치한 화단 근처에는 공원 내부 안전 관리를 위한 것으로 위장, 실제로는 SCP-1032-KO-3의 출현 및 행동 양상을 관찰하기 위한 목적의 녹음 기능을 탑재한 CCTV 1대를 설치한다. SCP-1032-KO-3가 인적이 드문 새벽 혹은 늦은 밤 주로 SCP-1032-KO-1을 찾아오는 행동 양상을 고려하여, SCP-1032-KO-1이 위치한 ██ 공원은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지역 사회에 개방하도록 한다. 재단은 SCP-1032-KO와 관련된 개체의 격리 절차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하여 개방 시간 외에는 공원 출입을 막는다.
SCP-1032-KO-1의 근처로 SCP-1032-KO-3의 출현시 공원 근무 직원으로 위장한 재단 직원 1인이 접근한다. 이 때 개체와 대화를 시도하면서 행동 양상을 면밀히 관찰하며, CCTV의 오작동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별도의 녹취 장비를 지참해야 한다. SCP-1032-KO-3과의 재단 직원 사이의 불필요한 언어적 다툼 및 신체적인 접촉은 금지되어 있으며, 필요 이상의 감정적인 대응의 경우 다른 재단 직원이 개입하여 중재한다. 녹취된 대화 내용 중 SCP-1032-KO-3가 SCP-1032-KO-2를 탈취하려는 발언 및 행동 양상을 보일 경우, 투입된 재단 직원은 기동특무부대를 동원할 수 있다. 기동특무부대 무호-17 ("도시 한가운데")는 SCP-1032-KO-2의 탈취 가능성이 보일 경우 상황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SCP-1032-KO-3의 활동을 저지시킬 수 있도록 한다. SCP-1032-KO-3의 제압은 비변칙적 인간의 행동 저지 프로토콜 및 SCP 재단 무속학부에서 고안한 무속학적 방법을 따른다.
사태가 종료되면 재단은 SCP-1032-KO-3이 빙의한 비변칙적 인간에 대하여 적절한 수준의 기억소거조치를 시행한다. 이 때 해당 인물을 제거하거나 사살하는 등의 존재를 말소시키는 행동은 금지된다.
SCP-1032-KO를 담당하고 관리하는 직원은 반드시 SCP-1032-KO-2를 탈취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만 SCP-1032-KO-3을 저지시킬 수 있음을 인지한다. 또, 무력적인 개입 이전 SCP-1032-KO-3과의 대화를 통하여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비변칙적 인간과의 일정 수준 이상의 화술을 터득해야 한다.
SCP-1032-KO-1의 아래에 묻혀있는 SCP-1032-KO-2의 보관 상태에 대해서는 공원 개방 시간 이후 토지 내부를 측량하는 장비를 이용하여 측정하고, 정기적으로 보관 상태를 확인한다. 해당 과정은 SCP-1032-KO-2의 신체의 일부가 외부에 노출되어 변칙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한 격리 절차의 일부로서, SCP-1032-KO-3 출현 이후 또는 월 1회 이상 주기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설명: SCP-1032-KO는 인천광역시 서구 백석동 ██공원의 화단에 위치한 크기 약 15M 가량의 동백나무 Common Camellia (SCP-1032-KO-1) 1그루와 관련된 현상이다. SCP-1032-KO는 SCP-1032-KO-1(동백나무 Common Camellia), SCP-1032-KO-2(보존된 여성의 시체), SCP-1032-KO-3(비변칙적 인간 남성에게 빙의한 영적 독립체)으로 이루어져 있다. 재단은 세 개체의 관계에 대한 꾸준한 역사-무속-지리학적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물로 19██년 SCP 재단 무속학부에서는 인천광역시가 공개한 관련 기록물을 찾아내었다. 해당 기록물은 현 시점 SCP-1032-KO에 관한 가장 흡사한 가설로 추정된다. 부록 1을 참조하라.
SCP-1032-KO-1은 고목 동백나무 Common Camellia 1그루이다. 동백나무가 심어진 시기는 14██년대로 추정되는데, 해당 시기 동백나무가 재배 가능한 지역에는 인천광역시가 속해있지 않았다. SCP-1032-KO-2는 SCP-1032-KO-1의 아래에 묻혀있는 여성의 시체 1구이다. SCP-1032-KO-2의 매장 추정 시기는 동백나무의 심어진 시기와 동일한 14██년대로 추정되나 토지 내부를 조사한 결과, 원인 불명으로 땅 속에서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SCP-1032-KO-3은 영적 독립체로서 비변칙적 인간 남성에게 빙의한다. 빙의된 인간은 외향은 동일하나 SCP-1032-KO-3은 SCP-1032-KO-1로 물리적인 접근 한계를 초월하여 접근할 수 있는 변칙적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며, 신체적인 능력 또한 빙의 되지 않은 상태의 비변칙적 인간 남성 대비 상당 수준의 향상을 보인다. SCP-1032-KO-3은 공원의 개방 직후 혹은 늦은 밤 같이 인적이 드물어지는 시간에 SCP-1032-KO-1에 접근한다. SCP-1032-KO-3은 타인의 시선을 피하여 SCP-1032-KO-1 아래에 있는 SCP-1032-KO-2에게 접근하고 말을 거는 등 행동을 보이는데, 이 과정 도중 SCP-1032-KO-2의 개방 및 탈취를 시도했다.
한국 SCP 재단 창립 이후의 기록에 따르면 SCP-1032-KO-1에는 SCP-1032-KO-3으로 추정되는 비변칙적 인간 남성의 방문은 총 2██여 차례이다. 이 중 실제로 SCP-1032-KO-3에 의해 SCP-1032-KO-2의 탈취 시도가 있었던 것은 3차례이며, 2차례에 걸쳐 SCP-1032-KO-2를 땅 속에서 바깥으로 꺼내어 내는 단계 이상으로 가지 못하고 제압되며 마무리 되었다.
1994년과 2014년에 걸친 두 차례의 SCP-1032-KO-2의 격리 파기사태는 인천광역시 전역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력을 발휘함을 재차 확인시켰다. 이후 재단은 사태의 수습을 위하여 관련 인원을 대상으로 전체 혹은 부분 기억소거조치 등의 후속조치를 취하였다. 2024년 발생한 탈취 시도에서 SCP 재단은 SCP-1032-KO-3의 행동을 성공적으로 저지시켰는데, 해당 사례는 부록 2를 참조하라.
