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기괴한 건 누구냐

"좋아, 그럼 내 차례네."

살짝 시퍼런 빛깔의 도톰한 입술이 움직여, 단어를 뱉어낸다.

"나는… 매일 밤 자기 전 오린들에게서 무언갈 얻어."

부드럽지만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불안함. 목소리가 자아내는 그 위태로운 불안함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종파에 들어온 이상 그자들은 나와 같은 검은 혈통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으므로, 결코 거부할 수 없지… 하하, 걱정하지 마. 많은 걸 요구하진 않으니까… 단지 충성의 대가지."

아름다운 눈동자는 핏빛으로 물들고, 창백한 얼굴은 아름답지만 위험하게 빛나고 있다. 음산한 어조로 읊조리는 불길한 고백은 잠깐의 공백이 잇는 다음 문장으로 조용히 이어진다.

"단지 신장 몇 개일 뿐이야."

짙은 검은색 눈동자가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듯한 짧은 침묵과 함께, 흥분으로 번뜩인다.

"그리고 난 그 신장으로 샐러드를 먹어. 매일…매일."

그리고 피날레.

"…"

"…"

"…"

"너 지금 그게 기괴하다고 자랑하는 거야? 그냥 평범한 너네 종파 일상이잖아!"

"일상에서 기괴한 걸 자랑하라던 건 너희였다! 우리 일족의 섬뜩한 전설을 들으면 네놈들도 놀라자빠질 터—"

"됐거든. 귀족 집 아가씨가 생각하는 게 거기서 거기지 뭐. 하지만 내 이야긴 다를 거야."

자신 있게 나선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토라진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청자들의 귀가 한쪽으로 쏠린다.

"좋아, 우리 마을엔 말이지… 거대한 성당이 있거든. 아주 거대한… 그리고 아주 오래된, 성당. 성당은 마치 고대의 어떤 건축물처럼 낡고 스산한 공기로 가득 차 있어…"

목소리가 낮춰진다. 청자들의 집중 역시 한데 모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정해진 날에, 우린 그곳으로 쓰레기들을 끌고 와."

묘한 어조의 화자는, 파편처럼 섞인 감정을 드러낸다. 은밀, 절제, 분노.

"인간…쓰레기들이지."

죽음처럼 내려앉은 침묵 사이로, 누군가의 긴장된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자들은 처음엔 저항해. 자신들이 한 짓도 잊고 분노하지. 하지만 우린 그자들에게 가르침을 줘. 살로 된 축복을 내리지."

황갈색 머리칼이 흔들리며, 그 아래 피어나는 비릿한 미소.

"그들의 피부 가르고, 근육을 으깨서 한 덩어리로 만드는 거야. 그리고는 그 비명 지르는 육의 과실로써… 영원한 고통을 맛보게 하지!"

"…"

"…"

"…"

"그, 이런 걸 그냥 평범한 정의 구현이라고 하지 않나?"

"너희 평생 살코기 꼴로 매달려 있는데 너희 정신은 막 그대로고, 응? 그런 상태가 안 무섭냐?"

"목소리 깔기는… 하나도 안 무섭다."

"와우, 너희들 진짜 엄청나다. 우린 그렇게까지 무서운 이야기는 없는데, 아무래도 내가 진 것 같아."

마지막 목소리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다른 목소리들이 하나도 감명을 받지 않은 것처럼 들리는 것과 달리, 이 목소리는 살짝 위축된 듯 떨리고 있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시도라도 해 봐."

"그래. 이게 뭐 중요한 거라구."

"부담 갖지 말고."

"알았다, 알았어." 쑥스러운 목소리로, 마지막 화자가 입을 열었다. "음… 우린 아쿨로트 술 담가 마셔."

"…"

"…"

"…"

"…뭐?"

"…응?"

"뭐라…고…? 너, 너무 잔인하잖아…!"

그리고 이 머저리 같은 모임의 유일하신 톱니장치 정교회 출신인 나는 눈앞에 펼쳐지는 이 대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청각 센서에 감응은 되는데 전혀 해석이 안 되는 그런 감각. 나는 나의 온 짜증을 담아 다리를 꼬며 친구들에게 사나운 시선을 던졌다.

"…이게 뭔 개소리들이야 다들."

"이 녀석이 지금 아쿨로트를 먹었다잖아!"

