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

아, 왔습니까.

따로 큰 일이 있어서 부른 건 아니고, 법의학과에 부검의가 새로 오는 건 꽤 오랜만이라 말입니다. 따로 안내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거든요. 하고 싶은 말도 조금 있고.

당연하겠지만, 검시팀이 전문으로 하는 일은 시신의 검시 그리고 부검입니다. 그런데 시신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죠. 아무리 재단이 D계급이건 연구원이건 죽어나가는 곳이라 해도, 하루에 두세 자리씩 없어지면 어디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사람이 죽는다는 일은. 거기다 재단 검시팀에서 부검할 필요성이 있을 정도의 죽음은 쉽게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기죠. 시신이 많이 있지도 않다면, 검시팀은 실적을 못 쌓거든요. 재단은 철저한 관료주의로 돌아갑니다. 사망이란 드문 현상에 기대서, 그것도 7할은 기존 변칙 개체나 요주의 단체 때문이라 부검까지 갈 필요도 없는데, 굳이 '부검을 통한 변칙 개체의 성질 연구'를 주 업으로 삼는 부서에- 큰 지원을 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인지 인구도 얼마 안되는 장막 안 초상세계의 부검의는 ― 이건 장막 밖도 마찬가지라지만 ― 역시 견습은커녕 지식이 좀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도 힘들더군요. 해부 실습이야 일반 의사들도 몇 번 해보게 되는 일이지만 변칙적 시신을 해부해보는 건 이 부서 사람들밖에 없을 테니, 익숙해지기 쉽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법의학과가 변칙과 얽힌 시신을 조달받아서 가끔가다 신입 교육도 하고, 기존 부검의들 실력도 유지하고 할 요량으로 해부를 실습하는 겁니다. 뭐, 아시다시피 시신이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였는지라, 해부 실습용 시신도 구하기 어려웠으니 애초에는 계획상으로만 존재했었습니다. 그런데 전임 법의학과장님이 시신을 구할 방법을 하나 떠올리셨던 거죠.

어… 그러니까 아마 2009년 12월 즈음이었는데, 자세한 날짜는 잘 기억나지가 않는군요. 아마 크리스마스 며칠 전이었을 겁니다. 기지가 그 당시 근래에는 상당히 평화로워져서 떠들썩한 분위기였는데, 이문서 박사님, 그러니까 제 전임 법의학과장이신 분은 그 분위기에 영 녹아들지를 못하셨죠. 원체 사람이랑 어울리는 걸 별로 잘하지는 않은 분이긴 했지만, 그 즈음엔 특히 더 그러셨어요. 그날도 텅 빈 시신보관소 앞에 멍하니 서서 한숨쉬고 계셨을 겁니다. 물론 박사님도 '사망자 없음'이 좋은 소식을 알리는 문구란 걸 알고는 계셨지만, 그 사망자 시신 가져다 째는게 일인 부서의 부서장을 맡고 계셨으니 마냥 마음놓고 축하할 수는 없으셨던 거겠죠.

뭐 어쨌든간에, 전 그 때에는 박사님한테 부탁받았던 서류를 전해드리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최근 사망자 명단이나, 사체 관련 변칙개체 묶음, 그리고… 뭐 대충 그런 류의 잡다한 것들이었죠. 사무실에 없길래 어디 계시나 하고 찾아다니고 있었는데, 시신보관소에 가만히 서계시더라고요? 일단 말이라도 걸어 보려고 했는데 서류는 자기가 사무실로 가져가겠다 하시면서 쌩하니 가버리셔서 결국 말은 못 걸었지 뭡니까.

그리고, 서류 전해드리고 난 후로는 어차피 큰 일도 없겠다, 휴게실로 가서 같은 과 애들이랑 대충 수다나 좀 떨었습니다. 몇 시간 쯤 후였나, 박사님이 갑자기 흥분해선 뛰쳐가시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습니다만, 보통 흥분하신게 아니었는지, 대답은 하셨는데 타개책이 어쩌고 할 정도밖에 못 알아들을 정도였죠. 다른 애들 말로는 연구이사관보 사무실로 가신 거였다던데, 거기서 있던 일은 저도 잘 모릅니다. 박사님이 다시 사무실로 가던 모습을 본 이후로는 그날 박사님을 보질 못했으니까요.

녹취록-5OS135
녹취 대상: 연구이사관보 김경일 박사, 법의학과장 이문서 박사
일자: 2009년 12월 ██일

김경일 이사관보: 들어오십시오.

이문서 박사: 네, 이사관보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승진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이사관보 되신 이후로 업무량도 많이 늘으셨을 텐데, 염치와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찾아온-

김경일 이사관보: 굳이 그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짧게 용건만 말해주십시오. 요새 시간이 별로 없어서요.

이문서 박사: 네. 알겠습니다. 그게, 요즘 저희 부서 사정이 별로 좋지 않은 건 아시죠?

김경일 이사관보: 그거야 요새 사망자가 없으니까 당연한 일 아닙니까.

