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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형이초학은 Dream이 아니다
空想科学はDreamじゃない작기:
poshirona
역자:LR0725
원본: http://scp-jp.wikidot.com/pataphysics-is-not-dream-science
난 일상이 바뀌는 것을 싫어한다.
이사도, 졸업도, 취직도, 이별도, 심지어 만남마저도.
물론 "변칙"도.
다시 말해 변화,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을 싫어한다는 말이다. 가령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라 하여도, 변화의 결과 행복해진다고 하여도, 아무튼 무언가 매일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싫어한다.
재단에 취직했을 때도 참 곤란했지만, 예를 들어 이 숙소로 이사했을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익숙하지가 않으니 제대로 잠에 들지를 못했다.
내가 소속된 곳은 수학부. 제8172기지 한구석에 설치된 조그마한 부서. 초상수학을 해명하는 수학자들의 요청에 따라 수식과 이론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업무다.
그곳에는 변칙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로지 이론만이 존재하며, 부조리가 무엇 하나도 없는 세계.
적어도 내게는 그리 보였다.
수학은 좋아한다. 설령 장막 안이라 할지라도 거짓을 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업무도 하는 일은 장막 저편의 일반적인 연구자들과 다르지 않고, 직무 내용에는 어떠한 변칙존재도 관여하지 않는다. 이런 성격을 가진 나한테는 장막 바깥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완벽한 장소였다.
그리 하여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SCP 개체를 본 적이 없다. 그런 환경이었다.
허나 변화라는 녀석은 갑자기 닥쳐 오는 것인지라.
재단에 입사한 지 고작 몇 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떨어진 전근 명령, 또 다시 변해 버린 일상이 있었다.
재단 취업규칙 제86조 및 제128조에 의거하여, 2024년 5월 27일부로 호시로 미사키(穂白 美咲, ID: 7250-7039103211)에게 특수 보안 인가 등급: Fabula를 부여하며, 형이초학부로 전근할 것을 명령한다.
해당 보안 인가 등급에 관한 이후의 직무는 형이초학부 측 지시에 따르도록 한다.
여기에 그런 나를 "붙들어 준" 존재가 있다.
그 차분한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변해 버렸을 터인 일상이 원래대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수학부에 있었을 때처럼.
괜찮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하고 조용히 말해주듯이. 반복해서, 반복해서.
그녀의 기억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사라져 가는 지금, 그녀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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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초학부
연역부
Fabula 기밀에 관한 입문 문서
1. 서두
Fabula 등급 기밀은 그 특성상 정보 공개 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본 문서는 그 정보 공개 과정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본 자료는 형이초학부 및 연역부가 공동으로 제작하였으므로, 주로 두 부서 중 어느 한 곳에 배속된 인원을 예상 독자층으로 삼는다.
2. Fabula 기밀 정보의 개요
Fabula 기밀 정보는 모든 세계/우주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특히 기준우주(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는 'SCP 개체'를 중심으로 한 공동창작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이 사실의 근거가 되는 직접적인 예시로 SCP-3309가 주로 거론된다. SCP-3309는……
업무 내용만 보면 형이초학부에 배치된 이후로도 별다르게 변한 것은 없었다. 단지 일하는 장소가 같은 기지의 형이초학부 비밀 사무실이 되었고, 고찰하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뭐 애초에 그런 약속이었으니 그렇지만.
솔직히 형이초학은 팍 하고 와닿지 않는 구석이 있다. 분명 수식만 보면 그렇게 가정하면 아귀가 맞는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어디까지나 공상 속 이라고 해야 할까, 논리 수식 안에서의 이야기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을 다잡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 모르겠다.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일상은 문제없이 흘러 가고, 무엇 하나 문제는 없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오늘 입을 옷을 골라서, 제8172기지로 간다. 응, 내 소중하고 소중한 일상은 무너지지않았다. 수학부에 있을 때부터.
육첩방 한 칸에 당당히 자리를 잡은 행거들 쪽으로 눈을 돌린다. 전국 이곳저곳에서 수집한 세라복이 빽빽이 걸려 있다.
가장 왼쪽에 걸린 세라복은 어제 막 도착해서 처음 입어보는 교복이다. 예전부터 갖고 싶었단 말이지, 하며 손으로 쥐니,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손끝을 타고 전해져 온다.
세라복 하나를 손에 쥐고서 주름이 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한다. 눈에 익은 형태와 일상의 상징. 그럼에도 학교마다 제각기 디자인이 다르고, 옛적부터 변함없이 전통을 지켜오는 역할을 한다.
