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한양도성 순성길
저택에서 그리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바깥은 이미 오후가 되기 직전이었다. 송윤이 함정을 파려 일부러 경비들을 철수시켰었던 까닭에, 창이와 효린은 인파에 섞여 무사히 바깥으로 빠져나오게 되었다.
"괜찮아요?"
"뭐, 네. 나쁘지 않아요." 온몸에 남은 교전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창이는 문제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다친 것 같아 보였는데…"
"총은 쇳덩어리로 만들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강한 철로 만들어지죠.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뭐… 그렇다면야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씩 웃어 보이는 창이의 모습에 효린은 걱정을 거두었다.
"괜찮으시다 했으니, 질문 하나 해도 되겠죠?"
"뭔가요?"
"저택 말이에요. 막 공간이 바뀌고 넓어지고. 느끼셨죠?"
"…네." 창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거, 왠지 저희에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이는 거 같더라고요."
"…"
"어쩌면, 저택 자체도 어르신의 유지를 받들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
"……"
양쪽 모두 답을 내지 못하는 상황. 효린은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이제 가게나 청소해야겠네요. 폐점은 하더라도 깨끗해야 매각이 되거든요."
"진짜 문 닫으려고요?" 창이가 의아한 듯 말했다.
"뭐, 애초에 금괴도 다 두고 나왔잖아요."
"효린 씨, 정말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창이가 능글맞은 소리를 하며 효린에게 코트 안을 살짝 비추어 보였다. 반짝거리는 금괴 하나가 안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엥? 아니, 언제 그걸…"
"마지막 반격 수단으로 챙겨뒀었는데, 효린 씨가 때마침 나타나 줘서 쓸 일이 없게 되었네요. 그리고, 저도 약속한 건 지켜야죠. 금괴 하나의 4할 정도라면, 거절할 정도로 크진 않겠죠?
"아니, 그래도…"
"절 끝까지 도와주셨잖아요.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목숨까지 걸으셨고요. 이제는, 제가 효린 씨를 도와드릴 차례라고 생각해요."
"……"
효린은 잠깐 뜸을 들였다. 확실히, 계속 거절만 하는 것도 좋아 보이진 않는 행동이었다.
"뭐… 그럼 휴점만 했다가 도로 열도록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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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5월
클래식 바 "톨링 벨"
"조금만, 조금만 더 가져다 주게… 젠장. 오늘 기분 참 더럽군"
두 달 전, 처분한 금으로 수리를 마쳐낸 "톨링 벨"은 지금까지 없었던 대단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창이가 조폭들을 전부 박살냈다는 소문이 퍼져 주변의 인적 환경이 크게 개선된 덕이 컸다.
"예, 갑니다!" 바텐더 복장의 창이가 외쳤다. 망명지로 다시 돌아갈 이유가 없었던 까닭에, 그녀는 이제 "톨링 벨"의 직원으로 고용되어 일을 하고 있었다. 창이의 존재 자체가 불량배들을 쫓는 방충제의 역할도 하는 건 덤이었다.
"사십 넘게 산 인생에 이렇게나 독하게 마신 건 처음이구만… 크윽." 손님이 창이에게서 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제복 차림으로 보아 군에서 일하는 사람임은 확실했으나, 부착물들을 전부 떼놓은 탓에 어디서 뭘 하는진 알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도수 높은 것도 아닌데."
"유능한 부하가 왔길래 기대를 했다만, 한 달 반쯤 지나니 그대로 실종되어 버렸어!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시체조차 회수 못했다고…"
"진정해요…" 소란을 피울 듯한 낌새를 느낀 창이가 눈치를 주며 말했다.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그냥 다른 부서로 떠넘겨야 했어… 내가 미쳤지, 아공간 하나 갖고 무슨 성과가 나온다고… 제길!"
"창이 씨, 저분 끌고 나가주세요. 추가 요금은 안 받을 거니까."
"예… 뭔 힘이 이렇게 세지." 효린의 요청에 창이가 취한 손님을 끌고 나가려 안간힘을 썼다. 술기운 덕에 조금씩 끌려가긴 했지만, 그래도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요즘 사람 모양의 무기들이 내 마음고생을 자꾸만 시킨단 말이야. 최근에는 청록... 뭐시기에도 새로 하나 왔다고 하더군. 히히히히히히…"
"완전히 정신줄을 놓으셨네. 어디 아무 벤치에나 재워 놓고 올게요."
"나는 슈판다우다. 나는…!"
"…대체 무슨 소리야."
말은 그렇게 했다만, 만취로 횡설수설하는 손님의 발언에 창이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사람 모양 무기, 그것은 나를 말하는 게 아닌가?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단 말인가? 과연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들 있는 것인가?
"…언젠가 한번 효린 씨에게 말해서 탐색해 봐야겠네요."
때마침 도착한 군복 입은 남자에게 제복 손님을 넘긴 창이가 혼잣말로 중얼댔다. 규택 어르신과 헤어진 이후, 효린과 만나기 전까지 계속 혼자였던 창이였다. 동류의 존재, 그것은 그녀를 움직이기에 참으로 알맞은 동기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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