SCP-1032-KO-3이 SCP-1032-KO-2를 변칙적 능력으로 SCP-1032-KO-1 아래에서 꺼내어 이동시킬 경우, 인접한 지역인 인천광역시 서구 백석동 일대부터 시작하여 수중, 심해, 생매장, [편집됨]과 같은 환각이 발생한다. 해당 변칙적 현상은 시간의 흐름에 비례하여 전염성 질병의 양상으로 공기 전염되는 것으로 추정되며, 환각에 전염된 대상은 성별 및 나이 등에서 공통점을 보이지 않는다. SCP-1032-KO에 의한 환각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신체의 오감각이 해당 환각에 완전히 의존하게 되며, 발생한 환각에서 도피 혹은 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된다. 이 때 발생한 환각은 SCP-1032-KO-3이 빙의한 인간 독립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환각의 지속 시간이 길어질 수록 피해자는 대처하기 위한 대처 기전이 과격해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환각의 종류에 따라 비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이를 테면 수중에 있는 환각을 본 피해자는 물가로 가서 물을 들이마시며, 심해의 환각을 본 피해자는 바다 속으로 입수하거나 생매장의 환각을 본 피해자는 자신의 몸을 땅 속에 파묻는 등의 다양한 증상을 보인다. 환각은 SCP-1032-KO-2가 바깥에 노출되어 있는 시간에 비례하여 점차 강도와 범위가 증가되는 양상을 보이며, SCP-1032-KO-3을 저지하여 SCP-1032-KO-2를 SCP-1032-KO-1 아래에 다시 위치시킬 경우 점차 감소하다가 사라진다.
환각 발생 사례를 연구하고 해당 변칙성이 영향을 끼치는 범위를 조사하여 계산한 결과, SCP-1032-KO-3가 SCP-1032-KO-2을 완전히 꺼낸 뒤 32분이 지나면 인천광역시 전역이 SCP-1032-KO가 야기하는 변칙적 환각의 영향권 내에 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0. 동백 冬柏
부족한 일손을 현지에서 조달하는 일은 드물었으나, 아예 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 날, 우리에게는 요청했던 일꾼이 도착했다.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보았다. 경력에 비해서 그렇게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는 인상. 목소리도 낮지 않았고, 덩치도 크지 않은 젊은 청년이 그 곳에 있었다.
"그래, 네 이름이 무엇이냐?"
"동백, 뜻은 동전 백 개를 벌어오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굉장히 싱거운 대답이었다. 새롭게 들어온 녀석은 묻지도 않은 본인의 이름의 유래를 말했고, 약간 모자란 웃음을 지었다. 동백. 동전 백 개라는 이름 뜻이라니 부모님이 이름을 묘하게 대충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 있다. 이름을 천하게 지을 수록 오래 산다고 했던가.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호칭인데.
그러나 우리는 일꾼의 이름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일꾼으로서의 미덕, 즉 일을 일머리있게 잘 하느냐에 달려있을 따름이었다.
첫 인상에서 느껴지는 건 생김새가 제법 볼품이 없다는 것. 동백은 공사판에서 일하는 놈 치고는 키도 크지 않고 체격도 작았다. 우람한 체격으로 수시로 배고프다며 하소연을 하는 일꾼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저 것도 저 나름대로 밥을 많이 먹여도 되지 않아서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물론 그에 비례해서 일하는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각오해야 하겠지만, 세상 일이 다 좋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지저분한 얼굴에 잔머리가 많은 머리카락, 또 곳곳을 대충 메꾸어 입은 옷은 공사판에서 일하는 일꾼이라기 보다는 거지에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애초에 공사 감독직을 맡은지는 4년, 이 현장에 파견된 것은 7달이 넘어간다. 나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은 그럭저럭 있었고, 이런 류의 막노동을 하는 일꾼에게서 깔끔한 인상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법이라는 소신이 있었다. 그러니 동백에게 구태여 그 것을 문제삼지는 않기로 했다.
동백. 누가 보아도 막노동을 할 놈같이 보이지 않는 체격 조건이었지만, 내 윗선인 관리관 나으리가 직접 파견해둔 이를 그대로 내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은 일손이 부족하다. 지금은 모두가 한창 바쁠 시기였다. 그 것도 내가 직접 윗선에게 일 손이 부족해서 대업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해두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일꾼을 늘려주었으니 일을 잘 마무리 해야한다는 단순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군다나 간척 작업이라는, 물길을 다스리는 쉽지 않은 작업을 할 능숙한 일꾼은 참으로 찾기 어려운 인재였다. 애초에 농사를 근본삼아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한창 진행 중인 공사에 당장 투입할 수 있는 막노동꾼의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을 나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허드렛일을 하는 잔심부름꾼에 불과하다 하여도 나로서는 동백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그 외에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좋다. 동전 백 개를 벌어 올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나리. 시켜만 주시면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요."
그렇게 동백은 이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일꾼들이 동백과 함께 일을 시작한지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나는 동백의 추천서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어차피 추천서 같은 것이 없어도 일손이 부족하여 그는 이 곳에서 일하도록 시켰을 테지만, 최소한 이 추천서를 그에게 건네준 양반 나리의 면상을 생각하면 그 서류를 대충이라도 읽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 양반이 동백이 일하기 시작한 첫 날 하인을 통하여 보내준 추천서에는, 여기에 오기 전 동백이 거쳐온 여러 공사판들이 적혀져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일터에서 짧은 시간을 보냈고, 다양한 현장들을 전전하고 다녔던 것 같았다. 그 갯 수가 어림잡아 십 여 곳에 이르렀으니, 어쨌든 젊은 놈 치고는 제법 경력이 되는 셈이다. 모든 현장에서 근무기간이 짧았던 것은 그리 눈여겨 보지 않았다. 애초에, 공사의 마무리가 끝나면 공사가 진행 중인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하는 것이 막노동판 일꾼들의 현실이었으므로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추천서를 읽으며, 나는 동백이 아주 능숙한 일꾼은 아니지만 당장 눈앞의 일을 그럭저럭 쳐내는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동백은 체격 조건상 일의 효율이 썩 크지는 않더라도 눈치는 빨랐고, 손재주도 그럭저럭 있는 편이었다. 그 동안 많은 공사판을 전전한 이유가 아주 없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일하는데 있어서 일머리가 있어서, 막노동에 적합한 신체 조건은 아니지만 아주 못 써먹을 수준은 아니었다. 좀 애매하기는 하지만 나는 나에게 동백을 보내준 양반 나리를 생각하여 판단하기로 했다. 힘이 많이 들어가는 엄청나게 고된 일을 시킬 수는 없었으나, 공사판에서 일하는데 반드시 고된 일만이 존재하지는 않는 법이다.
여러가지 일이 있지 않던가. 가령, 잠자리나 식사를 준비하는 일도 거기에 들어간다. 대체로 공사판의 일꾼들은 함께 식사와 숙식을 하게 되는데, 이 지역에서는 물 때에 맞추어서 공사를 진행하여야만 했기 때문에 업무에 있어서 밤낮이 따로 없었다. 규칙적이지 않은 근무 일정에서, 동백은 나름대로 그 일을 제법 잘 해내곤 했다. 자야할 시간에 이부자리를 대충 펴고, 물에 곡식을 미리 불리거나 소금에 절인 장아찌를 꺼내는 일 따위 말이다. 하긴 공사판에서 힘을 쓰는 일을 잘 하지 못했으니 그런 일이라도 하면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놈의 말처럼 그런 일들로 동전 백 개를 벌 수 있을 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공사 일꾼들은 썰물로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재빨리 그 곳에 흙과 진흙을 밀어넣고 밀물 때 바닷물이 밀려들어오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 과정이 일주일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밀물 때에 그 공사가 무사하기를 빌며, 그 곳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항상 동일했다, 7달이 넘도록.
동백이 우리와 함께 한지 일 주일이 조금 넘었을 때의 일이다. 드디어 공사의 마무리가 되었고, 우리는 둑 위에 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과가 나오도록 빌었다. 하지만.
