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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3 D W 0 R L D
【가락을 만나다】 붉은세상 편
가락을 만나다: 모던가락의 잔향 붉은세상 편
소개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붉은세상이다. 마이너한 가락을 만든다. 가끔, 아주 가끔 공연도 한다. 다만 무대보다는 방 안이 더 익숙하다.
가락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원래는 집 밖에 자주 나가진 않았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대신 골목길에서 남들이 올린 자작 가락들을 듣거나, 그들의 공연 실황 따위들을 보곤 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올린 라이브 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작은 클럽 공연 영상이었다. 조명은 어둡고, 소리는 거칠었고, 관객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공간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토킹헤즈Talking Heads의 팬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CBGB 같은 곳이 가락의 세상에도 있지 않겠냐고. 분명 어딘가에는, 그런 작은 무대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한 번은 용기를 냈다. 기타도 제대로 못 치던 시절이었다. 그냥 구경만 하겠다는 생각으로 클럽 문을 열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평범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중고 기타를 샀다. 연습도 제대로 안 된 채로, 몇 달 후 그 클럽의 오픈 마이크에 섰다. 손은 떨렸고, 코드도 몇 번 틀렸다. 그래도 아무도 비웃지 않았다. 그냥 박수를 쳐줬다.
그 뒤 나는 그 클럽에서 몇 번 더 공연을 보며, 혼자 연습을 시작했다. 기본 코드부터 배웠고, 좋아하던 밴드들의 곡을 따라 쳤다. 집에서 작은 오디오 인터페이스를 연결해 녹음을 해보기 시작했다. 당연히 음질은 좋지 않았다. 방음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로파이Lo-Fi한 소리가 됐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내 방의 공기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완성한 것이 1집 「워낭소리」 이다.
앨범을 낸 뒤, 용기를 내어 다시 그 클럽을 찾았다. 오픈 마이크 무대에 섰을 때 손은 여전히 떨렸고, 연주도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명히 내가 만든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나자, 조용히 박수가 들렸다. 크진 않았지만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슈게이즈 가락의 창시자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창시자라는 말은 부담스럽다.
나는 무언가를 처음 만든 사람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슈게이즈를 많이 만들었다. 나는 단지 이를 가락판 내에 들여왔을 뿐이다.
나는 아직 내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여전히 가락을 배우는 중이다.
자신의 가락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나는 복잡한 기교를 쓰지 않는다. 코드도 단순하고, 가사도 어렵지 않다. 대신 같은 소리를 여러 겹으로 쌓는다. 멜로디보다 질감을 더 오래 고민한다.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은 악기들의 소리로 덮어 둔다.
아마 그게 차이라면 차이일 것이다.
내 가락은 선명하게 확하게 다가가기보다는, 듣고 난 뒤에 여운이 남는 쪽에 가깝다. 바로 이해되기보다는, 밤이 깊어졌을 때 문득 떠오르는 쪽.
독자들에게 자신의 대표 가락을 소개해 줄 수 있나?
알겠다. 변칙을 덜어낸 가락들은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밴드캠프 등에 올라가 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쯤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내 가락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면, 나는 기꺼이 1집에 수록된 "도망치다가 넘어지더라도"를 고를 것이다.
도망치다가 넘어지더라도
어둠 속으로 침묵 속으로
숨이 찰 때까지 달려가
뒤를 돌아볼 틈도 없이
이름 모를 것에 쫓기며
발목이 풀려 흙바닥에 넘어져도
괜찮다고 아직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중얼거려
…
이 가락은 제목 그대로, 무언가로부터 쫓기듯 달리다 결국 넘어지고 마는 한 인간의 서사를 담고 있다. 하지만 그 넘어짐이 곧 끝은 아니다. 넘어졌다는 건 아직 달리고 있었다는 뜻이고, 숨이 차 있다는 건 아직 멈추지 않았다는 뜻이니까.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거창한 말은 잘 못 한다.
요즘은 다들 너무 선명한 것만 보려고 하는 것 같다. 빠르고, 또렷하고, 완벽한 것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선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조금 흐릿해도, 조금 느려도 괜찮다. 또, 원하는 걸 못 이루어도 오늘 하루를 버텼다면 그걸로 충분하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멈추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늘 무사태평하길 기원한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