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마지막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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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옥천에 위치한 제07K기지는 2022년부터 전문화된 임시, 초도 격리 절차 수립의 본부라고 할 수 있다. 처음 확보된 변칙개체의 특성을 신속히 파악하여 임시 격리 절차를 수립한다. 모든 것이 충분히 완료되면 더 적합한 시설로 이송한다. 이런 중대한 업무의 주체는 훌륭한 경험을 지닌 초도격리개발부의 인력들에게 도맡겨진다.

여기서 문제가 있다.

당신이 보는 특수 격리 절차는 축소판이다. 표준형 인간형 개체 격리실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말은 어느 정도의 쾌적한 공간, 몇 가지의 가구,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배수구와 화장실, 잠긴 문을 포함하는 요약본과 같다. 인간형 개체의 상당수가 이 격리실에 신세를 진다. 그래서 표준형이라고 불린다.

중요한 점은 역시 모든 변칙개체가 표준형 인간형 개체 격리실에서 격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은 '급여'의 차원을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돈 이야기가 아니다. 변칙개체에게 먹이를 준다는 말이다. 다시 인간형 이야기를 하자. 대부분의 인간형 개체는 기지 급양 메뉴를 먹고 산다. 어쨌든 인간이니까. 그러나 말했듯이 표준형 인간형 격리실 속 변칙개체는 고작 한 줌이다.

재단이 괴물을 격리한다는 이미지는 몹시 유명하다. 나, 당신, 우리 인원들 모두가 기본적으로 이 이야기에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재단이 격리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괴물들인데, 사람을 잡아먹고, 격리 파기를 일으킨다. 이런 이미지가 왜 생겼을까? 간단하다. 진짜 재단이 식인 괴물을 격리하니까.

식인 괴물은 위험하고, 두렵지만, 골치 아픈 대상이다. 사실 다른 괴물들도 전부 그렇다. 변칙적 독립체가 무엇을 먹는지 무엇에 끌리는지 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초도격리개발부의 이론에 따르면 지금까지 제07K기지를 거쳐간 서른 개체 이상의 변칙적 독립체는 비변칙적 동물의 행동을 따르지 않았다. 한마디로 데이터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대한 타개책은 있다. 해결사가 바로 기지의 초도격리개발부의 격리 담당관들이다. 그 기반은 변칙개체 자체의 정보는 없을지라도 표준적으로 그 특성을 알아내는 관찰법이 전수되어 왔기 때문이다. 당연한 일이다. 재단이 격리 중인 변칙개체의 수를 감안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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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격리 절차 수립 상황에서 먹이를 검증하는 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괴물의 형태와 확보 당시 현장 인원들의 진술을 종합하여 먹이를 선택한다. 격리실 안에 여러 먹이를 두고 무엇을 선호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먹지 않는다면 몇 차례 반복한다. 이것이 적응 기간이나 경계가 아니라 정말 후보 중 어떤 것도 선호하지 않는 것이 드러나면 다른 먹이를 투입하고 지켜본다.

초도격리 수립 시에 사용하는 먹이는 표준적으로 정해져 있다. 식물성 먹이의 경우 흔히 사과와 당근, 옥수수, 건초, 감자, 샐러리, 가축 사료 등을 사용한다. 이는 흔히 초식 동물들이나 인간 같은 잡식 동물들이 선호하는 먹이이다. 만일 독립체가 다른 식물들을 선호하지 않으면 확보된 지역에서 서식하는 식물을 채취하여 이용한다.

이런 식물성 먹이들은 제07K기지 냉장실에 태산같이 쌓여 있다. 없다고 해도 순환하는 물류 시스템이 하루 한 번 (기지 인원 식사 재료를 겸하는) 채소들을 기지에 들여놓는다. 특수한 식물 역시 물류 트럭이 꾸준히 수집해 들여오거나 기지 내에서 삽목 수경 재배로 물량을 유지한다.

이렇기 때문에 초식성 독립체의 경우 격리는 보다 안정적이다.

또 다른 경우인 육식성 독립체는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육식 독립체의 먹이 연구는 조금 더 격정적이다. 하나. 격리실 내로 먹이용 동물을 집어던진다. 둘. 포식 활동을 하는지 지켜본다. 셋. 포식 활동을 한다면 만족스러운 결과이다. 이 동물 종을 먹이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하지 않는다면 다른 동물 종으로 다시 시도한다. 만약 여력이 있다면 보다 값싸고 안정적인 먹이용 동물도 사용할 수 있을지 관찰한다.

