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루의 마키리
통화 내역 ██
스키터 마셜/로버트 카터
기록 날짜: ████/██/██ ██:██ - ██:██
사용자 내용
스키터 마셜 좆됐군.
로버트 카터 손익은?
스키터 마셜 싹 다. 그냥, 싹 다. 남은 것 하나 없이, 그냥 싸그리 다 날아갔다고. 이게 말이나 되나?
로버트 카터 아쉽구만. 이번 경매 상품 중에는 꽤 반반한 것도 하나 있었는데. 정말이지, 아쉽게 됐어. 밤일만 잘하면 내 피를 먹여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스키터 마셜 염병 떨지 말게. 상황 파악이 안 되나? 주요 고객들 다수가 깡그리 뒤져버렸고, 그 흡혈귀년이 상품도 몇 건지고 도주했어. 특히 그—
로버트 카터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너겠지, 스키터. 이번 경매의 주최를 담당한 건 너야. 상품이 날뛰지 못하게 관리를 잘해놨어야지.
스키터 마셜 무언가 잘못 알고 있군, 로버트.
로버트 카터 뭐?
스키터 마셜 그 상품 때문이 아니야. 애초에, 피도 똑바로 못 빠는 결함품이 그럴 힘이 어딨겠나? 곱상하고 희귀성이 있어서 그만한 가격이 매겨진 거지, 평범한 인간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품이네.
로버트 카터 그렇다면… 뱀의 손인가? 아니지, 역시 분서꾼들이겠군. 보나 마나—
스키터 마셜 칼. 그 칼이 원흉이다. 요번에 내가 회수해 온 그 상품.
로버트 카터 허. 그 일본풍 단검 말인가? 값깨나 오르겠군그래, 응? 기존 가치가 얼마였지? 3만?
스키터 마셜 10만까지는 올릴 수 있겠지. 꽤나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던데… 눈독 들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로버트 카터 아주 손해만 본 것은 아니로군. 스키터, 이번 건은 네가 책임지고 회수해 와. 좀 더 연구를 해봤어야 했는데… 고작 핏물 먹어대는 칼이 아니었다 이 말이지…
스키터 마셜 그것들이 들고 튄 상품들이 가치가 다 몇인데, 내가 그냥 잃어버리도록 두겠나? 안 되지. 전혀 안 될 말씀을.
기록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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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뜨였을 때, 소녀는 다만 타오르는 갈증만을 느낄 수 있었다.

끓는 이물감에 연신 헛기침을 내뱉으면서도, 소녀는 엄습하는 두통과 어지럼증에 몸을 휘청였다. 넘실거리며 파도치는 어둠을 뿌연 시야로 애써 헤쳐가며, 소녀는 한껏 뒤엉킨 제 감각을 가누기 위해 애썼다.

소란스레 귓전을 두드리는 어눌한 외침의 향연. 소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마를 부여잡았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온갖 역겨운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열띤 종용을 뱉어대는 남자와, 천문학적인 금액을 외쳐가며 서로 다투어대는 한 무리의 사람들.

그 더러운 눈길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소녀는 뇌리에 잔류하는 몽중의 손아귀를 떨쳐내려 애썼다. 얼마나 오래 잠들어 있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분명, 각종 약물과 함께 관에 처박히기 직전, 그녀는 다른 여러 상품과 함께 얼굴 없는 양복쟁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불가해한 어휘를 잔뜩 늘어놓은 카드를 이리저리 들이대며, '스키터 마셜' 이라는 명찰을 단 사내와 함께 소녀를 포함한 상품 몇을 추려내던 그것들.

머리가 다시 지끈거렸다.

식도가 말라비틀어지는 듯한 목메임에 이윤서는 가슴을 두드리며 캑캑거렸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 이대로 웬 괴악한 인간에게 팔려 가버리는 걸까. 그 모든 의문을 차치하더라도, 윤서는 전신을 파고드는 갈증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목이 말랐다. 목이, 미치도록, 말랐다.

