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사냥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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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아. 빨리 손 씻고 와."

"어? 이 아저씨는 누구에요? 무섭게 생겼다."

"네 삼촌이야."

그 말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떳다.

"와! 삼촌이요?"

서지후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서성철을 응시했다.

어린 시절의 여동생을 똑 빼닮은 눈. 그러나 묘하게 풍기는 그 역겨운 동물…

호랑이의 냄새.

이 아이의 아버지를 찢어 죽이려면, 이 냄새에 익숙해져야 한다.

"와앙!"

그때, 서성철이 눈을 번쩍 뜨고 서지후에게 달려들었다. 서지후는 어깨를 살짝 돌리는 것으로 가볍게 피했고, 서성철은 몸을 던진 그대로 땅바닥에 철푸덕 부디쳤다.

"꾸엑."

서지후는 한 손으로 서성철을 들어 다시 침대에 던졌다. 그러자 서성철은 눈을 동그랗게 떳다.

"우와. 삼촌 힘 짱 세다."

방금 전 충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것인가? 바닥이 살짝 무너질 정도로 그대로 들이받았는데. 서지후는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녀석이 호랑이의 자식이라면 충분히 납득 갈 만한 일이었다.

"삼촌은 무슨. 아저씨라 불러라."

"엄마한테 오빠면 저한테 삼촌이잖아요."

"…내겐 그렇게 불릴 자격이 없다."

서성철은 서지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지만 이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저씨, 근데 궁금한게 있어요."

서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여전히 서성철의 살짝 노란 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에 고정한 채였다.

"엄마는 저한테 한번도 가족 이야기를 해주신적 없어요. 아빠 이야기도 삼촌, 아니지 아저씨 이야기도…그래서! 궁금해요, 삼촌이 누군지."

서지후는 부를 거면 아저씨인지 삼촌인지 하나만 확실히 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선 참았다. 아직 애인데 별 수 있나.

"그냥 백수지."

"백수? 멋있어요!"

"뭐?"

"책에서 읽었어요. 백수라는 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백수의 왕은 알아요. 백수의 왕 사자! 그러니까 삼촌은 사자 친구쯤 되는 거죠?"

그런 의미였나. 서지후는 진정 백수의 왕이라 불릴 만한 자들을 떠올렸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비루한 인간일 뿐이었다. 옆에서 은혜가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라 부르라니까. 그리고 너 몇 살이냐?"

"일곱살이요!"

"그래, 백수란 말도 알고 기특하네. 엄마가 교육을 잘 시켰나 보다."

서지후는 아이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인생 마지막 사냥을 할 동기가 더 커지는 기분이었다.

이런 생물을, 자신의 피붙이를 내버려두고 도망친 존재가 절대 선한 산군일 리는 없다.

악한 호랑이는 단죄한다. 겸사겸사 남은 가죽은 비싸게 팔릴 것이고.


"자고 가지. 괜찮은데."

"아니야. 할 일이 있어서. 이거 받아라."

"이게 뭐…잠깐만!"

서지후는 1억이 든 체크카드를 건네준 후 은혜의 집을 나섰다. 홀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 게다가 휴식이 아닌 단독행동을 했다는 것을 마스터가 알아차린다면 삼대천이 꼬일 수도 있다. 바로 적대하지는 않겠지만, 은퇴하려는 계획이 흐트러진다.

그러나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언제나 그랬듯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사냥하면 된다. 서성철의 냄새는 기억했다. 오래 산 호랑이는 그 특유의 체취가 완전히 고정된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언젠가 찾아낼 수 있다.

서지후는 기척을 지우고 홀로 있을 곳을 찾아 들어갔다.

조용한 방 안에 들어 선 후, 서지후는 코트 안쪽에서 사냥 도구들을 꺼내 정비했다.

그때, 서지후의 감각 안에 익숙한 향기가 훅 느껴졌다.

서지후는 순간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곧이어 그 아이가 호랑이의 자식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 순한 얼굴은 여동생을 쏙 빼닮았기에, 자꾸만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지우고 마는 서지후였다.

아니, 어쩌면 잊고 싶은 걸지도. 여동생이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아저씨! 문 열어주세요."

"집에 돌아가라."

"싫어요! 삼촌이랑 더 있고 싶어요!"

서지후는 한숨을 푹 쉬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이 이외의 다른 문제는 없었다. 그가 문을 열자 서성철을 방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엄마가 잠 집에서 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서지후는 철저히 흔적을 지우고 있었지만, 혹시나 방심했다가 은혜와 아이가 위험해지는 일을 만들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서성철의 고집도 만만하지는 않았다.

서지후는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안된다. 차라리 네 엄마한테 말해놓을 테니 오늘은 같이 자자."

서성철의 냄새에는 익숙해질 필요도 있다-라고 합리화 하며 서지후는 은혜에게 연락을 했다. 은혜는 흔쾌히 수락했다.

"아싸!"

"그렇게 좋냐."

"친구들이랑 엄마는 너무 약해서 같이 놀면 아파해요. 아저씨는 힘 세니까 놀아줄 수 있잖아요."

그 말은 서지후의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다. 그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저 아플 뿐이었다.

"그래, 오늘은 마음껏 놀아라."


