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물고기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가끔 다른 기지에서 우리 기지— 제04K기지로 사람들이 오곤 합니다. 이들은 무언가의 노예가 된 것 마냥 목을 부여잡으며 보이지 않는 개목걸이를 차고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바라봅니다. 그들은 천천히 기지 외부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인 산악로를 건너옵니다. 퍼렇게 멍들은 이들의 다리가 한 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뒤에서 벨로키랍토르 몽골리엔시스 위에 탄 인사이사관보가 아홉 꼬리 채찍을 휘두릅니다. 나는 하염없이 그들을 바라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라보는 것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는 그렇게 믿습니다. 채찍이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짜악짜악 적중할 때마다 이들은 속도를 높힙니다. 금으로 만들어진 강윤상 동상을 지나갈 때즈음이면 절반이 지쳐 쓰러져 벨로키랍토르들의 사료가 됩니다. 누런색으로 변질된 기지 벽을 지날 때즈음이면 8할이 지쳐 나가떨어져 고라니들의 미끼가 됩니다. 그렇게 나머지 2할이 기지 안으로 들어오면 이들은 기지 인원이 됩니다. 나는 그것을 바라봅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기지 정문을 개폐하는 사람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정문으로 이런 죽음의 행렬이 오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사치와 향락의 행렬이 옵니다. 정문 개폐기 옆에 서있으면 상모를 돌리는 사람들과 가야금을 연주하는 아녀자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창문에는 나팔수들이 날린 금가루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바깥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바깥을 봅니다. 정문을 개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달력을 보고, 다시 창문으로 보고, 다시 달력을 힐끔 눈여겨봅니다. 강윤상 이사관이 제01K기지 비리감사회의에서 복귀하는 날입니다. 그는 노래마인에게 하사받은 아프리카코끼리 두 마리가 이끄는 가마 위에 앉아 필라델피아 치즈스테이크를 즐깁니다. 그가 반절도 먹지 않은 고깃덩어리를 던져버리자, 양 팔이 구속된 하인이 그의 옆에 흑당버블티를 살포시 놓아줍니다. 그제서야 강윤상은 만족했다는듯 찌뿌린 표정을 풀고 버블티를 양손에 잡아 들이킵니다. 코끼리의 행렬은 뒤쪽의 기지 내부 의장대 행렬까지 지속됩니다. 기지에서도 그나마 살이 붙고 얼굴이 반반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의장대는 제04K기지 깃발을 휘두르며 다섯 (5 (오 (five) ) )명의 제물에 향유를 붇고 구워 바칩니다. 나는 그 의식의 목적을 모르나, 기지 상부는 이들이 천국에 간다고 말합니다. 상부는 강윤상의 유희로서 불태워지는 이들은 모두 천국에 가서, 구십구명의 재단천사들의 대접을 받으며 호화롭게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상부는 이들은 매일 캐나다 연어회와 속초 광어회, 그리고 삼양라면을 지급받으며 강윤상을 찬양한다 합니다.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보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물고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김 형 또한 이런 행렬에 끌려들어온 불운아 중 한 명이었습니다. 김 형은 자주 저에게 자신이 살던 곳에 대해 말하곤 했습니다. 내가 들은 말에 의하면 그는 제64K기지라는 장소에서 살고 왔다고 합니다. 제64K기지라는 곳은 오만군데에 안개가 지독하게 깔린 곳인데, 그곳 언저리에서 민간 역정보 업무를 했다고 했습니다. 김 형은 술만 마시면 자신이 정의를 지키다 잘렸다고 자주 소리쳤습니다. 바닥에 깔린 느릅나무 속껍질이 문드러질 정도로 난동을 부리다 어느 순간 곤히 잠들곤 했습니다. 김 형 말로는, 그는 단지 상사가 담배를 피운 것을 감추기 위해 민간인 3명을 죽이라 명령받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는, 그것이 싫어 거부하자 이곳으로 이직되었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의 진위여부를 모릅니다. 하지만 김 형은 그걸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아니, 어쩌면 원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 형이 겪은 모든 일든은 안개처럼 뿌옇기에— 어쩌면 여기서라도 그 안개를 알고 싶었기에— 아, 나는 무지랭이입니다.
