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ry Road~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뚝.
안 그래도 적막한 산길 속 밴은 이제 흙길을 스치는 타이어 소리만이 가득 차있었다. 잠시 후, 카세트를 다시 트려는 기석의 손을 황이 탁 쳐서 제지했다.
"아, 왜요! 기왕 가는 거 신나게 좀 갑시다!"
"정신 사납다, 이 자석아! 우리가 짐 놀러가는 줄 알어?"
"옘병, 사람도 별로 없는 시골인데 뭐 그리 진지하신지 몰라."
"우리는 뭐든 철저해야하는 법이어라. 니같이 설렁설렁허는 아그들 땜시 가람이 같이 성실한 아그들 일만 많아지는 거 아녀."
"아부지는 사투리나 좀 고치소! 경남도청에서 왔다는 양반이 전라도 사투리가 말이가?"
"니도 지대로 쓰라! 애비에게 말이가가 맞겄냐?"
"하이고~ 갱상도 사투리도 못 씀서 존칭은 디지게 따지-."
"여기서부턴 낭떠러지길이 많으니 주의하죠."
비포장 도로에 왔을 때부터 창문만 바라보던 환아의 말에 부자는 입을 닫았다. 살짝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도 원래 부자만 타던 밴에 환아가 끼었던 것이여서 어색한 기운마저 이젠 익숙했다.
황은 처음으로 조용한 임무라는 생각에 잠겨 환아처럼 창 밖을 바라봤다. 운전대를 잡은 기석은 입 다물기가 쉽지 않아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핸들을 두드렸다. 그 소리는 바닥에 돌 튀기는 소음에 묻혔다.
기석은 불안증세가 도졌지만 환아를 원망하지는 않았다. 황도 자기 아들뻘인 여자에게 한소리 들었으면서도 기석과 마찬가지였다. 차가 멈추면 환아의 심장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거란 걸 부자는 알았다.
역정보부서의 SCP-203-KO 소거 작업은 대략적인 큰 줄기들이 다 잡혀 뒷마무리 단계였다. 재단의 시야가 닿지 않는 아주 외진 산골 촌락민만이 가끔씩 발견되는 대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추적팀도 해산한지 2년, 마지막 성씨를 소거한지 8개월이 되었을 때였다. 시골 보건소로 아무나 의사 한 명 보내달라는 전화가 왔다. 통신이 좋지 않았지만, 몽 씨 할머니가 죽어간다는 말은 직원과 도청 중이던 재단 직원에게 똑똑히 들렸다.
대상의 성씨는 몽, SCP-203-KO 중에서도 흔치 않은 성씨이다. 그리고 환아의 머나먼 친척 정도 될 사람이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던 차는 집 다섯 채만 남은 마을 입구에서 멈췄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집에 있던 중년 남성이 차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전화를 한 사람이라고 어렵지 않게 짐작한 세 사람도 차에서 내렸다.
"아이고 아이고 여까지 오느라 수고 맞으셨소잉. 이래 빨리 올줄은 몰랐어라. 세 분이나 올 필요는 읎었는디, 먼 일로 이리 많이 왔소?"
"아무래도 너무 외진 데 있어서요. 할머니 봐드리는 김에 마을 분들 간단한 검진도 하려고요. 할머니 댁까지 안내해주시고, 마을 주민분들에게도 데려다 주세요."
입을 열려던 황을 기석이 제지하며 말했다.
"예 예, 알겠어라. 일단 빨리 갑시다잉."
대상의 집은 입구에서 가장 멀리 있었지만 마을 자체가 작아 금방 도착했다. 노인 혼자 사는 집이라기엔 마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개보수를 했는지 깔끔했다. 집마당에 들어서면서 기석이 말했다.
"여기는 환아 씨한테 맡겨도 되겠죠?"
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 둘이 다른 주민 분들을 볼게요. 안내해주시겠어요?"
