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같은 것과 배 먹는 벌레

Yamamoto_506 2022/8/22 (목) 22:35:01 #82965128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 일이다. 당시 나는 해상기술학교 생도였다. 해상기술학교라는 것은 선원을 양성하기 위한 전문학교다. 보통 고등학교와 같은 일반과목 외에, 항해학이나 선용기관 등의 전문과목이 있고, 학교가 소유한 연습선을 사용해 조타실습도 한다.

어릴 때부터 원피스나 캐리비안의 해적에 빠져 선원을 동경해왔기에 이 길을 택했다, 라고 말하고 다니긴 하지만, 솔직히 불안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첫 실습에서 배를 몰아볼 때까지였다. 물론 선생이 보는 앞에서 짧은 시간만 조종한 거였지만, 그래도 저런 거대한 쇳덩이가 내 조타를 따르면서 드높게 기적을 울리고 파도를 헤치며 쭉쭉 나아가기 시작했을 때, 쪽팔리지만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글썽이고 말았다. 선생이 「망설임이 있는 생도들도 한 번 조종을 해보면 개운해진다」고 말한 그대로였던 것 같다.

딱히 보통 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을 업신여기려는 것은 아니지만, 해상기술학교에는 「어쩌다 보니」 또는 「어쩔 수 없이」 입학하는 놈이 있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틀림없이 그 녀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녀석은 동급생이었고, 적어도 내 쪽에선 친구라고 생각했다. 가칭 K라고 부르기로 하자.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뱃놈 지망생 치고는 선이 가늘고 말이 없어서 여자로 착각될 만한 용모였다. 지필은 학년 톱클래스의 성적이었지만, 실기가 실전이 약했다. 내향성이라고 해야 하나, 섬세하다고 해야 하나, 선생한테 무슨 주의 한 번 들었다고 쭈구리가 되어서 될 것도 안 되어버리는 타입. 적어도 K에게 있어서 예민함과 호담함은 양립할 수 없었던 것이었을 터이다. 나는 그런 K를 언제나 조마조마 지켜보았다. 나 자신도 풋내기였던 주제에.

K의 본가는 부자였다. 아마 상당한 부자. 추측하는 말투가 된 것은, K가 본가의 유복함을 한사코 숨겼기 때문이다. 마치 치욕이나 오점인 것처럼. 허나, 몸에 밴 생활수준이랄지, 언행 구석구석에서 드러나는 것이랄지, 보면 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일이 있었다.

어느 날, K가 심플하면서도 멋진 팔뚝시계를 차고 왔다. 내가 별 생각 없이 감탄했더니, 동급생들이 몰려와 떠들썩해졌다. 「그거 ××× 아니냐, 개쩐다ー!」 그런 느낌으로. 아무래도 고급브랜드품이었나보다. 평범한 10대 소년이 차고 다닐 만한 게 아닐 정도로. 그 말을 들은 순간, K는 「어차피 짝퉁이야」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다음날부터 K는 그 시계를 두 번 다시 차는 일이 없어졌다.

혹시 어릴 적 유복함을 질투받아 왕따라도 당했던 걸까. K가 저런 성격이 된 것도 그런 과거 때문일지도 몰라. 숨길 필요 없어, 나는 K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못했다. 유리처럼 섬세한 K의 마음에는 격려조차 함마가 될 수 있다……는 건 솔직히 말해서 핑계고, 그냥 내가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따위가 무슨 말을 씨부려 봤자 K에게는 닿지 않을 거다, 뭐 그런.

서론이 길어져서 미안하다. 하지만 K와의 관계성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으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가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전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슬슬 본론으로 들어간다.

Yamamoto_506 2022/8/22 (목) 23:55:24 #82965128


소형선박면허를 취득한 직후였다. 나는 K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기념으로 본가의 크루저를 타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부자인 사시을 숨기고 있던 K가, 그야말로 졸부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는 자가용 크루저를. 나는 놀람과 동시에 기뻤다. 나한테만은 사실을 밝히 마음이 있구나 싶어서.

그리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크루징 계획을 세웠다. 크루저가 정박해 있는 마리나에서 출항하여, 해안선을 따라 남하. 이웃 현의 어항이 플레저보트의 정박도 허용하는 것 같으니, 거기서 선내박(K 집안의 크루저는 침대, 화장실, 샤워, 부엌까지 완비!). 다음 날 갔던 길을 되짚어 귀환한다는, 1박 2일 여정이었다. 왕복 100 마일도 안 되지만, 그래도 10대 소년 두 명에게는 대항해였다. 선생이나 항만시설 직원에게도 상담했고(크루저의 호화스러움에 대해서는 말을 흐렸지만), 꼼꼼히 준비했다.

당일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해서, 우리는 예정대로 출항했다. K는 기운이 넘쳤다. 이 루트는 부친에게 끌려다니며 몇 번이고 항해해 봤다며, 첫 항해로 긴장하고 있는 나를 리드해 주었다. 그런 K의 모습을 보고, 나는 이 항해가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K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일종의 시련인가보다, 그런 눈치를 살폈다. 그렇다면 나는 되도록 K의 팔로우에 따르기로 했다.