그리고 동반되는 메스꺼움과 구역감. 시야에 붉은 잔상이 아른거릴 때마다, 윤서는 스스로를 향한 경멸에 몸을 떨었다. 경매는 한창이었고, 거슬리는 소란과 고동치는 심장 소리만이 잔류하였다. 윤서는 두통에 서서히 눈을 감았다가, 이내 다시 눈꺼풀을 걷어 올렸다.

어라.

저 꼬마는 누구지.




초기 보고서
작성자 스키터 마셜 날짜 ████/██/██
관심도 중 식별자 조갈의 마키리
오랜만에 이곳저곳 들쑤시다 꽤나 흥미로운 것을 하나 발견했다. 웬 일본풍 단검, 그러니까, 정확히는 마키리라고 불리는 아이누족의 전통 칼을 발굴해 내고야 만 것이다. 당연하게도, 고작 알량한 역사적 가치나 조금 간직하고 있는 그런 식상한 유물은 아니었다. 만약 그랬더라면 내 눈길을 끌 리가 없었겠지.

칼자루를 쥐자마자, 그것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경박한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는데, 단순히 뇌까리는 것 말고도 재주가 여럿 있더군. 칼날 위에 피를 흩뿌리면 칼이 피를 빨아먹는데, 이 흡혈 기능에 제한이 없더라고. 당장 이것만 하더라도 권력가들 암살 투쟁에 값비싸게 팔리겠지만, 돈 될 만한 기능을 생각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더군.

이 마키리는, 바친 제물(생명체의 혈액이든 생명체 그 자체든)에 따라 광범위한 환각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저주받은 칼이라니, 참으로 클리셰적이지. 탐험가의 식견으로써 말하는데, 고객들이 정말 좋아할 거야.
파일 경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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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다! 엄마! 아빠! 저거 봐, 별이야! 반짝반짝 빛나. 원래 하늘에는 별이 많은 거야? 나 별 처음 봐!

…마음에 드니?

응! 형아가 알려줬어. 별은 하늘에 뜨는 반짝반짝 예쁜 거래! 저것처럼! 나도 별나라 갈 수 있는 거야?

그럼. 약속했잖니, 여섯 살 생일에 데려가 주겠다고.

와아… 별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생겼을까? 눈은 있을까? 손은? 발은? 눈 예쁘면 내가 가질래! 형아한테는 손 줄까? 예쁜 손 잘라서 주면 좋아할 거야! 그럼 그림도 잘 그릴 수 있겠지? 누나한테는 뭐 줄까? 응? 엄마 아빠는?

하아…

별나라에는 지네 아저씨도 있을까? 엄마 아빠가 그랬잖아. 나 지네 아저씨랑 친해져야 한다고. 근데 형이랑 누나는 지네 아저씨 무서워하던데. 지네 아저씨 착해! 착한 사람이야. 나한테 옛날이야기도 많이 해줘.

그래. 그래서 지금 나무기님을 뵈러 가는 길이잖니.

그럼 지네 아저씨랑 같이 별나라 가는 거야? 나 누구랑 놀러 가는 거 처음이야! 밖에 나가는 것도 처음이고… 별나라 가는 것도 처음이야! 놀러 가면 바다랑 숲도 가볼래. 엄마 아빠는 바다랑 숲 가본 적 있어? 형이랑 누나는 아직 없대.

그렇겠지… 밖은 위험하니까. 자, 이거 가져가렴.

오! 칼이다! 예쁜 칼이네. 이건 무슨 칼이야? 어디다 쓰는 거야?

나중에 나무기님께 여쭤보렴. 더 자세히 알려주실 거란다.

…왜 엄마 아빠는 안 알려줘? 동생들한테는 막 많이 알려주면서. 형이랑 누나는 밤하늘도 보게 해주는데. 나도 밖에 더 자주 나가고 싶어! 왜 나만 항상 집에 있어야 해?

…쯧.

어? 지네 아저씨다! 엄마! 아빠! 저기 지네 아ㅈ




비망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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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신자 스키터 마셜 수신자 로버트 카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 아무것도 없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흥미로운 점은, 놈들이 직접적으로 탈취해 간 것들이야. 길거리 고물 다루듯 으깨지고 바닥에 나뒹굴도록 버려둔 대다수의 상품과는 달리, 놈들이 들고 튄 상품들은 주로 생명공학 관련이었네. 특히 인체 수복과 형체 변환 쪽은 하나도 남은 게 없더군.