"또 실패인가?"
"아, 물 샌다. 글렀구만요."
"시끄럽다, 신입."
누군가가 말한 '또 실패'라는 말이 아주 뼈저리게 다가온다. 그 것은 새로운 일꾼으로 동백이 오기 전 엄청나게 반복적으로 보았던 풍경이었다. 동백이 그 곳에서 붙임성 좋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를 제외하고 웃는 이는 없었다. 당연했다. 그건 나와 지금껏 함께해온 일꾼들 모두에게는 매우 심각한 일이었다. 이번만큼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마무리 직업까지 다 끝냈다고 생각했었는데, 7달을 넘기고 또 한 달을 넘게 넘어가버려서 공사의 장기화까지 걱정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니.
우리는 이미 이 곳에서 몇 달 동안 공사를 진행해왔다. 그 동안 동백을 포함하여 인력을 보강하고 재료를 바꾸고, 작업 공정에 공을 들여 몇 번이고 시도해보았으나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그 것은 우리들의 운명 같이 느껴졌다. 둑을 뚫고 들어오는 바닷물. 나는 그 순간 '실패'라는 단어 만을 떠올렸고, 그 밖에 머리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할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야 할까?
"사람이라도 바치면 좋겠네."
그 순간 누군가가 농담삼아 그 자리에서 말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부록 1: 인천광역시 백석동 한들방죽의 유래 (일부 SCP-1032-KO와 관련 없는 내용은 편집됨)
백석동의 한들방죽은 거지방죽이라고도 부른다. 서곶과 검단의 해안 쪽이 거의 다 그러하지만 이곳도 지난날 바닷물이 드나드는 드넓은 갯벌이었다. 한들 마을 앞의 갯벌은 경사도가 낮아 썰물 때면 어머어마하게 넓게 드러났다.
…
갯골은 갯벌 가운데 이리저리 뱀처럼 굽어진 채로 뚫려 있는 골짜기인데, 대개는 육지에서 큰 시내가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어 바다 가운데로 나아간다. 그리고 밀물과 썰물이 가장 빠르게 드나드는 곳이다. 한들방죽의 축조에도 이 갯골이 문제였다.
…
어느 날 현장 감독을 맡은 책임자가 다시 무너진 둑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을 때였다.
…
“사람을 희생시키는 수밖에 없소이다. 신라 때 저 서라벌의 에밀레종을 만들 때 쇳물에 사람을 넣은 것처럼 말입니다.”
…
감독은 밤새 고민에 빠졌다.
…
공사장에 가끔 찾아와 일꾼들이 점심을 먹을 때 배를 채우고 가는 장쇠라는 총각 거지가 하나 있었다. 오랜만에 공사장에 찾아와 구박을 받으며 찌꺼기를 얻어먹는 것을 바라보던 감독은 장쇠를 불러 앉혔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배가 터지게 고기 반찬을 먹어 보는 것입니다요.”
“실컷 먹으면 죽어도 좋으냐?”
“죽어도 좋습니다요.”
…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감독은 장쇠에게 술을 잔뜩 먹였다. 장쇠는 취해 쓰러졌다.
감독은 바다의 신과 토지신에게 술을 올리며 기원했다.
“저희의 제물을 받으시고 이제 바닷물을 막게 도와 주소서.”
감독이 절을 하자마자 일꾼들을 소반상의 제물들과 함께 술에 취한 떠돌이 거지 장쇠를 갯골에 던졌다. 그리고는 신속히 돌과 흙으로 메워 버렸다. 밀물이 밀려올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 둑을 쌓았다. 반나절이 되어 밀물의 끝이 갯골을 타고 뱀처럼 꿈틀거리며 올라왔다. 그것은 장쇠가 묻힌 둑의 밑바닥에 닿았고 곧이어 엄청난 기세로 소리를 내며 밀물이 밀려왔다.
감독과 일꾼들은 죽은 장쇠를 생각하며 둑 위에 서서 수없이 절을 했다. 마침내 밀물이 모두 들어오고 조수는 둑을 삼킬 듯 꿈틀거렸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 썰물이 시작되자 현장 감독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숙연한 얼굴을 한 일꾼들에게 말했다.
“이제 됐다. 우리는 큰 죄를 지었다. 사람을 희생시켜 둑을 쌓았으니 큰 죄인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업을 쌓았다. 이제 이곳이 장차 논이 되어 수만 명이 먹을 쌀을 생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감독과 일꾼들은 둑 쌓기 공사를 모두 마무리하고 다시 떠돌이 거지 장쇠를 위하여 제사를 지냈다.
1. 관문 關門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사람을 먹여살리기 위한 것, 농자천하지대본 農者天下之大本, 농사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 사람이 굶고, 사람이 굶는다면 국가는 유지될 수 없다. 이번 간척 사업은 그 것을 위한 사업이다. 목숨과도 같은 농지를 보존하고, 사람을 먹여야 했다. 하지만 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은 그저 무의미한 일에 불과하다.
관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아직도 어색한, 일개 공사 감독관에 불과한 나 같은 놈도 그 것을 안다. 그 것은 이 땅의 누구라도 곤궁한 시기에 배를 곯아본 경험이 있는 자라면 그리 생각할 것이라 생각한다.
동백이 오고 난 뒤, 공사가 실패하고 나서 한 달의 시간이 또 흘렀다. 그 동안 우리는 추가로 3차례의 공사를 실패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물이 방둑 사이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밤낮없이 진행했었던 공사가 이번에도 역시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탄식 소리들 가운데, 나는 동백이 조용히 나에게만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물이 끝없이 들어오고 있는데요, 나리."
"…그렇다면 방법을 다시 고안해보도록 하지. 오늘은 쉰다. 고민은 나의 몫이다."
"네, 시키면 시키시는 대로 바로 하겠습니다요."
동백은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고, 나는 바로 다음 순간 그가 조그맣게 덧붙여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말은 동백이 평소에 하던 말투와는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실패를 반복했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쫓겨나지 않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 아닐까 생각이 들거든요, 아마도. …저의."
나는 그 말을, 밤늦게 잠들기 직전 잠자리에서 곱씹어 보았다. 뭐였을까, 그 말은. 쫓겨나지 않고. 오랫동안?
설마, 동백이 그 동안 여러 공사판을 전전했다는 것이 그런 이유였었나. 공사판에서 쫓겨날만한, 추천서에서는 찾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일찍 들어온 숙소에서 그 날 나는 이른 잠에 빠졌고, 그 만큼 눈이 빠르게 떠진 덕분에 새벽에는 잠이 오지 않아 이부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마루 위에는 동백이 밀물이 몰려들어 파도소리가 들리는 바다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바다를 바라보는 도중이라 내가 방 밖으로 빠져나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크지 않은 공간이라, 나의 발자국 소리가 좀 커지자 동백이 나를 돌아보았다. 그는 바닷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꽂으면서 말을 걸어 왔다.
"혹시, 혹시 관문이라고 아십니까, 나리?"
