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53분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김수동은 멀리서 비춰오는 여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벽녘은 차가운 바람을 실어 보냈다. 마치 먼 추운 지방에서 불어온 듯한 바람이었다.
김수동 부대장과 이준서 요원은 코엑스 옥상에서 서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나는 엔진음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즉, 무호-17이 열심히 구르고 있다는 말이었다.
김수동은 마른 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부대장은 준서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는 거대한 아이패드를 들고 있었다. 커다란 안경알에 알록달록한 불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 요원, 상황 보고」
「팀 B와 팀 C는 난항입니다」 준서가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팀 B는 추적 속도가 느려, 따라다니기만 할 뿐 처치를 못 하고 있습니다. 팀 C는 접근까진 가능하였으되 두 적체를 동시에 커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바야. 민간 피해는 없나?」
「네. 청담대교 차량 통제가 조금 미흡했던 경향은 있습니다만 대기 중인 드론에 해당 차량이 전부 포착되었고,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보부에서 차량의 블랙박스 기록을 검열하고 차주를 기억 소거할 예정입니다. 또한, 강남구 내에서 전투 현장을 목격한 주민들의 휴대폰으로 밈적 인자가 저장된 메시지가 발송될 예정입니다. 벌써 기억소거제 유포 차량은 출발했습니다. 밈적 인자 유포 차량 역시 대기 중입니다.」
「아, 세탁기 파는 차?」김수동이 씨익 웃었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군」
「아까도 했던 말이지만, 21K 정보부에서 보통 애를 쓴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이준서가 덧붙였다. 「상당히 일이 수월해지겠어요.」
「서울 깍쟁이놈들이 그렇지 뭐」김수동이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여기 21K에서 업무 볼 때마다 오싹하단 말이지. 너무 빡빡해서.」
「방금 말씀을 이강수 이사관께서 들으셨다면 서운해하셨을 겁니다」
부대장이 코웃음을 쳤다. 「퍽이나. 살모사 같은 녀석, 속내를 알 수가 있어야지」
「그 말도요」
「상관없다. 그나저나, 팀 A는?」
「팀 A는ー」
교신기가 울렸다. 김수동은 조끼 주머니에서 기기를 꺼내 들었다. 팀 A 통신 채널이었다.
「팀 A, 여긴 김수동이다. 상황 보고 바란다.」
「적들이…」 성유다의 목소리였다. 「적들이 너무 많습니다. 열 척이 넘는 배가 한꺼번에… 탄천으로… 조심해라, 코우가!」
「우와앗!」 마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알아요! 아니 이게에!」
김수동은 준서를 돌아보았다.
「얘네도 별로 괜찮은 상태는 아니네」
「암요」
새벽 4시 53분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탄천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성유다는 저격 소총을 장전하며 가장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선박을 조준했다. 벌써 몇십 분째 이루어진 대치 상황에 몸도 마음도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지원 없이 두 사람뿐. 평소보다 더 빡빡한 상황인 셈이다.
그의 조준경에 한 선박이 비쳤다. 그들이 몰고 오는 배들은 거진 무진에서 훔쳐 달아난 것이었다. 따라서 선박 자체에는 별다른 변칙성이 없었다. 그 안에 실린 것들이 문제였지.
유다는 몸을 더욱 기울였다. 조준경으로, 파트너가 헤엄쳐 가는 곳으로 무언가를 겨누고 있는 SPC 조직원의 모습이 보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체였다. 분명 앤더슨 로보틱스의 무기리라.
그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유다의 총구가 불을 뿜었다. 선창에서 무언가를 던지려고 했던 SPC 조직원이 그대로 쓰러지며 물건을 놓쳤다. 이내 파동이 일더니 큰 소리와 함께 선박 전체가 압축되면서 물보라가 일었다. 안에 타고 있던 조직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굳이 알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강물에 다량의 핏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유다는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같은 팀이 된 꼬맹이는 생각보다 더 능률이 높았다. 홀로 배에 잠입해서 조직원들을 때려눕히고 있는 녀석은 벌써 3척째 전복시키고 있었다. 가히 압도적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다는 혀를 내두르며 다시금 코우가 마나가 향하는 곳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대로 마나는 엄청난 능률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시 강으로 뛰어든 그는 깊게 잠수했다. 멀리서 날아오는 총알들이 수면을 꿰뚫고 있었다. 마나는 몸을 빠르게 움직여 물속에서 돌진했다. 그리고는 위로 솟구쳐 올랐다.