내게 가장 가까이 앉은 녀석이 고개를 돌렸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열변을 토하고 있는 황갈색 머리의 그녀의 이름은 크리스티아네 레온하르트로, 이 기묘한 모임의 회장이자 죄식자의 교회 출신 원사르킥교도였다. 방금 목소리란 목소리는 엄청 깔면서 살코기가 되니마니했던 녀석이 바로 회장님 되시겠다.

"현… 그렇게 안 봤는데…"

창백한 얼굴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남자는 다부스 에릴릭먼이라는 이름의 사르비 마을 출신의 원사르킥교도였다. 그의 검은 후드티가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 다부스는 애초에 자기네 마을엔 기괴할 만한 게 없다면서 청자의 역할을 고수하던 녀석이다.

"여태껏 순진한 척 하더니!"

경악으로 물든 얼굴로 삿대질을 하는 이 여자는 쿠로치 아쿠사. 일본 신사르킥 집안의 영애 되시는 몸이다. 신장을 먹니마니 장광설을 늘어놓던 게 이 녀석이다. 녀석의 검은 손톱이 이 모든 혼란을 빚은 지옥의 아가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바로—

"아니…이 정도로 놀랄 줄은 몰랐는데. 다들 성인식 때 아쿨로트 하나씩은 받지 않아?"

바로 이 녀석, 박현 되시겠다. 한국 원사르킥 세을가의 신자. 어리둥절한 얼굴로 턱을 긁적이고 있는 녀석은 세 명에게서 날아드는 거센 비난의 시선에 찔려대고 있었다.

내가 사슴대까지 다니며 이런 괴이쩍은 모임에 나가게 된 경위만 늘어놔도 한 나절을 채우겠지만, 오늘 이 사달이 난 일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오늘 아침이었다. 이른 시각부터 난데없이 동아리 멤버들을 다 호출한 것이었다. 나는 잠이 묻은 시각 센서를 작동시키며 천천히 동아리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들 졸린 눈치였지만, 어딘가 결의를 다지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때 튀었어야 했는데.

그러나 나는 상황도 제대로 해석지 못하고 그저 호랑이 아가리로 들어갈 뿐이었다. 아니, 사자 아가리라고 해야할까. 우리 지엄하신 회장, 레온하르트 양께서 그곳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셨으니 말이다. 우릴 전부 불러낸 입장이면서도, 반쯤 감긴 눈은 녀석도 졸음에 휩싸여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입을 열어 하는 말씀이란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제2회 기괴자랑대회를 시작하자."

"기괴자랑대회?"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뭐야?

"자신의 문화에서 다른 이들이 가장 쇼크를 받을 만한 부분을 소개하는 셈이지. 일종의 예방주사라고나 할까? 문화 교류 동아리니까 이런 부분도 알아가면 좋을 것 같아서 시작해봤어."

"아니,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1회도 있었어?"

"물론이지! 오네이로이 동아리랑 같이 했는데, 걔네 썰이 너무 강력해서 인과관계가 개변됐거든."

회장은 기지개를 켜더니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네 썰도 재밌었다. 대성당이 그런 느낌일 줄은 몰랐어."

"…내가 뭐 말했는데…?"

"아무튼 이번에도 룰은 간단해. 자신이 속한 무리의 가장 기괴하고도 이상한 점을 이야기해서, 가장 끔찍한 점을 말한 자가 승리자야!"

…이런 유치한 놀이를 누가 하나 했더니, 바로 내 친구들이란 녀석이었다. 나는 당연히 거절했지만, 사르킥교도 녀석들은 대체 무엇에 끌린 건지 흔쾌히 수락해버렸고,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신체개조 후 처음으로 극심한 두통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래서, 아쿨로트는 왜 먹으면 안 되는 건데."

"아니아니아니,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 아쿨로트는 낼캐교도의 체내에서 공존하며 다채로운 효과를 가져다주는, 말하자면 아주 좋은 친구다! 제2의 나, 성스러운 벌레, 우리네 전통의 정수!"

아쿠사가 사납게 외쳐댔다.

"어떻게 그런 걸… 그렇게 잔인하게…!"

"너 꼭 할머니 시신이라도 먹는 행위처럼 말한다."

"나 할머니 시신 먹었는데." 크리스티아네가 대뜸 대꾸했다.

"……암만 생각해도 또라이는 니네들인 것 같아."

