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련합특수임무련대 소속 인원 대부분은 지하의 땅굴에서 처박혀 지내야 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국가보위부 제9국의 인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지상의 시설에서 보낸다. 그들의 임무는 땅굴에서 발견되는 유물의 이상성을 규명하고 그것이 공화국에 이득이 될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다.
새로운 거주지가 발견되거나, 미탐험 지역 원정을 가거나, 지상으로 옮길 수 없는 유물을 찾은 경우에는 9국 인원이 땅굴로 내려오지만, 그외의 대부분의 시간에 땅굴에서 9국을 찾는다면 필히 실패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지상과 지하를 가장 많이 오가는 이들은 누굴까? 바로 정치부다.
땅굴의 거주민과 련대원의 정치통제 말고도, 정치부는 지상에서 유물의 사상성도 검토해야 한다. 그러므로 련대 정치부의 수장인 류철 정치지도부장이 73련대에서 지상과 지하를 가장 많이 오간 인물로는 단연 최고로 뽑힌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만약 9국에서 유물이 쓸만하다고 판단하였으나 정치부가 사상성을 문제로 폐기하고자 한다면 과연 그 유물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선 련대의 유물연구조사단장은 김련수 대좌이다. 9국이 련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대좌급을 파견했지만, 차 대좌가 보기에는 한 련대에 대좌가 셋이나 존재하면서 련대 지휘구조가 개판이 난 원흉일 뿐이다.
그리고 기껏 대좌를 보냈음에도 주도권은커녕 련대 유물연구조사단은 련대 정치부의 결정에 기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돼버렸다.
그 이유는 두 대좌의 뒷배 차이에 기인한다.
김련수 대좌는 국가보위부의 제9국 소속이다. 물론 국가보위부의 권위도 공화국에서 알아주지 않는 곳이 없지만, 류철 대좌의 뒷배는 다르다.
류철 대좌는 공화국의 권력구조의 최정점, 핵심 중에서도 핵심, 공화국의 모든 권위와 권력이 모여드는 평양,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수령을 옹위하는 호위사령부의 정치군관이다. 만약 호위사령부가 원한다면, 평양의 나는 모든 새도 그들 앞에서는 기어다녀야 한다.
애초에 류 대좌가 일반적인 로동당 총정치국 소속의 정치군관이 아닌 호위사령부에서 직파된 정치군관이라는 점에서, 땅굴사업이 수령의 지대한 관심을 받음과 동시에, 그가 호위사의 권위와 판단을 대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9국, 소위 '이상교화국'의 독자성과 특이성에도 불구하고, 류철 정치지도부장이 유물의 폐기를 결정한다면 김련수 대좌의 유물연구조사단은 정치부에 매달려 결정 번복을 사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조사단이 지난날 유물 연구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과, 유물이 땅굴의 범위를 벗어나면 무력화되는 속성 때문에, 그들의 설득이 정치부에 받아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조사단과 정치부의 사이는 좋지 않으며, 특히 두 부서의 수장인 김련수 대좌와 류철 대좌의 사이는 개와 원숭이의 관계처럼, 최악에 가깝다.
***
"시설의 력사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차 대좌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럴 것이요. 시설이 처음 발견됐을 때는 나나 련대장 동지나 모두 어릴 적이었으니 말이오." 류 대좌가 말했다.
"련대장 동지가 이곳에 온 이후에도, 시설에 대해 알려주는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요. 모두 지하, 땅굴에만 련대장 동지가 머무르길 바랐지." 류 대좌는 말을 이어서 계속했다.
"사실 우스운 일이지 않소? 동지가 땅굴에서 얼마나 로동하고 헌신해도, 결국 공로는 지상의 시설에서, 흙바닥 하나 밟기 싫어하는 유물연구조사단이 다 받아먹으니 말이요. 불행 중 다행인지, 애초에 공로랄게 없었지만."
류 대좌의 말에 차 대좌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논의할 것이 있다고 불러내서는 하는 말이 9국의 험담인가? 류 대좌의 비위에 맞추어, 과감하게 발언할까? 아니, 아니다. 정치지도부장씩이나 되는 인물이 고작 험담이나 하려고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 리가 없다.
"제 헌신이 공화국의 사업에 득이 된다면 그 이상 가는 영광이자 보람이 없을 것입니다, 지도부장 동지." 차 대좌의 대답에 류 대좌는 잠시 침묵했다.
