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오랜 동경의 대상

마지막으로 그 마을에서 그녀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잔해의 탑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여럿의 그림자였다. 그 당시 불과 몇 년 사이에 완전히 변해버린 마을을 뒤로 하고 내달리던 소녀는, 무문별하게 복제되고 확장되는 잔해에 깔려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KTE-261이라는 이름이 제법 익숙해졌을 시가지는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이며, 거주민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고 그 복제를 토해내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오며 불가항력적인 공포를 연출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그녀 역시 죽는 것 외에는 잔해와 구조물의 더미 속에서 빠져나올 방도는 없었다. 폐포 하나하나에 핏기 섞인 기침이 들어찰 때마다. 시야가 흐려지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때 자신의 복제를 조우했을 때부터 도망갔었어야 했을지도.

왜 이 곳에서 도망가고 싶었을까, 왜 이 세상은 힘 없는 사람한테 이다지도 불합리한 걸까. 이렇게 무력하게 죽어야 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소녀의 좁혀져가는 시야는, 이내 검붉은 궤적이 잔해들을 가로지르며 탁 트이게 된다.

궤적은 누군가의 손끝에서부터 파문이 퍼지듯 공중으로 나아가며, 경로 상에 그 색과 같은 핏빛 호를 그려낸다. 그리고는 일제히 한 점으로 모인다.

이내, 그 궤적을 따라서 소녀를 짓누르던 잔해들은 유리 내지 수정이 바닥에 산산조각나서 흩뿌려지듯 공기 속으로 쓰러져 간다.

궤적이 몇 차례 더 나타나고, 이제서야 소녀는 고개를 들어서 바깥을 본다. 불안정하게 무너져가던 건물 하나하나를 떠받들고 있는 유리질 기둥들과, 그것을 힘겹게 붙잡고 있는 사람의 형체 둘이 보였다.

비교적 키가 작고 머리카락이 긴 쪽이 얼굴이나 팔 등에 수정 같은 게 돋아난 쪽에게 소리치며 잔해를 붙잡는다.

"좀만 더 서둘러 봐! 아직 살아 있는 사람 한 명 정도는 있겠지, 그러니까 힘내."

"이것도 상당히 무리하는 거라고요. 팔이야 다시 만들어 붙이면 그만이다만… 무게 때문에 금이 가고 있단 말이에요."

"생명 반응 감지에서는 한 명 정도 더 남아 있어, 그때까지만 버텨 봐."

"아으… 알겠습니다."

한쪽이 그 많은 잔해들을 하나하나 들어올리며 힘겹게 버티는 동안, 다른 한 쪽은 바람처럼 다가가서 소녀를 잔해 틈에서 구해준다.

"괜찮아? …몰골이 말이 아니네, 별구름. 잔해 그만 붙들고 있어도 되니까 얘 좀 부축해줘."

"아, 넵."

잔해에 오랫동안 깔려 있던 탓인지, 소녀의 흉부 아래는 온통 짓눌려서 멍들어 있었고 배에서는 혈흔이 짙게 흘러나왔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호흡을 할 때마다 가슴은 불안정하게 흔들렸고 각혈을 했다. 요지는, 구조 시설과의 거리 등을 고려하여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살릴 수 있는 상태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일단 응급처치부터 해 줘. 여기 뒷처리는 내가 알아서 하고 갈 테니까. 지정된 장소까지 가면 의료팀 불러 놨으니까 올 거야."

"네. 맡기신 대로 최선을 다할게요."

별구름이라고 지칭된 형체는 소녀를 조심스럽게 업어 들고 응급처치를 한 뒤 구조가 가능한 곳까지 그녀를 부축해 간다.

"으앗, …괜찮아? 안 그래도 무너진 거에 깔려 있었는데, 또 깔리게 할 수는 없지. 안심해."

잔해가 무너질 때마다 땅에서 수정 같은 걸 뽑아내어 보호해 주는 별구름을 보며,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연다.

"언니, 안 아파요?"

"아프다니? 아, 내 팔? 괜찮아. 보다시피 난… 사람은 아니야. 그러니까 언니라고 하기에도 좀 애매하겠네."

금이 가는 팔 — 정확히는 그런 모양새로 만들어놓은 부속지 — 를 바라보며, 별구름은 그녀와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난 별구름… 아니, 최성연이야. 너는?"

"노을, 구노을이요."

"예쁜 이름이네! 저기, 부모님은 어디 계셔? 너 혼자 무섭지 않았어? 나중에 치료 잘 받으면 그때 연락해서 찾아볼 수—"

"됐어요. 저는 가짜니까요. 그리고 아니라고 해도… 제 집은 무너졌어요."

