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필규는 베타의 이름이 왜 베타인지 몹시 궁금했다.
왜냐하면 그의 지식에 의하면 베타라는 이름은, 그리스 문자의 베타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순서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 앞에는 알파가 있어야 맞는 것이다. 알파벳은 A부터 시작한다. 알파벳이 B부터 나오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그 앞에는 A가 있어야 한다. 함필규는 그 종의 첫 번째가 되었을 알파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베타의 앞에 있어야 자연스러울 알파라. 그것과 같은 이름을 공유한다면, 아마도 물고기의 한 종류라고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베타의 앞에 있는 것은 물고기가 아닌 이선학 교수다. 그 베타의 앞에 있는 것이 알파라면, 최소한 함필규에게 그는 알파가 되어야 마땅했다.
함필규는 베타를 보는 척하며 이선학 교수를 보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은, 그럭저럭 관리를 해온 평범한 중년 남자의 얼굴선이다. 실제 나이에 비해서는 동안이라고 해줄 만한 외모였으나, 힘필규가 동안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이선학 교수가 가진 외부의 모습 때문은 아니었다. 함필규는 그 이유를, 이선학 교수가 언제나 나이보다 젊게 살아가는 어떤 변칙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꽤 들었지만, 곤충을 직접 채집하기 위하여 잠자리채를 들고 돌아다닌다던지 하는 행동들 말이다. 이선학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위치와 나이였다. 그러나 언제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함필규나 채유진에게도 스승으로서 권위를 세운다던지 하는 일 없이 대해주었다. 아버지처럼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그런 것만이, 함필규가 그의 외모에서 느끼는 전부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뒤에는 함필규 자신이 있었다. 저 수조 안에서, 이선학 교수의 뒤만을 바라보는 베타처럼.
베타의 앞에 있는 알파, 이선학 교수. 그리고 베타를 훔쳐보는 척하며 이선학 교수를 바라보는 자신. 도대체 나는 뭘까.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와 동거하고 있는 것이 부럽게 생각되는 베타도, 또한 알파도 되지 못한다. 의미를 찾고 싶었다. 당신의 제자라는 호칭 이상으로,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못할… 그런 것이 되고 싶었다.
모든 감정들은 하나로 뭉뚱그려진 채 끝내 함필규의 안에 후회로 남았다.
이선학 교수의 집에 방문하고 난 뒤의 밤. 함필규는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은 휴일이었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밤 시간을 보내도 충분하였으나 몹시도 피곤했다. 함필규는 후회할 일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후회나 돌이켜보며 반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남자다. 그러나 그는 이선학 교수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언제나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혼자만의 후회라는 감정에 푹 빠질 수 있다면 그것은 밤 또는 새벽이다. 함필규는 그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함필규는 눈을 감고 후회의 감정에 서서히 빠져든다. 감은 눈 너머로, 그의 시선을 빼앗은 베타가 거기 있었고 이선학 교수가 있었다. 그의 집에 방문할 때마다 마주하는 풍경. 베타를, 아니. 이선학 교수를 바라만 보지 말고, 행동을 했었어야 했다. 말을 꺼냈어야 했다. 꺼내면 안 될 말인 줄 알면서도 그랬다. 후회라는 것은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온전히 빠질 수 있는 감정이다.
함필규의 심장에 말라붙은 후회를 긁어내어 모을 수만 있다면, 베타의 수조를 가득 채우다 못해 이선학 교수의 집을 채우고도 남을 양이 될 터였다. 함필규는 은은한 후회 속에 잠이 들었다. 수면 중에는 이런저런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진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밤이 완전히 지나지 못한 이른 새벽에 함필규는 잠에서 깨었다. 꿈조차 꾸지 않은 수면 시간이었으나, 잠자리가 편치 못했다. 함필규의 마음속의 무엇인가가 그를 잡았다. 스스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었다.
가득 채웠었던 후회? 그 감정은 이미 알고 있다. 이선학 교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 반성이란 앞으로 달라질 사람이나 마음먹는 거다. 새벽의 함필규는, 그리고 아마 대낮의 함필규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갈 생각이 없었다.
