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로윈 날의 서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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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티는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옷을 입었다. 숙소 천막 밖으로 조용히 나가 평소의 흰색과 빨간색과는 다르게 주황색과 검은색으로 온통 꾸며진 서커스를 보자 잠이 완전히 깬 리버티는 바로 식당 천막으로 달려갔다. 오늘은 할로윈이기도 했지만 리버티의 생일이었기에, 가끔 운이 좋으면 몇몇 단원들에게 생일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중 하나가 생일 케이크일지도 모르고.

이번 생일에는 케이크 있으려나? 아니면 호박 파이? 얼른 아침 먹고 먹을래!

기대에 부푼 마음을 안고 뛰어가던 리버티는 하마터면 누군가와 부딪힐 뻔했고, 부딪히기 바로 직전에 멈춘 리버티는 누구인지 살펴보기 위해 위를 올려다봤다.

"죄송해요! 할로윈이라 너무 신나서— 단장님?!"

리버티는 하필 허먼 풀러와 부딪힐 뻔한 것이었고, 단장의 굳은 얼굴을 보자 리버티는 반사적으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단장님이 너무 화났으면 큰일인데! 제발, 제발…

"죄송합니다! 앞을 잘 보고 다녔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

허먼 풀러는 리버티가 부딪힐 뻔했다는 것이 심히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리버티, 리버티, 리버티. 서커스 단원이 그렇게 부주의하면 곤란하잖아! 자신의 단장을 못 알아보고 냅다 부딪히다니!"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더 잘 보고 다닐게요, 단장님…"
"그게 끝이야? 더 진심으로 사과해야지! 서커스에서—"

리버티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생일 아침부터 혼나는 건 7살 아이를 울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던 것이다.

"죄—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이 때 중간에 끼어든 건 마침 지나가던 매니였다.

"풀러, 오늘은 할로윈이기도 하고 이 아이의 생일이잖아요. 계속 붙잡아 두지 말고 풀러는 가서 공연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매니, 그래도 리버티가 부딪힐 뻔했으니까 혼나야 하지 않겠어?"

풀러가 투덜대자 매니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풀러의 말에 답했다.

"부딪히지도 않았잖습니까. 리버티는 충분히 혼난 것 같으니 가자고요."

풀러는 조금 더 씩씩대더니 리버티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기고는 곡마단장 천막으로 다시 돌아갔다.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니고!"
"… …네, 네에…"

리버티는 이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고, 매니는 울고 있는 리버티를 보더니 코트 주머니에서 야광 팔찌 하나와 조그만 곰인형 열쇠고리 하나를 꺼내 주었다.

"리버티, 해피 할로윈. 그리고 생일 축하한다."

리버티는 매니에게 선물을 받자 아까까지 흘리던 눈물을 뚝 그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 감사합니다…! 너무 멋져요…"
"단장님 반응에 너무 신경쓰지는 말라고. 사탕은 공연 끝나고 너와 벨이 사탕 받으러 다닐 때 줄게."

그렇게 선물로 리버티를 진정시킨 매니는 풀러를 따라 사라졌고, 리버티는 매니에게 받은 선물을 주머니에 소중히 넣고 다시 식당 천막으로 향했다.


식당 천막에 도착하자마자 리버티를 맞아 준 건 서커스의 동갑내기 친구인 벨이었다. 벨은 리버티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면서 반겨 줬고, 자신의 옆자리에 리버티 몫의 베이컨을 얹은 토스트 한 접시를 놓아 주었다.

"리비! 늦었네? 미리 받아 뒀어! 같이 앉아서 먹자!"
"벨! 고마워!"

리버티는 벨의 옆자리에 가서 앉자마자 매니가 준 선물들을 벨에게 보여 주면서 자랑했고, 벨은 리버티의 선물들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리버티의 선물 자랑이 끝나자, 벨은 자기 주머니에서 조그만 종을 하나 꺼내 리버티에게 건냈다.

"이거, 음, 내가 공연할 때 입는 옷에서 떨어진 종이긴 한데 너에게 선물하려고 숨겨 뒀어! 너가 예전에 종이 귀엽다고 했잖아! 생일 축하해, 리비!"
"벨… 고마워! 역시 벨이야! 오늘 저녁에 공연 끝나면 같이 사탕 받으러 다니는 거 잊지 마!"
"당연하지, 리비!"

벨에게 생일 선물을 받고 서로 신나게 얘기하는 사이 리버티의 부모님도 식당 천막에 도착해 있었다. 리버티의 아버지는 친구와 신나게 얘기하는 아들을 보고 허허 웃었다. 많이 신났군. 나도 할로윈 때면 이렇게 즐거워했었지…

"그렇게 신나? 생일 축하한다, 리비."
"고마워요, 아빠!"

