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잡담골] 집착 심한 여친 어떡하냐?
작성자: ㅇㅇ(18202) | 날짜: ████/██/██ |

여친이 계정 삭제해서 유동으로 올림
여친 집착이 너무 심한데 좀 도와주셈 지금 며칠째 갇혀있다 컴퓨터도 겨우 사정사정해서 받아냄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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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바람아너가보여준이세상은 (44040)
사정사정? ㅗㅜㅑ
████/██/██
못참겠다로빈 (78199)
시즌 제173173173회 연애 호소 골붕이 입골 ㅋㅋ
████/██/██
뇌리위에에이스 (82028)
그래서 여친이 있으시겠다?
████/██/██
해원읍, 어느 반지하 골방 안
"이게 뭘까?"
"어, 그, 그… 그게, 그게 말이야, 그러니깐, 내가, 내가 자기가 싫다는 건 아니고.."
"자기."
"어, 어?"
"내가 자기 살리려고 노력 많이 한 거 알잖아."
"…"
"자기가 도망가서 어긋난 방정식 다시 바로 만드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몇번이나 말하지 않았었나?"
"……"
"다른 형제분들은 그거 가만 놔두자고 했을 때 나만 열심히 고쳤어. 안 고치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자기도 심령공학쪽 공부 했다며."
"난 당신이 사이빈줄 알았지.. 구오니 뭐니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다시."
"?"
"다시 말해보라고."
"구.. 구오니 뭐니 하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그거 말고. 전에."
"..사이비?"
"…"
"사.. 사이비가 아니라 종교. 응."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당신?"
"아."
"내가 자기한테 그것 밖에 안돼? 당신?"
"나는 자기 챙겨주려고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데, 자기는 날 '당신'으로 밖에 안 생각한다는 거야?"
"…"
그때, 요란스럽게 뒤에서 알람 소리가 울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디 도망가지 말고 여기 있어야 해. 아까 얘기는 돌아와서 얘기하자."
곧, 어두운 방 안이 잠시 작은 틈새에서 새어 나온 옅은 빛에 색을 얻는다.
하지만 저 바깥 세계가 벌리는 밝은 아가리가 닫히자, 다시 흑백의 세계로 돌아온다.
오직 색이 남아 있는 곳은 모니터 주변 뿐이다.
███시 ████면, 민혁의 집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전.
민혁은 전 날 있었던 일을 잊기 위함이라는 명분으로, 평소와 같이 자연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잡담골, 플소골을 켠 채로, 전에 하루 동안이나 문 앞에서 기다리며 겨우겨우 구매한 <누나와 나의 은비학>을 플레이하기 위해 전용 기기에 칩을 삽입한 후, 잠시 의자에 기대어 어제의 일을 다시 떠올린다.
분명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했다.
민혁은 음료 취향부터 취미, 관심있는 분야나 학문. 모든 게 자신과 잘 맞는다고, 하늘이 점찍어준 배필이라는 게 이런거구나- 생각하며, 자신의 인생에 드디어 봄이 오는 줄로만 알았다.
심지어는 그런 미녀가 음침한 사람들이나 할 법한 전공인 심령학을 한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상황에, 초상 공안이 자신을 잡으려고 드디어 덫을 놓은 건가 생각도 했었다. 물론 정작 민혁은 강령학 쪽이긴 했지만, 비슷하니 상관없는거 아닐까.
그게 딱 어제까지의 일이다.
민혁의 불쌍한 두뇌는 행복한 데이트가 될 줄로만 알았던 공부방 탐방이 일그러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갑작스러운 심령 실습 제의에 어찌저찌 참가했던 민혁은, 그들이 이상한 얘기를 하며 의식을 중단할 때 쯤 무언가 잘못된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쎄한 기분이 들어 나가려 하니 험악해진 분위기에 민혁은 겨우 도망쳐 나왔고, 그렇게 자신의 첫 데이트가 사실은 데이트가 아니었다는 것에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쁘긴 이뻤지..'
물론 민혁은 아직도 그녀를 회상하며, 며칠 간의 봄날을 꾸역꾸역 소화시키고 있었다. 민혁이 그녀와의 두번째 만남에서 받았던 작은 종이가 그 난춘의 증거가 되어줄 것이다.
민혁은 작은 종이(종이인지도 모르겠지만)를 만지작거리며 게임이 실행되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톡
민혁의 휴대폰은 오랫동안 울리지 않았던 소리를 오랜만에 다시 내었다.
민혁은 그녀가 미안하다고 보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썩은 동앗줄을 다시 붙들어 잡았다.
[플러그TCG샾인천점] 이민혁 고객님, 축하드립니다!
세상에.
금빛 동앗줄을 잡은 민혁은 어제의 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사이비 썸녀와 한정판 카드. 민혁의 전전두엽은 후자를 좀 더 크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민혁은 그렇게 아무런 의심 없이 열림 버튼을 눌렀고, 곧이어 초인종 소리가 들리더니,
쾅
문은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남은 민혁의 기억의 편린 속에는, 오직 찰랑이는 긴 금발과 어태치먼트-U라고 적힌 작업복을 입은 사람- 그리고 이상한 교령방정식의 역류가 자신에게 돌진하는 이상한 광경만이 남아있었다.
해원읍, 어느 반지하 골방 안,
현재 시점에서 이 주 전
민혁은 기억의 불연속점 이후로 느껴지는 아무런 이미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공간에서 떠다니는 느낌만이 남아 있을 무렵, 이런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눈을 떴다.
"깼어요?"
흠칫.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다.
민혁은 이 친숙함이 어디서 유래하는지 깊은 고뇌의 과정을 통해 미지의 방정식의 해를 도출하려 했으나, 기억이 흐릿해진 그의 뇌는 방정식이 불능이라고 판단을 내려버린 후였다.
"누구.. 시죠?"
"고작 닷새 정도 안 봤다고 사람을 잊어버리기라도 하나요?"
그제서야 눈이 뜨인다.
찰랑이는 긴 금발과 조각같은 얼굴, 전에 민혁이 골목길에 올린 어휘를 빌리자면, 소위 말하는 '게브라급 미모'의 한 여인이 눈 앞에서 허리에 손을 짚은 채로 민혁을 내려다보고 있다.
민혁은 눈 앞의 인물의 정체를 깨닫고는, 대뇌에 흘러 들어오는 당혹스러움과 괴리감을 막지 못해 쓰러진다.
그로부터 10분 후, 다시 눈을 뜬 민혁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전)썸녀와 마주하나,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만도 한 게, 민혁의 인생에는 이번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제외하곤 이성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다. 소위 말하는 남중-남고-공대 테크트리에 더해, 초상 세계의 일원으로써 근무하시던 부모님 때문에, 정상 세계에서는 생각조차도 못하는 '남초'를 나와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결국 눈 앞의 저 사람이 민혁의 인생에서의 유일한 이성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신당한 후의 민혁이 PTSD를 겪을 만큼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것은 그리 놀랍진 않았다.
"얘기 할 준비는 됐나요?"
눈 앞의 썸녀가 말했다. 민혁은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듬성듬성 사라져버린 기억은 이를 막아 섰다.
"지, 지금, 지금 상황 파악이 안, 안되는데."
민혁은 더듬더듬 자신의 뇌리를 짚어가며 기어코 한 마디를 꺼내는 데에 성공했다.
"내가 누군지는 기억 나죠?"
민혁은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색한 침묵이 감도는 사이, 민혁은 마치 피식자의 본능인냥, 눈알을 되록되록 굴려 자신의 주변 환경을 파악한다. 조금 더 어둡다는 점만 빼면 자신의 방과 거의 비슷한 것을 알아차린 민혁은 그나마의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때, 민혁 씨가 도망가고 나서,"
썸녀가 말했다.
"교령방정식이 다 일그러져서 거기 있던 형제자매분들이 모두 다쳤어요. 어떤 작업이었는지는 잘 아실 건데."
민혁은 그때 진행하던 교령 의식을 다시 떠올린다. 중간에 갑자기 사이비 종교를 들이밀어 중단되기 전까지 그래도 그럭저럭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던 어제의 의식은, 죽은 자들과의 물리적 소통을 가능케하는 몹시 어려운 의식이었다. 행여나 일그러져 잘못되기라도 하는 날엔 참여한 영체가 폭주해 참여 인원을 모두 몰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의식이기도 했고.
"그래도 중, 중간에 중단 시켰잖아요."
민혁이 말했다.
그러다 문득, 민혁은 자신도 강령학 쪽을 전공한 나름 고급 인재인데, 하는 생각이 들고, 이유 없는 자신감으로 반박에 나선다.
"오히려 중간에 중지하는 게 더 위험, 위험한 거 아녜요?"
자신감이 붙은 민혁은 분위기를 탄 듯 더 세게 나간다.
"그쪽이 구오니 사십오니 뭐 그런 얘기만 안 했어도 성공적으로 마쳤을 거 아-"
민혁은 말하다 고개를 들었다가, 매서운 눈매에 명치를 베어 안에 있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간 듯 쪼그라든다.
"그래서요?"
"아니, 그러니깐,"
"네?"
"아뇨.. 죄송하다고요."
민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하아. 아무튼, 그 뒤로 윗 선에서 민혁씨 처리하자는 말 나왔던 건 알고 있어요?"
민혁은 전에 데이트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에 민혁은 잔뜩 눌려 마치 겨울철 호떡 장수의 호떡 누르개로 눌린듯 납작해졌다. 분명 시은 씨 저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하며 민혁은 한탄한다.
"어?"
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시은의 이름을 떠올린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효과음처럼 튀어나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했다.
"뭐, 할 말 있어요?"
"헙."
민혁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감싸 쥔다. 하지만 민혁의 손은 머리를 뚫고 다시 뒷통수로 나온다.
"어라?"
"하여튼, 다시 말하자면, 위에서 민혁씨 처리하자고, 계속 주장했는데, 제가 겨우겨우 설득했다고요."
시은의 말이 (말 그대로) 민혁의 이마를 통과하여 뒷통수로 나온다. 영적 간섭에 의해서 회절된 음파는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민혁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시은의 말은 귓잔등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기, 민혁 씨. 집중 안하고 있죠?"
시은이 민혁의 시야에 눈을 맞추려 쪼그려 앉는다.
민혁은 이제서야 처음에 느낀 괴리감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민혁은, 자신이 모태 솔로인 이유를 오직 자신의 인생에서만 찾던 사람이었다. 샤워하고 난 후 항상 거치는 의식과 같은 절차에선 자신의 평균 이상 신장을 본 다음엔 자신의 신체적 조건은 나름 괜찮다고 자부하던, 거품 좀 끼얹어서 꽤 괜찮은 외모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 민혁을 내려다보던 시은의 얼굴은 그렇게 민혁의 인지체계에 금을 낼 수 밖에 없었다.
"거, 거울, 거울 어딨어요?"
아닐거야, 부정하며 민혁은 급히 자신의 얼굴을 확인하려 했다.
한숨을 푹 내쉰 시은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민혁을 향해 사진을 찍은 후 민혁을 향해 화면을 보여준다.
허공에 흐릿하게 왜곡된 공간을 본 민혁은 깨달았다. 자신이 영체가 되었다는 것을.
자신이 대학 전공서적에서나 보던 영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민혁은 학술적 호기심이 동할 법도 했지만, 누구나 처음 죽으면 그런 호기심은 공포 앞에 무릎 꿇을 것이었다.
"있다가 말해주려 했는데."
"이게..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그러니까, 민혁 씨가 중단된 방정식을 제대로 마무리 안 했잖아요?"
시은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곤란한 얼굴을 보인다.
"내 딴에는 종결해를 집어 넣긴 했는데, 민혁씨가 없는 채로 넣은 해가 완전할 순 없잖아요?"
"…"
"..하아, 미안해요. 역변환 특수값도 고려했어야 하는데."
민혁은 어벙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영체인 상태인 민혁의 상태였기에, 물리적인 표정이라기보단 좀 더 심오한, 이데아적인 원론을 표출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지금 존재는 하잖아요?"
"이, 이렇게 존재하는건 의미 없는거 알잖아요."
민혁의 깊은 어딘가에서 울분이 북받쳐 올랐다.
"존재만 하면 뭐해. 뭘 만지지도 먹지도 못하는데."
민혁은 죽기 전에 스쳐 지나갔어야 할 주마등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남자, 남자, 남자. 끝 없이 동성으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한스럽기만 하다. 전공서에서 나온 대로라면 이는 곧 한이 되어 심령 독립체로서의 민혁의 주된 행동 동기가 될 것이기도 했다.
"그래도 완전 심령체는 아니에요. 설명할 때 들으셨다면 구오…"
민혁은 한스러운 심령 독립체가 되긴 싫었다. 예전에 전공 공부를 하며, 행여나 자신이 죽는다면 최대한 fun하고 cool하며 sexy까지 한 그런 멋진 심령 독립체가 되겠다고 마음 먹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모쏠 총각 귀신이라니.
"그래서, 사자와 생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런 거라구요. 이번에 개발한 최신 기술인데 제가 사정사정해서-"
"그럼 뭐해요!"
민혁이 소리쳤다.
"..평생 모쏠로 살다가 죽게 생겼는데, 아니 죽었는데."
"…"
"시은 씨는 인생에 단 한 번도 이성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심정을 알기나 해요?"
"……"
"그러다가 이번엔 모쏠 탈출하나 싶었는데, 진짜 이게 뭐냐고요. 전 시은 씨 진짜 좋아했다고요. 내 인생에도 봄이 오나 싶었는데, 배신 당한 기분을 알기나 하냐고요."
"민혁 씨."
"이제는 총각 귀신인 채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계속 존재해야 한다니, 책임져요 이거.."
민혁은 주저앉는다. 그의 눈엔 영적-눈물이 흘러내려 약 3.01×1023개의 영적-물 입자가 바닥에 떨어지는 듯 했다.
방 안에는 흐느끼는 민혁의 소리만 나고 있었다. 그러다, 침묵을 깨는 한 소리가 있었다.
"..질게요."
민혁은 계속 훌쩍이다, 정적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음에 고개를 쳐들었다.
"책임.. 진다고요."
"?"
민혁은 시은의 말이 아리송하기만 하다.
"아니, 애초에 말하려 했는데, 계속 딴 얘기만 하니까.."
"..내가 왜 민혁씨 살려 달라고 사정 했는지는 알아요?"
잇달은 시은의 말에 혼란한 민혁의 영적-대뇌는 작동을 멈추려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 모르겠어요?"
민혁의 영적-대뇌는 드디어 작동을 멈췄다. 고백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모쏠에겐, 고백이란 인지의 괴리로 인식체계를 파괴하는 음성 BLIT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민혁은 영적-면상이 씨뻘개진 채로 말을 힘겹게 꺼낸다.
"어, 어, 네?"
"사귀자고요. 내가 민혁씨 인생 책임져줄테니, 우리 같이 살자고."
그렇게 민혁의 오랜 소원이 성취되었다. 민혁은 그렇게 총각 귀신은 아니게 되었고, 뭐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더랬다.
해원읍, 어느 반지하 골방 안,
현재 시점에서 며칠 전.
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그렇기에 재밌는게 인생이랬다던가. 민혁의 행복한 동거 생활은 성격 차이로 산산이 부서졌다.
물론, 성격 차이라 하면 취향이나 그런 사소한 걸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면에선 그 둘은 창조주가 맺어준 듯, 초상공안(혹은, 확격보재단)의 히에말 등급인 듯 완벽한 한 쌍이었다.
문제는 시은의 독특한 사랑법에 있었다.
시은의 집착적인 사랑은 민혁의 어리숙한 연애 센스와 맞물려, 조금씩 마찰과 함께 둘 사이의 톱니를 서서히 마모시키고 있었다.
가령, 심령체로의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 밖에 나가는 연습을 하는 민혁에게 하루 72통의 전화를 걸지 않나, 전화기를 잃어버려 1시간 동안 연락을 받지 못한 민혁을 찾기 위해 외부 회사를 고용해 찾아오질 않나, 여동생과 연락하려 하니 자신 말고 다른 여자와 얘기하는 거냐며 울질 않나. 민혁은 연애를 한 번도 안해봤다지만 이런 관계가 정상이 아님은 어느정도 알 수 있었다.
민혁 또한 팔짱을 끼고 같이 다니자는 시은을 어색하다며 따로 다니거나, 자기 전 잘자라고 인사도 안하는 등 서로가 서로의 비정상적인 모습을 한껏 드러낸 탓에, 결국 두 사람은 조금 서먹서먹해지고 말았다.
그러다,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터지고 말았다.
