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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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6년 (서기 1527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지난 6월에 도성 안에 괴수가 출몰을 했다고 한바탕 소동이었지. 그게 자네와 함께 사는 그 요물 아닌가?」

「맞다면 어쩌실 겁니까?」

전우치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이천년이 웃으며 술을 벌컥거렸다.

「보아하니 그 요물과 하루이틀 살을 섞고 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젊은이 자네는 정기가 다 빨려 죽을상도 아니니 희한도 하구먼. 느껴지는 기가 달라, 기가……」

「노형은 어쩌다 도망자 신세인 겁니까?」

「옛날에 도망자 신세였지. 무오년에 화를 입어 귀양을 갔다 도망을 쳤는데, 그 뒤 반10년이 더 흐르고 왕이 바뀌었지만 썩어빠질 세상은 그대로라, 그냥 죽은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네」

이천년이 술을 또 벌컥거리고 전우치에게도 권했다. 전우치는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 쳤다.

「자네처럼 기 자체가 범인과 다른 이라면, 필히 범인이 도를 익혔을 때보다 더욱 고강한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내 유학에 있어서는 점필재(佔畢齋)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으나, 설잠거사(雪岑居士)를 또한 도학의 스승으로 모셔, 그분의 도의 술법서를 지니고 있네. 자네의 기로써 이 술법을 익히어 경지에 올라 가련한 사람들을 돌보는 소임을 맡을 생각이 없는가?」

「생각 없수다. 그럼 난 가겠소」

매몰차게 일어서 뒤돌아 가려는 전우치의 뒤통수에 대고 이천년이 말했다.

「허면, 평생을 그 요물의 기둥서방 노릇이나 하다 죽겠나!」

전우치가 이천년을 되돌아보았다. 그 표정이 나찰악귀마냥 일그러져 있어 뭇 사람이라면 흠칫 놀라고 말 상이었지만, 이천년은 여유로웠다.

「내가 그년에게서 도망하려 들면, 내 어미, 내 형제, 내 피붙이들이 모두 죽소. 허튼 소리일랑 하지 마시오」

전우치가 씹어 내뱉듯이 말했다. 이천년이 팔짱을 끼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좋은 수가 있다는 듯 손뼉을 쳤다.

「허면 자네 고향 집이 어디인지 일러 주시게. 자당께서 천수를 다 누리시거든 내 언제든 와서 일러줄 터이니. 그게 몇 년 뒤건 말일세」

전우치가 이천년에게 달려들어 노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천년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등짐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주었다.

「상권은 지금 주지. 하권은 자당께서 돌아가시거든 그때 주겠네. 받겠나, 말겠나? 싫으면 그냥 뿌리치고 가 버리면 그만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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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서울특별시 관악구

약속한 토요일 밤 10시, 경영대학 113동 앞에 온 나는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벽에 기대고 섰다. 두 손은 품속에 넣어 나이프와 전기 삼단봉을 더듬었다.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신중도 건물 정도만 불이 들어와 있고, 주말의 학교는 귀살스러울 정도로 캄캄했다. 건너편 건물 앞에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총총 걸어서 건너편 건물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왼손을 꺼내 손목시계를 보고 다시 집어넣었다.

「씹새끼들 왜 약속 시간을 안 지켜」

「여기 왔습니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내가 서 있는 곳보다도 더 어두운 건물 그림자 속에서 예의 3인조 중 두 명이 걸어 나왔다. 모리안이라는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 씨바들아, 5분이나 늦었잖아. 그 5분 사이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어쩔 뻔했어?」

마스크남과 동양인 여자가 자기들 잘못을 인정한다는 듯 두 손을 들어 보였다.

「자, 만났으니 빨리 갑시다」

「가? 어딜 가?」

둘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학교 박물관 뒤켠의 골목이었다. 골목을 따라 계속 걸으면 생활과학대학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불이 모두 꺼진 두 개의 큰 건물 사이의 골목은 그야말로 칠흑 같았다. 마스크남이 내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계단 앞까지 와 있었다.