리버티는 토스트를 빠르게 먹고는 혹시 디저트로 나올지도 모를 케이크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케이크… 있었으면 좋겠는데! 저번 생일 때는 호박 파이였지만… 파이여도 괜찮긴 한데 그래도 케이크였으면! 리버티가 기다리는 동안 리버티의 부모님이 어느새 케이크를 가져왔다. 리버티가 좋아하는 딸기맛 젤리가 올라간 버터크림 케이크였다. 비록 큰 케이크는 아니었지만, 리버티는 그것에 만족하고 가족과 벨, 그리고 중간에 식당 천막에 들어오는 다른 단원들에게 생일 축하를 들으며 케이크를 먹었다.


할로윈은 서커스가 꾸며진 색만 바꿔 놓지 않았다. 단원들의 의상도 바꿔 놓았다. 벨은 평소 입던, 하얀 성가대 의상을 닮은 의상에 적당한 크기의 하얀 날개가 달린 천사 의상 대신 조그만 종이 잔뜩 달린 중세의 궁정광대 같은 의상을 입었고 리버티는 평소의 녹색 개구리 의상 대신 새까만 박쥐 날개가 달린 뱀파이어 의상을 입었다. 리버티의 뱀파이어 의상은 할로윈 분위기와 리버티의 공연에 동시에 어울리는 의상이었기에 리버티는 기분이 좋았지만, 벨은 평소의 천사 의상을 그대로 입고 싶은 모양이었다.

"천사 의상도 할로윈에 어울리는데. 내 애칭이 종이긴 해도 좀 너무한 것 같아!"

벨은 토라진 표정으로 입을 삐죽였고, 리버티는 그런 벨을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잘 어울려, 벨! 다음에는 천사 의상을 그대로 입어도 괜찮을 것 같지만… 같이 무대 보러 갈래?"

할로윈을 맞아 대천막의 무대도 평소의 알록달록한 장식들 대신 할로윈 느낌이 가득한 호박과 박쥐, 그리고 거미줄 등의 장식들로 꾸며져 있었다. 리버티와 벨은 그 무대를 가만히 보다 다시 무대 뒤로 돌아갔고, 심심했던 둘은 공연 전까지 저글링 연습을 하다 리버티부터 공연을 시작했다.


리버티와 벨 같은 어린 단원들에게, 할로윈의 묘미는 공연 때 입는 다른 복장이나 다르게 꾸며진 대천막의 무대보다는 사탕을 받으러 다니는 트릭-오어-트리팅Trick-or-Treating에 있었다. 물론 평소에 가끔 다른 단원들에게 사탕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할로윈날 자기가 원하는 분장을 하고 받으러 다닌 사탕은 무언가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대천막에서의 공연이 끝나자마자, 리버티는 (이번에는 앞을 제대로 보고)자신이 지내는 숙소 천막으로 달려가 부모님께 화장을 지워 달라고 부탁했다.

"저 얼굴 지워 주세요! 얼른 사탕 받으러 갈래!"

리버티의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것 같은 아들을 붙잡고 물과 비누로 얼굴을 씻겨 주면서 말했다.

"그렇게 급해? 얼른 지워 줘야겠네! 서커스 밖으로는 나가지 말고 다른 단원들 천막만 돌아다녀야 한다, 리버티. 알겠니?"
"네! 벨이랑 같이 다닐게요!"

얼굴이 깨끗해진 리버티는 할로윈날마다 늘 입었던 허수아비 복장으로 빠르게 갈아입고는 사탕을 담을 베갯잇을 챙겨 숙소 천막 밖으로 나왔다. 벨도 다른 단원의 도움을 받았는지 화장을 지우고는 까마귀를 닮은 복장을 입고 베갯잇을 챙겨 나온 상태로 리버티의 숙소 천막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리버티와 벨의 첫 목표물은 서커스의 명사수 카우보이, 제더다이어였다.

"리버티, 얼른 사탕 받으러 가자! 일단 제드 형부터 찾아갈까?"
"그래! 제드 형은 늘 사탕을 주니까. 가자!"

평소에도 둘에게 사탕을 자주 주던 제드였기에 제드가 트릭-오어-트리팅의 첫 목표물이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제드 본인도 그걸 예상하고 있었기에 개인 숙소 천막 밖에서 리버티와 벨의 목소리가 들리자 광이 날 정도로 닦던 리볼버를 바닥에 조심히 내려두고는 레몬맛 사탕을 조금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사탕 안 주면 장난칠래요! 사탕 주세요!"