"……"
"마땅히, 거쳐야만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지요? 이 초가집에서는 방 안 어떤 사람도 이 마루를 거쳐야만 밖으로 나올 수가 있습니다. 좀 불편하긴 합니다만 나쁘지는 않습니다. 이 곳에 있는 저를 관문지기라고 생각하여 주십시오, 나리. 관문지기로서 이 곳을 지나가는 것은 허가해 드리겠습니다."
이 새벽까지 잠은 안 자고 뭘 하고 있나 했더니, 동백은 나를 향해 마침 잘되었다는 듯이 재잘거리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너무 이른 시간에 깨어난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좁은 관문에서, 우리는 잠의 세계의 중간에서 교차했다.
해가 어슴푸레하게 동쪽에서 떠오르는 가운데, 나는 동백의 옆에 앉았다. 어차피 숙소가 큰 편이 아니라 동백의 위치에서 먼 곳까지 갈 만큼의 넉넉한 공간이 되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 크지 않은 관문이고, 그 관문지기는 단 한 명으로 족한 공간이다. 동백이라는 관문지기가 지키고 선 관문에 내가 끼어든 것이다.
그냥 침묵하는 것보다는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나을 분위기라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 이렇게 말하게 되었으니 물어보자.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소원이라니, 그리 거창한 단어를 써가면서까지 바라는 것이 많지는 않습니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털어 놓거라. 지난 번에 동전 백 개라고 이야기를 했었지. 혹 네 이름처럼 동전 백 개를 가지게 되면, 하고 싶은 것이 있더냐?"
"돈이라… 나쁘지 않습죠. 그렇다면 제 소원은 죽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실컷 배불리 먹어보는 겁니다요. 하지만, 그 것을 소원이라는 거창한 단어로 설명하기에는…좀."
해변 근처의 숙소에서, 강하게 불어 대고 있는 새벽의 바닷 바람 때문이었을까. 다음 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 곧 동백의 두 뺨이 조금 붉게 달아올랐다. 그 바람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듣지 못했다. 덧붙인 말을 하기는 했던 것 같은데.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내가 내 귀로 직접 확인한 동백의 소원은 공사판에서 일하는 막노동꾼의 소원치고도 제법 소박한 것이었다.
배불리 먹기.
확실히 농사를 지을 그 한 뼘의 땅이 없어서, 이 공사판까지 흘러들어온 청년의 소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공사만 잘 마무리된다면 동백도 이 곳에 자리잡을 수 있을지도. 공사판을 떠도는 이들 중에서는 드문 경우였으나 오랫동안 공사를 하며 머물렀던 지역이 마음에 들어 떠돌아다니는 막노동꾼의 인생을 청산하고, 처자식을 얻어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침 우리가 하는 사업은 간척 사업이니, 간척지에서 농사가 잘 되어 이 곳에 풍년이 든다면 동백이 말했던 배불리 먹는다는 소원도 성취하고 말이다.
"나리의 소원이 듣고 싶습니다."
"나의 소원은, 이 공사가 마무리되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업무에 너무 열중하고 있어서 나온 대답일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때는 그랬다. 나는 바다가 원망스러웠다. 밀물이 몰려들어와 우리의 공사를 아무 의미 없게 만들어내는 것이 싫었다. 하지만 동백은 고작 이 곳에 온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은 신참이었다. 그런 내 소원을 이해할 리 만무했다. 그는 서서히 밝아오고 있는 바다를 등 뒤로 하고, 나를 바라보면서 환히 웃으며 말했다.
"멋진 소원입니다. 나리의 소원이 이루어질 때까지, 제 몸을 바쳐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요."
어쩌면 나는 그 순간, 아니. 확신 할 수 있다. 동백의 옆머리가 바닷바람에 흐트러진 바로 그 때 이미 어렴풋하게 눈치채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백. 그는, 같은 이름의 꽃과 무척이나 닮아있었다.
부록 2: SCP-1032-KO-3의 SCP-1032-KO-2 탈취 시도 사고 기록
(20██년 2월, ██공원 CCTV에 녹화된 영상 및 음성이다. SCP-1032-KO-3은 인근 지역에 거주 중인 25세의 비변칙적 인간 남성 김상준에게 빙의하였다. 재단 직원인 박민수 연구원의 대화 이후 기동특무부대에 의하여 제압당한 김상준에게 재단은 즉시 기억소거조치를 시행하였으며, 영적 독립체의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무속학부 소속 인원이 파견되어 무속학적 방법을 사용하였다.)
(오전 6시 1분, CCTV 영상 재생 시작. 20대 남성 김상준, 이하 SCP-1032-KO-3이 느릿한 발걸음으로 SCP-1032-KO-1에 출현한다.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SCP-1032-KO-3는 SCP-1032-KO-1에 손을 얹으며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다.)
SCP-1032-KO-3: (작은 목소리로) 미안해.
(SCP-1032-KO-3은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본다. ██공원의 개방 시간 이후의 시각이나, 화단 근처에는 아무도 없다. SCP-1032-KO-3은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SCP-1032-KO-3: (여전히 작은 목소리로) 내가 너에게 비겁하게 굴어서.
(SCP-1032-KO-3은 SCP-1032-KO-1 앞에 웅크리고 앉는다. 그 상태에서 털장갑을 낀 손으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추운 날씨의 영향으로 땅이 아직 얼어 있어 맨 손으로는 잘 파지지 않는 것 같다.)
SCP-1032-KO-3: 내 책임감과 너를 저울질 했다. 나는. 그리고 내 선택을 계속해서 후회하다가… 너무 늦어버려서.
(SCP-1032-KO-3가 파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맨 손에 다른 도구가 없이 땅을 파고 있으나, 충분한 깊이로 땅이 파지는 것은 SCP-1032-KO-3이 가진 변칙성의 발현으로 관찰된다. 손 끝이 새빨갛게 변하고, SCP-1032-KO-1의 아래 SCP-1032-KO-2가 묻힌 화단의 흙이 옆으로 쌓이고 있다. 설치 각도의 문제로 CCTV 화면에는 포착되지 않았으나, 해당 부분에서는 SCP-1032-KO-2의 시신 일부가 외부로 노출되기 시작한다. 약 15초 뒤 공원 관리인으로 위장한 재단 연구원 박민수가 개입한다. CCTV의 화면의 위 쪽 부분부터 다급히 뛰어오는 박민수 연구원의 모습이 보인다.)
박민수 연구원: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저기, 시민분, 화, 화단을, 훼손, 하시면. 곤란합니다. 나무와 꽃은, 눈으로만 즐겨주세요, 헉헉.
SCP-1032-KO-3: (땅을 파던 동작을 중지한다.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로, 박민수 연구원을 초점이 없는 눈으로 가만히 쳐다본다.) 눈으로.
박민수 연구원: 네. 최근에는 동백이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동백꽃이 원래는 이 곳에서 피는 꽃이 아닌데… 노력해서 피워낸 것이니까 더 소중한 것이니까요. 부디 시민 분의 협조로…
SCP-1032-KO-3: (박민수 연구원의 말을 조용히 곱씹는다.) 동백, 이 곳에서 피는 꽃이 아닌데 피는 꽃. 피워낸 것. 피워내지 못한 것. 소중한 것, 협조…
박민수 연구원: 괜찮으세요?