"얘들아 진정해." 현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우리도 아쿨로트를 죽여서 먹지는 않아. 술에 담궈뒀다가, 성인식 때 체내로 받아들인단 말야. 그런 거 평소에는 마시지도 못한다고."

"아, 그런 거였어?" 다부스의 얼굴이 살짝 펴졌다. "난 정말로…"

"물론 돌아가신 분들 아쿨로트는 사사로이 담가 마실 수 있긴 하지만."

"이 자식이!"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곤 격분한 크리스티아네의 손아귀에서 현을 구출해줬다. 현은 웃음 반 기침 반이 섞인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대꾸하고 있었다. 내참, 즐기는 건지 뭔지. 나는 분노한 살덩이들을 마주 보고는, 현을 등 뒤로 숨겼다.

갑자기 뜬끔 없는 생각이 들었다.

"현."

"응, 왜?"

"너네 설마 그… 아쿨로튼지 뭔지 하는 거, 그거로도…"

"그거로도…?"

"…김치 담가 먹냐?"

"…옛날엔 그랬다는 것 같은데."

"아으 징글징글한 놈 됐다 그냥 죽어라."

나는 현을 앞으로 내던졌다.

"아니 그거 조선시대에 북쪽 사람들이! 아아악! 악! 물지 마! 아아아아악!"

현의 비명이 울려펴지는 것과 동시에, 방문이 열렸다. 크리스티아네, 그리고 아쿠사는 현의 살덩이에 이를 박아넣은 그대로 시선을 올려 새로운 방문객을 바라보았다. 나 역시 문으로 시각 센서를 돌렸다.

"…새로운 플레이에요?"

흰 분칠, 붉은 입술과 눈가에 그린 푸른 문양들. 이제서야 느긋하게 동아리방 안으로 거닐어 오고 있는 녀석은 변칙예술학부 학생 양지환이었다. 변칙예술가치고는 꽤 정상인에 속한다고들 하던데, 개인적으로는 얼굴에 광대 분장을 하고 있는 녀석이 정상 범주라면 대체 이상 범주는 어떤 놈들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낼캐교도들이 문란하다지만 여기서 그러는 건 좀…"

"저 새끼도 파묻어버릴까?"

"오케이 취소." 지환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진짜 뭐하는 건데 선배 둘은 현이를 그렇게 덮치고 있는 거에요?"

"기괴자랑대회 중이란다." 내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런데 세을가에선 아쿨로트인지 야쿠르트인지 마신다고 저리 야단이야."

"허어."

지환 역시 한 쪽 눈썹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 자체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라기보단 오히려 재미를 느끼는 것에 더 가까운 표정이었다.

"뭐어…현아, 기왕 그렇게 된 거 양손의 꽃이나 즐겨."

"이게 무슨 양손—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뜯어져! 뜯어진다고!"

"그나저나 넌 기괴자랑대회가 뭔지 기억하고 있었냐?"

느닷없이 깨달은 생각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나만 몰랐던 거야?"

"그 오네이로이가 선배 옆에 앉아 있었거든요."

"썅."

"아파아파아파아!!"

"이렇게 된 거 지환, 너도 하나 이야기해 보는 거 어때?" 유혈이 낭자한 현장을 넘어, 다부스가 우리에게로 다가오며 말했다. "AWCY?이라니 색다를 것 같은데."

"저는 변칙예술가긴 하지만 테러를 하는 쪽은 아니에요."

지환이 목을 긁적거리며 대답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에요. 동기 중에 어떤 정신 나간 것들은 그들을 선망하기도 하지만… 저는 도무지 그런 생각은… 예술가 그 자체가—"

"초, 촉수는 안 돼애!!"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그런 피해는—"

"아이고, 아이고 천인교사님!"

"그보다도 저거 진짜 SM 아니에요?"

"나 진심으로 살덩이 혐오증 다시 생길 것 같아."

"아, 아무튼." 다부스가 진땀을 흘리며 손을 흔들어 우리의 시선을 다시 모았다. "변칙예술가로서의 그런 거, 없어?"

"글쎄요." 광대가 목을 긁었다. "예전에 행위예술로 플라스틱 먹다가 병원으로 실려간 동기가 있었죠."

"꽤 평범한데." 내가 대답했다. "이상한 거 주워먹는 건 뭐, 굳이 변칙예술 아니어도."

"다음 날 플라스틱이 돼서 왔더라고요."

"씨발 뭐?"