옛날부터 세라복을 좋아했다. 귀여우니까. 중고등학교는 교복 디자인을 보고서 결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뭐, 거기까지야 제법 있는 사례겠지만, 내 경우에는 제복이 어느덧 일상의 상징이 되어 버려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의존증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이러저러해서, 지금은 전국의 세라복을 주문해 모으고 항상 나이에 맞지 않게 세라복을 입고 다닌다. 하지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안심되는 느낌에 둘러싸여 귀여운 옷을 입는 것은 나만의 특별한 행복이니까. 재단의 복장 규정이 느슨해서 다행이다, 싶은 감정을 절실히 느낀다.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좌우 모습을 확인해 봐도 역시 귀엽다. 양 옆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 몸을 돌리니, 내 움직임에 맞추어 스커트가 공기를 머금고 확 펼쳐진다. 그런 모습까지도 사랑스럽다. 섬유유연제의 좋은 향기가 은은하게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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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들뜬 기분으로 현관을 나와 기지로 발을 옮기려 하니, 뒤편에서 예상치 못하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호시로 씨"
"아, 사유쨩. 안녕"
헉, 조금 놀라 버렸지만, 그 낮고 차분한 목소리에 금세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녀가 바로 사유쨩──우와누루유 사유키上温湯 咲雪. 숙소에서 내 옆방에 사는 이웃이고, 생물학부에서 조류 같은 변칙 생물의 사육과 관측을 담당하는 요원이다.
수학부에 틀어박혀 있던 나와는 원래 얽힐 리가 없는 사람이지만, 우연히 나와 같은 시기에 재단에 입사한 데다가, 거처가 옆이어서 아침에 자주 마주치다 보니 사이가 좋아졌다.
물론 사유쨩은 형이초학부에 대해 모르다 보니, 수학부를 떠난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역시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내가 수학부에 있을 때와 변함없이 사이좋게 지내준다.
그녀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은 채로 있어 준다.
"어라, 그 세라복, 새 거인가요?"
"오, 역시 눈치챘구나, 사유쨩! 이거 전부터 사고 싶었던 교복이거든. 귀엽지"
사유쨩은 나를 전체적으로 훑어보더니 미소 지었다.
"호시로 씨가 세일러 칼라를 붙이시다니 웬일이래 싶어서요"
"그래 그래, 세일러 칼라는 거의 아이치현 주변에서만 사용하니까. 거의 나고야 칼라라고 해야 하나, 아이치형 세라복이랑 세트나 마찬가지지. 이건 아이치형 세라복이 아닌데도 세일러 칼라를 쓰는 귀중한 교복인 거야"
"헤에. 저는 나고야에서 학교를 다녀서, 나고야 칼라가 아닌 세라복을 보면 위화감이 든단 말이죠. 칼라가 너무 작아서"
"사실 아직 없단 말이야, 아이치형 세라복. 갖고 싶긴 한데. 그래도 지금 막 온 이것도 아이치 세라복이고, 엄청 귀여워서 맘에 들었어"
솔직히 말하면, 굳이 이 새로운 세라복을 입고 온 데에는 사유쨩에게 보여 주기 위함이 3 내지 4할을 차지한다. 그리고 만약 아침에 만난다면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권유할 참이었다.
둘이서 걷는다. 새로운 옷을 눈치채 줘서 기쁘다는 마음이, 사유쨩의 차분한 목소리와 달콤 쌉싸름한 향기를 휘감으며 무척 고요한 행복감으로 화했다. 숙소에서 근무지인 제8172기지로 향하는 사이의 짧은 시간. 사유쨩과 이야기하고 있자면, 재단에 들어오고 변해 버린 인간관계도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구나 생각이 든다.
침묵마저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말이야"
"뭔가요?"
"사유쨩은 정말 고집스럽게 존댓말을 쓰는구나"
"그 얘기 대체 몇 번째에요"
"아니, 그치만. 나는 이렇게 반말을 쓰는데, 사유쨩은 계속 존댓말을 하니까 너무 비대칭이라고 해야 되나, 뭐라 해야 되나"
"호시로 씨가 연상이니까 저도 모르게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신경 쓰이면 호시로 씨도 존댓말을 쓰면 되잖아요"
"아니, 그거는, 뭐랄까, 좀 다른 문제잖아. 안 그래?"
"뭐, 말 놓는 건 기분 내킬 때 하기로. 저는 이쯤에서 먼저 가볼게요"
"앗, 그래. 오늘도 몸 조심하고"
언제나처럼 헤어지는 길.
사유쨩은 변칙생물격리동으로, 나는 형이초학부 연구실로──Fabula 보안 인가 등급이 없다면 갈 수 없는 장소로 발걸음을 돌린다. 다음에 또 봐, 라고 말하면서. 틈이 생기면 다시 식사라도 같이 하자고 꾀어 볼까, 그리 생각하면서. 나는 계단을 오른다.
겹층서사구조의 이미지. 그러나 간단하게 표현하기 위해 같은 높이에 있는 서사층은 하나씩만 묘사하였다.1
3. 서사의 겹층 구조
앞서 언급했듯, 모든 우주는 상위 창작자의 창작으로 형성된다.
그 상위 창작자가 존재하는 우주도 마찬가지로, 더욱 상위에 존재하는 창작자가 형성한 것이다. (위 그림 참조)
이렇듯 모든 우주가 '창작/창작됨'의 구조를 가지고 층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모델을 "겹층서사"라고 하며, 겹층서사 구조를 구성하는 각각의 세계/우주를 "서사층"이라고 한다. 특히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는 "기준서사층"이라고 한다.
