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일련번호: 2004HE00R07
문건 표제: 국가유산 R07호 사건
수집 주체: 국가초상방재원
문건 수량: 총 11건
본 문서군은 국가초상방재원 수집 자료 중 경상북도 일대 연쇄 변칙사건과 관련하여 시간순으로 정리한 것이다. 각 문건의 원본 상태 및 입수 경위는 말미 내부 보고서를 참조할 것.
문건 1. 경북일보 1949년 11월 8일자 사회면
慶北日報 1949. 11. 8. 社會面
慶北 무당골서 十六名 集團 慘死
兇器未發見, 犯人은 逃走한 듯
【영천】경상북도 영천군 화북면 소재 일명 「무당골」에서 지난 사일 새벽 무당 열여섯 명이 참살된 채 발견되어 일대에 큰 충격을 주고 잇다.
경북경찰국에 따르면 지난 사일 오전 칠시경 화북면 주민 안모(오십이)씨가 산기슭 무당골 공지에서 시신 다수가 널려 잇는 것을 발견, 화북면 지서에 신고하엿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이 확인한 바로는 시신은 총 십육구로서 사망자 전원이 이 마을에서 굿당을 차려놓고 거주하여 온 무당들인 것으로 파악되엇다.
현장 검시를 실시한 영천군 촉탁의 박정래씨는 시신의 상태에 대하여 다음과 갓치 진술하엿다. 시신 십육구가 하나갓치 사지가 잘리어 혹은 심히 훼손되어 잇섯고 팔다리가 몸뚱이에서 한참 떠러진 곳에 흐터져 잇섯다 한다. 얼굴에는 낫 혹은 이에 비슷한 휘어진 흉기로 여러 차례 찍은 깊은 상처가 열여섯 구에 모두 공통되게 나타나 잇섯다. 그런데 상처 부위 여러 군데를 불로 직접 지진 듯한 화상 흔적이 함게 확인되엇는데 박씨는 「죽인 다음에 불을 갓다대어 지진 것으로 보이며 저절로 불이 붓거나 하여 그리 된 것이라고는 볼 수 업다」고 소견을 밝혓다.
경찰 조사 결과 사망자 십육명은 무당골 일대에서 「만신도량궁」이라는 사당을 가운데 두고 활동하여 온 무당 떼거리인 것으로 확인되엇다. 화북면 이장 정모(육십일)씨는 「그 사람덜은 오래 전부텀 저 우에 골작이에 모여 살믄서 가금 굿도 카고 제사도 지내고 그캣는데 마을 사람들은 대개 갓가이 안 했다, 우두머리격인 남여 무당 한쌍이 잇섯는데 사건 나고서부텀 안 보인다」고 진술하엿다.
경찰은 우 진술에서 언급된 소위 「천왕모」 반모(추정 사십대) 여인을 유력 용의자로 보아 수배에 나선 상태이나 아직 소재가 확인되지 안코 잇다. 한편 현장에서 흉기로 추정되는 물건은 발견되지 안엇으며 범행 동기와 경위도 밝혀지지 안엇다.
경북경찰국 수사과 관계자는 「피해자들 사이의 관계와 집단 내부 사정을 자세히 수사하는 중」이라 밝히면서도 「사건의 성격이 특수한만큼 수사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 하엿다.
비고 (편철자 주): 본건은 1949년 경북경찰국 수사 제4137호로 접수. 용의자 반모 여인은 끝내 발견되지 아니하여 공소시효 만료1964년와 함께 미제사건으로 종결 처리됨. 반모 여인의 성명 전문은 당시 수사기록에도 '반귀옥'으로만 기재되어 있으나, 호적 대조 결과 해당 인적사항과 일치하는 자는 존재하지 않음.
문건 2. 경상북도 도청 산업과 → 경북부지사 내부보고
경상북도 산업과
내부보고 제49-산-0177호
| 수 신 | 경상북도 부지사 |
|---|---|
| 발 신 | 산업과장 서병준 |
| 일 자 | 단기 4282년(1949년) 11월 10일 |
| 건 명 | 영천군 화북면 일대 가축 집단 폐사 건 |
1. 개 요
1949년 11월 7일(사건 접수 기준) 영천군 화북면 일대 농가 다수에서 가축이 집단 폐사한 바 있어 그 현황을 보고함.
