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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대일본제국 이상사례조사국 (이자메아) 허브
저자: Dr Solo & MrWrong
원작: http://scp-wiki.wikidot.com/ijamea-hub
역자: Salamander724
일본은 그 미발달성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과학적 렌즈를 통해 초상적 사물이 제국의 목표에 따르게 할 수 있다.
오카쿠라 장군, 기원후 1888년
IJAMEA는 일본의 질서 유지에 일익을 담당한다. 제국을 비롯한 아시아 다른 곳의 우리의 수집유산에 대한 유럽의 포위에 대항하는 전위로서 우리는 버티고 서야 한다.
쿠라타 장군, 기원후 1921년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애초 인간끼리의 전쟁이 아닙니다. 일본국 그 자체에 대한 전쟁입니다. 우리의 적은 일본인을 모두 멸망시킬 수단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격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니라, 당신들 자신과 이 신국을 위하여.
사카모토 중좌, 기원후 1945년
지지 않았어.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나는 싸울 수 있어.
타나카 이병, 기원후 1968년
설사 역사가 그들을 괴물이라 부를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아버지이고 할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것만이 그들의 후예인 우리에게 유일한 올바른 길이다.
이토 장군, 기원후 2008년
메이지 시대(1888–1912): 형성기
대일본제국 이상사례조사국(大日本帝国異常事例調査局, Imperial Japanese Anomalous Matters Examination Agency; IJAMEA)은 초상적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메이지 시대 일본의 근대화 계획의 산물이다. 메이지 시대 이전 일본에서 여러 사람들과 조직들(e.g. 수집원, 음양료 등)이 초상현상에 대한 대응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왔지만, 메이지 시대의 번벌들은 소위 "주술"을 비롯한 전통적 방법의 사용을 원시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그들은 구시대를 대신할 새로운 조직, 과학적 모형을 중시하고 근대화된 신일본을 대표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자 했다. 즉 초상현상에 대한 일본의 상호작용을 재편한다, 이것이 IJAMEA가 창설된 기본 동인이었다.
하여, 황립독일변칙문제검사청(IGAMEA)이 일본 정부에 초빙되어 서양의 초상과학 방법론에 따른 초상문제 대책을 자문했다. 부국강병(富國强兵)1 개념과의 일치성, 그리고 메이지 시대 번벌들의 독일 군제 및 법제에 대한 호감을 이유로, 이후 20세기 일본의 초상문제 상호작용의 군사부문 지위를 사실상 획득하게 되었다.
IJAMEA가 창설된 이후 IGAMEA의 자문관들이 일본에 파견되어 이 신생 조직을 다양한 초상현상에 대하여 훈련시켰다. 음양료와 수집원의 젊은이들을 비롯하여 이미 초상현상과 관여된 바 있던 일본인들이 IJAMEA 병사들의 첫 대오를 이루었다. 이것은 음양료의 활동에 치명적 영향을 미쳐 음양료는 1901년 폐지되었다.
IJAMEA의 주요 활동으로는 백택 계획(白澤計画)이 있었다.2 백택 계획이란 일본 전역의 초상존재 및 현상에 대한 모든 기존 문서의 전수조사였다. 일본 전국의 신사, 사찰, 서고, 개인장서에 대한 수색이 이루어져 초상현상에 대한 유의미한 정보가 있는 것은 모두 압수되었다. 이 정책은 이후 일본이 식민화한 지역에까지 연장되어, 후백택 계획(대만), 백택 계획 III(한반도)이라는 이름이 각기 붙었다. 처음에는 여러 조직에서 이것을 찬양했지만, 나중에는 여러 변칙존재를 일본적 해석하에 둠으로써 초상세계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확장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러일전쟁 때는 해군이 공개적으로 활동했기에 IJAMEA는 동원되지 않았다. 이 장막 규약은 IJAMEA가 동원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음을 의미했다. 이 태도는 IJAMEA 내부에서 육군 및 해군에 대한 적대감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다이쇼 시대(1912–1926): 통합기
다이쇼 시대 초기는 제1차 세계대전과 겹쳐 IJAMEA가 군사력을 발휘해 볼 기회가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교주(膠州)3 점령작전에 협조하고 중국인 오컬티스트들의 공격을 격퇴한 일이 있다. IJAMEA는 중국인 오컬티스트들의 배후에 중화민국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적 증거들은 이들이 독립적으로 행동했다는 설을 지지한다. 어쨌거나 IJAMEA는 이 사건을 근거로 들며 조직이 일본 군부에 포함되어야 할 가능성을 역설했다.
