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과 분홍색, 보라색들이 아우러진, 미래지향적이고도 몽글몽글함이 느껴지는 동화적인 느낌의 연구실이 있었다. 마치 아동을 위한 교육용 과학 방송에서 나올만한, 그런 장소였다.
다양한 약물들이 부글부글 끓고, 증류되고, 발효되고 있는 실험실 안에는, 보라색 묶음 머리를 하고 흰색 실험용 가운을 입은, 10대 초중반의 외모를 한 여성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다도'였다.
"로버트 미첼, 거기 온도 좀 높여줘요."
다소 어리숙하고 순박한 목소리가 부탁하자. 이를 들은 햄스터 한 마리가 투명한 파이프로 만들어진 전용 이동 통로를 따라 부지런히 이동하며 실험 기구들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 햄스터는 보통의 우량 햄스터보다도 월등히 크고 투실투실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다.
햄스터의 이름은 '로버트 미첼'이었다.
암살용 바나나 알약, 사람을 태양으로 만드는 알약 같은 기상천외한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다도, 그리고 다도의 몇몇 실험들을 도와주며 동시에 여러 세무 업무를 맡고 있는 로버트 미첼, 둘은 훌륭한 사업 파트너였다.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다도는 주문을 받은 상품을 만들고 있었다. 마인크래프트 유저들을 위한 물약이었다. 디지털 약물을 만드는 것은 꽤나 까다로웠기에, 그녀는 로버트 미첼에게 부탁해 플러그소프트로부터 몇 가지 소스코드 다섯 박스를 주문할 것을 부탁하고 있었다.
"콜록!"
한창 개발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 다도의 입에서 기침과 함께 무언가 튀어나와 그녀의 실험복과 흰색 탁자를 적셨다. 요즘따라 '다도의 활력 쑥쑥약'을 마셔도 좀처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다도에게서 나온 것은, 피…
…는 아니고 포도 주스였다.
"로버트 미첼, 그거 핥아 먹으면 안돼요. 지지에요."
물론,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다도의 몸속 피는 포도 주스였기에, 그것은 곧 피를 토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그렇다고 다도가 죽었다가 3일 내에 부활한다거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도는 포도 주스를 닦으며, 이제 슬슬 '그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만져본 로버트 미첼의 털이 윤기를 잃고 꽤나 거칠거칠한 것은, '그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또다른 증거였다.
"이제 슬슬 그걸 또 해야 하나봐요."
혼잣말을 중얼거린 다도는 연구실 한 구석에 있는 캐비넷을 열고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연구실의 분위기에 맞지 않게, 캐비넷은 칙칙한 회색이었다.
"영차!"
다도는 조그마한 덩치로는 들기 힘들어 보이는 커다란 보랏빛 케이스를 들고 뽈뽈거리며 탁자로 돌아왔다. 탁자 위에 힘을 들여 겨우 케이스를 올려놓은 다도가 케이스를 열자, 그 안에는 뜬금없게도 웬 낚시대 하나가 들어있었다.
분홍색 낚시대에는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차원 간 낚싯줄과 미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역시 싸게 잘 산 것 같아요."
다도는 자신이 개발한, 연보라색 클레이로 된 알약 같은 것을 낚시바늘에 매달며 흥얼거렸다.
"영차!"
다도가 허공을 향해 힘차게 낚싯줄을 던지자, 낚시바늘은 허공의 어디선가 갑작스레 사라졌다. 바늘과 이어져 있을 줄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다도가 낑낑거리며 낚싯줄을 감아 올리자, 곧이어 부욱하고 비눗방울로 된 벽지가 찢어지는 듯한 함께 몽글거리는, 보랏빛이 감도는 흰색의 거품 무더기가 낚싯줄에 걸려나왔다. 찢겨진 차원의 벽 너머로는 이런 거품 무더기들이 범람하는 분홍빛 구름투성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로버트 미첼, 주사기 주세요."