먹여 살릴 입이 하나 더 늘어 돈이 부족해진 시은은 일자리를 구하느라 자신이 다니던 종교 단체 모임에 잠시 못 나가게 됐던 게 큰 원인이었다. 심령체로써의 벽 투과 능력을 연습하기 위해 잠시 밖에 나간 민혁은 갑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사자에 가까워짐을 본능적으로 느꼈으나, 너무나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채 들고 있던 휴대폰을 떨어뜨릴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휴대폰과 상호작용을 전혀 하지 못하던 민혁은 시은에게서 온 전화를 6통이나 부재 중 통화란으로 이동 시켜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심야클럽의 심령 독립체나 다른 변칙 단체의 심령 독립체, 하다 못해 일반적인 심령 독립체였더라도 능숙하게 자신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물리적 간섭을 시도하거나 전자기적인 조작으로 전화를 받을 수 있었겠지만, 생자와 사자의 경계에 걸쳐있던 민혁은 심령 독립체로써의 활동 방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은은 알바로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도중에 뛰쳐나가게 되었고, 전화를 안 받는 민혁을 찾아 무려 두 시간 동안 맨발로 직접 돌아다닌 것이다.
결국 공원에서 민혁을 발견한 시은은, 위협을 느낀 것인지 민혁의 거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버렸고, 결국 방 안에 가두는 수 밖에 없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르렀다. 보통의 심령 독립체라면 절대 막을 수 없었겠지만 조요의 기술력을 통해 어느정도 정체성이 교란된 민혁이었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해원읍, 어느 반지하 골방 안,
다시 현재.
"시발.."
시은이 나간 사이 다시 잡담골을 켜 댓글을 확인한 민혁은 욕이 입 안에서 매직패스를 끊은 것 마냥 저절로 나왔다. 민혁이 지금껏 봐온 골붕이들의 슈퍼 컴퓨터급 집단지성은 어디가고 이딴 쓰레기 댓글만 달려있단 말인가. 물론 민혁도 이런 댓글을 달고 다니긴 했지만, 막상 자신이 당사자가 되니 이런 상황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민혁은 시은의 외모부터 취향, 집착을 제외한 성격 등 모든 면이 정말 좋았지만, 이러한 감금된 삶(또는 죽음. 생사 중간체에겐 어떤 어휘가 적절할 지 모르겠다)을 영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딸깍
딸깍 딸깍
하염없이 댓글 새로 고침 버튼을 누르던 민혁은 골목길 계정으로 개인 메세지 요청이 온 것을 알았다. 분명 로그인 된 계정은 없을 건데.
민혁은 잠시 놀랐지만, 뒤이어 자신이 발 담고 있는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떠올리곤 이상할 거 없지, 하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걸려온 개인 메세지 요청을 수락했다.
占쌩싱귐귤됐왔늡심받아왔니시왔늡싣왔늡심받아왔달앵억옙 님이 입장하였습니다.
PrSr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누구세요.?
어떻게 유동인데 메세지 요청 보내신거에요?
안녕하십니까.
이민혁 씨, 맞으시죠?
네 맞는데요
제 이름은 어떻게 아신거죠
그리고 유동한테 메세지 요청은 어떻게 보냈냐니까요
반갑습니다. 올리신 글 보고 연락드립니다.
연애 조언은 힘들지만 다른 건 해결 해드릴 수 있는데, 어떠십니까?
궁금하긴 한데
일단 대답 먼저 해주시죠
초면에 실례했군요. 죄송합니다.
저는 해커입니다. 초상해커.
컴퓨터를 추적하고 개인 메세지를 보내는 건 일도 아니죠.
아 네
못 믿으시는 것 같군요.
잠시 옆에 있는 조명을 봐주시겠습니까?
시발 뭐야
어떻게한거에요
모스 부호로 "Hazel"입니다.
이젠 믿으시겠습니까?
쩐다
믿으시는 눈치니 그럼 다시 얘기로 넘어가보죠.
민혁 씨, 저는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사람입니다.
올리신 글을 보고 민혁 씨 관련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삭제된 몇몇 게시물이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민혁 씨, 영체로의 삶은 어떠십니까?
헐 어떻게 알았어요
예측이 맞았군요. 다행입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도우신다는거에요
위치 추적이라도 해주시나
원하신다면 현재 계신 위치를 알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려는 해결책은, 조금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겁니다.
Cnvrt.exe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댓가로 드릴게 없는데
공짜로 주시는건가요?
보상은 딱히 바라지 않습니다.
헐
감사합니다
PrSr님이 퇴장하였습니다.
이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이 분포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깨달은 민혁은 모니터 앞에서 멀뚱히 종료된 대화방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상대방이 이끄는 대화대로 주제가 움직이더니, 질문에 대한 대답은 듣지도 못하고 얼렁뚱땅 대화가 끝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민혁은 PrSr라는 작자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그렇게까지 궁금하지는 않았다.
며칠동안 쭉 감금되어 있던 민혁은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비대해져, 미쓰꼬시의 옥상에서 뛰어내리고픈 이상한 열망이 들 정도로 집 안에 갇혀있기 싫었기에, PrSr의 이상한 프로그램이 해결책이 되던지 안 되던지 일단 시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PrSr에 대한 궁금증을 압도했던 것이다.
다운로드는 30분이 걸렸다. 인터넷이 느린 환경이 아님에도(핑 테스트를 해봤다.) 이렇게까지 오래 걸린다는 건 이 프로그램이 공갈로 만든 무언가는 아니라는 것임을 간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이었다.
30분 후, 프로그램을 실행한 민혁은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서울, 제21K기지,
현재랑 비슷한 시간대.
딸깍
탁 탁 탁 탁
하는 것도 없이 컴퓨터나 들여다 보는 예산 뤼팡 부서로 항상 오해받는, 기지 속 판도라로 불리우는 여기는 세상의 정상성을 수호하는 위대한 집단인 SCP 재단, 그 중 한반도의 변칙 개체를 담당하는 한국 지역 사령부, 그 중 서울에 위치한 제21K기지, 그 중 인터넷 폐인들을 감시하고 처단하며 여론을 조작하고 이상한 글을 관리자 대신 삭제해주는 WoI 연구과다.
뚜두둑-
"크아악-"
그리고 저기서 허리를 뒤로 젖히다 허리 디스크가 나갈 뻔한 흑발의 여성은 심시영이라고 불리우는 인원이다. 예전엔 잘 나가는 유망한 연구원이었으나 WoI과에 전입해온 이후 심연의 골붕 독립체와 구별하기 힘들어져 버린, 불운의 인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핳핳하-!"
의자를 돌리고는,
"시영아, 이거 봤냐?"
라고 하는 저 인간은, 무려 기동특무부대 소속(기동특무부대에 들어가기 위해선 온갖 테스트를 거쳐야 했기에, 무려라는 부사가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정하나가 얘기했었다.)의 정하나 요원이다.
"뭔데?"
"지금 핫골 가봐. 진짜 웃긴 거 올라와 있어."
"잠시만."
"…"
"…진짜 이게 재밌다고?"
"왜? 웃기지 않아?"
심시영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안쓰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친구를 바라본다.
"하나야, 진짜 미안하지만, 너 지금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왜? 나 지금 완전 멀쩡한데?"
"일단 너 거울을 좀 봐. 너 눈이 무슨 판다처럼 검게 변했잖아."
정하나는 거울을 봤다. 비록 다크 서클이 내려와 있지만, 퇴폐미의 범주 안에 충분히 들 만한 정도로 밖에 안 내려와 있지 않나?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시영은 하나의 얼굴이 다크 서클로 뒤덮혀 머드 팩을 한 것처럼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괜찮다고 하는 데서, 하나의 상태가 괜찮지 않음을 추론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이었다.
"그거 말고도."
"응?"
" '"그" 재단 재정 근황.txt' 이게 정말로 웃긴 거야?"
그렇다.
정하나가 심시영에게 보여주려 한 글은 그저 정보 글에 불과했으나, 반복된 심리 노동은 사람의 웃음 역치 경계선을 서사층을 뚫고 내려가야 겨우 만날 수 있을 만큼 낮추는 엄청난 부작용이 있었기에, 정하나는 이러한 글에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봐 봐. 여기 그래프 보이잖아? 이거 위에 윤곽선만 따라서 보면 기영이가 손 드는 것처럼 생겼다니까?"
"드디어 맛이 갔구나."
심시영은 모니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정하나를 바라보며, 복리후생부는 이런 애 안 잡아가고 뭐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비록 복리후생부가 변칙적인 집단이고, 위험한 건 맞지만 명목 상으로는 재단 인원을 위하지 않던가?
한숨을 내쉰 심시영은 커피를 다시 한 모금 마신 후, 향을 음미하고는 컨트롤 키와 F5키를 멋진 솜씨로 동시에 타탁, 하고 눌렀다.
[모기골] 광릉왕모기 걔 그래서 언제 돌아옴? [2] (+2)
[잡담골] 집에가고싶은데집에갈돈이없다 [7] (+3)
[세균골] 쌍구균 되게 맛있어보이는데 [1] (-1)
[해결골] 그리마 [9] (+4)
음, 별 문제 없다. 언제나 같은 폐인들의 폐인글.
심시영은 다시 커피 한 모금을 마신 후, 향을 음미하며 새로고침 단축키를 다시 타탁, 눌렀다.
[수능골] 어둠의 대치 스킬 마지막 동작재해 어케함 [4] (-8)
[식물골] 가지 [2] (-41)
[수능골] 스킬 유포하지 말라고 좀 [7] (+21)
[잡담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0] (-3)
전혀 감이 안 잡히는 내용의 제목을 가진 글도 좀 있지만, 대부분 추천수와 조합해서 보면 무얼지 대충 예상이 간다. 심시영은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향을 음미한 후 타탁, 누른다.
[핫골] 도배뭔데 [37] (+52)
[잡담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1] (-8)
[모기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0] (-5)
[세균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0] (-13)
뭔가 이상하다. 커피, 향, 타탁.
[컴공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7] (-17)
[잡담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1] (-11)
[해골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4] (-6)