장막 규약에도 불구, 초상현상을 둘러싼 비밀엄수는 오히려 기회가 되었다. 1920년대 동안 IJAMEA는 자기들만이 초상적 문제에 있어 일본의 이해를 대표할 수 있다는 선전을 퍼뜨렸다. 이에 따라 IJAMEA는 육군과 해군 사이의 틈새시장을 얻어냈고, 문민정부에 영향을 미치려고 시도했다. 초상현상에 관한 일본의 대표 조직이 된 IJAMEA는 재단 및 연합국 오컬트 연합(AOC) 사이에 협력 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IJAMEA는 독립성을 유지했고, 언제나 대일본제국을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
본래 정부에 대한 영향력이 제한되어 있던 IJAMEA는 초국민주의 단체(현양사, 흑룡회 따위)의 준동을 이용하려 시도했다. 이런 조직들은 사회에 침투하여 IJAMEA가 서서히 일본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하는 대중 위장단체같은 역할을 맡게 되어갔다. 당초 육군이 가졌던 우려에도 불구, 육군과 IJAMEA는 결국 의기투합하여 국가주의적 수사로써 단합했다.
전전 쇼와 시대(1926년–1945년): 총력전기
쇼와 천황의 즉위는 일본 군국주의의 절정기를 장식한다고들 알려져 있고, 그것은 IJAMEA에도 마찬가지였다. IJAMEA는 일본제국 내의 초상공동체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 결국은 재단을 일본에서 추방하고, AOC 참여를 중지했다. 불길한 징조를 감지한 수집원은 공직업무에서 물러나 황실의 지배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을 지향했다. 이로써 1932년이 되면 IJAMEA는 일본제국 국경 내의 모든 초상현상에 대한 주 권위조직이 되었다.
또한 육군과의 관계가 깊어진 IJAMEA는 괴뢰국인 만주국에 대한 접근이 가능해졌다. 현지에서의 고고학 굴착조사와 백택 계획 IV를 위해 만주국에서 IJAEMA의 소규모 부대가 동원되었다.
중일전쟁, 그리고 뒤이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다른 군종들처럼 IJAMEA도 전쟁에 참여했다. 전쟁 중 IJAMEA는 다양한 변칙존재와 변칙물체를 전투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려 시도했다. 이는 당시 작성된 다수의 IJAMEA 계획군의 존재로 암시되고 있다. IJAMEA는 황실의 관리하에 있는 청명관(晴明館)에도 유물을 요청하곤 했고, 이런 요청들의 대부분은 문제없이 승인되었다.
IJAMEA가 총대를 멘 구상들 중 가장 야심찬 것은 육군의 협력 하에 진행된 특별자치대대(特殊自治大隊), 속칭 요괴대대(妖怪大隊)였다. 변칙존재들로만 이루어진 부대였던 요괴대대는 최전성기 병력이 500명을 넘어섰다. 주목할 만한 점은, 장교들은 대개 인간(현실조정자나 기적사)인 경향이 있었던 반면, 졸병들 중에는 지적 능력조차 없는 것들도 있었다는 보고다. 이 프로젝트는 비교적 성공적이지 못했다. 변칙존재를 붙잡고 통제하는 어려움이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요괴대대는 종전 직전에 해산되었다.
IJAMEA와 육군의 협력이 고조되었음에도, 육군은 자기들만 관여하는 초상조직을 또 따로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있다. 예컨대 "대일본육군 특별의료부대", 통칭 "부호부대" 같은 것이 있다.
사실 IJAMEA의 프로젝트들 대부분은 복잡한 문제를 직면하고 있었다. 요괴대대 등 일부는 예측불가능성 때문에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달기 계획처럼 육군과 해군이 먼저 같은 목적을 달성해 버렸기에 쓸모없어진 것도 있다. 다른 군종들을 압도하고자 했던 IJAMEA의 욕심이 궁극적으로는 그 지도부의 여러 어리석은 결정으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한 이후, IJAMEA는 일본군의 다른 군종들과 함께 해산당했다. 초상세계에 관여하는 세계 지도자들의 강권에 따라 IJAMEA의 문서들과 자산들 대다수는 재단으로 넘어왔다.