SCP-1032-KO-3: 동백, 이 곳에서 피어난 꽃. (SCP-1032-KO-3은 바닥으로 손을 뻗는다. 그 손끝에 SCP-1032-KO-2가 잡힌다. CCTV 영상에 SCP-1032-KO-2의 모습이 포착된다. SCP-1032-KO-2의 보존 상태는 죽은지 얼마 안된 시신의 상태에 준해 보일 만큼 양호하다. 이 시점, 박민수 연구원은 긴급 호출을 통하여 SCP-1032-KO-3의 상황 변화로 인한 기동특무부대의 개입을 요청한 상태였다.)
SCP-1032-KO-3: 네가 피어날 곳은 여기가 아니야. 그리고 이 곳은 이제 더 이상 농지도 아니고. 그렇다면 나와 너는 무엇을 위해서… (SCP-1032-KO-3의 중얼거림이 점점 더 커진다. SCP-1032-KO-2의 모습이 CCTV상에 완전히 보이기 시작한다. 그와 동시에 SCP-1032-KO-1에 피어있던, 빨간색과 분홍색의 동백꽃이 바닥으로 통째로 떨어진다. 이 시점 화면이 불분명하게 흔들리며, 다수의 무장한 기동특무부대원이 출동하여 SCP-1032-KO-3를 제압한다. 박민수 연구원은 SCP-1032-KO-2의 상태를 확인하며 서둘러 원 위치로 그 것을 복귀시키는 작업에 들어간다.)
SCP-1032-KO-3: (기동특무부대에 의하여 제압당한 상태에서 중얼거리며) 우린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하지만 우리들은, 떠도는 들짐승과 같이 행동했다. 방법이 없었어. 나는 비겁했고. 바로 동백. 너를 꺾었기 때문에… 하지만 너는 나에게 말했었지.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하고. 난 기억해.
(기동특무부대원에 의하여 SCP-1032-KO-3에게 마취제가 투여된다. 의식이 소실된 듯 균형감을 상실하고 몸이 늘어진다. 입술 밖으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내용은 불분명하다.)
(기록 종료.)
2. 희생 犧牲
양반 나리로부터 공사의 진행을 독촉당한 그 날 밤, 나는 술을 마셨다.
흥청망청 마실만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게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술을 많이 마셨는데도 좀처럼 취하지 않는 밤이 있다. 바로 오늘처럼. 나는 채 치우지도 못한 술자리의 바로 옆 잠자리에서 일어나 등잔 불을 켜고, 아무런 진척이 없는 공사 계획서의 앞에 앉았다. 그렇다고 해서 진행되는 것은 없다. 이 공간을 비추는 등잔 불이 불안한 모습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실내였으므로 바람은 특별히 불고 있지 않았으나, 나의 불안함은 그 공간을 침식해나가는 듯 했다.
우리가 감당한 공사는, 정말이지 약간의 진척도 없었다. 그 공사의 시작 시점은 이제 거의 1년이 다 되어갔다. 나는 진척이 없어 답답함을 호소하는 양반 나리의 심정을 이해했다. 지금 담당하고 있는 공사는 이렇게까지 장기간 끌어야 할 공사가 아니었다.
알고 있다. 우리들과 그리고 이 지역은 이 공사를 끝내지 못하면 굶어 죽는다. 이 나라에서 쌀을 생산하지 못하면 굶어 죽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공사가 진행되지 못할 경우에는 우리들에게 그 죽음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나라 일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유에서 죽음에 비슷한 수위로 처벌받을 테니. 그 것은 확정된 일이었고, 이 공사의 성공은 내가 감독관으로서 감당해야할 일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바쳐내야만 공사가 마무리된다는 소문이 돌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건 내 생각이 아니다. 그저 막노동을 하는 이라면 은연중에 알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몇 달 전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이라도 바치면 좋겠네.
누구였을까. 누군가가 진심인지 장난인지 알 수 없는 의도로 내뱉은 그 말. 그 것을 누구라고 특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사실 우리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이런 식의 공사가 오랫동안 진행되지 않을 때 진행되던 케케묵은 오래된 관습에 대해서. 우리들이 많은 공사 현장을 지나가고, 다른 현장에 가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예전의 일들을 묻지 않는 습성은 결코 타고난 신분이 천해서 따위가 아니었다.
나는 흔들리는 등잔불 아래의 짐승을 보았다. 그 것은 내가 아니며, 인간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나는 짐승의 상태와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 된다. 이 곳에는 인륜, 인간의 윤리와 도리를 저버린 범죄를 저지른 자들이 있다. 그 들 중 하나 일 뿐이다. 보라, 여기에 짐승이 존재한다. 우리는 어느 곳이든 한 자리에 자리잡지 못하고 들개처럼 대지를 떠돈다. 대지에 자리 잡은 선량한 이의 손을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들의 삶을 지속 시킬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없다. 우리는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손쉽게 인륜을 저버린다. 들을 떠도는 짐승과 큰 차이가 없다. 그 동안 우리는, 공사를 진행시키기 위해서 온갖 일을 다 해왔었다. 그리고 그 일의 일부는…
"나리. 주무시지 않으시면 내일 일에 차질이 있을 겁니다."
내 생각이 더 깊어지기 전, 누군가가 그 곳으로 들어왔다. 동백이었다. 느슨하게 목 뒤로 넘겨 묶은 머리카락이 풀어져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동백은 나에게 너스레를 떠는 것 치고는 일꾼들과 그리 가까워지지 못했다. 이런저런 일을 함께 해온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아무래도 그가 막노동에 적합한 신체적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혹은, 동백이 그들과의 거리를 어느정도 유지해서 였을 수도 있다. 나는 감독관이었으므로 막노동꾼들을 관리했지만, 그 안에서 한창 일을 하는 도중의 동백의 모습은 그다지 자세히 보지 못했다. 대신 일과가 끝나기 전이나 끝난 이후에는 동백과 자주 마주쳤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근무 일정이 마친 이후의 잡일까지 모두 끝난 휴식 시간에, 언제나처럼 동백은 늦게 잤고 다른 이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그 결과물이 지금의 일이다. 동백은 의도치 않게 내가 짐승과도 같은 사고 방식에 침식되는 것을 막아주었다. 나는 그의 말에 짧게 대답했다.
"그래."
"술 상대가 필요하십니까?"
"그냥 네가 술을 마시고 싶은 건 아니냐?"
그럴지도. 동백의 대답은 짧았다. 나는 술상 근처에 다가오는 동백을 말리지 않았다. 나리, 술 한잔만 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동백에게 술잔을 건네었고, 말하지 않았지만 동백은 내가 술을 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이 행동했다. 술상을 차린 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술상에 다가올 것을 예상한 것 같이 2인분의 술잔에다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수저 일체를 구비해두었다. 동백은 술을 마셨고, 안주를 집어 먹고는 말했다. 다 식은 것이지만 그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른 없을 것이다.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한 것도 아닌데 술과 안주를 곁들여 먹는 것은 현장의 일꾼들에게는 드문 일이었다.
"이야, 이 밤에 술에 고기 안주라니. 역시 감독관님이십니다. 맛있겠다."
"……"
"자. 이로서, 저의 소원도 이루어졌습니다. 기억하고 계시지요? 제 소원이 그거였다는 거요."