"시설의 원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소? 시설을 짓고 나서 이 땅에 버리고 간 이들이." 류 대좌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남조선 괴뢰 정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차 대좌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틀렸소." 류 대좌가 딱 잘라 일렀다.
"기밀이지만, 시설의 원주인은 '재단'이라 기록됐소. 아마 련대장 동지는 들어본 적 없는 단체일 거요." 류 대좌는 말을 이었다.
"물론 조국해방전쟁 이전에 개성은 삼팔선 이남의 남조선 것들의 영토였소. 하지만 지금도 미제의 발닦개 노릇밖에 못 하는 남조선 괴뢰가 과연 근 50년 전에 땅굴을 발견해 이런 시설을 지을 수 있었다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상식적으로 믿어지시오? 아니오. 시설은 '재단'이라는 단체가 지었던 것이오."
"9국이 저들 말로는 '이상교화국'이라 하는 건 알고 있을 거요. 그 '이상성'은 공화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오. 전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지. '재단'은 그런 '이상성'으로부터 세계를 지킨다는 비밀결사라고 자칭하오. 하지만 실상은 미제의 지원을 받아 '이상성'을 핑계로 저들을 거역하는 국가나 단체를 겁박하려는 제국주의의 하수인이라고 합디다." 차 대좌는 기밀이라면서 난생처음 듣는 정보를 술술 들려주는 류 대좌에게 당황했다. 하지만 류 대좌는 작정한 듯이 말을 이었다.
"'재단'은 공화국의 력사보다도 더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조선이 일제로부터 독립하자 득달같이 달려와 저들의 리익을 위해 반도 곳곳에 시설들을 지었다고 하오. 이곳도 그중의 하나였단 말이요. 시설이 처음 발견됐을 당시, 시설의 곳곳에는 '재단'의 흔적이 온 사방에 있었다고 합니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의 금 간 틈부터 먼지 한 점까지. 그걸 내버려둘 순 없는 노릇 아니겠소?"
"곰팡이 진 벽은 벽지를 교체하면 해결할 수 있소. 하지만 곰팡이가 온 벽에 퍼졌다면? 그건 벽을 허물어야 하오. 벽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집이 살아나지요. 그래서 공병건설련대가 시설을 허물고 다시 지은 거요. 사상문제는 바로 그렇게 해결하는 거지."
류 대좌가 그의 지론을 설파하는 와중에, 통로의 천장등이 깜빡거리더니, 모든 불이 일제히 나가버렸다. 통로는 암흑 속으로 잠겨버렸다.
"정전인가 봅니다." 차 대좌는 어둠 속에서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러나 류 대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상황에서도 걸음과 대화를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당시의 사상문제가 작금의 련대와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요."
"사상문제라면 거주민 통제를 말하는 겁니까?" 차 대좌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류 대좌를 어둠 속에서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며 대답했다. 류 대좌와의 체격 차이로 그의 걸음을 쫓아가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류 대좌의 흰 피부 덕에 암흑 속에서도 그의 잔상이 희끄무레하게 보이긴 했지만, 그마저도 그와 류 대좌 간의 거리가 더 벌어지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거주민의 사상문제는 별것 아니오." 류 대좌는 딱 잘라 대답했다. 하지만 차 대좌는 거주민 통제가 그리 쉽게 '별것 아니'라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지금 그와 류 대좌가 가고 있는 모란봉 구역만 하더라도 어젯밤 거주민이 담배 보급이 늦어진다고 항의한 것이 보고됐다. 그제는 주류가 문제였다. 지난주에는 한 주민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의 지도를 판다고 병사들을 속이다가, 폭행 수준까지 간 사건도 있었다.
땅굴의 거주민들은 탐욕스러웠다. 그들은 공화국의 자원을 빨아먹는 거머리다. 거주민과 처음으로 조우했을 때 환심을 사기 위해 무작정 안겨준 선물이 문제였다.
류 대좌의 활약으로 각 거주 구역마다 학교도 지어주어 주민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쳤지만, 정작 사상화가 성공적으로 완료된 거주민은 1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금 가는 모란봉 구역에만 500여 가구가 넘게 살고 있다. 학교의 실적은 빈말로도 좋다고 평가할 수 없었다.
류 대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지만, 그간 정치부의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술과 담배가 늦게 주어진다고 면전에 침을 뱉고 공화국을 욕보이는 도덕 없는 거머리 새끼들을 어떻게 사상화를 하려는 것인지 차 대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류 대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류 대좌의 말에 차 대좌는 피가 차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사상문제는 바로 우리 머리 위, 시설의 9국이요. 유물연구조사단, 그놈들이 이 사업의 암이 되고 있소."
