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9월 1일 13시 21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중앙 구내 식당.
"격리이사관보님?"
"으응…? 아, 자네군.."
"아니, 이렇게 큰 식당에 가뜩이나 사람도 없는데, 혼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아계시는 이유가 뭔가요? 머리 좀 벗겨졌다고, 진짜 자식들 다 떠나서 명절날 손자, 손녀만 기다리는 노인 행세 하시는거에요? "
"하아… 그러게… 예전엔 이 식당도 가득 차있던때도 있었는데…"
"아니, 그 뜻이 아니…"
"내가 꼬맹이때, 막 202K기지에 새로 막 부임했을땐 말야."
"이래서 사람이 없었네."
1998년 7월 5일 15시 02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중앙 구내 식당
"이야 우리 꼬맹이 격리관! 밥먹어?!"
"음,켁?! 시,식샤 마시꼐 하셧… 커,커억, 켈록"
"아 됐어, 됐어. 편하게 먹어, 편하게. 점심 맛있어?"
"으,음 꿀꺽… 저, 그게. 오늘 첫끼입니다…"
"아니, 그러면 안되지! 너 한국인 아니야? 한국인은 밥심이지!"
"아, 근데 오늘 아침에 격리 실패 사태 때문에…"
"야. 그러니깐 네가 안된다는거야."
"예?"
"나 때는 말야. 저기 괴물들이 동료들 뜯어 먹고 있을때, 옆에서 나도 같이 고기 구워 먹었어. 왜? 체력 관리도 일이야, 일. 밥 먹는것도! 쉬는 것도! 자기 관리하는것도! 다 일이다 이말이야! 네가 만약 못 먹고, 못 쉬어서 병걸려봐. 그럼 일은 누가해? 근데 요즘 것들은 뭐 점심 시간을 안 줍니다~ 야근이 잦습니다~. 야, 원래 그런거야 원래. 그 사이에 짬짬이 자기 관리를 하는게 능력이야. 능력. 그런데 그렇게 핑계만 대면 되겠어?"
"아, 안됩니다."
"아니~ 우리가 어디야? 응? 대한민국 최대 기지잖아. 응? 그런 기지에서 근무하는 격리관의 마인드가 이래서 되겠어? 너가 잘 해야해, 너가. 그래야 너가 잘 되는거고, 그래야 재단이 잘 되는거야? 알았어?"
"네, 네… 알겠습니다."
"내가 이거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니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말고. 배운다는 자세로! 응? 원래 이런거 사회 나가면 다 강연이니, 특강이니 돈 내면서 듣는 이야기인거야? 알았어? 지금 너 때가 중요해. 너 때 습관을 잘 못 들여놓으면, 진짜 나중에 힘들어지는거야. 알았어?"
"예…"
"그럼 어서 먹고. 난 가본다? 그냥 기억 속에 남겨 놓지말고 이런거 있으면 좀 필기해라 필기해. 니 뇌가 기억해 봤자 얼마나 가겠어? 엉? 기록으로 남겨야지, 그래야 오래 가는거야. 내가 나중에 검사한다? 알았어?"
"네…"
"그럼 간다. 이따 보자"
"…하아… 밥 다 식었네…"
[전 기지 인원에게 전달합니다. 전 기지 인원에게 전달합니다. 현재 유클리드급 개체 격리 파기로 인한 개체 탈출, 이하 적색 경보를 내립니다. 전 기지 인원을 매뉴얼에 따라…]
"…하아아…"
2023년 09월 1일 13시 21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중앙 구내 식당.
"…그렇게 시끌 벅적했던 기지가. 그리워… 사람 냄새 가득했던 그 때가…"
"그 회상을 진짜 필기한걸 보면서, 토씨하나 안틀리고 재현한게 제일 무섭네요."
"와아아아~"
"응?"
"아. 제3유치원 아이들이네요. 제 사무실 근처에서 자주 봤어요."
"그런데, 왜 저 아이들이 여기로? 아동과 청소년은 교육 시설에서 식사를 하도록 되어있지 않던가?"
"요즘 수도관 문제로 단수된 시설이 늘었어요. 정말 크기만 쓸데없이 크고 낡아서는…"
"하지만 자네 사무실 근처라면 여기서 오는데 제2 유클리드 격리동을 거칠텐데…?"
"거기 이제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럼 제 5 유클리드 격리동은…?"
"거긴 작년에 중학생용 실내 체육관으로 바꿨어요."
"…제 4 안전 격리동…"
"저저번달에 제21K기지로 싹다 이관했잖아요."
"…제 3 안전…"
"거기가 지금, 제3유치원이잖아요"
"하아…"
"쓸데없는 회상 할거면 저 가도 되죠?"
"나때는 말이야…"
"아, 제발."
"그래도. 내가 꼬맹이시절에는… 마음속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었어…"
1998년 08월 15일 21시 11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제 제 3 유클리드 격리동, 4번 격리실 부속 연구실
"하아…"
"피곤한가?"