마리나와 어항의 딱 중간쯤에서였다. 어군탐지기에 물고기 떼가 비치는 것을 보고 시험삼아 줄을 드리워 봤더니 전갱이가 풍년이었다. 저녁밥은 이걸로 소금구이다, 아니다 된장무침도 포기하기 아깝다, 그런 얘기르 떠들어대고 있는데, K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뱃전을 들여다보았다. 어느샌가 무언가 묘한 것이 크루저에 다가온 것처럼 해면에 둥실 떠올랐던 것이다. 그물로 건져 봤더니, 그것은 작디작은 배 같은 무언가였다.

전장은 30 cm 정도. 선체 같은 것은 나무도막 한 개를 깎아 만들었고, 갑판에 해당할 부분은 알미늄 깡통을 반으로 자른 것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어느 정도 썩었지만, 너덜너덜할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에도 개구부가 없었지만, 흔들어 보면 달강달강 소리가 나는 바, 뭔가 딱딱하고 가벼운 물건이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배 모형이 아니고, 장난감 배도 아니다. 인공물임은 틀림없지만, 제작의도를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배 같은 무언가船のような何か”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물건이었다.

나는 영감 같은 건 없고, 괴담도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 물체를 건드리고 싶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K는 왠지 묘하게 마음에 들어 버린 듯, 기념품으로 가져가겠다고 했다. K는 바다에 관한 물건을 좋아해서, 학교 기숙사 방에는 돌고래 귀뼈 펜던트, 정교한 병속의 배 같은 것들로 장식하고 있었다. 그 컬렉션에 추가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도 모처럼 즐거운 분위기를 깰 마음은 생기지 않아,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렇게나 순탄했던 항해였는데, 그 물체를 줍자마자 구름의 흐름부터 괴이해졌다. 때아닌 안개가 끼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가시거리가 불과 몇 미터 정도까지 떨어져 버렸다. 레이다도 상태가 이상해져서, 바로 옆에 있을 육지가 잡히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의 항행은 너무 위험하기에, 안개가 걷힐 때까지 대기하기로 했다. 도착이 늦을지도 모른다고 어항에 연락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없었다. 마지막 추가타로, K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쓰러졌다. 이것들 모두 1시간 안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K는 모든 책임이 자기에게 있다는 듯 사과만 거듭하고 있었다. 나는 K를 어떻게 달래서 침대에 재웠다.

다른 배가 접근하면 바로 뱃고동을 울리기 위해 내가 보초를 섰다. 시야는 흰색, 흰색, 흰색, 어디까지고 계속되는 흰색의 일색. 들리는 것은 철썩 철썩 파도가 뱃전을 치는 소리 뿐. 거창한 표현을 감히 허락받는다면, 마치 우리만 남고 세상이 싹 없어진 것 같았다. K는 가위가 눌려서 “어두워”, “나갈래” 그런 헛소리를 했다. 왕따 당하던 시절을 꿈으로 꾸기라도 하는 걸까. 사물함에 갇힌 걸까. K에게는 이게 중요한 항해였을 텐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정머리 없는 바다가 조금이지만 싫어졌다.

잠깐 삼천포로 새는 이야기인데, 보타락도해(補陀落渡海ふだらくとかい)라는 걸 아시는지? 주로 와카야마현의 후다라쿠산사(山寺)에서 행하던 수행법이다. 승려 등 지원자들을 작은 뗏목에 태워, 바다 저편에 있다는 극락정토 보타락 쪽으로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복원된 뗏목 모형 사진을 찾아서, 참고삼아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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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이가 붙어 있는 걸 봐선 신불습합인 걸까?

선체에 고정된 상자꼴 숙소에는 출입구가 없어서, 지원자는 밖에 나올 수 없다. 숙소를 부수고 나와 봤자 돛이나 노 같은 조선구가 없다. 일단 물과 식량은 실어 놓지만, 30일분밖에 준비되어 있지 않다. 애초에 이렇게 작은 배는 굶어죽기 전에 외양의 풍랑으로 전복・침몰이다. 지원자들도 물론 죽음을 각오하고……, 그러니까 등신불의 바다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물론 현재는 안 하고 있다.

과거의 풍습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말할 생각은 없다. 지원자들은 영혼만이라도 보타락에 닿고 싶었다. 그리고 부처가 되어서 길 잃은 중생을 구제하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거친 바다에 도전했던 것이다. 그것을 조롱하거나 섬뜩해하거나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만약에……, 당시의 내가 이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개구부가 전혀 없는 배 같은 것”이 들어맞는다는 것을 눈치챘다면, 나는 그 물체를 버리고 K를 설득할 수 있었을까.

Yamamoto_506 2022/8/23 (금) 00:48:09 #82965128


크루저를 정선하고 얼마나 지났을 무렵이었으까. 갑자기 어군탐지기가 반응했다. 전원을 끄는 것을 잊고 있었다. 화면을 보고 흠칫 놀랐다. 해저에서 뭔가 떠오르고 있었다. 물고기떼라기에는 너무나 깔끔한 구형이었다. 길이는 대략 30 미터 정도였을까. 최대급의 흰긴수염고래에 비비는 크기다. 이윽고 그것은 육안으로도 보이게 되었다.

