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10월 9일 오전

평가: +12+x

아침 7시 12분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상어다!」

아쿠아리움은 텅 비어있었다. 분명 공사 중이라고 공지가 올라간 이곳은 공식 입장과는 다르게 전혀 공사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외려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 복도를, 코우가 마나는 신이 나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여그 상어 되게 많네예!」

「그렇지. 여기가 한국에서는 제일 상어가 많을걸.」

마나의 뒤를 따라오던 하리우치 에이도가 씨익 웃으며 대꾸했다. 그의 실험 가운은 이미 마나에게 빼앗긴 상태였다. 마나가 가운을 질질 끌며 달리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진짬니꺼? 엄청나다!」

「그러엄」 하리우치가 빙긋 웃었다. 「근데 내 가운은 돌려주지 않을래?」

「싫어예」 마나가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장난기가 어린 얼굴이었다. 「타케나기 옷 다음으로 마음에 든단 말야!」

「타케야나기 선임 연구원님 말대로네. 그분도 참 힘들겠다.」 하리우치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맨날 이렇게 뺏어 다니면 어떻게 일하러 다니겠어」

「뭘 그렇게 많이 말해?」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하리우치 에이도는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조금 지친 얼굴의 가딕하성이 씨익 웃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애보고 있죠」 하리우치가 허리를 쭉 폈다. 「암만 대원이라 한들 열두 살은 열두 살이에요. 이렇게 큰 아쿠아리움에 온 건 오랜만이라는군요」

「동족을 보니 신기해하는 건가?」 하성이 농담조로 물었다.

「뭐, 그렇다기엔 집에서 키우던 개랑 닮은 애들을 보게 되어 기쁜 게 더 맞는 것 같은데요」

「하, 그럴 수도 있겠네.」

하리우치와 하성이 동시에 피식 웃었다. 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그들 주위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유영했다. 하늘의 새들과도 같은 움직임이었다.

그들은 바다 왕국 구역에서 걷고 있었다. 전투가 종결되고 모두가 모였다. 무호-17과 さ-21의 일부 인원이 한자리에 있었다. 자신들이 지켜낸 상어를 관람하면서.

「그냥 기지로 갔으면 어디가 덧납니까?」

정원이 부루퉁하게 쏘아붙였다.

「힘들어 죽겠는데 이런 거 본다고 우리가 엄청 기뻐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엄청 쌔빠지게 구르고 싶지 않으면 기뻐하는 게 좋을걸」 김수동 부대장이 대꾸했다. 「그편이 차라리 더 낫다고 여기게끔 만들기 전에.」

「말이 그렇다는 거죠」

쌍둥이는 녹초가 된 모습으로 한쪽의 벤치에 늘어져 있었다. 마다라자 마리나 역시 그 옆에 앉아 에너지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마나에게 달라붙었을 그도 지금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다른 쪽의 벤치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차재연이 하나를 다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었다. 하성이 다가가서 재연의 뺨에 아이스 커피잔을 대주었다.

「차 선배, 여기요」

「…아이고… 고마워요, 가딕 요원」

하성은 앓는 소리를 내는 재연을 보고 피식 웃었다.

일본 기지에서 업무 처리를 하기 위해 파견된 인원 몇 사람이 아쿠아리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나는 고개를 돌렸다가 안도 기노스케 용무원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얼굴에 화색을 띄었다. 안도 용무원은 본 기지에 있었을 때 친분을 쌓았던 인원으로, 마나보다 한 살 더 많았고 현재는 비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교육받고 있었다. 여기 온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안도!」

「마나 님!」

마나는 환한 얼굴로 그에게 달려갔다. 둘이는 곧장 도란도란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마다라자 요원도 몸을 일으켜 둘에게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아쿠아리움에 울려퍼지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환함과 반가움이 가득 섞여 있었다.

잠시 뒤, 김수동 부대장은 헛기침으로 모두의 시선을 불러 모았다. 요원복을 벗고 정장으로 갈아입은 그는 외려 그 차림이 더 편해 보였다. 마나는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다 말고 다른 요원들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수동의 등장으로 다들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군들, 잘 쉬고 있나?」

「퍽이나.」

부루퉁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얻어맞는 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마나는 흘끗 그쪽을 바라보았다. 정헌이 작게 욕을 하며 제 동생에게서 손을 떼어내고 있었다.