철로의 신호기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류 대좌 너머, 모란봉 구역 쪽에서 미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은 가까워졌다.
***
"지랄하는구만." 김련수 대좌는 화면이 나간 486 콤퓨터의 브라운관을 손바닥으로 탕탕 두드렸다.
그의 두뇌 이면에선 이성이 문제는 브라운관이 아닌 정전이라고 속삭였지만,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김 대좌에겐 단지 짜증을 식힐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다. 덕분에 공화국에 많지도 않은 486 콤퓨터 중 적어도 하나는 오늘도 브라운관 위로 먼지가 쌓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기는 언제 돌아오나!" 김 대좌는 집무실 바깥의 부관에게 소리 질렀다.
"비상 발전기 확인하러 가보겠습니다, 단장 동지!" 부관이 서둘러 일어나는 소리가 대답과 함께 들렸다.
사실 부관이 직접 확인하러 갈 필요는 없다. 이미 시설반이 정전을 해결하려고 움직이고 있을 것이고, 부관은 무전기로 확인만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부관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만히 앉아 김 대좌의 성미를 감당하느니 그냥 바깥으로 몸소 달려 나가는 게 훨씬 유익하다는 것을.
"버러지 새끼들." 부관이 나간 문간을 잠시 바라본 김 대좌는 딱히 누구를 지칭하지 않고 욕을 내뱉었다.
련대에 도둑놈들이 너무 많았다. 정전이 일어난 것은 발전기의 연료가 고갈돼서 일어난 일이다. 공화국과 인민에게 어려운 시기가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줄어들은 보급만으로는 이런 잦은 정전이 말이 되지 않는다.
우선 군단 군수지원려단이 연료의 3분의 1을, 다음은 군단 수송대가 또 3분의 1을. 련대 수송대와 련대 설비반, 그리고 틈틈히 발전기에서 연료를 빼먹는 련대원 잡놈들까지.
온갖 놈들이 중간중간에 연료를 훔쳐 가니 비상 발전기조차 즉각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연료가 남아나질 않는 것이다.
부대 검열을 줄창 돌려대도 연료 횡령 문제는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게다가 73련대의 특수성 때문에, 타 부대와 비교했을 때 연료 횡령 문제가 더 심한 축이기도 했다.
하기야 련대장부터가 도적질의 선봉장이니 무엇이 해결될 수 있을까.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도둑놈들 때문에 정치부가 기습 검열을 수시로 하는 바람에 애꿎은 그의 유물연구조사단만 업무에 지장을 받고 연구 일정도 못 채우기 일쑤였다.
정치부에 생각이 닿자 김련수 유물연구조사단장은 이가 절로 갈렸다. 하도 많이 갈려서 그에겐 새로울 것도 없었다.
정치부는 검열을 핑계로 조사단의 업무를 방해했고, 멀쩡한 유물을 사상성을 문제 삼아 불태워 버리곤 했다. 김 대좌는 이를 정치부가 9국을 무능과 태업으로 몰아가려는 공작질로 보았다. 땅굴사업에서 거주민의 사상화 실패를 묻고 모든 책임을 유물 활용을 하지 못한 9국이 지게 하려는 것이 바로 류철 정치지도부장의 목적이라고.
절대로 그놈의 속셈에 당할 순 없다. 이런 땅굴 따위에서 그런 자식에게 걸려 넘어지진 않으리라. 이 땅굴에서 빠져나갈 사람은 그놈이 아니라 나다. 인간 대우도 아까운 그딴 놈이 아니라 바로 내가.
김 대좌가 이를 가는 사이, 전기가 돌아오며 콤퓨터의 브라운관이 켜졌다. 부관도 집무실로 돌아왔다. 뜻밖의 소식과 함께였다.
"단장 동지, 지금 정치지도부장과 련대장이 땅굴에서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뭐야?" 김 대좌가 날카롭게 되물었다.
"방금 전파됐습니다. 지도부장이 련대장을 소환했다고 합니다. 지금 둘 다 모란봉 구역에 있다고 합니다."
김 대좌는 망부석이 된 것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부관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그러나 현명하게도 부관은 보고를 반복하지 않았다. 단순한 전조 증상이 아니었다.