'이선학 교수에게 품은 마음을 털어놓는다'라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애초에.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자신은 그의 부하 직원이자 수제자이고, 자식 같은 아들이고. 또한 언제나처럼 아버지처럼 대하는 사람이고. 그 외에는 그 어떤, 다른 것들도… 수식되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사랑이라니, 그런 건 존재 자체가 부정하고 죄스러웠다.
허락받은 적도 없고 고하지 못할 특별한 감정을 품은 건 자신인데, 그것을 세상 끝까지 숨겨야 하는 것도 자신이다. 끔찍한 일이다. 만약 내가 채유진과 같았다면 그에게 감정을 고백할 수 있었을까. 그와 남매처럼 지내온 채유진과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흡연자였다면 담배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함필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기에 일어나자마자 그냥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페트병의 뚜껑을 열고 병째 마셨던 물속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투명하기만 했다. 페트병 안에 남은 생수를 보며, 함필규는 자연스럽게 물속에 살아가는 그 생물을 떠올렸다.
함필규는 베타를 키우지 않았다. 그저 그 생물에 관심이 있는 척했을 뿐이다.
함필규는 베타를 키우는 이선학 교수의 집을 방문한다. 함필규는 침대에 누워서 휴식을 취하는 베타를 본다. 침대. 이 집에 있는 사람용 침대는 단 하나뿐이겠지. 당신이 혼자 누워서 잠들고, 다음 날 일어나는 곳. 함필규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공간이다.
함필규는 베타에게 관심을 표하고, 이선학 교수와 대화를 나눈다. 베타의 앞에 있는 이선학 교수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의 내용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단둘이. 이선학 교수와 함께한 공간에서, 나는 그저…
이선학 교수의 집은 함필규에게 그러한 의미를 가진다. 함필규는 그곳에서 하늘하늘하게 움직이는 베타의 지느러미를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것은 함필규에게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었으나, 지금은 그것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이선학 교수의 모습 말고는 떠올려 낼 수 없었다.
이선학 교수는 언제나처럼, 그 앞에 있었다.
이선학 교수. 교수님. 나에게 당신은 이러한 의미인데, 당신에게 나는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나는 당신을 그런 식으로 좋아해도 정말 괜찮습니까.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를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단 한 번만이라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무슨 대답을 듣건 간에 심장이 터질 듯이 아플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함필규는, 새벽의 감성에 빌붙어 그나마 심장이 덜 아픈 것을 상상해 보기로 했다. 아직 페트병 안에 남아 있는 물을 더 마셨다. 찬 물이 아니라서 이성이 돌아올 만큼 정신이 멀쩡해지는 효과가 없어 다행이었다.
함필규는 침대로 돌아가, 다시 자리에 누웠다. 불이 꺼져서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이선학 교수의 목소리를 상상했다. 상상 속의 이선학 교수는 현실의 목소리보다 더욱더 달콤하게 함필규에게 속삭였다.
'필규 네 방식대로 좋아해도 된단다. 나 역시 너를 한 사람으로서, 좋아할 수 있겠구나.
그러니 우리의 관계를 다시 한번 분류하고, 정의해보도록 하자꾸나.'
'네, 좋습니다. 이선학 교수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좋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감정은 당신의 생각보다 더 깊을지도 모릅니다.'
'확인해 보고 싶구나. 네가 나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실제의 이선학 교수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이것은 순전히, 함필규의 상상이다. 새벽의 상상은 무척이나 달았다.
한편으로는 이 방법이, 그나마 함필규의 심장이 덜 아픈 방법이다. 상상속이지만 이선학 교수의 다정한 말투로, 지금껏 숨겨왔었던 사랑을 매몰차게 거절당한다는 선택지를 생각하면 그의 삶은 그대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연인에 준하는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둘만한 사이가 못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선학 교수의 나이를 비롯한 상황을 고려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때, 함필규는 자신과 이선학 교수의 관계가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을 거라고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다.