"아, 격리팀장님…"
"꼬맹이녀석, 벌써부터 눈에 다크써클이 장난 아니구만, 이 의자 좀 써도 되나? 서류더미가 대신 앉고 있어가지고…"
"죄,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치우겠습니다!"
"아냐, 아냐, 죄송할 것까지야. 대신 문서 좀 보지."
"네에…"
"…"
"…"
"…자넨 말이야… 이 일이 즐겁나?"
"네?"
"그러니깐, 아무도 알아 주지 못하고, 그 어떤 새로운 발견도 다른 사람에게 알릴 수 없는, 이 일이 재밌는가?"
"…"
"나는 말일세… 정말로 재미있다네… 당장 지금 자네가 진행하고 있는 이 실험… 격리실 사운드 좀 켜보지"
"아, 네 알겠습니다."
"지직…직…으아아아 씨바아알!! 꺼내줘 시발!!!"
"엄마! 엄마! 살려줘! 엄마아아아!!"
"나는 아무도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그저, 이런 톡톡 튀는 실험 과정을 보는 것이 좋네."
"씨발 살려줘! 거기 보고 있는거 알아!!! 우리 말도 듣고 있잖아 씨바아아알!!"
"하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데이터는 일전에 이미 증명된 것들 밖에 없거든요."
"그러면 어떤가? 자네가 성장하지 않았는가? 그 누구도 피해보지 않았는데 무엇을 걱정하나?"
"내 팔! 내 팔이 떨어졌어! 내 팔!!!"
"안 보여… 아무것도 안보여… 내 눈이 어떻게 된거야…"
"제 노력이… 의미 있는건가요? 제가요?"
"하, 자신감을 가져봐 꼬맹이. 자네는 이미 훌륭한 재단의 일원이야. 그도 그럴것이 벌써 이렇게…"
"끄아아아앆!!!"
"훌륭하게 재단 연구원의 본분을 다하고 있지 않나."
2023년 09월 1일 13시 21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중앙 구내 식당.
"…다만 지금은… 그때의 자긍심 따위는 환상이 된지 오래야…"
"어쩐지 격리이사관보님이랑 윤리위원회 연락관님이랑 엄청 사이가 안좋더니만…"
"즐거운 식사시간에 그새끼 말은 꺼내지 말지."
"저는 하나도 안 즐거운데요…"
"…어라? 저 애기, 저러다가 넘어질…""
"…아이고"
"으아아아앙!!! 선생니이이"
"아유. 괜찮아?"
"…"
"…"
"…"
"…내가 꼬맹이 시절에…"
"그 정말 죄송한데, 말씀하신 즐거운 식사시간에 이사관보님의 회상을 들어야할 이유가 있나요?"
"… 미안하네"
"…"
"…"
"…"
"…"
"…하아… 뭔데요. 꼬맹이 시절에.
"…! 그, 그래 그러니깐…"
1999년 2월 03일 11시 02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제 제 1 케테르 격리동 메인 연구실
"…zzz"
"꼬맹…음?"
"…쿠울…"
"야 꼬맹아."
"쿠우…커헛,헉! 녜, 네엣!"
"너, 여기서 뭐하냐? 니가 케테르 관련 업무를 할 게 있었나?"
"아니…저…"
"너 창수 선배님이 문서 정리 작업 시켰잖아. 근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저, 그게…저…"
"야,야. 쫄지마 새꺄. 내가 너 잡아먹냐? 응? 너, 나 알잖아? 이런거 한 두 번으로 뭐라 안하는거. 하지만 내가 뭐라고 했어?"
"…제대로 말 안하는거는 혼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새끼야. 그러니깐 혼내기전에 말 해봐."
"그… 1팀장님이 문서 정리 작업을 시키셨는데…."
"응."
"그러다가 이 과장님이 어차피 관련 업무라고 차주 실험 계획서 정리도 부탁하셨다가…"
"응."
"해당 계획서상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경리부서에 확인하러 갔다가,.."
"응."
"집행 확인서 누락 전달 좀 해달라고 제3연구실로 갔다가… 가서 실장님이 그럴 리가 없다고 막 소리치시면서 다시 확인 해보라고 해서 갔다가, 경리과장님이 그럼 본인이 올 것이지 왜 다른 사람 시켜서 지랄이냐고 해서 해당 내용 전달하다가 연구실장님이 던진 재떨이에 맞아가지고 응급처치 하려고 의료부서로 갔는데 머리 깨진거 가지고 치료받으러 오는 개념없는 놈이 어딨냐고, 탕비실가서 해결하라고 해서 탕비실 갔다가 청소부 아주머니께서 피를 뚝뚝 흘리고 돌아다니면 이거 누가 치우냐고, 니가 치울거냐고 화내셔가지고 진정시키려다 결국 같이 청소하다가, 근처 케테르 격리 파기가 일어나서 대피하려는데 가장 힘 넘치는 어린애가 어딜 나이 많은 사람보다 먼저 대피하려 하냐고 해서 가만히 대기하다 특무부대장님이 너 뒤지려고 환장했냐면서 빨리 대피하라기래 대피하는 도중에 경리과장님이 왜 이야기 전달하는 도중에 사라졌냐고, 그래서 지금 일이 엄청 꼬이지 않았냐고 해서, 관련 후속 처리 업무 도와드리다가 다 끝날때즈음 재격리 성공해서, 지금 인력이 부족하니깐 힘 쓸 줄 아는 사람은 복구 작업 좀 도와달라길래, 거기에 젊은 남성은 저 하나 밖에 없다는 이유로 가서 벽돌 나르면서 복구 하고 있다가 연구실 데이터도 일부 손상되었다고 해당 데이터도 복구 좀 해놓으라고 해서 작업 중에 그만 졸았습니다…"
"음…그래?"
