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이 오늘 어떻게 오시려나?”
파리 지부, 피직스 분과, 이사관보 첼레스타가 메모장에서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요?”
“무서운 여인 있잖아.” 노르망디 지부, 피직스 분과, 테레민 이사관이 대답했다. “아무도 D.C. 알 피네의 실제 모습을 모르거든. 이런 회의가 있을 때마다, 그 분은 보통 유명한 영화 배우의 모습을 취하셔.”
“쿠바 미사일 사태 땐, ‘사이코’의 베라 마일스로 나타나셨지.” 니스 지부, 이사관보 콘트라베이스가 흘려말했다. “9/11 직후에는 ‘에일리언’의 시고니 위버셨고. 선거와 관련된 모든 일들에선 린다 헤밀턴이셨고.”
“‘아프리카의 여왕’의 캐서린 헵번으로 나타나셨을 때에 비해선 전혀 무서운 일도 아닌걸.” 테레민이 웃으면서 말했다. “로스웰 사태 때였지. 바지가 노래지고, 사람들은 거의 기절했었어.”
“비밀회의까지 20초 남았습니다.” 안경을 쓴 기술자가 말했다.
“좋아, 시작하지.” 테레민이 넥타이를 고쳐 매면서 웅얼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다들 침착하자고.”
“십. 구. 팔. 칠…” 기술자는 큰 목소리라 카운트다운 세는 걸 멈추고 손가락 6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5개… 4개… 3개… 2개… 1개.
방은 어둠 속에 빠졌다. 잠시 뒤, 검고 탁 트인 공간 위에 반짝이는 별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마침내 108개의 반짝이는 티끌이 공허 위에서 빛을 냈다.
빛 한 점이 명멸하더니 커지기 시작했다. 곧 빛은 밖으로 퍼져 흰 옷을 입은 키 큰 여자의 형태로 변했다. 여자의 변색된 얼굴은 여전히 제왕처럼 웅장했으며, 여자의 딱딱하고, 차가운 눈은 다른 107개의 별을 권위적으로 쳐다봤다.
“오 망할.” 테레민이 작게 말했다.
“대체 누구에요?” 콘트라베이스가 물었다.
“‘겨울의 라이온’에서의 캐서린 헵번.” 테레민이 대답했다.
첼레스타는 비명을 삼켰다.
D.C. 알 피네는 심연을 쳐다봤고, 심연은 눈짓을 보냈다. 알 피네의 신경 하나하나가 마치 불붙은 느낌이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1의 형태가 도움이 됐지만, 케이트 여사와는 다르게, 알 피네에겐 할 말이 담긴 대사가 없었다.
알 피네는 처리할 수 있으리라.
알 피네는 허리를 펴고 머리 가리개의 옷단을 정리했다. 턱은 반항적이고 오만한 몸짓으로 들었다. 알 피네는 다리를 어깨넓이로 벌리고, 등 뒤로 손을 마주잡아 뒷짐을 진 다음,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다른 분들까지. 108 평의회의 비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안건은, 커져가는 재단의 호전성과, 그 행동에 대한 우리의 대응입니다. 피직스 분과의 보고부터 시작하죠. 테레민 이사관?”
피직스 분과를 나타내는 별이 내려오더니 반짝였다. 잠시 뒤, 별은 밖으로 퍼져 얇은 회색 머리칼과 안경을 낀 온순해 보이는 남자의 형태가 되었다. “감사합니다, 장관님.” 남자가 말했다. “우리는 몇 개월 전에 재단 정책의 급진적인 변화에 대한 첫 번째 기미를 확인했습니다. 저희 파견 요원이 재단 시설 중 하나가 불명의 조직으로부터 습격받았다는 보고를 한 이후였습니다…”
알 피네가 키보드의 버튼을 눌렀고, 캐서린 헵번의 이미지는 보조 이사관 테레민이 보고하는 동안 계속 준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 피네는 의자에 바짝 앉아 심호흡을 하면서 비밀회의의 어둠 속에 떠 있는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쳐다봤다.
부드럽게 쨍하는 소리가 울렸고, 많은 별들 중 하나가 어둠 속을 떠내려와 가까이 다가왔다. 별은 어둠 속에서 명멸하는 글자로 커졌다.
저 사람 좋은걸. 보조 이사관으로 썩히다니. 승진시켜.
알 피네는 피식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알 피네의 눈썹이 빠르게 깜빡였고, 글자에 대한 답장이 별을 향해 써졌다. 비밀회의에 마지막으로 참여한 이후 오랜만이네.
내 비밀번호가 아직 먹히는 게 더 놀라운걸. 우리가 딱히 좋게 헤어지진 않았잖아.
내 일이 아닌걸. 늘 깨어 살피는 수녀회도 엄밀히 따지면 아직도 108 평의회의 일원이야. 저 수녀들이 굳이 자신들 비밀번호를 바꾸려 하지 않아도 내 알 바 아니지.
그럼 빨리 내 일만 할 게. 별이 답장을 보냈다. 이건 내부 숙청이야. 힘을 키우는 게 아니라. 네 사람들한테도 여기서 손 떼라고 해.
