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닥 시골이라기도, 도시라기도 애매한 그런 지역이었다. 나름 번화가라 할 수 있는 곳엔 연습실이 하나 있었고, 사실상 어느 밴드의 소유물처럼 작용하고 있었다.

연습실 안엔 울룩불룩한 나무색 방음벽과, 긴 의자 몇 개, 그리고 악기와 앰프들이 놓여있었다. 사람은 다섯이 있었는데, 넷은 밴드의 멤버들이고, 하나는 관람객이었다.

다빈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작은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불렀다. 남자치고도 꽤 높은 음역대의 목소리는 얇은 선율을 만들어내 귓가에 기분 좋게 맴돌았다.

옆엔 베이스를 든 여자가 하나 있다. 가현이라는 이름의 그 여자는 몸을 조금씩 흔들며 현을 짚어나갔다.

뒤엔 빨간색 기타를 든 남자 하나와, 드럼을 빠르게 두드리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넷은 서로의 호흡을 맞추며 음악을 일궈냈다.

음악은 점점 고조됐다. 붉은 기타를 든 남자는 격렬히 몸을 휘청이며 음표를 쏘아냈다. 하이햇은 점점 더 잘게 쪼개졌고, 스네어드럼이 빠르게 울린다. 다빈은 고음을 쏟아내며 절정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솜은 의자에 쭈그려 앉아, 넋이 나간 채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옆엔 야마하의 저가 베이스가 반쯤 쓰러져 눕혀 있었다.

음악은 어느새 끝나있었다. 멤버들은 악기를 정리하고, 다솜은 여린 손으로 박수를 쳤다. 멤버들은 저마다 형 들어가세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라, 다음 주에 봐요, 같은 말을 했다. 다빈과 가현은 악기를 짊어진 채 다솜에게로 걸어왔다. 가현은 다빈에게 팔짱을 낀 채였다.

"…오늘도 꼭 붙어있네."

"그럼, 여친인데."

가현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숏컷의 머리카락, 귀에 달린 피어싱이 돋보이는 가현은 다솜을 보며 밝게 웃었다.

"너도 기타 챙겨. 이제 들어가자."

다빈이 말했다. 다솜보다 7살 더 많은 그는 다솜을 꽤나 아끼곤 했다. 요즘은 조금 덜하지만.

"나도 언젠간 언니처럼 베이스 잘 칠 거야."

다솜은 아직 길었던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말했다.

"아직 한참 멀었어 꼬맹아."

가현은 다솜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머리 하나만큼 더 큰 그녀를 다솜은 언제나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나 중2야. 어린애 아니라구."

"우리 눈엔 어린애야."

"치."

다솜은 기타를 트렁크에 실었다. 가현은 다솜이 기타를 싣는 걸 도우며, 자신의 것 또한 마저 욱여넣었다.

다빈은 운전석에 올라앉았다. 조수석은 언제나 가현의 차지다. 다솜은 뒷좌석에 옆으로 드러눕듯이 앉았다.

"똑바로 앉아야지. 안전벨트 하고."

"네 네."

다빈은 차에 시동을 건다. 비릿한 차냄새가 조금씩 올라오고, 엔진의 진동이 조금씩 느껴졌다. 차는 텅 빈 도로를 달렸다.

다빈은 운전을 하며 노래를 흥얼거렸다. 말하자면 오랜 습관이었는데, 혹은 직업병이었을 수도 있었다. 가현은 다빈의 노래에 맞춰 시트를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톡 토독, 톡톡. 다빈은 또다시 가현의 박자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나의 귀에다 속삭이진

말아요 그대가 오기 전에

알아낼게요

우리가 만나는 날엔

절대로 그치지 않을

무거운 비를 온종일 내려줘요




장마전선. 다솜이 우울하다며 참 싫어했던 그 노래. 다빈은 그 노래를 좋아했다. 가사가 참 예쁘지 않냐며, 아름다운 노래라며.

작곡도, 작사도 하던 다빈에겐 그런 점이 참 마음에 들었을 테다.