조만간 상황이 바삐 돌아갈 걸세.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 데만 못해도 몇 개월은 걸리겠군. 공급망 재구축과 고객층 재확보 등 해결해야 할 게 태반이야. 물론 그 년놈들도 잡아야 할 것이고.

그러니 로버트, 네가 드디어 '일'이라는 것을 해야 할 거다. 이 게을러터진 엽색가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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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

고여서 썩어버린, 눅진한 피비린내.

윤서는 차가운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뺨에 튄 피를 닦아내자, 끈적한 혈액이 서늘한 감각을 남기며 흘러내렸다. 손 마디마디 엉겨 붙은 핏덩이가 비릿한 악취를 풍겼다.

심장이 터질 듯이 고동쳤다. 심장을 찌그러트리는 듯한 압력에, 피가 역류하여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윤서는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가슴을 움켜쥐었다. 피. 사방이 피로 가득했다. 천장에서 검붉은 비가 뚝뚝 흘러내렸다. 구름은 다름 아닌 찢겨 열린 사람의 복강이었다.

뒤로 기어가던 윤서의 오른손이 찰박이는 소리를 내며 피웅덩이에 침전했다. 떨리는 시야를 아래로 내린다. 무참히 난도질당한 육편과, 그것이 사람이었음을 고하는 누군가의 팔. 두 살덩이의 간격에 윤서는 앉아 있었다. 붉었다. 붉은 파도가 아지렁이가 되어 피어났다. 굼실대는 구역감에 윤서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런데 대체 왜—

"먹고 싶어?"

순수한 악의가 묻어나오는,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 윤서는 얼어붙은 채로 오른손을 더욱 꽈악 쥐었다. 피가 손으로 쏠리는 듯한 감각에, 윤서는 잠시 손을 움찔거렸다. 차가웠다. 불쾌할 정도로 뜨거운 이 피바다에서, 끔찍이도 차가운 얼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감촉. 마치 한 맺힌 시체라도 된 것처럼. 혹은 아예 손이 잘려버린 것처럼.

차라리 잘려버렸다면 좋았을 텐데.

"응? 먹고 싶잖아.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

청아한 소리를 울리며 칼날과 바닥이 충돌했다. 윤서는 공포와 경멸이 뒤섞인 눈빛으로 떨구어진 칼을 응시했다. 과호흡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윤서는 칼자루를 쥐었던 손목을 꽈악 움켜쥐었다. 속이 거북했다. 낭자한 혈액이 시야에서 일렁였다.

칼은, 아니, 한때 칼이었던 소년은 키득거리며 윤서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분명, 그것은 경악으로 점철이 된 얼굴이어야 할 터였다. 소년은 쿡쿡 웃으며, 손가락으로 핏자국을 이어 윤서의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황홀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입꼬리에. 혈흔은 서서히 번져 윤서의 입술에 안착했다.

목이 말랐다.

윤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황급히 소년의 손아귀를 떨쳐내었다. 불쾌한 감촉. 윤서는 신경질적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속이 울렁였다. 수천 마리의 나비가 뱃속에 알을 까며 격렬히 나부끼는 듯했다. 피를 입에 대었다는 역함. 동시에 치솟는 갈증과, 그러한 자신을 향한 극도의 혐오감. 윤서는 끓어오르는 이물감을 속에서 게워 냈다.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윤서는 토사물을 닦아내며 소년을 노려보았다.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 앳된 외모에, 잔혹할 정도로 순진무구한 얼굴. 황록빛 눈동자가 휘영청 빛나며, 소년의 싱글벙글한 얼굴에 초승달처럼 휘었다. 사뭇 아름답게도 보이는, 깊은 수렁과도 같은 눈망울. 소년은 씨익 눈웃음지으며 총총걸음으로 윤서에게 다가갔다.