나는 제04K기지를 나가본 적이 없기에, 자주 많은 것들이 궁금했었습니다. 그래서 27시간간의 서류업무가 끝나고 나면 김 형 옆에 자주 붙어서 조잘거리곤 했습니다. 김 형, 64K기지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무진이라는 장소는 재밌나요? 그곳에선 뭘 자주 먹나요? 김 형은 그런 질문들에 답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김 형은 64K기지를 모든 것이 불명확한 장소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두 안개로 둘러쌓여있고, 밖에 있는 괴물들도 안개를 갑옷삼아 전진하며, 사람들 사이에도 안개가 껴 서로가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그곳, 그것이 제64K기지고 또한 무진이었습니다. 그러나 김 형은 먹는 것 만큼은 말을 아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제04K기지는 배급으로 가시덩쿨 수프만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자주 들풀이나 소나무 껍질 등을 채집해 씹어먹곤 했습니다. 김 형은 어쩌면 그런 상황에 식량을 논한다는건 사치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모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형은 일이 잘 풀려 제37K기지로 전근간다고 했습니다. 불현듯 공지된 이 날벼락에 나는 김 형에게 말할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당연하게도, 멀리 있는 사람과는 연락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기지에서 나가는 모든 편지는 인사부의 검열을 받아 철저하게 세탁되어 나갑니다. 당연하게도 세탁기에 돌려진 편지들은 결국 종이가 전부 찢어져, 읽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깥세상과 연락은 어렵습니다. 김 형이 가기 삼 일 전 나는 작업이 끝난 김 형에게 가서 김 형, 무진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김 형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형님형님하고 사정하자 김 형은 마지못해 일어나 나를 잡고 소리치며 절대로 후회하지 말라 다짐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울 뻔 했으나 이내 알겠습니다, 무조건 후회 안합니다, 하고 수락했습니다.
김 형 말로는 무진 사람들은 물고기라는 신묘한 것을 먹는답니다. 우선, 이것의 피부는 단단합니다. 그러나 돌만큼 단단하지는 않고 사람만큼이라 바늘이나 작살에 자주 꿰여져서 기지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꿰여진 놈들은 피가 흐르는데 이런 것들은 기지 조리부가 처리해서 내놓는다고 합니다. 물고기의 속살은 뽀얀 색일 때도 있고 시뻘건 색일 때도 있는데, 김 형은 물고기 종류는 잘 모른다고 하여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종마다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물고기는 살아있을 때 손질해야 그 맛이 아주 좋다고 하는데, 문제는 칼로 배를 가르면 이놈이 퍼덕거리며 저항한다는 말입니다. 격렬하게 퍼덕거리는 것이 끝나고 나면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저항에 물고기 요리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김 형은 그리 말했습니다. 그래서 잘 모르겠는 나는 김 형에게 다시 한 번 형님형님하고 사정하며, 형님, 그러면 물고기라는 것의 사진은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김 형은 사진은 없고 종이를 달라 하며 타원 몇 개를 슥슥 그렸습니다. 종이를 바라보자 타원 세 개와 삼각형 하나가 같이 붙어있는 그림이 보였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양에 나는 몸에 닭살이 돋는 것이 느껴졌지만, 신기함에 꾸욱 참았습니다. 김 형은, 이 끝에 있는 것이 눈이고, 여기 삼각형은 지느러미라는, 물살에 저항할 때 쓰는 기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순간 나는 저항이라는 금지어를 쓴 것에 놀라 비명을 질렀으나, 김 형은 태연하게 미안하다며 사과했습니다. 