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퀸타 코르다

첼리스트 루카 첼레스테 귀한, 이번 〈라 퀸타 코르다〉 공연은 화록청에서

솜누스일보 — 202█.05.15

한동안 몽환계를 떠나 "성우현"이라는 예명으로 물질계에서 활동하던 유명 첼리스트, 비르투오소 루카 첼레스테가 5월 복귀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되었다. 첼레스테는 복귀와 동시에 제17회 〈라 퀸타 코르다〉를 공연할 것임을 밝혔으며, 그 장소는 고위험군 오네이로이 세계 화록청으로 드러났다.

잠시만, 솜누스? 저기요?
하하… 전 아직 공식적으로 공연 내용을 밝힌 적이 없는데.

첼레스테는 오네이로이 활동에 복귀함에도 만나 자선재단에서의 활동 역시 지속할 것임을 표명했다. 이에 첼레스테는 "더 많은 사람을 돞고 싶다"며, 더 나아가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위해 더욱 부단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첼레스테가 공연 장소를, 그것도 〈라 퀸타 코르다〉의 장소를 화록청으로 발표한 것에 많은 꿈꾸미들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2의 시우파니아"라 불리는 화록청은 현재 기원 불명의 거대하고 강력한 독립체(이하 "화록청")가 점유 및 통치하고 있다. 첼레스테의 복귀 소식과 함께 화록청의 유해성과 테러 행적 역시 다시금 조명받았다. 일각에서는 특유의 밈 기반 반(反)장막 테러 활동으로 오네이로이에 극심한 피해를 입혔던 오윤희가 화록청과 동인이라는 추측 역시 제기되고 있다. 특히, 첼레스테가 과거 아나사바스 측에 작곡 도움을 받은 전적이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와는 별개로 화록청을 "녹빛 우상"으로 일컫는 등 과격한 언행 또한 화제가 되었다.

솜누스, 솔직히 저 싫어하죠?

첼레스테는 이번 〈라 퀸타 코르다〉에 화록청 본인을 포함한 극소수의 관객만을 허용할 생각이라 밝혔으며, 이에 적잖은 팬들이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평생 솔로 활동을 이어오던 첼레스테가 악단 창설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으로 인해 공연을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다. 실제로 마에스트라 에노테라악단은 현재까지도 "루카의 목적을 이룬다"는 명목하에 활동하고 있다. 다만 이에 첼레스테 본인이 직접 관여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에노테라와 첼레스테는 최근 █년 동안 접촉한 정황이 없기 때문이다. 평소 차분하기로 유명한 에노테라는 첼레스테의 복귀 소식에 기쁨을 금치 못했다.

첼레스테의 후계자 또한 이야깃거리이다. 공식적 언급은 없었으나 다수의 팬은 에노테라의 악단에 첼레스테의 제자가 존재한다 믿고 있다. 유력 후보는 성명 불명의 어항 머리를 한 꿈꾸미로, 에노테라의 악단을 상징하는 달맞이꽃이 어항 내부에 자리해 있다. 간혹 푸른 눈과 흑발을 가진 소년으로도 묘사되며, 닮은 외모로 친자 의혹 또한 제기되고 있다. 팬들은 첼레스테가 은퇴할 경우 이 소년이 첼레스테의 첼로를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첼레스테의 유명 첼로 독주회 〈라 퀸타 코르다〉의 이름은 그의 동명의 애착 악기 라 퀸타 코르다The Fifth String에서 유래됐다. 퀸텟 중 하나로도 유명한 이 순백의 첼로는 첼레스테의 오네이로이 첫 데뷔 때부터 그의 곁을 지켰다. 라 퀸타 코르다가 처음으로 그 모습과 선율로 하여금 수많은 꿈꾸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그 유명한 별의 신호들 사건 당시이다. 2005년 첼레스테는 다섯째 교단의 대규모 정신재해 공습으로부터 민간인 구조에 적극 기여했으며, 이때 제1회 〈라 퀸타 코르다〉가 최초 공연되었다.