'서사층'과 '우주'는 동의어지만, 전자의 용어는 보다 서사론적인 문맥에서 주로 사용된다.
겹층서사는 아래쪽으로 무한히 이어져 있으리라고 사실상 확실시되고 있지만, 겹층서사의 위쪽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많은 연구자는 "아래쪽과 동일하게 위쪽으로도 서사층이 무한히 이어질 것이다"라는 가설을 지지하지만, 위쪽에는 끝이 존재하며 어떤 서사층의 창작으로도 형성되지 않은 우주인 "남상濫觴우주"가 존재한다는 가설도 있다.
4. 형이초학부와 연역부
위와 같은 사실에 대해 재단은 "형이초학부"와 "연역부"의 두 부서에서 연구하고 있다.
형이초학부(Department of Pataphysics)는 주로 기준서사층에 초점을 맞추어, 상위서사층에 존재하는 공동창작 커뮤니티 "SCP 재단"이나 그곳의 회원을 대상으로 한 직접적인 조사, 제어, 보호를 임무로 한다.
또한 서사재해나 메타픽션 구조를 필두로, 기준서사층에 대한 위협이 되는 변칙존재의 격리도 담당한다.
연역부(Department of Deduction)는 주로 겹층서사 전반에 초점을 맞추어 겹층서사 그 자체를 연구하고, 복수의 서사층에 영향을 미치거나 겹층서사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변칙존재의 확보, 격리, 보호를 임무로 한다.
두 부서 모두 Fabula 보안 인가 등급을 채용하며, 일부 높은 수준의 기밀성을 가진 정보에 대해서는 Fabula 보안 인가 등급과 통상 보안 인가 등급을 동시에 인증해야만 한다.
신규 Fabula 보안 인가 등급 소지자는 각 부서장의 책임 하에 두 부서 중 한 곳으로 배치된다.
사유쨩과 함께한 일상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 기억이 서서히 흐릿해지기 시작했지만, 최대한 자세하게, 더 자세하게 적어서 남기고 싶다.
조금 전에 있던 일. 늦은 저녁밥을 먹어야겠다 생각하던 참에 마침 사유쨩과 만나 함께 식사를 마쳤을 즈음, 사유쨩이 이런 말을 걸어왔다.
"그 왜, 시뮬레이션 가설이라고 있잖아요"
"엥, 아, 그치. 있지. 갑자기 왜?"
뜬금없이 시뮬레이션 가설이 튀어나와 재스민 차를 뿜었다. 형이초학부 소속인 나와는 연관이 정말 많은 화제다.
"아뇨 그게, 아까까지 격리 중인 유클리드 개체 사육 업무 중이었거든요"
"오, 어떤 개체였는데?"
"그러니까, 전자 공간에 사는 조류 군집이고 자기 의사를 가졌거든요. 인터넷을 떠돌다가 확보되어서 지금은 가상현실의 기지에서 격리 중이에요"
"오오"
"개체 자체는 그것뿐이고 보고서도 짧은 개체인데, 문득 떠오른 게 있어서요"
식당에서 소바를 호로록 먹으면서, 사유쨩이 말을 이어간다.
"그 뭐냐, 시뮬레이션 가설이라는 건 요컨대 이 세계는 사실 거대한 컴퓨터의 시뮬레이션 아니냐는 거잖아요. 가상 기지라니 딱 그 가설에 들어맞네 싶어서요"
"……듣고 보니 그럴지도. 거기 기지 인원은 거의 다 AIC기도 하고"
실제로 가상 기지는 하위 서사층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형이초학 쪽에서도 자주 거론된다. 뭐가 "듣고 보니 그럴지도"야, 실제로 그런 식의 연구를 계속 하고 있으면서.
안심을 찾기 위해, 조그맣게 싹튼 불길한 예감에서 도망치려는 듯 세라복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니 가슴 쪽의 삼각 넥타이 매듭 부분이 느슨해져 있었다. 익숙한 솜씨로 매듭을 제대로 묶어 두었다.
"아무튼, AIC는 자기가 인공지능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새들은 여기가 진짜 동물원이라 굳게 믿고 의문을 품지 않고 있어요. 그렇게 거짓말을 해서 기지에 격리했으니까요"
"뭐 그런 패턴도 자주 있잖아. 그래서 ……혹시 불안해진 거야? 여기는 가상현실 속 세계고, 나는 격리당한 개체일지도 모른다든가"
약간 말이 빨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아뇨, 그렇게까지 말할 건 아니지만…… 인간이 가상 기지에 가려고 하면 VR 같은 기계가 필요하잖아요. 그러면 현실 세계와 똑같이 움직이고 감각도 느낄 수 있어서, 가상현실에 있는 아바타가 정말 내 몸 아닌가 착각해 버리기도 해요"
"헤에. 뭐, 개체를 속이려면 그 정도로 리얼해야 되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면요, 만약 시뮬레이션 가설이 정말 옳다면, 그 진짜 세계에서 우리 세계로 들어와 있는 사람이나, 아바타? 같은 걸로 조작 중인 사람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겠죠. 그렇지 않더라도, 저 AIC처럼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 호시로 씨는 어떡하실 건가요. 만약 이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면"
계속 이야기를 듣고 있었는데도, 갑자기 화제가 급변하여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어어, 그러게──다 그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알았다고 해서 무슨 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나는 세라복만 입을 수 있다면 뭐든 괜찮으려나~ 하하"
뭐,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은 일상의 붕괴고, 그 일상의 상징은 세라복이니까.