KTE-261의 특성상, 내부의 복제본을 마주치면 정체성적인 혼란을 겪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구노을처럼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고 상정한다던지.

"왜 그렇게 말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누가 정하는데?"

"제 부모님이 말했어요. 저는 길을 잃은 줄 알았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다른 제가 멀쩡히 있었고. 걔는 절 보면서 무서워하면서 소리를 쳤어요. 아마 그… 변칙성인가? 여러분들이 말하는 걸 조금 들었는데, 그것 때문이겠죠."

"저는 분명히 이 동네에서 떠돌다가 재수없게 복제된 다음 기억대로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다 덜미가 잡힌 걸 꺼에요.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겠죠."

"그래서, 도망쳤어요. 아무도 모를 곳으로 멀리."

별구름은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한숨을 쉬며 말을 이어갔다.

"있지, 난 사람이 아니라서 네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이거 하나는 말할 수 있거든?"

별구름은 구노을의 눈을 바라보며 나지막히 말한다.

"뭐가 가짜인지 자기 자신이 결정하지 않는 건 바보짓 같아."

"날 보라고. 몸은 죄다 돌덩어리지, 어설프게 사람 형체나 빚어가지고 흉내내는 꼴이잖아."

"나도 너처럼 혼자 남겨졌어. 아마 내 부모라고 할 법한 건 사람을 죽이는 괴물에 가까웠던 거 같고, 혼자 남겨진 나는 저 사람들이 나를 두고 뭐라고 할 때 졸졸 따라가서 살았지."

"…"

"너무 어두운 이야기였나? 미안해. 하지만 너도 만약에 같은 경우라면, 그리 신경쓰지 않았으면 해서 한 말이야."

"마음 한 구석에는 행여나 네가 진짜가 맞을 경우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죄책감 역시 있는 거겠지? …내가 널 위로해주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해서."

별구름은 서툴게나마 그녀를 위로해주려 애쓴다. 구노을은 상처가 멎어가는 걸 보다가 조용히 입을 연다.

"…그렇다고 하면 어쩔 건데요. 이제 나랑 아무 상관도 없을 텐데."

"상관 있어, 조장님 말로 뭐랬더라… 네가 널 너답게 만들어주는 기억이잖아. 아무리 아프고 여린 기억이라도. 네가 그걸 의미있게 여긴다면 너는 너야."

"그러니,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목 메어서 너 자신을 버리진 마."

그녀가 마음을 열 때까지 천천히 대화는 이어진다. 별구름이 메고 있는 총기를 바라보며 구노을이 물어보자. 별구름은 천천히 대답해준다.

"아,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거야."

"아까 들은 거긴 하다만… 사람을 지키는 입장인데 누군가한테 총구를 들이미는 건 죄책감 안 느끼시나요."

"그거? 내가 말이 재밌다고 했지, 단순히 그랬으면 그냥 패버리지 않았을까?"

"총은 내가 여기에 들어온 이유야, 가장 사람다운 물건을 뽑는다면 총이 아닐까 싶네."

"혹자는 누군가를 죽이기만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이 앞에서 모두는 평등하게 돼."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원망도… 이 총구 앞에서는 스러져갈 것들이지. 내가 진짜로 보이는 눈이 있는 건 아니니까. 이 총은 내 눈이나 다름없어. 내가 그런 걸 볼 수 있게 해주니까. 뭐 대부분은 욕지거리지만."

"이 앞에서 스러져가는 게 남의 마음을 꺾어서 만든 결과물이면, 나는 정당 방위로써 내 총을 망설임 없이 갈겨버릴 거야! 그게 내가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야."

"사이코패스 같은 건 둘째 치고, 정당방위는 그런 뜻이 아니에요."

"몰라! 이해했으면 된 거지 뭐."

조금 바보같이 구는 별구름을 보며 구노을은 처음으로 피식 웃는다. 구조 거점에 도달하자, 별구름은 그녀에게 인사를 건낸다.

"잘 가, 혹시 도움 필요하면 연락해. …이 번호 받았다는 건 조장님을 포함해서 비밀이야. 멋대로 이런 거 걸리면 나 혼나거든? 알았지?"

"알았어요. 도움 필요하면 연락할게요."

"잠깐만, 피해!"

별구름이 다급하게 소리를 치며 구노을을 밀쳐낸다. 별구름이 있던 자리에는 잔해만이 뒤덮혀 흙먼지만 나뒹군다. 구조 거점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이였다.

