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이런 멍청이 같은…아니 멍청인가요?" 그녀가 말했다. 표정은 하나도 일그러지지 않은 채 찬찬히, 그러나 똑바로 눈을 쳐다보며 말이다.
"당신은 정말 모르고 있군요? 그런 머리로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궁금합니다. 대인관계는 잘 되가나요? 그럴 리 없겠죠." 온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였다. 풀그림은 지금 그녀를, 재단의 수장이자, 얼음여왕 노래마인을 아무도 없는 심야의 사무실에서 독대하고 있다.
"거두절미한 채로 당신께 말하겠습니다." 그녀는 긴장도 하지 않았는지, 미동도 없는 몸으로 풀그림을 향해 쏘아보며 말했다.
"풀그림님, 저는 당신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랑 결혼…아니 사귀어 주시면 안 되련지요? 시간은 10초주죠."
풀그림은 그녀의 시선에 얼어붙은 채 당황하며, 그 특유의 여자 앞에서 멍해지는 습관 때문에 버버벅거렸다.
"어…자…잠깐…기…분이 이거 묘… 묘한데요?"
"추가시간이 필요하면 요청하세요. 드릴께요."
노래마인과 그는, 미묘한 이 사무실의 공기 속에 서로 마주본 채, 10초라는 시간이 영원토록 흘러가는 것 같았다.
"잠깐, 좋은 것 같습니다는 뭐에요?"
'저런 멍청이!', '눈치랑 코치랑 세트메뉴로 판매한 녀석!', '이봐요 돌아와요!'.
갑자기 문이 덜컹하고 열리며 Scientasyist가 눈치도 없게 난입해왔다.
"당신 어떻게 들어왔어요!" 풀그림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물어봤다.
"문을 똑바로 잠그시던가… 지금 재단 인원 대여섯 명은 있다고…읍!읍!" Scientasyist는 그렇게 자신만만한 채 서있다가, 문 밖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 진압당해 끌려갔다.
"어… 잠깐만요! 그… 그러니까…그게… 좋은 것 같다고 하면… 부끄럽잖아!!"
그러자 진압하던 사람들도, Scientasyist도, 밖에 있던 사람들도, 풀그림도 모두 놀랍다 못해 벙 쪄지고 할 말이 사라진 표정으로, 마치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들 할 말이 너무 많아 우물쭈물 대며 노래마인에게 뭔가 질문하려던 순간이었다.
"아… 아냐 잊어! 잊으라고!"하며 노래마인이 얼굴을 숙인 채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우하하하하!""크흐흐흑" 그러나 때는 늦은 법, 재단의 사람들은 웃음이 입에서 떠나질 못했다.
"…이… 이런 돼..! 됐다고! 다들…그… 그만하란 말이야!"하고 노래마인은 정말로 당황해서 말도 잇지 못한 채로 더듬대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웃음소리는 커져갔고, 심지어 피해자(?)인 풀그림마저 휴대전화를 꺼내든 채 비디오로 녹화하기 시작했다.
"이야~ 이거 녹화합니다!"
"하… 하지 말라고요!!!" 노래마인은 풀그림에게 달려들며 핸드폰을 빼앗으려고 풀그림에게 폴짝폴짝 뛰며 빼앗으려고 한 것도, 결국엔 다 녹화가 되어버렸다.
"…이거 진심 이긴… 한데!! 부끄럽다고요!!! 빨… 빨리 그만!!" 하고 그렇게 몇 분 동안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노래마인이 결국 쫓다가지치고 부끄러움에 지쳐서 의자에 앉아서 얼굴을 파묻고 있자, 결국 또 다른 이가 나섰다.
"흠, 노마님, 그럼 이제 딴 얘기 할까요?"
"쳇, 당신들 전부 A등급 기억소거를 먹일 거예요!"하고 삐친 노래마인은 얼굴도 안보여준 채 말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음… 술 얘기 어때요?" 좀 이상한 이야기긴 하지만, 샐 박사에겐 노래마인을 달래줄 수 있는 최고의 말이었다.
"…해봐요. 단! 이제 이 얘기는 다들 잊어줘요! 제발…"하고 노래마인이 애원하자, 샐 박사와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자 그럼, 제가 자주마시는 맥주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우선 맥주는…"하며, 샐 박사가 이야기의 화두를 꺼내며 방을 나갔고, 그와 함께 다른 사람들이 사무실을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날 사람들만 기억할 아주 특별한 이벤트로 남았다.
물론 우리의 Scientasyist연구생이 보고서로 이렇게 작성해 주신 걸 빼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