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치 은비예술한림원(MADAO) 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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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통사


한림원은 1484년 7월 8일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1 이것은 교황 식스토 4세가 피렌체의 참주 로렌초 데 메디치가 “이탈리아의 가장 유능한 젊은 예술가들을 훈련시켜 그들의 작품을 은비학 문제를 알고 있는 모든 이들이 향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관을 설립”하도록 칙서를 내려 줌으로써 가능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술가들을 훈련하는 교육기관으로서 만들어졌지만, 이윽고 메디치 일족의 손아귀에서 피렌체 도시국가의 외교를 위한 가공할 무기로서 활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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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츠 선거후비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

이후 한림원은 (로렌초가 죽고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가 집권하기 전까지 공화정 기간은 제외하고2) 계속 메디치 일족의 소유였으며, 메디치 일족과 흥망성쇠를 함께했다. 그러나 토스카나 대공 코시모 3세 데 메디치가 딸의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 한림원을 프랑스 국왕 루이 14세에게 매각하고자 시도하는 등 한림원의 존속을 위협하는 사태들이 발생했다. 코시모 3세의 딸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는 한림원에 대한 절대권력을 장악한 마지막 메디치 일족 사람이었다. 팔츠 선거후와 결혼한 안나 마리아 루이사 데 메디치는 소위 “가족 조약(Patto di Famiglia)”으로 오스트리아-로트링겐 왕권으로부터 한림원의 독립을 지켜냈다. 이로써 한림원은

[…] “가장 고귀한 대공위의 승계 과정에 의하여 화랑, 그림, 조각상, 도서관, 보물 등 기타 귀중품이 대공국 국외 자본으로 유출되지 않고, 대공국 국유재산으로 남아 공공의 이익으로 되고 또한 외국인들의 관심을 불러들이도록”

할 수 있었다. 이후 더 이상 메디치 일족을 섬기지 않게 된 한림원은 계몽주의 원칙에 따라 과거 예술을 복원하는 박물관으로서 역할을 재정의했다. 이로써 한림원은 천주교 유럽 국가들 너머 신교도 국가들에, 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에까지 진출해서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이후 사보이아 일족에 의해 통일 이탈리아 국가가 탄생할 무렵, 이탈리아 통일의 대의에 소극적 찬성 입장이었던 한림원은 자신들을 그 국가의 은비학 대처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여 왕립 이탈리아 통일학우회의 활동을 지원했다. 그러나 1871년 로마를 정복한 이탈리아 왕국은 왕립 이탈리아 변칙연구원(RIDIA)를 만들었고, 메디치 한림원과 이해관계를 달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짧은 위기의 순간을 넘기고 한림원은 왕립연구원에 흡수되는 것을 면하였으며, 이는 유럽 귀족들과 미국 부르주아들의 기부 덕분이었다. 이후 벨에포크 시대는 비록 지평선 너머에서 새로운 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음을 감안하여도, 한림원 역사상 가장 많은 성과를 거둔 시기였음에 틀림없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유럽의 착잡한 정세와 그 귀결들로 인하여 유럽의 한림원 지부들은 역량과 능력이 위축되었다. 반대로 아메리카의 지부들은 세계대전이라는 한계 안에서도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의 은비학 부대들에게 여러 시설이 약탈당했으나 대체로 전쟁의 참화를 피해갈 수 있었다. 빼앗긴 물건들도 전후에 SCP 재단 및 세계 오컬트 연합(GOC)과 양호한 관계를 구축하여 대부분 되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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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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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지도사 아메데오 발디니 (20세기 40-50년대 활동)


1743년 메디치 대공가의 혈통이 단절되면서, 한림원 내부적으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한림원은 이로써 토스카나 대공국의 국익에 종속된 관제기관을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사립기관으로 거듭났다. 당시 각 지부의 지도사들 가운데 가장 유망한 것은 피렌체 지도사 자리였으나, 피렌체 지도사가 단체의 새로운 수장이 되는 것은 안나 마리 루이사 데 메디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차단되었다. 선거후비는 유언장에서 한림원과 토스카나 대공 간의 조정 업무를 담당하던 직책인 “쿠라토르 헤레디타티스(Curator hereditatis[로마법의 상속관리인])”3가 조직의 수장이 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새로운 권한과 역할이 부여된 수장 직책은 그 직함을 “쿠라토르 아카데미아이(Curator Academiae[학문의 관리인, 학예사])”로 바꾸었다. 그 밖에 여러 직책들이 생겨났으나 과거에 비해 큰 변화는 없었다. 직책들은 위계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 학예사(Curatore): 조직의 수장으로서 조직의 재정 일반과 대외 관계를 관리한다. 그러나 대외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학예사는 절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림원 내부적으로도, 다른 단체와 만날 때도 모두 마찬가지다. 학예사는 선출직이지만, 임기가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학예사는 한림원의 모든 지도사들의 내부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것으로 추측된다.
  • 지도사(Tutori): 각 지부의 장. 자기 관할권 내에서의 내부 엄무, 그리고 제한적으로 대외 조정 업무를 맡는다. 지도사도 선출직이며, 임기는 가변적이다. 한림원 내에서의 공훈과 예술 세계에 대한 기여로 이름을 알린 사람들로 이루어진 후보군 중에서 선출된다.
  • 감리사(Supervisori): 구체적으로 특화된 분야들의 전문가이며, 보조사들의 업무에 대한 결정권한을 일부 가지고 있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횡적인 위치를 유지하는 존재로서, 지도사의 의지를 관료적으로 수행할 뿐인 실무자가 아니다. 그들은 명예로운 성원이고 그들의 의견은 경청될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 보조사(Assistenti): 위 셋에 해당하지 않는 조직의 나머지 성원들. 예술품 복원, 보존, 대외관계 등 무슨 업무에 종사하든 모두 보조사라고 불린다. 그들은 한림원의 일상적 업무가 돌아가게 만드는 맥동하는 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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