잠시뒤, 어울리지 않는 정적이 찾아왔던 김련수 대좌의 집무실에서는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빠져나온 실소의 뒤꽁무니를 불같은 호통이 뒤쫓았다.
류철 정치지도부장이 김련수 유물연구조사단장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 것은 자명해 보였다.
***
"잘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련대장 동지." 류 대좌가 말했다.
"유물연구조사단은 끝이요. 김련수 대좌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그깟 놈들이 끝장날지라도, 땅굴은 영원할 것이요. 이곳의 자원과 인민들도 그대로 남아있을 거고."
차 대좌는 류 대좌의 '인민' 발언을 '거주민'으로 정정할지 잠시 고민했다. 공식적으로는 땅굴에 존재하는 사람을 닮은 것들을 '거주민'이라고 호칭한다. 공화국의 '인민'이 아닌. 하지만 차 대좌는 바로잡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진동이 점점 가까워졌다.
"호위사가 옹위하는 권력이 불변하듯, 수령께서 지도하신 사업에 실패란 있을 수 없소.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요." 류 대좌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있었다. 차 대좌에겐 그가 품고 있었던 거주민 사상화 문제에 대한 의구심을 꼭 질타하는 것처럼, 너의 의중을 낱낱이 알고 있다는 것처럼 들렸다.
진동이 더 가까워지고, 소음이 심해지면서 이젠 류 대좌의 성큼 걷는 발걸음 소리까지 집어삼켰다. 류 대좌는 줄곧 앞만 보던 시선을 돌려, 통로에 들어서 처음으로 차 대좌를 똑바로 마주 보았다.
류 대좌의 흰 얼굴 위로, 신호기의 적색등불이 칠해졌다. 강한 확신과 자신감, 그 위로 덧칠된 암붉은색. 신호기는 류 대좌의 핏기 없는 얼굴에 핏기를 더해주지 못했다. 그저 한 석고상을 붉은 색안경으로 바라보는 듯한 기괴함을 더해줬을 뿐이다.
서로를 마주 본 두 대좌의 옆으로, 8량의 열차가 덜컹거리며 지나쳐 갔다. 속도로 보아 가장 외곽의 애국풀 구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분명했다. 저 안에는 채굴된 유물, 거수자, 부상자 등이 실려있을 것이다.
신호기는 열차가 지나갈 때 녹색등으로 전환됐다가, 열차가 지나가고 10초 후 소등했다. 마침 그에 발맞춰 전기도 다시 돌아왔다. 갑작스레 켜진 천장등에—일전에 언급했듯이, 둘의 키 차이로 인해 차 대좌는 류 대좌를 약간 올려봐야 하는 처지라, 자연스레 차 대좌의 시선은 천장과 비교적 가까운 관계로—차 대좌가 눈이 부셔 고개를 숙이고 눈을 깜빡이던 사이, 류 대좌는 그를 기다리지 않고 다시 모란봉 구역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차 대좌는 서둘러 다시 류 대좌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
"지금 3호실 외에 가동 가능한 것이 있나?" 거칠고 탁한 목소리가 담배 연기를 뚫고 나왔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유유자적 흘러가는 것은 질문한 자의 손에 들린 담배뿐이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놓인 유리 재떨이 위의 줄담배 수는 담배 연기를 여유의 증표로 볼 수 없음을 시사했다. 오히려 초조함이 아니면 모를까.
성마른 그의 물음에 착석한 이들은 누군가는 입을 열어서 말해야 한다는 강요를 공유했다. 결국, 그중 하나가 희생양이 되었다.
"3호실 외에 5호실과 6호실이 가동 가능합니다. 하지만 5호실은 발각될 위험이—" 희생양의 용기는 그의 이마에 날아든 재떨이에 의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이 파리 좆만도 못한 새끼야. 누가 네 사사로운 의견 나불대라고 했니? 이 자리에 네 앉힌 리유는 터진 주둥아리로 내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는 거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김련수 대좌가 고함을 질렀다.
"죄송합니다, 단장 동지!" 이마에 재떨이를 맞은 군관은 고통을 느낄 틈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죄했다. 그의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허벅다리로 깨진 유리 파편이 몇 조각 반짝이며 떨어졌다.
김련수 대좌는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몇 번 더 욕지거리를 한 후, 바닥에 침을 뱉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재떨이를 맞은 군관은 그가 앉으라고 하지 않았기에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후—, 하고 마저 남은 담배를 빨아들인 김련수 대좌는 명령했다. "지금부터 3호실 24시간 가동시켜라. 3시간 단위로 내게 직접 보고하고. 그리고 5호실이랑 8호실 가동 준비시켜라."