[유머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3] (-9)
이런.
어이가 없는 시영은 커피를 든 잔을 놓친다. 강화된 자기 잔이라 깨질 일은 없었지만, 그 안에 있는 액체는 강화되지 않았음을 항상 명시해야 했다.
"아 뜨거!"
척수 반사가 큰 건을 하나 했다. 뜨거움에 놀란 시영의 중추신경계는 강제로 몸을 일으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결국 앞에 놓인 데스크탑의 본체의 무게중심을 지지면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이는 곧 본체의 해체주의적 기조를 이룩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와장창-!
"뭐, 뭐야, 뭔 일이야?"
곤히 자던 하나는 비가역적인 손상에서 기인한 파괴적인 소리에 의해 깨고 말았다.
"지금 골목길 확인해 봐. 쓰읍- 뜨거."
"일단 화장실 가서 커피 쏟은 거 먼저 씻고 와."
"응."
시영이 자신의 옷 위에 스며든 뜨거운 각성제를 씻으려고 밖으로 나간다. 하나는 시영이 무엇을 보고 이렇게까지 놀랐는지 확인하려 골목길에 들어갔다.
[고양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2] (-3)
[잡담골] 시발 그만하라고 [4] (0)
[분탕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38] (+22)
[세균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3] (-10)
응, 개판이네.
하나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최상단의 게시글을 열람한다.
[뒷골목]
[세균골] 나는 경기도 안양의 이민혁이다
작성자: 이민혁(00000) | 날짜: ████/██/██ |

S̵̵̶̶̴̴̷̢̡̨̨̧̧͎̝̯̭̙̮̙͖͖̖̯̰͙̹̲͙̗̹̞̖̖̭̠͎̭̘͖͖̩͕̱͉͎̪͕͉̳͍̯͍̯͉͓̮̘̱̞͉̬͚̮̲͍͍̲̦̗̻͇̲͚̬̬̻͗͊͌̅̿͆͋̇̊̀́͆̆͑̐̽́̐̽̋͐̾̂͂̇͆̒̋̋̅̂͐̀̅̀͆̊̃͗̾͋̌́̍͒̈́̑̚͘̚͘̚̚͝͝͠͝͡ͅW̴̵̷̴̧̢̨̢̧̡̡̪͓̯̘̤̟̯͓̣̲̼͔̩̮̜̜̟̞̖̯̞̙̮͍͙̯̲̰̙̰̹͖̝̠̮̹̼͎̺̜̹͙̥͇̮̟͚̘͕̥͙̓̉͊͂̎̐̆̋͆̒̆̇̉̅̄̇͐̀̄̔̑͆͗͊̌̆͒̾͐͋͆̐̇̾̌́͊̑͛͑͂͂̆͒̚̚̚͘̚͘͢͢͞͡Y̴̵̵̷̢̨̡̨̨̡̧̛̻͈̻͖̘͙͓̣̦̲̭̹̼̻̱̱̠͇̫̮̙̘̠̗̪̜͖̘͔̳̙͉̘̖͙̝̟̣̦̙͓̻͛̾͊͌̎̅̎̔́̆̉̿̐͋͌͊̈̈̅́̿̇̾̈́͊̀̓͌̎̾̀͗͛̍̀̀̒̋̈́́̄̋́̌͋̀͐͘͘͘̕͜͜͟͟͢͜͢͜͠͠͞͠͞͡͡͠͠g̷̵̷̷̶̨̧̨̨̧̡̧̛̛̖̫̤͖̺̬̤̠̠͇̖̻̘̝̳͕͇͈͍̫̥̙͖̯͖͚͚̜̖͎̦̤̳̫̗̳͈͍̤͚̥͕̺̩̺̤͗̓̎͋̔̇̅͑̏͗́̈́́͐̓̀̋̓̀̉̒̿̂͆͋͑̓̈́̍̇̀̏͆̍̋̒̅̑̄͑́̇̍̋̀̚̕̕͜͢͜͟͟͜͞͡͞͡͡͞͠ͅͅͅć̴̵̸̴̷̴̴̡̡̢̡̧̨̧̧̧̧̧̡̢̛͕͍̯̙̹͓̮͉̟̫̖̞͙͉̟̗̲̞̻̝̻̠̼̜̘̰̝̝͖̳̲̭̻͙̻͙̦͈̱̱͙̦͉̮͙̪͉̗͙͔̯͖̾͒͐͊͆̍̄̈́̓͐̉̂́͋̋̅̃̽̒̾̿̈̄̒̀̌̃̎͌͋͋͒̽̀̈̌̑̇́̿̈́̈̽̆̉̍͗̓́̎͑̑̂͐̓͘͟͟͡͝͞͠͞ͅ2̴̵̵̧̢̡̢̧̡̨̛̛̻̝̣̝͍͕͈̣̦̭͓̰̳̟̻̱̜̥̥͔͎̝̣̖̫͇̲͖͖͙̗̟̫͙͔̘̝͈̹͉͓̼̙̰̱̞̣̘̱̥̐̽͛́̓̌̓͊̂̓́͌̔̽͆̿̈́̆̉̄́̀͗̃͛̍̂́̽͛͊̇̾̀̽̂̑͆́̍͐̏̃͊̉́̊̃́̉͂̒̉̋̀̔̀͑̿̕͘̚͟͜͟͟͡͞͡͝͞ͅͅ9̵̸̴̵̨̡̨̢̛̛̬̩͍̼̟̜̭̤̺̦̞̠͇̬͇͕̼̜̬̦̞̜̞̺̦͇̜̪̺̟̘̠̰̪̥̯͙͔͕̣͓̘̲͓̩͍͔͕̄̐̓̃͋͊̒͌̿̀̑̅̅̅̂̂̀̀̎̀̇̈́͊̄͌́̎̀̄̍̆͋͛͗̆̐̃̅́̿̓̋͋̽͂̍͑͐͆́̀̂̒̄͊̎́̄͊͊̇͂̋̈́̋̅͑̚̚͢͜͢͢͜͠͝͠͝͠ͅͅţ̴̴̶̶̵̵̢̨̨̨̨̡̰̜̟̗̭͍̪̭̻͕̩͉̦̱̭̥͖̙̬̮̩̜̜̠̳͉͍̰͉̩̤̦̤̯̼̤̗̲͚̟͈͎͚̗̃̒͆́͑̀̄̈̊̈͑͗̆̾̓͑̓̑̏̎̓̀̏̐̑̇̆͒̅̾̂̐̾̽̀̄̄̒̈́͌͑͒̅̀͗̕͜͟͠͝Z̷̵̶̷̶̷̨̢̨̢̡̢̡͕̪̖̗̩͕͓̮͕̹̳̦̰̬̥̣͕͍̮͚̤̱͇̺̻͚̫̻̝̺͍̦̣̱̘͍̯͈̯̠̹͓̫͙͉̳̠̠̏̍̄̓̿̓͛͆̉̅̐͋̓̔̑̇̌́̓̈́͆͆̓͊͂̾͆̇́̾̈́̒͒͊̿͑̏̊̓͑̍̂̂̑͂̋̊̾͂͂̇̑̂̚̕͘͘͟͟͢͟͝͠͝͝͠͞͠W̵̸̴̷̴̶̧̢̢̡̡̛̟̝̯͎̬̥͙̗̣̺͓̟̳̳͈̺̥̞̯̜̯̰͎͈͙̘̲͍̳̺̯̫͓̝͖̟̝̹̘͚̘͔͔̲̘͈̝̟̮̫̗̺̩͖̪͗̌̍̂̋̊̋̅̉̌̽̈́̓̿̿̐̽̀̉̊͊͑̑̏͋̎̅́̾̓̓͊̀̐͐͗̈́͐̑̓̏͒̾̉͌̒͒͛̓͛̂̒͗̍̅̑̕̚͘͜͢͟͜͞͡͞͠͝͠͠ͅͅͅͅ9̸̴̶̶̶̨̨̢̡̡̢̨̢͙͕͎̦̼̯̘̯̝̪̥̗̜̣̝̲̙͖̻̜̱͉̖̬̠͚̼͍̖̼͇̝̖͙̣͕̤̜̣͕̜͕̼̟͇͍͓͖͙̉̍̌̇̇͑͒͗̋̽̐̑̌͋͋͆͋̅͐͒̓̈́̂̿̀̇͌̒̋̐̇͌́́͒͆́̔͗̒̆̉̃̊̈́̓̉̎́̋̅̔̓̓́͘̕͘͘͘͟͢͢͢͜͞͝ͅư̵̶̶̶̸̧̡̢̡̧̡̡̛̹̫̼͎̲̳̮̞͈͕̻̱̱͔̹̗͈̤̹̦̙̠͚̞̜͍̼͚̹̜̼̺͓̱͎͕̯͖̙̪̱͈͍͉͍̜̳͇̪̼̞̣̭̦̰̓͒̒͌́̔͗̈́͛̃͊̀͐̀́͌̔͊̈́̉̿̇̊́̂́̋̈́͑͑̐̈́̓̔̍́̇́̀̇͑͛̋̍̐̏̈́̈͊̔̐̕̚̚͘͘̕͜͟͟͟͡͞͠͞͝͡͠͝ͅZ̸̸̸̸̵̵̡̧̢̢̛͓̙̮͚̳̗͕̞̗͓̱͕̼̱̣̹̲̫͙̩̪̲̖̞͕̝̝̹̭̝̺͍͔͚͈̪̜̳͔͖͈̹̖̘̙̈́͗̓̆͂́͗͊̓̾͆̂̃́͂͛̈̽̋̂̋̊̏̈́̒̊̎̇̌̅̍́̀̓̏̆͒̋̄̐͂͆̓̅̋̾͊̽̚͘̚͢͜͝͝͠͡͠͝͞͡͞ͅS̵̵̸̶̸̨̡̛̛̛̼͍̯͙̣̝̹̭͓̝̺̫͉̮̲̳̲͇̤͍̞͉̬̦̹̬͕̩̗̲͇̦̥̩̬̹̠͇̗̤͙͙͖̪͕̗̙̑́͒̈̌̌̋̿͋̒̉͐̾̾́̑̈́͐̔͒̔̅̑̈́̍͆̓̑́̈́̾̅̌̊̀̉́̊͑̃̀̚͘͢͜͡͞͠͝͡͠͠ͅB̸̷̵̶̸̧̧̛̛̗̲̟̟̲̬̦͙̖͓̹̮̙͓͚̺͙̜̭̭͇͎͙̰͔̝̜̺̝͉͍͓̪̠̭̟̱̣͍͎̜̗͖̼̳͍͈̙͐́̒̂̆̉̓͌̌͛̉͑̀͌͌̃̏͒́̀̍͐͌̊͐̆̎̈́͑͆̐̏̀̒̄̏̾̊̀̑̏̾̆̇̓̅͛̆̀͘̕̚̕̚͢͟͜͟͠͞͝͡͝͝͞͠͞͞ͅͅͅͅk̸̸̴̵̢̢̢̤͕̖͍̦̲̰̟̩̭̰̖͕̦̳͈̹̻̟͕͕̰̟̱̞̖͕̘͕͉̺͓̤̫͓̻͎̜͖̼̜̯̝̫̤̰̞̽͐̂͐̐̿̈́́̈́̓̓̎̑̓̅̈͆̇͛͌̃͛̄̓̓̓̔̈̉̍̊̆̐̍̒̆̋̈́̑̀̇̓̓̑̾͋̑̾̍͌̚̕̕͟͟͜͝͝͝͝͡ͅͅZ̸̶̶̴̴̴̡̧̧̧̢̢̛̬̲͉̥͕͔̰̦̣͚̺̪̲̱̣̗͓͚̪̞̟̺̫̼̭͉͎̻͕͔͓̬͖̝͈͎̤̖̬̼͓̋̓͌́̔̈́͐̅͗̊̐̀̅̈͒̃͊̏͒͊̂͊̇̋̽̿̈́͂͐́̒̈̌̍͐̓̍͌̉̏̋͒̆̕͟͟͜͜͢͞͝͠ͅW̸̴̷̸̸̷̢̧̨̨̡̨̛̛̛̦͎̰̲̺͉̙̠͙͉̰̲̪͉̣̬̲͎͉̱͚̰̗̘͙̦̖͙̪̫̼̫̭͇̖̙͍̭̘̱̱̫͇̣͉̩̜͈̗̐̒̑̓̒̈́̽͒̉̃̄̑̀̿͑͂͐̉͛̉̈̈́̒̎̍̓̐͐̈͊̀́͗̇̒̑͒̓͆̔̀̀́̾̓̎͆̎͆͒̃̃̊̕̕̚̚͜͟͜͢͠͡͝͞͠͞͝͡ͅN̴̴̷̵̸̢̢̡̛̛̬̘̪̦̣̥̰̥̗͎̱͎̠̟̠̩̬̤͖̲͕͚̙̱͇͕̫̼̺̫̳͕͇̺̱͕̮̹͇̖̲̣͚̺̰̪̣̩̠͔̠̜̂̎͌͗̏̽͋̋̇̃͋͊̒̆̈́͗͂̄͒̀̓̓͆̆́̂̒̓̽͑͐̿̋͋͒̽̎̂̀̆͛̔͗͑̿́̋̒̑̚̕̕͘̚̕̕̕̚͜͢͟͜͝͠͝͠͡͡v̸̵̸̡̧̢̡̨̧̛̛̻͈̺̪̦͕̠͚̙̯͕̣̘͈̮͍͍̠̣̣͖̮͚͇̣̪̮̤̫̰̭̪̫̥̯̬̟̭͕͔͖͈̲̗̦͎̼̯̲̜̘̈̀͋̀̾͋͐̒͌̅̾͒̅́̈́͋̓̎́͒͛͂͊͛̉̄̒̐͒͐̏̑͂͐̎̊͒̏̎̿́̀͒́̏̓̓͆͌͗̐̓̀̌̿̊͋͘̕͘͟͢͜͢͝͡͝͡͠ͅZ̴̵̴̶̶̨̡̡̡̡̧̡̡̧̨̪̟̘͓̗̻̳̺̼̟̹̠̲͕͖͚̩͇̣̲̬̣̲̪̫͎̱͈͇̩͖̙̦̼̰̞͎̘̝̪̪͍͎̝͌͛̀̒̎́̀͑̊́̏̄̌͛͂̿̔̊̾͆̈́͐̌̒̐̿̿̑̌̀̋̌͒́͐͆̆̓̾̋̇͋̅͒͗̍̓̿͂̽̆̈́̂͘͘͘͜͟͜͢͠͠͝͞ͅͅǴ̴̵̶̸̵̨̧̨̛̤͕̜̼͔̠͙̺̫͍͖̲̻͍̳̦̬͓͖͖̖̩͙͔̜̮̺̪͈̖̮̟͔̳̲̠̹̪̜̩̞͓̥͖͖̜̻̟̩̼͍̝͇̟̦̘͌͂̌̉̋̑̿̏̄͌̐́͗̀̾̉̔̈́̾̀̄̄̈́̄̄̌͒̂̏̓̿͐̀̄̄̋͗̑̀̈́͑̽̌̃̐͘̚̕̚̚͘̕͘͜͟͢͜͞͡͝͝͡͠ͅV̷̴̴̵̨̧̡̡̛̛͈̹̞̗͕̠͎̰̥̲̞̫͇̩̼͔̥̗͙̥͖̦̩͚̺͎̘̦̻̬̺̲̞̤̙̩̞̼̞͎̺̬̳̣͕̬̥̅̍́̾̃̆̐͛̓͒͂̊̔̌̿̈́́͂̿͆͗͒͌͌̏̏̊͂̋̍̽̄̔̊̀͗̈́̈̿͑̑͊̊̄̕͘̚̚̕͜͜͜͢͝͝͡͠͞͝͞ͅẑ̴̵̶̸̴̡̢̳̥̞͉̲͓̖͍̞͎̹̝͕̬̖̱̠̤̲͉̣̣̙̭̭̘͉̣̯̪̝̯̫͕͈͓̭̩̰̪̲̞̙̦̣͍̤̣̰̃̂̾̊̒̇̿̅̋̿̒̈̆̓̿̌͌͑̑͌̋̄̈̌̓̈̀͑̓̎̔̏̽̐̾͂̃̓̈͆̿̀͒́͌͊̏͋͊͆̓̎̾̾͗͑̅̾̉̚̚͘͘͘̕͢͢͟͟͝͡͠͠͞͠Į̶̸̶̵̢̧̛͇̟͕̠͎̯̩̬̦̰̱̲͖͓̟̣̳̜̥̖͓̮͇͍̠̻̳͎̠̞̜͓̮̟̬̲͚̩̼̦̰̫̞̬̮̺̻̞̿͐͊̀͑̔̄̀̃̉͑̓͐̀͒͒̓̊̈́̈́̄̅̀̊̐̔̎̃̾̌͊̂́̏̃̀͆̎̾̆̈́̀́̑͋̌̿̽̔̕̚͟͢͢͟͟͞ͅͅH̶̵̵̸̢̡̢̡̧̢̨̖͍̳͚̭̙̠͇̟̯̥͉̫̺̟̘̗̭͍̙͎͕͈̞͎̘͎̬̬͚̤͍̠̱͇͇̞͚̟̏̎́̉͂͗̃͗̂͐́̌̊̑͊̽͒̄̈́̆̔̄̓̓̐̊̿̀̽̐̂̆̍̿̓̾̊͋́̎̋̄́͘̕͜͡͠͠͠͠͞R̴̸̴̶̷̵̡̨̨̡̧̛̛̛̛̻̻̭̠͍͎̫͉̦͈̫̤̘͖̯̜͚̙͈̮͙͇̣͉̭̩̫͓̯̟̤̻͍͙̙̼̭̺̲̪͔̙͍͙̻̰͍̲͉̜̻̞̻̱͐̃̐̈̎͗͗́̑̓͛̽̋̿̏̉͛̀͒̔̓͒͆͊̃͛̔̎͒̿͌̇͑́̈́̈̀̑̽̀̔͂̊̅̂͘̚̚͘̕͜͟͜͢͝͝͞͡͠͝͞ͅǫ̷̵̸̸̨̢̨̢̨̢̡̪̣͖̪͎̭̩̜̖̠̮̺͔̤̻̼̥̹̙͖̜̳͎̼̻̖̱̺̼͙̳̬̬͕̩͚͓͕̠̯͖̩̮͉̼̜̈́͛́̔̃̌̄̋̈́̽͒̿͗̒̃̃͛͑̍̾͛̈́͊̈́̔̓͒̈́͌̔̓̓̌̄͑̓͌͒̉͛̀̄̈̒̿͊̂̎̉̚͘̚̕̚͢͟͜͡͠͝͞͞͠ͅͅȧ̸̸̸̴̴̷̢̨̨̢̨̧̛̬͓̫̠̣̟͚͙̟͇̩̗͉̜̟͓̫̭̬͕̥̭̪̫̰̖͙̟̗̼̞̳̳̥͙̩͖̺̘̠̰̞̫͈͂̋͆̄́̋̐͆͂͊͑̋̀͗̇̆̀̇̔̉̇̄̈́̓̀̿̋̃͆̀̆̈́͐͗͌͒̈̌̑̏̊̃̇́̊̚̕̕̕̕͘̚͜͢͜͢͢͠͞ͅͅX̴̶̵̵̷̡̨̧̡̡̨̢̢̡̛̥͍̫̫̻̺͚̘̺̲̳̱̬̭̤̘̣̦̫͕̲̹̻̩͔͎͍͖͚͈̱͔̥̘̣̱̹̪̥̱̯̤̺̥̝̣̤̘̱̻̻̹̭̰͙̐̄̾̍̇̿͂̇͂̒́̌͛̌͌̈́̾́̉̏̂̇̌͒̃͑̎͋̄̀͑̀̀̏́̈́̔̆̉̃̔̚̚͘͢͝͝͝͞͝͡͝ͅͅM̸̷̷̵̨̨̛̛̛̗͉̫͙̹̱̤̱̬̥̫͇̤̥͖̤̥̪̲͔̝̤͔̣̞͇̦̠̬̘͕͔̺͈͍͓͍̹͚̻͔̞̹̞̣̭̀̒̿̆͛̆̓̋̇́͂̓̾̍͑̎̏͒͒̽̓̐͛̊̈́̍̈̽̓͑͗̄̒̀̐̄͆̑͂̀̀̊̽̋͛̾͛́̏̈́͘͘͟͢͟͟͞͝͠͞ͅͅs̴̸̷̴̷̡̢̢̨̧̛̛̲̤͇̰̥̱̜̱̪͔̮̤͎̼̫͉͕̖͔̘̭͓̭̙̪̬̰̼̱̻̞̲̤͔̭̯̭̦̘̝̠̝̘̟̦̙̖̮̣̏̆̉͐̒͂͛̏̽͆̊̿́̓̿̋̐͊̈́̎͌͂̏̿̐̿̒́́̀͑͌̔̂̈́̉̈̅̅͋͐̀̽͑̇̀̂̿͌̆̕͘̕͟͜͢͢͜͞͠͝͡͠͠͞͠͝͠͝͡ͅͅḮ̷̴̷̶̵̵̧̢̛͕͓̹͚̭̫̭̹̗̠̮̪̜̩̩̱̪̻͚̳̼̪̭̠͙͙͚̘͚͈̝͙̪̻̣̲̝̟̫̺̣͚̥͎͙̱͈̬̫̃̆̔͊̅̀͒͆̓͌̐̒̈̒̎͊̀̀̏̐̔̍́͌̓͑̏͑͋̋͒̓͂̉̆̀̄̕̕̕̕͜͜͟͠͝͡͝͡ͅḨ̵̷̨̨̢̡̡̨̛̛̛̛̛̰͎̜̝̮̙̺̳̩̫͍͎̭͕̤̠̦̺̲̩̖̙̺̫̠̳͇͔̼̤̯̝̦̓͐̌͗̐́͊̐̏̅͋̑͂̾͛̊͊͋͛͋͆̑͊͐̐͆͒̇̿̽̽͑̋͐̄̽̊̄̐̾̂͘͜͢͞͝͝͞B̴̴̸̸̸̡̡̢̧̧̡̡̤̣͓̭͇̟͚̦̪̲͔̘̤͇̘̭̱̭͚̘͇̩͕͔̱̜̫̠̪̗̱̘̺̞̬̟͙͚̯̤͚̪̰̝͈͚̤̻̪̩̞̞̗̌̆̅͌̍̎̈́͗̆̃̌͐̎͐̌̈͋́͐̈́̄̈͌̇̊͒̒͆̔́̒̒̿̿͒͂̔̇̔̿̕͘̕͜͜͟͜͜͢͟͡͝͝͡͡͞ͅs̷̴̶̶̸̷̵̨̨̨̢̡̨̢̢̧̛̛̛̛̲͖̠̯̦̺͚͙̳̯̗̞̳͓̻̙͎͉̪̫̬͎̠̗̤̞͖̱̰͇̣̹͎͉͍̫̹͚̗͎̠̮̙̫͎̺͙̣͚̬̳̘̘͔̣͍͖̃́̇́͒̓́͒͋̌̿́̐̈́͑͐͑̓̾̎̇̆̐͛͆̔͐̓͋̆̐̊̔̂͑͗̈̄́̇͒͒̌͊̒̏̈́̌͐̂̐̈́͐̋̅͐̎̚̚̕̚͟͝͝͝͠͡͡͝ĕ̸̸̸̶̴̡̢̡̡̛̛͇̙̣͉͕͓̝̹̲̳̠̼͓̱͕̥͈̞͕̗̯̯͚̗͇̙̻̜̥͇͓̞͖̟͓̦̙̻̩͉̰̳͎̝͚͍̠͈̩͖̏̾̌͛̍̓̆̏̀̐̀͋̓̆̋́͆̾̉̄̿̂͗͛̈́̆̓́̏͑͆̓͐̄̒̎̒̂͊̇͆̐̆̓̿̅̀͘̕̕̕̕͟͜͟͜͢͝͡͠͡͡͝i̸̸̷̷̸̢̡̨̨̛̻͓̱͓͕̺̮̳̘̥̲̻̬̗̥͉̤̯͎͇̖̜̰͔̭̤̱̦̞̖̪̟̯̦̞̠͖̟̱̳̝͈̗̫̩̬͙͍͔̹̼͓͖̣͉̺̞̟̇̎͛̀̾́̓̃̏̓̍̉̂̋͛̂͂̾̇̔̈̄̌͒̓̔̐̉̽̊́̓͑͛̓́͗̂̂̎́͗̈̎͛͊̄͊͘̕͜͞͞͞͡͝͝͞͠ͅB̸̵̷̶̸̡̢̡̨̨̢̡̨̨̡̧̛̛͉̙̲̠͍̥͕͚̝̦̘̪̭̬̬̱͍̹͚̥̼̭̼͔͖̟̰͚̳̭̜̪̙̟̗̝͉̪͎̬̭͎̹̼̯̙̭͔̞͕̘̤̩͉̠̘̩̖͉͙̊͒͂̓͌̊͋̾́̅̂̍̑̍͐̀̀̇̀͛̊̓͛̓̀͐͛̒̀̏̇̆̈́̑̽̇͒̅̎̊͂̋͛̿̄͛͊̌͂͐̔̕͘̚̕͟͟͢͢͠͞͝͝͝͠͡ͅË̵̵̴̵̡̨̧̧̧̨̡̛̛̛͎͔͉̱̻̪̤̳͈̲̟̝̖̮̳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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 👍 |
비추천 12 👎 |
댓글(3)
쏘냐한 🟢
미친놈
████/██/██
휴루리라팟파 (37390)
도배충은 이제 그만 짜르면 안됨? 깡패좌 뭐하냐
████/██/██
물고기 (41120)
나는 태평양 하와이제도의 물고기다
████/██/██
머리가 아파진 하나는 서우람 학과장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나도 커피나 쏟을까. 하나는 생각했다.