그러니 문제없이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이다.
"아ー정말 호시로 씨답네요. 진짜 세라복에 영혼을 바쳤다고 해야 되나"
"헤헤. 뭔가 지켜지는 기분이 든단 말이지. 이걸 입고 있으면"
"갑옷처럼요?"
"그럴지도. 아니 마법사의 로브에 더 가까울 것 같은데. 물리적인 충격에서 지켜주는 건 아니니까"
"아아~ 마법력을 올려주는 느낌이란 거네요"
"그래 그래, 뭐랄까, 나한테 세라복은 마음을 의지할 곳, 혹은 진정제 같은 거니까."
"정말 좋아하시네요, 세라복"
식은땀이 아까의 몇 배는 늘어났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 사유쨩이 내게 그 말을 했던 것이 우연이었는지는 듣지 못했다.
지금 떠올려 보면, 그때 사유쨩은 조금 외로운, 아니면 슬픈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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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AIC처럼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연구실로 돌아온 뒤로 나는 아까 대화를 되돌아 보았다. 그야말로 형이초학부나 연역부 사람들이잖아,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이초학부에 들어온 이후로는, 역시 상대가 재단 인원이라 하더라도 기밀로 해야만 하는 부분이 늘어나 버렸다. 딱히 사유쨩을 격리하려고 속이는 것도 아니고, Fabula를 기밀로 지정한 이유도 인원들의 멘탈 케어 때문이니까 오히려 이것은 사유쨩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 지키는 것. 안 그래도 Fabula 인원은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이 정보로부터 사유쨩을 지켜줘야만 하니까. 어쩔 수 없지. 그런 신이라든지 서사라든지 신경 쓰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지켜줘야만 해.
문득 거울을 보니, 아까 꽉 묶어 두었던 삼각 넥타이의 매듭이 비뚤어져 있었다.
일상이라고 하니. 사유쨩은 매주 제8172기지의 그 생물소각동 앞 광장에 가고는 했다.
난 의외로 최근까지도 그 사실을 몰랐었고, 우연히 소각동 근처를 지나가다가 사유쨩을 발견하여 알게 되었다.
"사유쨩"
조용히 손을 맞대고 기도하던 사유쨩을 보고, 기회를 엿보다 말을 걸었다.
"아, 호시로 씨. 이런 데 오시다니 드문 일이네요"
"A5동에서 돌아오는 길이야. 여기로는 거의 안 지나가는데, 멀리서 사유쨩이 보여서 와봤어. 사유쨩은 이런 데서 뭐하고 있어?"
특별히 숨기려는 듯한 눈치도 아니어서, 단지 궁금해서 물어본다.
"추모하고 있었어요. 죽은 새들을 위해서"
"추모"
"네. 여기서는 매주마다 격리 절차 때문에 수많은 새가 태어났다가 죽거든요. 저는 그 사육 담당이지만요. 매주 위령용 공간에 꽃을 놓아두러 가고 있어요"
"위령용 공간?"
"조그만 곳이라 눈에 띄지는 않지만, 여기서 소각되는 동물들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저 건너편에 있는데, 괜찮으시면 함께 해보실래요. ……아, 여기 소각동은 비변칙 개체만 처리하니까, 안심해 주세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
"자, 여기에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꽃 꺼내 올게요"
사유쨩은 핸드백에서 신문지에 싸인 백합을 꺼내, 내게 하나를 건넸다.
"호시로 씨도, 받으세요"
"으, 응"
사유쨩에게 맞춰 나도 백합을 놓아 두고, 손을 맞댄 채 눈을 감는다.
"고마워요"
"응. 그나저나 사유쨩은 정말 굳세네"
"이 뒤에 죽은 아이들의 기록을 정리하면, 이번 주는 끝이에요. 업무에 포함되지는 않지만요"
"이번 주라. 설마 매주 하고 있는 거야? 대체 왜"
사유쨩이 왼손으로 오른쪽 소매를 잡아당기는 것이 보였다. 긴장했다는 증거다. 나만이 알고 있는 그녀만의 버릇이었다.
"……그야, 죽는 것만이라면 그렇다 쳐도, 기록조차 지워진다니 불쌍하잖아요"
"재단스럽지 않은 말이네"
"그런가요?"
"그야 재단은 합리성의 조직이잖아. 그 왜, 흔히 얘기하잖아, 재단은 냉혹하지만 어쩌고저쩌고"
"그치만, 그 합리성 때문에, 존재했던 것마저 쓸모없어진다니 전 싫어요"
사유쨩은 정이 많은 사람이다. 약한 것, 덧없는 것에 사랑을 다하는 그런 사람.
