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에서 우유를 마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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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재단에도 식재료 공급을 해야 한단 말이지. 사람이 물과 빵으로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지역마다 꼭 필요한 특수한 음식도 있고 아님 그냥 영양학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도 있고. 근데 또 식품이라는 건 유통기한이 있단 말이야? 그 기간을 넘기면 또 전부 버려야 돼요. 그래서 보통은 처음부터 그럴 일이 없게 만들긴 하지. 웬만하면 유통 공급 인프라가 잘 깔려 있는 도시권에 기지를 세워놓고 그게 안 되면 액체식을 피한다던가.

내가 액체 얘기했나? 안 했지? 이게 진짜 짜증 나는 게 대충 쌓아놓고 보관하는 것부터가 안 되니까 공이 엄청 들어간단 말이야. 술? 술은 그래도 괜찮아. 마시는 사람만 마시고 미친 것처럼 마시는 인간은 애초에 재단에서 오래 일을 못하거든. 그래도 물은 구하기 쉬우니까 정수시설만 잘 만들면 돼. 진짜 문제는 우유야. 액체고, 쉽게 썩는데, 아무 때나 나오지도 않고. 게다가 재단에 있는 모두가 우유를 마시고 싶어 하거든.

전 세계에서 우유 안 마시는 나라 알고 있어? 나도 몰라. 재단 기지마다 꼭 우유를 내놓으라고 난리야. 버터, 생크림, 분유 이런 걸 아무리 공급해도 결국에는 우유를 달라고 어찌나 화내는지. 그럼 우리더러 어쩌라고? 재단 외부 업체와 계약하는 것도 안 돼, 재단 위장 기업이 지부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 안에 프랑스에서 생산된 우유를 모리셔스로 보낼 방법이 뭐가 있겠어? 고작 그걸 하자고 군용수송기를 부를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도 지속가능한 범지구적 유통망을 구축해야 했던 거야. 그래, 그런 게 진작에 있었으면 기아 퇴치는 순식간에 이루어졌겠지.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당연히 초상 기술을 들여올 수밖에 없는 거잖아.

어쨌든 이 장치는 오직 우유 공급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거야. 다른 거에는 안 넣는 게 계약의 조건이야. 그래서 그냥 생우유를 부어야 돼. 포장된 채로 넣었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모르고,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아. 그러면 이제 위생의 문제가 생기거든. 어쨌든 우유가 기계에 닿으면 영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거란 사실은 뻔하잖아.

그래서 기계를 포장해 놓는 거지. 그러니까…. 우유에 항상 뒤덮여 있어야 하는 거야. 이론상으로는.

물론 그건 완전 낭비라서 그러고 있지는 않아.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결하냐 하면은, 이 부분부터가 초상공학의 재밌는 점인데, 초상공학도 공학이라서 이론만 잘 맞는다면 필요한 부품을 동일하게 기능하는 다른 부품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거야. 이 경우에는 우리가 대체할 부품이 우유인 거지.

처음에는 관념론적 절차로 처리했어. 쉽게 말해서 우유인 척하는 부적을 프린팅한 비닐을 씌워서 처리했다는 거야. 문제는 이 비닐이라는 게 소모품이란 말이지. 게다가 우유로 만드는 부적은 대량생산도 못 해. 그야 어떤 놈이 우유 마시고 싶다고 머리에 부적을 붙이고 다니겠어. 그래서 방법이 좀 바꾸려고 여러 가지가 시도되고 있어.

스리포틀랜즈 지부에서는 사르킥 육공예사 불러다가 반영구적인 코팅 처리를 한다고 하더라고. 뭐 기계에 뒤덮힌 유지방을 다루기에는 좀 찜찜하긴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보기 싫은 정도는 아니래. 어쨌든 원성분은 그냥 분유 같은 거라서.

우리 지부에서는 간단한 관료재해를 사용하고 있어. 쉽게 말해서 우유라고 써져 있으면 모두가 그게 우유라고 인식한다는 거야. 좀 복잡하긴 하지만 이게 우유인지 흰 페인트인지 '실수'하는 절차를 한번 수립하기만 하면 우유의 범위가 '우유일 가능성을 가진 물질'으로까지 확장이 되는 거야. 계약서에서는 현상학에 대한 언급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인간의 인식 한계상 우유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물질이라면…. 그것도 우유로 판정이 되는 거지!

그럼 진짜 우유와 그렇지 않은 걸 어떻게 구분하냐고?

말했잖아. 우리도 모르는 게 핵심이라고. 게다가 이러면 비용이 절반은 절감돼.




제임스 연구원은 카페테리아의 온장고 속에 포장되어 있는 우유팩을 꺼냈다. 여기에서 커피믹스를 섞어서 달달하게 마시는 것이 제임스 연구원만의 행복이었다. 재단의 식재료는 위장 기업에 의해서 운영되는 사실상 직영이라는 사실이 그를 안심하게 만들었다.

어쨌거나 재단에서 뭔가 잘못될 일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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