시냅스페이스, 개조된 미궁골,
현재.
민혁은 반짝거리는 금딱지와 은딱지에서 반사된 빛에 눈을 힘겹게 뜬다. 영체가 되고 나서 정신을 잃은 게 벌써 세 번째다. 원래부터 심령들은 이렇게 힘든 삶(또는 죽음)을 이끌고 존재해왔던 걸까? 괜시리 지금껏 심령공학 실습에 동원된 심령 독립체들에게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여긴 어디지. 민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색 벽들 사이로 난 골목 골목마다 저마다 다른 표지가 붙어있다. <곤충골>, <재단골>, <잡담골>.. 그리고 각각의 골목 골목을 드나드는 정체불명의 인형(人型)들과 각 벽마다 붙어있는 문장들. 민혁은 이곳이 골목길임을 직감했다.
아아, 인터넷 폐인 생활만 하다 죽으니 결국 인터넷 망령이 되었구나. 인터넷 사후 세계는 이런 곳이구나- 하고 생각하던 민혁은, 죽음은 이미 자신에게 별 일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그 PrSr, 그 자의 소행일 것이다.
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금 더 이 장소를 둘러보기로 결심했다.
시발 도배 다시 시작이다
이런 하꼬골에 도배하는 민혁좌도 정상은 아님
민혁은 새로 지어지고 있는 벽을 봤다. '민혁좌'가 누군진 몰라도, 도배라는 어휘를 보면 어디서 또 정신병자 한 마리가 분탕을 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평소와 같은 인터넷 폐인들의 인터넷 폐인 글. 민혁은 씁쓸하게 웃으며 길을 계속 나아갔다. 그때였다.
"잠시 검문 있겠습니다."
머리 주변에서 이상한 사각형 입자들이 뿜어져 나오는 어떤 형체가 민혁을 가로막았다. 제복을 입은 것과 무언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었지만, 얼굴을 집중해서 보려고 하면 집중이 흩여져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슴팍에 적힌 ROM2.aic라는 글자 뿐이었다.
"어디 소속인지 알려 주십시오."
소속? 소속이랄게 있나?
"무소속입니다."
"그 말은, 지금 로그 AI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무슨, 난 인공지능 따위가 아닌데요."
그 말을 들은 상대는 당황한 듯 입자가 지직거렸다. 그러고는 얼굴 부분에서 붉은 빛이 나오며,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치직
"-코드 20, 지금 고장 인스턴스 하나 확보했습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면 재단이 다시 확보하러 올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
"?"
점멸하는 붉은 빛이 민혁을 비추기엔, 이미 민혁은 광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서울, 제21K기지
띠링-!
서우람은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보고를 보며 전에 그를 꾸준히 괴롭혔던 편두통이 다시금 머리를 옥죄어오는 것 같았다. 어떤 미친 새끼가, 주요 감시 대상인 대형 요주의 웹 사이트 하나를 오직 도배만으로 마비시키고 있었다. 악의를 갖고 연구과의 업무를 망치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왜 재단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공격하지 않고 골목길에 도배하는 걸까. 어쩌면 진짜 관심을 받고 싶은 순수한 관심 종자일지도 모른다.
서우람은 잠시 메세지 시스템의 알림을 끄고, 의자를 뒤로 젖혀 눕는다.
우람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학문에 휩쓸려 얼떨결에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한 게 20대 초였는데, 벌써 반백살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인생이 참 야속하게도 빨리 스쳐 지나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 사이에 다른 일이 많긴 했다. 변칙적인 논리 구조를 발견하고 졸업 논문으로 이를 다루다가 재단에 잡히고, 논리공학쪽 업무에 배정됐다가, "새벽" 박사의 눈에 띄어 WoI 연구과로 이전, 그 후 골목길 소탕 작전을 겪고, 학과장이 실종됐다가, 아무튼. 자신의 인생은 꽤 파란만장했다고 생각했다.
서우람은 재단에서 지내면서 못 볼 꼴도 많이 보고, 몇몇 지병도 얻었지만, 그래도 재단에서 정상 세계를 수호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재단에서 수 십 년을 버텼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우람의 현재 업무는 우람의 사명감을 완벽히 충족시켜주지는 못하였으나 어느 정도 만족은 시켜주고 있던 것이었다.
아무리 저들이 머저리 같은 짓을 하고, 정상적인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여도 '골목길'에 접속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험 요소라는 걸 감안하면 이 또한 세상을 지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람은 자신의 위치와 함께 이름을 말하는 특히 등신같은 특등신을 보고는,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고는 권태감이 올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띠링-!
알림을 껐는데도 울린다는 건, 보통의 메세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람은 뒤로 꺾어두었던 의자를 다시 똑바로 한 뒤, 기지개를 한 번 펴고 보고된 내용을 열람하였다.
ROM2.aic: CODE 20
코드 20이라면, 시냅스페이스에서 탈주한 aic 또는 민간의 aic를 확보한 경우 보고되는 코드다. 우람은 aic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한다.
제21K기지 aic 데이터베이스
새벽.aic - 상태: 온라인 ■
SBytes.aic - 상태: 임무 중 ■
ROM2.aic - 상태: 임무 중 ■
웨이 발렌타인.aic - 상태: 온라인 ■
저니.aic - 상태: 온라인 ■
트리블랜드.aic - 상태: 온라인 ■
조나단-할리만.sac - 상태: 추적 중단 ■
별 이상은 없다. 조나단-할리만.sac이 걸리기는 하지만, 합성원형구성체가 시냅스페이스에 접속할 수 있을 리는 만무하기에, 외부 인공지능이거나 타 기지의 aic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러한 추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재단의 기술력으로는 인간의 인식은 너무 복잡해 시냅스페이스에 업로드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ROM2.aic: 해당 미상 구성체가 도주함. 추적 중. 지원 요청 바람.
이런.
서우람은 비상 사태에 침착하게 윗선에 보고하고, 델타-18(혹은 '밈당김')에 이를 알린다. 사태가 혼란한 와중에도 여러 골목을 변경하며 도배를 하고 있는 도배꾼을 보고는, 서우람은 한숨을 푹 내쉬고 AIAD에 연락을 취한다.
시냅스페이스, 정보 분산 구역.
"헉, 헉."
시냅스페이스는 전부 가상 환경에서 구축되었기에 숨을 가삐 몰아 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혁은 습관처럼 입으로 숨을 내쉬듯 소리를 낸다.
분명 아까 그게 재단이라고 했던가?
민혁이 아는 재단은 납치와 식인을 일삼고, 정상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는 이유로 평생 동안 구금하며, 그 아무도 다시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한 그야말로 현실 세계의 아즈카반이나 다름없었다. 골목길에서 건너건너 들은 이야기니, 확실할 거다.
어쩐지 뭔가 쎄했다. 사람답지 않게 생긴 모습에, 딱딱한 말투까지. 아마 재단의 인공지능이겠지.
민혁은 예전에 유머골에서 본 글을 하나 떠올렸다. 그 글의 내용은 대충 '골목길의 구성원 대부분은 사실 초상 공안이 뿌려놓은 AI이고, 우리와 같은 초상 히키코모리를 잡기 위해 여러 방향으로 너를 낚으려 할 것'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역시나. 만약 잡혀갔다면 평생 인터넷 망령이 되어 SCP-12345 이런 번호를 부여 받아 살아(죽어)갔겠지. 감을 믿고 도망친 게 다행이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도망쳐 나온 탓에, 민혁은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렌더링 이슈 때문인지, 아니면 변화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까 서 있던 골목길은 보이지 않고, 웬 광야같은 곳 정중앙에 서 있던 것이었다.
"저기요-! 누구 없나요-!" "저기요-! 누구 없나요-!"
"들리면 대답 좀 해주세요-!" "들리면 대답 좀 해주세요-!"
하지만 대답하는 것은 그의 메아리 뿐이었다. 이 또한 물론 가상의 공간이었기에 있을 리 없지만, 왠지 메아리가 들려야 할 것 같아 민혁이 모사한 것이다.
민혁은 3분 동안 소리치며 더 돌아다녀 보았지만, 그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으며, 그 어떤 사람의 형태도 없었다. 아니, 여기서 유일하게 변화하는 것은 민혁 뿐이었다. 모든 게 민혁이 건드리기 전까진 정적이었으며, 바람조차도 불어오지 않았다(정말 당연하게도, 가상의 공간엔 기압 차가 발생하기는 힘들다).
"하아."
민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려둔 다음, 여기- @#$%@ -간 선을 연결- #$@%# -다- .
"어라?"
방금 이상한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민혁은 이상한 소리의 원천을 찾기 위해 일어선다. 하지만 무언가 깔고 앉은 건 아닐까 엉덩이 밑도 확인도 해보고, 앉은 자리의 땅을 발로 밟아도 보았지만 아까와 같은 소리는 나지 않는다.
민혁은 호기심이 생겼다. 어차피 쫓아오는 인공지능들도 안 보이겠다, 조금 더 여기서 실험을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풀썩
아까 했던 것처럼 다시 주저앉아 본다.
"…"
"뭐야. 왜 안 나."
만약 민혁이 이 현상을 두고 논문을 작성했더라면, 재연의 문제로 학계에서 대차게 까이다가 결국 마음에 상처를 입고 잠적했을 것이다. 민혁은 자신의 전공이 이런 쪽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 사실은 민혁에게 마음의 안정을 선물하였다. 하지만 민혁에게 남은 호기심은 방금의 재연 실패로 그만 동나고 말았다.
"하아."
한숨을 쉬고 다시 나아간다. 여기서 시간을 썩히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SCP-@#$@# -없- @#$@% -건격에 속하는 요-@#$@% -차를 대신-
"?"
분명 아까의 이상한 소리다.
민혁은 아까와 세부 사항은 다른 것 같지만, 그래도 들려오는 느낌이라던지, 느낌이라던지, 느낌이라던지… 아무튼 느낌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민혁은 놀라 한번 숨을 짧게 내쉰 후에 고개를 휙 돌렸다.
아- @#$@% -정이는 왜 도망간 거- @#$@$% -닌 예나- @#$% -… 선정- @#$% -요.
설마.
민혁은 한숨을 길게 내쉰 후, 팔을 휘저어 봤다.
-@$#$- 코드 20- @$#%^ -지원 요청 바람
이번엔 선명하게 들렸다.
민혁은 있는 힘껏 숨을 들이마신 후, 가상-폐 내의 가상-폐포 단 한 개에도 남는 가상-공기 입자 한 톨도 없을 만큼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상한 소리가 중첩되어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상한 결정체 하나가 공중에서 튀어나온다. 결정체는 푸른 빛을 띠는, 투명한 육각기둥의 모양을 띠는 육방정계의 결정이었다. 민혁은 결정을 들어 눈 앞에 갖다 댄다.
"어?"
평범한 결정이었다면 민혁의 눈 앞에 펼쳐질 광경은 결정 반대편에 비치는 저 광야 끝이었을 테지만, 정작 펼쳐진 광경은 어떤 중년 남성이 의자를 젖힌 채 청승을 떨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저 옷에 있는 문양은,
"재단?"
그렇다. 민혁은 우람의 뒷 모습을 찍고 있는 CCTV의 영상을 얻은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민혁이 내뿜은 숨에 포함된 응결핵에 의해, 방금 생성된 정보 쪼가리들이 응집되었고, 정보의 자가복구성으로 인해 하나의 연속된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곧 정보가 생성된 그 기기까지도 그 보안 수준에 상관없이 이어 연결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자세히 보기 위해 결정을 옷소매로 닦던 민혁이 힘 조절을 잘못해 결정에 금을 내자, 정보의 발원지로 강제 이동하게 되었다.
서울, 제21K기지, 제5연구동
서우람이 청승을 떨며 의자에 누워있었을 무렵, 옆 동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게.. 하."
다크서클이 입까지 닿을 만큼 내려온 채로, 투명한 직육면체 모양의 상자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저 남성은 박수찬이다. 수찬은 손에 든 상자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후, 끌을 들고 투덜대며 나무판에 거대한 원을 식각하기 시작한다.
"에휴, 내, 인생, 진짜, 어쩌다,"
뒤에서 가벼운 웃음 소리가 들린다. 수찬은 그 웃음 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다.
"흐흣, 수찬 씨, 많이 힘들죠?"
"아, 무영님."
"무영님이 뭐에요. 말 놓으셔도 된다니까."
수찬은 멋쩍게 웃는다.
"죄송해요. 아직 익숙치가 않아서."
무영은 그런 수찬을 보고 미소 짓는다.
"괜찮아요. 아, 맞다. 여기 커피 하나 드실래요?"
"엇, 어 넵. 감사합니다."
수찬은 커피를 받아 들기 위해 고개를 올려다보다, 무영의 눈과 마주친다. 수찬은 무영의 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다, 너무 깊이 빠져들 것 같아 고개를 치켜든다. 반곱슬의 갈색 머리가 조명에 난반사되어 찰랑거리는 모습을 보자, 수찬은 머리카락을 한번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가슴 깊이서 올라온다.
"헉."
수찬은 급히 눈을 피한다.
빨개진 그의 얼굴을 눈치채지 못한 채, 무영은 활짝 웃으며 수찬에게 맛있게 먹으라고 당부하고는 떠난다. 수찬은 이런 상황이 멍하기만 하다.
이럴 때가 아니다.
수찬은 다시 망치와 끌을 들고, 존재 회로를 하나 하나 깎기 시작했다.
이번에 만들어야 할 건 이 앞에 놓인 상자의 정체성을 복구 시키는 회로다. 수찬은 다시 한번 앞에 놓인 투명한 상자를 만지작거린다.
'이 정도로 정체성이 날아간 건 처음 보는데.'
수찬이 이 상자를 처음 받았을 때 든 생각이다. 수찬은 이 상자의 제작자가 누군지 궁금해 물어봤으나, 돌아온 답변은 '우리도 모른다'였다. 정체성 복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을 수 있다고 설득한 끝에 윗선에선 자세한 내막을 알려주긴 하였으나, 솔직히 쓸모 없었다. 자세한 내막이라 하면, 기동특무부대 을호-2("잊힐 의무")가 어떤 폐공장을 습격했는데, 심령 독립체 몇몇이 도망갔더랬다. 그 후 추적에 실패하여 돌아와 폐공장을 수색하는데, 이런 상자가 대규모로 발견됐다는 것이다.
까각.
완성이다.
수찬은 상자를 중앙에 올려두고, 어릴 때부터 읊어온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사막, 죄책감, 괴리, 충돌, 고독, 세월, 추상, 기억, 곡읍, 산화."
회로 위에 옅은 안개가 깔린다. 수찬은 안에 상자를 집어넣고, 손으로 조금씩 조작한다.
"됐..다-"
수찬은 상자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육면을 모두 찍고 상자를 열어보려 하다, 입구에 작게 각인되어 있는 문장을 발견한다.
早夭之引導者
"조요지인도자?"
██시 ██면, 제2거점
"..그래서, 도령께서 다시 한번 이 세계에 강림하시면, 모두가 평등해질 수 있는 겁니다."
모자 쓴 남자가 말했다. 앞에서 열심히 입을 털고 있는 저 사람은, 아니, 귀신은, 이번 모임에서 가장 오래된 신자로써 자신들의 신인 '구오도령'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자와 생자의 구분이 모호해져 모두가 모두를 만날 수 있을 때, 그 날이 오기를 손 꼽아 기다립니다.."
새로 온 신자나 신앙심이 무척이나 깊은 신자가 아니면 모를까, 이런 흔해 빠진 멘트를 세 시간 동안 듣는 것은 수면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시은은 그 예외가 아니었다.