2. 현 황
가. 폐사 규모
| 가축 | 규모 | 비고 |
|---|---|---|
| 소 | 14두 | 화북면 7개 농가 |
| 돼지 | 31두 | 화북면 9개 농가, 자양면 2개 농가 |
| 닭 | 약 200여 수 | 화북면 전역 |
| 개 | 8두 | — |
나. 폐사 양상
- 11월 6일 야간부터 7일 새벽 사이에 집중 발생한 것으로 보임
- 외상 없음. 구토, 설사 등 중독 증세 관찰되지 않음.
- 대다수 가축이 축사 안에서 서 있던 자세 그대로 또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폐사.
- 화북면 정모 이장 진술: 「새벽에 나가보니까네 소가 서가꼬 죽어 있었고, 고 옆에 매어놓은 개도 엎져가 고마 꾿어 있대」
다. 특이사항
- 화북면 이외 인접 면에서는 동일 증세 보고 없음.
- 야생 조류(까치, 까마귀 등) 다수가 화북면 일대 길바닥에서 폐사한 채 발견되었다는 주민 제보 있음. (수량 미집계)
3. 조 치
- 영천군 방역소에 즉시 긴급방역 지시 완료.
- 우역, 돈콜레라 등 전염병 가능성을 상정, 폐사 가축 시료를 채취하여 도 가축위생시험소에 정밀검사를 의뢰함.
- 화북면 일대 가축 이동 제한 조치 시행 중.
4. 소 견
전염병에 의한 집단 폐사로 추정되나 외견상 감염 증세가 뚜렷치 않고 폐사 범위가 특정 지역에 한정되어 있어 원인 단정은 시험소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사료됨.
산업과장 서 병 준 (인)
비고 (편철자 주): 가축위생시험소 정밀검사 결과는 입수하지 못함. 이후 화북면 일대에서 추가 전염병 발생 보고는 없음. 집단 사망사건(11월 4일) 삼일 후에 해당.
문건 3. 문화재관리국 수습유물 주요 구절 일람 (1968)
문화재관리국 유물관리과
수습유물 주요구절 일람표
| 관리번호 | 68-경부-유-0043 |
|---|---|
| 유물명칭 | 「보륜사연기(寶輪寺緣起)」 (이하 '연기') |
| 수습일자 | 1968년 4월 12일 |
| 수습장소 | 경부고속도로 건설구간 제3공구 (경주시 외동읍 부근) 지하 약 2.4m 석실 인근 매토 내 |
| 수습경위 | 건설사무소 제3공구 소속 굴착반이 노반 정지작업 중 석실을 발견하였으나 내부는 개방하지 아니하고, 석실 주변 매토에서 노출된 본 유물 및 기타 유물 다수를 수습하여 문화재관리국에 이관한 것임. |
| 유물상태 | 두루마리 형태, 한지에 먹 필사. 전체 약 4.2m. 일부 부식 및 충해(蟲害)로 판독 불가 구간 있음. 토층 내 밀착 매장 상태가 양호하여 보존 상태는 비교적 우수함. |
| 필사연대 | 내용 중 '개원 원년'(713년) 기술 확인, 통일신라시대 필사로 추정. |
| 필 사 자 | 본문에 '사문 의현'으로 기재. |
[주요 구절 발췌]
이하 연기 중 판독 가능한 주요 구절을 한문 원문 및 국역 병기로 기재함.
□ 제1단 (창건 기사)
「開元元年 僧義玄 奉勅於慶州外東
創建寶輪寺 置金堂一 北殿一
回廊 僧房若干」
→ (국역) 개원 원년(713), 승 의현이 칙을 받들어 경주 외동에 보륜사를 창건하고, 금당 1동에 북전 1동, 회랑과 승방 약간을 두었다.
□ 제3단 (북전 연기)
「夫佛法之化 南贍部洲已遍
然邊地幽暗之處 山深谷邃
人迹罕至者 法力之所不及也
邊地多兵亂 橫死者衆
寃魂滯魄 積於山川
其殺氣凝而不散 與嶺之陰氣相合
能害生靈 雖地藏誓願弘深 實難盡度」
→ (국역) 무릇 불법의 교화가 남섬부주에 이미 두루 미쳤으나 변지의 그윽하고 어두운 곳은 산이 깊고 골이 아득하여 사람의 자취가 드문 곳이라 법력이 미치지 못하는 바이다. 변방 땅은 병란이 잦아 횡사한 자가 좀 많고 원혼과 체백이 산천에 쌓였다. 그 살기가 엉겨 흩어지지 아니하고 산령의 음기와 합하여 능히 생령을 해치니 비록 지장의 서원이 넓고 깊으나 실로 다 제도하기 어렵다.