"저기, 호시로 씨. 역시 바뀌는 건 무서우신 건가요"
"……"
서늘한 바람이 쌩 하며 지나친다. 바람은 차갑고 침묵을 남긴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내게, 사유쨩은 슬픈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지만 생물이란 변해 버리는 거잖아요. 어떻게 하든. 죽음뿐만이 아니에요. 성장하는 것도, 쇠약해지는 것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도망칠 수 없어요"
"그건──"
"그러니 저는 이렇게 조문하고, 추모하는 거예요. 적어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아아, 사유쨩은 이런 사람이었다. 내 공포를 꿰뚫어 봤는데도,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많은 이야기를 한다면 그녀의 기분을 알 수 있을지도 몰라, 이 공포심도 극복해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이후, 내 '일상'이 추모가 추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지도 모른다.
"사유쨩"
"네, 왜 그러세요?"
"……고마워"
떠날 때 하려던 다른 말은, 얄팍한 감사 인사에 삼켜져 사라져 갔다.
5. 서사조작
서사구조의 중요한 특성으로는 '서사조작'을 꼽을 수 있다.
서사조작이란 말 그대로, 이야기의 내용을 고쳐 써서 대응하는 작중 세계(하위서사층)을 조작하는 것을 일컫는다. 행동은 현실조작이나 과거조작과 유사하지만, 주로 아래와 같은 부분이 상이하다.
- 현재, 서사조작이라는 현상 그 자체는 비변칙적이라 여겨진다.
- 그러나,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SCP-3309 등 '특수한' 서사조작은 변칙 개체로 지정되어 있다.
- 대부분 사례에서, 상위서사층에 존재하는 작가가 대응하는 하위서사층을 대상으로 실행한다.
- 서사조작의 메커니즘은 거의 불명이다.
- 어떠한 대항 기술도 개발되지 않았으므로, 서사조작을 막을 수단은 전무하다.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자. 새해가 밝고 조금 지났을 때, 어느 눈 내리던 밤 사유쨩은 사라졌다. SCP-3309였다.
어떠한 맥락도 없이 창작자가 이 세계에서 서사를 "삭제"하는 행위. 이 세계에서 보자면, 그저 갑자기 부조리하게 사라져, 사람들한테서도 서서히 잊혀 가고 마는 재앙이다.
사유쨩은 그저 이야기에서 삭제되었다.
서사조작이므로 이야기 속에 있는 우리는 누구도 멈출 수 없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다. 기록과 흔적만이 남는 잔혹한 소실.
케테르 등급 개체의 희생양이 됐다고 말하면 또 그럴듯한 느낌도 들지만, 실제로는 좀 더 시시하고 허무한 일이다. 사라진 인원은 조잡한 역정보와 기억소거를 이용해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만든다.
"정말인가요. 제가, 이제 곧 사라진다니"
어느 날의 일. 심각한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의 사유쨩이 눈앞에 앉아 있다. 내가 아까 채팅으로 사태의 개요를 보내자, 감정이 정리되지 않아 본인의 집에 와달라고 사유쨩이 부탁했다.
처음으로 와본 사유쨩의 집. 똑같은 숙소의 이웃이니 방의 배치는 동일했지만, 내 숙소와 달리 심플하고 물건이 적었다.
놓여 있는 방석에 앉는다.
"……"
"그래서, 예정 시각까지 이제 2시간도 안 남았다고요?"
"……응"
SCP-3309에 어떠한 전조도 없는 것은 아니다. 서사조작이 일어나기 72시간 전, SCP-3309-1이라 불리는 통지문이 상위창작자와의 접촉 지점에 추가된다. 그 통지문은 RAISA가 실시간으로 감지하므로, 나 자신은 사유쨩이 SCP-3309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렸다.
하지만 보안 인가 등급이 없는 사유쨩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한 허가가 좀체 내려오지 않아, 내가 제발 부탁한다며 매달리다시피 해서 겨우 부분적인 공개가 가능해졌을 때는 이미 남은 시간이 2시간뿐이었다.
"미안, 그래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
"애초에 대체 뭔데요!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SCP-3309라는 극비 개체의 영향 때문에 사라집니다' 말을 들어도! 전 SCP-3309가 대체 뭔지 아직 듣지도 못했다고요"
사유쨩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언제나 낮고 차분하던 음색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처음 듣는 목소리에 망연자실해진다.
"그, 그거까지 얘기해줄 수가 없어서. 그러니까"
"호시로 씨는 부서를 옮기고서 계속 그랬어요. 기밀이니까 어쩔 수 없다면서 업무 내용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고, 말할 수 없다고 그러더니, 지금 할 말이 있다면서 불러 놓고는 하는 말이 시한부 선고라고요? 대체 뭐가 하고 싶으신 건데요!"
"그, 그건"
사유쨩을 지키기 위한 비밀이야, 라고 말하려다 말문이 막힌다.