1945년 IJAMEA가 해산당한 이후, 전 IJAMEA 공작원들은 재단 또는 세계 오컬트 연합, GRU-P 부서, 혼돈의 반란, 유한회사 마샬카터&다크 등 다양한 요주의 단체들로 뿔뿔이 흩어졌다. 일반 사회생활에 복귀하고 IJAMEA에 관한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는 길을 선택한 사람들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IJAMEA의 기치 아래 계속 싸우기를 선택한 이들도 존재했다. 이런 찌꺼기들 중에서 주목할 만한 하위 집단 두 개를 각기 "숨은 장군"과 "지뢰"라고 지칭하여 구분한다. 두 집단의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들이 IJAMEA의 정통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런 명칭으로 불리는 것을 멸칭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을 유의할 것.
숨은 장군
숨은 장군(隠将軍)은 군국주의 부정이라는 시대적 배경에 적응한 IJAMEA의 전후 조직을 대표한다. 연합군 군정기에 공적 영역에서 일본의 모든 군국주의적 측면이 해체되면서, IJAMEA 충성파들에게는 사적 영역(즉 혈연)만이 마지막 안식처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혈연 관계는 도쿠가와 시대의 카쿠레키리시탄4처럼 되어 카쿠레쇼군, 즉 숨은 장군의 존재의 기초가 만들어졌다. 여러 면에서, 숨은 장군은 "혼네"와 "타테마에"5의 전형들이라고 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사회에서의 생활을 유지하면서, 자기 자신들, 각자의 가족들, 친한 동료들 사이에서만 IJAMEA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별명이 숨은 장군이지만, 숨은 장군들 중에 실제 정이대장군 가문의 후손인 사람은 거의 없고, IJAMEA에서 장군 계급에 올랐던 사람도 극소수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월급쟁이나 기업인, 음악가, 애니메이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잡스러운 직업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장군"이라는 계급은 IJAMEA 구성원으로서 생존한 유일한 존재라는 발족 당시의 신념에서 기인하여 자칭한 것으로 여겨진다. 후세대도 부모의 계급을 물려받아 "장군"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숨은 장군들 다수는 피상적인 사령소를 두고 IJAMEA 계획보고서를 계속 만들고 있으며, 각자의 직업을 목적 달성을 위해 이용한다. 일본의 기적적 경제발전을 기회로 많은 숨은 장군들이 세계 곳곳에 거점을 마련했으며, 최소한의 감독으로도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일부는 우익정당들을 후원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한다는 말도 있다. 재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에서 일하고 있는 전 IJAMEA 공작원들이 숨은 장군들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이것은 해당 단체들을 약화시키거나 협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유포된 과장으로 의심된다.
숨은 장군들의 활동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미국의 파괴와 아시아 재정복을 꾀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입수된 숨은 장군들의 계획보고서 일부의 내용은 비군사적 목적, 예컨대 일본의 초상공동체를 보호하는 것 등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비군사적 목적이은 도덕적 우월성을 점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승리를 위한 또다른 방법이거나, 또는 현재로서는 도저히 실현이 불가능한 군사적 승리를 대신하고자 하는 것이리라 추측된다.
IJAMEA의 직원 인구상 첫 세대의 숨은 장군들은 오직 남성들 뿐이었지만, 이후 세대에서는 여자 장군이 없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는다. 매우 드문 경우지만 비인간형 존재가 숨은 장군의 역할을 하고 있던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지뢰
지뢰(地雷)는 본질적으로 잔류 일본군6의 IJAMEA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뢰라는 별명은 그 비밀주의적 양태와,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기습공격에 기인한다. 처음에는 육군이나 해군의 잔류병들과 비슷한 것들이라고 여겨졌지만, 수십 년이 지나면서 지뢰 특유의 성질들이 구별되기 시작했다.
현대 초상학계에서는 지뢰를 다음과 같은 하위 범주로 분류한다.
- 제1파 지뢰: 일본의 항복을 알지 못했거나 알고도 믿으려 하지 않은 IJAMEA의 작전 중 실종자들로 이루어짐. 수십 년 사이에 제1파 지뢰들은 기도비닉을 유지하고 또한 자신들의 수명을 연장하는 어떤 변칙적 수단을 활성화시켰을 수도 있음.
- 제2파 지뢰: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손을 턴 뒤 베트콩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측되는 집단. 여론 형성, 또한 재단 및 기타 초상기관에 침투 중인 숨은 장군의 존재를 폭로를 목적으로 공공연한 공격행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짐.
- 제3파 지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숨은 장군들 집안 사람들로 구성됨. 21세기 테러조직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임. 자기 친족인 숨은 장군들의 활동부족에 대한 반발로 직접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짐.
