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요리
평가: +9+x

"이것도 한 번 드셔보세요."

"이건… 피인가?"

"네, 그렇습니다. 역시 눈썰미가 좋으시네요 선생님. 하지만 제가 장담하는데, 지금껏 드셔본 그 어떤 포도주보다 달콤하고 향기로울 겁니다."

피가 담긴 유리잔을 들고 그 내용물을 한 모금 삼켰다. 약간 피비린내가 났지만 참을 만 했다. 피비린내를 넘기고 나니 목구멍에서 달콤한 맛과 좋은 향기가 올라왔다.

"맛이 어떤가요?"

"확실히 평범한 포도주보다는 괜찮긴 하네."

"그거 다행이네요. 그럼 이것도 한 번 드셔보세요."

소스에 졸인 고기 요리였다. 채소는 없었다. 고기에 곁들인 채소 하나도 없었다. 식탁 위의 다른 요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샐러드는 커녕 입가심을 위한 절인 채소 하나 없었다. 어쩌면 저 소스에도 채소 하나 안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식탁에 올라온 요리가 전부 고기 요리 뿐이군. 작년에 만났을 땐, 자넨 분명 채식주의자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네. 예전에는 그랬죠. 참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이런 맛있는 고기는 아무리 먹고 싶어도 한 점도 못먹고, 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풀쪼가리만 먹으니 — 웩 — 정말 고역이 따로 없었죠."

'예전에는'이라. 그렇다면 지금은 아니라는 걸까?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과 하는 말로 봐서는 아예 육식주의자로 전향한 것 같았다. 뭐, 그런 개인적인 일은 나중에 따로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될 일이다. 우선은 이 친구와 동료들이 새로 개발했다는 이 새로운 친환경 고기나 맛보자.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조리된 고기를 포크로 찔러 입 안에 집어넣었다. 고기를 씹자마자 달콤한 소스와 기름진 육즙이 한가득 흘러나왔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동시에 씹는 맛도 있었다. 아까 마셨던 피는 논쟁의 여기가 있겠지만, 이 고기는 아니었다. 이건 확실히 지금껏 먹어본 어떤 고기보다도 훌륭했다.

"맛이 어떤가요?"

눈을 크게 뜨고 내 표정을 살펴보는 것으로 보아 내 반응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괜찮네. 솔직히 마음 같아선 바로 판매 허가를 내주고 싶을 정도야."



"자, 여기가 바로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연구소 본관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마법이라. 뭐, 그런 질 좋은 고기를 저렴한 값에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으니 — 그것도 친환경적으로! — 마법이라는 비유도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닐 것이다.

"참고로, 마법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니랍니다."

내 생각이라도 읽은 것인지 문을 열면서 그렇게 말했다. 분명 그 말을 듣고 무슨 질문을 하려고 했었던 것 같았지만, 문 뒤에 펼쳐진 광경은 내게 마법이라는 말을 납득시키기 충분했다.

예전에 생태계 조사를 위해 가보았던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생각났다. 그곳과 이곳의 차이점이라면 식물 대신 고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주먹만한 크기의 고기, 바위만한 크기의 고기, 뼈가 붙은 고기, 껍질이 붙은 고기, 통나무처럼 길게 뻗은 고기, 덩굴처럼 휘감겨있는 고기, 꿈틀거리는 고기, 눈알을 깜박이는 고기, 이빨이 엉망으로 난 입을 벌린 체 기다란 혀를 내밀고 있는 고기…

"아까 식사 때 제게 물어보셨죠? 채식주의자 아니었냐고. 제가 왜 채식이라는 고역을 해왔었는지, 또 왜 이제 와서야 그걸 그만두었는지, 이곳을 소개해드리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고기를 먹으려면 우선 동물을 죽여야 합니다. 소든, 돼지든, 닭이든, 물고기든, 벌레든, 고기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그 동물을 죽여야만 하죠. 죽이지 않고도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야 찾으면 있긴 하겠지만, 그것도 역시 다른 동물을 착취하고 고통을 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경을 보호하겠다 맹세했던 저는 고기같은 동물성 식품을 멀리하고 역겨운 풀쪼가리만을 먹으며 살아왔습니다."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서인지, 이 부분에서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희 연구팀은 고기를 얻을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지도, 고통을 주지도 않고 고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이죠! 몇 달 전, 이 연구소 남쪽 산의 새로이 발견된 깊숙한 동굴 속에서 저희는 옛 선조들이 남긴 여러 기록들을 찾아냈습니다. 기록들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선조들의 신화와 역사, 생활과 정치 등에 대해 적혀 있었습니다. 저희는 이 고대인들에 대해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놀라운 발견을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 그들은 스스로를 굶주린 자들이라 불렀습니다. — 초자연적인 힘을 사용해 자신들의 외형을 변형시켜 식량이나 의복같은 자원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정체모를 이유로 도시가 통째로 사라져 버리기 직전까지, 이들은 아까 말한 힘을 사용해 작지만 경이로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죽음도, 착취도, 고통도, 오염도 없는 도시를 말이죠. 우리는 그들이 남긴 기록들을 연구해 그 힘을 사용하는 방법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들이 만들었다는 그 피와 고기는…"

"네, 맞습니다. 사람 피와 고기입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저의 피와 고기죠."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약간 구역질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최대한 참았다. 사람 피와 고기를 먹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이제 육식은 윤리적, 환경적 문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이젠 고기를 얻기 위해 소를 죽일 필요도 없고, 알을 얻기 위해 닭을 착취할 필요도 없고, 간을 얻기 위해 거위에게 고통을 줄 필요도 없습니다. 얻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스스로를 변형시켜 잘라내면 되요! 농장이고 목장이고 이제 다 숲으로 돌려놓아도 됩니다! 이제 사람들은 아무 근심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고, 하고 싶은 거 하면 되는 겁니다!"

말을 하면서 흥분했는지 숨을 거칠게 쉬었다. 잠시 뒤, 숨을 가다듬고 나를 연구소 곳곳으로 안내하면서 보이는 거의 모든 것들을 설명해주었다. 동굴에서 발견했다는 기록들부터 사람을 변형시키는 방법과 모습, 고기를 채취하는 과정, 그 고기를 가공한 식품들과 사업 방안까지. 나는 묵묵히 설명들 들었다. 딱히 트집을 잡을만한 부분은 없었다. 조사도 철저했고, 연구도 철저했고, 관리도 철저했다. 이 기술을 사용화시킨다면 환경보호라는 우리의, 엔트로피를 넘어서의 목표는 거의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근심걱정 없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했지만, 정말 아무런 대가도 없을까? 과학기술이든, 마법이든,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이다.

그 도시는 왜 사라졌을까?


🈲: SCP 재단의 모든 컨텐츠는 15세 미만의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합니다.
따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사이트의 모든 콘텐츠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동일조건변경허락 3.0 라이선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