□ 제5단 (업살명왕 안치 기사)
「北殿安置冥府業殺明王菩薩一軀
此非慈眼之菩薩也
乃以身受殺業
轉凶煞爲降伏之力
令衆生知畏而不入邪道者也
其形忿怒 身黑如墨
能攝諸煞歸於己身 □□□□
故雖爲菩薩 世人見之則懼」
→ (국역) 북전에 명부업살명왕보살 일구를 안치하였다. 이는 자비로운 눈의 보살이 아니라 몸으로써 살업을 받아들여 흉살을 항복시키는 힘으로 돌리며 중생으로 하여금 두려움을 알아 사도에 들지 않게 하는 자이다. 그 형상이 분노하고 몸이 먹과 같이 검으며 모든 살을 거두어 제 몸에 돌아오게 하니 그러므로 비록 보살이나 세상 사람이 보면 두려워한다.
※ □□□□ 부분은 충해로 판독 불가.
□ 제8단 (봉인 기사, 부분 판독)
「義玄 □□之骸與諸□□
封于北殿地下石室
竝安明王像於其上以鎭之
後人切勿開啓
若殺氣□□
則明王之所攝者 □□□□」
→ (국역) 의현이 □□의 유해와 여러 □□를 북전 지하 석실에 봉하고 아울러 명왕상을 그 위에 안치하여 진압하였다. 후인은 절대로 열지 말 것이니, 만약 살기가 □□하면 명왕이 거두어들인 바가 □□□□
※ 충해 및 부식 심하여 핵심 구절 다수 판독 불가. 별도 정밀 판독 후 보완 예정.
□ 말미 (기록자 서명)
「開元元年 寶輪寺住持沙門義玄 謹記」
→ (국역) 개원 원년, 보륜사 주지 사문 의현 삼가 기록하다.
[동반 수습 유물]
| 번호 | 유물 | 비고 |
|---|---|---|
| 1 | 석실 인근 출토 도자편(陶磁片) 다수 | — |
| 2 | 소형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1점 | 높이 약 12cm, 양식 미상. 통상적 보살상 도상과 상이하여 별도 감정 필요. |
| 3 | 철제 소형 방울 7점 | — |
| 4 | 인골(人骨) 잔편 | 석실 인근 토층에서 수습. 석실 관련 매장 인물로 추정. |
유물관리과 담당 김 재 호
유물관리과장 이 동 원 (인)
비고 (편철자 주): 수습 유물 중 2번 소형 금동보살입상은 1968년 수장고 입고 이후 소재 불명. 3번 철제 방울은 국립경주박물관 수장고 보관 중(미공개). 「연기」 원본은 1970년대 이관 과정에서 소재 불분명해졌으나, 2003년 프로젝트에서 재확인됨.
문건 4. 성광일 → 이성철 서한 (2003년 8월 14일)
이 팀장에게
인사가 늦었소. 팀장이 보내준 수박은 잘 먹었소. 당뇨 때문에 많이는 못 먹지만 요새 같은 더위에는 그만한 게 없더구려. 고맙소.
전화로 간단히 말씀은 드렸지만 글로 좀 정리해서 보내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적소. 다 구역 3번 트렌치 확장하다가 회랑지로 보이는 석렬이 나온 것은 알고 있을 테고, 그 옆에서 매납 유구가 하나 확인이 되었는데 그 안에서 괘불탱화가 나왔소. 세로 약 2미터에 가로 1.2미터 정도 되는데 보존 상태가 놀라울 정도요.
이 팀장. 내가 불교미술을 삼십 년 넘게 봐 왔소만 이런 도상은 처음 보오. 괘불이면 보통 영산회상도나 삼신불 계통이 주류 아니오. 그런데 이건 본존이 전신에 꺼먼 먹빛이오. 처음에 먹을 엎었는가 불에 그슬렸는가 했는데 아니오. 처음부터 그렇게 그린 것이오. 그리고 두광이나 신광이 있어야 할 자리를 보시오. 그 자리에 아주 작은 인물상들이 빽빽하게 채워져 있소. 확대경으로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표정이 다 다른데 우는 것들이 많소. 그것만도 아니지만 우는 것들이 많소.
