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왕성 표면에서 반사된 창백한 빛이 제11궤도구역의 회랑에 외계의 색채를 쬐였다. 정거장 옆면을 따라 나란히 줄지은 여러 개의 골진 금속제 낭하들 중 하나를 가로지르며, 엔제이 와츠N. J. Watts는 그 빛 속을 헤엄쳤다. 무중력으로 드리프트를 하면서, 그녀는 기지 설계자들이 밀실공포증을 앓을 태양계외부활동과 과원들을 위해 마련한 한줌 숙소 중 하나를 따라 깔린 탄환/미행성체/기적학 방탄판유리로 얼굴을 돌렸다.
그녀는 은색의 반사광을 하나 포착했다. 자율탐험위성 에를러스Ehlers 001호는 이제 해왕성 궤도상의 공허 속에 희미한 불빛이 되어, 해왕성 표면이라는 배경에 거의 섞여들고 있었다. 그녀가 떠돌이 소행성을 탐사정으로 착각한 것이 아닌 이상 그럴 것이다.
"프로젝트 애스터 점퍼 소속 인원은 모두 제2사령소에 복명하라. 반복한다. 프로젝트 애스터 점퍼 소속 인원은 모두 제2사령소에 복명하라."
이미 하고 있다고.
엔제이는 핸들바를 붙잡아 유영 속도를 뚝 떨어뜨리고는 통로 끝의 승강기로 들어갔다. 그녀는 재단표 궤도작업복에 안전띠를 짤깍 소리가 나게 채우고 하강 단추를 두드렸다. 문이 둔탁하게 닫히고, 전동기가 윙윙대고, 금속이 방울소리를 냈다. 승강기는 정거장의 축에서 출발해 정거장의 제2거주자전환 바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력이 슬금슬금 기어들어왔다. 승강기가 1인치 움직일 때마다 그녀가 느끼는 위중력, 즉 자전환의 원심력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가짜 중력은 납덩이가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고, 안전띠는 그녀의 몸 속으로 계속 파고들었다.
1분 정도 뒤 승강기가 휘청이더니 멈추었다. 그녀는 성마르게 안전띠를 벗어던지고 열린 입구를 되튀어, 자전환 주변에 고리를 치며 위로 굽은 강철제 복도를 빠른걸음으로 걸어내려갔다. 흰 제복을 입은 기술자들이 에를러스 001호의 엑스선 수용기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 미친 듯이 떠들면서 그녀를 스쳐 지나갔다. 다리 여덟 개 달린 청소봇이 허둥허둥 지나갔다. 그녀가 입력기 앞에 자기 키카드를 비추자 제2사령소 문이 스르륵 열렸다.
"…융합로는 지금까지 확인하기로는 괜찮아 보이는군, 아,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좋은 아침, 엔제이." 현 3문Hyeon 3Mun이 그의 홀로그래픽 표시장치에서 고개를 들더니 사이버네틱 손을 흔들었다.
"너 지구의 어느 지역이 아침인지 그런 걸 아직도 외우고 있냐?"
"아니, 인터넷에 치면 나오지."
제2사령소는 네온빛을 웅웅대는 컴퓨터 터미널들의 대오와, 그것을 횃대 삼아 진단 데이터라는 먹이를 쪼아먹는 십수 명의 연구원들로 가득했다. 전면 벽에 붙은 네 개의 화면 중 하나는 에를러스 001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탐사정의 메인 섀시는 각종 감지기의 배열로 온통 뒤덮여 있는 원기둥으로, 그야말로 꼴보다 쓸모만 중시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원기둥의 상대적 아래쪽에 연결된 원환체가 핵융합로였다. 원기둥 끝에는 탄소나노튜브로 강화한 금속 팔면체가 붙어 있으니, 메인 섀시의 전체적인 꼴은 거대한 기생충처럼 보이기에 충분하고도 넘쳤다. 이것이 바로 비프로스트 초광속기관.
"쩔지, 안 그래?"
나노튜브의 정방격자를 살피느라 바쁘게 굴러가던 그녀의 두 눈이 현에게 돌아갔다. "이런 건 확실히 자주 볼만한 게 아니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화면에 더 집중하고 있었다. 탐사정이 해왕성을 배경으로 둥둥 떠 있자니,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선박 같았다.
"월한의 조선소에 있는 것 다 합쳐도 이것만 못할 걸. 자기 기관이 실제로 저 밖에 있음을 안다니 참 미친 짓 아니야?"
