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레이븐의 제안
평가: +9+x

세상이 부서지고 있다. 나는 그걸 이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하늘은 전자기력 과다로 인해 게임에서나 나오는 시퍼런 사이오닉 폭풍같은걸로 가득 찼다. 땅은 소보루빵 마냥 퍼석 퍼석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갈라진 자국 사이에서 용암이 흘러나왔다.

나는 가게주인이 도망쳐버린 쥬스카페의 빈 탁자에 앉아 음료 하나를 빨며 노트북으로 세상이 이 지랄이 되기까지를 자료를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이제 O5다. 재단의 고위 인원들이 다 뒤져버리는 바람에 방금 전 노트북에서 자동 메시지가 나에게 O5-2의 직위를 임시로 부여함을 알려주었다. 이 와중에도 1이 아닌게 참 아쉬웠다.

잠깐, 원래 한 컵의 양이 이것밖에 되지 않았던가? 가게 안의 종업원이 쟁여놓은 초코바나나 음료를 한 잔 더 가져왔다. 역시, 두 모금 빨자마자 큰 컵이 바닥났다. 이젠 질량이나 중력같은 것까지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SCP-001-KO의 보고서를 다시 꼼꼼히 읽어보았다. 내 눈이 긴 글자들을 쓸어내리다가 마침내 어느 한 지점에서 멈췄다. 나 참, 그러고 보니 이 현상이 우주 저 밖에도 존재한댔지? 보고서에는 심지어 친절하게 누군가가 살고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여 놨다. 내가 처음 읽었을 때는 없었던 것 같은데. 누군가가 수정해놨을지도.

아마 규약 세피로트가 성공했더라도, 종말을 피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프란시스를 탓하지 않는다. 내가 탓하는 것은, 지금까지 일에 빠져서 결혼도 해보지 못한 나 잭 레이븐 자신이다.

하아, 이럴 때 함께 할 수 있는 사랑하는 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맞은편 의자를 바라보았다. 지난 15년동안 내 인생 최고의 동료가 거기 누워있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비록 내 와이프는 아니지만 여자 동료와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노트북을 닫고,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파란 줄무늬 넥타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바닥에 뒹구는 바람에 그녀의 옷은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네. 이젠 편히 쉬게나."

나는 내 동료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마지막 인삿말을 건넸다. 이제 보니, 불타는 하늘도 나름 아름다운 것 같았다.


동방, 아니 세계의 역사, 그 마지막 장

시간변칙부 표준 보고서 Q22027

비밀스러운 재단의 비밀스러운 부서에서 일하는 이가 찾은 비밀

파일: SCP-001-KO 최종 보고서

SCP-████_ "토론에서 승리한 니체"

마지막 이야기: 신과 아무도 아닌 자의 대화

오메가급 긴급상황: O5 사령부에 긴급 전달

자매의 죽음

사건파일 #ZCK666

그냥 흔한 잡담

모두들 수고했어. 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저 어쩔 수 없었을 뿐이야. 옛날부터 나는 주말마다 가는 교회가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더라. 지금 이렇게 되고 나니 좀 더 열심히 다닐껄 하는 생각이 든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두 날개 달린 천사들이 있는 천국에서 만나자. 확보, 격리, 보호. -O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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