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

안녕하십니까 선생님(들).

제가 다섯 살 때 극장에 갔는데, 불이 났습니다. 멍청한 청소년들이 짓궂은 말썽이나 피우려고 꾸며낸 진부해 빠진 장난질이 아니라 진짜 불이 붙었죠. 돌이켜보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진짜로 불이란 게 나다니요. 참 클리셰 같은 상황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시절에야 극장에서 담뱃불을 붙일 수 있었으니 그렇게 드문 상황은 또 아니었겠다 짐작합니다.

아무튼, 저보다 그리 나이 많지 않아 보이는 다른 어린이가 불이 났다고 소리쳤습니다. 그때 보던 영화가 무르나우 감독이 찍은 섬뜩한 옛날 영화라 관객들은 진작에 미치도록 긴장하던 참이었죠. 모든 어린이들이 입을 모아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바깥으로 이끌려 나오다 팔이 부러졌어요. 다들 극장에서 나오려고 우르르 몰려가다 압사당해 죽은 사람이 4명이었고요. 그때 저는 저것들이 참 위험하다고 알아차렸습니다.

물론 화재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불 때문에 죽은 사람은 없었죠. 사람을 죽인 것은 두려움입니다. 다른 멍청이들의 손으로요. 짓밟혀서 죽는 그 순간까지, 머리며 목이며 가슴에 내리꽂히는 뭇 사람들의 발에 맞설 방법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4명 중에 하나는 어린이였어요. 이따금은 그게 처음에 불이 났다고 알려준 그 어린이라고 생각해보곤 합니다. 좀 끔찍한 소리긴 한데, 당신께서 뭐라 하진 않으시겠죠. 이 얼마나 완벽한 서사입니까? 모두를 구해주려고 목소리 크게 외쳤던 이가, 자기 덕분에 목숨을 건진 사람들에게 깔려 죽는다. 정말 멋지게 달콤쌉싸름한 이야기죠. 절묘하다는 말도 어딘가 부족해 보일 만큼 흠 잡을 데 없어요. 숭고하도다, 이 유쾌한 비극이여.

바로 그때 저는 알아차렸습니다. 생각.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인가요? 불이라는 생각인가요, 진짜 불인가요? 어느 쪽이 끔찍한가요. 줄칼로 이가 갈려버린다는 생각인가요, 진짜 갈리는 것인가요? 바늘 하나가 내 눈알에 꽂혀서 휘휘 저어진다는 생각… 과연 그것만큼이나 실제로 바늘이 꽂히는 게 무시무시한가요? 상어 한 마리는 상어 하나라는 개념보다 더 무서운가요? 상어가 없다는 개념은요? 뭐, 제가 지금 속담처럼 성가대 앞에서 신을 믿어달라고 설교하는 꼴인가 싶습니다만.

정말 훌륭합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작가 선생님의 비전을 회의적으로 바라봤습니다만, 지금은 선생님이 성취하시려던 모종의 개념들이 훤히 보입니다. 선생님께서 향후로도 이런 작품 활동을 이어가시길, 반(反)개념을 재료로 써서 질료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시기를 기원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다음 프로젝트에 자금부터 지원드릴 예정입니다. 저희야 여하간 예술에는 후원을 아끼지 않고, 이런 작품들은 저희가 지금까지 받았던 그 어떤 제품보다도 우아하니까요.

선생님의 제작활동에 따듯한 존경을 보내며,
유한회사 마셜, 카터 & 다크 CEO
J.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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