"그 설계를 내가 아직 기억할 수 있다면 진짜 미친 짓이었을 텐데." 기억소거제와 기억유도제과 밈적 차단제의 칵테일이 그녀의 뇌를 두들겼다. 재단은 비프로스트 설계반의 누구도 신뢰하지 않았고, 그들은 자기가 무엇을 만들었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되었다. 거기서 예외적인 사람들이 있었다면 분명 승진해 올라갔을 터이고, 지금 그녀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뇌가 몇 번 더 두들겨맞고 나서야 그녀는 괜히 그것에 대한 생각을 더 떠올려서 자기에게 주입된 나노기술 이식물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않는 것이 좋음을 깨달았다.
프로잭트 애스터 점퍼 연구진의 마지막 연구원들이 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엔제이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발사는 바로 이 순간 실제로 벌어질 것이다.
그녀는 현을 바라보았고, 탐사정의 양자컴퓨터 회로의 와이어프레임 비주얼이 둥둥 떠다니면서 그의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을 알았다. 아무래도 그 때문에 그가 하려던 말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괜히 그의 주의를 또 끌지 않도록, 엔제이는 자기 책상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키카드를 한 번 더 털자 책상이 잠에서 깨어났다.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면서 공기 중에 형광의 텍스트 상자들이 떠올랐고, 탐사정의 인공지능응용학과 유닛이 보내오는 비프로스트 기관의 상태에 관한 정보들을 중계해서 표시했다.
전 시스템 정상.
그녀는 GO 신호를 보내기 위해 단추를 눌렀다. 그녀의 모니터 위에서 녹색불이 반짝였다. 다른 연구원들 역시 마찬가지 확인을 거치면서 십여 개의 녹색불이 더 나타났다. 전면 벽의 화면들 중 하나에 타이머가 뜨고, 시뮬레이트된 아나운서 보이스가 모든 낱말을 또박또박 읽어내렸다.
T-minus 60.
T-minus 59.
T-minus 58…
매 초가 매 시간처럼 흘렀다. 엔제이는 초조하여 작업복 주머니의 손을 꿈지럭거리고, 단추들을 똑딱여 모노톤 리듬을 만들었다. 재단은 초광속 이동에 있어 신참자가 아니었다. 랑 왜곡구동계를 장비한 탐사정들이 주변 항성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2020년대부터다. 하지만 랑 구동계는 항상 망가졌다. 그들이 의존했던 기적학적 의식은 너무 오작동에 취약했고, 한번은 자율정거장을 은하계 바깥의 은하간 공허로 내던져 버리기도 했다. 게다가 초광속이라도 1년에 몇 광년 정도를 이동할 수 있을 뿐이니 연비도 나빴다.
T-minus 20.
T-minus 19.
T-minus 18…
그런 물건을 계속 쓰는 건 너무 비싸게 먹히지.
그녀는 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갈색 머리카락 아래로 땀을 훔치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시도를 했으니, 더이상의 문제를 감당할 수는 없다. 에를러스 001호는 작동을 해야만 했다.
T-minus 10.
T-minus 9.
T-minus 8…
그녀는 심호흡을 했다.
이 임무는 성공해야만 한다. 그래야 나중에라도 과에서 왜 이런 것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작동해야 한다.
T-minus 3.
T-minus 2.
T-minus 1.
T-minus 0.
비프로스트Bifrost 기관Engine 구동start.
전면 화면들에서 빛이 뒤틀렸다. 에를러스 001호 주변의 공간이 불가능한 원들로 휘었고, 나붓거리는 시공간을 통과한 빛들은 배경의 해왕성과 탐사정을 확대경처럼 보여주었다. 마치 격렬히 파도치는 바닷물 아래 잠겨서 굴절되어 보이는 물건 같았다. 원들은 더욱 휘어서 탐사정 주위로 구를 만들었다. 이제 탐사정 한 대만이 점유하고 있는 주머니 시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에를러스 001호는 이제 시야에서 벗어났고, 확대경 같은 광경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몇 나노초 사이에 그 광경도 사라졌다. 머니터들은 고에너지 중력파의 감지를 알렸지만, 탐사정이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전혀 흔적조차 없었다.
유예된 환호. 우물거림. 침묵. 새로운 타이머가 설정되었다. 7일 뒤 만료되는 카운트다운이었다. 성공했는지 여부를 그들이 알아내기까지 주어진 시간 7일.