세 사람이 발길을 돌렸다. 환아는 곧 자신을 잊을 중년 남자에게 살짝 목인사를 했다. 셋이 다른 집 마당에 들어갔을 때, 환아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전등도 없이 어두웠다. 하지만 방 중앙에 누운 거대한 존재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불에 드러나보이는 몸이 작다는 사실조차 한번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환아는 자신의 뿌리에서 제일 큰 부분이 여기에 남겨져 있음을 느꼈다.
"그 그림자는 마을 사람 게 아닌디, 누구신감..?"
말과 말 사이에 마른 기침이 터져나왔다. 거기에 묻히는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말인데도 환아의 귀에는 또렷하게 들렸다.
노파의 말에 뚫린 방안의 틈새로 환아가 들어가며 말했다.
"말 너무 많이 하시면 안돼요. 몸에 무리가 갑니다."
"의사신감? 김씨도 참… 갈 때가 된 노인네를 어떻케든 그리 살려보겄다고. 이건 늙어서 그런 겨. 의사가 못 고쳐."
"저도 알아요. 전 당신을 치료하러 온 사람이 아니에요."
환아는 옆자리에 꿇어앉았다. 그리곤 큰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
"제 성도 몽이에요"
노파는 순간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다가 환하게 웃었다. 이내 파들거리는 손을 더듬거리자 환아가 그 손을 쥐었다. 노파는 한 손으로 환아의 손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친척이 예 있었구만… 운명이 이래 엮어논 긴지… 내 여기 두고 가서 잘 사는지도 못 들었는디… 이래 예쁜 손을 가진 손주도 찾아오고 여한이 없구만 이제. 우리 아부지가 대대손손 이어진다던 이야기도 이제 멀쩡할 것이고."
환아는 슬프게도 지금이 때라는 걸 알았다. 자기만 가진 특별함의 뿌리가 노파가 내려놓을 것에 있으니, 그걸 파헤칠 때임을.
"아뇨, 어르신. 시대가 많이 지났어요. 전 당신의 이야기를 모르겠네요."
노파의 손길이 멈췄다. 잠시의 정적이 방 안을 덮쳤다. 환아는 무거운 공기가 몸에 잡히는 걸 느꼈다. 그것도 노파의 정겨운 듯한 혀차는 소리에 흔들리다 사라졌다.
"운명이란 놈도 참 짓궃어라. 바깥에선 다 잊도록 두고서… 날 냄겨두다가 아가를 이래 데꼬와놓고는 계속 잇게 한다는 게… 이젠 걱정말고 편히 쉬라고 하는긴가."
그렇게 노파가 말을 이었다.
"우리 가문의 시조가 되신 분, 그분은 참 대단하신 분이였제… 그 분이 태어나실 때는 말여, 상서로운 기운이 태어나신 곳 주변 5리에 가득허고 온갖 산짐승들과 들짐승들이 그 주변에 얼씬조차 하지 않았다 글구만…"
"그분이 무럭무럭 자라가꼬 열두살이 되었을 적인디…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응께 반드시 큰 뜻을 이루어야 헌다 생각하여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드리고 산 속 깊은 암자에 들어가 살기 시작하셨는디…"
"그랗게 산 속에 들어가 수련하신지 몇년… 암자에 한 여인이 찾아왔어라. 필경 여인의 몸으로 이 깊은 산속까지 찾아왔응께 범인은 아니라 생각하여 말하였어…"
"여인의 몸으로 이 깊은 곳까지 오다니 분명 귀신 아니면 요물임이 분명하다… 너는 누구냐? 하고 말이여…"
"그러자 그 여인이 답허는 말이 소녀는 마을에 변고가 생겨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칼 든 놈들이 와 마을을 도륙내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도련님 얘기를 들었으니… 이걸 받들고 마을을 구해주소서… 라는겨."