권속 배치도 기묘하오. 협시보살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호랑이, 용, 불새가 있는데 셋 다 본존을 향해 이를 드러내고 있소. 괘불에서 권속이 본존을 공격하는 구도는 내가 아는 한 전례가 없소. 나도 혹시나 싶어 황수영 선생 도록이랑 이전에 동국대서 낸 탱화도감 자료집을 뒤져 보았는데 비슷한 것도 없었소.
하단부에 화기가 남아 있어 읽어 보았더니 «명부업살명왕보살괘불탱화»라 되어 있고 조성 연대는 대략 11세기 초로 읽히오. 사찰명은 「보륜사」이고 주지승 「각린」의 발원이라 적혀 있소. 보륜사라는 절은 내가 아는 사찰 목록 어디에도 없소.
이 팀장도 기억할 것이오만 1968년에 경부고속도로 공사 중에 바로 이 근방에서 수습된 «보륜사연기»라는 두루마리가 있었소. 나는 대학원 때 자료실에서 그 판독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밀교 계통 소찰 기록이라 하여 별로 주목을 못 받았소. 그런데 거기에 '업살명왕'이라는 명호가 나왔던 것이 기억나오. 삼십오 년이 지나서 같은 동네에서 그 명호와 들어맞는 도상의 탱화가 나온 것이오.
연기에 적힌 보륜사 창건 연대가 개원 713원년이고 탱화 화기의 조성 연대가 11세기 초이니 이 절이 최소 삼백 년은 존속했다는 뜻인데, 그 규모의 사찰이 어떠한 기록에도 안 남았다는 게 이상하오. 회랑지 규모로 봐서 폐사지 자체가 꽤 큰 사찰이었을 것 같소.
탱화 말고도 매납 유구에서 무구로 보이는 것들이 같이 나왔소. 금속제 방울, 무명천 조각, 그리고 골각기 몇 점인데 이 골각기가 좀 그렇소. 사람 뼈인지 짐승 뼈인지 현장에서는 판단이 어려우니 감정을 맡겨야 할 것이오.
이것들을 프로젝트 주요 성과에 올리는 게 어떻겠소. 해석은 물론 신중해야겠지만 자료 가치는 분명하오. 연기 원본 소재도 다시 확인해서 탱화랑 같이 놓고 대조하면 좋겠소.
답장 기다리겠소. 팀장도 더위 조심하시오.
2003년 8월 14일
다 구역 책임연구원 성광일 올림
비고 (편철자 주): 본 서한은 성광일 박사(경북대 불교학과 교수, 1941~2004)의 자필 서한 원본을 전사한 것임. 원본은 A4 크기 편지지 3매, 만년필 필기.
문건 5. 귀옥 → 성광일 서한 (2003년 8월 21일)
성광일 교수 님 게
안녕 하십니까. 천연불교 다시 새상 을 로 프로 잭트 자문 귀옥 입니다. 교수님 서한 를 이성철 팀장님 의 통해 전달 읽었 습니다. 팀장님 를 서울 출장 중이시 라 나의 답 이 줍니다.
괘불탱화 와 매납 유구 가 관한 보고 이 흥미롭게 읽은 습니다. 보륜사연기 과 의 연관성 이 대한 교수님 견해 는 공감 하옵니다. 업살명왕 라는 이 저 도 관심 을 두고 있던 바 입니다. 밥 은 드섰지요?
부탁 은 하나 드리겠 습니다. 괘불탱화 현장 사진 일채, 매납 유구 출토 유물, 명왕상 수납위치, 이 상세 사진, 또한 교수님 열람 하셨다 일구육팔연 연기 판독 보고서 사본 보내주실 수 있겠 습니까? 대답 이 하세요.
그리고 가능 하시다면 출토 유물, 특히 골각기 는 정밀 감정 을 안해 주시고 나 먼저 실물 을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 오. 안하 면 선생님 사는곳 가서 뵙겠 습니다.
아례 에 연낙처 을 남깁니 다.
합장.