여명이 마나의 몸에 반사되어 더욱 무시무시하게 번쩍였다.
그리고는 곧장 가까이 있던 선박에 낙뢰처럼 떨어져 내렸다.
선박에 타고 있던 일련의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갑판에 진동이 일면서 배가 덜컹 멈추었다. 조종사까지 뛰쳐나온 것이 분명했다.
마나는 가장 가까이서 주먹을 내지르던 여자의 복부를 강하게 치고 물 위로 메쳤다. 첨벙하는 소리 사이로 다른 조직원들이 총을 들어 올리는 동작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나는 동물적인 몸놀림으로 슬라이딩했다. 어느새 가까워진 적들의 얼굴이 일말의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마나는 그런 그들의 명치에 하나둘 정권을 내지르고, 총을 들고 있던 손을 걷어차 떨어트렸다.
「이 새끼가!」
적들은 총을 대신 줍기보단 몸으로 덤벼들었다. 마나는 날아드는 주먹을 팔로 막았다. 그리고는 다리를 걷어찼다.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자, 마나는 재빨리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권총을 빼내 옆에서 달려들던 두 번째 남자의 어깨를 쏘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은 남자의 머리를 내리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두 남자는 이내 행동 불능이 되어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앞쪽에서 주먹 모양의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왔다.
마나는 질겁해서 강으로 몸을 날렸다. 방금 그가 서 있었던 선박은 산산조각이 난 채 한 무더기의 쓰레기로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불덩이가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한 여자가 이죽대며 자신의 무기에 탄약을 재장전하고 있었다. 마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깊게 잠수했다.
유다 역시 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는 총을 재장전한 뒤 여자의 이마를 조준했다. 머리를 묶고 얼굴에 흉터가 많은 자였다. 한쪽 눈은 안대로 가려져 있었다. 자기가 해적 선장이라도 되는 양. 다른 SPC 조직원처럼 멍청하게 굴고 있지 않았다. 그 점이 가장 무서운 점이었다. 멍청하게 제 무기에 죽거나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지는 부류가 아니었다. 남은 다섯 척의 선박은 전부 그의 비호 아래 전진하고 있었다.
유다는 숨을 들이켜고 여자의 이마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발사ー
ー여자가 그를 보고 웃고 있다.
총구가 불을 뿜었다.
그리고 어깨에 타는 듯한 통증이 일어났다.
유다는 어깨를 움켜쥐고 무릎을 꿇었다. 오른쪽 어깨가 관통상을 입었다. 공격이 튕겨 나왔다. 믿기진 않았지만 정말이었다. 총알이 공중에서 방향을 바꾼 것처럼. 분명 그 여자의 짓거리일 것이다. 유다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인상을 찌푸리고 통신 채널을 열었다.
「…코우가 마나.」
「네, 네! 무슨 일임꺼?」
「피격당했다.」
「네??」
「미안하구나. 더는 엄호가 불가능할 것 같다.」 유다는 숨을 몰아쉬었다. 매순간 고통이 더해졌다. 「지원을 요청해야ー」
「안 그래도 돼예」 마나가 대뜸 대꾸했다. 「나 혼자만으로도 괜찮심더」
그리고 마나는 교신을 꺼버리고 다시 깊게 잠수했다.
그러나 더 나아갈 수는 없었다. 마나는 다시금 허공으로 치솟았다가, 날아오는 주먹 모양 탄두를 피하려고 몸을 틀었다. 그러다가 중심을 잃고 수면에 철퍽 떨어지고 말았다. 공격은 사방에서 날아왔다. 수면을 꿰뚫어 처박히는 총알과 주먹(문자 그대로)들의 향연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마나는 이를 악물고 뒤로 몸을 빼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강변에 좌초한 선박의 시체에 몸을 숨기고 몸을 추슬렀다.