"별과 같이 되리라…" 하하, 이 말이 어찌나 안쓰럽던지.
아뇨, 저는 다섯째주의자가 아닙니다. 아니고말고요.

상세는 불명이나, 같은 퀸텟인 망자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심령체에 강대한 영향을 끼치듯 라 퀸타 코르다 역시 오네이로이에 직접적이고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첼레스테는 라 퀸테 코르다의 능력을 화합과 협력의 광범위한 촉구에 주로 활용하나, 최근 논란이 되었던 포코 아 포코 모데라토 엔데믹 역시 촉진시킨 정황이 발견되어 평판이 크게 실추되기도 했다. 첼레스테는 이에 거듭 사과를 표명하며 "잘못된 일인 줄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에라, 이젠 저도 모르겠습니다.
에노테라 쪽에 피해 가지 않게만 적어주세요.

여타 퀸텟이 그러하듯 라 퀸타 코르다 역시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확실한 것은 라 퀸타 코르다를 포함한 이 다섯 개의 악기는 매우 오래되었으며, 시대에 따라 모습을 바꿔왔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연주로 지하의 왕 하데스마저 감동시켰다는 위대한 음악가, 오르페우스 역시 퀸텟의 소유자로 보는 꿈꾸미들이 많다. 진위는 불명이나, 몇몇 오르페우스교 출신 꿈꾸미들은 오르페우스의 리라 역시 라 퀸타 코르다처럼 순백이었다고 증언했다. 이들은 오르페우스교가 보관하던 퀸텟이 갑작스레 사라진 것에 대해 첼레스테를 의심하고 있다 밝혔다. 이렇듯 라 퀸타 코르다의 출처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순백의 악기에 대한 소문은 이 외에도 더 존재한다. 아카드 제국 출신의 어느 꿈꾸미는 "유독 음악을 좋아하던 어느 소녀"가 종종 새하얀 리라를 들고서 홀로 연주하는 광경을 자주 보았다고 전했다. 해당 꿈꾸미는 소녀의 연주를 듣고 난 이후 몽환계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전했다. 당시 현악기는 습득 난이도로 인해 대접이 매우 좋았는데, 꿈꾸미는 소녀 역시 그간 동경했던 시인, 아카드 제국의 공주이자 제사장인 엔헤두안나의 하녀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소녀가 열여섯이 되던 해 반란에 휘말려 사망한 이후, 그녀의 리라를 본 이는 없었다 한다.

세이 일 미오 테조로. 에노테라 미오.
음, 많이 피곤한 것 같네요. 이런 변덕도 다 들고.

오는 5월, 화록청에서 공연 예정된 곡들은 다음과 같다.

제17회 〈라 퀸타 코르다〉 공연 순서


1. 망원경

2. 포코 아 포코 모데라토

3. 피오레 디 루나

4. 오르페우스의 찬가

5. 화록청의 플루토

6. 분홍별




HaYul. (@HaYul.) — La vengeance est un met que l'on doit manger froid.


Rosewater (@rosewater.) — Does a falling tree even make a sound?

  • 앞으로는 자주 같이 산책하거나 하지는 못하겠네.

    그런데 선생님이 원체 유명하신 분이셨나? 격리실에서 뵐 때는 항상 혼자셨는데. 후계자니 뭐니 소리도 처음 들어보고. 선생님이랑 비교하면 난 이제야 걸음마를 뗀 수준이니까.

HaYul. (@HaYul.) — La vengeance est un met que l'on doit manger froid.

  • 유명하지. 물론 쌤도 쌤이지만 그 첼로 부르는 게 값이니까. 다루기도 까다롭고. 그래도 역시 퀸텟은 퀸텟이더라. 너 없었을 때 라 퀸타 코르다 녹음본 없이는 잠도 못 잤거든.

Rosewater (@rosewater.) — Does a falling tree even make a sound?

  • 그러면 이제 같이 안 있어 줘도 되는 거지?

HaYul. (@HaYul.) — La vengeance est un met que l'on doit manger froid.

  • …이러기야?