상상 속은 안전했다.
그에게 고백을 한다면, 지금까지의 관계는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갈 것이 뻔한 일이다. 위험한 도박. 도박도 이런 도박이 없다. 함필규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이선학 교수의 부하 직원이자 수제자이고, 자식 같은 아들이라는 아주 안전하고도 멋진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했다.
사랑은 자유였다. 함필규는 자유롭게, 그리고 은밀하게 오래전부터 그를 사랑해 왔다. 그렇지만 함필규는 감히 고백이라는 선택지를 떠올리면 안 되었고,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옭아매는 금기였다.
하지만 상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를 사랑하고 싶은 욕망과 잊힐 리 없는 그 감각을, 새벽 감성이라며 핑계 댈 수 있게 되었다. 텅 빈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음껏 떠올리기로 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뭐든지.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를 끌어안는 자신을 떠올렸다.
혼자 살고 있는 그와 함께 데이트다운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그 장소는 이선학 교수의 집이 적당했다. 다른 곳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부자 관계까지 연결이 되어 있는 데다, 감정적인 부분도 얼마든지 키웠던 사이가 아닌가.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의 집에서, 현관문을 열고 바로 앞에 있는 중문이 닫기자마자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잠시만' 이라고 하는 이선학 교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소파에 몸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그의 셔츠 안으로 손을 뻗어 느긋하게 몸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그러면 그가 제 몸을 밀쳐내며 말하겠지. 씻는 게 좋겠다고. 물론 수락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진하게 키스를 한 상태에서 그의 몸이 달아올라 있다는 것은 바짝 다가간 몸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욕실에서 씻고 나오면 드디어, 함필규는 무수히 그의 집을 방문하면서도 손끝 하나 대지 못했던 그의 침대로 갈 것이다. 잘 정돈된 침대에 그를 눕힌 채, 남자를 모를 가능성이 높은 그에게 자신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싶었다. 이선학 교수의 맨몸. 외국으로 파견을 나갔을 때면 언제나처럼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와 호텔방을 같이 썼었다. 당연히 본 적이 있지만, 침대 위에서는 낯설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침대에 누운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이선학 교수의 시선을 상상했다. 그때도, 여전히 나는…
상상 속의 함필규는 가볍게 이선학 교수의 위에 올라탔다.
이선학 교수님. 당신은 오래전부터 저를 먼저 유혹하셨어요.
지금까지 제가 당신 집에 어떤 마음으로 갔을지 상상은 해보셨어요? 그러니까 오늘은 꼭…
이선학 교수는 그의 질문에 약간의 신음만을 내었을 뿐, 명확한 대답을 내어주지 않았다. 샘이 났다. 당신의 대답을 필요로 합니다, 교수님. 그래서 함필규는 이선학 교수에게 자신을 꾹꾹 밀어 넣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이선학 교수는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함필규는 그에게 발언권을 줄 의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차례가 아니었으니까. 아프시죠? 무슨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근데 나도 당신만큼 아팠어요. 그러니 한 번쯤은 아파보세요. 오히려 당신과 더 가까워지고 좋잖아요, 네. 저는 교수님하고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지금보다. 더 깊게 나를 받아들여 주세요. 사랑해요. 난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을 안는 거예요. 당신도 나를 사랑하니까 내게 안기는 거죠?
함필규의 움직임에 조금씩 거칠어졌고, 허리가 제 멋대로 흔들렸다. 함필규는 거기에서부터 욕망을 채우고 쾌감을 얻었다. 그런 종류의 쾌락을 이선학 교수는 알고 있을까? 함필규는 제 아래에서 실제로 목격하지 못할 것이 분명한, 묘한 모습으로 무너져 내린 이선학 교수를 사랑했다.
