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서 죽는 마음
분서꾼들: 타입 그레이1
노스탤지어 자기파괴사
불사지체
객사의지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위해서
개요
지적 존재자의 감정이 기준차원의 개념적 성질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결국에는 정신적 영향력이 우리 우주의 근원에 어떤 영향을 끼침은 사실상 명백하다. 이러한 대표적인 사항은 신성시되는 대상에게서 발현되는 에너지인 아키바 방사선, 지적 존재의 생각만이 개념화하고 또 인식할 수 있는 추상적 개념의 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인 현현으로 대표된다.2 또한 인간의 감정이 명명백백하게 어떠한 골지를 뒤흔드는 경우도 드물지만 찾아볼 수 있다. 그 골지란 최소한의 세계인 자신, 개개인을 말함이다.
객사의 공포는 수천 년간 인류를 지배해 왔다. 이 공포는 장기적으로 사후에도 개개인의 의식을 지배할 수 있음이 여러 사례에서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항이 이 지구상 인류와 모든 지적 존재에게 어느 정도로 영향을 끼치는지 여전히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수없는 세계의 억제력 및 규칙과도 같이 이것이 지구상의 안전이나 안녕, 그리고 방랑자의 도서관의 항상성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우리는 모르고 있다.3
알려진 바
특징: 지성체의 섬세한 정신은 주변의 현실성과 상호작용하며 그 골조를 변화시킨다. 그리워서 죽는 마음이 그 일종이다. 고통, 걱정, 그리움은 지적 존재들의 가장 강렬한 부정적 감정,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마음으로 변화할 수 있다. 세계 각지에서 무언가, 특히 고향이나 어느 장소나 혹은 어떤 이가 그리워서 죽지도 못한 채 나타나는 존재들은 수없이 알려져 있고 유물론적으로 접근해도 우리는 그런 이들을 수십 년간 봐 왔다.
성질: 그리움에 의해 부활한 이들은 다양하다. 유령, 혹은 산송장, 심지어 허물어졌다가 다시 어둠의 형태로 부활한 신들까지 무수한 사례가 있고 그리움이라는 한 줌의 근원만을 공유한 채 우리 사이를 걷고 있었다. 이들이 부릴 수 있는 권능이나 경이의 힘은 각기 다르지만 기묘하게도 지구상 인류 문화권에 가까운 부활자들은 냉기, 즉 온도를 지속적으로 상실시키는 것과 흡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심령독립체로 대표되는 유령들이 그 예시이다.5 대부분의 유령들이 이렇듯 차가운 밤의 기운을 퍼뜨리면서, 그리움에 의해 사후에 자극되고 또 반응하여 이에 사로잡히고는 한다.6
이들의 부활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에 치우쳤기 때문에 부활자들의 제1목표는 역시 재회이다. 단절된 그 공간으로 회귀하려 하거나, 헤어진 사람을 찾으려 하거나, 혹은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지속적으로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대부분의 경우 이런 시도는 좌절된다. 아예 그 공간이나 존재에 다가서는 것이 불가능하거나7 애초에 죽음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얻어맞았기에 몸이 남에게 보이지 않거나, 걸어다니는 시신 꼴이거나, 혹은 정말 최악의 경우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러므로 설령 재회했다 하더라도 결국에 행복하게 끝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심지어 드물지만, 몇몇 경우에는 아예 그리움이라는 감정만 남고 그 대상은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사실상 말 그대로 망령이 되어 잊어버린 것을 찾아 떠돌 따름이며 그 동안 어떠한 대상과도 거의 상호작용하려 하지 않는다. 인위적 개입을 통해 그들에게 기억을 되찾아 줄 수는 있겠지만 이 역시 이들이 상호작용을 거의 무시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결코 아니며, 최악의 경우에는 모든 것에 적대적인 존재가 되어 있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이 인류 문화권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터이며, 심지어 우리들 중 일부도 사후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죽음 이후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뱀의 등 위에 새겨진 도서관의 그 어떤 기록을 보아도 확정짓지 못할 것이다. 손은 유일신 야훼의 천국과 어둠을 기어다니는 주홍왕의 낙원 무저갱의 존재를 부정할 수도 긍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8
내력 및 관계: 이러한 안타까운 사례가 수없이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그리고 방랑자들에게 실제적으로 다가오는 사례는 아마도 방랑자의 도서관을 죽어서도 잊지 못해 서성이는 수없는 존재들일 것이다. 우리가 각각의 평행세계, 도서관과 연결된 한없이 많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부활자들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히 이제는 그들의 영혼을 알아보지 못하는 길 끝에서 이러한 이들이 분명히 존재함은 명백하다. 도서관에서 나가는 긴 길, 복도, 그리고 계단 어디에서 회귀와 귀환을 원하는 죽은 신들, 유령들, 그리고 시신들이 잠들지 못한 채 있다.9 그리고 그들과 조우하는 것은 결국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접근법: 대부분의 그리움, 갈망을 겪는 이들은 맹목적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며 쉬이 모욕하거나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 이들은 붙잡힌 자들이며 부당한 비판 (사실일지라도) 또한 지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섬세한 이들이다. 만일 그들의 적대적 반응에 휩싸였을 경우 최대한 도주할 것을 권한다.
관찰 및 이야기
이러한 존재들의 기록은 무수하기 때문에 아래의 기록은 오로지 그 일부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물리학(Essophysics)는 화신(化身)에 대한 학문이다 […] 현실은 본질적 변칙의 의지에 따라 조정되며, 이들의 개념과 함께 사라지고 나타난다.