"알고 보니까 자기도 모르게 전염성 현실개변적 밈을 제조해낸 거라, 수강생 절반이 플라스틱이 되고 보통 난리도 아니었어요."

"넌 괜찮았던 거야?" 다부스가 물었다.

"아, 아 진짜 아파! 진짜 아프다고! 아! 아!"

"전 어릴 적부터 정신재해니 밈이니 이런 거에 잘 영향을 안 받는 체질이라서요."

지환이 힘없이 웃더니 내게 시선을 돌렸다.

"선배도 그렇지 않아요? 메카네교도들은 정신재해 같은 거에 잘 안 걸린다고 들었어요."

"규격화가 어느 정도 되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기체 부분이 많이 남아 있으면 평범한 사람들하고 똑같아."

"시, 싫어어엇!!"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아 좀 그만해 이 살덩이 자식들아! 언제까지 그럴래!"

현은 어느새 밧줄처럼 변한 크리스티아네의 손에 칭칭 묶여 있었고, 아쿠사가 그 위에 올라타 피로 그의 가슴팍에 어떤 문양을 그려대고 있었다. 녀석은 지친 듯 입도 벙긋 못하고 머리를 옆으로 떨군 상태였다. 아쿠사가 겸연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런 기회 흔치 않다."

"기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도와줘…"

터덜터덜 걸어가 크리스티아네의 뺨을 톡톡 쳤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회장은 성난 시선을 보냈지만, 이내 처참해진 동방 꼬라지를 보자 체념한 듯 쩝 소리를 내며 구속을 풀었다.

"아, 이런 걸 두고 메챠구챠 당했다고 하는 건가요? 대마초 게이머즈하는 친구가 자주 쓰던데."

지환의 논평이었다.

"…"

"왜요?"

"…여기 죄다 지옥의 아가리들밖에 없는 거냐?"

"그래서 이건 누가 이긴 건가요?"

광대가 내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대뜸 질문을 던졌다. 부산스러운 움직임도 잠시, 모두의 얼굴에 멍한 깨달음이 스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당연히 나 아냐?" 금세 또 회복했는지, 현이 해맑게 대꾸했다.

"넌 괘씸죄로 아웃."

"엥!"

현이 뭔가 항변하려고 했지만, 회장의 준엄한 눈길에 묵살되었다.

"그럼 저예요?"

지환이 꺼림칙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너 뭐라 그랬는데?"

"맞다, 선배들 못 들었지."

"돌겠네 진짜."

그리고, 또 한 번의 문소리가 들려왔다.

"나 기다렸어?"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고, 또 가장 꺼림칙하게 여기는 녀석이 동아리방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오고 있었다. 검은 가죽 자켓을 입고 어깨에 통기타를 둘러매고 오는 그녀는 자신이 최후의 지각자임을 알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그런 것에 대한 미안함은 조금도 없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는 내일 오지 왜 지금 오고 그러냐."

"미안. 합주가 좀 늦게 끝나서."

"너 저번에 합주 취소 됐다고 안 했어?"

"…별들은 거짓말을 자주 하지."

"별이고 자시고 그냥 니가 구라를 잘 까는 것 같은데."

"…헷."

헤스터는 넷플릭스에서 봤다는 애니메이션의 자세를 취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듣기로는 그 자세를 한 캐릭터 눈깔에 별이 박혀 있어서 좋다나. 체면으로나 몰상식으로나 철면피를 티타늄 합금으로 박은 모양이었다.

"쟤 제명시켜." 아쿠사가 팔짱을 꼈다.

"어쨌든 잘 왔어. 중요한 안건이거든."

"천하무적괴물대회?"

"…뭐?"

"아니 기괴자랑대회였나." 헤스터 첸이 볼을 긁적였다. "아무튼 그거 하려는 거지?"

"…너 독심술 쓰냐?"

"다섯째주의자만의 권능이라고!"

"지금 선배들 다 말씀하시고 너밖에 안 남았어. 어서 썰 좀 풀어봐." 지환이 흥미롭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럴까? 그러지 뭐."

헤스터는 통기타를 한쪽 벽면에 기대 놓고 원탁으로 유유히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채 모두 눈을 일일이 맞추었다. 그녀의 혈색 좋은 얼굴이 이내 어떤 음흉함으로 가득 찬 것처럼 보였다.

"오래전 일이야. 내가 다섯을 처음으로 영접한 그날에—"



그리고 인과관계가 뒤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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