"여인이 꺼낸 물건은 작은 반지였어… 반지를 꺼낸 후에 여인은 말혔제, 이 반지를 언젠가 돌려받으러 오겠습니다…라고. "
"그분이 그 반지를 받아들고 여인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려 고개를 들고 봉께… 여인은 금새 사라져 있는거 아녀! 단지 손 안의 반지만이 고것이 꿈이 아니라는 기를 증명해주었고…"
"그 반지를 끼고 급허게 마을로 내려가 봤는디… 아니나 다를까 온 마을이 폐허가 되어 있는겨!"
"이게 참말로 무슨 일인고… 싶어 주변을 돌아보니 글쎄 여인 말대로 칼 든 무리가 있던겨… 자세히 보아하니 이놈들이 마을을 파괴한 주범인 것이 눈에 선하였제… "
"그래가꼬 그 분이 그 무리들에게 달려들었는디… 산 속에선 못 느꼈던 힘이 불끈 솟아가꼬… 불한당 노무 시키들을 날려 보내부렀제… 순식간에 건장한 머시마들이 전멸해버린겨"
"다 끝나고 나서 반지를 빼 봉께 아까와 같은 힘이….. 쏴악 빠져나가분겨. 그제서야 여인이 나를 도왔구나… 허고 하루죙일 수소문혀봤는디 옆 마을 사람덜도… 그런 여인은 살지도 안하였다 라는 얘기만……"
"그랴서 하늘이 도왔는감… 귀신에 홀렸는감…… 혀서 암자에 누워 잠이 들었는디….. 꿈에서 여인이 나온겨! 그 분이 감사 인사를 허자마자 여인이 말허기를…….."
(침묵)
"저는 본디 요괴로 세상물정 모르는 자를 꾀고, 무지한 자를 속여 잡아먹는다 하여 '몽매아'로 불립니다. 도련님이 산에 계셨을 때부터 지켜 보았는데, 크게 자라실 동안 제가 자리할 틈을 주지않아 오히려 제가 도련님을 남몰래 섬기게 되었습니다. 허나 결국은 요괴인지라 도련님을 보는 동안 사람을 먹지 못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늘의 상제님이 기특히 여겨 저를 살려 사자로 두시기로 했습니다. 그 전에 죄를 씻으러 오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련님을 도울 일이 생각나 왔으니, 이 반지는 제가 잡아먹은 인간의 영혼을 벼려 만든 겁니다. 이 영혼들을 풀어내면 저와 함께 올라가 제 죄는 씻길 것입니다. 도련님이 만세를 누리셔도 결국 인간인지라 제 곁으로 오지 못하니 이것이 작별입니다. 지금의 도련님을 잃지 마시고, 부디 저를 잊지 마옵소서… 잊지 마옵소서… 잊지 마옵소서…"
녹음기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말을 쏟아낸 노파의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뒤를 이었다.
환아는 딱 두 번만 더 듣고 일어나기로 했다.
환아가 마을 입구에 다가가자, 밴 옆에 서있던 황이 담뱃불을 껐다.
"다 끝난겨?"
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석 씨는요?"
"즈기 최초 신고자분 작업 중이여. 할매까지 다 끝내고 열로 올 겅께 잠깐 기다리자고."
환아는 고개를 돌려 마을을 바라봤다. 정말로 작은 마을이다. 무언가가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그런 마을. 그 커다란 한 줄기를 우리가 가져왔으니 이제 여긴 작은 것들만 남는 걸까.
"글고보니 있었는감? 자네 집안 이야기말여."
환아가 황을 바라봤다. 황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우리 보고서엔 대충 일반화혀서 적었는디, 자네 집안만 뭐라 얘기가 없었응께. 이것도 보고서에 적을라믄 적어야혀. 머 비밀로 허고 싶으믄 그래도 디고. 보고서도 자네가 쓰게 헐랑께."
"아니에요."
환아가 다시 마을을 보았다. 머리에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를 떠올리자 마을에는 어딘가 익숙한 따뜻함이 흘러넘치는 듯 했다. 그것이 마지막이렷다.
"가면서 다 말해드릴게요. 기지에서도 모두에게 말할거예요. 모두가 잊지 않도록."
그리고 이것이 환아의 자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