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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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정신이 드나?

다행이 세 명 모두 정신이 들었나 보군. 다들 너무 늦게 깨어나면 어쩌나 했어. 나는 기다리는 건 질색이거든.

움직이지는 마. 손목 쓸리면 보기 안 좋으니까. 시끄러운 것도 질색이니까 소리 지르지도 말고. 혹시 몰라서 입은 막아뒀다만.

꼭 경찰이냐고 묻는 표정이군. 근데 난 경찰은 아니야. 낡은 클리셰처럼 전직 경찰도 아니고. 난 그냥 돈만 주면 뭐든지 하는 사람이지. 보통은 사람 죽이는 일이 들어오긴 한데, 동네 어르신 말동무도 하니까 이론적으론 ‘뭐든’하는 사람은 맞지.

으음, 상당히 겁에 질린 눈빛이군. 설마 이런 일이 올 줄 모르고 저질렀던 거야? 허, 참. 그만한 각오는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볼 땐 네들은 사람을 너무 만만하게 본 허풍선이거나 세상을 너무 안이하게 살아온 도련님이 아닐까 싶어.

그래서 네들이 왜 여기 지하실로 끌려와 있느냐, 어디보자… 내 물주님이 준 파일이… 20XX년 XX월 XX일, 테러리스트 3명이 한 전력 회사 건물을 통째로 식물로 바꿔버리는 테러 자행. 15명 추락사, 45명 압사, 77명 부상,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부상자 수는 줄고 사망자 수는 늘겠지. 이외에도 관리 인력 부족으로 여기저기 정전 사고가 일어나면서 추가적인 피해가 있을 거고. 뭐 질문 있어? 아니면 느낀점이라도 발표해볼 사람?

없는가보군. 아무튼 이 일 때문에 너희 셋을 원망하는 사람이 최소 137명이야. 트위터의 리트윗 수나 페이스북의 좋아요까지 따지면 배로 넘겠지. 너희를 죽여야 한다는 말은 기사 댓글만 보면 심심찮게 나올 거고. 그 중 너희를 가장 증오하시는 한 분이 나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다. 너희를 죽여달라고.

누군지 짐작이 가? 짐작이 가도 입 다물고 있어, 말 안 해줄 거니까.

근데 있잖아, 너희는 이렇게 쉽게 잡힐 정도로 초보 중의 초보인데, 의뢰인은 왜 나 같은 프로보고 처리하라고 했을까? 이 바닥이 워낙 레드오션이긴 하지만, 막 시작한 풋내기들도 너희 처리하는 건 조카 목 비틀 때만큼 쉽게 해낼텐데 말이야. 네들 깨어날 때까지 내가 곰곰이 생각을 해봤는데, 결론은 딱 하나 나오더라고. 네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어라! 어둠 속에서 구조대를 기다리던 최소 122명의 고통을 느껴보게 해라! 대충 이런 끔찍한 이유겠지. 내가 그런 쪽으론 전문이라.

그래서! 내가 너희에게 최악의 고문을 해주려고 해. 바로, 희망 고문이지! 내 특별이 너희 중 한 명을 살릴 기회를 주겠다는 말이다. 엄밀히 따지면 내 물주를 속이는 짓이지만, 나머지 두 명이 지옥의 고통과 함께 보냈다고 하면 이해해주시겠지. 아니면 그냥 속이던가.

어때? 할 거야?

바로 고개를 끄덕이다니, 은근 실망인데. 다들 다른 두 사람은 죽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 뭐 좋아. 나야 상관없지.

게임은 그냥 간단한 걸로 가져왔어. 권총 하나면 할 수 있는 게임, 러시안 룰렛이야! 산 놈은 바로 살고 죽을 놈은 바로 죽는 아주 좋은 게임이지. 하지만 너희는 움직이지 못하니까 내가 직접 관자놀이에 대고 쏴 줄 거야.

아 근데 이건 보통 총알이 아니야. 너희가 건물 벽을 식물로 만들 때 쓰던 기술을 조금 응용한 거지. 특제 바질 씨앗이 총알 안에 들어 있는데, 네들 몸 안으로 들어가면 활성화되어서 자라나기 시작해. 하지만 먼저 밑으로 살을 파고들면서 성장하지. 당장 뇌 쪽으로 파고들지 않기 때문에 속을 파먹히는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게 될 거야. 그리고 바질이 발까지 뻗어나간다면, 그 때 뇌를 향해 분출하듯이 성장해. 그러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 아니 풀꽃놀이가 펼쳐지는 거지. 네들 눈앞에서.

왜 그리 겁을 먹어? 내가 고문이라고 안했나? 고문에는 언제나 신체적인 고통이나 손실이 따라야 한다고. 시끄러운 게 싫어서 입은 막았지만 그런 걸 놓칠 수는 없지.

누구 먼저 할래? 6연발식이라 어차피 한 번은 돌아야 해.

아무도 없어? 아무도? 좋아 그러면 아무나 잡아서 시작한다.

찰칵 다음. 찰칵 다음. 찰칵 다음.