"네…"
"…으음…"
"…그럼 그 김에 내 자료도 같이 업데이트 좀 해놔라."
"…네"
2023년 09월 1일 13시 35분. 대한민국 경기도 남양주시 ███████, 제202K기지 중앙 구내 식당.
"…"
"…"
"…그래 네가 보기엔 이상하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말이야… 자네 그거 아나? 푸른 들판에 핀 꽃보다 절벽에서 힘겹게 봉우리를 튼 꽃이 더 아름다운 법이라는 걸… 지금 아이들이 웃으면서 뛰노는 이 기지를 보고있으면 마치 낙원같기도 하지."
"…"
"하지만 정말 괜찮은걸까? 이런 곳에서, 이런 환경에서. 우린 정말 양지를 위해 음지에서 죽어나갈수 있을까? 음지에서 싸우기 위해선 음지에서 준비를 해야 하는 법. 이런 활짝 핀 양지에 있어봤자…어두운 그림자에서 죽어간 동료들 뒤를 따라가지 못할까봐… 난 두렵네…"
"이사관보님…"
"왜 그러는가?"
"…그냥 이사관보님은 당하기만 하고 후배들한테는 그렇게 못해서 개꼬운게 아니고요…?"
"…"
"…"
"…그래도 최소한 이사관보한테 개꼽냐는 소리만 안했으면 좋을거 같아…"
"…"
"…"
"…"
"…"
"하부지!"
"…할아버지 들을 나이는 아닌데 말이지…"
"애들 보면서 나때는 하고있으면 할아버지 맞죠 뭐."
"아니 그렇지만, 아직 결혼도 못해봤는데…"
"하부지! 서여니 안아주떼요!"
"…"
"아니 애가 안아달라면 좀 안아주시면 되는걸 왜 그렇게 뭐 씹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어요? 안녕? 이름이 서연이에요? 오빠가 안아줄까요?"
"오빠 아냐! 아저찌야! 아저찌 시져! 하부지 조아!"
"…그래도 아직 스물일곱인데… 아니다, 너희한테는 아저씨겠지 뭐. 이사관보님은 그래서 그렇게 계속 쳐다보기만 하실거에요?"
"…"
"저기요?"
"…"
"이사관보님?"
"…"
"하부지 서여니 시러…?"
"…"
"그 이사관보님 인성파탄자같으니까 애가 안아달라고 하면 좀 안아주시지 그래요."
"…"
"내가 말을 말지… 서연아, 아저씨랑 놀까요?"
"…히끅, 히훅… 으아아아아앙 하부지가 서여니 시러해! 흐아아아앙! 으아아아앙! 아아아앙! 후아아앙! 흐앙! 히끅! 흐아아앙!"
"…"
"…"
"…"
"…………. 후… 이리 오려무나."
"히끅… 히끅… 하부지… 히끅… 서여니 안시러? 히끅"
"…그래, 이리 오려무나…"
"하부지… 딸꾹, 서여니 에뻐?"
"…그래 그래"
"하부지… 서여니, 딸꾹, 기여어?"
"…그럼 그럼"
"히히… 딸꾹, 서여니 하부지 조아"
"…"
"…"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사관보님이시죠? 아이들이 많아서 잠시 놓쳤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선생님도 고생이시네요."
"…어서 데려가게"
"그럼요 그럼요, 서연아 선생님이랑 맛있는 밥먹으러갈까? 오늘 계란이가 나온다는데~"
"께란? 서여니 께란 조아!"
"…"
"…"
"…"
"…"
"그래서 아기를 안아본 소감은 어떻게 되시나요?"
"…"
"…"
"…축축하고, 시끄럽고, 묵직하고, 성가시군"
"…역시 그때 일들이 인성을 파탄낸게 틀림없어…"
"뭐라고 했나?"
"아뇨, 그냥 식사 하시고 들어가시라고요."
"그렇네, 벌써 식사시간을 24분이나 소모하다니. 업무로 돌아가야겠군. 자네도 식사 마치고 업무에 집중하고, 그렇다고 끼니를 대충 때워서는 안되네. 한국인은 밥심이야. 자기관리도 능력이고 식사 제대로 못해 업무에 영향이 가서는 안되네, 그리고…"
"네네, 아까 말씀하신걸 그대로 하시네요, 꼭 잘 먹고 자기관리 철저히 해서 갈테니 먼저 가세요."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