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중 리사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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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소리 가득한 홍대 입구, 젊은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매만지는 사이, 그들 사이에서 머리가 희끗한 50대 남자가 서 있었다. 바이올린 하나 들고 아주 작은 앰프와 마이크에 의존하는, 멋들어진 옷차림과 화려한 장식의 군중 사이에서 주름진 반팔 와이셔츠와 어두운 고목 색의 긴 바지, 낡은 구두 한 켤레와 함께하는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활을 바이올린에 올린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활과 바쁘게 움직이는 그의 손이 가녀린 마이크를 타고 조그마한 앰프로 울려 퍼진다. 몇 명의 발길이 잠깐씩 끊기다가 이내 다시 갈 길을 떠난다. 몇 명이나 그렇게 보냈을까 남자가 바이올린에서 활을 거두었을 때 한 쌍의 아이들만이 남아있었다.

어린 남자아이가 조금 더 나이가 든, 그러나 이제 갓 학교에 발을 들인 것 같은 여자아이의 작은 손에 꼬옥 의지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남매라고 생각될 정도의 모습이었다. 남자는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려는 찰나 두 아이의 눈망울에 그렁그렁 맺히는 슬픈 이슬을 보았다. 소년의 앙다문 입에서는 입꼬리가 슬픔과 두려움에 버티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고 소녀의 불끈 쥔 손은 낯선 세계가 보여주는 모습에 창백해지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두 아이에게 다시 한번 빙긋 웃어 보이고는 손에 들고 있는 바이올린을 정리하고는 다시 새로운 바이올린과 활을 꺼내 들었다. 평범한 바이올린이 아니라고 얘기하듯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몸에 자라난 싱그러운 풀잎은 아이들 눈의 이슬 사이로 호기심이란 햇빛이 드문드문 드러나기에 충분했다.

남자는 다시 활을 들었다. 수많은 음악 소리를 반주 삼고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를 코러스 삼아 그의 첫 음이 연주되었다. 그 첫 음으로 시작된 힘찬 선율은 귀빈 두 명의 가슴으로 다가와 불안함과 경계심이란 이름의 빗장으로 가득 한 문을 두드렸고 이내 그 둘의 가슴을 울렸다. 힘찬 선율 뒤이은 부드러운 음률은 빗장 친문 안에서 덜덜 떨고 있는 그 둘을 꼭 안아주었고 이내 그 둘의 마음을 보듬어 줬다. 두 관객의 얼굴에 기쁜 홍조가 돌아오기 시작하자 이번엔 활기찬 멜로디가 찾아와 그 둘의 손을 잡아주고는 함께 뛰어놀았고 이내 그 둘의 영혼과 함께했다. 새를 벗 삼아 지저귀고 바람을 길 삼아 귓가에서 춤추는 그의 연주 이상의 무언가에 어린 관객들의 눈에는 반짝이는 별빛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남자의 연주가 끝나고 두 어린 관객들이 여운에 취하고 있을 무렵, 남자는 뒤쪽의 가방에서 자그마한 상자를 하나 꺼내 이리저리 부품을 때었다 붙였다 하더니 두 관객에게 쥐어줬다. 어린 관객들은 음표와 나무 그림으로 수수하게 장식된 나무 상자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경첩이 너무 아름다워 이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더니, 이 작은 상자가 방금 들은 노래가 조그맣게 흘러나오는 오르골이었다는 것에 해맑고 밝은 미소를 띠어보았다.

그러나 오르골의 소리에 흠뻑 취해있던 어린 관객들은 남자가 이미 군중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몰개성한 차림을 한 그의 희끗희끗한 머리를 찾으려는 두 귀빈에게 선사한 남자의 단독 공연은 오르골의 음악이 끝날 무렵 어린 관객들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의 부모님이 내뱉는 걱정과 안도감에 뒤섞인 울음으로 막을 내렸다.




신규 변칙 개체 기록

물체 설명: 작동할 때마다 작동시킨 사람의 위치와 신상정보를 반경 10km 이내의 모든 사람이 본능적으로 알게 만들어 주는 목제 오르골. 대한민국, 서울 마포구를 중심으로 6세 남아 조██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계속 들어온다는 신고가 빗발치던 사건 당시 발견되었다.
회수 일자: 2018-08-01
회수 장소: 대한민국, 서울
현 상태: 제202K기지 저위험 변칙 개체 보관실에 보관됨
주석: 해당 오르골에 ‘한낮의 떡갈나무 유랑극단’ 로고가 각인되어 있어 해당 변칙 개체에 대해 극단 측에 문의하였다. 이에 '휴가 중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급하게 개조를 하여 발생한 결과물입니다. 여러분의 노고와 도움에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합니다. ' 라고 극단의 단장 명의로 답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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