"어라, 먹고 싶은 거 아니었어?"

소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나뒹굴던 고깃덩이를 집어 들어 윤서의 눈가에 흔들었다. 얼룩진 핏물이 천천히 소년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이내 경련하는 시뻘건 근육 뭉치만을 남겨두었다. 소년은 활짝 웃으며 고깃덩이를 윤서에게 내밀었다.

"자!"

윤서는 얼굴을 찡그린 채 소년의 손에 들린 육편을 바라보았다. 터질 듯 요동치며 절규하고 춤추는 살덩어리. 질척한 알을 깨고 나오려는 생물처럼, 그것은 소년의 손아귀에서 처절히 발버둥 치고 있었다. 불룩한 눈알이 솟아오르다 터져나갔다. 소년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둥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안이 쓰라렸다.

"고기 안 좋아해?"

"…너 대체 뭐야."

"나? 나는 아마네! 마가쿠시 아마네. 누나는?"

윤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목구멍은 메마른 사막처럼 쩍쩍 갈라져, 한 줌의 소리조차 새어 나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를 마가쿠시 아마네라 소개한 이 소년은, 그러한 상황 자체를 퍽 즐기는 듯하였다.

"…윤서. 이윤서."

"윤서! 예쁜 이름이네."

윤서는 미간을 찌푸리며 거슬리는 키득거림을 흘려들었다. 조소와도 같은 웃음이 공중을 표류하듯, 윤서의 두 눈 역시 공허한 빛깔을 내비치며 허공을 배회했다. 무엇 하나에 초점을 둘 수가 없었다. 현기증으로 흐려지는 시야와, 뭉개지는 형채에 섞여 들어오는, 눅진한 핏빛 아지랑이. 음습한 어둠. 회백색 잔해. 돌출된 뼈. 시체.

타오르는 낙인처럼 뇌리에 새겨지는 기억. 작고 가벼우나 한없이 묵직한 날붙이를 들고서, 덜덜 떨리던 팔로 찢고 썰고 베었던 마치 억겁과도 같았던 시간들. 살점에 칼을 박아 넣어 질긴 근육을 잘라내던, 손의 신경이 곪아가는 듯한 감각.

다만 윤서의 눈은 붉은 잔향만을 쫓고 있었다.

"흐음… 배가 고픈 게 아니라, 목이 마른 거였구나?"

어느샌가 소년은 능글맞은 미소를 얼굴에 띠운 채로 윤서에게 바짝 다가와 있었다. 윤서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으나, 곧이어 코를 찔러오는 악취에 경직되듯 멈추었다.

고약하나 가히 중독적인 향내. 몽환적으로 일렁이는 세상에서 윤서는 스스로의 팔에 손톱을 박아 넣는 소년을 보았다. 다섯 갈래의 자상에서 진득하고 검은 액체를 뿜어내며,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는 톱날과도 같은 손톱을 윤서는 응시했다.

"자! 마셔!"

소년은 찢어진 팔을 윤서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빨려 들어갈 듯 시커먼 액을 울컥이며 은은한 피 냄새를 흘리는 그 환부는 분명 작은 악마의 속삭임이었으리라.

사막에서 피어오른 자그마한 우물이라. 그리고, 윤서는 그곳에서 목을 축이기를 갈망하였다. 무엇이라도 좋으니 목구멍으로 넘겨야만 했다. 이 타오르는 조갈(燥渴)을 식힐 수만 있다면. 메마른 식도에 달콤한 단비를 내릴 수만 있다면.

그 갈망에 윤서는 치를 떨었다.

"…치워."

윤서는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 우물의 인력으로부터, 소년의 황록빛 동공으로부터 스스로를 떨쳐내야만 했다. 어지러웠다. 어지럼증이 뇌리에서 춤을 춘다.

이윽고 세상은 만화경처럼 산산히 흩어져 바스라진다. 혹은 황홀경이었으리라. 채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뜨거운 독액이 악의적으로 윤서의 식도를 따라 흘렀다. 송곳니에 익숙한 감각이 일었다. 처음으로 타인의 혈액을 탐했을 적의 감각. 달콤한 육즙이 꿀처럼 입안을 감돌았을 때의 그 감각.