2003년 8월 21일
천연불교 다시 새상 을 로 프로 잭트 자문
대한불교조계종 비구니 귀옥 합장
문건 6. 성광일 → 귀옥 답신 (2003년 8월 23일)
귀옥 스님께
서한 받았습니다.
감정 보류 요청은 받아들일 수가 없소. 발굴 유물의 감정 및 보고는 문화재청 규정대로 진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특정 개인이 보류해 달라 한다 해서 그리 할 수는 없소. 이건 연구 윤리 이전에 상식의 문제요.
솔직히 말하면 스님 서한을 읽고 좀 당혹스러웠소. 자료 일체를 보내 달라는 것도 그렇고, 감정을 멈춰 달라는 것도 그렇고, 실물을 먼저 본인에게 보여 달라는 것도 그렇소. 프로젝트 자문이시라면 정식으로 요청하시는 게 순서 아니겠소.
한 가지만 여쭙겠소. 프로젝트 자문위원 명단을 내가 알기로는 다 보았는데 스님 성함은 본 기억이 없소. 최근에 합류하신 것이오?
무엇보다 나는 이 팀장에게 서한을 보낸 것이지 스님께 보낸 것이 아니오. 이 팀장의 답신을 기다리겠소.
2003년 8월 23일
성광일
비고 (편철자 주): 본 서한에 대한 귀옥 측의 답신은 문건 7 참조.
문건 7. 귀옥 → 성광일 재답신 (2003년 8월 25일)
예
귀옥
비고 (편철자 주): 원본은 편지 봉투에 엽서 크기 백지 1매. 위 한 글자 외에 다른 기재 없음. 성광일 박사 유품에서 수습.
문건 8. 이성철 → 문화재청 프로젝트 최종보고서 (2004년 1월)
문화재청
〈천년불교, 다시 세상으로〉 발굴조사 프로젝트
최종보고서
| 보고일자 | 2004년 1월 15일 |
|---|---|
| 보 고 자 | 프로젝트 팀장 이성철 |
| 항 목 | 내 용 |
|---|---|
| 사 업 명 | 〈경주 천년불교, 다시 세상으로〉 발굴조사 프로젝트 |
| 사업기간 | 2003년 3월 ~ 2003년 12월 |
| 사업지역 | 경주시 외동읍 일대 폐사지군 A~D구역 |
| 참여기관 | 문화재청, 대한불교조계종, 경북대학교, 동국대학교 |
2. 주요 발굴 성과
| 구역 | 성과 |
|---|---|
| 가 구역 | 금당지 1동, 탑지 2기, 석조 대좌 1점 |
| 나 구역 | 승방지 3동, 와당 및 막새 다수 |
| 다 구역 | 회랑지 석렬 확인, 도자편 및 금속 유물 소량, 명왕상 1구 |
| 라 구역 | 석축 기단부 일부 노출, 추후 조사 필요 |
3. 출토 유물 목록 (별첨 대장 참조)
총 312점 (토기류 187점, 금속류 45점, 석조류 28점, 기타 52점)
주요 유물: 가 구역 석조여래좌상(보존처리 중), 나 구역 명문와당 3점
※ 다 구역 매납유구 출토 일부 유물(괘불탱화 1점, 골각기 수 점, 무명천 편 등) 및 관련 수습 문헌 1건(「보륜사연기」)은 반출 과정에서 분실된 것으로 확인되어 목록에서 제외함. 명왕상의 경우 다 구역 개발팀이 북전지 석실 상부에서 온전한 상태로 수습하여 반출하였으나 이후 소재 불명이 됨.
수색 작업 중 해우소지 뒤편 퇴적토 내에서 발견되었으나, 발견 당시 안면부가 만곡된 날카로운 도구로 심하게 깎여 상해되어 있었고, 사지를 절단하려 한 흔적이 있었으며, 절단 시도 부위에 탄 흔적이 남아 있었음. 분실 경위에 대해서는 별도 보고 예정.