"……"
"……"
푹 찌르는 듯한 침묵이 흐른다. 불쾌한 침묵.
침묵.
문득, 사유쨩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나온다. 어떻게든 참고 있던 눈물이 뚝뚝, 옷으로 떨어진다.
"미안, 미안. 사유쨩. 사유쨩"
"호시로 씨. 불합리한 말이란 건 알고, 알고 있어요. 규칙이니까. 그렇지만 그, 그런, 그런 일이"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입을 다물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정말, 앞으로 2시간이면"
"응. 지금까지 예외 없이, 반드시 사라져"
"그런, 가요"
괴로운 침묵이 남은 시간을 새긴다. 그제서야 비로소, 사유쨩이 오른쪽 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을 깨닫는다.
"저도 재단 요원이에요. 언제 죽어도 괜찮도록 살아왔을, 텐데. 그러니 유서도 이미 써놨고, 이제 남겨놓은 것도 거의 없어요. 애초에 공적으로는 죽은 목숨인 몸이니까요"
"……"
그 말을 듣고, 사유쨩도 재단 인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긴다. 나, 나는 안 그래도 안전한 장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게다가 전문직이라서 비상시에는 우선 대피하도록 되어 있어서…… 내가 언제 죽어도 괜찮을지 생각해 본 적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아직 딱 하나가 남아 있어서, 그래서"
"그게 뭐길래"
"……호시로 씨, 곧 생일이셨죠. 1월 16일.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어요. 그걸, 제대로 드려야 해요"
"그, 그런 사소한 걸. 좀 더 뭔가 중요한 걸, 더──"
"사소한 거라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
"재단에 들어오고 연이 전부 끊긴 저한테 호시로 씨가 얼마나 소중했는데요. 부서 이동을 하신다고 들었을 때는 울 뻔했는데, 그래도 무언가 잔뜩 숨기는 게 있으셔도 언제나 함께 있어 주셔서, 저 정말 기뻤어요. 호시로 씨 덕분에.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 선물을 받아주세요"
빠르고 강하게 쏘아붙인다. 몇 초간 침묵.
내가 조그만 목소리로 알겠다고 중얼거리자, 사유쨩이 일어나서 안쪽에 있던 종이 가방을 꺼내 온다.
"이거에요"
"열어봐도 돼?"
"좋아요. ……기뻐 해주시면 좋겠는데"
종이 가방을 옆으로 눕혀 속에 든 것을 쥐니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으로 전해진다. 그대로 내용물을 꺼내 보니, 흰색 옷이 있었다.
아니, 흰색뿐만이 아니다. 하늘색의 무척 길쭉한 삼각형 칼라.
"세라복. 그것도 아이치형 세라복"
"전에 호시로 씨, 아이치형 세라복은 없다고 하셨었으니까요"
"그런데 칼라에 세라선이 없고, 넥타이는 울 재질이네. 이거 아이치에 있는 중고일관교 교복이구나"
"역시 호시로 씨네요, 알아보시는군"
"정말 귀엽다…… 그런데 손에 넣기 정말 힘들더라고. 어떻게 가져온 거야?"
사유쨩이 한순간이지만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그거, 제가 입던 거거든요"
"아……"
"그래서, 중고기는 하지만, 괜찮으시면 받아주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유쨩은 힘없이 말끝을 흐리며 "부끄러움"을 형상화한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여버렸다.
나는 사유쨩의 턱에 손을 대고, 그 얼굴을 슥 위로 올렸다.
"헤헤, 기뻐. 내 취향에 딱 맞는걸"
"……다행이네요. 그렇게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고 싶었어요"
방금까지 울었던지라 서로의 얼굴은 화장이 번져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기뻤다.
사유쨩이 날 위해서 선물을 준비해준 것도
그 선물이 날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고를 수 없는 물건인 것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사유쨩이 내게 선물을 건네준 것도
아까까지 서로 울고 있었는데, 지금은 나도, 사유쨩도, 웃고 있는 것도
모든 것이 겹쳐지며 둘도 없이 행복한 한순간을 만들어낸다. 설령 그것이 덧없이 짧은 시간으로 끝난다고 이미 정해졌다 할지라도. 그리고 이 행복을 잊어 버리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 옷, 입어봐 주실래요"
"지금? 괜찮아?"
"물론이죠. 전 저쪽으로 가 있을 테니까"
"그렇게 말한다면야"
개어진 옷을 천천히 펼친다. 긴 칼라와 넓은 가슴 가리개, 부드러운 스카프의 감촉을 최대한 청성껏 느껴가며 입는다.
세계에 단 하나뿐인 아주 소중한 옷.
"……이제 여기 봐도 돼. 짜잔"
"오오ー귀엽네요. 하늘색 칼라가 확실히 돋보여요. 어울리는걸요. 마지막에 이걸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헤헤, 고마워. 소중하게 입을게. 그래도……"
"그래도?"
"그게,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부탁해보고 싶어서"
"뭔가요?"
