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에서의 부름


현대

제21K기지

서울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구천은 창가에 기대어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무속학부 인원 휴게실은 간만에 텅 비어 있었다. 창밖은 짙은 안개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기지 인원 본인도 정확히 어디인지 모를 위치, 비가 떨어지는 소리로 짐작하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 없고, 그저 공허.

구천은 그 정경이 좋았다.

사람의 거리는 너무나 보이는 것이 많았다. 사람이 거쳐간 곳은 으레 그 흔적이 남아, 그 흔적 위로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과 사람이었던 것들이 모여들곤 했다. 복잡하고 혼잡한 도회의 공기는 그 셋을 구분할 의지가 없는 듯했다.

차라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게 낫지. 구천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노트북 모니터로 시선을 던졌다.

두 줄로 길게 늘어선 탁자. 그 위에 어지럽게 놓여진 방울이니 말린 황태니 부적이니 같은 걸 대충 밀어두고 얹어둔 구형 노트북이 웅웅거리며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게 신기할 정도인 노트북은 대학 시절부터 쓰던 물건이었는데, 조금만 더 쓰면 도깨비가 붙을 정도라는 소리까지 들은 영물이었다. 심지어 도깨비 본인한테 들은 말이었으니.

모니터에는 히라츠카 박사에게서 온 메일이 띄워져 있었다.

지난 프로젝트도 일단락되고, 지금은 잠시 공부를 위해 격리 작업 일선에 나서지는 않는 구천이다. 평화롭게 지내는 시간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날아든 소식은 그에게도 사뭇 당혹스러운 이야기였다. 갑자기 율도라니?

율도, 그러니까 제19K구역이 소재한 이공간에도 무속학부는 있다. 그곳에 유일하게 소재한 진혼학과의 장, 한강인 박사는 구천에게 은인인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 재단에 들어오게 된 계기도 한 박사와의 만남이었다. 그런 한강인 박사가 아무리 사정이 있다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무속 현상이 있다니…

구천은 한 손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석연치 않았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누군가가 들어온 건 그때였다.

"아, 아야!"

휴게실 바닥에 어지럽게 놓인 박스에 발이 걸려, 성대하게 넘어질 뻔하다가 몇 걸음을 공격적으로 옮기고 나서야 중심을 잡은 인물은 무속학부 요원 윤덕희였다.

"괜찮아?"

구천이 뒷덜미를 주무르며 물었다. 덕희의 산만함은 무속학부 내에서도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럼요. 체력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왔는데."

"조심 좀 하지."

"이번에는 제 잘못 아니거든요! 저렇게 정리 안 된 박스 때문이라구요. 아무리 휴게실에 개인 용품 같은 거 놓을 수 있다지만!"

"저건 네 박스 아냐?"

덕희가 홱하고 박스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 있죠!"

"너, 나중에 정리 좀 해 둬. 교수님께 혼날라."

"알겠어요."

덕희는 시무룩한 얼굴로 대꾸했다.

구천은 일어서서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뒤에서 철없이 자기는 프림 없이, 라고 주문하는 덕희의 요청을 대충 응낙한 뒤였다. 머리는 여전히 복잡했다. 가서 도울 수는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히라츠카 박사의 요청이다. 그러나 대체 그 현상이 어느 정도이길래 밖으로 도움까지 구하는 걸까.

율도… 이자메아의 점령지였다가 재단 산하로 들어온 구역. 아마 그곳에서 죽은 사람도 허다할 테지. 옛 땅. 옛 유적…

유적?

"…그러고 보니까 덕희 너, 유적지에서 변칙 현상 자주 조사하지 않았나?"

"음, 그렇죠? 제가 또 그 전문이죠. 헤헤."

덕희가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너,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 있어?"

"아…뇨? 지난 번 격리 건 마무리 짓고는 배정되는 거 기다리고 있어요. 공식적인 업무는 다음 달에 나올 테니까 그때까지는 체력 단련이랑 강신학 공부 밖에는 할 거 없는데… 왜요?"

구천이 덕희에게 커피를 가져다 주었다.

"어디 갈 데가 있어서."

"데이트 신청이에요? 아니… 구천 오빠 신부님이잖아."

구천이 얼굴을 찌푸렸다.

"일하러 가자고."

덕희의 얼굴에도 같은 찌푸림이 일어났다.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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