4. 향후 계획
- 라 구역 2차 발굴조사 (2004년 상반기 예정)
- 출토 유물 보존처리 및 보고서 정식 발간
5. 특기사항 (프로젝트 기간 중 발생 인명사고)
| 성명 | 소속 | 일자 | 사인 |
|---|---|---|---|
| 김모 인부 | 다 구역 굴착반 | 2003. 8. 29. | 다 구역 3번 트렌치 확장 작업 중 집중호우에 의한 벽면 붕괴로 매몰, 현장 사망. |
| 박모 인부 | 다 구역 굴착반 | 2003. 8. 29. | 상동(上同). 김모 인부와 동시 매몰. 병원 이송 중 사망. |
| 정모 인부 | 사 구역 측량반 | 2003. 10. 3. | 현장 복귀 도중 외동읍 소재 도로변 비탈에서 실족, 약 4m 아래 논으로 추락. 경추 골절로 사망. |
| 이모 과장 | 프로젝트 행정담당 | 2003. 11. 12. | 출근 중 경주시내 사거리에서 레미콘 차량에 의한 교통사고. 현장 사망. |
| 성모 박사 | 다 구역 책임연구원 | 2004. 1. 7. | 대구시 소재 자택에서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 경찰 조사 결과 자택 내 유서 발견, 이혼 소송 진행 및 채무 문제 비관에 의한 자살로 종결. |
위 사고 중 김모·박모 인부 건은 현장 작업 중 발생한 것이므로 산업재해 처리가 필요하나 나머지 건은 프로젝트 업무 수행 중의 사고가 아니므로 사업단의 직접적 책임 소재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사료됨.
고인들의 명복을 빔.
프로젝트 팀장 이 성 철 (인)
비고 (편철자 주): 다 구역 유물 분실에 대한 '별도 보고'는 확인된 바 없음. 성광일 박사 사망일은 본 보고서 작성일 8일 전.
문건 9.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 성광일 회신 (2003년 12월 30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총무부 서무과
| 수 신 | 성광일 교수 (경북대학교 불교학과) |
|---|---|
| 참 조 | — |
| 발 신 | 총무부 서무과장 법현 |
| 일 자 | 2003년 12월 30일 |
| 건 명 | 소속 승려 조회 요청에 대한 회신 |
성광일 교수님께,
2003년 12월 15일자로 요청하신 소속 승려 조회 건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회신 드립니다.
교수님께서 조회 요청하신 법명 '귀옥'으로 등록된 비구니 승려는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및 산하기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귀 프로젝트〈천년불교, 다시 세상으로〉의 자문위원 명단을 확인한 결과에서도 '귀옥'이라는 법명의 위원은 위촉된 바 없음을 알려 드립니다.
혹시 법명의 한자 표기나 기타 세부사항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시면 재조회하여 드리겠사오니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총무부 서무과장 법현 (인)
비고 (편철자 주): 성광일 박사 유품에서 수습. 등기우편 수령일 2004. 1. 5. 성광일 박사 사망일 2004. 1. 7.
문건 10. 성광일 박사 자택에서 발견된 유서 (2004년 1월 7일)
아래는 경찰이 성광일 박사 자택 현장에서 수거한 유서 원문을 전사한 것임. 원본은 A4 용지 1매, 볼펜 필기. 경북지방경찰청 수사기록 사본에서 입수.
저 는 이제 죽읍니다
저는 자살 할 겁니다
여자친구 사랑 해
누구 가 죽인거 아닙니다.
안영 히 계세요 모두들
성광일
비고 (편철자 주): 경찰은 본건을 유서로 인정, 이혼 소송 및 채무 비관에 의한 자살로 종결 처리함. 다만 다음 사항에 유의할 것.
(1) 성광일 박사는 만년필 사용자로, 자필 서한(문건 4)을 포함하여 확인된 박사의 필적은 전부 만년필임. 본 유서는 볼펜 필기.
(2) 성광일 박사는 1941년생으로 사망 당시 만 62세이며, 이혼 소송 중인 배우자가 있음. '여자친구'라는 표현의 맥락이 불분명.
(3) 본 유서의 띄어쓰기 및 어휘 사용 패턴에 대해서는 문건 11 참조.
