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뭘 하는 도중에 속눈썹을 뽑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속눈썹을 뽑고, 그 중 절반 정도만 뽑아내고, 그러고 나면 다소 기괴한 조그만 둔덕이 생겨났고, 부드럽게 잡아당기면 느낌이 좋았다. 뽑 뽑 뽑. 가끔은 막 새로 나려는 것을 홱 잡아당기기도 했다. 갓 돋아난 속눈썹은 새까만 색이었다. 속눈썹을 뽑아내면, 가위가 내는 것 같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다만 날카롭고 명징한 어떤 전기적인 고통이 내 전신을 타고 번졌고 내 눈에 물이 찰때쯤 그 고통은 사라졌다. 속눈썹 뿌리는 아직 피부 색깔로 물들지 않았고, 여전히 마치 내 손을 천천히 흐르는 찬 물에 담근 것 같은, 기름과 습기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색깔이었다. 가끔은 속눈썹 뿌리로 아랫입술을 훑으면서 그 부드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아랫속눈썹은 그렇게 만족스럽지 못했다. 아랫속눈썹은 별 느낌이 없어서 ― 그게 나만 그런 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런 건지는 모른다 ― 뽑아 봤자 그런 짜릿한 고통이 없었다. 그 결과 윗속눈썹들은 모조리 뽑혀나갔지만 아랫속눈썹은 그대로 남아 있는 형국이 되었다. 마치 《시계태엽 오렌지》에 나오는 걔처럼.
새로 난 속눈썹 싹 한 개를 뽑았다. 잠깐에 불과했지만 보통 이상으로 아파서 두 눈에 모두 눈물이 고였다. 희한하게도, 새로 난 속눈썹인데도 뿌리 부근에 진한 살색이 묻어나 있었다. 그 속눈썹은 깊은 뿌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기분이 좋았다.
욕실의 족집게를 가지고 와서 세면대 앞에 앉아 거울에 바짝 붙어 몸을 기울였다. 보통 그냥 손톱으로 뽑았지만, 족집게로도 똑같은 효과를 볼 수 있었고 슬슬 손톱이 아파왔다. 싹이라고 쳐 줄까 말까 할 정도로 정말 조그만 속눈썹 하나가 눈꺼풀을 뚫고 나온 것이 보였다. 족집게를 잡은 손을 한 번 흔들고 속눈썹을 세게 잡아당겼다.
놀랍고 원더풀한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고 나자, 그것은 사라져 버렸다. 내 족집게에 붙어있는 건 작고 작은 속눈썹 뿌리 뿐이었다.
나는 새로 난 속눈썹이 아닌, 윗부분이 잘려 나가고 뿌리만 둔덕 속에 남아있던 것을 뽑았던 것이다. 다른 속눈썹을 잡아당기자, 내 눈이 거기 저항했고, 마치 양파라도 다진 것처럼 눈물이 한 시간동안 흘러서, 거의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 속눈썹도 뿌리가 깊은 속눈썹이었다.
내 속눈썹에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내가 일을 벌인 눈은 눈물로 인해 시뻘겋게 충혈되었고, 마치 주먹질을 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반대쪽 눈으로 옮겨갔다. 뽑 뽑 뽑 뽑 뽑. 안녕, 작은 새로 난 속눈썹아. 뽑 뽑 뽑. 마치 고양이나 햄스터의 털처럼 부드러웠다. 눈꺼풀 가장자리에 있는 속눈썹들은 발가락이 오그라질 정도로 폭발적인 고통이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새 속눈썹을 뽑는 것이 가장 좋았다.
시간은 이미 땅거미가 졌고 개수대에는 오래된 것 새로 난 것 뒤섞인 속눈썹의 작은 더미가 쌓였다. 이제 아랫속눈썹을 제외하면 뽑을 속눈썹이 더 없었다. 시험삼아서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보았다. ― 다른 굵은 털을 뽑을 때와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운 느낌이 나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때려치우고 눈썹으로 족집게를 옮겼다. 뽑 뽑 뽑…
곧 눈썹도 모두 뽑아 버렸다. 눈썹이 다시 자랄 때까지 아이라이너나 아니면 뭐든지로 그려 놓아야겠다고 마음속으로 기억했다.
팔에 난 보송보송한 솜털들도 그렇게 뽑는 느낌이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것들도 모두 뽑아버렸다. 최근에 다리털을 제모했지만 다시 털이 나기 시작하려 했다. 그것들도 다 뽑아 버리고, 몸통에 난 정말 자그마한 보기도 힘든 털들도 뽑아 버리고, 내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의 털은 모두 뽑아 버렸다. 다 끝나자 나는 한숨을 쉬었고 생각했다. 안 될 게 뭐야? 그리고 머리카락도 뽑기 시작했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나는 이제 아랫속눈썹 말고는 뽑을 털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들도 사라졌다.
나는 한동안 개수대 앞에 앉아서 내가 쌓아올린 털의 산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좀 역겨웠다. 그전까지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만, 털이란 것은 사람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본래 그런 것보다 훨씬 더 징그러웠다. 나는 그 쓰레기더미를 퍼서 쓰레기통에 부어넣었다. 습관에 따라 속눈썹을 뽑으려고 눈에 족집게를 가져갔지만, 이제 눈에 털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뭘 해야 하지, 뭘 해야 하지, 나는 생각하면서, 옷을 다시 입었다.
나는 거실로 돌아가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릴없이 발톱을 뽑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