시공간 거품이 우주 속으로 에를러스 001호를 나르는 동안, 그 안의 에를러스 001호는 암흑에 잠겨 있었다. 거품 속에 탐사정을 제외하면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탐사정에서 발하여 물질 없는 공허 속으로 서서히 퍼져가는 열 뿐이었다. 거품이 바깥의 우주로부터 격리된 계임에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진 것들의 섬광이 저 편에 나타났다. 막연하게 물결치는 질량들은 존재한 적 없는 생물체처럼 보였고, 에테르 발광은 인간 정신을 붕괴시키기에 충분한 위험한 모양들, 회색 와선들을 만들어냈다. 무언가를 현실 너머로 긁어내는 것 같았다.
초냉각된 양자 컴퓨터들 깊은 곳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이 탐사정의 디지털 파일럿 Hyperborean.aic는 행동을 취해야 했다. 비프로스트 기관은 마치 시공간 거품을 찢어 탐사정을 정규 시공간으로 돌려보낼 것 같은 기세로 진동했다. 이런 불가능한 화상은 바깥에서 빛이 스며오면서 사라졌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우주가 시야에 보이고 있었다.
에를러스 001호는 태양에서 27,000 광년 떨어진 성단의 성간공간에 와 있었다. 가시광 대역에서 우주가 평소보다 좀 더 밝게 보였고, 지구의 밤하늘에 비해 항성들이 빽빽하게 우주를 채우고 있었다. 전체 전자기복사 대역으로 전환하자 자료들의 대전시가 흘러들어왔다. 저 많은 항성계들에서 달려온 전파, 엑스선, 감마선 빛살 수천 개가 자료의 뭉치로 예인되었다. 그것들 각각이 탐사정의 통신접시들을 두드렸고, 하이퍼보리언으로 복호화되었으며, 외계 문명들의 셀 수 없이 많은 메시지들의 베일을 걷었다. 경고글, 무기류의 그림들, 칠각형과 사각형의 프랙탈. 그 대부분은 번역할 수 없었지만, 발신지는 분명했다.
탐사정의 한 구획 안에서는, 복잡한 은비학적 상징들이 가득 새겨진 방 안으로 혈액 바이얼이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기계팔들이 회전하고 도리깨질하며 의식의 물체들로 유체를 뚫기도 하고 유체 주위로 물체들을 움직이기도 하며 관현악단의 협주곡처럼 정교하게 짜인 패턴을 만들어냈다. 그와 동시에 확성기는 기적사의 주문을 녹음한 것을 틀어댔다. 실재가 구부러진다. 금속 판넬이 안쪽으로 접히면서 다른 우주로 향하는 "길"을 만든다. 송신기들은 현재 상태에 관한 보고서를 "길" 너머의 자주색 하늘을 향해 쏘아보낸다. 그러면 거기 지어진 아무 재단 전초기지가 신호를 받아낼 것이다. 그리고 구획은 다시 비활성화된다. 에테르 에너지는 빠르게 새어나가고, 금속 판넬이 재수복되면서 "길"은 파괴된다.
보고서는 짧았다. 앞서 태양계 밖이라는 바다의 물가를 모험했던 탐사정들이 컴파일해서 보내왔던 보고서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 짧은 내용에 세계의 모든 무게가 실려 있었다.
엔제이는 억지로 머리를 베개에서 들었다. 그녀는 협탁의 접선기를 부드럽게 튕기고, 침대가 녹아 없어질 때까지 삼림지대의 홀로그램을 쳐다보았다. 휘저어진 홀로그램은 이번에는 에우로파의 얼음광산으로 구체화되었다. 광산의 금속 돔들을 목성의 질량이 기분나쁘게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이었다. 현재 그녀의 위치에 생중계가 도달하려면 207분의 시차가 있다. 구형의 무인 화물선이 착륙장에 내려앉는 도중, 또다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메시지였다.
그녀는 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메시지를 읽기 시작했다.
에를러스 001호에서 신호가 왔어. 테르잔 제2성단에 제 시간에 도착한 것 같아. 오류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고. 과장이 이제 이 짓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니까 (하고많은 장소 중애 왜 하필 이 성단이었는지는 여전히 알려주지 않지만) 궁둥이 떼고 제2사령소로 내려와.
Sent by Hyeon 3Mun, 1 Hr 30 Min ago
성간탐험의 신시대가 시작되었다.
|| HUB || SCP-3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