Rosewater (@rosewater.) — Does a falling tree even make a sound?

  • 하하, 농담이야. 농담.

    음, 그럼 우현 선생님은 그 첼로를 열여덟 때부터 써오신 거네. 단장님과는 그때 서로 만나신 건가?

HaYul. (@HaYul.) — La vengeance est un met que l'on doit manger froid.

  • 더 예전일걸. 라 퀸타 코르다가 애초에 단장 소유였으니까. 이름 붙인 건 쌤이 처음인 것 같지만. 그 난리통에 부서지지도 않고 같이 꿈속으로 넘어온 것 같다더라. 하긴, 앵간하면 망가질 일 없는 것들이니.

Rosewater (@rosewater.) — Does a falling tree even make a sound?

  • 글쎄… 내 기억과는 조금 다르네. 항상 썩어있었거든. 앞판이 누런 곰팡이로 망가져 있었어. 안 그래도 노란색이랑 초록색 엄청 싫어하셨는데.

HaYul. (@HaYul.) — La vengeance est un met que l'on doit manger froid.

  • 잠깐, 뭐? 퀸텟이 썩었다고? 어쩌다가? 아니, 어떻게?

Rosewater (@rosewater.) — Does a falling tree even make a sound?

  • 나도 잘은 몰라.

    카르코사에서 온 어린아이, 그 이상은 말씀 안 해주셨거든.





다섯을 모으면 소원을 들어주는 악기라… 하하, 또 다섯이네.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

이십 년 뒤의 내가 보이는 건 그래도 조금 신기하네. 음, 저렇게 생겼구나. 주변은 또 온통 녹색이고.

또 이러네. 심장이 빨리 뛰고 땀이 흘러. 좀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녹색을 좋아했던가?

음, 학교라도 나왔으면 좀 좋았을 텐데.

열여섯 살에 죽었다고? 와, 나랑 동갑이구나!

아, 미안해. 고의는 아니었어. 그, 혹시 얼굴 같은 건 없어? 표정이 있으면 내가 더 조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소원… 글쎄.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것, 쯤이려나. 네 소원은 뭐였어?

응. 당연하지. 엔헤두안나는 사천 년도 더 전에 죽었는걸.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 음, 그럼 내가 하나 새로 지어줄게. 어디 보자, 예쁜 달님이니까…

그래, 에노테라. 에노테라 어때? 달맞이꽃이라는 뜻이야.

아, 이탈리아어랑 한국어 둘 다 모르는구나. 하하, 괜찮아. 나도 아카드어는 할 줄 몰라서. 그래도 꿈이라서 말은 통하니까.

그냥, 좋은 뜻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거든. 어머니도 좋아하셨고. 두 분 기념일 때마다 아버지가 항상 사오셨는데.

벌써 몇 년 전이더라. 내가 정상적으로 태어났다면, 그날 무슨 표정이라도 지어드릴 수 있었을 텐데.

에노테라.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너도 나와 같은 것을 눈에 담고 있으니까.

모두가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날까지.





Quinta

█월, ███의 ██에서

오르페우스. 만인의 오르페우스.

위대한 시인이여, 홀로 장밋빛 거성을 눈에 담았던가?

무엇의 상(εἴδωλον)이 그대 눈만을 그리도 사랑했나?

그가 이르기를

별의 이름은 결핍(Ανάγκη)이라 하더이다.

████ (@deleted user) —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 위대한 오르페우스 이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시인이 있었다. 우연히도 그녀는 별을 보았고, 우연히도 악기는 그녀를 불렀다.

    악기를 쥔 소녀는 반란의 도시로 침전했다. 동경하는 시인을 따랐으나 끝내 그리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내면의 황색을 잠재우고 고통의 고리를 끊어냈다. 구원받은 소녀는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 (@deleted user) —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 위대한 오르페우스. 우연히도 그는 별을 보았고, 우연히도 악기는 그를 불렀다.