동백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이내 안주를 조금 더 집어먹는 소리가 났다. 그 것이 소원이라는 그의 말에 시야가 흐려져서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였다. 그래, 너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었다. 배부르게 먹는 것이 네 소원이라고. 내가 침묵을 유지하고 있으니, 내 허가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는 듯 동백은 아무 말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흔들리는 불빛 너머의 동백의 모습을 보았다.
익숙한 모습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얼굴의 모양새. 곧 나는 내 눈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그 것을 알았다면 더, 같은 예측은 이제 무의미했다.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은 계집아이였다. 남자의 옷을 입고 남자의 목소리를 흉내내었으나, 그 것은 여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동백. 이 곳에 새로 일하러 오기 시작한 일꾼. 나는 그제서야 그 이름을 천천히 속으로 되뇌어보았다. 처음 들었던 그의 말 대로 동전 백 개가 아니라, 그 것은…
"왜 그런 소원을 말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소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백꽃, 그래. 네 이름은."
"-어째서 저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주었을까요, 제 아비 말입니다. 그렇게 죽어버릴 거면 태어나게 만들지를 말았어야지. 아니면, 꽃이 아닌 다른 것으로 태어나게 해주었으면 어떨까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 철을 꽃을 피워내었다가 져버리는 꽃이 아니라, 한 곳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채로 자라가는… 나무 말입니다. 동백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나무보다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 아비도 그러한 뜻으로 내 이름을 지었을 것입니다."
숨긴 것이냐. 어떤 것이라고 지칭하지 않은 채로 나는 동백에게 물었고, 동백은 고개를 양 옆으로 저으며 대답했다.
"일부러는 아니었습니다. 나리, 나는 꽃으로 태어나서 한 번도 꽃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리께도 내가 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것 보다는 동전 백 개. 이 막노동판에서 굴러먹기에 좀 더 직관적인 이름이 아닙니까."
나는 눈 앞에 있는 계집을 보았다. 동백꽃. 그 것의 이름은 동백꽃이다. 꽃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통째로 그 꽃의 형상을 유지한 채로 저무는 꽃. 지금 공사 중인 미추홀 지역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조금 더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꽃. 계집. 그가 이 곳에 머무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하여 나는 생각하려고 노력하였으나, 판단할 수 없었다. 그 판단을 내리는 도중 내 눈앞의 꽃은 다시금 말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꽃은 지기 마련입니다. 나리."
"……"
"-꽃으로서의 소원을 이루고 진다면, 그건… 꽃의 입장에서는 더 바랄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술이 아닌 다른 것에 취한 채로 나는 또렷하게 말하는 동백의 말을 듣는다. 나는 취한 것이 들림 없었다. 확실한 것은 술이 아니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동백의 말은 어느 한 마디도 불분명하게 들리지 않았고 또렷하기만 했다. 일을 하면서 한 번도 그런 식으로 들어본 적이 없는 목소리였다. 이제는 완전한 계집의 고운 목소리가 된 동백은 자신을 꽃이라고 소개했다.
그 새벽에, 나는 술이 아닌 동백꽃에 취했다.
하지만 그렇게 내 품 안에서 시들어간 꽃을 어떻게 다루는지, 나는 그에 대한 방법을 알지 못한 것이다.
부록 3: SCP-1032-KO에 의한 빙의 및 환각 경험자 2인의 면담 기록
면담자: SCP-1032-KO 담당 박민수 연구원, 인천광역시 서구 거주자 서진원(28세) 및 부평구 거주자 차신규(32세)
장소: 백석동 ██공원 내부의 벤치
서씨와 차씨는 SCP-1032-KO의 연구를 위하여 약한 정도의 기억소거조치를 받은 비변칙적 인간 남성이다. 둘은 SCP-1032-KO가 일으킨 현상으로 인하여 정신과적 치료를 받고 있으며, 모두 인천광역시 내에 위치한 동일한 정신병원에 내원하여 치료 및 상담을 받고 있다. 본 면담은 PTSD 자조 모임을 가장하여 진행되었고, 면담 대상자와 사전 라포 형성을 마친 박민수 연구원의 제안으로 두 인원이 동시에 발견된 백석동 ██공원 내부에서 면담이 이루어졌다. 연구 목적으로 SCP-1032-KO-3의 출현에 대비하여, 기동특무부대 무호-17 " 도시 한가운데 " 부대원 2인과 무속학부 인원 1인이 공원 방문객을 가장하여 공원 내에 대기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녹음 시작>
박민수 연구원: 어서오세요, 서진원님과 차신규님이죠?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박민수라고 합니다. 저는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본 자조 모임의 사회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녹음기를 좀 켜도 될까요? 이 녹음은 연구 목적으로만 사용됩니다. 자조 모임중 불편하신 감정이 크게 드실 때는 대화와 해당 녹음 및 진행을 언제라도 중지할 수 있습니다. 편하게 요청해주시면 됩니다.
서진원: 안녕하세요, 선생님. 병원 밖에서는 처음 뵙네요. 미리 와서 신규씨와 미리 말하고 있었어요. 그 날 일에 대한 것들이요.
차신규: 네, 선생님. 확실히 같은 경험을 겪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장소에서 하는 것도 좀 특별한 치료 방법 같고.
박민수 연구원: 이 만남은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에요. 자, 우선. 진원님부터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날 어떤 일을 겪으셨는지요.
서진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쉬러 집으로 간 날이에요. 그 알바가 마지막이 될 줄도 몰랐죠. 솔직히 아직도 진짜라고 생각이 들진 않아요. 꿈인가 싶기도 합니다. 저는 그 일이 발생한 동안에, 참 다양한 것들을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물 소리가 많이 나는 걸 피하게 됩니다. 세수를 할 때도 샤워기를 틀면서 하고, 네.
차신규: 잠깐 말해도 되겠습니까? 진원 씨와 이야기한 부분이지만, 선생님께서는 못 들으셨을 테니 다시 한번 설명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 두 사람이 그런 일을 함께 겪고 이 공원에서 발견되었지만… 저희 둘의 경험에는 공통적인 것도, 차이점도 있었습니다.
박민수 연구원: 좋습니다. 신규님,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차신규: 저도 그렇고, 아, 방금 진원 씨가 살짝 언급하시기도 했었던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 날 이 곳에 도착했을 때 끝없이 물이 쏟아지는 듯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소리였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이 바다와 인접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공원은 바다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인데도 말입니다. 그 때 저는 몇 주 정도 우울증 약을 먹지 않았던 상태였으니 그 것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 때 그 소리가 꼭, 절 부르는 것 같이 들렸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음수대의 수도꼭지를 가장 센 강도로 틀고, 물이 줄줄 흘러넘치도록 한 상태에서 고개를 그 곳에 쳐박고 있었던 겁니다.
박민수 연구원: 아무래도 단약의 문제였을 수도요. 신규님은 그 때 죽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셨을까요?
차신규: 우울증이 있긴 했지만,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죄송합니다. 잠깐…
박민수 연구원: 네, 그럼. 진원 씨에게도 질문 드릴게요. 신규 님이 말씀하신 것 처럼 두 분이 겪은 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이 공원에 오게 된 날의 일에 초점을 맞춰보도록 할게요.