아무래도 무진에는 저항이라는 단어가 금지어가 아닌가봅니다. 나도 그걸 몰라 김 형을 호되게 꾸짖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기지 배급 수프를 힘겹게 삼키며 과연 이 물고기라는 괴이는 진정 있는 것인가 아닌 것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이중사고를 하던 어느 날, 김 형이 사라졌습니다. 김 형은 이번에 37K기지에서 몇 번 있는 아동보육사 시험에 합격해 그 쪽으로 갔다고 했습니다. 얌마 이 봐라, 복지도 좋고 월급도 좋고 보험도 빠방하게 들어준다는데 우예 안들어가나, 하며 웃던 김 형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는 배급식을 뜹니다. 희여멀건 국물에 뾰족한 가시 몇 개가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참 볼만하다, 생각했습니다. 수프를 먹자 목에 박힌 가시에 끔찍한 이물감이 들었지만, 금방 목 사이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가 그리 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지나번에 기생충이 박힌 이후로는 틀어막질 못 해서 내버려두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리고 귀가 먹먹할 정도의 삐익-삐익- 거리는 소리가 울렸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 또 기지에 누가 들어오나보구나, 하고 생각하던 찰나 나 자신이 정문 개폐조라는 점을 자각합니다. 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기지 정문에 다가가자 이번에도 사치스러운 행렬이 보입니다. 강윤상은 이번에 제21K기지 유곽에서 구인한 오이란 두 명을 대동한 모양입니다. 두 명의 허연 분장으로 얼굴을 가린 여자들이 강윤상 옆에서 옷자락을 만지작거립니다. 이에 강윤상은 몇 가지 음식을 더 시키는 것으로 화답합니다. 박수소리가 두 번 나자 이번에는 피골이 상접한 웨이터 한 명이 로제떡볶이, 뿌링클, 싸이버거 세트등을 가지고 와 그의 자리에 놓습니다. 강윤상은 떡볶이 한 그릇을 들어 후루룩 마신 뒤 여자들에게 무용을 명합니다. 그러자 여자들이 고혹적인 춤을 추며 가슴골을 드러내고 강윤상에게 아부합니다. 뒤에서는 여전히 연구원 다섯 명이 몸을 비틀며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나는 저들이 누군지 모릅니다. 나는 물고기가 뭔지도 모릅니다.
이들이 가까이 오기에 나는 힘겹게 레버를 당겨 정문을 엽니다. 그러자 귀가 찢어질 정도의 나팔소리와 함께 강윤상이 탄 코끼리가 기지 안으로 옵니다. 나는 문을 닫아버립니다. 아주 세게 닫았습니다.
다시 기지 안쪽으로 돌아와 벌집처럼 그득그득 밀집된 사무실에 들어갑니다. 몸을 세네번 접자 나에게 할당된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봅니다. 행정팀 일부가 지난번에 한은영 이사관보의 이름을 한은연이라고 잘못 적었다는 이유로 채찍질을 당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그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나 빼고는. 그들 주변에서 벨로키랍토르가 그르렁거리며 가죽을 벗깁니다. 이사관보의 아홉 꼬리 채찍이 이들의 쎄엑쎄엑 소리를 내며 이들의 살을 가르자, 이들은 몸부림치며 비명지릅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봅니다. 온통 그런 이들 뿐입니다. 채찍이 다시 한 번 살을 가릅니다. 이번에는 식초와 소금으로 점철된 아홉 꼬리 채찍입니다. 이에 가격받은 사무팀들이 살려주십쇼, 제발 살려주십쇼, 나도 아이가 있습니다 하며 빌어댑니다. 이사관보는 다시 한 번 채찍질을 합니다. 몇 명은 아직까지 뽀얀 살색을 보이고, 몇 명은 살이 찢어져 시뻘건 피를 흘립니다. 이미 반쯤 죽어가는 사람들은 바닥에서 몸부림치며, 주변 책상에 자기 다리를 박으며 퍼덕퍼덕거립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이사관보가 다시 채찍질을 합니다. 끔찍한 비명이 울려퍼지며 근육 가닥이 뜯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채찍에 붙은 가시에 근육이 꿰어져 잡아뜯어진겁니다.
나는 이제 물고기가 뭔지 압니다. 우리 모두가 물고기입니다. 타원과 세모와 지느러미와 아가미는 없지만 우리 모두가 물고기입니다.
그런데 나는 저들이 누군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