    악기를 쥔 성인은 명계의 땅으로 침전했다. 에우리디케. 금욕하지 못한 그는 내면의 황색을 잠재우지 못했다. 디오니소스의 의식은 행해졌고, 성인은 고통의 고리를 끊어냈다. 구원받은 성인은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 ████ (@LucaCeleste) —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 위대한 오르페우스 이후, 영혼 없는 아이는 세상의 빛을 보았다. 우연히도 그는 별을 보았고, 우연히도 악기는 그를 불렀다.

    악기를 쥔 아이는 어른이 되어 화록청의 창가로 침전한다. 그 무엇보다 짙은 아이의 황색 욕망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멀지 않은 훗날 붉은 뭇별로 침전하게 될 것이다. 비로소 아이는 구원받을 것이다.

La Quinta Corda (@5thQuintet) — 그리고 역사는 반복된다.

  • 그리고 악기는 다음 주인을 기다린다. 결핍이 머금은 자들을 헤아리며.



혹시 이 보이시나요?

그럴 리가 없지. 당연하잖아.

너희의 별은 녹색이니까. 녹빛 우상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내가 도와줄게. 눈 먼 너희가 별을 볼 수 있도록.

퀸텟. 그래, 이게 내 소원이야.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을 눈에 담는 것.

그렇게 나는 음악을 ████ 될 테니.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만들자 했었지, 루카.

그러면, 루카. 나와 먼저 사랑해보지 않겠어?


화록청의 눈물이 얼기설기 엮인 가시나무를 따라 아이의 뺨에 맺혀왔다.

솜누스██ — ████.██.██

금방이라도 유리 조각이 되어 산산이 깨어질 것만 같은 아이. 흐릿하고 위태롭게 일렁이는 아이의 형상은 몸을 둥글게 만 채, 독초와 가시나무와 천 개의 눈알로 엮인 아가리에 곤히 몸을 뉘이고 있었다. 곰팡이와 버섯이 움트며 독초의 땅에서 아이를 감쌌다.

카르코사에는 어린아이가 없다. 남자는 이 말을 곱씹으며 아이와 거대한 가시나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찌르는 감각과 함께 남자의 눈에서도 화록청의 독이 흘러 찰랑이는 눈물 고인 바닥으로 추락했다. 남자는 덤덤히 하늘로 시선을 흘겼다. 아직 별은 떠 있다. 인도자의 뜻에는 필시 의미가 있을 터다.

카르코사에서 온 어린아이입니다.

남자는 특유의 차분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남자의 머리 위로는 거대한 달이 드리워 그를 비추었고, 남자의 걸음걸음으로는 달맞이꽃이 피어 달빛을 머금었다. 손에 들린 시허연 순백의 첼로가 은은히 떨리며 선율을 흘려냈다. 화록청의 모두가 눈에서 독을 흘려내듯이. 아니, 남자의 눈물은 회색이다. 그의 동공처럼. 어쩌면 잿빛 도화지인 자기 자신처럼. 하지만 내 감정은 이미 마비되었으니까. 그래, 내 눈물은 화록청이 아니다. 마네킹이 눈물을 흘린다면 그것은 분명 황색의 티탄이다. 카르코사의 황색 티탄. 노란 옷의 왕.

성인 오르페우스. 당신에 따르면 사람은 한평생 티탄과 바쿠스를 몸에 품는다. 그러하다면 내가 품은 것은 노란 옷의 왕인가? 경멸스런 가면을 쓰고 추잡스런 욕망을 꾸물거리며 토해내는, 그러한 황색을 나는 품었는가? 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나의 인도자를 눈에 담았다. 별? 아니, 달이 보인다. 갈망? 설마. 나는 그런 감정을 모른다. 모르거니와,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라 퀸타 코르다, 존재하지도 않은 현의 선율이 환상통처럼 귀로 전해진다. 가시나무와 독초의 아가리는 마치 음절을 내뱉듯 쉼 없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남자는 말없이 엄지로 입가를 닦았다. 혈흔의 찝찝함. 열두 살 이후로 피를 뒤집어쓴 적은 없는데. 그때는 무슨 표정을 지었지? 지금도 같은 표정을 짓고 있나? 뭣 때문에 그런 표정을 지었지? 피 냄새? 맡으면 구역질이 나고 속이 좋지 않다. 왜 그렇지? 냄새가 그리도 지독했나?