서진원: 선생님, 파도나 물소리가 들리는 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하지만 좀 달랐어요. 저는 저… 동백나무 근처였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그 앞에 와 있었죠. 왜 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나무 근처에서, 바다에서나 날 것 같은 물 소리가 끝없이 들렸고요. 전 그게 본능적으로 두려워졌죠. 저는 그 걸 피하고 싶어서 좀 더 땅의 아래로 파고 들어가서… 그 아래에서, 편해지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아, 정말 죄송해요. 사실 죽으려는 생각은 그 땐 없었는데요. 그냥, 말 그대로에요. '편해지면 좋을텐데' 정도의 생각 밖에는.
박민수 연구원: 정리해볼까요? 두 분은 이 공간에서 바다에서 날 것 같은 물의 소리를 들으셨다는 뜻이군요. 공통적인 부분은 이 게 맞을까요?
서진원: 괴로웠습니다. 그 곳에서 저는 맨 손으로, 땅을 팠습니다. 그 때는 물에서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제가 했던 행동은 땅 안에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한 행동인 것도 같았죠. 물 속에 잠겨가는 어떤 존재요. …뭔진 모르겠고요.
차신규: 무섭고 괴롭기도 한 경험이었습니다. 맨 정신으로 누가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호흡할 때마다 물이 폐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대로 죽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행동을 멈출 수가 없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구해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지만…(잠시 침묵) 그 것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고, 떠올려버렸고. 아무래도 우울증의 증세가 악화된 것 같아서, 구해지고 나서 다시 약을 먹게 되었습니다.
서진원: 그렇게 제가 땅을 판 다음 누워서, 마침내 내가 누운 땅 속이 편안하다고 생각 했을 때, 문득… 저는 옆에, 누군가가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건 끊임없이 귀에서 들리는 물 소리가 무서워서 아마 기분 탓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 때 느꼈던 땅 속의 감각이 굉장히, 저에게는 편안하게 생각이 되어서.
(보충 기록: SCP-1032-KO-1 근처의 CCTV 기록에 따르면, 본 사례에서 서진원에게 빙의한 SCP-1032-KO-3는 탈취 대신 그의 옆에 눕는 행동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와 관련된 서진원의 기억은 재단에 의하여 말소되어 SCP-1032-KO-2의 존재에 대해서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박민수 연구원: 그런 행동은 최근에 흔히 하고 있는 임종 체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마음이 좀 편해지실까요, 진원님?
서진원: 글쎄요. 저도… 가벼운 우울증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땅 아래에 파묻히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는 못했던 거라서. 하지만 그 때 저는 여기서 일어나게 된다면 나의 몸을 덮쳐오는 물 때문에 숨을 쉬지 못한 채로 죽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네요. 저는 땅 속에서 누워 있는 것이 꽤 좋았어요. 그 게 편하게 느껴졌고, 어째서인지. 그리고 저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제 위를 덮는 흙을 떠올렸지요. 잘은 모르겠지만 그 옆의 누군가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제 정신이 좀 맛이 가서 전부 환각이겠지만요. 흔히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어쩌구… 꽤 있잖아요.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차신규: 그런 식으로 음수대에서 물을 들이마시고 있으니까, 호흡이 점점 좋지 않아지면서도 왠지 시각에는 파란 바다의 풍경이 들어왔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일을 많이 한 나머지 드디어 나도 맛이 갔구나, 하고 생각해버렸는데도 왠지 저는 그 바다의 풍경이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부분이 진원 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다가 나를 덮쳐오는 그 환각을 계속해서 보고 싶었던 저는 계속해서 음수대의 물을 틀고, 들이마시고, 그러다가.
박민수 연구원: 두 분다 그 상태로 정신을 잃은 채로, 119에 발견이 되셨던 거군요. 저도 ██공원에 산책 나왔다가 그 장면을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요… 생각해보니 두 분과 인연이 깊습니다.
서진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선생님. 덕분에 빨리 신고가 들어갔고, 우리 둘 다 아무튼 살아서 다시 여기 오게 되었으니까요. 다만, 이 곳에 올 때마다 저의 우울증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었다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해지거든요. 근데 언제까지고 이렇게 살 수는 없잖아요. 일단 제가 이 근처에 살고 있어서… 문제가 있다면 두려움을 마주하고 자신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점은 신규 씨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차신규: 제 행동을 신고해주신 덕분에, 그래도 빨리 조치가 취해져서 다행이었습니다. 또 덕분에 제가 단약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다만, 아직도 좀 의문이 드는 건 그 일이 발생하게 된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진원 씨와는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일이 벌어진 이 곳에 오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박민수 연구원: 자신의 트리거와 당당히 마주하시고자 하는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들려주신 이야기는 앞으로의 치료 방향 설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자, 여러분. 면담은 여기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왕 여기까지 오신 거, 저 쪽에 동백 꽃이 예쁘게 피어 있는데 한번 감상하고 가실까요?
서진원: 인천에 고목 동백나무라니, 신기하네요. 동백꽃이 참 크게 핀 게… 그리고 저는 어쩐지 낯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확실히 본 기억이 있는데… 에이, 모르겠다. 꽃 같은 건 애초에 흔히 보이는 것들이니까. 이 공원의 모습을 마주하면 차차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요?
차신규: 저는 그 사건 이후로 이 공원의 모습을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사진을 좀 찍어가야 겠습니다. 꽃이 예쁘네요. 아무튼 진원 씨 말대로 자주 보면 극복에 도움이 될 테니까요. 동백꽃이 피는 이 계절이 지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더 크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겨울 끝 무렵이 지나면 봄이 오곤 하니까, 맞습니까?
(면담 종료.)
3. 제사 祭祀
동백은 눈을 뜨지 않았다. 나는 미약하게 그 자리에서 호흡을 내뱉던 동백을 스스로 깨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 자신의, 내가 저지른 과오를 가리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모두에게 알렸다.
이미 알고 있지 않던가? 그들은 나와 같은 종류의 짐승들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짐승이 동백을 조롱하고, 상스러운 말을 내 섞어가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계집이 일을 하다니 말세로세!"
"그럴 줄 알았다, 쯧쯧. 계집이 이 곳에서 일을 하다니, 재수 없게!"
"감독님, 이렇게 된 거 우리는 그 것을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는 어제 내 곁에서 술을 마시고, 안주를 마시던 동백의 모습을 떠올렸다. 하지만 이미 짐승은 내 옆에 가까워져 있었고, 나 역시 그 짐승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 외에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또 나에게는 더 이상, 선택할 길도 생각할만한 여지도 없었다.
그러므로.
…
준비를 모두 마친 우리는 방죽 아래로 갔고, 동백의 몸을 갯벌에 뉘였다. 그 몸이 숨을 쉬고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빠르게 작업을 끝내야만 했다. 그 몸 위로 돌과 흙을 쌓았고,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잡담하나 하지 않고 밀물이 올 때까지 죽을 힘을 다해서 둑을 쌓기 시작했다.
짐승의 기도를 신이 들을 것인가 같은 것은, 이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소리를 높였다.
“저희의 제물을 받으시고 이제 바닷물을 막게 도와 주소서.”