이러한 분류에도 불구하고, 지뢰의 활동방식은 극적인 변형을 일으키고 있기에 그 이해가 매우 부족한 지경이다. 지뢰의 세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불명이지만, 감소 추세에 있다고 여겨진다.
고립성 조직이기 때문에 지뢰는 IJAMEA 계획보고서 같은 것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으며, 대신 직접행동을 강조한다. 하지만 지뢰는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예외적 경우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예컨대 입수된 전후 IJAMEA 계획들 중 지뢰 분파조직 조직원들에 의해 수행된 것들이 있다.
과거 IJAMEA에서 문서화한 바 있는 SCP
SCP-2478
SCP-2953
SCP-2954
SCP-4007
SCP-3786
SCP-581-KO
SCP-174-KO
SCP-601-KO
SCP-721-KO
SCP-888-KO
SCP-987-KO
SCP-533-KO
SCP-016-KO
SCP-271-KO
SCP-357-KO
SCP-1514-JP
SCP-4327
SCP-566-KO
SCP-260-KO
SCP-1642-JP
IJAMEA 문서들
1942년 코오자 계획
1945년 사이고 계획
쇼와 일칠년 요원(燎原)계획
쇼와 육년 가토 계획
쇼와 일삼년 쇼텐(昇天) 계획
1936년 청죽계획
쇼와 팔년 야에가키계획
쇼와 일사년 리츠시마기지 수감자 난동 사건 약보고
쇼와 14년 산자이 계획
산자이 고개의 이상사례의 기원에 대한 조사 요청
산자이 고개의 이상사례에 대한 기원 분석: 현황 보고
쇼와 일팔년 세키레이 계획
사건, 보고서, 기타
요주의 단체 유망주 면접
『부상기』
요네즈 원수 물어
허(虛)한 함(轞)
대화편: 토오노의 굽은 소나무
귀로
프리처드학원 고등부: 인문학 교양과목 『장막사 개론』에서 발췌
프리처드학원 고등부: 학제・교양과목 『초상과학・초상기술사 기초 Ⅰ』 에서 발췌 - 근대화와 초상르네상스
정글 속으로
사르킥교의 인류학적 접근 - 사례연구 05: 한반도의 세을가
전야
예전에
악의 상륙
설부화용
AO-01935a 분석: 시인 이철신에 관하여
역벌.
비고: 이 페이지는 listpages 모듈을 사용해 "이자메아" 태그와 "scp", "요주의단체-서식" 또는 "이야기" 태그가 함께 달려 있는 항목들을 자동 정렬해서 보여줍니다. SCP나 GOI-서식, 이야기가 아닌 항목을 만들었는데 이 페이지에 추가해야겠다고 생각된다면면, Dr Solo 또는 MrWrong에게 연락하세요.
대부분의 IJAMEA 문서들은 재단 문서에 비해 전문적인 느낌이 훨씬 덜하고, 민속이나 신화 관련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문적 입장에서 이런 문서들은 때때로 거의 시적이거나 숭배적인 태도로 변칙존재를 지칭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외와 숭배 같은 감각은 IJAMEA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전도구 같은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신화와 역사를 마구 뿌려대는 것을 두려워 마세요. 그런 요소들이 IJAMEA 문서들을 제대로 된 것처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실세계를 당신의 글 속으로 끌고 오는 그 점이 바로 문서들이 진짜 세계에 속한 것처럼 만들어 주고, 당신도 그 세계 안에 사실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아니면 완전 새로운 방식으로 문서를 만들어 보아도 됩니다. 당신이 만들어낸 완전히 새로운 변칙존재를 IJAMEA가 어떻게 처리할지를 정하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일 것입니다.
IJAMEA 문서를 작성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 IJAMEA 문서는 재단의 객관적인 문서들에 비해 상당히 주관적이다.
- 재단은 어쨌든 명목상으로는 인류의 공공선을 위해 일하고 있지만, IJAMEA는 그냥 대놓고 일본제국의 이익만을 위해 일한다.
- IJAMEA의 공문서는 제국에 이로운 방향으로 정보를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거나 거짓 정보를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 초자연적 요소를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재단에서는 "영적 존재(Spectral entity)"라느니, "적대적 인간형 현실조정자(Hostile reality bending humanoid)"라느니 하는 말을 사용하겠지만, IJAMEA가 보기엔 그냥 유령과 악마라고 부르면 그만이다. 이런 신비주의는 보통 실제 신앙이라기보다 국민주의적 도구로서 기능한다.