적들은 우르르 다가오고 있었다. 수가 갑자기 불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큰일 났네」
새벽 4시 54분
서울특별시 청담대교
푸른 빛이 일렁이며 눈가를 간지럽혔다. 물체는 텀블러의 외양을 닮아 있었다. 뚜껑과 몸체를 연결하는 부위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재연은 텀블러의 뚜껑을 열고는, 곧장 트럭을 향해 던졌다.
곧장 트럭에 가해지던 중력의 극이 전환되었다.
그리고 트럭이 공중으로 치솟았다.
얼마간 허공을 부양하던 트럭은 빙글빙글 돌면서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거꾸로 처박혔다. 굉음이 일었다.
가딕하성과 차재연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네요.」
「그건 또 두고 봐야죠.」
처참하게 부서진 트럭에서는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재연은 속도를 늦추며 핸들을 꺾었다. 거꾸러진 트럭의 몸은 전장에서 쓰러진 병사의 시체 같았다. 눈에 보이는 적은 아직 없었다. 아직까지는.
둘은 바이크를 세우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트럭의 차체와 컨테이너는 기이하게 뒤틀려 있었다. 절대 우연으로 나타날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가 파동처럼 망가진 차량을 잠식했다. 보는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형태였다. 마치 공간이 일그러진 듯.
분명 차가 추락하면서 안에 있던 것이 망가졌으리라. 재연은 미간에 주름을 잡고 기관단총을 움켜잡았다. 내부에 타고 있었을 운전자와 조직원들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추측도 그의 머릿속에 생성되지 않았다. 의식이 그것을 거부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성이 먼저 치고 나갔다. 사격 자세를 취한 채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에서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느껴졌다. 하성은 보안대 출신이었다. 자연스레 실험 도중 이런 사태ー공간이 일그러지고 현실성이 붕괴하는ー가 벌어졌을 때 대처해 본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을 것이었다. 재연은 침을 삼켰다. 근원이 그러한 경험에 근거한다면 공포감 그 자체로도 긴장할 이유였다.
「어떤가요」
「아직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습니다」하성이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아마 공간 변이 폭탄이 터진 것 같아요. 아까 충돌로 안전장치와 스크랜턴 닻이 어긋난 거겠죠」
「…조직원들은 보입니까?」
「아뇨」 그는 잠시간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을 텐데.」
「네?」
「그 꼴을 당했다면, 이 자식들은 죽는 게 더 나을 겁니다.」
앞서 가던 하성이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저도 그 모습을 보고 싶지 않고요.」
쾅.
폭발이 일면서 그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재연은 옆으로 구르면서 하성이 당황한 얼굴로 몸을 트는 것을 보았다. 공격은 그들을 향해 퍼부어지고 있지 않았다. 재연은 옆 차선으로 날아가는 다른 폭탄을 보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러나 폭발은 다시금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일어났다.
몸이 붕 떠올랐다가 바닥에 내리꽂혔다. 재연은 인상을 찌푸리며 몽롱해진 시야와 청각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하성이 보이지 않았다.
탁 트인 공간에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튕겨 나오는 느낌이 들면서 시력이 되돌아왔다. 재연은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날아간 소총을 주워들고 사격 자세를 취했다. 저 멀리서 하성이 교전하고 있었다. 재연은 그쪽으로 다가갔다. 도와야 했다. 무슨 일인지 제대로 알 수는 없었지만 적들이 그곳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곳에 있었다.
처음에, 재연은 눈을 깜빡이며 뒤로 물러섰다. 그다음에, 재연은 총구를 들어 올렸다. 그러나 손가락은 방아쇠를 당기라는 뇌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시야에 들어온 그것의 외양은 인간 미의식의 철저한 반대자였으므로.