김 대좌의 명령에 대좌를 제외한 자리의 모든 군관이 놀랐다. 3호실은 24시간 가동에, 5호실을 준비하라고? 하지만 5호실의 충격도 그다음 명령 때문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5호실이 위험하긴 하나 그것도 8호실에 비교하면 아새끼 장난에 불과했다.
5호실의 대안이었으나 성능 면에서 실패에 가까운 6호실과, 폐기당한 7호실과는 달리 8호실은 진짜배기였으니까. 군관들은 김 대좌가 과연 제정신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김 대좌의 박살 난 재떨이와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군관 때문에 아무도 김 대좌의 명령에 반대하지 못했다. 모두 말할 수 없는 공포와 의심, 반발을 품고만 있을 뿐이었다.
분위기를 읽은 김 대좌가 말했다. "이 반쪽 새끼들아. 지금 너희가 누굴 상대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야?"
"류철! 망할 호위사를 등에 업은 사람 새끼도 아닌 놈을 족쳐야 한다고! 모든 력량을 총동원해도 모자랄 판인데, 네들 같이 골수 빠진 놈들이 골수 채울 생각은 안 하고 겁대가리부터 채워 넣고 있어? 그러고도 살아남겠다고 발악하는 재간이냐?" 김 대좌는 자리의 군관들을 윽박질렀다.
"잘 들어라. 이 사안은 정치부가 뒈지던지, 우리 교화국이 뒈지느냐의 생존전선이다. 저승에서 남은 가족 교화소나 협동농장서 여생 보내는 꼴 구경할 생각 아니면 아가리 닥치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김 대좌의 일갈에 모든 군관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옛소리를 냈다. 그들의 불신과 공포가 다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김 대좌의 가족을 들먹이는 협박이 그들의 피부로 더 와닿았을 뿐이었다. 군관들의 복종에 김 대좌는 추가 지시를 내렸다.
"큰첨서 녀석들에게 연락 돌려라. 그리고 내일 중으로 련대장이랑 일정 잡아. 일 들어가기 전에 도적놈이랑 교통정리부터 해야겠다."
끝으로 김 대좌는 아직도 피를 흘리며 서 있었던 군관에게 그의 손가락 사이에 걸린 거의 다 타버린 담배를 까딱거렸다. 바닥에 흩뿌려진 꽁초와 재떨이 파편을 치우라고 시키기 위해서였다.
***
모란봉 구역에서 차경택 대좌는 류 대좌와의 대화를 되새김질했다. 류 대좌는 볼 일이 있다며 사라져 버린 후였다.
그와의 대화 중에서도 열차가 지나가며 그가 한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줄을 잘 서시오, 련대장 동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소. 호위사냐, 보위부냐요. 내 지시에 따르면 련대장 동지는 무사할 것이요."
차경택 대좌는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갑작스러웠다. 류 대좌의 지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가 내릴 지시는 이것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차 대좌는 류 대좌가 그를 이용해 9국을 치고는 자신을 토사구팽할 것 같다는 인상을 버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류 대좌의 거주민 사상화에 대한 확신도 알 수 없었다. 차 대좌는 류 대좌의 계획이 어떤 것이길래 그가 그토록 자신만만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땅굴사업의 가장 큰 두 목표이자 가장 큰 두 실패 중 하나를, 과연 류 대좌 개인만으로 실패에서 성공으로 돌릴 수 있을까? 물론 석조인간이라는 그의 악명은 지금까지 흔들림이 없었으나, 그에 못지않게 땅굴사업의 불신의 탑 또한 견고했다.
문득 차경택 대좌는 아까의 류 대좌의 모습이 떠올랐다. 신호기의 적색등불이 입혀진 류 대좌의 흰 얼굴. 기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과 확신 위로 덧칠된 암적색은 붉은 색안경으로 바라본 석고상 같은 기괴함을 연상시켰다.
내가 류 대좌의 얼굴에서 확신을 보았듯이, 류 대좌 또한 내 얼굴에서 불신을 읽었을까.
그렇다면 적색등불이 입혀진 내 불신은 무엇이 연상되었을까.
부족한 상상력을 빌린다면, 푸줏간의 갈고리에 걸려 적색등 밑에 놓인 뼈가 발린 고기의 형상이지 않았을까, 라고 차경택 련대장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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