- 그렇다고 IJAMEA가 완전히 비과학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과학적 방법론이나 용어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 재단과 IJAMEA는 원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1932년 재단이 일본에서 쫓겨나면서 틀어졌다.
- IJAMEA는 격리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칙존재를 취급한다. 그 취급은 격리일 수도 있고 파괴일 수도 있고 그 사이 중간의 무언가일 수도 있다.
- 본질적으로 IJAMEA는 단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바로 승리가 그것이다. 그들은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이다. 이것은 군사적 승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문화적이든 경제적이든 어떤 맥락에서든 일본이 성공하는 것을 모두 포괄한다.
GOI 서식:식 표준적인 IJAMEA 문서는 상당히 단순하며, 계획보고서의 형태를 취한다. IJAMEA 문서들이 꼭 이 보고서의 형태를 취해야 하는 법은 없지만, 이 요주의 단체의 성질과, 그들이 초상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될 것이다.
계획보고서는 IJAMEA의 계획, 프로젝트의 방법론, 그리고 그 결과을 요약한 군대식 공문서다. 이런 문서들은 해당 계획(e.g. "이자나미 계획", "달기 계획" 등)이 완료된 뒤에 작성된다. 양식은 다음 예문을 따른다.
계획명 [이름, 일반적으로 로마자로 표시된 일본어 문구], [계획이 수행된 연도]
목적: [계획의 목적을 서술. 그 목적이 무엇이며, 그 목적은 IJAMEA와 일본의 목적에 어떻게 부합하는가?]
자산: [계획에 동원된 변칙존재를 간략하게 브리핑하는 공간. 그 변칙존재가 어떤 공간에서 왜 사용되었는지를 설명]
결과: [계획이 어떻게 되었는가? 성공했는가? 실패했다면 왜인가? 그 성공 또는 실패가 IJAMEA의 미래에 어떤 결과를 미칠 것이라 전망하는가?]
IJAMEA 문서에는 때때로 조직과 책임자 서명이 들어갈 수도 있다(e.g. 하시마 관측거점, 장군 이토의 데스크에서). 다만 이건 필수는 아니다.
연도에 관한 비고: 계획이 실행된 연도는 다음에 설명할 바와 같이, 해당 계획의 사회적 역사적 배경을 나타내는 지표로 사용될 수도 있다.
연도 | 컨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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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1912년 7월 30일 (메이지 시대)) | IJAMEA의 형성기. 전반적 초점은 조상과학 및 초상현상의 탐구. |
1912년 7월 30일-1926년 12월 25일 (다이쇼 시대) | IJAMEA의 자체 통합기. 전반적 초점은 국민주의와 조직의 국내외적 확장. |
1926년 12월 25일-1945년 8월 14일 (전전 쇼와 시대) | IJAMEA의 대전기. 전반적 초점은 총체적 군사작전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지배 야욕. |
1945년 8월 14일-현재 (i.e. 전후 시대) | IJAMEA는 뿔뿔이 흩어지고, 각 사람마다 목적이 제각기 천차만별로 달라짐. 주목할 만한 테마는 종류를 막론한 승리(군사적인 승리일 수도 있고 다른 것일 수도 있음)에 대한 갈망. |
이상은 세계관 내에서 해당 문서를 작성한 작성자가 살던 시대의 전체적 경향을 말하는 것이지만, 인간 사회의 복잡성과 개인의 역할이라는 것이 작용하기 때문에 그렇게 칼같이 지켜지지 않아도 됩니다.
기타 명명법
- 후-(後-): "(시기적) 뒤" 또는 "두 번째"를 의미. IJAMEA가 이전에 수행했던 계획의 계속이거나 외삽임을 의미함. 그 뒤로도 계속이나 외삽이 이어진다면 III, IV 처럼 서수가 붙음(읽을 때는 "세 번째", "네 번째"라고 읽음).
페이지 테마: IJAMEA CSS 테마를 문서에 적용시키려면, 다음 구문을 복사해서 문서 상단에 붙여넣으세요.
[[include :scpko:theme:revised-ijamea-theme]]
마지막 비고: 이 사이트의 다른 모든 것이 그렇듯이, 이 허브에서 제시한 IJAMEA 관련 정보, 테마, 역사들은 당신이 그것들을 정식 설정(canon)으로 받아들이고 싶을 때만 정식 설정입니다. IJAMEA의 분파나 목적, 자기만의 대체역사 시간선의 구상이 있는 작가가 있다면 모두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