「눈도 밝네」

실없는 소리에 마스크남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오른쪽의 생과대 건물 꼭대기에서 이쪽으로 무언가 쏜살같이 떨어졌다. 큼지막한 까마귀였다. 까마귀는 우아한 몸짓으로 급강하하더니 날개를 펴고 계단 난간에 내려앉았다. 동양인 여자가 말했다.

「아무도 없지?」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놀라 까무라칠 뻔했다.

「아무도 없어. 세 시간 넘게 하늘 땅 모두 돌면서 살펴봤지」

까마귀가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분명히…….

「모리안?」

까마귀가 날아오를 것처럼 홰를 치더니, 잠시 뒤 까마귀는 사라지고 그 난간에 모리안이 앉아 있었다. 모리안이 내게 손을 흔들며 알은체를 했다.

「오랜만? 겨우 3일 만이지만? 아, 뭐 나야 계속 너 지켜보고 있었지만, 넌 날 못 봤으니까 오랜만이라는 거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대답을 요구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질문을 해야 할지조차 떠오르지 못해 입만 벙긋거렸다. 모리안이 난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럼 【문】 연다? 아참」

모리안이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내 장갑 돌려줘야지?」

얼결에 품속에서 검은 가죽장갑을 꺼내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모리안이 장갑을 끼고 눈웃음을 쳤다.

「따뜻하네」

모리안이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는 순간 중간에서 멈추고, 그 자리에서 신발코 앞의 계단 수직면을 톡톡 걷어찼다.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듯한……. 그러다가 휙 고개를 돌려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던 나를 비롯한 셋을 불렀다.

「됐어. 올라와」

마스크남과 동양인 여자가 이끄는 대로 나도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다 올라오니 생과대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온통 회색 회벽으로 가득한 실내로 들어와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조금 전 올라왔던 계단이 보였다. 하지만 계단 아래로는 어두컴컴한 어둠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반대편으로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셋은 나를 이끌고 그 계단으로 올라갔다. 상아색 페인트가 칠해진 철문이었다. 마치 옥상으로 나가는 문처럼, 그 문 외에는 다른 문은 없고 막다른 길이었다. 모리안이 문을 열었다. 문이 활짝 열리기 전에 내가 물었다.

「여기가 어디야?」

모리안이 대답하면서, 문을 활짝 열었다.

「환영해. 방랑자의 도서관에 온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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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마포 사내들 중 하나가 이지함네 흙집 지게문 밖에서 인기쳑을 냈다.

「도사님, 도사님」

「뭔가?」

「좀 전에 웬 말 탄 융복 입은 나으리가 포구에 들었는데 말입니다요, 토정 션생 댁을 찾기에 이리로 뫼시고 오는 중인데……」

「봉래가 왔나 보군. 토정 자네가 가서 마중 좀 하시게」

전우치의 말에 이지함이 흙집 문을 열고 나서는데, 이미 예의 손님은 집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둥글넙적한 인상 좋아 보이는 사내가 말등에서 풀쩍 뛰어내렸다.

「전노사!」

「봉래 왔는가! 오랜만일세!」

이지함이 다가가 그를 얼싸안았다.

「자네 벼슬살이하더니 융복이 참 잘 어울리는구먼!」

「하하, 어울리기는 무슨……. 전노사는 어디 계시는가?」

「방 안에 계시네」

말하기가 무섭게 전우치가 지팡이를 짚고 방에서 기어 나왔다. 차식이 그 옆에서 혹여나 넘어질세라 조심조심 부액했다.

「몇 년 만에 보는지 모르겠구먼」

「전노사! 정말 전노사가 맞으시오? 어찌 이리도 초췌히……」

「얘기하자면 길지. 자네까지 왔으니 이제 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도 되겠구만. 다들 들어가세. 아니면 어디 강변에서 해바라기나 하며 이야기를 해 볼까?」

「저, 그런데……」

양사언이 좀전에 자기가 들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화려한 가마 하나를 가마꾼 네 명이 이고 지고 들어오고 있었다. 가마꾼들은 가마를 이지함네 집 마당에 내려놓았다. 가마 안에서 희고 가는 손이 나와 가마꾼들에게 묵직한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이걸로 목이나 축이고 오게」