좋아, 좋아. 처음 세 발은 없을 줄 알고 빠르게 쏴 봤는데 역시 없었군. 일찍 죽어버리면 재미가 없잖아, 너희들에게 긴장감도 없고. 물주에게 할 말도 없지. 이제 다음 한 바퀴에는 무조건 한 명은 죽는 건데, 다들 속으로 유언은 생각하고 있지?

다시 너부터 간다. 그리고 눈 감아, 죽으면 눈 감겨주기 귀찮아.

무서울 땐 다들 눈 많이 감잖아…?

역시 입 막아두길 잘했어. 버둥거리는 거 보라지. 너희들도 잘 보고 있어, 둘 중 한 명의 미래니까. 풀꽃놀이 할 때까지 좀 쉬자고. 잘 보이게 의자 좀 돌려줄까?


피가 많이 튀었네. 하지만 안 닦아줄 거야.

이쯤되니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지금 너희들은 이 광경을 한 번 더 보니 그냥 죽는게 낫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그래도 여전히 살고 싶을까?

뭐, 실없는 질문이지. 난 너희가 여전히 살고 싶어 했으면 해. 그러는 놈 죽일 때가 제일 보람찬 순간이거든.

자아, 2차전을 하자. 이번에도 처음 3발은 비어있다에 너희 둘 중 한 명의 목숨을 걸게.

하나. 찰칵 둘. 찰칵 셋. 찰칵

정말 긴장되는 3초지 않아? 어허, 그만 버둥대고. 넌 앞으로 한 발 남았잖아. 넌 살 확률이 더 높아졌다고. 물론 그건, 다음 발도 불발이었을 땐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그러니까 반대로 너한텐 기회겠지, 이번 발이 불발이면 저 녀석은 50% 확률로 죽어. 물론 네가 죽을 확률도 50%이지만, 그래도 죽을 확률 50%보다 죽을 확률 100%가 더 덜 긴장되잖아? 운명을 안다는 게 얼마나 김빠지는 일인데.

찰칵 축하해, 50%네.

그럼 이 한 방으로 결정이 난다는 거겠지. 137명의 피를 어떤 사람의 피로서 덮어낼 것인가! 누가 스네어 드럼 좀 쳐주면 좋을 텐데, 어떤 소리가 나든, 결국에는 당첨자를 알리는 ‘탕’ 소리가 클라이막스일 텐데 말이야!

준비 됐어? 갈까? 하나! 둘!


어우 피가 나한테까지 튀었네. 저 녀석은 두개골 속에 뇌가 아니라 모세혈관만 들었나?

아, 그래, 너, 생각보다 안도하는 눈빛이구나. 역시 그래도 살고 싶다곤 생각했나보네.

뭐, 약속은 약속이니까. 널 죽이지는 않을게. 잘 있어.

왜? 어딜 가냐고 묻는 거야 지금? 여기 위층이 내 집이니까 내 집에 가야지. 왜 그렇게 원망스럽게 봐. 내가 살려준다고 했지, 풀어준다고 했어? 물은 매일 입을 막고 있는 천으로 공급해줄게. 음식은 입 막혀있어서 못 주지만 물만 주면 몇 주는 버티겠지. 화장실은 뭐… 내일 변기 설치한 다음에 거기에다가 묶어줄게.

에헤이, 버둥거리지 마. 엎어지면 안 일으켜 세워줄 거야.

그리고 뭐라 말하는지도 잘 안 들려. 죽고 싶으면 말해, 안녕.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네, 로렌초 씨.

네, 네,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실종 3일찬데 경찰은 코빼기도 한 보였어요.

네, 두 명은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한 명도 몇 주 내에 말라 죽을 겁니다. 아니면 미치던가요. 둘 다일수도 있겠네요.

아니죠, 제가 감사해야죠. 시체 처리하기도 쉽게 좋은 무기까지 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두 발 밖에 없어서 연극하기에도 좋았고요.

왜 이런 방식을 좋아하냐고요? 재밌잖아요. 애초에 총장님이 고통 없이 보내달라는 얘기도 안하셨지 않습니까.

알아챈 거 같냐고요? 딱히 그런 거 같진 않습니다. 총알부터 자세히 보여주지 않긴 했지만요. 보여줄 걸 그랬나요?

네, 좋습니다. 굳이 안 그래도 된다면 됐죠.

그래도 역시 사칭이려나요. 실제 점조직이면 능력을 응용했다고 했을 때 의심이라도 해볼텐데.

아, 아 그렇죠. 사칭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진 않죠. 조직 이름을 팔았다는 게 문제죠. 대충 머리만 어린 것들이 그러지 않습니까. 비밀 조직이라고만 하면 뭐라도 된 줄 알고 폼 잡으면서 조직 이름을 떠벌리고 다니는 거죠. 그게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고, 바보들.

그래도 크게 걱정 안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사단이 일어났는데도, 그 쪽 이름은 음모론 사이트에도 없네요. 양복쟁이들이 뒤처리는 잘한다니까요.

네, 네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불러주십쇼.

네, 감사합니다.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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