문건 11. 국가초상방재원 내부 보고 — 의문점 정리
국가초상방재원 내부보고
| 건 명 | 연쇄사건 관련 경북 외동읍 문건군 검토 소견 |
|---|---|
| 작성자 | [미기재] |
| 일 자 | [미기재] |
1. '반귀옥'의 반복 출현에 대하여
- 1949년 무당골 집단살인사건 용의자: 반귀옥, 추정 40대 여성, 미검거
- 2003년 발굴 프로젝트 자문 자칭: 귀옥, 조계종 비구니
- 성광일 박사 거절 후 재답신(문건 7): '예' 일자
- 조계종 총무원 확인 결과: 해당 법명 소속 승려 없음
'귀옥'이라는 이름이 54년의 간격을 두고 동일 지역권의 사건에 다시 등장한다. 1949년 당시 추정 연령을 기준으로 하면 2003년에는 최소 90대 이상이어야 한다. 동일인 여부는 현재로서 판단 불가하나 다음 사항을 고려하면 단순한 우연으로 처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두 사건 모두 경상북도 내 발생
- 두 사건 모두 복수의 사망자 수반
- 두 사건 모두 핵심 증거물이 사후 소실되거나 추적 불가로 귀결
2. 다 구역 유물 분실 경위의 불투명성
괘불탱화, 골각기, 「보륜사연기」 등 핵심 유물이 일괄 분실되었다는 보고가 있으나, 분실의 구체적 경위를 기술한 별도 보고서는 확인되지 않음. 분실 시점이 성광일 박사의 서한 교환 이후, 트렌치 붕괴 사고 전후인지 여부도 특정하기 어려움.
성광일 박사가 서한에서 기술한 괘불탱화의 특징은 현재 실물이 없으므로 제3자에 의한 검증이 불가.
다만 1968년 수습유물 일람표(문건 3)의 연기 제5단에 '身黑如墨(몸이 먹과 같이 검다)'라는 기술이 있으며, 이는 성광일 박사의 탱화 관찰 기술과 부합한다.
3. 사망자 집중에 대하여
2003년 8월~2004년 1월, 약 5개월간 프로젝트 관계자 5명 사망. 사인은 각각 매몰(2), 추락(1), 교통사고(1), 연탄가스 중독(1)으로 상이하며 개별적으로는 각기 설명 가능한 사고 또는 자살이다.
다만 아래 사항이 주의를 요한다.
- 5명 중 3명(김모, 박모 인부 및 성광일 박사)이 다 구역 소속이거나 다 구역 발굴에 직접 관여한 인원.
- 나머지 2명의 사고도 프로젝트 기간 내에 집중.
- 성광일 박사의 사망은 1.5 조계종 회신 수령 이틀 후.
- 성광일 박사의 유서(문건 10)에 대해서는 본 보고서 제4항 참조.
각 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없음. 그러나 빈도와 시기의 집중을 단순한 통계적 우연으로 처리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유보적 입장을 취함.
4. '귀옥'이 요청한 것과 서한의 특이사항
문건 5에서 '귀옥'은 세 가지를 요청하였다.
- (1) 괘불탱화 현장 사진 일체
- (2) 1968년 「연기」 판독보고서 사본
- (3) 골각기 정밀 감정 보류 및 실물 우선 열람
(3)이 특히 주목됨. 골각기의 감정을 보류해 달라는 것은, 감정 결과가 나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성광일 박사 역시 서한에서 골각기에 대해 "사람 뼈인지 짐승 뼈인지 현장에서는 판단이 어렵다"고 기술하였다.
해당 골각기는 현재 분실 유물에 포함.
별도로, 문건 5의 서한은 한국어 화자가 작성한 것이라면 설명하기 어려운 문법 오류와 어휘 오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조사 사용, 띄어쓰기, 단어 선택 등에서 한국어를 모어로 습득한 자의 실수 패턴과 부합하지 않는다.
문건 10의 유서에서도 동일한 특성이 관찰된다. 띄어쓰기 오류, '죽읍니다' '안영히' 등의 표기, '여자친구'라는 맥락에 맞지 않는 어휘 선택.
문건 7의 재답신에 대해서는 해석을 유보한다.
5. 1949년 사건과 가축 폐사의 관계
집단살인과 가축 집단폐사사이에 삼 일의 간격이 있다. 폐사 범위가 화북면에 한정되어 있고, 가축위생시험소의 정밀검사 결과가 남아 있지 않으며, 이후 추가 전염병 발생이 없었다는 점에서 통상적 전염병 양상과 부합하지 않는다.
6. 권고
현 시점에서 추가 현장 조사나 관계자 접촉은 권고하지 않음.
이 문건군에 관여한 인원 중 비정상적 비율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그 양상이 시기를 달리하여 반복되고 있다. 현재 우리가 수행 중인 작업의 성격이 성광일 박사가 2003년에 수행한 것과 실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추가 자료 수집은 수동적 경로에 한정할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