가마꾼들은 쌀주머니를 건네받고 나루터 쪽으로 사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가마 문을 젖히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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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방랑자의 도서관

「정확히 말하자면 여긴 방랑자의 도서관은 아니야. 방랑자의 도서관 변두리에 우리가 베이스캠프처럼 꾸며놓은 곳이지. 방랑자의 도서관으로 들어가려면 이 방 제일 깊숙한 데 있는 문 열고 들어가면 돼. 하지만 그다지 추천하지는 않아. 엄청 광대한 곳이라 십중팔구 길 잃어버리게 되거든. 길 잃어버리면 어떻게 찾을 수도 없어. 도서관 자체가 우리 우주하고만 연결된 것도 아니라서……」

「잠깐만, 잠깐만. 도서관이니 문이니 우리 우주라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문 너머는 모리안의 표현처럼 【도서관】스러운 곳이기는 했다. 다만 그 풍경은 전형적인 현대의 도서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사극을 보면 나오는 집현전이나 규장각 같은, 조선시대의 학문기관 내부와 같은 모습이었다. 나무를 투각해서 만든 고풍스러운 서가들이 정갈하게 세워져 있고, 각 서가에는 동양식 호접장(蝴蝶裝) 책이나, 서양의 코덱스, 두루마리 등 "책"의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각종 물건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었다. 서가들 너머로 사람인지 무엇인지―모리안이 까마귀로 변신하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사람이라 확신할 수 없었기에―들이 이리저리 오가는 것이 보였다.

「저 안쪽으로 들어가면 생활 공간, 휴식 공간도 있고. 방랑자의 도서관 본체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기도 꽤 넓으니까. 쾌적한 생활이 가능할 거야」

「어째서 내가 여기서 생활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거지?」

「너도 우리 중 일부잖아? 난 얘들한테 그렇게 들었는데?」

모리안이 두 동양인 동료를 가리켰다.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군요」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잠깐만. 오늘 잠깐만이라는 소리를 도대체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만. 도대체 네들이 뭐기에 내가 네들의 일부라는 소리가 나오는 거야? 난 지금 이게 무슨 꿈속인가 싶거든?」

「일단 좀 앉아서 말씀 나누시죠. 그리고 제 이름은 홍희지입니다」

「그게 본명이냐?」

「……」

희지가 앞서고, 마스크남과 모리안이 뒤에서 따르며, 중간에 내가 끼인 형태로 일행은 서고들 사이를 지나쳐 계속 걸었다. 서고들의 숲을 벗어나 몇 번 방향을 튼 뒤 희지가 창호문 무늬가 있는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도 뒤따랐다. 방 안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하나, 그리고 책상 위에 크롬 광택이 나는 작은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앉으시죠」

눈치를 살피며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의자 팔걸이 아래에서 척추동물의 갈비뼈 같은 모양의 물건들이 튀어나오더니 내가 팔을 뺄 수 없게 가두어 버렸다.

「야, 씨발 이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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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 ? ?

「……」

한설하는 탁자 너머의 장하영 교수를 싸늘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장하영 교수는 할 말이 없다는 듯 그 시선을 회피했다. ‘팀장’은 녹화용 카메라를 작동시켜 놓고 벽에 기대 클립보드를 보고 있었다.

「……설하 군, 내가 미안하네. 할 말이 없군」

‘팀장’이 클립보드를 옆구리에 끼고 손뼉을 쳤다.

「자, 자. 두 분 해후의 인사는 그쯤 하시고. 그래서, 이 호야라는 여자에 관해서 할 얘기는 정말 없는 겁니까?」

한설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장하영 교수는 입을 열어 억울함을 표현했다.

「난 호야가 누군지 알지도 못합니다」

‘팀장’이 침음성을 삼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허튼짓하지 말고 두 분 다 가만히 계시죠」

‘팀장’이 경고를 남기고 문을 열고 나갔다. 잔뜩 얼어 있는 부하가 보였다.