아마 하나~둘 사이에 피 튀기는 공격이 있을 것이다. 신입 격리 담당관들이 착각하기 쉬운 것은 공격이 사냥은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한 공격일지도 모른다. 영역에 들어오거나 자신에게 가까워진 대상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해 죽이는 것이거나 단순히 그냥 죽이는 경우도 많다. 예시를 들어 보자. 조각상은 격리실 안에 들어와 눈을 감은 동물은 뭐든 죽인다. 그렇다고 조각상이 뭔가를 먹지는 않는다.

이러므로 분명히 개체가 먹이를 사냥해 먹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 격리실 속의 개체들은 죽을 때까지 그 음식만 먹을 테니까. 먹이가 충분한 영양을 지니고 있는지도 고려 요소다. 특정한 경우에는 칼슘, 비타민, 손톱 따위의 다양한 영양보충물질을 더해서 주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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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로 사용되는 동물은 다양하다. 독립체들의 특성이 다를수록 먹이도 다르기 마련이다. 예컨대 수생 동물에게는 어류가 적합할 것이다. 날아다니는 거미는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사냥할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다면 냉장과 해동을 통해 보존하기 쉬운 동물의 고기가 사용된다. 생닭, 돼지나 소, 냉동 쥐, 고등어나 청어와 같은 생선 등이 대표적 예시이다. 비변칙적 동물들을 수용하는 다양한 동물원 등에서도 사용하는 먹이들이다.

이런 도살된 후의 먹이들은 사실 식물과 다름없다. 제07K기지 냉장실에 태산같이 쌓여 있다. 없다고 해도 순환하는 물류 시스템이 하루 한 번 (기지 인원 식사 재료를 겸하는) 고기들을 기지에 들여놓는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독립체들이 살아 있는 동물들을 선호한다. 단순히 변칙성이 있지만 원래 그런 특성을 지닌 동물들(거미, 사마귀, 양서류, 어류)인 경우도 있다. 또 독립체 자체가 그런 특성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살아 있는 채로 먹이로 이용되는 동물의 예시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갈색거저리(Tenebrio molitor): 밀웜이라고 불리는 딱정벌레의 유충. 귀뚜라미, 누에, 메뚜기 등과 같이 대표적인 먹이용 곤충이다. 소형 육식 변칙개체에게 용이한 먹이로서 관리가 쉽다. 갈색거저리 자체는 영양성분이 타 곤충에 비해서는 부족하므로 적절히 다른 곤충이나 영양보충제를 섞어 급여하는 것이 이롭다.
  • 제브라다니오 (Danio rerio): 소형 민물고기로서 산란 유도는 어렵지만 기르기 쉬워 대량 사육이 용이하다. 대개 담수에 서식하는 소형 육식 변칙개체의 먹이로 이용된다. 조금 더 큰 변칙개체에게는 양식한 미꾸라지, 붕어나 잉어를 먹이로 사용한다. 대형 해양생물은 청어 등을 공급한다.
  • 닭 (Gallus gallus domesticus): 소형 변칙개체는 병아리를, 좀 더 큰 독립체는 성체 닭을 선호한다. 병아리는 활동성이 크고 소리가 요란하여 쉽게 변칙개체의 먹이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나 닭의 경우는 깃털 때문에 격리실 청소를 필연적으로 유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단점이다. 달걀 자체도 좋은 먹이원이나 상술한 냉장 먹이로 간주된다.
  • 생쥐 (Mus musculus): 번식이 쉬운 소형 설치류. 새끼부터 성체까지 몹시 다양한 변칙개체의 먹이로서 이용된다. 가장 대표적인 먹이이므로 다수의 생쥐를 냉동 상태로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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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궁쥐 (Rattus norvegicus): 중형 설치류로 생쥐보다 더 크다. 즉 대상 변칙개체 역시 좀 더 크거나 적대적인 경우가 많다. 번식이 쉬워 생쥐처럼 냉동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많다.
  • 토끼 (Oryctolagus cuniculus): 번식이 쉽고 효율적이며 다양한 크기의 변칙개체의 먹이가 된다.
  • 돼지 (Sus scrofa domesticus): 설치류에 비해 번식이 어렵지만, 대형 먹이기 때문에 거대한 변칙개체에게 공급된다. 물론 도살 후 손질하여 냉장이나 냉장 상태로 익히는 것이 주 관리법이다.

