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설



落雪

낙설



그는 기지개를 키면서, 막 지는 해를 바라보았다.

석양의 주홍색 빛이 순간 발산하여, 앙상해지려 하는 나뭇가지와 심지어는 건물의 창가마저도 막 궤뚫으면서 공중을 그 색으로 물들인다. 건물 속의 잿빛이 선명한 주황과 섞이는 순간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정말로 이렇게 일찍 일에 착수한 것도 지는 태양을 응시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동안은 망자라는 본성에 따라 어둔 밤에나 일하고는 했지만. 밤과는 달리 지금은 찬란한 색에 사로잡히는 순간이었기에 윤성재 본인도 몇 년 묵은 감성으로 인하여 가슴이 울렁거리는 기분마저 드는 것이었다.

침묵이 이어진 후, 해가 서산 너머로 거의 그 정수리를 감출 때였다. 곧장 더 이상 고요를 기다려주지 못하겠다는 듯이 서랍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마치 새벽을 깨우며 날개를 치는 수탉처럼. 구식 전화기가 내는 요란한 트로트 소음에 윤성재는 희미하게 인상을 찌뿌리면서 조심히 공중으로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전화기나 트로트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간만에 방해받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클럽에 복귀한 지도 거의 사십 년이 가까워지는데 이토록 자기 시간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느낀 것은 또 이상하다고, 윤성재는 스스로를 뒤돌아보았다. 마치 어떤 것에 대한 본능적인 싫증처럼, 아무런 이유 없는 짜증이었다.

늙은이의 망령이겠지. 1950년 이후 줄곧 남학생 모습으로 살고 있는 윤성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윤성재는 전화기를 붙잡고 전화를 받았다. 석양이 지고 밤이 드리우며 성재 본인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선연해졌다. 구시대 교복의 대명사인, 가슴팍에 바람 구멍이 난 가쿠란을 입은 고작 열일곱짜리로 뵈는 남자.

엄밀히 말하면 죽어서도 그 모습을 못 벗어나는 박제 같은 모습이 희미하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전화기의 명멸하는 듯이 가벼운 빛이 성재를 덮어쓰듯이, 혹은 감추듯이 허공으로 풀려나고 있었다. 그는 가볍게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이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아, 윤성재 부장."

피곤한 목소리가 들린다. 접수원 중 하나일 것이다. 윤성재는 가볍게 웃음 짓는다. 그러는 사이에 태양이 추락하는 것을 계속해서 바라본다. 언제 다시 지는 해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에게 석양은 새벽에 떠오르는 어느 해와도 같은 것이기에.

"……사건이요?"

"예, 부장. 그것도 폐교 사건입니다."

폐교라. 사실 요즘 시대에 폐교 유령 괴담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 아닌가. 자연스레 학생 수는 줄면서 학교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문을 닫고, 그렇게 되면 학교에 남겨진 사념이나 그 아래 죽은 망자들 같은 것 없이 추억과 이성 아래에서 말소될 뿐이다. 그러므로 정말 폐교 사건이라면, 아마 정말 특이한 일이거나, 혹은 최악의 일이거나.

윤성재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어디입니까? 그 폐교가."

잠시 침묵.

"부산입니다. 부장. 어쩔까요? 현지 회원들에게—"

그는 미소짓는다. 이곳은 서울. 꽤나 먼 길이다. 아마도 부산에 대기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부탁해야 하겠지만, 그 방식은 이상하게도 한 번도 써 본 적도 없다. 폐교 사건이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어떤 예비 회원이, 어떤 유령이 그곳에 있을지, 어떤 적수가 개입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윤성재는 가볍게 탁자에 차가운 손을 얹으며 말한다.

"아니요. 제가 가죠. 제한시간은 어떻게 됩니까?"

  1. 밤의 장막
  2. 사실은 나 지금
  3. 청춘의 덫
  4. 그래서 달은 어두워
  5. 오상을 풀어서
  6. 이 가슴을 꿰뚫어서
  7. 저체온의 불꽃
  8. 당신의 말로 수면은 흔들려
  9. 해상도 낮은 꿈
  10. 엔딩의 색
  11. 생각도 목소리도 말도
  12. 외길
  13. 말보다 더 많은 것
  14. 푸른 계절이 살다

종이랑 펜이 놓여있길래
동그라미나 그리다
인사를 건네
잠이 와 근데 자기 싫어
난 이 시간이 제일 좋아
- 헤이즈, knock sir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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