크루저보다 큰 검은 그림자가 뱃머리 너머 물 밑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쌍안경으로 들여다보니, 가늘고 길쭉한 무언가들이 모여들며 형성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해초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엄청난 속도로 쉴새없이 우글우글 헤엄치고 있었다. 결코 서로 엉키지 않고, 그러면서 흩어지지도 않고, 전체로서는 항상 구형이었다. 심상치 않은 수의 바다뱀 떼……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가능성이었을까.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이 천천히 그러나 일직선으로 크루저를 향해 떠오른 것은 왜였냔 마이다. 눈 같은 것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싸늘하게 휘감는 듯한 놈의 눈길을 확실히 느꼈다. 그야말로 상어와 눈이 마주친 잡어가 된 듯한 원시적인 공포가 덮쳐와서, 나는 크루저를 전진시키려 했다.

겁쟁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도 굳이 변명한다면, 바다는 육지와는 다른 세상이다. 뱃전 아래는 무한의 깊이──수심 100 미터고 1000미터고 인간에게는 매한가지다──이고, 주위에 자신을 띄어줄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 세계에 육지의 상식을 들이미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이겠나. 적어도 나는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크루저가 아무리 소형선이라 하더라도 방향전환에는 나름 시간이 걸린다. 그 사이에도 수면 아래 그림자는 다가온다. 조바심 탓이었을까, 내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떠오른 것은. 좀전에 주운 배 같은 물체, 모든 것은 그것 때문이고 그림자도 그것에 이끌려 오고 있는 거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물체를 거머쥐고 갑판으로 뛰쳐나갔다. K가 어떻게 될지 앞일 걱정 따위 다 날아가 있었다. 나는 물체를 그림자를 향해 전력으로 던져 버렸다.

그 직후, 선내에서 찢어지는 피리 소리 같은 소리가 울렸다. K의 절규라는 것을 알아챈 나는 황급히 달려갔다. 어깨를 흔들자 K는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내게는 눈길도 안 주고 갑판으로 뛰쳐나갔다. 황급히 뒤를 쫓아가 보니, K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계속 침대에 누워 있었을 터인데, 어떻게인지 K는 모두 아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K의 옆에서 수면을 향해 눈을 부릅떴지만, 배 모양 물체도, 물 밑의 그림자도, 더는 어디에도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느새 안개는 걷히고, 레이다도 무전도 복구되었다. 그러나 K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어디라도 좋으니 빨리 뭍에 올라가자”고 재촉을 받아 마리나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나도 K도 배 모양 물체나 수면 아래 그림자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몇 시간 후, 우리는 일 없이 마리나로 귀환했다.

결말이 싱겁다고? 걱정 마라. 이어지는 얘기가 있으니까. 무엇을 예상했든, 그것을 기대했던 놈들은 뒈지라고 말해주고 싶다만.

여름방학 중에, K에게 몇 차례 가벼운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 걱정이 되었지만, 자택까지 찾아가는 것은 참았다. 지금은 가만히 두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고, 어차피 개학 무렵이 되면 다시 만나게 될 테니 그 때 크루징 재도전을 제안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허나, 방학이 끝나고 돌아온 기숙사에 K의 모습은 없었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K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K의 휴대전화로 이번에는 통화를 시도했으나, 역시 답이 없었다. 담임을 찾아가 볼까 생각한 순간, 그 담임에게 호출을 받았다. K의 가족에게서 연락이 왔다, K의 행방을 며칠 전부터 알 수가 없다, 고.

이하는 경찰에게 들은 이야기다. K는 유서 같은 것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신변일상용품들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에 자기 의사로 외출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K의 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크루징에서 돌아온 이후로 쭉 상태가 이상했다고 한다. 예를 들면…….

  1. 바다를 격하게 혐오하게 되어서, 시야에 바다가 들어오는 것조차 피하게 되었다.
  2. 과묵함이 도를 넘어 가족에게도 서먹서먹한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3. 자기 방에 틀어박혀 염불 같은 것을 영창했다(나를 포함해 주변인들이 아는 한, K는 불교에 지식도 흥미도 없었다).
  4. 부분적인 기억상실에 걸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가족과 애완동물의 이름, 리모컨 등 기기류의 사용법, 좋아하던 영화의 제목 등을 기억하지 못했다(내 연락에 답이 없었던 것도 휴대전화 사용법을 알지 못하게 되어서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K는 행방불명 상태다. 그런 일을 당해서 바다가 싫어졌던 것일까? 그렇다 해도 학교만 그만두면 되는 일 아닌가. K의 성적이면 전학 정도 간단했을 것이다. 왜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행방을 감추어야 했나? 무엇보다 애초에 나는 K가 바다로부터 도망쳤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그 녀석은 자기자신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던 녀석이었다고.

K야, 혹시 이걸 본다면,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연락해 주라. 그리고 무언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좀 알려 다오. 그 배 같은 물체는 무엇이지? 수면 아래 그림자는 무엇이었지? K의 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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