가현의 토독임은 어느새 그치고, 다빈의 노랫소리만이 차 안에 감돌게 될 때쯤, 다솜은 눈을 감고 소리에 몸을 맡긴다. 비록 노래 부르는 재주는 없는 그녀였지만, 노래를 듣는 것만은 참으로 좋아했기에, 특히 제 오빠의 노래는 더더욱.

아.

그때 이후로 오빠의 노래를 찾아 들은 적이 있던가.

노래가 흠흠 소리로 멎어들고, 다빈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낸다.

"다솜아, 다음 주에 바다 갈까? 셋이서."

"바다? 완전 좋아!"

"푸핫, 다솜이 신났네."

가현이 귀엽다는 듯 말했다.

"근데, 셋?"

"그래. 너랑 가현이랑, 나랑. 셋. 왜?"

"칫."

"다빈아 네 동생 삐졌나 봐. 어떻게 해봐."

"가현 언니는 왜 같이 가?"

"습 무슨 말을. 내 맘이야."

"치이…"

다솜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녹색 풍경이 휙휙 지나갔다.

"다음에 둘이 가자. 됐지?"

"그러시던가요…"

다솜은 그렇게 말하며, 두 눈은 여전히 창문에 고정한 채로, 등을 기댔다.


방에선 웃음소리가 들렸다. 거실을 끼고, 화장실과 마주 본 그 방은, 안엔 침대 하나와 책상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비좁았다.

다빈은 익숙하다는 듯 오선지에 음표를 적어 내려갔다. 앞의 모니터엔 작곡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언제든 원하는 악기를 꺼내어 쓸 수 있었다.

대강 흥얼거리는 듯한 노랫소리와, 그걸 침대에 엎드려 구경하는 가현. 다솜이 방에 들어왔을 때 본 것은 그런 풍경이었다.

"오빠, 작곡해?"

"그래."

다빈이 짧게 대답했다. 방금 막 사분음표를 지우던 참이었다.

"노래 읊어줘."

"흐음, 싫은데?"

"잇… 아니 왜?"

"내 맘이야."

다솜은 뾰로통한 얼굴로 가현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침대가 잠깐 들썩였다.

"다음 앨범에 낼 거야?"

"얘는 싱글로 내려고."

다빈이 답했다. 가현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이거 내면 이제 곡만 17개야. 많이도 썼네, 진짜."

"공연은 언제쯤 하시려고요."

가현이 말했다.

"그으건… 돈이 좀 더 모이면…?"

"그러시는 분이 요번 여행에 70을 박으셨을까."

"간만에 여행인데, 그 정도는 해야지. 다솜이 중학교 가고 여행 한 번도 간적 없단 말이야."

"하긴…"

가현이 침대에 드러누우며 말했다.

"에휴, 아주머니도 참."

"그 사람 집 나간 지가 언젠데."

다빈이 가현을 보며 말했다. 무덤덤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기분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미안."

"둘 다 싸우지 마."

다솜이 말했다. 다빈은 다솜의 머리에 손을 얹고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안 싸워. 에휴. 됐다. 가서 짐이나 싸."

"아직 여행 한참 남았는데 무슨."

"나가란 뜻이야."

"싫어."

다솜은 그렇게 말하곤 침대에 누웠다. 둘이 눕기엔 다소 좁았으나, 별로 불편하진 않았다.

"…오빠."

"응?"

"노래 이름, 뭐야?"

다빈은 의자를 뒤로 젖히며 고민한다. 펜을 입술에 갖다 댄 그는 눈을 감고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블루 콜로니. 그게 좋겠어."

"…구려."

"됐어. 애들이 뭘 알겠냐."

"또 애라 그러네. 나 중학생이라니깐."

"내가 보기엔 애야."

다빈이 다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솜은 묵묵히 받아주면서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달렸다. 주말치곤 다른 차들이 별로 없었고, 정체도 적었기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다빈의 핸드폰에선 음악이 흘러나왔다. 다빈은 그걸 따라 흥얼거리고, 가현은 그에 맞춰 시트를 두드린다. 다솜은 뒷좌석에서 그걸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내비게이션에선 곧 휴게소가 나온다는 음성이 들렸다. 이조차도 음악의 일부 같았다. 화면 상단의 속도는 85를 유지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일기예보는 오늘 하루 비구름 하나 없을 것이라 예견했다. 날은 적당히 더웠다.

