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천벌, 최후의 날, 외계인 침공, 소행성 충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SCP나 격리되어있는 케테르급 SCP를 떠올린다. 그래, 드디어 그 개새끼들이 일을 터뜨렸구나.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언젠가 한 번쯤은 그 무시무시한 XK급 시나리오를 몸소 체험하게 되리라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받아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하늘을 스멀스멀 침식해가는 거대한 불구름을 올려다보면서 우리는 본부의 연락을 기다린다. 땀이 식어가고 몸이 떨려온다.
SCP-███가 상자 안에서 덜컹댄다. 확보하고서 일주일을 가만히 있던 녀석이었는데. 흑색 연기가 하늘의 절반을 뒤덮었다. 피부가 따끔거리고 속이 울렁거린다. 눈에 보일 듯 굵은 바람줄기가 허공에서 강풍과 맞물린다. 회오리가 휘돌고, 지평선을 입에 넣은 시커먼 아가리가 숨을 들이킨다. 천둥, 그리고 번개가 친다.
“여기는 기동특무부대 ██-█. █████다. 본부는 응답하라.”
대장이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무전기를 향해 혼잣말을 한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본적이 없었다. 저렇게 초조해하는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다. 무섭고, 가련하며, 절망적이다. 대장이 우리를 돌아본다. 언제나처럼 그 재수 없는 미소를 지어보였으면 좋을 텐데. 우리는 대장을 바라본다. 연막이 우리 머리 위 하늘을 먹어치운다. 밀림은 고요하다. 바람소리만 웅웅댄다. 천둥, 천둥, 또 다시 번개가 친다. 공장 굴뚝만한 번개가 숲을 태운다.
“여기는 본부. 기동특무부대 ██-█ █████는 응답하라.”
“기동…”
대장이 숨을 들이킨다.
“기동특무부대 ██-█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무슨 말인가? █████는 자세한 상황을 보고하라.”
희극이라도 연기하듯 우린 모두 일제히 눈썹을 찡그린다.
“█████? 상황을 보고하라. 지금 무슨 상황인가?”
우리는 덜컹대는 상자를 바라본다.
“아니 우린… 아마도… 우리가 지금 SCP-███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한 것 같다. 지금 상황을 보고하겠다.”
재단 측 인원과 회의 끝에 우리는 이 SCP가 환각을 일으킨다고 결론짓는다. 무전이 끊기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린다. 대장은 또 그 재수 없는 미소를 짓고. 먹구름이 우리 머리 위를 넘어간다. 우리는 다시 밀림 속으로 들어가 귀향길을 서두른다.
“…SCP…응답…………현재 XK급 시……응답하…………”
나뭇잎이 바람에 스쳐 사그락댄다. 긴장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무전소리로 들린다. 상자 안에 든 놈이 다시 난리를 피운다. 왠지 놈이 비웃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 이 빌어먹을 자식아, 우리가 다 니놈의 꼼수에 넘어갔었구나. 세계멸망 시나리오라니, 하긴 그런 게 그렇게 쉽게 벌어지는 것도 아니고.
“…하라! 이 무전을 듣는 모든…은 즉시……………반복………”
천둥소리가 대지를 뒤흔든다. 번개가 번쩍이고 하늘에서 불덩이가 내린다. 천벌, 최후의 날, 외계인 침공, 소행성 충돌― 혹은 위험하디 위험한 SCP들의 폭주. 언젠간 그놈들이 족쇄를 풀고 세상을 망칠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늘은 아니었다. SCP-███가 이번엔 대놓고 요란하게 웃는다.
불덩이가 우리를 덮친다. 상자는 여전히 덜컹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