윤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내빼려 하였으나, 소년의 완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제는 십대 후반의 외형으로 변모한 그것은, 실실 웃으며 검은 피가 범람하는 제 팔을 윤서의 송곳니에 박아 넣었다.

"어때? 내 피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맛있을 거야. 하긴, 내 피도 그리 맛있진 않았지."

소년은 웃긴 농담이라도 들은 양 킥킥거렸다. 허나 소년이 내뱉은 말 역시 확고한 사실이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먼 옛날, 피웅덩이 위 홀로 쓰러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을 무렵, 소년은 입안에 고여오는 핏물을 끊임없이 곱씹었다. 그리고, 마침내 의식이 끊어졌을 때, 소년이 마지막으로 남긴 염상은 바로 자신의 피가 그닥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칼에 흉부가 관통당하는 것도 그닥 유쾌한 감각은 아니었다.

윤서는 탐미(耽味)로 침전하는 와중에서 소년의 의연한 미소가 사그러드는 것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손목을 움켜쥔 소년의 악력이 점차 옅어지는 것을 느끼자, 윤서는 곧바로 소년의 팔을 뱉어내었다. 윤서는 가쁜 호흡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심장은 자꾸만 고동쳐 가슴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해방감. 잔류하는 피맛이 혀뿌리를 옭아매었다.

소년은 잠시 입을 샐쭉하고는, 다시 작고 어린 모습으로 돌아서 윤서를 마주했다. 소년은 슬쩍 자신의 환부를 내려다보았다. 도끼로 찍은 듯 갈라져 파헤쳐진 그곳에는 다만 아득하고 어두운 얼룩만이 존재했다. 얼룩은 서로 얽히고설키더니 다시금 소년의 팔로 승화하였다.

"다 마셨네. 아껴두고 있던 건데. 뭐, 다시 채우면 되겠지."

소년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다시 윤서와 눈이 마주치자, 소년은 밝은 미소를 다시 얼굴에 띄웠다. 영롱한 두 눈동자가 금빛이 감도는 안광을 내비치며 녹색과 황색을 한 데 뒤섞었다. 마치 별을 두 눈구멍에 담아둔 것만 같은 광경. 윤서는 빛조차 빨아들이는 그 홍채에서 악의적인 순수함을 보았다. 소름이 돋았다.

"자, 내가 누나를 도와줬으니, 이제 누나도 나를 도와줘."

윤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단시간 감도는 정적. 천장에 매달린 시체는 묵묵히 열린 갈비뼈에 맺힌 체액을 뚝뚝 흘려보냈다. 음습한 바닥에 고인 검붉은 호수는 말없이 떨어지는 이슬에 맞춰 파동을 일궈냈다.

"…뭐?"

소년은 신이 난 듯 활짝 웃어 보였다.

"난 사람이 될 거야! 그리고, 다시 사람이 되면, 그때는 다른 사람들을 모아서 가족을 만들 거야. 누나가 그 첫 번째가 되는 거고! 어때?"




█████/█████/█████
상태 불명 (회수 불가능)
수요 중간
가치 USD 150,000
확보 가능성 유일함
식별자 조갈의 마키리
설명 기원전 97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마키리. 인간의 모습으로 자유로이 형태를 변환할 수 있으며, 주로 십 대 초중반의 외형을 선호한다. 흡혈 기능이 있으며, 이를 활용해 여러 광범위한 기적학적 작용을 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무리 많은 생명체를 베어도 검신에는 5~6살 유아의 DNA만이 검출된다. 과거 의례용으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유한책임조합 마셜, 카터 & 다크




아저씨, 우리 어디 가는 거야?

네 주인 될 사람을 찾으러 가는 거란다. 근래에 너와 같은 아이들을… 거두는 이가 하나 생겼거든.

…가족들이 보고 싶어.

안쓰럽구나. 언젠가, 언젠가는 반드시 깨닫게 될 거란다. 그들을 증오했음을. 끔찍이도 증오했음을. 그리고… 나를 원망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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