「뭐야?」

「말씀하신 대로 03학번 학생 전체를 쭉 훑어봤습니다. 그런데 호야라는 여자와 외모가 일치하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뭐라고?」

「혹시나 해서 01학번, 02학번, 04학번, 05학번에 대해서도 조사 중입니다만, 큰 기대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대학생 신분조차 가짜였던 게 아닐지……」

「아니, 그럼 그 호야하고 학교를 같이 다녔다는 한설하는 뭐야? 분명히 거짓말은 아닌데, 누가 기억을 조……작……하기라도……」

‘팀장’이 방금 전 열고 나온 문을 다시 벌컥 열고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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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방랑자의 도서관

「몸부림치다가 다치실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습니다」

「뭔 짓을 하려기에 몸부림칠 일이 생겨? 뭣들 하려는 거야!」

희지가 무릎을 굽혀 내게 눈높이를 맞추었다.

「대답해 보세요. 당신은 누구죠?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그걸 말이라고, 나는……」

나는…….

「03학번이죠? 학번 불러 보세요」

「2003-……」

학번이…….

「생일이 언제신가요?」

「내 생일이야 당연히……」

내 생일은…….

「생년은 언제시죠?」

「……」

그것을 시작으로 희지는 질문을 마구 퍼부어댔다. 고향은 어디냐? 주민등록번호는? 전화번호 명의는? 출신 초중고교는? 지금 지내는 집은 어떻게 구했고? 부모는 누구냐?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나는,

그중 단 하나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못 먹는 음식이 있으시죠?」

「그, 그래. 초콜릿. 커피. 포도, 토마토, 호두, 가지……」

「알레르기라기에는 너무 맥락 없는 조합 아닌가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희지가 슬며시 웃으며 떨어져 나가더니 그대로 등만 돌렸다. 책상 위에서 쇠 상자를 집어 드는 모양이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실신하여 혀를 깨무실 수도 있기 때문에 재갈을 채우겠습니다」

「너 어차피 여기서 나갈 길도 모르잖아? 가만히 있자. 착하지, 우리 고양이?」

「누가 고양이야, 어? 잠깐만. 으읍! 읍!」

희지의 눈짓에 모리안, 또는 마스크남 중 하나가 내 입에 재갈을 채웠다. 희지가 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핏빛 액체가 들어 있는 유리 주사기가 들어 있었다. 희지가 주사기를 꺼냈다.

「느들 믄 즈슷 흐르는 그으! 으으!」

「인정하긴 싫지만, 옥리들이 이 방면 기술은 아주 끝내주니 말이죠」

「좀 고통스러우실 수 있지만 참으시죠」

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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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경 2년 (서기 1568년)

한성부 용산방 마포나루

「아니…….」

전우치, 이지함, 차식 세 사내는 가마 문을 열고 나온 여자를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여자가 그들에게 읍을 했다.

「토정 션생, 이재 션생. 오랜만에 뵙습니다. 화담 션생 장례 때 이후로 뵙는 건 처음이지요?」

「명월이 아니시오? 여긴 어쩐 일로?」

「내 오는 길에 송도에 들렀소. 전노사가 죽게 생겼다기에 혹 아는 바 있나 하여……. 헌데 명월도 전혀 몰랐고 이리 동행하게 되었소. 내 말을 탔으나 가마 보조에 맞추느라 늦어졌소이다」

양사언이 나서 설명했다. 그러자 전우치가 역정을 냈다.

「아니,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

「우사!」

황진이가 전우치를 나지막하게, 하지만 힘 있는 소리로 불렀다. 사내들은 그 모습에 기가 질려 눈치만 볼 뿐이었다. 결국 전우치가 한숨을 쉬고 황진이의 앞까지 걸어가 마주보았다.

「진랑아」

「화담 션생 돌아가시거든 날 거두어 가시겠노라 그리 호언장담을 하시더니, 기별도 없다가 별안간 죽는다니 이 어인 일이시오?」

「너나 나나 환갑 넘어선, 이제 그런 끈적한 농은 말자꾸나」

아무리 봐도 서른에서 마흔 사이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황진이가 환갑을 넘었다는 말에 차식이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 동갑내기 둘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지함과 양사언은 아무 대답 없이 황진이와 전우치의 대화만 지켜보았다.