"크어…"

신나게 놀고 완전히 골아떨어진 서성철의 코골이를 들으며 서지후는 오랜만에 잠을 잤다.

마스터가 개발한 수많은 약품 중에는 뇌를 끊임없이 흥분시켜 잠을 자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약물도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만큼은 자고 싶었다. 10년만에 사냥터가 아닌 곳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잠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번에도 냄새였다. 무수한 향기 중 유난히 그 기척을 죽인 한 냄새. 서지후의 평소 표현에 따르면 그 냄새는 너무나 이질적으로 '조용'했기에, 오히려 서지후는 그 냄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수면탄. 대인용은 아니군. 코끼리들 재울때나 쓰는 거다. 무식하기는.'

서지후를 제외한 모두가 자고 있는 상황에서, 서지후는 창문 밖의 그림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문세희."

그 말에 그림자는 잠시 움찔했다. 숙련된 사냥꾼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도 못했을 짧은 순간이었다.

"오랜만이네. 서지후."

그림자에서 나타난 여자는 아직 어린 티를 벗어나지 않은 소녀였다.

"이젠 그냥 반말인가?"

"사냥감한테 존대하는 사냥꾼이 더 이상한 거 아냐?"

문세희는 총구를 겨누며 이죽거렸다.

"마스터가 시켰나. 날 죽이라고."

"아니. 그랬으면 어설프게 수면가스를 뿌리면서 등장하지도 않았겠지. 그딴게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걸 아니까."

"나를 위해 뿌린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총을 사용하기 위해 목격자들을 재운 거라고 판단했었는데 틀렸나 보군."

서지후의 대답에 문세희는 싱긋 웃었다.

"스승님, 감이 많이 떨어지셨네. 이거 대인용이 아니잖아. 사실 당신 말고 당신 뒤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목표야. 바로 어제 놓친 줄 알았던 호랑이의 기운을 느꼈으니까. 애기 호랑이란걸 알았을 땐 살짝 실망했지만…오히려 기회란걸 알았지."

서지후는 침을 삼켰다. 빠르기도 하군.

"무려 산 호랑이들의 왕을 잡는 일이야.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은 한반도의 신수를 잡는 일이라고.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 참 고마운 일이지. 당신이 가면 느긋하게 사냥할 생각이었는데, 하필 저 꼬마가 당신을 따라 가출해 버리는 바람에 일이 꼬였어."

서지후는 생각에 잠겼다.

"잠깐."

문세희는 서지후의 움직임을 곧바로 포착하고는 총구를 들어올렸다. 과민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문세희가 아는 서지후라면 이 반응속도조차 부족할 지 몰랐다.

"허튼짓 하지마.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당신 머리에 호흡기관을 수십개로 만들어 버릴 꺼야."

"아니, 우리 목적이 같은 거 같아서 말이지."

서지후의 말에 문세희는 대답없이 총구를 더 가까이 들이댔다. 서지후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난 정보가 부족하고, 넌 경험이 부족하다. 네가 찾는 그게 이녀석의 아비라면, 난 그놈이 갈갈이 찢어지는 것만 보면 된다. 호랑이 간이든 가죽이든 네 걸로 해라."

그 말에 문세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 했다.

"흐음…그럴러면 일단 저 아이를 이용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서지후는 불쾌감을 안으로 집어넣고 담담하게 말했다.

"아니. 날 믿어라."

서지후는 문세희를 설득하는데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긴 하는데…내가 좀 급해서 말이지. 딱 일주일 안에 못 찾으면 그냥 저 애를 죽여서 산맥에다 뿌릴거야. 그러면 산군이 기어나오던가 하겠지."

"…과격한 건 여전하구나."

"힝. 그걸 누구한테 배운 건데."

문세희는 손을 내밀었다. 사냥꾼들끼리의 불문율, 손을 내보인 자는 공격하지 않는다. 악수를 건넨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반쯤 상대에게 맡긴다는 의미였다.

문세희는 서지후를 스승으로서 인정하기에 그 강함을 경계했지만, 그만큼 서지후의 성품 역시 잘 알았다. 그렇기에 문세희는 서지후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서지후는 문세희가 내뻗은 손을 잡았다.

"네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일주일 안에 잡을 수 있겠지.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뭔데?"

"마스터에게 내가 사냥에 참여한다고 이야기 하지 말아줬으면 한다."

"아, 그건 걱정하지 마, 요즘 나는 정확히는 생활건강 소속이 아니야. 여전히 사냥꾼이긴 하지만, 좀 다른 걸 사냥하거든."

"설마 스포츠 쪽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가. 그건…"

서지후는 말을 삼켰다. 인간 사냥. 그건 문세희의 성격에 맞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그 길을 선택했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돈이 많이 필요해서. 돈이 목적의식인 단체랑은 일하기 편하잖아?"

애써 밝게 웃는 문세희를 보며 서지후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는 평생의 대부분을 홀로 사냥하며 살아왔기에,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어떻게 위로해줘야 할지 몰랐다.

"그럼 사냥감의 간략한 정보를 들어보도록 하지."

그렇기에 서지후는 서로가 각자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사냥을 할때 사냥꾼들은 모든 걸 잊고 사냥에 몰입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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