이문서 박사: 아, 그거야 그렇죠. 그런데 윗쪽에서 저희 부서에 압박을 조금 주고 있어서 말입니다. 시신이 없어서 검시를 못하니까 실적이 안 쌓이고. 이대로 가다간 내년 예산도 꽤 위험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김경일 이사관보: 그건 시신관리 쪽 부서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이문서 박사: 이사관보님, 저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으로 실적을 쌓을 타개책을 열심히 찾아봤는데요, 아무리 찾아도 떠오르지가 않지 뭡니까. 그런데 이렇게 계속 막힐 때는 역시 원점으로 돌아가는게 답이더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시신 쪽으로 다시 한번 머리를 굴려 봤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거듭한 끝에, 오늘 해결책을 찾아내서 이사관보님께 허락해주십사 하고 온 겁니다.

김경일 이사관보: 그래서 그 방법이 뭡니까? 시신을 어디서 빼돌려오기라도 할 셈입니까?

이문서 박사: 네, 대충 비슷합니다. 변칙 개체를 쓰는 거죠.

김경일 이사관보: 뭐요?

이문서 박사: 그러니까, SCP-022같이 시신을 소환시키는 변칙 개체들 있잖습니까. 알고 보니 그런 유형의 개체가 한국에도 하나가 있더라고요. 문서를 한 번 읽어 봤는데. 이걸 신입 실습 같은데 쓰면 딱 좋을 거 같아서요. 아, 실험 신청서랑 개체 보고서는 여기 있습니다.

김경일 이사관보: 아니, 변칙 개체에서 나온 시신을 검시 실습에 쓰겠다고요? 제정신입니까?

이문서 박사: 이사관보님, 저런 시신을 생성하는 유형의 변칙 개체의 주된 격리 절차 중 하나가 새로 생성된 시신의 검시입니다.

김경일 이사관보: …여기서 튀어나오는 건 제대로 된 시체도 아니고, 이건 그 개체랑은 경우가 다르지 않습니까?

이문서 박사: 그런데요? 애초에 법의학과 주 업무가 시신을 조사해서 변칙 개체의 성질을 밝혀내는 것 아닙니까, 변칙 개체가 만든 시신이니 연수 과정에서 이 시신이 어떤 변칙 개체의 영향을 받은 건지 추측하도록 한다든가 하는 거죠.

김경일 이사관보: 아무리 실험에도 정도가 있지.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전 허가 못합니다. 딴 사람한테 부탁하든가 해보세요.

이문서 박사: 네? 아니, 이사관보님. 다 짤려서 여기로 온 건데요? 격리팀장 하실 때 제가 도와드렸던 것 좀 생각해서…

김경일 이사관보: 가야겠습니다. 이사관님이랑 일정이 있어서요.

[기록 종료]

그리고 몇 달쯤 후였습니다. 박사님이 절 호출하시더니 실험 일정이 하나 있다면서 문서를 건네 주시더군요.

간단하게 개체 설명서랑 실험 계획서만 읽고 실험할 개체가 있는 기지로 출장을 갔었습니다. 기지에 도착하고 나서는 삭막하게 생기신 분이 실험할 곳으로 안내를 해주셨죠. 그 후에 실험 장소로 도착하고 나선, 솔직히 한숨만 나왔습니다. 아무리 시신을 몇 번씩이나 째봤다고는 하지만, 그 지경이 된 시신을, 아니 그걸 시신이라고 부르는게 맞는지도 모르겠군요, 어쨌건 제가 사체보존사도 아니고 난장판이 된 시체를 복원시키는 일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꽤 힘들었습니다. 뭐, 결국 해내긴 했지만요.

출장 끝난 다음 날에 기지로 복귀했는데, 박사님이 실험은 어땠냐고 물어봤었습니다. 상당히 힘들었다고 말씀드리니 안타까워하시더라고요. 다음에는 시신 복원 정도를 물어봐오셔서 거의 완벽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박사님이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그 개체에서 나온 시신을 해부 실습용으로 쓸 수 없겠냐고. 제가 아마 가능은 하겠지만 해부 실습이 가능할 정도로 복원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답하니 박사님께서는 꽤 실망한 기색이셨죠. 그리고는 박사님이 일단 상부에 해부 실습용 시신 조달을 건의해보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뭐, 결국 그 전에 사고로 돌아가셔서 승인되지는 못했지만 말이죠.

결국 제가 법의학과장 자리를 승계받고 나서 박사님이 의도하신 대로는 아니었지만 해부용 시신 조달은 이루어지게 됐습니다. 물론 변칙 개체에서 가져오는 건 아니고, 박사님 돌아가셨을 무렵에 한창 변칙 개체의 수가 우리나라에서 확 늘어나는 바람에 굉장히 혼란스러웠거든요. 당연히 변칙 개체로 인해 벌어진 사망 수도 늘어났죠. 뭐, 태반이 꺼지지도 않고 불탄다던가, 마구 비명을 질러댄다던가 하는 시신이라서 상당히 무리가 가는 작업이긴 했지만요. 그 시체들 중에서 부검까지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는 시체 중에서 멀쩡한 걸 조금 가져다 쓰면 됐으니까요. 그 때는 아무리 그래도 변칙 개체에서 나온 시신을 쓰는 건 조금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나중에 그 개체 문서를 다시 보니, 박사님이 시도하셨던 방식으로도 아마 통과는 가능했을 것 같더군요.

이런. 사담이 너무 길어진 것 같군요. 관심 없는 얘기 듣느라 수고했습니다. 당신 해부 실습은 이번 주 금요일이니, 그때 다시 보도록 하죠. 장기 하나가 혼자 살아서 움직이는 걸 빼면 멀쩡한 놈이니 안심해도 돼요.

그러면 이제 돌아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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