둑의 밑바닥에 엄청난 기세로 올라온 바닷물이 닿고, 모든 작업자들은 그 위에서 수 없이 절을 하기 시작했다. 그 수 없이 반복된 절 도중, 나는 내 눈 앞이 흐릿하게 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물이었다. 나는 차마 그 것을 닦아낼 자격도 없는 것이다. 나는 널 죽였다. 나는 네가 천천히 호흡하는 것을 분명히 목격했다. 그러므로 너를 살릴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떠도는 들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자다. 나는 진실된 모습을 보여준 너를 배신했다.
그 날 보여줬었던 네 진짜 모습을, 분명 나도 다시 한번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다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네가, 저 바다 속으로 가 버렸고 이제는 피어나지 못할 꽃이 되어버렸다.
…
동백을 품은 둑은 무너지지 않았다. 우리의 공사는 성공했다. 마지막까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그를 희생시켜서. 그리고 들짐승인 우리들은, 우리가 품은 죄책감 역시 그 둑 안에 모두 파묻어 버렸다. 나는 내 안의 어떤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내가 말한 외침은 공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들은… 많은 이를 구했다. 우리는 어차피 오래전부터 순수한 이들을 먹여살릴 땅을 만들어내었다. 그런 것을 자랑스러워해도 좋을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더 큰 이들이 희생당할 거라는, 도무지 이치에 맞지 않는 논리를 앞세워 설득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짐승들을 향해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이 것으로 우리는 큰 죄를 지었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시켜 왔다. 알고 있으면 되는 일이다. 우리의 더럽혀진 손은 영영 더러운 상태이며, 우리는 그 어느 땅에도 오래도록 발을 내딛은 채 살아갈 수 없는 짐승들이다."
그리고 정말로 하고 싶던 말을, 덧붙였다.
"-동백을 위하여 제사를 지내도록 하자."
그 일 이후, 나는 다시 그 곳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는, 나와 동백의 이야기 역시 서서히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예정이다. 나는…
SCP-1032-KO 추가 기록: 박민수 연구원(이하 SCP-1032-KO-3)의 SCP-1032-KO-2 접근 사건
박민수 연구원은 SCP-1032-KO의 담당 연구원으로, 4년 이상 해당 SCP를 담당하여 공원 관리자 또는 정신건강전문요원 등을 위장하여 연구한 재단 직원이다. CCTV 녹화장면의 분석 결과 SCP-1032-KO-3의 빙의 상태로 확인이 되었고, 사건 종료 후 진행된 무속학적 프로토콜 진행 분석 결과 SCP-1032-KO-3의 빙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본 사건은 SCP-1032-KO가 일으키는 독특한 변칙적 환각의 발현 없이 사건이 마무리 되었었으므로, 탈취 사건이 아닌 접근 사건으로 기록한다. 해당 사례는 SCP-1032-KO-3이 직접적으로 담당 중인 재단 직원에게 빙의한 최초의 사례로, 기존의 SCP-1032-KO-3의 빙의 사례와의 차이점 및 SCP-1032-KO의 격리 절차 적합성 등 분석을 위한 추가 기록물로서 보존한다.
<기록 시작>
박민수 연구원(이하 SCP-1032-KO-3): (세탁용 비닐이 씌워진 옷 한 벌을 가지고, SCP-1032-KO-1에 접근 중이다. 박민수 연구원이 공원 직원으로 위장하여 SCP-1032-KO를 담당하기 시작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기에, SCP-1032-KO-1에 접근하는 것을 아무도 막지 않는다.) 자.
SCP-1032-KO-3: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중얼거린다.) 많이 달라져 버렸지. 이 곳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 곳이다. 바다와도 거리가 있게 되었어.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 때 우리의 행동이 의미가 없지는 않았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내가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좋겠다.
SCP-1032-KO-3: (SCP-1032-KO-1의 앞에 선다. 바닥에 떨어진 분홍색의 동백꽃 한 송이를 주워들었다.) 면목 없지만… 동백아. 나는 너를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이제야 깨닫게 되었어.
(SCP-1032-KO-3은 옆에 세탁용 비닐이 씌워진 옷 한 벌을 내려놓고, 손으로 조심스럽게 바닥을 파내었다. 담당 연구원이 SCP-1032-KO-3에 빙의한 상태로 부재한 상황이라 신고가 늦어져, 이 모든 작업은 시간을 들여 서서히 이루어진다. 공원 안의 사람들은 공원 관리자로 위장한지 오래된 박민수 연구원이 땅을 파고 있는 것을 수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SCP-1032-KO-1의 땅을 파게 된지 17분이 지나, SCP-1032-KO-3은 SCP-1032-KO-2에 접근한다.)
SCP-1032-KO-3: 살아 생전 너는 한 번도 네가 원했었던 모습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런 말을 하지 않았겠지. 그리고 나는, 그걸 알아 보았지만… 그 때도 그렇게 존재하도록 허락해주지 못했었다. 마지막까지. 떠나기 전에 네 진짜 모습을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동백.
(SCP-1032-KO-3은 옆에 내려둔 비닐을 열어, 옷을 꺼낸다. 붉은 색의 치마와 연두색의 저고리, 여성용 한복 한 벌이 포착된다.)
SCP-1032-KO-3: 신기하기도 하지, 동백. 새색시 한복이라고 하는 것들은 너… 하나같이 동백꽃을 떠올리게 하는 조합의 색이었다. 붉은색과 녹색이다. 새색시라는 이름이 너와는 어울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 색이 네 이름과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SCP-1032-KO-3은 시간을 들여 SCP-1032-KO-2에게 치마와 저고리를 입혀주고, 꽃 송이 째로 떨어진 동백꽃을 그 머리 위에 얹어주었다.)
SCP-1032-KO-3: 나는 네가 네 진짜 모습인 동백 꽃인 상태로, 다시 한번 만나기를 바랐었다. 바다 아래에 파묻혔던 너는 이제야 대지 위에서 피어나, 단단히 뿌리 내린 나무로 자리 잡고 동백꽃이 되어버렸어. (침묵한다. 잠시 뒤, SCP-1032-KO-3은 SCP-1032-KO-2의 위로 천천히 흙을 덮으며 이어 말한다.) 하지만 너는 드디어 네 이름대로 살게 되었구나. 살아서는 꽃이었던 적이 없었던, 동백 꽃. 연약한 꽃이 아니라,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 되었잖아. 나는 그게 네 소원이었을 거라고 생각해.
SCP-1032-KO-3: 나는 그 때 너를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들짐승의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세상이 부끄러워 너와 나의 이야기를 비롯한 그 모든 것에서 등을 돌린 채 숨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고 수 백년이 지나고 나서야 네가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게 되어서… 다시 한번,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오늘은 네가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을 내가 준비해보았다. 부디 네가 기뻐해주었으면 좋겠구나, 동백아.
(SCP-1032-KO-3은 SCP-1032-KO-2를 흙으로 모두 덮은 뒤, SCP-1032-KO-1을 잠시 산책하다 자리를 떠난다. SCP-1032-KO-3이 떠난 자리 뒤 쪽으로 분홍색의 동백꽃이 서 너 송이가 통째로 떨어져 있다.)
<기록 종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