그리고 더욱더, 그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에서 그의 이마에 입술을 맞대고는 나지막히 속삭였다. 좋아해요, 교수님. 나는 당신이 오래도록 정성 들여 키운 연인이에요. 그리고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당신을, 사랑해 보고 싶은…
함필규는 손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곳은 더 이상 이선학 교수의 침대가 아니었다. 함필규의 침대 위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 보이고, 마시다 만 물병이 근처에 있다. 함필규는 눈을 감았다가, 상상 속의 이선학 교수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런 얼굴. 생각보다 강하게 전해지는 흥분.
나는 당신을 지극히 불건전한 방식으로, 욕망하고 있다. 이선학… 이선학 교수님.
함필규는 이제 슬슬 그 이름에서 '교수님'을 떼고 이름 석 자만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선학 교수를 범하는 상상을 하는 지금도 여전히, 그것만큼은 함필규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것이다.
비릿하고 질척이는 욕망에 물든 손바닥을, 함필규는 티슈를 꺼내어 깨끗히 닦았다. 그것은 함필규의 침대 위에서 벌어진, 새벽에만 허락된 혼자만의 사랑의 흔적이다. 새벽을 지나 아침이 오면 쓰레기통으로 사라져 버릴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함필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선학 교수님. 나는 이 정도로 당신을 좋아하는데. 당신의 끝 사랑이, 저일 수는 없을까요.
베타를 키우는 당신에게 나는 틀림없이 알파가 되지 못하지만, 네,
당신의 끝인 오메가 정도는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알파와 오메가…
함필규는 종교가 없었으나, 이 상황에 종교적인 구절이 떠오르는 것이 매우 불미스럽게 느껴졌다. 그에게 있어 종교는 이선학 교수 하나였다. 이선학 교수가 만약, 함필규 본인이 자신의 끝이 되기를 원한다면 기쁜 마음일테지만 끝끝내 물어볼 수는 없는 사실이다. 그런 것은, 금기다.
사랑하기에 금기가 되는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사랑을… 하지만, 언제쯤 나는.
함필규는 자리에 누워, 나른한 기분 속에 다시 한 번 이선학 교수를 상상했다. 그의 상상 속에서 벗은 몸의 이선학 교수는,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 그는 함필규에게 몸을 바짝 붙이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더 가까이 안아주게.
그는 유자청의 단 맛을 닮은 말투로 속삭이고, 이내 키득거리고 웃기 시작했다. 함필규도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함필규는 그에게 좋았냐고 물었다. 그는 좋았다고 대답했다. 네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았다고, 그렇게. 조금의 망설임도, 고민도 없이.
상상 속의 연인은 실제의 이선학 교수가, 하지 않을 말들을 달콤하게 속삭인다. 그가 속삭이는 말들이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함필규는 새벽의 마법에 기꺼이 속고 싶었다. 침대에서 취한 휴식은 짧았고, 함필규는 자신의 상상이 끊기지 않길 원했다. 그의 아랫도리에 다시 한번 피가 쏠리고, 그는 무엇인가를 더 선명하게 욕망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네요. 아침이 올 때까지 당신을 사랑해 드릴게요, 이선학 교수님.
느릿하게 시작된 손의 움직임은 점차 빠르게 바뀌었다. 두 번째의 시도는 더욱더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함필규는 눈을 감고, 그 상상 속으로 빠져들며 조용하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이선학…"
그 새벽 시간 내내, 유일하게 함필규가 말했던 단 한마디의 말. 뒤의 호칭을 빼고.
아주 불경하게 느껴지는 단 세 글자만을.
나는 새벽에 당신을 생각해 보았다. 새벽의 당신은 나에게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와도 같았다.
그것은 정확히는 당신의 모습을 닮은 그 어떤 이데아였다. 당신의 본질, 나를 욕망하게 하는 것.
그는 무척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휴일의 일정은 당신을 생각하는 데 소모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 휴일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업무 시간에 당신의 얼굴을 다시 본다면 난… 난 당신을 다시 '이선학 교수님' 하고 부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나는 당신의 뒤에 있을 것이고, 여전히 혼자서만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혼자가 되는 새벽에야 당신을 욕망해 낼 수 있는, 그런 한심한 남자라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