오래됐구나, 그 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죽지는 않았군.
조각조각 부서진 걸 먹이라고 내오진 않았을 테고.

미소는 그대로다. 이건 연습 많이 했으니까. 녹색의 목소리가 눈앞에 인영이 되어 일렁인다. 아나사바스의 오윤희. 팔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아났다. 왜? 기온이 떨어졌나? 처음 그녀, 아니 그것을 보았을 때 남자는 악의적인 녹색을 보았다. 녹빛 우상. 그것을 언제 처음 보았지? 열 살 전후의 교회에서 보았다. 이름은? 바. 다섯, 다섯, 다섯, 또 다섯, 그리고 지긋지긋한 다섯. 지긋지긋하다, 가 많는 표현일 테다. 녹색과 황색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다. 지긋지긋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을 보통 그리 표현하지 않던가?

하지만 남자가 독대한 플루토는 별개의 존재다. 존재라 일컬을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신이란, 동일한 관념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을. 그래, 저건 하나의 짐승이다. 짐승의 뱃속이다. 짐승에 맞서는 법은 짐승에 먹히는 것이라 했다. 짐승에게서 공포를 느낀 적이 있던가? 아니. 사람에게서는? 글쎄. 그러면 무엇에게서? 쿠피도. 아가페가 아닌 쿠피도. 만물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아가페. 내가 당신들을 헤아릴 수 있게 길. 나머지는 다만 황색에 불과하다. 최초에 나는 황색으로부터 공포라는 감정을 배웠다. 황색은 나의 인도자 두 분을 앗아갔고, 이제 인도자는 별만이 남았다. 그리고 에노테라.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

루카.

에우리디케?

저는 만인의 오르페우스.
만인에 대한 만인의 사랑을 위해 순백의 선율을 켜는 오르페우스.
플루토, 당신의 땅에는 에우리디케가 없습니다. 존재해서도 안되죠.
저는 이 아이처럼 구제할 수 없는 악인마저 품을 각오로 이리 침전했습니다.

이따금 별이 밝게 빛날 즈음 악기는 내게 나지막이 속삭여왔다. 라 퀸타 코르다. 다섯째 현? 아니, 그것은 환상통이다. 지독한 환상통이다. 쾌락? 쾌감? 그것은 감정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 역시 그것들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분홍별과 하얀 악기가 공명할 즈음 창가에서 나를 맞이했다. 잿빛의 창가에서. 달빛이 드는. 악기는 무수한 오르페우스의 꿈을 노래했다. 그들의 축적된 꿈을 자장가를 부르듯이 내게 속삭였다. 평생을 동경하던 이와 같이 되는 꿈. 가장 행복했을 무렵 심장에 창이 꿰뚫리는 꿈.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홀로 명계를 거니는 꿈. 몰매를 맞아 능욕당해 죽어가는 꿈.

새로운 것을 만들고자 하는구나.
무엇도 느끼지 못하는 이가 가장 훌륭한 창작자가 되지.
예술이란 모순이니까.

모순이라 함은, 당신의 프로세르피나 아니겠습니까.
욕망이라는 거짓 사랑에 굴복한 플루토.
나는 당신에게 참된 세상을 노래해 줄 수 있습니다.

욕망의 거짓됨이라. 거짓된 사랑이라.
글쎄, 아무래도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니까 말이야.