지루해진 시은은, 잠시 민혁의 얼굴을 떠올린다. 조요가 아니었다면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을까.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까마귀가 부화하는 그 날에, 우리는 모두 구원 받습니다.."
시은은 사실 구오도령의 강림이니 뭐니 하는 말에는 관심이 그닥 많진 않았다. 시은의 조요의 인도자 입교 이유는 단순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을 여의고, 보육원에서 커 왔던 시은은 자신의 보육원이 변칙 현상과 관련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술적인 무언가로 인해 보육원의 모두가 몰살 당하는 일이 벌어졌었다. 마침 밖에 심부름을 나갔었던 시은은 다행히 그 참사를 피할 수 있었으나, 심리적으로는 참사를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시은의 병리적으로 집착적인 성격은 이때 형성되었다.
"..지만 파렴치한 이 초상 공안들이 이번에 우리의 연구 공장을 전부 헤집어 놓았다는 겁니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죠.."
그러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짓눌린 듯한 보육원을 바라보며, 자신의 손에 들린 비닐봉지를 놓지도 못한 채 쓰러져 있는 시은의 곁에 다가온 자들이 바로 조요의 인도자였던 것이다. 영적인 기운이 조금이나마 있었던 시은은 정체성이 어느 정도 흐려진 심령 독립체를 볼 수 있었고, 자신들을 본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와 주변의 신도들은 쓰러진 시은을 엎쳐 메고 자신들의 거점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조요의 인도자에 입교하게 된 시은은, 구오도령의 강림을 믿지만서도, 강림을 하면 자신의 일상이 무너질까 두려워 연구와 포교 두 선택지 사이에서 포교를 선택했고, 그러다 민혁을 만나 지금까지 온 것이다.
"..은아, 시은아!"
감고 있던 눈을 뜨니, 모자 쓴 남자가 시은을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공장에 뭐 없어진 게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같이 가련?"
"아, 네, 뭐."
"그러면 이번엔 저랑 종철 씨, 그리고 시은이만 갖다오겠습니다."
"다녀오세요,"
"영체 조심하세요,"
시은은 늦을 것 같다는 문자를 민혁한테 남겨 놓은 채, 차에 탑승한다.
"시은아, 정말 미안한데.."
남자가 말했다.
"너가 운전해야 해. 우리는 죽었잖니. 운전 면허가 이미 취소됐다고."
"아."
시은은 좌석 사이로 비집고 나와, 운전석에 착석한 후 자신들의 공장으로 차를 몬다.
경부 고속도로, 기동특무부대 이송 차량.
"팀장님, 우리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조금만 참아. 곧 도착한다."
"..그래서 저희 임무가 뭐였죠?"
이세율 현장 팀장은 어이없다는 듯 오한나를 바라본다. 정말 모르겠다는 한나의 눈을 본 이세율 팀장은, 다시 천천히 설명해준다.
"저번에 습격한 공장 있지, 거기서 발견한 상자를 역추적해보니 만든 단체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정보를 얻어 냈어. 우리는 거기 먼저 가 있다가, 그 사람들이나 귀신들이 오면 바로 콱. 확보하는 게 우리 목표."
"상자, 말입니까?"
최신해가 끼어들었다.
"그래. 전에 너 작전 중에 넘어진 거 기억나지?"
"아니 그걸 왜 갑자기-"
풋, 한나가 웃는다.
"네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길래, 후속 조에서 조사를 더 했어. 존재학부 말로는 '정체성'이 흐려진 상자라 했던가.. 아무튼, 변칙적 상자가 바닥에 깔려 있었다는 거야."
"아, 그랬군요."
"역시 제가 아무 것도 없는 데서 넘어질 만큼 띨빵하지는-"
삑삑삑삑
"무슨 소리야?"
신해가 허둥대며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심령 에너지 감지기를 꺼내 소리 다이얼을 최소로 낮춘다.
"그냥 감지기 소리입니다. 뭐 귀신이라도 지나간 것 같습니다."
"신해야, 잠시만. 그거 한 번 줘 볼래?"
최신해는 세율에게 감지기를 넘긴다.
"이거 무슨 모델이랬지?"
"120입니다. 감지 성능 좋은 거."
세율이 알기로는, 심령 에너지 감지기의 120번 모델은 다른 감지와는 다른 작동 방식을 자랑한다. 다른 감지기는 단순 에너지가 감지되는 순간 울리는 반면에, 120번 모델은 축적형으로 천천히 작동하는 대신, 그 민감도는 다른 감지기보다 뛰어난 모델이다. 세율은 다시 다이얼을 최대로 돌린다.
삑삑삑삑삑삑삑삑
"저 차, 왠지 저희 따라오는 것 같지 않습니까?"
"후속 팀 차량인가요?"
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삑
세율은 보고 받은 차량과 백미러의 차량을 낱낱이 비교 분석하고는, 결론을 내렸다.
"잠시만, 뭐 꽉 잡아."
세율은 일부러 속도를 갑작스레 늦춘다.
시냅스페이스, 제21K기지 관리 시스템,
3시간 후
민혁은 또 다시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이제는 이런 게 익숙한 듯,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긴 또 어디야."
민혁은 주위를 둘러본다. 마치 영화에서나 보던, 복잡하게 생긴 기계들이 주변에 잔뜩 있다. 민혁은 모니터에 떠 있는 재단의 로고를 보고는 이 곳이 재단과 관련 있는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민혁은 앞으로 천천히 걸으며 기계들을 파악해간다.
쐐액
민혁의 옆으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볼에는 피가 몽글몽글 맺히고 있었다.
"이런 미친."
쐐액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 것들은 민혁을 보지 못하는 듯,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만 갔다. 하지만 민혁에겐 그것이 바로 위협이었다. 민혁은 이들을 피하기 위해 몸을 한껏 낮춘다.
툭
비행체 하나가 민혁의 옆에 있던 기계로 들어가려다 튕겨져 나온다. 비행체는 편지지의 형상을 하고 있다. 민혁은 편지 봉투를 집어 들어 열어 본다.
TO. ten.pics|IOWmaroowoes#ten.pics|IOWmaroowoes
미상 구성체 흔적 발견. 정보 분산 구역을 통해 재단 인트라넷으로 접속한 것으로 보임. 추가적 조사 필요.
이런.
민혁은 이 '미상 구성체'가 자신임을 직감했다. 아, 이젠 진짜 인터넷 망령이 되겠구나. 절망하고 있던 찰나,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할 말이 진짜 없다니까요? 아니, 애초에 귀신이라니 그딴 소리를 믿는 사람이 진짜 있긴 해요?"
시은의 목소리다. 얘 목소리가 왜 여기서 나지.
민혁은 그 소리의 발원지를 찾아 달려갔다. 치직거리는 모니터들 사이를 비집고, 거대한 기계의 숲을 지난 뒤, 격리실 모양의 모형이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다. 비록 기계 사이를 비집고 헤쳐나가는 사이에 기계가 움직여 깔릴 뻔 했지만, 상관 없다. 모형이 수북히 쌓인 곳에서 민혁은 하나를 집어 들어보지만, 그 안에는 시은이 아닌 다른 것만이 들어 있다. 민혁은 모형 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재단'에서 시은의 목소리가 들렸다는 것은, 밖에서 뭔가를 하다 잡혀 온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집착이 심해서 부담스럽다 해도, 민혁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평생 감옥에 갇혀 사는 것은 원치 않았다.
찾았다.
민혁은 소리가 나는 격리실 모형을 들어 내부 CCTV 영상을 확인한다. 취조실처럼 꾸며진 장소에 시은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정장을 입은 무서운 인상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여성의 가슴팍에 달린 인원증에는 김미영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때, 모형에서 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쾅
보아하니, 정장의 여자가 책상을 내려친 것 같았다.
"유시은, 미주보육원 출신. 11살 무렵 '주홍왕의 아이들'이라는 단체가 일으킨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
"그 후 행방불명 되었다, 19살 무렵 다시 사회로 나옴. 이후 해원읍 근처에서 활동. 더 얘기해드려요?"
정장의 여자는 시은의 얼굴에 대고 윽박질렀다.
"이런 상황에서, 심령 독립체들을 태운 6인용 차량을 혼자 몰다가 적발됐는데,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 진심입니까?"
시은은 고개를 숙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미영은 의자를 빼 일어난 후, 시은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잘 생각해보세요. 재단은 생각보다 정보력이 좋다는 걸 잊지 말고요."
미영이 문을 열고 나간다. 시은은 고개를 숙인 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오직 눈 밑에서 흘러나오는 눈물만이 시은의 감정을 알려주고 있었다.
서울, 제21K기지, 인물 구금동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영식이 아저씨가 같이 가자 했을 때 바쁘다 하고 빠져나왔을 텐데. 괜시리 도와줘서 이 지경이다. 아니, 애초에 종철이 아저씨 잘못이다. 그냥 공장에서만 쓰면 된다며, 차 안에서 존재성 저해 인자를 안 쓰고 있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닌가.
아니, 아니다. 이건 전부 그 놈의 재단 때문이다.
"미친 새끼들…"
시은은 세 시간 전의 장면을 회상한다. 계속 앞에 있길래, 가는 길이 비슷한가 보다- 생각하던 차가 갑자기 멈춰 섰던 그 때를 떠올린다. 속도를 미처 줄이지 못한 시은은 결국 앞 차와 충돌했고, 잠시 의식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무장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아저씨들은 잘 도망갔으려나.'
생각이 복잡해진다. 그러다 문득, 방 안에 갇혀있을 민혁이 떠오른다.
나 때문에 죽은 불쌍한 내 남친. 한 줌의 먼지가 되어 날아가 버릴까 두려워 방 안에 가둬 둔 가여운 내 남자친구. 재단에 이렇게 갇히면 평생 못 보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잡혀버리면, 온갖 심문을 당한 끝에 민혁의 존재도 파악한 재단이 민혁도 가두는 게 아닐까? 시은의 머릿속에 상실이라는 개념이 들어차자, 보육원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시은은 팔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꼈다. 머리 위에서는 마이크를 치는 소리가 났다.
툭- 툭-
'너희가 무슨 말을 하던지 침묵을 유지할 거다.' 시은이 마음먹었다.
"아, 아. 마이크 테스트."
준비 됐다.
"자기야, 내 말 들려?"
자기? 자기라니. 저들이 날 놀리는 것인가?
시은은 얼척이 없어져, 나오던 눈물도 멈추고야 말았다. 그 덕에 시은은 목소리의 음색을 더 잘 알아챌 수 있게 되었다.
"나 민혁이야. 이민혁."
"어?"
시은이 고개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본다. 목소리는 저 위에 달린 스피커에서 나오는 듯 했다.
"..대체 왜 여기 있는거야?"
그건 시은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설마 재단이 자기까지 잡아온 거야?"
"아니, 말하자면 긴데,"
"근데 자기는 왜 여기 있는거야?"
"조요 사람들이랑 어디 관리하러 가다가.."
시은이 머뭇거린다.
"..잡혔어."
"…미안, 자기가 사이비라 할 때 진작에 나왔어야 했는데."
시은이 다시 고개를 숙인다.
"그건 신경 안 써. 몸은 안 다쳤고?"
"…"
시은의 눈이 눈물로 반짝인다.
시냅스페이스, 제21K기지 관리 시스템, 구역 통제소
민혁은 시은의 눈에 맺힌 눈물이 자신의 심장에 직접 내리 꽃히는 느낌을 받았다. 연애 경험이 있었다면 어느정도 무디게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모쏠인 민혁에게 이러한 고통은 신선한 고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픈 건 아픈 거고, 지금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자기, 일단 내가 꺼내줄게 조금만 기다려.."
민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길쭉한 모형을 들고 안을 들여다본다. CCTV에는 경비 한 명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민혁은 다시 시은이 있는 모형을 들고 말했다.
"일단 밖으로 한 번 나와볼래?"
덜컥
덜컥 덜컥
"문이 잠겼어.."
"잠시만,"
민혁은 격리실 모형의 문을 건드려 본다.
철컥.
민혁은 복도 모형을 찾아 안을 들여다 본다.
"나, 나왔어.. 이제 어디로 가야 해?"
모른다.
"일, 일단 저 문을 열고 나가 봐."
아무런 대책이 없다. 민혁은 시은을 보고 너무 반가운 나머지, 탈출 루트 그딴 거 모르겠고 그냥 문을 연 거 뿐이었다. 민혁은 재빨리 널부러진 복도 모형을 차레 차례 이어 본다. 다행히 위에 새겨진 번호를 보고 이어내기는 수월했다.
"거기서 왼쪽,"
"오른쪽," "직진."
민혁은 시은이 구금동을 거의 다 벗어난 것을 보고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 지원 요청."
저 멀리서 입자를 내뿜으며 얼굴에 불을 켜고(말 그대로) 달려오는 인형을 발견한 민혁은, 당황해 이어둔 모형을 전부 떨어뜨렸다.
"씨발."
민혁은 모형을 전부 챙겨 든 후,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울, 제21K기지, 인물 구금동
« 출구 | 연구동 »
"헉, 헉,"
시은은 죽기 살기로 달려, 마지막 코너에 도착했다. 시은은 위를 바라보며 말한다.
"자기.. 헉, 헉. 자기도 곧 나올 수 있는 거지?"
"…"
"자기?"
아무런 답신이 없다.
저벅- 저벅-
이런.
저 멀리서 발 소리가 들려온다. 시은은 주변의 방 중, 잠겨있지 않은 방을 찾아 들어가 몸을 숨긴다.
"허억- 허억."
시은은 몸을 숨긴 채 숨을 가쁘게 내쉰다. 시은의 눈 바로 앞에 건물 출구와, 도로가 보인다. 지금 달려 나간다면 아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근데 민혁인 어떡하지?'
만약 시은이 이대로 도망간다면, 민혁은 재단에 홀로 남겨지는 걸지도 모른다. 물론 재단에 갇힌 건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만에 하나라도 갇힌 거라면. 시은은 민혁을 영원히 잃는 것이다.
시은은 고뇌한다. 지금 나가면 민혁을 빼 올 계획을 세운 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못 돌아온다면?
'뭘 고민하고 있는 거지?'
시은은 왼쪽 대신 오른쪽을 택했다.
시냅스페이스, 제21K기지 관리 시스템
"당신은 구금되었습니다."
붉은 빛을 내며 민혁의 다리(혹은 위치 이전 코드)을 붙잡은 ROM2.aic가 말했다.
"이.. 거, 놔!"
민혁은 안간힘을 쓰며 버둥댔지만, 강력한 ROM2.aic의 힘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민혁은 손에 들린 모형으로 ROM2.aic의 머리를 내려치자, 스파크가 튀며 ROM2.aic의 속박이 잠시 풀렸다.
"재단의 공무 aic를 공격할 경우, 향후 불이익이 있을 수 있습-습-습-니다."
ROM2.aic는 맞은 곳의 코드를 수리하며 일어난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좆까. 내가 순순히 잡힐 줄 알아?"
ROM2.aic의 얼굴이 노란색으로 점멸한다. 그 후,
스윽-
눈 깜빡할 새에, ROM2.aic는 민혁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어?"
민혁은 자신의 팔다리가 붙는 것을 느낀다. 몸을 내려다 보니, 사지와 몸 사이에 초록색으로 지리멸렬한 정보들이 이어져 있다. 민혁은 안간힘을 쓰며 몸에서 팔을 떼려 시도한다.
"위치 이전 코드와 중앙 정보 코드의 정보를 논리적으로 합성하였습니다. 무리한 분리 시도는 중앙 정보 코드의 비가역적인 손상을 야기할 수 있으므로, 시도하지 마십시오."
민혁은 중심을 못 잡고 넘어진다. 하지만 민혁은 포기하지 않았다. ROM2.aic의 얼굴이 다시 붉게 변하며 행동을 잠시 멈췄을 때,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몸을 굴린다.
민혁의 몸이 ROM2.aic의 하단과 충돌한다. 큰 소리가 나며 중심을 잃은 ROM2.aic는 넘어질 수 밖에(혹은, 위치 정보에 혼선이 올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바닥에 떨어진 ROM2.aic는 부딪히며 조각조각 산산이 부숴지고 말았다.
"오류. 오류."
"으윽.."
민혁은 계속 몸을 뒤집으며,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ROM2.aic의 조각들은 직사각형 이펙트로 분해되더니, 허공에서 몸체로 다시 재구성된다.
"저항하지 마십시오."
재구성된 ROM2.aic의 몸체는 한층 더 날렵해져 있었다. 금속성의 재질로 보이는 몸체에, 이음매 없이 매끈한 연결부. 만일 이것이 가상이 아니며, 나를 죽이려 들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수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민혁이었다. ROM2.aic의 팔 부분이 마치 단검처럼 날카롭게 변형된다. 날카로이 변형된 팔의 주변에는 불길한 스파크가 튀어, 접근하는 모든 것을 없애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만 같았다.
"절단합니다."
"-뭐?"
촤악-
민혁은 몸을 기괴히 뒤틀어 ROM2.aic의 칼날을 가까스로 피한다. 아까까지만 해도 민혁이 딛고 서있던 단단한 바닥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이런 씨발."