리버티와 벨이 동시에 외치자, 제드는 쿡쿡 웃으며 둘에게 레몬맛 사탕을 한 주먹씩 주고는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제드는 자신의 여동생과의 수백 년 전 추억을 떠올리면서 잠시 우수에 젖은 눈빛이 되었지만 리버티와 벨은 깔깔 웃느라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 눈치채기에는 너무 어렸던 탓도 있었다.

"당연히 줘야지! 이 귀여운 허수아비와 까마귀야! 이렇게 귀여우면 줄 수밖에!"
"고마워요! 해피 할로윈!"
"그래, 리비랑 벨도 해피 할로윈! 밤이니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리버티와 벨은 같이 깔깔 웃다가 제드가 쓰다듬는 것을 멈추자 인사하고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고, 제드는 다시 천막 안으로 들어가 리볼버를 마저 닦기 시작했다.

내게도 해피 할로윈. 앞으로 몇 번의 할로윈을 더 챙겨 줄 수 있으려나…


제드에게 사탕을 받은 뒤, 리버티와 벨은 다른 단원들이 묵는 단체 숙소도 돌면서 베갯잇을 사탕이나 다른 간식거리로 가득 채웠다. 이제 남은 건 사탕을 줄 리가 없는 단장님을 제외하면 매니와 이키뿐이었고, 리버티와 벨은 저 둘을 찾아다니다 마침 이키의 공연 연습을 지켜봐 주던 매니와 맞닥뜨렸다.

"사탕 안 주면 장난칠게요!"
"사탕 안 주면 장난칠래요! 사실 매니 씨는 살짝 무서워서 장난 못 치겠지만요…"

사탕을 받을 때의 단골 대사는 둘이 동시에 말했지만, 리버티는 뒤에 말을 살짝 덧붙였다. 매니는 그 말을 하면서 시선을 피하는 리버티를 보고는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거꾸로 뒤집힌 얼굴 때문에 티가 덜 나긴 했지만).

"아까 생일 선물 받았을 때는 좋아했는데 이런 반응이면 곤란한걸. 그래도 약속은 지켜야겠지?"

매니는 리버티와 벨에게 조그만 포장에 든 알록달록한 곰 모양 젤리를 몇 개씩 주었다.

"리버티는 오늘 생일이니까 하나 더. 생일 축하한다, 리비. 해피 할로윈."
"감사합니다!"

리버티와 벨은 매니에게 젤리를 받고 가려다 자신도 사탕을 줘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 이키에게 붙잡혔다. 이키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둘에게 어디선가 꺼낸 카라멜을 한 줌씩 줬다.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안 줄 수는 없잖아! 너희 둘은 나랑 같은 광대가 아니니까 너무 많이 먹진 말고. 해피 할로윈!"
"이키 누나도 해피 할로윈!"

그리고 이키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리버티를 위한 선물까지 꺼내 리버티에게 건냈다. 서커스 천막의 색인 빨간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조그만 회전목마 오르골이었다. 오르골이 조그맣다고 해도 티가 나지 않게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가 아니었지만, 이키는 평소에 마술 공연을 하듯 자연스럽게 오르골을 자신의 주머니에서 꺼냈다.

"생일 선물이야. 생일 축하해, 리버티!"

리버티는 오르골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어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말 하나하나가 서커스에 세워지는 회전목마의 말들을 조그맣게 만들어 놓은 것처럼 생긴 오르골.

"감사합니다, 이키 누나. 너무 아름다워요…"
"뭘 줘야 할지 고민했는데, 할로윈이니까 사탕은 많이 받았을 거잖아? 그래서 다른 걸 주고 싶었거든. 매니랑 내가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리버티는 오르골을 베갯잇 안에 넣으려다 마음을 바꿔 조심스럽게 들고 가기로 했다. 베갯잇 안에 넣었다가 산산조각이라도 나면 슬플 것 같았다.

"사탕 감사합니다! 해피 할로윈!"

리버티와 벨은 매니와 이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각자의 숙소 천막을 향해 걸어갔다.


리버티는 벨이 지내는 숙소 천막 앞에서 벨과 헤어졌다. 벨이 숙소 천막으로 들어오자, 벨과 천막을 같이 쓰는 단원 하나가 벨이 할로윈 의상을 벗는 것을 도와 주는 소리가 들렸다. 리버티도 자신과 부모님이 지내는 숙소 천막으로 돌아와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할로윈 의상을 벗었다. 얼굴에 딱히 분장을 더 하지는 않았기에, 리버티는 바로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번에도, 정말 즐거운 할로윈이자 생일을 보냈어! 내년 할로윈도 이렇게 즐거웠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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