「우리는 잘해냈다.」 김수동이 일련의 사건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우린 이곳을 지켜냈고, 이 상어들이 얻어맞지 않게 해냈지. 자축해도 좋네. 적은 인원으로 이 정도를 완수한 것은 엄청난 일이니」

조촐한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우린 조금 쉬었다가 무진에 소재한 제64K기지로 내려갈 계획이다. 먼저 광양으로 간 나머지 さ-21 부대원들에 의하면, 놈들은 무진에 상륙했다가 광양을 친 것으로 보인다더군. 그들의 본거지가 무진에 있다. 그러니 가서, 끝을 보여줘야지.」

김수동은 자랑스러운 눈길로 좌중을 훑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잠깐 휴식하지. 곧 21K기지에서 차량을 보내올 것이고, 이르면 저녁에 무진으로 출발할 것이다. 그때까지 돌아다니면서 물고기 좀 보던가 하게.」

「내가 이래서 재단에 다니지. 잔뜩 일하고 나서 주어지는 아쿠아리움 투어라니.」

이번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다들 누가 말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다들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마나만이 계속 자리를 옮기고 있었다. 안도 용무원은 짧은 만남을 끝내고 아쉬운 상태로 다른 인원들과 함께 제21K기지로 떠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심 그리운 마음이 피어나는 상태에서, 또 다른 이별은 조금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마나는 어느새 해저 터널 구역으로 들어섰다. 온통 물과 물고기로 뒤덮인 터널은 자유롭게 헤엄치는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옛날, 모두가 함께 즐겁게 요동치던 바다처럼.

샌드타이거 상어 무리가 벽을 따라 헤엄쳤다.

마나는 그들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가면서 터널 벽에 손을 댔다. 수조는 생각보다 차갑지 않았다. 물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물은 한참이나 크게 진동했다. 그리운 고동이었다. 언제나 느낄 수 있었던 바다의 함성이었다. 삶을 표상하던 움직임이었다.

어딘가 적적한 마음이 심장을 두드리면서 한숨이 나왔다. 그리운 것이 기지인지 집인지, 알 수 없는 혼동 속에서 마나의 마음은 그저 흔들리기만 했다. 타케야나기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어디선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은 그 몸집을 불린다고 했다. 마나는 그제야 그 말의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고고히 유영하는 상어 무리 사이에서, 자신은 물 밖에 있고 상어들은 물 안에 있는 그 상황 자체의 고독함이 마나를 공격했다. 약간의 눈물이 눈가를 어지럽혔다.

이럴 때가 아니지. 마나는 약해진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조금만 지내면 다시 기지로 돌아갈 수 있잖아.

마나는 눈물을 닦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나서야 눈앞에서 무슨 광경이 펼쳐지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누군가가 있었다. 어둠 속에.

처음에, 그것은 아주 작은 그림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것은 분명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다리로 성큼성큼. 부대장은 이 건물에 다른 사람은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지금, 분명히 이 건물 내에 다른 사람이 있다.

마나는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인영이 흔들거리는 곳으로 거닐기 시작했다. 그 존재는 어두운 조명 탓에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마나는 점점 속도를 높였다. 어떤 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잡아서 그 정체는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존재가 비상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나는 그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는 분명 달아나려는 것이리라. 마나는 이를 악물고 따라붙었다. 의심이 점점 꼬리를 물고 자라났다. 그래, 분명히 적대 조직의 일원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왜 재단을 염탐하는 거지? 뭘 원하는 거지?

그리고 마나는 다음 순간 인상을 찌푸렸다. 염탐할 만한 가장 큰 용의자. 지금 사태로 가장 조바심을 낼 만한 조직.

상어죽빵센터.

마나가 질주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잡아야 한다.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마나는 다리를 재빠르게 놀려 속도를 냈다. 어느새 그 존재는 눈앞으로 가까이 와 있었다. 존재가 비상구 문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마나는 허공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팔이 존재의 어깨에 닿는 순간…

마나는 바닥으로 쿵 떨어졌다. 엉덩이로 떨어져 머리는 다치지 않았지만 강한 아픔이 잇따랐다. 마나는 눈물이 어린 얼굴로 펄쩍 일어섰다. 존재를 잡아야 했는데 빗나간 모양이었다. 지금이라도 뒤쫓아야 하는데…

그리고 고개를 든 마나는 다시 한 번 엉덩방아를 찧었다.

마나의 시야에는 건물의 비상계단이 아니라, 서울 시내 한복판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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