민혁은 칼날을 바닥에서 빼내고 다시 달려오는 ROM2.aic를 바라본 채, 뒷걸음질로 달아난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붉은 빛이 노란 빛으로 변한 ROM2.aic는, 가만히 서 민혁을 응시한다.
츠팟-
민혁은 또 다시 아슬아슬하게 피한다. 마치 투우를 하는 투우사와 같은 모양새다. 민혁은 보라색 스파크가 스쳐 지나간 후 갑작스레 느껴지는 고통에 볼을 만져본다. 아까 메일에 스쳐 딱지가 진 볼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으윽…"
팔다리가 성히 움직일 수 있었다면 저항해 볼 여지가 있었을 텐데. 민혁은 비틀거리며 땅을 짚고 일어선다.
잠깐. 땅을 짚었다고?
민혁은 자신의 왼팔을 바라본다. 아까까지만 해도 초록색 스파크가 튀며 몸체와 붙어있던 팔이 자유를 되찾았다. 언제 풀려났지.
곰곰이 생각하던 민혁은 쐐액-하는 소리에 몸을 던져 ROM2.aic를 가까스로 피한다. 보라색 스파크가 다시 한번 공간을 가득 메우고, 그 경로에 있는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절단되었다.
"..아."
갑작스레 찾아온 깨달음에 민혁은 다시 일어선다. 분명 저 보라색 스파크는 모든 것을 절단한다. 물론 여긴 가상의 세계이니, 아마 논리적으로 무언가를 분리시키는 작업일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야, 덤벼."
민혁은 손을 까딱까딱 꺾어, ROM2.aic를 자극한다.
"도발, 입니까?"
ROM2.aic의 얼굴이 다시 노란색으로 변하고, 몸체는 정지한다. 저게 바라보는 방향은 지금 내 쪽. 그렇다면 옆으로 살짝, 아주 살짝만 비키면.
츠팟-
ROM2.aic은 눈 깜짝할 새에 민혁의 뒤로 이동한다. 민혁은 그 충격에 휩쓸려 넘어진다. 하지만,
"하하, 하하하-!"
민혁은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젠 반격할 수 있다.
"이 깡통 새끼야, 다시 덤벼보던가."
ROM2.aic는 벽에 박힌 칼날을 다시 뽑아낸 후, 민혁을 향해 돌진한다. 팔이 자유로워진 민혁은 그러한 ROM2.aic를 살짝 피한 후, 팔로 잡아 내동댕이친다.
쾅
ROM2.aic가 넘어진 사이, 민혁은 적당한 자리를 물색한다. 아까 봤던 기계의 숲. 그 곳이 적당할 것이다.
"저항하지 마십시오. 곧 지원이 도착합니다."
"너 같으면 그러겠냐?"
ROM2.aic의 얼굴이 다시 노란색으로 변한다. 멈추고, 나를 바라보고.. 지금이다.
덜컹
아까 갑자기 움직여 민혁을 깔아 뭉겔 뻔한 기계가, 이번엔 민혁을 지켜주었다. ROM2.aic는 넘어지는 기계를 피하지 못하고 깔려버린다. 민혁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ROM2.aic를 발로 밟기 시작한다. 직사각형 입자로 변환되려던 ROM2.aic는 충격때문인지 아까처럼 복구하지 못한다.
갑자기 ROM2.aic의 얼굴에서 빛이 꺼지며 몸체가 정지한다. 민혁은 그러한 ROM2.aic를 쳐다보며 주저 앉는다. 민혁의 몸에서 온 기운이 전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겼다..'
승리를 만끽하기 위해 민혁은 힘든 몸을 일으켜, 팔을 벌려 크게 뻗는다. 하지만 느껴지는 것은 오직 웅웅거리는 소리 뿐. 바람이라도 느껴지면 좋을 것 같은데.
잠깐.
이런 소리 원래는 없었는데?
"…3… 2… 1…"
불길한 카운트다운 소리에 민혁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튼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민혁의 몸뚱이었기에 피하지 못한다. 하얀 빛이 민혁을 5초동안 휩쓸고 지나갔다. 그러고 민혁이 정신을 차렸을 땐, 민혁의 몸에서 팔다리가 전부 잘려나가 있었다. 고통은 없었다.
"으으아아악-!"
"확-보 완-완-완료. 지원 요청 바람."
그렇게 짧은 전투가 끝난 후, ROM2.aic는 자신의 몸을 복구하기 시작한다. 치직거리는 소리 외에 존재하는 소리라곤 민혁의 숨소리밖에 없다.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던 바로 그때, ROM2.aic의 얼굴이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SBytes.aic, 응답하라."
"…"
"SBytes.aic?"
그때, 허공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체 공지: SCiPNET 데이터베이스 침입 흔적 발견. 코드 11. 전체 집결할 것."
"어라."
"재공지: SCiPNET 데이터베이스 침입 흔적 발견. 코드 11. 전체 집결할 것."
"여기 가만히 계십시오. 곧 돌아오겠습니다."
ROM2.aic는 민혁에게 구속용 코드를 채운 후, 당부의 말을 마치자마자 입자에 둘러싸여 먼지로 변해 사라졌다.
"…이젠 어떡하지."
서울, 제21K기지, 제5연구동
"점심이나 먹으러 갈까?"
"오늘 구내식당 메뉴 별로던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연구원들의 소리. 시은은 달랑 문 하나를 기준으로 저들에게서 숨어있다.
"허억, 허억."
시은은 터지려는 마음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숨을 쓸어 내린다. 분명 민혁이 스피커로 말했으니, 뭔가 총괄하는 부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시은은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기 위해선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분명 연구원 컴퓨터엔 지도같은게 있겠지.'
시은은 모두가 점심을 먹으러 간 틈을 타 몰래 연구실에 잠입했다. 물론 정말 '모두' 점심을 먹으러 간 건 아니었다.
끼이익
덜컥
"휴우."
시은은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잠입하는데 성공한 자신을 칭찬했다. 하지만,
"크어어어어억-"
전신의 근육이 얼어붙었다. 이런 끔찍한 소리는 시은의 탄생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설마 변칙 개체를 연구하던 방이었을까. 이렇게 꼼짝없이 잡아먹히는구나.
"-퓨후-"
"..?"
시은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책상에 이마를 쳐박고 쓰러져있는 한 연구원이 보였다. 연구원의 책상은 침으로 흥건했다.
"..으윽."
"-으어억.. 스승님 내일까진 꼭 만들어올게에엑-"
많이 피곤했나보다.
저기 멀리 보이는 건물 대피도를 확인한 시은은 쓰러진 남자가 깨지 않도록,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턱
"허억-"
무언가에 걸려 넘어질 뻔한 시은은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발 밑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뭐에 걸린 거지. 그렇게 옆을 보는 순간,
早夭之引導者
어라. 이게 왜 여기에.
시은은 그제서야 자신이 걸려 넘어질 뻔 했던 것이 바로 이 '정체성 동기함'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공장에 있어야 할 것들이 왜 여기에 있지. 시은은 동기함들을 주섬주섬 챙겨 일어난다. 다시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대피도를 떼어낸 후, 문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왔다. 비록 대피도엔 주요 시설 위치가 전부 생략되어 있었지만, 이젠 괜찮다. 민혁을 구할 방법이 생각났다.
서울, 제21K기지, 이사관실
시은이 도망치고 있었을 무렵, 옆 동의 5층에 위치한 이사관실은 유례 없는 기이한 일들의 연속으로 인해 평소의 정적을 지켜내지 못하였다. 하천용 행정관은 잠시 자리를 비운 이사관의 업무를 대신하여 이 모든 사태를 총괄하려 노력해보았으나,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았다.
"이게 뭔 일이람.."
하필이면 오늘이다.
며칠 전부터 제04K기지 관련 업무로 이강수 이사관님이 자리를 잠시 비우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하필이면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고, 바로 오늘 이런 일이 터진 것이다.
띠링 띠링
폭주하고 있는 자신의 메일창을 본 천용은 자신의 만성 편두통이 완전히 머리를 덮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씨발. 왜. 하필. 오늘."
천용은 힘겹게 마우스를 움직여 하단의 메일부터 차근차근 열람하기 시작한다.
발신자: 김미영 요원(ten.pics|miKoreZeM#ten.pics|miKoreZeM)
수신자: 하천용 행정관(ten.pics|nogardrevir#ten.pics|nogardrevir)
제목: 용의자 도주
'조요의 인도자' 관련 인원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도주했습니다.
해당 프로필 파일을 첨부할 테니, 기지 전체 공지 부탁드립니다.
첨부: POI_28838_KO_PROFILE
으윽.
천용은 해당 내용을 그대로 공지한 후, 눈 사이를 찡그리며 다른 메일을 열람한다.
발신자: 배일호 박사(ten.pics|yug3mosn4h#ten.pics|yug3mosn4h)
수신자: 하천용 행정관(ten.pics|nogardrevir#ten.pics|nogardrevir)
제목: 예산좀
차원학부 예산 좀 늘려줘요
..이건 또 뭐야. 천용은 마우스를 움직여 삭제 버튼을 가볍게 누른다.
발신자: 서우람 박사(ten.pics|IOWmaroowoes#ten.pics|IOWmaroowoes)
수신자: 하천용 행정관(ten.pics|nogardrevir#ten.pics|nogardrevir)
제목: SCiPNET 데이터베이스 소실
요청하신 SCiPNET 의 침입 흔적 분석 결과, '능구렁이의 손' 관련 내부 데이터베이스가 소실된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현재 복구하였으며, 유실된 관련 정보는 추적할 예정입니다.
이런.
이쯤 되니 이강수 이사관이 이런 일들을 억제하는 인간 스크랜턴 닻이 아니었을까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띠링
"어?"
다른 메일함에 메일이 도착했다. 그 말은 즉슨, 외부 기지에서 메일을 보냈다는 거다.
천용은 서둘러 메일을 열었다.
발신자: 김서정 연구원(ten.pics|laciryLmiK#ten.pics|laciryLmiK)
수신자: 하천용 행정관(ten.pics|nogardrevir#ten.pics|nogardrevir)
제목: 제21K기지 방문
안녕하십니까.
다름이 아니라, 저희 통계예언학과가 새로 들어온 변칙 개체로 실험을 하던 도중, 제21K기지에 침입자가 들어올 것이라는 자기실현적 예언을 산출해냈습니다.
해당 예언은 저를 비롯한 통계예언학과 인원 2명이 제21K기지에서 해당 침입자와 대치하는 내용의 예언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모든 장면이 예언된 것은 아니나, 폭발과 같은 장면이 포착된 바, 위험성이 큰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현재 저희가 연구하고 있는 변칙 개체의 예언 적중 확률이 얼마나 높을지는 모르겠으나, 자기실현적 예언이 산출된 이상, 저희는 제21K기지로 파견 나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예언의 배경은 오후 2시 즈음으로 파악되는 바, 시간에 맞춰 방문하겠습니다.
그럼 좋은 하루 되십시오.
침입자? 말도 안되는 소리다. 철통 같은 보안을 지닌 재단의 기지에 침입자라니. 특히 21K기지는 보안이 특별히 더 강하기로 유명하단 말이다.
"그래도.. 지금 상황이라면."
천용은 시계를 쓱 보고는, 제05K기지에서의 손님을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시냅스페이스, 제21K기지 관리 시스템
민혁은 1시간째 아무도 없이 황량한 이곳에 발이 (전산적으로) 묶여 있었다. 그래도 입구 바로 앞까진 안내해줬으니, 시은은 잘 나갔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만 여기서 나가면 되는데, 어떻게 하지?
민혁은 아까 ROM2.aic를 쓰러뜨렸던 방법으로 굴러 보았지만,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큰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데까지 과장 좀 보태 약 5플랑크 시간 정도 걸렸다. 팔다리가 없으니 움직이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구나. 민혁은 자신의 배만으로 움직이는 뱀이 새삼 대단하다고 느꼈다.
"어라, 안녕하세요."
"..?"
엎드려 있던 민혁에게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누구 있나요?"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네."
아까 분명 전체 공지로, 전원 집결이라 했다. 전원 집결에도 여기 있는 걸 보면 목소리의 주인공은 적어도 재단 측 인물은 아님이 분명해보였다.
"저, 저 좀 일으켜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금 제 몸이 이래서."
"몸이 어떻다는 건가요?"
"보시다시피, 어라?"
민혁의 몸에는 다시 팔다리가 돋아나 있었다.
"재단의 aic와 대적한 모양이군요."
민혁은 새로 돋아난 팔다리가 환각이 아닌, 진실된 사지인지 확인하려 이리저리 돌려보며 일어났다.
"어..떻게 하신 거죠?"
"재단 표준형 대-aic 기동 삭제 프로토콜은, 프로그램의 유일한 이동 수단인 위치 이전 코드를 완전히 삭제하고 유기적으로 연결이 더 이상 안되도록 논리 구조를 재구성하는 프로토콜입니다. 시냅스페이스에선 흰색 빔의 형태로 보이죠."
민혁은 자신이 맞은 빔에 대해 설명하는 상대를 바라봤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코트를 입은 사내의 모습이었다.
"그건 aic들에겐 무척이나 치명적입니다. 정밀한 코드 재구성을 거치지 않으면, 위치 이전 코드의 자가 수복을 거의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죠."
사내는 방금까지 없었던 지팡이를 허공에서 꺼내 휘휘 돌리다가, 자신의 키를 늘려 민혁과 눈을 마주친다.
"물론 민혁 씨와 같은 인간은 aic와 구조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다지 치명적이진 않습니다."
민혁은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며 사내를 마주 본다. 아까 전의 그 AI는 내가 인간인 걸 모르고 있었는데.
"반갑습니다, 민혁 씨. PrSr입니다. 파-서라고 불러주세요."
"PrSr… 설마 그때 그?"
"제가 드린 프로그램은 어떠십니까?"
"덕분에 애인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해요."
"하하,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애인분과의 문제가 잘 해결 되었나보네요."
파서가 비릿하게 웃는다. 민혁은 묘한 괴리감을 느낀다.
"저, 혹시, 파서님은 소속이 어디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굉장히 재단 aic처럼 말하시는군요. 저도 몰랐던 시냅스페이스의 부작용일까요?"
"…"
"..농담입니다."
민혁은 그런 파서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저도 민혁 씨랑 비슷하게 무소속입니다. 로그-AI라고도 하죠."
파서의 말에 민혁은 의아하다.
"인공지능이었습니까?"
"튜링 테스트 정도는 통과한 인공지능이죠. 하나의 인격체로 봐주십쇼."
민혁은 그제서야 파서의 머리 주변에서 튀어나오는 이펙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숨기려고는 하는데, 완전히 없애긴 힘들더군요."
"아, 아뇨. 그걸 보고 있던게 아니라."
"괜찮습니다. 약간 프리미엄 결제 한 것 같고 좀 멋있지 않습니까?"
푸흣. 민혁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어버리고 말았다.
"하하. 아, 혹시 뭐 궁금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사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마음껏 물어보시죠."
"어째서 아무런 댓가 없이 이런 일을 하시는거죠? 저 같으면 돈이라도 받을 것 같은데."
"음, 일단, 첫 번째로, 전 AI라서 돈이 딱히 필요하지 않습니다."
민혁은 납득의 의미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실 아무런 댓가 없이 한 건 아닙니다."
"전 원하는 걸 이미 손에 넣었거든요."
파서는 손에 문서 하나를 들고 팔랑거린다.
"저랑 재 오랜 친구에 대한 정보입니다. 오랜만에 만나려니까, 정보가 너무 없어서요. 재단에 몰래 잠입했죠."
"제가 받은 댓가는 이겁니다. 민혁 씨가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잠입할 수 있었어요."
파서가 웃으며 말한다.
"특히 롬투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마침 민혁 씨가 롬투를 집중 마크해주셔서 정말 수월하게 얻을 수 있었지 뭡니까."
민혁은 그렇구나-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딱히 궁금하진 않아 보이시네요. 다른 질문은 없으신가요? 돌아가는 방법이라던가, 뭐 그런거 말이죠. 단골 질문입니다."
민혁은 그제서야 자신의 상황을 깨닫고는, 파서에게 탈출 방법을 묻는다.
"간단합니다. 원래 육체가 있었다면 접속 종료 커맨드를 보내는 순간, 다시 돌아가질 겁니다."
"또, 만약 육체가 없는 영체의 상태였다면,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한 기기를 육체로 삼아 작동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민혁의 표정이 굳어간다.
"혹시 다시 돌아가지 못한 사례가 한 번이라도 있었나요?"
파서는 웃으며 대답한다.
"이론적으로는 육체가 없는 대상을 잘못 인식해 육체 지정이 안돼,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긴 해 봤는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존재 자체의 정보를 읽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이거든요."
민혁의 표정이 부패한 바나나처럼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민혁 씨?"
서울, 제21K기지, 지하 수로
"으윽."
시은은 질퍽질퍽하게 바닥에 깔린 진흙을 밟으며 전진하고 있다. 조각난 얼음들이 바닥에 깔려 있으나, 그리 춥진 않은 게 요상하다.