알 피네는 코웃음쳤다. 개소리. 이걸 설명해봐. 알 피네는 온통 검은색인 군인들이 비틀거리는 좀비를 한 무더기로 쏴 죽이는 흐릿한 장면이 담긴 떠다니는 비디오에 둘러싸인 보조 이사관 테레민의 이미지를 가리켰다. 다른 영상에는 두 여자가 바지를 입지 않은 남자를 아파트에서 끌고 나와 검은색 차량의 뒷좌석에 밀어 넣는 모습이 있었다. 세 번째는 방호복을 입은 남자들이 아파트를 탈출하는 동안, 보도에선 얼굴이 없는 남자가 러시아인과 대화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몇 개 더 있었다. 다들 판이하게 다른 장면들이었지만, 다들 같은 걸 드러내고 있었다. 재단 인원이 고의적인 공개 활동을 하고 있다.
너희가 언제나 초자연적인 일에 수동적인 입장을 취해서 우리가 너희 조직을 봐주는 거야. 알 피네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희는 앞서 움직이기 시작했지. 그러면 너희는 처리해야 할 능동적 위협이라는 되겠군.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를 말해봐.
내가 볼 땐 두 가지 선택지가 있어. 보조 이사관 테레민이 보고를 마쳐갈 때, 알 피네가 대답했다. 선택지 하나. 세계 오컬트 연합의 일원이 된다. 우리의 규칙을 따른다. 우리의 감독 하에 들어온다. 너희 격리 시설에 대한 우리 감독관의 모든 접근을 허가한다. 우리가 너희의 특정 직원을 표면적으로는 더 큰 선을 위해 그들이 저지른 인류에 대한 범죄로 고발할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꽃을 우리에게 넘긴다.
O5 평의회가 동의하진 않을걸.
그럼 어떻게 될 지 알잖아.
그렇지. 잘 있어. 다시는 말 걸지 않을게.
잘 가.
별이 한 번 반짝이더니 눈 앞에서 사라졌다. 알 피네는 눈을 감았다가 숨을 들이켰다.
“… 이는 한 가지 간단한 결론을 나타냅니다.” 보조 이사관 테레민이 결론을 내렸다. “현재 상황은 재단에 대한 대응 기준을 5레벨에 올리는 기준을 멀리 지났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저부터 하죠.” 불멸의 오로치 집단의 일곱 번째 머리가 말했다. “직접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피직스 분과를 예외로 하고 현재 가장 강하게 무장한 초자연적 기구를 향해 전쟁 태세로 바꾸자는 얘기를 하고 계십니다. 연합이 이런 충돌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까?”
“반도체 노르니르는 이 전쟁에서 이길 확률을 75%라 봤습니다.” 테레민이 대답했다. “하지만, 50%의 확률로, 승리에는 피치카토 절차의 실행을 요구합니다.”
“…희생이 너무 큰 승리라는 말이군요.” 일곱 번째 머리가 말을 잘랐다. “우리가 완수해야할 우선적인 임무가 실패하리란 점을 따져보면 말입니다."
“제가 앞서 말했듯이, 예상되는 결과의 50%일 뿐입니다.” 테레민이 반박했다. “제2임무를 버리는 일 없이 승리할 시나리오도 충분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밈적 무기를 사용해서 재단의 지도부에 즉각적인 참수공격을 전개하는 겁니까? 아니면 격리 시설에 있는 기지 내 핵탄두를 자폭요원을 통해 터뜨리는 건가요?” 일곱 번째 머리가 물었다. “당신만 반도체 노르니르의 분석을 읽는 게 아닙니다. 그 쪽이 제안한 시나리오들은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에요.”
“재단이 제2임무의 실패를 막기 위해 변칙 개체를 격리만 하려는 사욕을 생각해보면, 전 개인적으로 재단의 기지에서 고의적인 격리 실패를 일으키는 제안을 좋아합니다.” 사탄 과학자 통합교회의 반교황, 마르커스 크로울리 경이 말했다. “우아하잖아요.”
“전 양심상 재단에 기대어 저희의 제2임무를 유지하기 위해 재단의 애완동물을 가두는 행동 방안에 동의할 수가 없군요.” 은빛열쇠단의 총무 람다가 말했다. “재단은 엄밀히 따지면 여기에 대해서 최상의 실적을 내지도 못하고요.”
“전 좀 다른 질문을 하고 싶군요.” 여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어떤 계획도 장기적으로 봤을 땐 쓸모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요? 우리가 재단을 이기는 데 성공한다 해도, 재단이 꽃을 발동하면 우리가 한 모든 일을 되돌릴 거예요.”
알 피네는 얼어붙었다.
“그 망할 꽃이란 건 뭡니까?” 일곱 번째 머리가 물었다. “그리고 당신은 뭐하는 놈이고요?”
빛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푸른 청바지와 긴 소매 재킷에 꽃이 그려진 히잡을 입은 젋은 여자였다. “제 이름은 아비게일 메리 보위입니다.” 여자가 말했다. “전 보위의 자손들을 대표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드릴 제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