인간의 가장 끔찍한 악몽에 나오는 괴물이 있다면 아마 그 존재일 것이다. 재연은 이를 악물고 전진했다. 골격부터 피부까지 모든 것이 인간이면서 인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4m 정도 되어 보이는 키에 수십 배로 늘어난 목, 마구 비틀린 입에 눈은 끔찍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귀와 코는 보이지 않았고 머리카락은 밧줄처럼 길었다. 입에서 새어나오는 일련의 단어들로 아직 놈이 이성을 유지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놈은 변형되어버린 듯한 무기들을 이리저리 쏘아대고 있었다. 폭발물은 트럭이 으깨지면서 흘러나온 무기 중 하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말했잖아요. 죽는 게 더 나을 거라고.」 하성은 몸을 이리저리 피하며 총을 쏘아댔다. 그러나 총알은 놈의 몸에 닿지 않았다. 공간이 아예 일그러진 듯.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요?」
놈이 중얼대는 단어가 저 멀리서 울려 퍼지는 라디오 방송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하성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 무기로는 무리에요.」
그의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아주 길고 질척거리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여기에 붙잡아두는 수밖에는 없겠네요.」
새벽 4시 54분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산대로
몸이 뒤로 젖혀졌다. 엔진이 강하게 신음을 내지르자 차량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마다라자 마리나는 이를 악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었다. 그들의 차 옆에는 여전히 트럭 하나가 건재히 자리했다. 멀어져만 가는 또 다른 트럭을 그것이 보호하고 있었다.
오른편에서 다시 충격이 가해졌다. 외피가 찌그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맞붙은 공간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정원이 질겁하며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렇다고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다.
마다라자 요원은 운전석 가까이에 부착된 버튼에 손을 가져다 댔다. 오른편의 트럭이 다시금 접근해 오고 있었다. 완전히 옆으로 밀어붙이려는 계획인 듯했다. 어느새 그들의 차량은 중앙선 바로 옆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섬뜩한 바람 소리였다.
아직은 아니다.
곧 유턴할 수 있는 구간이 나올 것이다. 마다라자 요원은 이를 악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어느새 그들의 앞으로 온 또 다른 차량은 그곳에서 우회전하면서 코엑스로 향할 작정인 것 같았다.
놓치면 안 된다.
오른쪽 트럭이 충돌하려는 듯 다시금 멀어지기 시작했다. 마다라자 요원은 뒤를 흘낏 바라보았다. 유정헌과 유정원이 다급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다. 마다라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이윽고 마다라자 요원은 운전석 가까이에 부착해둔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실린더 안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면서 차가 가속하기 시작했다. 마다라자 요원은 신음을 흘리면서 운전대를 꽉 부여잡았다. 그리고는 왼쪽으로 꺾었다.
오른쪽에서 돌진하던 트럭이 비틀거리면서 중앙선을 넘어 왼쪽 인도를 침범했다. 막 우회전을 시도하던 다른 트럭 역시 그들의 차량이 와서 부딪히자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둘은 경쟁하듯 달리기 시작했다. 여태 그들을 집중적으로 방어하던 트럭과 달리 조심스러운 것이, 아마 무언가 지키고 싶은 것을 옮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때마침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다시 간다!」 정원의 목소리였다. 「형 그거 해, 그거!」
그게 뭐지, 라고 생각하기도 전에 거대한 마법진이 차창 사이로 보였다. 마다라자 요원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이게 뭐예요?!」
마법진은 옅은 하늘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곧이어 형상이 갈라지더니 차량을 잔뜩 감싸기 시작했다. 마다라자 요원은 숨을 들이켰지만, 운전대를 꺾지는 않았다. 트럭에서도 이 상황을 보고 있을 것이니까. 빈틈을 보이는 순간 끝이다.
마법진이 순간 회전하기 시작했다.
「요원님! 이제 저 차량에 가까이 붙어주세요!」
마다라자는 묻지 않고 그 말대로 했다. 연료는 점점 떨어져 갔다. 노스 시스템을 오래 작동시키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막을 기회도 멀어져 가는 것이다.
그가 핸들을 꺾자 차량이 급격히 좌측으로 돌진했다. 트럭은 피하지 않고 막아낼 심산인 듯했다.