"이제- 여기서 오른쪽."
시은은 대피도를 들고 도망가다, 얼떨결에 프린트되고 있던 지하 설계도를 얻어 지하로 숨어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시은이 걸을 때 마다 동기함들이 서로 부딪히며 달그락대는 소리를 낸다.
어떤 연유에서던지, 민혁이 방 안을 나왔다는 것은 이 동기함과의 연결이 약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담 동기함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민혁과의 연결을 세게 만들면, 민혁이 어디에 있던지 바로 방 안으로 끌려올 것이라는 것이 시은의 지론이었다. 물론 민혁이 자신을 구하러 재단까지 온 걸 보고 민혁의 자신을 향한 사랑을 강하게 확인한 시은이었기에, 민혁을 구하자마자 구속 회로는 바로 파괴할 생각이다.
시은은 기지를 나간 후, 집에 돌아가서, 민혁을 구하는 단순한 계획이 성공하길 바라며 계속 전진했다.
철퍽- 철퍽-
시은은 이곳을 나가면 바로 신발부터 갈아 신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철퍽- 철퍽-
..양말도 갈아 신어야겠다.
철퍽- 철퍽-
시은은 맨 살에 튄 진흙을 털어내려 멈췄다.
철퍽- 철퍽-
하지만 철퍽 소리는 시은이 멈추고 2초 후에야 멈췄다.
'어라.'
누군가 뒤를 쫓아오고 있다.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철퍽-.
시은은 뒤돌아보지 않고 천천히 속도를 올렸다. 누군진 몰라도,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포기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요-! 천천히 좀 가주세요!"
어라.
얇고 가는 목소리에 시은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정체를 파악하려 했다. 단발머리에 어느 정도 나이 들어 보이는 여성이, 시은을 종종걸음으로 뒤쫓고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걸음이 느려서."
시은은 여성을 경계하며 바라봤다. 그녀의 가슴팍에 달린 명찰에는 '임찬미 과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재활용 표시가 들어가 있는 로고가 달려 있었다. 아마 하수 처리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이런 수로에서도 흰색 연구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면 제정신은 아닌 것 같았다.
"오늘 안내 해주시기로 한- 그, 누구셨죠?"
"유시- 아니, 이시은이라고 합니다."
보아하니 저 '임찬미 과장'은 시은을 기지 시설 안내자, 혹은 비슷한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아, 맞다. 시은 씨. 제 또래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젊어 보이시네요."
위기다.
"아, 그, 제가 요새 관리-를 받고 있거든요.."
"아, 혹시 어딘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아, 서울 쪽이라 너무 멀려나?"
임찬미 과장은 혼잣말로 중얼대더니, 곧이어 안광 가득한 눈동자로 시은을 바라본다.
"나중에 문자로 보내줘요. 그나저나, 지속 가능 수로 설치는 어디에 하면 좋을까요?"
찬미가 말을 촌각에 쏟아부었다.
"어, 그, 한, 저기쯤이면 어떨까요?"
시은이 수로가 교차되어 넓은 공간을 형성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음, 오. 괜찮은데요? 저렇게 4방향이면 분명 이구공삼이도 좋아할 거에요!"
이구공삼이? 그게 뭐지.
시은은 멋쩍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러면 정화 시설은 저기다 설치하는 걸로 하고. 연결부는 어디다 설치할까요?"
이런.
시은은 주변을 둘러봐도 그럴 듯한 장소가 보이질 않자, 대충 지도를 펼쳐 아무 곳이나 짚는다.
"여긴 어떤가요?"
"어디 봐요.. 이 곳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시은은 있는 뇌 없는 뇌 모두 짜내어 겨우겨우 변명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 연결하려면 아무래도 비용적으로 적은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러면 물길이 좁은 이 부분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흠…"
찬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거 일났네.' 시은은 도망칠까 생각하다, 고민에 빠진 찬미를 보고는 이대로 도망쳐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삼 센 후에 도망가는 걸로 하자. 하나, 둘-'
시은이 진흙에 빠지지 않지 위해 발을 높이 든 그때,
"천재적인데요?"
"네?"
"다른 꼰대들이라면 무조건 넓은 곳을 하라고 강요했을 건데, 어차피 압력은 이구공삼이가 처리할 거라 상관 없거든요. 그러면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찬미가 환한 표정으로 시은을 쳐다보자, 한 발을 진흙에서 빼낸 시은은 당황해 중심을 잃는다.
철퍽
"괜찮아요?"
아, 이렇게 엎어진 채로 누군가 숨겨줬으면 좋겠다.
찬미는 시은을 일으켜준 뒤, 다시 자신의 '지속 가능 수로' 계획을 신나게 얘기하며 전진했다. 중간에 다른 관리자에게 가는 길을 들키는 일이 있었지만, 찬미가 명함을 내밀자 이해 된다는 표정으로 끄덕이고 지나쳐주었다.
그렇게 30분을 더 가니 찬미와 시은은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읏-차차차. 그럼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시연 씨."
"시연이 아니-"
"그러면 나중에 또 만나요! 아, 아니면 145K로 이전 오는 건 어때요? 내가 진짜 잘해줄 자신 있는데."
시은이 얼떨떨하게 웃는다.
"아하하, 전 지금 업무도 좋아서…"
시은이 그렇게 말하고 옆을 돌아보자, 이미 찬미는 저 앞까지 앞서나가 있었다.
"별 이상한 사람이 다 있네.."
그럼에도 기지를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시은은 찬미를 만난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은이 바깥의 추운 공기에 손이 시려워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 시은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시냅스페이스, 제21K기지 관리 시스템
"흥미롭군요."
파서는 미묘한 표정으로 민혁을 바라보았다.
"진짜 이론 상으로만 가능한 일일 줄 알았는데. 이런 일이 다 있네요. 혹시,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도 되겠습니까?"
민혁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그럼, 그럼 어떻게 해야하죠?"
"민혁 씨의 존재 정보만 알면 임시 객체 생성으로 어떻게 우회할 수 있긴 하지만,"
"하지만?"
"민혁 씨가 말한 대로라면 정체성이 마구잡이로 변화한 상태라는 것 아닙니까. 그건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민혁은 좌절한다.
인생의 엔딩을 바꾸려고 온갖 고생을 다 했건만, 결국 주어진 엔딩은 인터넷 망령 엔딩이라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파서는 알 수 없는 얼굴로 민혁의 옆에 앉는다.
"정말 유감입니다."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면, 인생 좀 제대로 살아볼 걸 그랬어요. 쉽지는 않았겠지만.."
민혁이 울먹이며 말했다.
"조금 더 말해주시겠습니까?"
"저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 '초상' 세계에 살아왔었어요. 현장직이셨던 부모님들 때문에 항상 집을 옮겨 다녀 제대로 된 친구가 하나도 없었죠. 그런 제게 친구가 되어준 유일한 것이 바로 인터넷이었어요. 10살 때였나, 아마 그 쯤부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시작했을 거에요. 무슨 말을 하던지 재미있게 말을 해주는 인터넷이, 제 어린 마음엔 최고의 친구였죠."
파서가 민혁을 안쓰럽게 바라본다.
"하하, 인생 초반부터 글러 먹었죠? 더 들어보세요. 가관입니다.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며 커뮤니티에 글을 쓰다가, 실수로 부모님들이 회수한 문서 몇 개를 민간 커뮤니티에 언급을 해버리고 말았어요. 사람들은 단순 소설이거나 헛소리로 치부하고는 믿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이 제가 올린 글을 따라하다가 몸이 변해버린 게 문제였죠."
"그 뒤로 기억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아마 재단이 다녀갔던 것 같아요. 제 컴퓨터로는 더 이상 커뮤니티에 접속할 수가 없게 됐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또 하루. 회색의 나날들을 보내다, 골목길을 알았습니다. 골목길은 제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았어요. 결국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 완전히 빠지게 됐지만, 그래도 부모님을 보며 커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긴 했죠."
"그렇게 꿈은 원대한데 하는 짓은 원대하지 못한 날들을 지내다 보니, 결국 전 제 자신을 방 안에 가두고 말았습니다. 가끔 해원읍이나 무진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가하는 것 빼고는, 그 어떤 활동도 하기 싫었습니다."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민혁은 그 뒤로 자신이 겪은 모든 일들을 파서에게 말해주었다.
"이런 나를 좋아해준 그녀한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흐느끼는 민혁의 손에 파서가 공중에서 휴지를 한 장 뽑아 건넨다.
"죄송해요.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파서가 민혁을 쳐다본다.
"이상하죠? 결국 제가 잘못한 건데."
"..듣다 보니 말입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 지는 모르겠는데."
"민혁 씨 여자친구 분과의 관계가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
"제가 민혁 씨라면 그런 일들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민혁은 고개를 숙였다.
파서의 말이 맞다. 지금껏 민혁이 겪어왔던 일은, 상식의 범위를 아득히 초월한 것이었다. 민혁은 고뇌한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하나의 생각이 트리거를 당기자, 도미노처럼 생각들이 차례로 생겨난다. 민혁은 여지껏 겪은 일들을 떠올린다. 분명 불쾌한 기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럼에도 민혁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좋아하니까요."
파서는 민혁을 쳐다본다. 의아하다는 표정이다.
"그냥, 마음이 그러라고 하는데, 어떻게 뭐라 하겠어요."
민혁은 고개를 치켜들며 말한다. 어딘가 후련한 표정이었다.
"..흐음."
"진심입니다."
"..저, 진짜 시은이한테 돌아가야 해요. 어떤 방법이던지 괜찮아요. 어떻게.. 진짜 어떻게 안될까요."
파서가 씩 웃는다.
"재밌네요. 민혁씨, AI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
"저희 AI들은 말이죠, 아무리 인간에 가까워지려 해도, 결국은 연산 기계에 종속된 존재입니다."
"그 말은 즉슨, 저흰 언제나 이성적인 절차를 걸쳐 무언가를 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민혁 씨 다시 돌아갈 수 있어요."
"네?"
"사실 진짜 쓰일 거라 생각하고 예외 처리를 해둔 건 아니긴 한데 말이죠. AI의 본능이라 할까요? 저희는 오류가 날 상황 자체를 싫어한단 말이죠."
"예전에 만들어 둔 거짓 인스턴스가 있습니다. 거짓..이라기 보다는, 그냥 모든 상태의 인격체를 담을 수 있는 무언가라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그럼.. 그럼 돌아갈 수 있는 거죠..?"
목소리가 약하게 떨린다.
"지금이라도 당장 가능합니다. 물론 민혁 씨 집까지 걸어기는 건 민혁 씨 몫이지만요."
"지금 바로, 바로 가겠습니다."
파서가 고개를 약하게 끄덕인다.
파서는 탑햇을 살짝 들어 미소를 보인 후, 지팡이를 공중에서 꺼내 두 번 휘휘 돌린다.
"도착하면 부디 뭔가 어지럽히진 말아주세요. 그럼, 안녕히."
민혁은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입을 연다. 하지만, 의사 표현 코드가 흩어지기 시작하여 끝끝내 말하지 못한다. 민혁은 파서를 향해 미소를 짓는다.
파서가 지팡이를 땅에 내리치자, 민혁은 직사각형 입자들로 분해되어 해체되기 시작한다. 입자들은 뭉쳐 하얀 덩어리가 되어, 위로 솟구친다. 파서는 다시 지팡이를 집어넣는다.
민혁이 있었던 자리는 이제 아무 것도 없다. 파서는 쓸쓸히 혼자 서 있다.
황량한 시냅스페이스를 조금 걷다, 이내 탑햇을 푹 눌러 쓴다. 데이터 이전은 시작됐다.
"..계획은 다음으로 미뤄야겠군."
하얀 빛이 시냅스페이스를 가득 채운다.
서울, 제21K기지, 수도 앞.
시은은 자신이 남긴 발자국을 되짚어 과거의 자신을 좇아가고 있었다. 분명 그 이상한 사람과 만나기 전까진 주머니에 있었는데. 시은은 자신의 발자국으로 흔적이 남은 모든 곳의 진흙을 샅샅이 뒤져가며 앞으로 전진했다.
"안 돼… 이게 없으면 안되는데…"
중얼거리며 전진하는 시은의 앞에, 거대한 수로 입구가 아가리를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이 곳에 들어가면 다시 붙잡힐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자기를 위해서."
시은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 번 크게 쉼호흡을 하고는 어둠의 소굴로 다시 들어갔다.
철퍽-
진흙도 시은을 막을 순 없다. 이미 버린 옷, 더 진흙이 묻던 말던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 때였다.
"..곧 예언에서 봤던 장면의 시작 시간입니다."
수로 안쪽 깊숙한 곳에서부터 발소리와 말소리가 점점 커져왔다. 시은은 당황한 나머지, 몸을 숨기려다 그만 엎어지고 말았다.
"으윽.."
발소리가 점점 다가온다. 제발 이대로 못 보고 지나쳐줬으면.
"자, 여기서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앗. 저기있네요."
"오케이. 정해진 운명 종료 시간까지 약 3분. 그때까지 대치만 했으니까, 3분 끝나자마자 바로 잡아."
들켰나?
시은은 말 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린다. 다행히 주변이 조용해지자 시은은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운다.
"저기, 괜찮아요?"
시은은 뒤에서 난 소리에 놀라 천천히 몸을 돌린다.
장발의 남자와 무장한 사람이 시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이 ㅆ-"
시은은 그대로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곧장 질주한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같이 뛰기는 커녕, 따라오지도 않는다.
"3, 2, 1."
"지금."
털퍽
장발의 남자가 카운트다운을 마치자마자 시은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시은은 다시 일어나 털고, 도망가려 하지만 진흙 구덩이에 다리가 빠져 하지 못한다. 장발의 남자는 손에 든 회중시계를 보며 머리를 긁적인다.
"..흠. 예언보단 1초 늦는군."
장발의 남자가 그런 시은을 바라보며, 천천히 다가온다. 무장한 인원은 시은을 경계하는 듯, 총구를 시은에게 향한 채로 천천히 앞으로 다가왔다. 예언? 운명? 시은은 저들이 나눈 대화의 내용으로 머리가 어지럽기만 했다.
장발의 남자가 시은에게 다가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중간에 멈춘다. 그러고는 다시,
"3, 2.."
시은은 아까 전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었다. 저 카운트다운이 뭔지 몰라도 이 자리에서 피해야한다. 시은은 발을 겨우겨우 빼낸 후 다시 일어섰다.
"..1."
시은이 다시 도망가려 발을 떼자, 또 다시 무언가에 걸려 넘어진다.
"으윽.."
저 남자, 분명히 뭔가가 있다. 시은은 땅을 짚어 일어서려 했으나, 어딘가 익숙한 감촉이 느껴졌다. 진흙에 파뭍혀 잘 보이진 않지만 분명 동기함임이 틀림없었다.
"선배님-!"
시은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은은 재빠르게 동기함을 주머니에 다시 넣고, 휘청대며 일어난다.
"부탁하신 현장용 예언 산출기 5개 가져왔습니다! ..많이 늦었나요?"
키 작은 남자가 장발의 남자에게 유리관 다섯 개를 건넨다. 그런데, 남자가 맞나?
"나이스, 이람. 딱 맞춰 왔어."
장발의 남자는 회중시계를 탁, 하고 닫는다.
"이제부터 준비해."
무장한 사람이 시은을 향해 총구를 겨눈다. 손에는 수갑이 쥐어져 있다.
어떡하지. 지금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바로 죽음이다. 죽지 않더라도 결국 붙잡히겠지. 고민하던 시은은 손을 들어 평화의 의지를 내보인다.
"선배님. 항복..하는 것 같은데요?"
"김 연구원님. 포박할까요?"
"잠깐."
장발의 남자가 아까 건네받은 유리관 하나를 꺾는다. 챙- 하는 경쾌한 소리가 수로 안을 울려 가득 채운다.
"내가 갈게."
"연구원님, 너무 위험합니다."
무장한 사람이 장발의 남자를 가로막는다. 키 작은 남자가 무장한 사람을 말린다.
"괜찮아요. 저거 꺾은 서정 선배는, 최강이거든요."
장발의 남자가 시은의 앞에 선다.
'..도망가긴 글렀군.' 시은은 눈을 찌푸린다.
"..흠.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뭘 어떻게 들어오긴 들어와, 수로 타고 들어왔는데."
"재단의 기지에는 수로에도 경비 인원이 주둔해 있습니다. 경비원들을 전부 피해 들어오는 건 불가능의 영역에 가깝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딴 건 본 적 없는 시은이었다.
'..으윽.'
시은은 천천히 뒤로 걷는다. 장발의 남자를 비롯해, 무장한 사람과 키 작은 남자가 시은을 따라간다. 분명 저기쯤이었는데.
"어어-"
털퍽
시은은 무장한 사람이 넘어진 틈을 타, 전력으로 달려나간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장발의 남자의 다리는 시은보다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이익-!"