이러한 살아 있는 동물들 대부분은 유사시 즉시 수급할 수 있도록 제07K기지 내에서 사육된다. 제07K기지 내에는 돼지 6마리가 존재한다. 돼지는 기적학에 사용할 혈액 추출 용도로 길러지다가 먹이로도 사용된다. 토끼는 수십 마리가 있다. 시궁쥐나 생쥐는 수백은 넘을 것이다. 설치류는 분리하여 실험용으로 이용하는 개체와 먹이로 사용하는 개체로 나눈다. 제브라다니오는 대형 선반에 놓인 수조에서 관리한다. 거저리도 그렇다. 대형 수조들에서 사육한다.

마지막 예외까지 생각해 보자. 어떤 독립체가 지금까지 공급한 어떤 동식물성 먹이도 먹지 않는다면? 이때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확보에 참여한 현장 인원들의 증언, 확보된 개체와 연관된 종교 민담, 이전에 이 개체를 관리했거나 만들었던 요주의 단체나 인물 측 자료를 조사하고 돌아보면서 정보를 파악한다. 변칙은 정상적이지 않기 때문에 변칙이므로, 가능한 한 열린 사고를 지녀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유리만을 먹는 동물, 철을 먹는 동물, 그리고 나비만 먹는 동물과 돼지 종양만 먹는 동물. 알아낼 수 있다면 기지의 물류 라인을 통해서 즉각 공급할 수 있다. 재단이라는 거대 조직의 편리함이다. 반대로 아예 다른 경우도 있다. 먹이로 사용하려는 동물이 이런 식으로는 구해지지 않는 경우이다. 앞선 먹이용 동물처럼 정리해 보자.

  • 사람 (Homo sapiens sapiens): 사람과 사람속의 현생 비변칙 인류. 생애주기와 세대주기가 길고 확보는 D계급 등에 의존한다. SCP-076-2 등의 다양한 독립체들이 이 종에게만 적대성을 보이거나 먹이로서 사냥하고 섭취한다. 일부 개체들은 특정한 연령, 종교, 국적의 인간만을 특이적으로 잡아먹는다. 사람은 비변칙적 종 중 유일하게 평균 이상으로 지적이며, 수가 많고, 정상성 유지 정책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로 인해 인간의 사망은 일정 수준 이상의 생명약동에너지를 방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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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뭐가 문제냐고?

D계급은 한정된 자산이고 게다가 적다. 또 필연적으로 윤리적 문제에 부딪힌다. 만약에 하루에 한 명 분량의 사람만 먹는 괴물이 있다고 하자. 그럼 D계급을 하루에 한 명 소모해야 할 위기에 맞닥드린다. 말이 되지 않는다. D계급은 각국 중범죄자와, 붙잡힌 요주의 인물 일부와, 기타 등등을 총합하지만 그래도 수는 적다. 그러므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괴물을 굶긴다. 최소한의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사람만을 공급한다.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서 인간 소모를 줄인다. 예를 들어 생각해보자. 제07K기지에는 초도격리에 쓰는 자원들이 가득한 거대한 냉장고가 몇 있다. 그 중 하나는 특수한 것이다. 혈액팩을 가득 담고 있다. 이 혈액은 각지 재단 인원에게 헌혈받은 것이다. 기적술부터 다에바의 출현까지 혈액은 변칙적 현상에 무척이나 중요한 물질이다. 다른 신체부위도 기증받을 수만 있다면 한정된 오렌지 점프슈트 입은 사람들을 덜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지속가능격리개발과 이야기는 마음 속에만 담아 둬라. 진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니까.

신체를 기증받을 수 있을까? 어떤 경우에는. 제07K기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몇몇 인원들은 각서를 작성한다. 장기기증 및 신체기증 각서라고 하는데, 만일 임무 중 사망할 경우 자신의 시신을 재단에게 양도하는 것이다. 시신은 다용도로 이용된다. 재단 의무부 카데바부터 방금 말했던 괴물의 먹이까지. 일 년에 얼마나 많은 인원이 사망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일정한 수의 인원이 항상 이 각서에 서명하고, 꾸준히 시신 자산이 공급된다는 것이다.

죽은 사람도 먹는 독립체의 먹이 공급이 해결되고 나면, 물론 살아 있는 인간만 먹는 육식동물의 먹이 수급도 원활히 작동하게 된다. 이로서 어느 정도의 해결책이 생겼다. 물론 재단이 확보하는 시신이 이것 뿐만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 장기기증 및 신체기증 각서는 가장 윤리적인 방법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듣겠는가?



당신의 앞에 서류 하나가 놓인다.

당신의 뒷목이 서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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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 2024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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