얼마나 멋진 날에.

다만 별로인 점은,

긴 경적이 들렸다는 것이며,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는 것이고,

차가 흔들렸다는 것이며,

다솜의 망막에 마지막으로 새겨진 상이, 운전석의 문짝을 우그러뜨리며 들이받는, 거대한 트럭의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

.

.

그리고 눈을 뜬다.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랐다. 가슴이 아팠다. 갈비뼈가 부러진 듯했다. 다솜은 입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입에 고인 선혈은 비릿한 쇳맛을 혀 위로 동하게 했다.

다솜은 주위를 둘러봤다. 하늘은 푸르고, 주변은 새까맸다. 한낮의 햇살이 너무나 뜨거워,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이, 아팠다.

옆엔, 가현이 힘겨운 숨을, 조금씩 내뱉고 있다. 다솜은 가현에게로 천천히 기어갔다. 아스팔트의 거침이 살결에 쓸렸다.

"…언니. 오빠… 어딨어…?"

가현은, 아무 말 없이 숨만 내뱉는다.

"아……"

다솜은 드러눕는다. 배가 아팠다. 아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눈이 부시고, 머리는 붕 떠서—

아.

살고 싶어.

너무나도.

살고 싶었다.

다솜의 손에 노란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따스한 빛을 내며, 여름의 햇살과도 같은 온도로 손에 엉겨 붙었다.

다솜은 제 손을 올려다본다. 손을 배에다 가져다 댄다. 그리곤 팔에, 머리에, 옆구리에…

따듯하다. 빛이, 따듯했다. 손가락이 어쩐지 간지럽다고, 다솜은 느꼈다. 그와 함께 고통이 가시는 것만 같았다. 살갗이 늘어나는 기분과 함께…

다솜은 자신의 고통이 아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벽돌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넝쿨처럼, 혹은 아스팔트 위에서 머리를 내민 민들레처럼.

아.

다솜은 천천히 일어났다. 옆엔 쓰러진 가현이 보였다. 다솜은 재빨리 달려가 가현의 심장에 손을 올렸다. 다시 노란 빛무리가 모여들었고, 손가락이 떨렸다.

마법같이, 마법같이 가현의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했다.

아아.

가현은 천천히 허리를 들었다. 일어선 그녀는 꽤나 놀란 기색이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봤다.

"다빈아."

가현은 다급하게 이름을 불렀다. 이름은 멀리 가지 못하고 허공에서 산산조각 나, 길고 짧은 파장들로 흩어져 버린다.

그리고, 저 멀리에, 다빈이 있다. 운전석 문짝과 함께 나가떨어진 다빈이.

둘은 재빨리 그곳으로 달려갔다. 제발 숨이 붙어있기를, 제발 아직 살아있기를.

다빈의 옷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마치 저번 연습장에서의 기타처럼. 혹은 이미 져버린 홍매화처럼.

다빈은, 눈을 뜬 채, 숨을 쉬지 않았다.

다솜의 눈에 무언가 뭉쳤다. 뜨거웠고, 찰랑였다. 다솜은 제 오빠의 이름을 부르며, 가슴팍에 손을 얹었다. 빛무리는 모이는가 하더니 이내 흩어져 버린다.

제발 살아줘.

제발.

다솜은 흩어져 가는 빛무리들을 있는 힘껏 모았다. 흐드러지는 그 별무리들을, 노란 그 빛깔들을 모았다. 어느새 주변은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고 있었고, 그뿐이었다.

다빈은 아직 눈을 뜨고 있다.

가현은, 그런 다빈을 보며 풀썩 주저앉았다. 볼엔 물방울이 길을 트며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한 번도 짚은 적 없는 음률들이 허공으로 흘려 퍼졌다.

가현은 조용히 그 찬 몸뚱어리를 껴안았다.

꽉.

다솜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없었다.

손엔 미처 빛을 거두지 못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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