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
「Realm of Light」
재점화하는 의식 속 네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마지막 순간 보았던 풍경으로부터 유추할 법한 소란도 고통도 아닌 희미한 빛 한 줄기였다. 마치 컴컴한 창문 너머로 햇살이 비쳐오듯 어두컴컴한 심연을 뚫고 들어오는 따뜻한 빛. 그 빛을 감싸듯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음악 또한 어디론가부터 울려퍼지고 있었다. 대체 지금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그 무너지는 기지 안에 있었을텐데. 그 이상한 광경에 너는 잔뜩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안도감과 기쁨에 역으로 두려움을 느낀 채. 여기는 저승인가? 결국 죽어버린 건가? 완벽한 오답을 내놓으며 너는 달려나갔다. 두려움에 떠는 도망이 아닌, 이성적인 회피를. 하지만 결국 네가 향하는 곳은, 빛과 소리가 나오는 방향이었다.
그럴 수 밖에.
점점 어둠은 한 켠으로 도망치고, 그 자리를 따스한 태양과도 같은 빛이 감쌌다. 어느 새 너의 눈에 비친 그 풍경은 대낮의 어느 꽃밭이었다. 비록 해가 아직 지기는 전이었지만, 그래도 밖이 이렇게 밝았던 것은 아니었을텐데. 이게 무슨 일이지. 이 꽃은 또 뭐람. 너는 의아해하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서 걷기 시작했다. 마치 그 풍경이 마냥 두렵지만은 않은 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마다 까마귀 소리가 커졌다. 마치 그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하듯이.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속도는 점점 줄었고, 그 까마귀 소리가 나는 방향을 눈치챈 듯이, 너는 점점 표정이 굳어져만 갔다.
그럴 수 밖에.
너의 머리 속에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그 충직한 단장의 말과, 그 소리에 기뻐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들의 말에 내심 기분이 고양되었던 어린 너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이전에는, 칠흑과도 같은 어둠이 있었다. 그 어둠에서 빛을 찾아 소중한 자들과 함께 도망치던 기억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꽃바람에 동료들이 스러지는 모습이. 그리고 이전에는 찬란한… 기억들이 하나하나 뇌 속에서 재생되어갔다. 그리고 모든 곳에 까마귀 소리가 있었다. 목에서, 마음에서 까마귀 소리가 났다. 하지만 너는 그 기억을 부인할 수조차 없었다. 자신이 없었던 기억을 삽입하는 사악한 변칙 개체에 휘말린 건가? 아니라는 것을 너는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너도 알고 있지 않은가. 네가 아까 본 그 모든 기억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그 때 선지자가 말한 것과 이 소리가 어린 시절의 착각이 아니란 건 너도 잘 알지 않잖나. 그 때 물이 분출했고, 건물은 무너졌고, 너는 그곳에 묻혔지. 지금 이렇게 주마등처럼 돌아가는 기억은, 네가 인간이 아닌 신이라는 증거 아닌가. 그래. 부인하지 말아라. 알고 있다. 너 자신이 인간인 줄 알고 밤을 걷던 그 기억이, 아직 너를 잡고 있을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둠 속에서만 살아갈 것인가.
그러니 눈을 뜨고 제대로 이 모습을 보아라. 이제는 밟을 수 없는 서천의 꽃들이 아닌,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나갈 빛을 보아라. 감았던 눈을 뜨고 우리를 찬양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를 지키다가 저승의 저 깊은 어둠으로 떨어진, 사랑스러운 신도들의 모습을 보아라.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 같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주 아름답다는 것도. 우리의 목적을 상기해라. 우리는 죽었던 자를 다시 산 자의 길로 안내하는 자다. 그것을 막는 자들을, 결국 우리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그래. 우리는 새다. 인간이라고 믿은 채 어둠이라는 알에 잠든 새다. 언젠가 알을 깨고 세계를 빛으로 감쌀 자다. 그러니 부인하지 말아라. 너는 나요, 아직까지 망각에 잠들려는 껍데기다. 나는 저 밝은 빛을 향해 날아가는 새일지니, 네가 모든 것을 깨닫고 웃는 순간 날아오를 것이다. 그 누가 막더라도 언젠가 모든 죽은 자에게 빛을 돌려줄 자이다. 그들과 함께 조요를 향해 나아갈 자다. 그러니 이리로 오거라. 이 밝은 빛이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