SPC의 실수였다.
차와 차가 맞부딪히는 순간, 갈리는 소음이 일어났다. 마다라자 요원은 입을 벌리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애썼다. 차 전역을 뒤덮었던 마법진은 어느새 충돌면으로 이동하여 거세게 회전하고 있었다. 트럭의 조수석 문이 갈려나가면서 안에 타고 있던 자의 당황한 얼굴이 드러났다. 마다라자는 창문을 열고 권총을 몇 발 쏘았다. 트럭의 차창에 금이 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보였다. 그는 잠시 거리를 두었다가 운전대를 꺾어 다시 들이박았다.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술식을 오래 유지할 수는 없습니다.」 정헌이 지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쪽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반기적학적 방어술을 사용하면 그때는 방법이 없습니다. 빨리 처리해야 해요.」
「알겠어요. 우선 운전사부터 처리하도록 하죠.」
정헌은 고개를 끄덕이고 계속 방진을 유지하는 작용을 수행했다. 정원이 재장전을 마치자, 정헌은 술식을 종료하고 다시금 그의 사격을 돕기 위해 총열 덮개를 잡았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정헌이 휴대용 나이프로 자신의 손가락을 찌르고 난 뒤였다. 그는 그 피로 덮개에 어떤 문양을 그리고 있었다. 또 다른 기적학적 술수일 것이라고, 마다라자 요원은 생각했다.
비명을 지르던 SPC 조직원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그저 접은 종이처럼 보이는 무언가였다. 그러나 그 종이가 둘 사이의 중간에 오자마자 종이는 무지막지한 속도로 늘어나고, 또 투명해졌다. 그러더니 이내 종이는 트럭 전체를 감싸버렸다. 투명한 간극 위로 '공장'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와 동시에 트럭에서 튀는 불꽃이 소멸해버렸다. 마법진이 더는 효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마다라자 요원은 즉시 권총을 다시금 발사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통하지 않는 듯했다. 트럭의 외피는 더 부서지지 않았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다치지 않았다.
「…방어막인가…」
마다라자 요원은 다시 핸들을 꺾었다. 트럭 조수석에 앉은 남자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승리감이 떠올라 있었다. 놈은 다시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뒤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좌석 서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그는 거꾸러져 도로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마다라자 요원은 뒤를 흘낏 바라보았다. 소멸한 연하늘색 마법진 덕에 더 선명하게 보였다. 정원의 소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그의 머리를 꿰뚫은 것이었다. 정헌이 여전히 피곤한 얼굴로 빙긋 웃고 있었다. 정원 역시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뚝배기 깠다! 이거지!」
「경망스럽게 굴지 좀 마라」 정헌이 쏘아붙였다.
「새삼스레 뭘」
「…어떻게 한 거죠?」
「ISCUT에서 배운 기술이에요」 정헌이 대꾸했다. 「짧게 설명하자면 반발을 이용한 기작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저 새끼 튀려고 한다!」 정원이 끼어들었다.
트럭이 방향을 돌리고 있었다. 마다라자 요원은 다시금 핸들을 돌렸다.
— 그리고 다른 트럭, 계속 방해 공작을 펼쳐오던 트럭이 차량을 들이받았다.
거의 전복될 것처럼 휘청거렸다. 왼쪽의 창문이 깡그리 부서지고 말았다. 충격이 너무나 강했다. 마다라자 마리나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뒤를 바라보았다. 안전벨트도 하지 않은 둘이니 더 상해를 입었을 수 있었다.
「괘, 괜찮아요?」
둘 모두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의식을 잃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헌은 부러진 것인지 왼팔을 부여잡고 있었고 정원은 가슴에 심한 통증을 느끼는 듯했다. 마다라자 요원 본인 역시 성한 상태는 아니었으니.
트럭은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번에는 두 트럭이 다 덤벼들었다. 종국에는 그들의 차량이 가운데에, 두 트럭이 양옆에 압박하고 있는 상태가 되었다. 피할 수도, 방향을 바꿀 수도 없었다.
끌려가는 상태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