"혹시 괜찮으면 사유쨩도 이 선물로 받은 세라복, 입어봐 주지 않을래? 옛날에 입었던 거니까 거부감도 적을 테고. 싫으면 안 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나, 사유쨩의 귀여운 모습을 눈에 새겨두고 싶어"
사유쨩이 놀란 표정을 짓더니, 한동안 멍하니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평소 같으면 저는 세라복 입는 취미 같은 거 없고, 이건 호시로 씨 선물이 아니냐면서 거절했겠지만, 좋아요. 정말 마지막이니까요. 소중한 호시로 씨의 부탁이니까"
오른쪽 소매를 붙잡고 있던 손을 풀면서, 사유쨩은 그리 말했다.
・
・
・
"와, 멋지다"
특별한 한 벌을 입은 사유쨩은 평소보다도 더욱 빛나 보였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애초에 사유쨩이 세라복을 입은 것은 처음 본다. 신선함과 귀여움, 그리고 모종의 거룩함마저 사유쨩을 감싸고 있었다.
"이상하지, 않나요"
"전혀. 영원히 쳐다보고 있고 싶어"
"그건, 부끄러워요"
"헤헤헤, 미안해. 그래도 정말로 예뻐. 고마워.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이야"
히히, 하고 사유쨩이 웃는다. 그 미소를 계속, 계속 보고 싶다, 이렇게나 간절히 바랐던 적은 아마 없었겠지. 아아, 어째서 빼앗기고 마는 걸까.
"왜 내가 세라복을 좋아하는지, 전에 얘기했던가"
"단순히 좋아하니까, 그리고 변화가 싫어서. 분명 그랬었죠."
"응. 나 언제나, 사유쨩이 사라져 버리면 그 고통을 버텨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거였어……난 사유쨩의 몫까지 견뎌야만 한다고, 결심했어"
"호시로 씨"
갑자기 몸에 힘이 실린다. 사유쨩이 내게 안겨온 것을 느낀다.
내가 마주 꼭 껴안으니, 끌어안은 사유쨩의 힘이 마치 몸을 맡기듯이 한층 더 강해진다. 그러자 죽음이 임박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체온에 녹아버릴 것만 같아진다. 사유쨩은 반팔을 입고 있어서, 팔의 따뜻함이 곧바로 등 뒤로 전해져 온다. 여전히 바깥에는 1월의 차가움이 맴돈다. 사유쨩은 마치 작게 타오르는 등불 같았다.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듯이 미미한 밝기를 가지고서.
정신을 차리니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사유쨩, 제발, 사라지지 말아줘"
별다른 도리도 없는 소리를 사유쨩에게 내던진다. 대답은 없다. 기분 탓인지 끌어안는 힘이 더 강해진 느낌이 든다.
"……미안, 지금 가장 힘든 건 사유쨩일 텐데"
"사과하지 말아주세요, 그런 식으로, 이미 곧 끝이니까 사죄 같은 걸 듣고 싶지는 않아요"
"정말이지, 친절하구나"
목덜미로 따스한 눈물이 흘러 넘친다. 사유쨩은 아직 울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눈물에 노기는 서리지 않았다.
"정말, 그러면 나까지 울어 버리잖아"
울면서 얘기하는 탓에 목소리가 이상하게 높아진 사유쨩의 말을 들으면서, 나까지 다시 눈물을 흘리고 만다.
"저,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죽을지도 모르고, 어딘가 다른 장소로 가는 걸지도, 모르지. 우리도 모르겠어"
"혹시 다른 장소로 가게 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호시로 씨"
몇 번째인지도 알 수 없는 침묵.
만약 그렇다면 반드시 만나러 갈게, 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기도가 닿는다면, 분명 그럴 거야"
"뭐에요 그게, 호시로 씨답지 않네요"
"그치만. 가끔은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보는 것도 괜찮잖아"
"호시로 씨, 그런 로맨틱한 구석이 있었군요. 처음 알았네요"
"그러게, 나도 아직 모르는 사유쨩의 면면을, 더 알고 싶어. 만약 기적이 일어나서 다시 만난다면, 내가 모르는 사유쨩을 잔뜩 찾아낼 테니까"
"그거 재밌겠네요, 저도 이것저것 생각해 놔야 되겠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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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사유쨩 덕분에 지금까지 행복했어"
"저도요. 호시로 씨. 모든 게 잊힌다고 해도, 전 호시로 씨를 정말 좋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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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끝나고 보니, 마치 정말 처음부터 사유쨩이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사라져 버렸구나 하는 실감이 엄습해 온다. 공교롭게도 흘릴 눈물은 이제 메말라 버렸다.
문득, 이제껏 몇 번이고 읽어봤던 SCP-3309-1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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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멋지고 다정한 사유쨩이 뭐가 저평가라는 것인가, 몇 번이고 곱씹었다. 분했다. "재미없다"라며 삭제되어 버린다니 너무나 부조리하다며 이 세상을 원망했다.