그리고 그것은 나의 꿈을 노래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품에서 차근차근 표정을 배워나가던 꿈. 거짓 사랑을 떠벌리던 녹빛 우상의 목사. 오르간. 카르코사. 황색. 혐오의 가면. 핏자국. 손. 별. 분홍빛. 실신. 이십 년도 더 전의 꿈들이 석판에 각인되듯 뇌리에 새겨져 떠나가지 않는다. 악기 때문에 꿈을 꾸는가 꿈을 꾸기에 악기를 손에 넣었는가. 남자는 자신이 답을 부정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온기의 꿈은 황색과 함께 끝이 났다. 다음은 무슨 꿈을 꾸었더라. 그래, 공포의 꿈을 꾸었다. 나는 그날까지도 공포와 청춘을 동의어라 믿어왔다. 쿠피도가 티탄이라면 에우리디케 또한 다를 바가 없을 테니까.

열넷? 열다섯? 학교를 다녔다면 중학교 2학년 즈음 되었을 나이. 문란하게도 살았다. 쿠피도가 처음으로 몸에 스미던 날, 나는 그것을 감정이라 믿었다. 내가 마침내 정상이 되었다 믿었다. 연기할 필요가 없다 믿었다. 쿠피도, 당신이 내 몸을 떠나가려 했을 때. 욕망이 사그라들고 표정이 자연스레 지어지지 않을 때, 그때 공포는 엄습했다. 숨이 막히는 듯한 공포. 나는 여즉 공포라는 감정밖에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다. 당시 노숙하던 남부는 치안이 좋지 못한 곳이었다. 쿠피도를 붙잡아둘 음식, 음료, 약, 무엇이든 필사적으로 입에 욱여넣었다. 정상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잿빛 마네킹에 먹물을 쏟아부을 때면 공포는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내 눈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잿빛인걸.

치기 어린 방황은 죽음에 문턱에 서고 나서야 끝이 났다. 죽는다는 것은 그리 공포스럽지 않았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꿈을 꾸듯 몽롱해지며, 감정이라 믿었던 감각이 점차 떠나가던 순간. 열여섯. 별을 마주하고 네 해가 지나가던 날. 달의 선율은 꿈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라 퀸타 코르다

환상통

에노테라. 우린 정말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면, 루카. 나와 먼저—

왜?

이름만 남은 오르페우스.
사랑을 떠벌리나 누구도 사랑하지 못한 오르페우스.

녹색은 조소하는 어투로 넌지시 시구를 읊듯 속삭였다. 라 퀸타 코르다. 다섯째 현의 허상을 다룬 것은 줄곧 오르페우스였다. 환상통. 소유한 적도 없는데. 달빛을 받을 때면 항상 머리가 뜨겁고 의식이 흐려진다. 무작정 약을 털어 넣었던 때처럼 몽롱하고 멍하며 집중이 되지 않는다. 왜? 나는 별의 인도를 따라 걷는 오르페우스. 근데 어째서 달이 별을 가리우는 거지? 어찌하여 달밖에 떠오르지 않는 거지? 아가페. 나는 모두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 약쟈에게 베풀고, 다른 이들을 보듬을 의무가 있다. 그런데 너는? 왜 내 곡은 달의 이름으로 점철이 되어가지? 환상통이다. 얻지 못한 것에 대한? 에노테라.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 얻을 필요가 없잖아.

혼란스럽다.

무서워.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플루토, 제가 당신의 땅에 온 것만 벌써 두 번째군요.
저는 다시금 별을 눈에 담을 곡을 쓰려 합니다.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눈부실 별을.

카르코사에서 온 어린아이. 그 역설이 오르페우스의 악기에 상처를 내었다. 당신을 지금 마주할 생각은 없다. 나는 아직 그리도 거대한 악을 품을 그릇이 되지 못한다. 시커먼 버섯이 악의 꽃이 되어 아이의 품에서 자라났다. 이 역시 역설이다. 나는 공포와 함께 자라났다. 환상통. 다섯의 환상통. 퀸텟. 별빛이 바래간다면 다시 불을 붙이면 그만일 터다. 내가 결핍을 눈에 담았다고? 아니, 별의 이름은 아가페. 나의 이정표. 설령 분홍빛에 눈이 멀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도움을 바라는구나.

이게 내 소원이야. 모두가 나와 같은 것을 눈에 담는 것.

오르페우스는 모두를 위해 연주해야 한다.

참으로 멋진 세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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