아마도 이것이, 구노을이 기억하는 별구름의 가장 오래된 모습이다. 그 모습은 조금 희미해질지언정 빛 바래지는 않는다.

"…죽은 거야…? 나 때문에?"

그러나 이게 진짜로 별구름의 마지막이였다면 그녀의 추억은 영원히 칙칙하게 잔존하고 있었을 것이다.

"짠! 죽긴 누가 죽어, 몸은 작살나긴 했지. 봐봐, 그래도 머리는 남아있잖아?"

잔해 사이로 별구름이 머리만 남은 채로 실실 웃는다. 구노을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별구름에게 버럭 소리지른다.

"예고도 없이 사람 놀래키니까 재밌어요? …진짜 죽은 줄 알았다고요."

"미안, 하지만 갑자기 무너진 걸 어떻게 해. 좀 느긋하게 쉬다가 조심히 돌아가. 알았지?"

별구름은 산산조각난 몸 대신 바닥에서 결정을 뽑아내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신체를 짜맞춘다. 구노을은 이걸 보며 멀뚱멀뚱 처다보다. 이내 발걸음을 옮긴다.

시간은 꽤나 빠르게 흘러갔고, 구노을은 별구름이 준 번호로 연락을 취해 봤다. 연락이 닿은 곳은 당연하게도 세계 오컬트 연합이였고(별구름은 자신의 수화기가 부제 중일 때 누가 받을지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서 기억 소거 처리가 된다 한들 딱히 갈 곳도 없었던 구노을은 연합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선배는 사실상 민간인을 연합에 넘긴 거나 다름없네요.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였지 아니였으면 어떻게 수습하려고 했습니까."

"내가 뭘? 조금 실수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덕분에 연합에는 들어왔잖아. 네 능력도 겸사겸사 검증하고."

"뻔뻔한 건 여전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하니까 월말 동료평가에서 점수가 낮게 나오시죠. 저라면 그렇게 안 할 겁니다."

"너는 나한테 만점을 주잖아, 그거면 된 거야."

"그러지 말고 눈치 좀 챙기십시오."

구노을은 목화가 오는 것을 보고 화두를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한다. 굳이 이러는 이유라고 한다면, 구노을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가지고 오면 조장은 그녀에게 힘들 수 있다고 만류하니, 자연스럽게 별구름이 혼나는 흐름이 되기 때문이다.

"조장님도 없는데 왜 갑자기 사무용 말투야? 뭐 찔려?"

필사적으로 시선을 주는 구노을의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고, 별구름은 목화에게 뒷덜미를 잡힌다.

"최성연 씨, 잠깐 나 좀 볼까?"

"…조장님? 언제 계셨어요?"

"하아, 이럴 줄 알았죠. 둘러대도 소용없으실 테니까 알아서 잘 하십시오. 전 갑니다."

구노을은 목화에게 불려가서 면담실로 끌려가는 별구름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쉰다. 별구름이 그녀에게 말해준 것처럼, 자신에게 중요한 기억이 있다면 그게 자신을 이루는 것이겠다만. 그 기억을 준 당사자가 저렇게 구는 걸 보면 마음이 착잡한 탓이리라.

"별구름 씨가 적어도 누군가한테 도움을 준다는 자각이 있으시면 좋을 텐데요."

"그러게 말이다. 별구름은 솔직히 눈치가 없긴 하지, 안 그래?"

구노을이 시가라도 받아볼까 하여 손을 내밀어 보지만, 거절당한다.

"나 담배 끊었어. 이제 안 피워."

"의외시네요. 아에 경청 안 하시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별구름이 끊으라고 해서. 맨날 바보같이 걱정만 하고 있으니까 어쩔 수 없지, 담배 같은 건 다 자라지 못한 애어른이나 기대는 거라나 뭐라나."

"그래도 너도 그건 알고 있잖아, 걔가 본질적으로 나쁜 건 아니야. 단지… 좀 많이 서툴 뿐이지."

구노을은 고개를 까딱하고 돌아간다. 목화는 구노을이 돌아가는 걸 보며 시가를 한 대 꺼내 피운다.

"…왜 이제는 내가 책임을 지는 위치인 걸까. 모르겠네."

구노을은 방에 혼자 앉아서 곰곰히 추억을 되세겨본다. 딱히 잘 싸우는 편은 아니였던 그녀에게 솔선수범해주던 별구름이 떠오른다. 그녀를 구해주고 부축해주던 모습도. 여느 때와 같이 그녀는 슬며시 웃고 눈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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