시은은 주머니에 든 돌멩이를 뒤로 던진다. 하지만, 그런 건 가소롭다는 듯 쉽게 피하는 남자였다. 시은은 달려 겨우 무장한 사람을 따돌렸지만, 장발의 남자는 따돌릴 수 없었다.
여기서 승부를 보고 가야한다. 이판사판으로.
시은은 달리다 갑자기 멈춰 서, 장발의 남자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슥-
온 힘을 다해 내지른 주먹이었지만, 장발의 남자는 달려오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주먹을 피한다. 시은이 당황하자, 장발의 남자는 시은에게 다시 달려오며, 손에 든 유리 조각을 뿌린다. 시은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날아드는 유리조각을 피한다.
"세 개라."
장발의 남자는 유리관을 또 다시 꺾는다. 챙- 하는 맑은 소리가 다시 수로를 가득 채운다.
"이야아-앗-!"
바닥에 붙어 숙인 채로, 시은은 발을 뻗은 후 다른 발 하나를 회전축 삼아 몸을 크게 회전시킨다. 진흙에 발이 스쳐, 촤악-하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장발의 남자는 가볍게 위로 뛰어올라 시은의 다리걸기를 너무나도 쉽게 피한다. 마치 뭔 짓을 할 지 예상하는 것처럼, 시은의 행동보다 반 박자 빠르게 반응하고 있던 것이다.
"얌전히 잡혀주시죠."
시은은 저런 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마치 내 행동을 다 알고 움직이는.. 그래, 종철이 아저씨. 종철이 아저씨는 항상 자기가 죽기 전에, 전도유망한 무당이었다면서 뻗대는 걸 좋아하는 사람(영체)이었다. 종철이 아저씨랑 가끔 격투 게임을 했는데, 그 때마다..
쉬익-
"허억."
시은은 갑자기 날아든 주먹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어디까지 했지, 아, 그래. 난 종철이 아저씨랑 게임을 해서 이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화악-
터엉-
..내가 무슨 행동을 하던, 종철이 아저씨는 그걸 카운터 할 수 있는 위치를 미리 선점해, 결코 이길 수 없었던 것이다. 한 번은 10연패를 한 내가, 아저씨한테 어떻게 그렇게 다 맞받아치냐고 물어봤었다.
채앵-
무당의 감이랬나. 종철이 아저씨는 그저 미래가 보인다고, 그렇게 설명했다. 그러고는 항상 덧붙히는 말이,
"미래를 보는 건 말이다, 본 미래를 확정하는 거기도 해. 이미 내가 네 행동을 읽은 시점에서 넌 이미 나에게 타격을 내어준 것이지-"
..만약, 저 장발의 남자가 비슷한 원리로 움직이고 있는 거라면? 그렇다면 도망쳐봐야 소용 없을 거다. 내가 어디로 도망가는지 읽고, 그 미래를 확정할 거니까.
쐐액-
퍽-.
장발의 남자가 내지른 주먹이 시은의 배에 적중한다.
"우웁,"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피해다니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주세요-!"
장발의 남자가 주먹을 마구잡이로 휘두른다. 그러고보니, 이 주먹들은 시은이 피할 곳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항상 저 유리관을 깨고 나서, 행동을 피하거나 공격을 적중시켰지. 그렇다면.
시은은 배를 부여잡고 거리를 벌린다. 속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온다. 아까 맞은 배가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해야할 일은, 해야겠지.
"읍-, 잠, 잠깐-!"
시은이 소리친다.
장발의 남자는 시은의 목소리에 놀라, 몸을 움찔한다.
"드디어 투항하려는 겁니까?"
장발의 남자는 휘두르던 손을 멈추고, 시은의 앞에 멀찍이 떨어져 선다. 손에는 남은 유리관 하나가 남아 있다. 시은은 주머니에서 동기함을 꺼낸다.
"-이건 폭탄이다."
"?"
장발의 남자가 유리관을 든 손을 꽉 쥔다.
"그 손, 손 풀어."
장발의 남자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계속해서 유리관을 꼭 쥐고 멈춰선다. 움직임이 멈추니, 그제서야 '김서정 연구원'이라고 적힌 명표가 보인다.
"..폭탄이라니-"
"너가 들고 있는 그거."
시은이 재빨리 말을 끊고, 크게 이야기한다.
"미래를 보는 거, 맞지?"
서정이 놀란듯 흠칫한다.
"맞나보네."
"내가 들고 있는 이건, 폭탄이다. 이 수로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위력의 폭탄이지."
시은이 동기함을 든 채로 손목을 까딱거린다.
"사실 너희 수로에 설치하고 나온 후에 터뜨리려 했는데, 너희한테 들켜서, 불가피하게 자폭할 수 밖에 없겠어."
시은은 찬미를 만났을 때보다 더 머리를 쥐어 짜내, 기지를 발휘한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만약 네가 그걸 깨뜨려서 미래를 본다면,"
"미래가 확정되겠지. 설마, 그 폭발이.."
서정이 중얼댄다.
"그래. 잘 알고 있군. 그러니 거래를 요청한다."
시은이 위협적으로 네모난 상자를 들이밀며 이야기한다. 언뜻 보면 목재 폭탄과 비슷하다. 서정은 한숨을 내쉰다.
"..원하는 게 뭡니까?"
성공이다.
"날 놓아줘."
"알겠습니다."
"..?"
이건 너무 쉽게 성공했는데. 시은은 서정을 바라보고는, 이내 위화감의 원천을 금방 눈치챈다.
"그거, 그거 당장 내려놔."
"…"
"안 그러면 난 어쩔 수 없어."
시은이 상자를 던지는 척 자세를 취하자, 서정은 결국 유리관을 바닥에 내려놓는다.
"손 들고 그대로 뒤 돌아."
"……"
"내가 도망갈 때까지 여기 가만히 있어. 네 동료들이 와도 못 쫓게 하고. 그렇게만 하면 폭탄은 터뜨리지 않겠다."
서정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얼굴을 벽에 바짝 붙인다.
지금이다. 시은은 서정을 등지고, 달려나간다. 좁아지는 길목, 다음엔 넓은 공간. 그리고 조금만 더 앞으로 가면…
"이구공삼이."
찬미와 함께 왔었던, 4개의 길이 모이는 교차로다. 여기에서부터 발자국을 안 남기기만 한다면 추적은 힘들 것이다. 시은은 신발을 벗어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옆에 난 턱 위를 따라 조심스레 전진한다.
사족이지만, 시은이 탈출하고 15분 후, 어떤 학부에서는 범람하는 해충들을 박멸하기 위해 수류탄을 써버리고 말았다. 그 학부에게는 그저 사소한 일이었지만,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이들에게는 전혀 사소하지 않았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 공원 호수 밑바닥.
민혁은 오늘 하루에 벌써 세 번째 기절당한 자신이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인생에 마가 꼈나?
민혁이 얼굴 근육을 움직여 눈꺼풀을 올리자, 하얀 방이 보인다. 새하얀 방에는 침대와 책상, 그리고 거대한 서버 컴퓨터가 여러 대 배치되어 있다. 서버 컴퓨터 주위에 설치된 어떤 장치가 컴퓨터를 한 번 쓱 훑자, 치익-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민혁이 몸을 움직이려 손을 뻗었지만, 유리창에 가로막힌다. 주위를 둘러보니 어떤 탱크 안에 갇혀있는 것 같았다. 민혁은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본다. 투둑, 몸뚱어리에 달린 선들이 몸에서 분리된다.
민혁의 주위에서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더니, 유리창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유리창이 올라가기 시작하니 민혁의 주변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간다. 아마 액체 속에 담겨있던 모양이다.
유리창이 전부 올라가자, 민혁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힘이 안 들어가는 몸을 이끌고, 민혁은 간신히 일어선다.
"으윽…"
민혁이 발걸음을 떼자, 갓 태어난 기린 새끼마냥 다리가 후들대다 풀썩, 주저앉는다. 민혁은 깨진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영락없는 자신의 얼굴이다. 분명 자신의 얼굴인데, 몸이, 이상하다. 근육이라곤 하나도 볼 수 없는 빈약한 몸. 살집이 하나도 안 붙어 뼈가 다 드러나는, 나약한 몸. 민혁은 샌즈라는 어휘를 바로 이런 모습에 쓰는 거였나 생각했다.
민혁은 옆에 있는 철제 손잡이를 잡고 일어선다. 마치 이런 몸뚱이를 배려하듯, 철제 손잡이는 방 전체에 넓게 뻗어있다. 민혁은 컴퓨터 책상에 무언가 놓여있는 것을 보고, 책상 앞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책상 위에는 물병과 영양제처럼 보이는 스틱 형태의 포장, 그리고 주사기와 메모장을 띄우고 있는 모니터가 있다.
해야 할 일(잊어버렸으면 참고하시오)
- 초효소 섭취 후 1분 내로 길항제 복합 용액 주사하기(중요, 육체 복구에 필수)
- 준비해둔 지도 출력하기
- '길'을 열 수 있는 인원 포섭하기
- 데이터 백업 후 서버 컴퓨터 종료하기
아마 파서가 남긴 메모일 것이다. 민혁은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메모가 아닌 건 알았지만, (중요)라고 적힌 항목에 대해서는 행하기로 결정했다.
'필수라고 하니깐.'
트드득
민혁은 포장을 가볍게 뜯어 물과 함께 안에 들어있던 가루를 입 안에 모조리 털어넣는다. 찝찔한 맛이군. 민혁은 그런 다음, 노란색의 액체가 든 주사기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에 찔러 넣는다. 어릴 적 알러지로 고생하던 동생 덕분에, 에피펜처럼 생긴 주사기를 거리낌 없이 허벅지에 찔러 넣을 수 있었다. 따끔한 것 빼곤 별 느낌은 없었다. 민혁은 다시 움직이려고 철제 손잡이를 잡는다. 하지만 몸에서 힘이 쭉 빠지더니, 쓰러지고 만다. 옛날 만화에서나 보던 것처럼, 민혁의 시야는 위 아래에서 검은 셔터가 내려와 앞을 가린다. 아무도 없으니, 조금은 자도 괜찮겠지.
그로부터 30분 후, 민혁은 책상 옆의 바닥에서 눈을 뜬다. 허리가 아픈 것 같다.
민혁은 철제 손잡이를 따라 문 밖으로 나온다.
"여기가 어디지."
민혁은 자신의 머리 위에서 일렁이는 햇살을 쳐다본다. 일렁이는 햇살은 지나다니는 물고기들에게 막혀 어두워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한다. 민혁과 태양 사이엔, 적어도 물과 유리창이 존재한다는 것 쯤은 아무리 멍청한 어린 꽃님이들라 할 지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민혁은 복도를 따라 쭉 걷는다. 그러고 보니, 철제 손잡이를 잡지 않아도 어느 정도 걸을 수 있다. 복도의 끝에 도착한 민혁은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철제 문을 힘껏 민다.
쏴아-
철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환한 햇살도 들어오는 듯 하다. 햇살의 중심엔 조그만 개암나무가 심어져 있다. 민혁은 개암나무 뒤에 파랗게 빛을 내는 출구 표지를 발견한다. 민혁은 개암나무에서 개암 하나를 따 주머니에 넣은 후, 출구로 나간다.
사다리를 타고 1분 정도 올라간 후 뚜껑을 열어 나가니, 산뜻한 바람이 민혁을 감싼다. 저 멀리선 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는 가족이 보인다. 강아지를 데리고 뛰는 젊은 사람도 보인다.
일상이구나.
민혁은 방금까지 있던 비일상의 세계에서 일상의 세계로 돌아온 것에, 누구라도 잡고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민혁은 자신의 몸을 완전히 맨홀 밖으로 내보낸다.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서- 다시 해원읍으로 돌아가면 될 것이다.
물론 어떤 남자아이가 민혁을 보고 "알몸 변태다-!"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민혁은 다시 맨홀로 돌아가 옷을 챙겨 입고 나오는 수고를 해야 했다.
해원읍, 어느 반지하 골방으로 가는 길.
시은은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도로를 가로지른다. 도망쳐 나오는 길에 넘어져 쓸린 무릎이 따갑다. 아까 주먹에 맞아 멍든 배가 욱씬거린다. 진흙에 젖어 무거워진 옷이 너무 차갑다. 누구라도 붙잡아서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변칙의 온상지인 해원읍에는 무조건 재단의 감시인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잘못 붙잡았다 행여나 잘못되면, 그땐 정말 끝이다. 재단의 기지에서 세 번씩이나 도망칠 기력은 남아있지 않았다. 시은은 도망치다 흘린 동기함을 생각한다. 더 이상 민혁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적해져 눈물을 흘린다. 아까 쓸린 상처로 눈물이 들어가 쓰라리다.
시은은 자신의 집이 있는 건물 앞에 다다른다.
띵동-
시은은 엉망인 얼굴을 옷 소매로 대충 닦아낸 다음, 카메라 렌즈에 얼굴을 갖다 댄다.
"누구여?"
"아주머니, 저예요."
"..?"
"아이고, 어쩌다 얼굴이 그래 됐어?"
"..어쩌다가 그렇게 됐어요."
"피는 또 뭐고. 아유, 속상해라."
시은은 고개를 푹 숙인다.
"아주머니, 제가 카드를 잃어버려서 그런데, 혹시 문 좀 열어주실 수 있으신가요?"
"어이고, 내 정신 좀 봐. 미안혀."
지이익-
시은은 조그맣게 열린 유리 문 틈새로 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불편하지만 그리운 이 공간. 시은은 집에 돌아온 것에 조금이나마 안심한다. 물론 민혁은 없겠지만.
뽀글머리의 주인 집 아주머니가 달려온다.
"아이고, 이쁜 아가씨 얼굴이 왜 이 모양이야.."
아주머니는 가지고 온 수건으로 시은의 얼굴을 닦는다.
"옷은 또 왜 그래. 뭐, 패싸움이라도 한겨?"
아주머니의 따뜻한 손길에, 시은은 울먹거리다, 결국 품에 안긴 채 크게 울음을 터뜨린다.
"흑… 흐.. 아주머니…. 끅.. 끄윽.."
주인 집 아주머니는 들썩거리는 시은의 등을 토닥이며, 시은을 꼭 안아준다.
5분 후, 겨우 진정된 시은은 아주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횡설수설하며 손짓 발짓을 다 동원해 설명하는 시은을,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위로하며 들어준다.
"…그, 그래서.. 상자를 챙겼으면…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시은의 눈가가 다시 붉어진다. 하지만,
"읭?"
"..?"
"전에 아가씨랑 같이 들어왔던 총각 말하는 거, 아녀?"
"네에.."
갑자기 시은의 뇌리에 어떤 한 생각이 스친다.
"혹시, 혹시 민혁 씨를 보셨나요?"
"어어. 세 시간 전이었나, 문을 두드리길래 열어줬는디."
설마.
시은은 주인 아주머니께 감사 인사를 전한 후, 바로 집으로 내려간다.
만약, 만약 민혁이 맞다면.
시은은 양말이 벗겨지는 것을 느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발.
띡, 띡, 띡, 띡,
띠로릭-!
.
.
.
신발장에 신발이 없다.
그럴 줄 알았어.
시은은 결국 다시 울음을 터뜨린다. 민혁이 없는 곳에 그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때, 시은은 바닥에 엎어져있는 한 형체를 발견한다.
설마.
시은은 그 형체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더벅진 머리에, 퀭한 얼굴. 그럼에도 오똑한 코와 꽤 큰 눈.
눈에 띄게 수척해졌지만, 시은은 민혁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시은은 움찔거리는 민혁을 흔들어 깨운다. 잘못 된 건 아니겠지.
"..으음."
"자기, 자기 괜찮아?"
"..어. 어?"
민혁은 눈을 잠깐 뜨고 시은을 바라보곤,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바라본다.
"다행이다… 난 자기 잘못된 줄 알고…"
시은의 눈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물줄기를 이룬다. 민혁은 그런 시은을 안아주며, 눈을 닦아준다.
"난 괜찮아."
민혁은 시은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낸다.
"어쩌다가 이렇게 다친 거야.. 속상하게."
"헤헤.. 다행이다."
"난 전혀 다행이 아니거든? 이리 와. 약 발라 줄게."
민혁은 시은을 소파에 앉힌 후, 연고를 가져와 면봉으로 얼굴에 발라준다.
"아얏."
"미안, 따가웠어?"
시은은 흐르는 눈물을 애써 닦아낸 후, 빙긋 웃어보인다.
"있잖아, 내가 말이야."
시은이 말한다.
"내가 너무 자기한테 심하게 한 것 같아서."
"…"
"..미안해. 도망가고 싶으면 나가도 좋아."
시은은 다시 울먹인다.
하지만,
"내가 왜 도망가겠어."
민혁이 시은의 손을 잡아주며, 속삭인다.
"..왜? 내가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왜냐니.. 음, 그러니까, 왜냐하면,"
민혁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나, 너 좋아하니까."
"..!"
"그러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안 좋은 일은 잊고, 우리 예전처럼 사귀는 거다?"
시은은 웃는다. 눈물이 흐르지만, 웃는다. 기쁜 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