"있잖아, 나 말이야. 너무 평화에 찌들어 있었나 봐"
방금까지 사람이 있었던 자리에 말을 걸어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봐봐, 난 계속 수학만 파고들어서, 변칙 개체하고 접촉해 본 적도 없었어. 그러니까, 막상 이렇게 사유쨩이, 소중한 사람이 변칙의 희생양이 됐을 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 말을 전하는 것조차 겨우 아슬아슬하게 해냈고"
"사유쨩, 아까 언제 죽어도 괜찮도록 살아왔다고 말했지. 난 변칙 개체랑은 관련 없으니까 하고 재단 인원인데도 안일하게 굴었던 거구나, 그걸 듣고서야 겨우 깨달았어"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게다가 나, 이렇게 형이초학이라든가 상위창작자의 존재라든가, 마음 속 어딘가에선 믿지 않고 있었던 거야. 나하고는 관련 없겠지, 추상적인 거니까 현실에는 없겠지, 하고. 나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어. 정말, 무사안일주의에도 정도가 있지. 죽을 각오조차 마쳐둔 사유쨩하고는 다르게"
"나는 변칙 개체하고 관련 없을 거야 지껄이면서, 결국 상위창작자나 겹층서사 같은 거에서 도망칠 수 없어"
"형이초학부 사람이 정신에 병이 들기 쉬운 이유, 지금이라면 정말 사무치게 알 수 있어. 이런 거 현실이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걸"
침묵. 편안함도 불쾌함도 없는, 그저 존재할 뿐인 침묵.
"이런 거라면 전부 다 잊어버리고 싶어. 그래도 말이야, 사유쨩한테는 딱 하나 비밀로 한 게 있어"
"SCP-3309의 희생자는 점점 주변에서 잊혀 가. 그리고 재단에서 기억소거까지 당해서, 결국에 '행방불명' 같은 역정보가 붙은 채로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되어 버려. 누구도 사유쨩을 기억해주지 않아"
"저기, 이거 봐봐"
단말기의 화면을 돌린다.
SCP-3309 사례 데이터베이스
사례 번호: SCP-3309-7286
발생 일시: 2026/1/12 오후 10시 23분
대상: SCP-4F28-JP
분류: 개체
SCP-3309-1 출현 지점: 보고서
비고: 이와 관련하여, 해당 보고서에만 등장하는 인물이었던 재단 인원 우와누루유 사유키(ID: 7250-7039107497)도 소실됨.
"이거, RAISA 데이터베이스 끝에 추가된 기록. 공식적으로는 고작 이 비고 하나가 사유쨩이 살아 있었던 증거인 거야"
"아이러니하지. 그냥 엮여서 보고서에 기재됐을 뿐인데, 이것마저도 서사, '서사'라니"
"나도 앞으로 몇 시간만 지나면 전부 잊어버리고 말 거야"
"그래도 나는 형이초학부니까, 기억소거도 안 받고, 사유쨩의 기록 같은 거 남겨둬도 문책받지 않아. 세계에서 유일하겠네. 그러니까 내가 전부 기록할게. 나랑 사유짱에 대한 거. 이미 조금은 잊어버렸지만"
"사람이 두 번 죽는 건, 그 사람이 모두에게서 잊혔을 때라는 말도 있잖아"
"죽자마자 잊힌다니 너무 잔혹하지 않아?"
"그러니까 나만은 기억해야만 해. 난 죽어서는 안 돼, 잊는 쪽이 행복할 거라고 말해서는 안 돼, 데이터베이스 한구석만이 살아 있었다는 증거라는 소리를 하게 두진 않겠어!"
대답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머릿속에 차오른 감정이 폭발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나는 일상을 바꿔선 안 되니까, 바꿔선 안 되니까"
입에서 내뱉은 말로 스스로를 타이른다. 슬픔을 얼버무리기라도 하려는 듯한 주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문(おまじない)은 한자로 쓰면 "お呪い"(저주)였던가. 하며 아무래도 좋은 것을 떠올린다.
그래도, 저주. 말하고 보니 참 묘하다. 일상을 바꿔서는 안 된다는 저주, 사유쨩의 기억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저주. 그러면 이 선물받은 세라복은 저주의 로브구나. 소중한, 너무나 소중한 저주.
"나는, 너에 대해 기억하는 걸 전부 이 문서Tale에 적을게"
그래, 처음에는 저주에 대해 적기 시작하자.
난 일상이 바뀌는 것을 싫어한다.
이사도, 졸업도, 취직도, 이별도, 심지어 만남마저도.
물론 "변칙"도.
다시 말해 변화,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을 싫어한다는 말이다. 가령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라 하여도, 변화의 결과 행복해진다고 하여도, 아무튼 무언가 매일의 일상이 무너지는 것을 싫어한다.
졸지에 새것이 되어버린 세라복을 곁눈으로 바라보며.
이것이 내가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치형 세라복이 되겠구나, 그리 생각하며.
여기에 그런 나를 "붙들어 준" 존재가 있다.
수학부에 있었을 때처럼.
괜찮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하고 조용히 말해주듯이. 반복해서, 반복해서.
이번에는 내가, 사유쨩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차례다. 그 일에 평생을 바치는 것이 최소한의 추모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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