「그래서 내 임종 지켜주려고 그리 바삐 왔느냐」

「그럴 리가 있겠소」

황진이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타고 온 가마를 돌아보며 말했다.

「무얼 하니, 어서 나와 아버지께 인사 올려야지!」

「불초 소녀, 아버님을 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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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 12년 (서기 1517년)

경기도 과천현 관악산중

전우치가 차갑게 굳은 【그것들】을 들어 보였다. 여우는 여전히 무엇이 잘못이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이게 무어요」

「무어긴? 보면 몰라?」

그것은 세 구의 차갑게 식은 영아의 사체였다. 다만 평범한 사람의 새끼라고는 할 수 없었다. 삐죽 솟은 귀와 하체에 길게 뻗은 꼬리는 틀림없이 여우의 그것이었다.

「그때 두 달 동안 집을 비운 게 이것 때문이었소?」

「근데 뭐?」

「말을 하지, 왜!」

「말하면, 뭐가 달라져서?」

전우치는 대꾸할 기력도 없어 품 안의 사체들을 가만가만 살펴보았다. 사내아이가 하나에, 계집아이가 둘이었다. 바닥에 사체들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지만, 제 피붙이라 생각하니 뜨거운 돌이 목구멍에 걸린 것 같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여전히 무엇이 잘못이냐는 듯 어깨만 으쓱하는 여우를 다시 올려보았다. 저것이 사람이 아닌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들 하오. 제 새끼 귀한 줄 아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금수라도 변함이 없을진대, 어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소! 이게 임자가 사람이 아니라는 말로 그냥 넘어갈 일이오!」

「네가 그때 도망을 안 갔으면 됐잖아? 너 찾으러 그것들 버리고 나간 건데 왜 내 탓이야?」

전우치가 눈물을 훔쳤다. 어머니, 형제들과 생이별하게 된 참담함, 태어난 줄도 몰랐던 자식들의 죽음을 알게 된 참담함, 그리고 이런 참담함을 전혀 이해할 줄 모르는 저 미친것에게 평생을 붙들려 살아야 한다는 참담함이 머릿속에 회오리쳐 미칠 것만 같았다. 그때,

죽은 줄만 알았던 영아들 중 한 명, 또는 한 마리가 움직였다. 우치의 눈물이 떨어지자 그것이 젖이라도 된 양 한 방울이라도 더 먹으려 입술과 혀를 달싹였다. 하지만 나머지 둘은 여전히 싸늘하게 식은 그대로였다. 전우치가 움직인 아이를 들어 올려 눈을 까뒤집고 가슴에 귀를 대 고동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여우를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역광 때문에 여우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살리시오」

「내가 의원이냐?」

「어미지 않소! 얼지 않게 품어주고, 굶지 않게 젖을 주라고!」

「내가 왜? 뭣하러?」

전우치가 동굴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내 임자 곁에 머무를 터이니 제 새끼 중한 줄을 좀 알고 살리란 말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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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방랑자의 도서관

주사기의 붉은 액체가 피스톤에 의해 실린더 끝까지 밀려 올라갔다. 정맥으로 들어온 액체가 곧이어 심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심장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갔다.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누군가 억세게 그 팔다리를 붙잡았다. 재갈이 침에 젖어 들었다.

동공이 확장되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주마등이

날붙이를 고기에 쑤셔 넣는 것마냥, 폭력적으로 뇌리의 기억중추를 비집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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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오.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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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수야. 넌 할 만큼 했다. 이제 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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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말도 마시게. 기력을 아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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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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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서 제 어머니십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저를 낳아준 어미가 당신이시냐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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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담헌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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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부친께서 이런 걸 바라셨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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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가 버리시는구료. 내게만 큰 짐 맡겨 놓고. 원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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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초 소녀, 아버님을 뵙습니다.

분명히 비명을 지른 것 같은데, 그 비명소리가

내 귀에는

전혀 들리지

「∼∼∼∼∼∼!!!! ――――!!!……!!!」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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