이는 옥리들의 감정 개념과 화신에 대한 인식을 알아볼 수 있는 일련의 문장이다. 우리 또한 화신적인, 감정의 현현이 일어났을 때 소생한 이들이 문제의 다가 아님을 알고는 있다. 옥리들이 얼마나 많은 개념과 그에 따른 인격체의 소생 내지 변형을 인지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만 이 문장이 결코 좋은 뜻은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어둠을 내가 응시하여 봤으나, 그 사람들은 영원히 내 말을 듣지 않을 것만 같았다. 겨울밤 나는 클럽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리움만이 가득한 심장을 지닌 그들의 앞에 서서 나는 다만 이념만을 외칠 따름이었다. 달이 뜨고 있었다.
이 문헌은 심야클럽, 동경자들 중 일원이 기록한 문헌이다.10 동경자들의 특성상 이 문헌의 작성자도 유령이겠지만 그는 분명 그리움으로 되살아난 다른 유령들과의 조우가 결코 성공적이지 않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11
신과 새는 하나이자 같은 것인데, 어둠의 자리에서 그 머리를 쉬었다. 그 피가 죽음의 강의 것과 같기에 우리들은 다섯 손을 모으고 기다릴 뿐이다. 죽음으로서 우리는 빼앗긴다. 우리의 목적은 죽음을 죽이고 그리움을 삼키는 것이다. 돌고돌아 붉은 그림자의 꽃이 소멸된다. 오직 사신의 그림자가 시간을 쫓아간다. 그러면 끝이다.
이 문장은 종교 집단 조요의 인도자의 것이다. 시들의 기본적 목적은 모시는 까마귀 신인 구오도령을 부활시키고 이를 통해 죽음을 살해하는 것이다. 이들 중 다수가 유령이기에 상술한 그리움이 동기일 것으로 강하게 의심되며, 신앙 또한 이를 이루려는 수단일 가능성이 높다.12
지나친 욕망, 지나친 증오, 지나친 권력과 같이 지나친 고통은 죄악이다. 지나친 것은 썩기 마련이고 본래의 성질을 잃고 만다. 주어진 삶 이상의 것을 바라며 무리하게 제 육(肉)을 변형시키니, 본래의 정신마저 희미해지고 곧 마라와 같은 형상이 된다. 어찌 고통이 아니랴.
낼캐 종파 중 일각인 세을가 교리 경전인 『세을유책언해』의 일부. 대부분의 낼캐 교단은, 특히 신낼캐 교단의 경우에는 감정의 억압과 필멸을 혐오한다.13 세을가는 특이한 경우로 지나친 감정과 불멸을 경계한다. 이러한 점은 죽어서도 극단적인 그리움으로 되살아나 떠도는 존재들의 대척점에 있는데, 이 종파가 역병신으로 불리우는 악령들과 오랜 기간 싸워 왔음은 참으로 흥미로운 점이다.
난 그 기대 하나로 오늘도 힘겹게 버텼는데 말이지.
방랑자 아나리마Annarima가 고향에 돌아갈 수 없음을 죽고 나서 깨달은 후.
거미는 그토록 행복했다. 그러나 영구히 잊혀진 신이므로, 신 모양의 구멍이 되어, 다시는 존재할 수 없었다.
고대의 신격인 "거미"의 신의 경우. 어떤 계기로 인하여 이름과 존재가 잊힌 거대한 이 존재 역시 죽음의 영역을 기어다니다가 결국 비실존 패턴으로서 대심연에 남아 있다. 이렇게 잊힌 고대신들은 흔하진 않지만 또 드물지도 않다.
의문점
방랑자의 도서관 너머엔 이곳 도서관을 그리워하여 떠도는 이들이 많음은 상술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할까, 아니면 영원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땅을 계속 갈망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까? 아니면 그들에게 의미 없는 짓이니 관둬버리라고 말하는 흉측한 짓거리를 계속해야 할까? 물론 그들을 들여보낸다 하더라도 사서들이 가만 두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도서관의 규칙과 손의 윤리 사이에는 점점 더 묘한 간극이 벌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만 한다. — U
그리움이란 얼마나 위험한 것일까? 우리는, 물론 옥리도 분서꾼도 그리움을 비롯한 어느 부정적 감정도 세계를 집어삼킬 위협으로 간주한 바 없다. 그러나 그리움은 증오와 더불어 부활자들을 영원한 고난으로 이끄는 치명적 감정의 일각이기도 하다. 옥리들은 감정, 심지어는 죽음 같은 광범위한 개념마저도 그 현신 즉 화신이 나타날 수 있다곤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움의 화산"이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을지? — Alg
그리움은 미련이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만, 우리가 죽어서 떠돌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죽을 때 미련을 남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까? 내 견해론 불가능해 보이지만. — mika
사소한 마지막 질문. 나는 심야클럽의 일원으로서 그리움을 좇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사람을, 장소를, 혹은 단체를 그리워한다. 심야클럽이 그리워 되살아난 이는 클럽 특성상 없고14 손이나 도서관을 좇는 이 역시 상기한 바와 같이 우리에겐 접근불가능함이 명백하다.
하지만 다른 경우로는? 이론상 옥리나 분서꾼,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집단들이 그리워서 귀향을 꿈꾸는 망자들이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옥리들도 이러한 소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옥리들은 그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 송현
뻔하지. 옥리를 그리워하는 놈이 어딨냐? — Die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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