토실토실한 햄스터는 다도의 부름에 꽤나 큼지막한 주사기를 등에 매고 쪼르르 달려왔다. 다도가 주사기를 받아 거품에 꽂고 피스톤을 잡아당기자, 거품더미는 그 큰 부피가 무색하게 순식간에 주사기로 모조리 빨려들어갔다. 거품은 밖에 있을 때보다 좀 더 짙은 보라색을 띠고 있었다.
다도가 다음으로 한 일은, 연구실과 이어진 흰색 문과 연결된 방에 있는 햄스터 사육장에 들르는 것이었다. 흰색과 연분홍빛 벽지들로 인테리어된 텅 빈 방 안의 탁자 위에는, 토실토실한 햄스터 한 마리가 들어있는 대형 햄스터 수조가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다도는 조심스레 햄스터를 수조에서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손바닥 위에서 해바라기씨를 여전히 오물거리고 있던 햄스터에게 거품이 든 주사기를 조심스럽게 꽂았다. 신기하게도, 그 큰 주삿바늘이 들어가는 와중에도 햄스터는 아프기는 커녕 따갑다는 느낌조차 없는지 해바라기씨를 오물거리고 있었다.
거품이 모두 햄스터의 몸 안으로 들어가자, 햄스터를 데리고 실험실로 돌아온 다도는 햄스터를 살며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햄스터를 바닥에 내려놓고 3초도 지나지 않아, 햄스터는 마치 깜짝 놀란 듯이 몸이 경직되었다. 그리고 곧이어, 햄스터의 몸에선 대량의 보라색 비눗방울들이 보글보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햄스터에게서 쏟아져 나온 비눗방울 무더기는 다도의 키만큼 커져갔다. 뒤이어 방울들은 사람의 형태로 응축되며 사그라들기를 반복했고, 방울들이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보라색 묶음 머리에 흰 가운을 입은, 10대 초중반의 여성이 서 있었다.
"나는 다도에요."
"나도 다도에요."
"고생했어요, 다도!"
"힘내길 바라요, 다도!"
두 다도는 서로 정답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도를 새로 만든 다도는 서서히 보랏빛 물거품으로 변해갔다. 부글거리는 물거품이 사그라든 자리에는 약간의 거품과 포도 주스, 그리고 보통의 햄스터보다 크고 투실투실한 덩치를 자랑하는 햄스터가 있었다.
다도는 햄스터를 두 손으로 조심스레 들어올려 눈높이를 맞춘채 바라보았다.
"잘 부탁해요. 로버트 미첼!"
그리고 다도가 공간에 여전히 뻥 뚫린 구멍을 바라보자, 그곳 앞에는 선대 로버트 미첼이 있었다.
"고생했어요, 로버트 미첼!"
로버트 미첼은 이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두 발로 선 채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곧장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
구멍을 바라보던 다도는 회색 캐비넷을 뒤적거려 스프레이 하나를 가져왔다. 차원을 가로지르는 거미줄을 치는 거미들을 잡아다 원료를 추출하여 다도가 손수 만든 것이었다.
'치이익, 치이이익'
다도는 뻥 뚫린 구멍 여기저기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스프레이 통에서 분사된 희고 찐득찐득한 약은 이내 딱딱하고 견고하게 굳어 구멍을 꼭꼭 막았다.
허공에 붕 떠 있던 희고 딱딱한 벽은 순식간에 증발하듯이 사라졌다.
"이제 연구를 계속해요, 로버트 미첼."
다도와 로버트 미첼은 선대 다도와 선대 로버트 미첼이 하던 연구를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나갔다. 마치 원래 자신들이 하던 연구였던 것처럼.
참으로 기묘한 광경이었다.
변칙 물체 기록
물체 번호: AO-201818
물체 설명: 산란 분포대에서 주기적으로 관측되는 분홍빛 펄스. 해당 펄스는 대략 5년 주기로 반복된다. 관측되는 위치는 무작위적이며, 관측된 지점들로 수차례 탐사를 시도하였음에도 어떠한 변칙적 근원도 발견된 바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