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플레이어분의 생일 축하합니다.'
오한나 요원의 핸드폰 앱에서 알림이 하나 왔다. 인기 있다길래 설치했건만 취향이 안 맞아서 그 존재까지 까먹고 있었던 게임 앱이었다. 차라리 그게 플러그 소프트니, 뭐니 하는 변칙 게임이었다면 기억했을 법도 했지만(물론 재단 요원인 그녀가 방심하고 플러그 소프트 게임을 할 이유는 없었다는 것을 차치해도), 그것도 아니었기에 그것은 그저 용량만 차지하고 있었다. 그게 왜 하필.
아니, 뭐가 되었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그날은 생일이었고, 한나는 '생일'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기지에, 이 팀에 들어와서 맞는 첫 생일은, 그녀가 그간 겪어 왔던 '생일'에 대한 고통을 후벼팠다.
1. "지니, 생일 축하한다."
그녀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특별히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한 환경도 아니었고, 가끔 먹구름이 낄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정말로 화목한, 그런 책에서 나올 법한 가족. 그녀는 가족을 사랑했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는, 그녀는 생일이라는 것이 즐거웠다.
물론 언제까지고 그런 평화로운 시절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이란 것은 참 간사하게도, 풍파에 휩싸일 때는 평화를 갈망하면서도 정작 평화로운 때에는 특별한 것을 찾으려고 하는 법이었으니까. 그녀도 그런 인간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재단이라는 것이 그렇게 감미로워 보였던 것이고. 지금 생각하면 후회뿐이지만.
0. '제21K기지 휴게실에서 보자. 얘기할 것이 있어.'
그녀의 상관이 문자를 보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임무라면 정규 소집 시간에 얘기하든 문자로 바로 얘기를 하든 했을 텐데. 뭐, 할 말이 있겠지.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2. "지니, 생일 축하해."
그녀는 연구원이었다. 새로운 곳에서는 그녀가 기존에 알던 상식들이 도통 통하지 않았고, 그녀는 마치 부평초처럼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그녀를 격려하고 응원해준 사람들은 선배들이었다. 선배들의 괴롭힘 때문에 살아가기 힘들다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녀는 운이 좋았다. 그들의 손을 잡고 만들어 가는 새로운 길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그들 덕분에 그곳에서도 그녀는 생일이 마냥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재단에는 행복한 일상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첫 해 생일을 축하해 주던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적어도 온전한 형태로는. 원인도 다르고 떠난 시간도 다르지만, 언젠가부터 그녀의 생일에는 소중했던 선배들이 없었다. 그나마 축하해 주던 후배들도 이내 쟁여두어도 쟁여두어도 금세 다 떨어지는 일회용품처럼 없어져 갔다. 그녀는 생일이 점점 싫어졌다.
0. 그녀가 속한 기동특무부대 을호-2는, 그 별칭인 '잊힐 의무'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 부대는 유령을 잡는 곳이고 그들은 산 자에게 기억되기를 끝없이 갈망하니까. 거기뿐이라면 그나마 안타까울 법도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피해가 일어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령에 대한 반응은 팀원들 내에서도 제각기 달랐다. 외부인 눈에 보기에는 다 회색조 느낌의, 말이 없는 사람들로밖에 안 보이겠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감정이 들끓기 마련이었으니까.
일부는 그들을 동정했다. 한나의 머릿속에 동료 한 명이 스쳐 지나갔다. 그들도 제각기 고통이 있다고 그녀는 말했다. 비록 그들을 잡아 격리하는, 때로는 아예 사살하는 일을 하곤 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약간 미안해하곤 했었다. 옛날에는 유령과 같이 일했다고 했던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랬었던 것 같다.
일부는 그들을 원망했다. 또 한 명의 동료가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때려잡는 모습. 유령과 친해졌다는 다른 요원을 붙잡고. 그들은 당신을 속이고 있다며 걱정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유령에게 학대당했다고 했던가, 나중에 들은 바로는 그랬다.
한나는 어떠냐고? 상관없었다. 그 사회는 그녀가 그간 있던 곳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고, 그것에 익숙해지는 것부터가 그녀에게는 아직 벅찬 일이었으니까. 새로운 길은, 이제 누구의 손을 잡지 않고 혼자 만들어 가야 했고, 너무나도 어두웠다.
3. "이사관님, 생신 축하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만큼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아서, 어떻게든 빈자리를 채워갔고, 어느새 한 기지의 이사관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 자리. 처음 입사했을 때는 한없이 높고 까마득하게 멀어 보였건만, 지금은 그리 높지도 않을뿐더러 썰렁하기까지 했다. 일만 많았다. 어쩌겠는가. 격리해야 할 것들은 많고, 그녀가 잡아줘야 할 손도 터무니없이 많은데.
그럼에도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은 성실하게 따라줬고, 그들끼리도 두루두루 잘 어울려 주었으니까. 그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언제 한 번 기지 인원들이(당연하지만 변칙 개체라던가, D등급 같은 건 뺀 것이다) 모여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그날부터 한동안, 그녀는 생일이 괜찮았다. 생일에 무슨 사건이 벌어져도 그때 일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하지만, 만약 그 기지가 붕괴된다면.
0. 그녀는 새로운 동료들이 싫었다. 그들이 뭘 잘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잃는 것이 두려웠다. 그 뿐이었다. 마치 유령처럼 곧 사라져버릴 것 같은 그들. 그녀보다 어린 선배들의 손을 잡을 수는 없으니, 그저 그들이 사라지지 않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4. "생일 축하합니다."
그녀의 기지가 무너졌다. 변칙 개체 하나에게 속은 결과가 이거였다. 그녀 외에 생존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대외적으로는 그녀의 과실이라고 결정이 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멀쩡히 살아있던 그녀에 대한 정보가 반쯤 말소 처리되지는 않았을 테니. 물론 이 정도 사고면 해임이나 그 이상까지 갈 수도 있다는 건 처음 이사관이 되었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괴로운 일이었다. 그녀 주변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마자 들은 소리는, 바로 생일 축하였다. 운명이라는 건 어쩌면 이렇게 잔혹할 수가 있을까. 하필 그녀가 눈을 뜬 날이, 그 잔혹한 진상을 들은 날이, 그리고 유령들과 처음 눈이 마주친 날이 생일이었을 줄이야.
그녀에게 선택지는 둘 밖에 없었다. 하나는 그저 그녀가 맞아야 했던 운명을 맞는 것. 다른 하나는 신분을 숨기고 새로운 생일을 맞이하는 것. 유령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재단에 있어서 꽤 유용한 자원이라고요. 더군다나 새로이 만들어질 기지는 크고, 당신이 무엇을 해왔는지 캘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당신을 잃고 싶지 않고요. 그렇게 말하는 놈은 비웃음을 숨길 생각도 없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모든 것을 잃고 새롭게 시작했다. 동경도 무엇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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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생일 축하합니다!!"
휴게실은 어느덧 축하 분위기였다. 을호-2의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왁자지껄하게 웃고 있었다. 누가 그런 그들을 보고 무미건조하다는 둥 마치 유령 같다는 둥 할 수 있을까. 그들도 결국 사람인 법이었다.
"이야, 우리 신입 깜짝 축하 대성공이야! 어때?"
모든 것을 계획한 것 같은 현장 팀장님이 뿌듯하게 물어보았다. 그들도 다 같은 깜짝 축하를 받아왔을까. 그때 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녀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한나로서 첫 생일이 감격스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또 다시 그들을 잃는 것이 두려웠던 것일까. 그녀조차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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